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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32화 (32/100)

제 32화

대련을 마치고

"지나치게 손 속이 과하더군. 특례입학생이라곤 하나 아카데미가 모든 방종을 용납해줄 것이라 여기지는 말도록."

사태를 정리한 칼라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마디 경고만을 남겼다.

신입생 다섯을 병실로 보낸 사람에게 하는 말치고는, 생각보다 관대한 발언이었다.

이 정도 사고쯤은 그냥 일탈 정도로 받아주겠다는 건가.

하긴, 어차피 저 정도 부상이야 이틀이면 치료될 테고, 실전에선 그보다 더한 부상을 입는 경우도 많을 테니.

"그럼, 이것으로 오전 강의를 마치겠다. 다들 집합!"

칼라인의 선언에 학생들이 다시 사열대 앞으로 집합했다.

여러모로 피를 보았기 때문인지 다들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표정들은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서 있는 모습은 흔들림 하나 없이 꼿꼿한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대련의 여파로, 깔끔했던 제복들이 하나같이 흙먼지와 땀에 물들어 짙게 얼룩져 있었다.

저래서 제복을 두 벌씩 제공한다고 했던 건가.매일 세탁하며 번갈아 입으라고.

전원이 도열한 모습을 확인한 칼라인이 말을 이었다.

"다들 수고했다. 다소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귀관들의 수준과 동기들의 전투방식, 전투의 흉험함에 대해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전투의 흉험함 부분에서 몇몇 신입생들이 은근슬쩍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내비치는 눈빛에 더 이상 경멸감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과 전혀 다른 것을 바라보는 거부감과 공포심뿐이지.

...검붉게 물든 웃옷이 축축하고 미지근해 불쾌했다.

"부상자가 꽤 있었으니, 대련 내용에 대한 분석 및 평가는 다음 강의 시간에 진행하겠다. 중식을 먹고 각 학부별로 오후 강의를 수강하러 가도록. 해산!"

칼라인의 명령을 들은 신입생들이 흩어지며 각자 자신들과 친한 무리들과 함께 일반관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내 주위 4m 이내로는 다가오지 않고 피해 가는 모습이 오히려 우스웠다.

수인이나 마물들과 직접 마주하고 나면, 내가 보여준 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될 텐데.

특별관으로 돌아와 가볍게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지나친 소란을 일으키는 건 황실이 달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피에 흠뻑 젖은 옷을 본 나이젤이 조금 머뭇거리다, 이내 짧은 충고를 남기며 옷을 세탁물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저대로 두면 나중에 특별관 시종들이 세탁해주던가 하겠지.

"필요한 일이었어."

그래. 어차피 한 번쯤은 해야 할 일이었다.

좋은 평판을 쌓는 일은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나중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은 내 힘과 위험성을 드러내는 것이 먼저였다.

일단 내가 저지를 수 있는 짓을 직접 눈으로 보아야, 나를 만만히 보고 함부로 멍청한 시비를 걸어오지 않을 테니까.

아직 내 입지가 불안정한 만큼, 누군가가 나한테 시비를 걸어온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들이받기는 좀 곤란하다.

그러니 애초에 시비가 걸려올 일 자체를 막아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련 수업은 딱 좋은 기회였다.

대련 명목이라면 당당히 상대방을 두들겨 팰 수 있었으니까.

...케네스에게 저지른 짓은 좀 과하긴 했지만.

전투로 흥분된 상태에서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적을 찢어 죽이고 싶어지는 충동이 확 밀려든다.

하샬르의 본능이, 배가 고프다는 뜻이겠지.

내가 빙의한 이후로 누군가와 제대로 사투를 벌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역시, 흉악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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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강의는 병기의 활용과 체술의 연계 과목이었다.

담당교수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여기사였다. 이름이 테레지아라 했던가.

첫 강의였기 때문인지, 강의 자체는 실내에서 가벼운 오리엔테이션만이 진행되었다.

...첫날부터 다짜고짜 실전대련을 시킨 칼라인 교수 쪽이 특이한 사람이었구나.

나를 본 학부생들이 계속 움찔거리며 몸을 피하기에, 강의실 맨 뒤쪽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이 과목은 기사학부생들이 자신들의 병기가 가진 특성을 확실히 이해하고, 체계적인 무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강의라 한다.

확실히,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기술보다는 신체능력과 경험에 의존해 병장기들을 휘두를 뿐이니까.

일단 학생들을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 분류한 뒤, 각 담당 교사들이 맞춤형 강의를 실시하며 이론교육 및 대련 교습으로 진행된다고.

장검의 경우, 1학기엔 제국검술의 기초가 되는 열화판 검술을 가르친다고 한다.

...즉, 나이젤이 해 주던 제국검술 특강의 하위호환이라 이거네.

이것도 내게 굳이 필요해 보이는 강의는 아니었다.

