소설리스트

이세계 드래곤-201화 (201/277)

[206] 이세계 드래곤 [22] 4.심심했는데 다행.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카이란과 민지는 경쾌하게 인사를 건네고 신발을 벗어 마루로

향했다. 그러자 주방에 있던 어머니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마루로 왔다.

"왔니..?"

"네.."

"응!"

각자 대답을 들은 어머니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카이란과 민지 뒤에 누군가가

더 있다는 것을 알자 시선을 돌리니 사미와 아리아, 혜미가 보였다.

사미와 아리아와 혜미는 어머니가 시선을 자신들을 두자마자 허리를 숙여 밝은 목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는 화사하게 웃으면서 그녀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래요.. 잘 왔어요."

"저희 옷 갈아 입고 나올게요."

"그래라..."

카이란과 민지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사이에 사미와 아리아와 혜미는 거실에 놓

여져 있는 소파로 옮겨 자리에 앉았다.

"기다려요 금방 먹을 것을 준비할 테니까요."

어머니가 다시 주방으로 가려고 하자 사미와 아리아가 줄줄이 일어서며 말했다.

"저도 도울게요."

"저도요."

혜미도 그 말을 하려고 했지만 사미와 아리아가 재빠르게 말을 해 버리자 그만 타

이밍을 놓쳐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도와주겠다고 나선 그녀들을 향해

어머니는 입가에 미소와 함께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니 됐어요. 그냥.. 거기 앉아 있어요. 그냥 과일 몇 개 가져오는 것 뿐인데 무

슨 2사람이나 필요하겠어요. 그러니 가만히 앉아 있어요."

식사준비도 아닌 그저 과일과 마실 것만 가져오면 끝인데 뭐 하러 2사람이 필요하

겠는가?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다소 높기만 하지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을 인

원이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찜찜한 얼굴로 다시 소파에 앉은 사미와 아리아

였다.

그런 모습을 확인한 어미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사

미, 아리아, 혜미만 가만히 소파에서 앉아있었고, 느닷없이 마루에는 침묵의 신이

주위를 배회하며 돌아다녔다.

".........."

조용한 마루. 가벼운 적막. 공기가 무겁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으니 어색한 침묵에 황당하기까지 해서 그녀들은 잠시간 어리둥절하기

까지 했다. 갑자기 이런 침묵이라니.. 할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런 것은

칼이 배에 들어온 것 보다 더 싫었다. 친한 친구끼리 이런 침묵을 유지하는 거라니

.. 이건 꼭 버스 안에서 할말 없이 가만히 창가는 보는 것과 비슷한 격이었지만 애

석하게도 여기는 버스안도 아니고 근처에 창가도 없는 집안 안이라는 것이다. 또한

옛말에 여자 셋이 모이면 유리컵 하나 깨진다는 전통(?)이 있는데 그 전통을 이어

나가질 못하다니... 그녀들은 막연했다.

사미와 아리아는 무슨 말을 꺼낼까 라는 잡념에 빠져있었다. 관조적으로 총괄해 보

면 아주 무척이나 바보 같다는 결론이 나올 정도로 그녀들의 모습은 한심했다. 그

러는 가운데 혜미만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차분하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원래

부터 말수가 적은 혜미였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왠지 모

르게 이런 분위기와 잘 융합된 모습이었다.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은 가운데 2층 계단 쪽에서 무거운 둔탁한 소리가 배회했던

침묵의 신을 돌려보내 그동안 고민했던 적막을 깨버렸다. 그리고 아직까지 무슨 말

을 꺼낼까라는 생각으로 잠긴 그녀들에게, 그 잡념을 깬 이가 있었다.

"얼래? 왜 이렇게 조용하게 있어? 무슨 처음 선보는 사람같이 하고는..."

그 잡념을 깬 이는 다름 아닌 카이란! 그는 간편한 추리닝과 바지를 입고 마루로

다시 내려왔다. 그녀들은 구세주를 보는 마냥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카이란은 황당해서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그러자 혜미는 입에 손을 대며 소리를 죽여 웃었다.

"후훗.. 처음 선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방금까지 어색한 침묵이 이 둘을 괴

롭혔거든요. 그래서 그런 광경이 나온 것 뿐이에요."

혜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만능소유자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어색한 침묵

이 감싸돌 때 이미 그녀는 사미와 아리아의 행동, 패턴, 생각들을 모두 파악한 상

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참아내기 위해 혜미는 가진 애를 다 써야만 했던 사

실.

혜미 말 덕분에 사미와 아리아는 불에 데워진 듯 전신이 귓불까지 붉게 익혀졌다.

그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은 즉 혜미의 말이 정곡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자 카이란은

곧 웃음이 나왔다.

"쿡쿡.. 하여튼.... 쿡쿡..."

