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역병의 권속 (2)
나는 혼자다.
어째서 그런 걸까.
어찌하여 내 주위엔 아무도 없는 것일까. 아니, 남을 수 없는 것일까. 궁금하다. 물어보고 싶다. 대체 당신들은 왜 그런 것이냐고.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냐고. 그리고 왜…… 잠시 후엔 다들 반응이 없어지는 것이냐고.
“끄…… 끄흐…… 흐끕……!”
- …….
흑마법사들에 의해 창조된 존재. 새끼 드래곤의 뼈대에 갖은 저주와 마정석을 심어 태어난 역병의 피조물.
악티누스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희미하게 흔들리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아니, 한때 사람의 이지를 온전하게 지녔던 이가 고통에 겨워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창조한 흑마법사?
아니다.
창조자들은 이미 한참 전에 죽었으니까. 자신은 그들이 꾸렸던 보금자리를 떠났으니까. 자신의 정체를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서. 혼자이기 싫어서. 누구든 좋으니 곁에서 자신을 보살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여 정처 없이 떠나왔다. 어딘지도 모를 산과 들, 숲을 떠돌았다. 며칠을 그렇듯 방황하였을까. 간절한 바람이 마침내 통한 것인지, 처음으로 보는 촌락에 도착했다.
반가웠다.
사람들의 흔적이 보였다. 더욱 반가웠다. 한달음에 마을로 들어왔다. 쿵쿵. 한밤의 고요에 잠겨 있던 촌락이 소란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존재는 곤히 잠들어 있던 양치기 개였다. 컹컹. 격렬히 짖는 소리에 양 떼가 불안스레 두런거렸다. 돼지와 소, 닭이 제각각 울어댔다.
그 소리가 사람을 깨웠다. 어느 부지런한 아낙이 눈곱을 닦아내며 문틈으로 밖을 살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온 동네 가축들이 이 모양으로 난리를 떨어댈까. 또 어째서 양치기 개는 저토록 죽어가는 듯이 낑낑거리나.
혹시 곰이라도 왔나.
아니었다.
곰보다 더욱 거대한 실루엣이 달빛 아래 서 있었다. 두 발로 선 높이는 10미터쯤 될까. 그런데 전신이 이글거리는 듯했다. 정확히는 실루엣의 주변 공기가 온통 달구어져 이글대고 있었다.
딛고 선 바닥의 풀이 삽시간에 누렇게 말라붙었다. 실루엣의 주위를 미친 듯이 뛰며 맴돌던 양치기 개가 어느 순간 바닥에 푹 고꾸라졌다. 이미 한가득 물린 거품. 하얗게 뒤집어진 눈알과 벌벌 떨어대는 네 다리.
그리고 이쪽을 돌아보는 실루엣의 머리.
마주쳐 버린 시선.
“……끼야아아악!”
아낙의 날카로운 비명이 밤하늘을 찢었다. 촌락 곳곳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각기 손에 쇠스랑이며 도리깨 따위를 들고서. 결연한 외침을 토해냈다. 남자들은 다 나와. 양 떼를 지켜.
그 모습에 악티누스는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이곳의 사람들이 다들 자신을 반겨주고 있다. 얼마나 반가우면 뛰어나오기까지 할까. 다들 앞다투어 이쪽으로 달려오는 걸까.
그러나 악티누스의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커억……?”
선두에서 달려오던 청년의 안색이 바뀌었다. 다리가 꼬인 걸까. 그 자리에서 풀썩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대신 가슴을 부여잡고서 격한 구역질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쿨룩! 콜록! 쿠, 구어억! 우우억!”
처음에는 저녁으로 먹은 양젖 치즈가, 다음에는 위액과 장액이, 뒤이어 시커먼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오기까진 불과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세 좋게 달려오던 사람들이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조리 쓰러져 나뒹굴고, 속의 것을 게워내다 못해 피를 줄줄이 토해냈다. 개중에는 제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는 이도 있었고, 피부를 벗겨낼 듯이 긁어대는 사내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쳐댔다. 아아악. 내 몸이 타고 있어. 벌레가. 제발. 아아악. 물, 물 좀!
그 모습에 악티누스는 대단히 놀랐다.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쓰러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불과 서너 걸음을 다가갔을 뿐인데, 쓰러진 이들의 몸이 이글거리는 열기에 휩싸이고 말았다.
“……끄으아아아아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전신에 불이 붙었다. 머리칼이 순식간에 타서 사라지고, 생살이 익어 버렸다. 이내 헐떡이던 숨결마저 끊어졌다. 이윽고 엄습한 침묵. 왜? 악티누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 자신이 모르는 끔찍한 저주라도 내린 것일까.
