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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38화 (138/194)

00138  5-6  달콤한 납치 (1)  =========================================================================

6장 달콤한 납치(1) - 5

혹시나 해서 거실도 다시 살폈지만 의자만 있지, 누울 수 있는 기다란 소파는 없었다. 그것도 원래 있었는데 치운 것 같았다.

‘란돌. 이놈…….’

린덴은 시종의 배려에 화내야 할지, 칭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엘리제가 그의 등 뒤에 주저하며 다가왔다.

“전하? 이곳에서 자시게요? 하지만 침대가…….”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아니면 방금 몸을 씻은 탓인지 그녀의 달콤한 체향이 그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린덴의 이성이 마비되었다.

확 몸을 돌리더니 다짜고짜 그녀의 입을 덮쳐 버렸다.

“저, 전하?”

놀란 그녀가 벗어나려 했으나, 그는 놔주지 않았다.

손으로 그녀의 양손을 잡았다. 벗어나지 못하게.

그리고 거칠게 그녀의 입안을 헤집었다.

“아…… 아…….”

엘리제는 전신의 힘이 빠져 신음을 흘렸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으나, 곧 등이 벽에 닿으며 갇혔다. 그렇게 그녀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둔 채 린덴은 이성을 잃고 그녀를 농락했다.

“저…… 전하…….”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 키스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제발…….”

“……!”

그녀의 떨리는 말을 듣고서야 린덴의 이성이 돌아왔다.

그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끌어안고 말했다.

“놀랐으면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린덴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 소녀는 날 이렇게 힘들게 만들까. 도대체 그녀만 앞에 두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렇게 살갗이 와 닿는 느낌에 다시 마음이 흔들려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한편, 엘리제는 머뭇거리니 손을 들어 그를 마주 안아주었다.

솔직히 많이 놀라긴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우리 이제 자요. 전하도 피곤하시죠?”

“……그래.”

그녀는 그와 침실로 가려 했으나 린덴은 고개를 저었다.

“난 그냥 여기서 자겠다.”

“하지만 침대가?”

“괜찮다. 그냥 바닥에서 자면 된다.”

엘리제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린덴은 진심이었다. 지금 이렇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그녀와 한 침대에서 잔다고? 그건 정말 고문일 것이다.

“정 그러시면 제가 이곳에서 잘게요. 전 바닥에서도 잘 자니까요. 전하께서 침대에서 주무세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는 침대에서 편하게 자라. 바닥에서는 내가 잘 거니.”

잠시의 실랑이 끝에 결국, 엘리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지 말고 침대에서 같이 자요.”

“…….”

그녀는 순수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믿으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 믿고 있어요.”

“…….”

린덴은 속으로 인상을 구겼다.

‘젠장, 믿지 마.’

그는 아까 전으로 돌아가 자신의 말을 취소하고 싶었다. 내가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약속을 한 거지?

어쨌든 저렇게까지 순수하게 믿는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잔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없어 결국 같이 침대로 향했다.

그녀는 불을 끄며 자리에 누웠다.

“편안히 주무세요.”

“……그래.”

그러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린덴도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엘리제는 그가 자신의 옆에 누워 있다는 사실에 잠시 두근거리다 원체 수면부족이었던 탓에 곧 잠에 빠졌다.

그리고 린덴은…….

‘미치겠군. 정말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녀가, 예쁜 초식동물이 자신의 옆에 무방비하게 누워 있다. 맹수가 입을 벌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나도 자자.’

하지만 잠이 올 턱이 있나.

잠에 들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다. 결국, 그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뜨고 몸을 돌려 잠이 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제 악몽은 꾸지 않는 건가.”

다행히 평안해 보이는 얼굴.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린 머리칼을 치웠다. 곱게 감긴 예쁜 눈꺼풀에 조심히 입을 맞추었다.

“우웅…….”

그녀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으나, 깨진 않았다.

“잘도 자는군.”

린덴은 한숨을 내쉬었다.

날 이토록 괴롭게 만들어놓고, 혼자서 저렇게 잘 자다니.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하아, 엘리제.”

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맨날 날 속상하게 하고, 일만 좋아하고, 얄밉지만. 그래도.

“사랑한다.”

정말로. 정말 많이. 내 목숨보다도.

“사랑해.”

그런데 그때였다.

엘리제가 우웅 하고 소리를 내더니 뒤척이며 침대에서 몸을 움직였다.

원래 얌전히 자기보다는 잠버릇이 있는 편이어서 이불을 벗고 침대에서 굴러다니는 그녀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침대 위를 뒤척이더니…….

그의 품 안에 쏙 들어와 버렸다.

“……!”

린덴은 숨을 흡하고 들이켰다.

간신히 자제하고 있는데, 이 초식동물이……!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나보고 어떻게 참으라고.’

다시 미칠 듯한 갈망이 치밀어 올랐다.

지금 이 순간 그녀를 가지고 싶었다.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온몸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고 싶었다.

하지만…….

‘믿으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니 믿고 있어요.’

‘젠장.’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양의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양 칠백사십사 마리, 칠백사십오 마리…….’

하지만 효과 없었다.

그래서 종목을 바꿨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별을 천 개까지 센 그는 서글퍼졌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아, 바늘이라도 가져올걸.’

허벅지라도 찌르면 조금 참기 쉬울 것 같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린덴에게는 참으로 괴로운 밤이었다.

***

엘리제는 늦게 일어났다.

평소처럼 새벽에 눈을 뜨긴 했지만, 린덴이 왜인지 시뻘게진 눈으로 더 자라고 강압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더 자고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몇 시지?’