".....아이참.. 웃지 마세요. 갑자기 어머니와 민지, 백성님이 각자 할 일 하러 가

신 바람에 그렇게 된 거란 말이에요."

"마, 맞아요. 어쩔 수 없이 이상하게 어색했단 말이에요.

표독스러움까지 흘리며 수줍게 분홍색으로 물들인 그녀들의 표정은 정말 깨물어 주

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카이란은 쿡쿡 웃으면서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민지도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윗 층에서 쿵쾅쿵쾅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윗층에서 내려오는 소리에 의해서 카이란과 사미, 아리아, 혜미는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어 버렸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민지의 모습이 보였다.

정강이까지 오는 긴치마에 보라색 스웨터를 입고 나온 민지는 활짝 웃는 얼굴로 그

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카이란 옆 소파에 앉았다.

때마침 주방에서 간식을 준비했던 어머니도 큰 쟁반을 들고 마루로 왔다. 큰 쟁반

은 소파 정면에 있는 탁자위에 올려놓았고, 푸르스름하게 잘 익은 과일들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오자 침이 꿀꺽하고 넘어갈 정도로 맛있게 보였다. 카이란의 손은 자신

도 모르게 과일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살이 맞는 소리가 깨끗하고 시원스럽게 들렸

다.

-철썩!-

"아얏!!"

자신도 모르게 과일쪽으로 다가간 카이란의 손등을 철썩 때리자 아픔이 담긴 비명

을 짤막하게 내뱉었다. 그리고 질책 어린 어머니의 잔소리가 나왔다.

"백성아. 버릇없게.... 뭐 하는 짓이니?"

"헤헤.. 맛있게 생겨서 나도 모르게 갔어요."

어머니의 질책에 카이란은 그저 배시시 웃으면서 가볍게 넘겼다. 어머니는 가볍게

한숨 어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가로 저었다. 그리고 큰 쟁반의 한쪽 가장자

리에서는 클라스 컵으로 오렌지주스가 따라져 있는 5잔과 포크들을 각각 사미, 아

리아, 민지, 혜미, 카이란에게 돌렸다.

"그다지 많지 않지만 많이들 먹어요."

많지 않은 것이 아니고 너무 푸짐할 정도로 벅찼다.

"네! 잘먹겠습니다!!"

아까 전의 어색한 침묵 분위기는 도저히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분위기는

화기애애로 활기찼다.

"그리고 보니.. 엄마는 우리 며칠 간 없을텐데 그때 뭐 할 거예요?"

잉? 그 말은 뭔 소리? 우리? 카이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민지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뇌에서는 이리저리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며칠간 없다는 말은 즉

집에 며칠 안 온다는 뜻인데... 우리라니..., 외박은 물론이고, 집에 나갈 일은 절

대로 없어서 오히려 심심해서 몸둘 바를 몰라 아무거나 뭐라도 원하고 있는 상태라

어디든 나가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자신은 그런 것에는 소질이 없어 아무런 계획도

짜지 않았는데 뭔 소리인가? 절대로 '우리' 라는 의미가 들어갈 일이 없자 카이란

은 골머리가 땡겼다.

"후후.. 글쎄.. 민지와 백성이가 없으니.. 잠시간 홀가분하겠지? 물론 말썽쟁이 민

지가 더 없으니 속이 시원해서 날아갈 것만 같고 말야.. 한동안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어서 말이 엄마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게 느껴지네.. 호호.."

웃으면서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카이란은 그저 '얼래?'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

문을 알 수 없었다.

"아이참... 누가 그런 것을 물어봤어요. 그냥.. 우리가 없으면 뭐 할거냐고 물어

본거지.. 누가 기분을 물어본 건가?"

일부러 어머니가 비아냥거리듯 말을 돌렸다는 것을 알자 민지는 눈썹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입가에 손을 올려 웃었다.

"호호호..... 음.. 뭐 할게 있을까? 아무래도 그냥 집에서 가만히 있겠지.. 아빠도

요즘 이상한 사건 때문에 바쁜 것 같으니.. 엄마 혼자 뭐하겠니.. 그저 평소보다 T

V나 좀 많이 보겠지 뭐."

"헤에.. 난 엄마와 아빠 어디라도 다녀올 줄 알았는데.. 의외네... 너무 약한 것

같아요.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은데..."

그때 사미가 나서서 말했다.

"맞아요! 너무 약해요. 뻔히 백성님도 없고 민지도 없는데 집에서 가만히 계신다뇨

!? 그것은 시간만 낭비하는 일이죠! 그러니 가능한 어디라도 나갔다 오세요!"

"사미양 말 맞다나.. 너무 약해요! 그러니 아무 곳이나 나갔다오세요!"

얼래 아리아까지 알고 있다니.. 카이란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그리

고 지금 이 대화가 뭔지를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혜미가 아리아의 말을 이어

버렸다.