“히, 히이익! 역병……여, 역병? 역병의 드래곤?”
어느 아낙의 소스라치는 소리.
아.
저 사람은 뭔가 알고 있나 보구나. 다급한 마음에 다가갔다. 그랬더니 아낙이 털썩 쓰러졌다. 아낙이 붙들고 있던 낡은 나무 문이 불길에 휩싸였다. 허름한 집도 마찬가지였다. 성대하게 타오르는 불길. 비명. 단말마의. 너무나 빨리 꺼지는 실낱같은 호흡. 도울 틈조차 없이 스러지는 생명.
주위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를수록 더욱 많은 생명이 꺼졌다. 촌락 사람들. 바쁘게 뛰어다니던 사람들. 공포에 휩싸여 울부짖던 양 떼와 돼지. 때아닌 불빛에 날아들던 불나방들까지. 모조리. 예외조차 없이. 잘라내듯. 한 무더기로.
- …….
촌락민과 가축이 몰살을 당하기까지는 불과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참상이었다. 악티누스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혼란에 휩싸였다. 나는 그저 묻고 싶었을 뿐인데. 반가웠던 건데. 그런데 다들 어째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슬비 속을 걸으며, 자신의 몸에 떨어지는 빗물이 마정석의 열기에 즉시 증발되는 것을 느끼며 악티누스는 생각했다.
다시 찾아보자.
어딘가엔 내게 답을 알려줄 존재가 있을 거야. 날 받아줄 이가 있을 거야. 그러면 나도 다시…… 품에 안기고, 재롱을 부리고, 자라날 수 있을 거야. 그래야지. 나는 드래곤으로 자라날 존재니까.
그런데…… 내 부모는 어디에 있지?
- …….
모르겠다. 그저 혼란스러웠다. 악티누스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새끼 드래곤의 뼈대. 그 골수에 아득하게 깃든 희미하고도 어린 자아가 꿈틀거렸다. 찾으라고. 너의 부모를. 너를 받아주고, 안아주고, 키워줄 이를. 찾으라고.
……쿠웅! 쿵!
악티누스는 본능 같은 목소리에 따라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이곳이 아니라면 다른 촌락에, 혹은 요새나 도시에. 하나쯤은 있겠지. 그런 존재가.
치이익! 부그륵!
걸음을 옮기는 악티누스의 주위로 식물이 말라 죽고, 땅이 그을리고, 흐른 핏물이 끓어올랐다. 그렇게 악티누스는 폐허가 된 촌락을 떠나 악의도, 정처도 없는 걸음을 하염없이 옮기고, 또 옮기었다.
♣
오늘도 걸음을 옮긴다. 저 웬수 같은 변경백이 기다리는 연무장을 향하여, 눈치 없이 솟아오른 아침 햇살을 밟으며, 이슬이 맺힌 풀밭을 지나, 나는 오늘도 멀티 마나하트의 기예를 배우러 간다.
“후우.”
황태자의 호위, 데미안 카이엔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길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늦지는 않았군. 왔으면 바로 시작하지.”
부웅-!
목검을 허공에 휘둘러 보이는 변경백. 어쩐지 신이 난 얼굴이었다. 그럴 법도 하다. 저 인간, 벌써 며칠째 이쪽을 굴리는 데에 아주 진심으로 몰입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가 없겠다.
황태자 전하의 명이 있었으니까. 멀티 마나하트의 기예를 배울 유일한 기회니까 제대로 임하라고. 무조건 성공하라고.
데미안은 다시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붙들어 쥐며 물었다.
“오늘은 뭘 하면 됩니까.”
“간단하네. 자, 여기 앉게.”
변경백이 미리 놓여 있던 걸상을 가리켰다. 그 앞의 책상에 쌓인 갖가지 서류와 책자도 보였다.
데미안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설마 책을 읽는 게 훈련이라는 건 아니겠지요.”
“왜 아니겠는가.”
“…….”
“동화책일세. 어린아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지. 자네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야.”
“저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검술 서적을…….”
“어허. 다 이유가 있는 훈련법일세. 어서 앉게. 이러는 사이에도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
데미안은 더 대꾸를 하려다 참고 걸상에 앉았다.
변경백의 입가에 므흣한(?) 미소가 맺혔다.
“자, 그럼 동화책을 펼쳐서 소리내어 읽게.”
“이걸로…… 멀티 마나하트가 생기는 게 맞습니까?”
“맞네.”
“대체 어떻게…….”
“훈련 안 할 건가?”
“……후우.”