맙소사.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정말 넋을 잃고 곯아떨어졌던 것이다.

“일어났나?”

“아, 네.”

고개를 돌리니 그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조각 같은, 아니, 그보다 아름다운 린덴의 얼굴을 보니 엘리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니. 왠지 꿈만 같았다.

“잘 잤나?”

“네, 전하.”

린덴이 그녀에게 다가 와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입맞춤을 했다. 사랑이 담긴 모닝 키스였다.

“아…….”

그 달콤함에 엘리제는 신음을 흘렸다.

그는 아쉬움을 남기고 입술을 떼었다.

“아침 먹어야지?”

“아…… 네. 시간이 늦었는데…….”

“준비해 놓으라고 했으니, 곧 가져올 거다. 조금 더 누워 있어.”

“아니, 이제 일어나야죠.”

“더 누워 있어. 평소엔 거의 잠도 자지 않잖아. 납치당했을 때라도 더 쉬어.”

납치.

그 말을 듣자 엘리제는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병원에 남겨두고 온 일이 걱정되긴 했지만 이 순간이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다.

‘일은……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엘리제는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납치범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그녀는 린덴의 눈이 빨간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전하, 조금 피곤하신 것 같은데…… 혹시 잠자리가 불편하셨는지?”

“……아니다.”

린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군.’

결국, 그는 어젯밤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몸을 껴안고 잠이 들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정말 번뇌가 넘치는 괴로운 밤이었다.

‘란돌, 이놈.’

그는 이 사단을 만든 란돌을 떠올렸다.

그런데 혼을 내주리라 생각했지만, 상을 주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한잠도 못 자서 그런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렇게 둘은 룸서비스로 늦은 아침 식사를 하였다.

식사 메뉴는 엘리제의 취향을 한껏 고려한 브런치였다. 달달한 디저트도 함께 대령했다.

행복한 표정으로 식사를 마친 엘리제는 물었다.

“전하.”

“왜 그러지?”

“이제 우리는 론도로 돌아가는 건가요?”

“아니, 가야 할 곳이 있다.”

“가야 할 곳이요?”

그제야 이 납치의 목적을 언급하는 린덴이었다.

“그래, 같이 가서 해야 할 것이 있다.”

“어디인가요? 그리고 해야 할 것이라니?”

하지만 린덴은 알려주지 않았다.

“가보면 안다.”

“……?”

엘리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먼가요?”

“아니, 이곳에서 멀지는 않다. 중부 지방이니까. 기차를 타고 가면 금방이다.”

“그러면 오늘 바로 출발하나요?

“아니, 출발은 내일 한다.”

“그러면 오늘은?”

린덴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야지.”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다시 입맞춤하였다.

“아…….”

혀와 혀가 얽히며 후식으로 마셨던 커피 향이 느껴졌다. 짙은 여운이 남는 키스였다.

그는 엘리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만큼은.”

그리고 짙은 금안이 그녀를 담았다.

“한순간도 놔주지 않을 테니 각오해.”

***

정오까지 그와 침대에서 함께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호텔 밖 거리는 케인즈 시의 전통 축제로 한창 시끄러웠다.

“아름다운 레이디, 잘생긴 젠틀맨! 이리로 와서 맛 좀 보고 가세요!”

시끌벅적한 거리의 분위기.

꽃이 만발한 거리 안에서 시민들이 흥겹게 즐기고 있었다.

엘리제는 눈을 껌뻑거리며 거리를 둘러보았다.

“거리 축제는 처음인가?”

“아, 네.”

“케인즈 시의 축제는 크게 2가지 단계로 진행한다고 한다. 오전, 이른 오후에 이렇게 일반적으로 즐기다가, 늦은 오후에 하이라이트가 시작하지.”

“하이라이트요?”

“그래, 토마토 축제.”

엘리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웬 토마토?

“토마토 싸움을 한다.”

“에?”

“그러니까 눈싸움을 하듯 토마토로 시민들끼리 싸움을 한다고 하더군. 원래 스페냐 왕국의 발렌스 지방의 전통 축제인데, 어쩌다 보니 전파되었다고 한다. 과거 시장이 그 축제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나?”

도무지 상상이 안 가는 장면이다. 토마토를 던지며 싸우다니.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시는 거지?

“전하께서는 이 축제에 와본 적 있으세요?”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린덴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열었다.

“그대 때문에 공부했다.”

“아…….”

“네가 이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재미있는 축제에 와보고 싶다고.”

그 말에 그녀는 가슴이 뭉클했다.

혹시나 자신 때문에 이 케인즈 시에 온 건가 했는데, 정말이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축제를 구경시켜 주기 위해.

엘리제는 옆의 린덴에게 붙었다. 팔과 팔이 맞닿았고, 그녀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히 팔짱을 꼈다.

“……!”

린덴이 놀라 그녀를 보았다.

엘리제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싫…… 으세요?”

린덴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그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사랑하는 나의 엘리제.

그렇게 둘은 축제를 구경했다.

우선 황궁에서 절대 먹을 수 없는 길거리 음식들을 먹었다. 소스 범벅인 꼬치를 먹었는데, 달달하니 맛있었다.

엘리제는 그의 뺨에 소스가 묻자 웃으며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린덴도 그녀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었다. 손수건이 아닌, 혀로 직접.

“……!”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자, 린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거, 거짓말하지 마요!”

<주말은 쉽니다!!>

============================ 작품 후기 ============================

다음주 월요일 09시 07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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