"사미와 아리아양 말대로.. 어머니는 자유시간을 쓸 줄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러

니.. 이번 기회에 어디라도 다녀오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아버님이 바

쁘시니 오붓하게 갔다 오시는 것은 무리겠지만 기분 전환으로 온천정도는 딱 정당

할 것 같으니.. 이때가 아니면 언제 다녀오시겠어요. 그러니 잘 고려해 보시고 결

정하세요."

"맞아! 엄마! 언니들 말 모두 맞다나.. 그렇게 하는게 좋아. 설마 알아..? 아빠도

그 날은 일부러 쉬려고 노력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 웬만해선 갔다오라고."

이 얼마나 효성스러운가!! 어딜 갔다오라고 여행경비비만 얹혀준다면 완전 부모님

을 지극히 아끼는 효녀가 다름없었지만 애석하게도 중학교 3년에게는 할 만한 아르

바이트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는 금지령으로 내려져 있는 곳

이었다. 민지는 가끔 어머니가 자신과 오빠 때문에 집에만 있는 것이 못마땅했기에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찾아오는 기회는 흔치 않아 계속 어머니에게 권유했다.

하지만 카이란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의 모습만 지켜보지 절대로 나서

지는 않았다.

"호호.. 우리 민지가 이렇게 엄마 생각해 줄줄 몰랐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요

즘 엄마는 요즘들어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집에서 쉬고 싶어져서 말이야..."

"정말 노인네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엄마도 참 지금 엄마 나이 몇이라고 벌써부터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야! 지금이야말로 중년의 젊음(?)을 만끽해야 할 시기인데!!

벌써부터 그런 퇴폐 된 소리나 하는 거야!!?"

방년 부모님 나이 43세.. 아직까지는 한창 젊으실 때라 어디든 방방곡곡 돌아다니

더라도 무방할 나이 대다. 부모님들은 고리타분한 성격은 아니지만 외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것이 문제랄까? 또한 아직 한창 40대 초반이면서 집에만 굳건히 지

키겠다는 저런 60대 노친네같은 말투! 민지로써는 못마땅할 수 밖에 없었다.

"후훗.. 민지양 말 맞다나... 그런 망언이라니... 정말 어머니 너무할 정도로 나가

기 싫어하는 것이 보이네요. 그러니.. 어떻게든 우리들이 없을 때 어디쯤 다녀오세

요. 여차하면 제가 비.용.까.지 부.담.해 드리겠습니다."

혜미는 무슨 시어머님에게 점수 따는 마냥 적극적으로 나서서 금전까지 대주겠다는

말을 엑센트하고 임팩트 하게 내뱉었다.

"언니 말대로 저도 금전 대줄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의 성의를 봐서 나.갔.다.오.

세.요."

자매는 용감했다. 훌륭했다. 부자였다. 그리고 역시 둘 다 아주 아름답고 예뻤....

다...는 말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다지 필요 없는 말이고.. 어쨌든, 혜미에 이어

사미까지 합세해서 엑센트까지 똑같이 넣어서 그렇게 말하니.. 어머니는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저도 사미양과 혜미 선배의 말을 동의합니다. 전 무척이나 가난해서 금전이 없는

관계로 그렇게 해 드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죄송합니다."

"............"

자존심도 없는 아리아. 착한 것도 탈이 되는 것을 말해주듯 너무나도 솔직하게 털

어놓는 아리아의 말에 잠시간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민지는 카이란을 보았다.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카

이란을 보며 민지는 말했다.

"아이참! 오빠는 도대체 뭐하는 거야!?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거야?

엄마가 놀러간다는 것이 기분 나쁜 거야? 그런 것이 아니라면 왜 말이 없는거야?

오빠도 말 좀 해봐."

그리고 보니 지금까지 입 한번 벙긋하지 않는 이가 카이란이자 일제히 시선이 그에

게 쏠렸다. 그리고 무슨 말을 내뱉기를 기다렸다. 카이란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

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기...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말이 오가는 거지? 왜 나나 민지나 며칠 간 집에

안 들어 올거라는 말을 하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몰라서 말야... 그

이유 좀 가르쳐 주지 않겠어?"

".........."

누구하나 빠짐없이 얼굴이 극악을 보는 마냥 우수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부는 상쾌한 바람.. 카이란은 그런 그들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이 바보 오빠야!!"

"크억!!"

나왔다!! 민지의 바보연타! 카이란은 민지의 신랄한 발언에 울컥 피를 토하며 쓰러

졌다. 그리고 사미와 아리아와 혜미는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각자 생각했다

'그래 백성님은 이런 분이셨지...'

'맞아.. 이것이 백성님 다웠지...'

'하여튼 백성군은 변함이 없군요.'

어찌보면 그것이 카이란 다운 거라 그녀들은 한결같은 그의 모습에 쓴웃음만 지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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