데미안은 잠깐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동화책 낭독을 시작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골드 드래곤이 금고의 금이 떨어져서 신용대출이냐 마이너스 통장이냐를 고민하던 까마득한 시절, 어느 마을에 로이드 프론테라라는 인류 절세의 미남이 살았답니…… 잠깐만요, 이거. 내용이 이상합니다만?”
“음? 이상하다니? 어디가 말인가?”
“로이드 프론테라라면 초대 황제의 아버지인 유명한 영지 설계사일 텐데, 그는 절세의 미남이기는커녕 곁을 따라다니던 미남 호위와 항상 비교를 당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요.”
“아아, 나도 알지. 그러니 그 책이 동화가 아니겠는가.”
“예? 설마…….”
“그 책의 저자가 로이드 프론테라일세.”
“…….”
“아마 평생 한이 맺혔던 것이겠지.”
“…….”
“계속 읽어 보겠나?”
“아, 예.”
데미안은 말도 안 되는 내용의 동화책 낭독을 시작했다. 그러자 변경백이 그에게 다른 요구를 토핑 얹듯이 쇽쇽 추가했다.
“자아. 낭독을 이어가며 한 손으로 붓을 들게.”
시키는 대로 했다.
“붓으로 연무장 주변의 풍경화를 그려보겠나? 물론 동화책 낭독은 이어가면서.”
“으읏…….”
“힘내게. 아직 초급 단계의 훈련에 불과한데 벌써 엄살인가?”
“크읏!”
“자아, 비뚤비뚤하지만 그래도 그림까지는 되는군. 하면 이제 눈썹으로 춤을 추어보게.”
“…….”
“왼쪽 눈썹에서 오른쪽 눈썹으로. 파도가 치는 듯이 근육을 움직이란 말일세. 자, 이렇게. 오른쪽 끝으로 갔다면 다시 왼쪽으로. 계속 반복해서.”
“꼭……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어허. 누가 동화책 낭독을 멈추라고 했지?”
“…….”
“눈썹 댄스는, 흐음. 그건 그나마 볼 만은 하군. 역시 운동신경이 좋아. 자, 그럼 다음은 동화책 낭독과 풍경화 그리기와 눈썹 댄스를 유지하면서 부츠를 벗어보게. 당연히 발만 써야겠지?”
“……읏.”
“생각보다 잘하는군. 그럼 이제는 엄지 발가락 펜싱일세.”
“예?”
“쯧. 낭독을 멈추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는가. 양쪽 엄지 발톱으로 펜싱을 하란 말이야. 물론 단순하게 반복적인 움직임만 보이면 안 되네. 각각의 엄지가 생명을 지닌 것처럼, 실제로 결투를 벌이는 것처럼 정교하게, 다양하게 움직여보게나.”
“…….”
“옳지. 나쁘진 않군. 그럼 지금까지 실행하여 온 모든 행동을 유지하면서 방귀를 뀌어보게. 세 번으로 나누어서. 소리는 당연히 우렁차야겠지?”
“……!”
저 인간 진짜 한 대 칠까.
참고 또 참던 데미안은 진심이 담긴 울컥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황태자의 엄명이 있었으니까. 이게 정말로 멀티 마나하트의 기예를 익히기 위해 필요한 멀티-태스킹 습득의 과정이라고 했으니까.
‘하아. 진짜.’
내가 어쩌다가 이런 짓까지 하게 됐을까.
데미안은 시궁창에서 하드코어하게 쑴펑쑴펑 피어나는 자괴감을 느끼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변경백은 그런 데미안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저 호위가 고생을 하는 만큼 강해질 테고, 그만큼 황태자 전하께서 안전해지시겠지.
그래. 그거면 됐다.
이게 멀티 마나하트의 기예를 익히는 데에 꼭 필요한 훈련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몰아붙일 필요는 없긴 하지만, 그래도 황태자 전하를 위한 것이니까. 결코! 절대로! 한사코! 이건 앞선 발바닥 훈련에 대한 복수 따위가 아니니까. 아암. 그렇고말고.
……뽀옹↗
수치심에 시뻘게진 데미안의 안면과 무관하게, 그의 둔부에서 찰진(?)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소리가 변경백의 가슴까지 울리지는 못하였다.
“어허. 소리가 작아. 성의가 없어. 다시!”
“……!”
데미안이 울컥하는 만큼 변경백이 흐뭇해졌다.
물론 두 사람도,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키득거리며 구경하던 황태자 라키엘도 까맣게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국경, 최전방 지대의 급보를 품은 파발이 변경백 저택을 향해 다급히 달려오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