시간이 꽤 많이 비게 되겠는데.

뭐, 애초에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기초적 전투기술 따위가 아닌 지식 쪽이니까.

적어도 적성체에 관한 강의는 들을 만하겠지.

제국의 적. 마물과 아인종들에 대한 내용이라 했었나.

특히, 수인들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놓아야 한다.

곧 필요해질 테니까.

=======[데미안]=======

아카데미 본관의 의무실.

스무 개 가량의 침상 중 여섯 곳에, 죽은 듯 눈을 감고 붕대를 둘둘 만 환자들이 누워있었다.

특례입학생들이 만들어낸 중상자들이.

흰 환자복이 배어 나온 혈흔으로 여기저기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카데미 소속의 치유사제들이 치유의 기적을 펼치고, 포션을 주사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데미안은 밀리아의 침상 앞에 앉아서, 무표정하게 밀리아를 내려다보았다.

희게 질린 얼굴이 파리했다.

오른팔 전체에 붕대가 휘감겨 있었고, 통증 때문인지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이윽고, 밀리아가 신음하며 서서히 눈을 떴다.

데미안은 곧바로 소꿉친구를 걱정하는 청년다운 표정을 만들었다.

"데미안......?"

"괜찮아, 밀리아? 머리가 아프지는 않고?"

"으응...괜찮아. 걱정 끼쳐서 미안해."

욱신거리는 어깨의 고통 때문일까, 간단히 패배해버린 대련 때문일까.

대답하는 밀리아의 목소리는 상당히 풀죽어 있었다.

식은땀에 젖은 녹색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처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괜찮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왜 그렇게 무리한 거야? 밀리아 너답지 않게."

데미안이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유를 알아 두어야, 다음에 비슷한 사태가 다시 벌어지는 일을 예방할 수 있을 테니까.

하샬르라는 여자는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니, 친구 둘이 서로 적대하는 상황을 내버려두는 건 그로서는 옳지 않은 일이었다.

데미안이 아는 평소의 밀리아였다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공격적으로 굴거나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기지도 못할 상대에게 억지로 덤벼들지도 않았을 테고.

데미안이 얼핏 보기에도, 그 여자는 무시무시한 수준의 강자였으니.

폭력성과 잔학성을 사람의 몸으로 빚어낸 듯한 흉포한 분위기를 휘감은 여자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 온 것일까.

지독한 피비린내를 머금은 살기가 눈에 보일 것만 같이 짙었고, 푸른 빛으로 타오르던 눈동자는 사람보다는 마물의 눈에 가까웠다.

체격 자체는 호리호리한 편이었으나, 피부 아래의 근섬유는 어마어마한 밀도로 압축되어 당장에라도 터져 나올 듯했다.

아마 말로만 듣던 달인의 육체가 저렇지 않을까?

사람의 한계까지 육신을 단련한 강자들.

아니, 달인이라 해도 저 정도의 육신은 지니지 못하리라.

그들의 힘은 단순한 근력만이 아니라, 쌓아온 업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배웠으니까.

위업, 선업, 악업, 살업.

사람을 초인으로 변모시키는 축복.

아마 순수한 육체 능력 자체는 하샬르 쪽이 오히려 우위에 있겠지.

어째서 힘의 절반조차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데미안은 조금 전에 마주했던 하샬르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서부인과 동부인의 특색이 뒤섞인 이국적인 외모는 놀라울 정도로 수려하여, 확실히 상당한 미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흉칙한 살기와 귀기어린 눈동자를 마주하고도 그녀의 외모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담대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람은 끔찍한 것을 보면 공포에 질리고, 일단 두려움에 잠식된 사람은 아름다움 같은 것을 인지할 이성이 남지 않는다고 들었으니.

"...무서웠어."

밀리아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데미안은 위로하듯 그녀의 왼쪽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밀리아가 슬쩍 몸을 기대왔다.

"그 괴물이 어째서 너한테 다가오는지 알 수 없어서...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모습이 오히려 소름 끼쳤어."

그런가. 데미안은 그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소문이나 분위기와 달리, 은근히 평범한 말투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던가.

반면 밀리아는 공포를 느꼈다는 거겠지. 그래서 이성을 잃었던 거고.

'약탈혼이니 하던 괴상한 발언도 판단력을 잃은 탓에 튀어나온 것이었나?'

데미안은 기대오는 밀리아를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밀리아가 하샬르에게 공포심을 품고 있는 한, 두 사람의 사이는 계속 마찰을 일으킬 것이다.

하샬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으니 손해를 보는 쪽은 밀리아 뿐이겠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밀리아가 품고 있는 두려움을 다독여줘야 하나?

공포심은, 상대방이 자신을 해칠 거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었지.

"그래도, 대화를 나누어보니 성격이 좀 거칠긴 하지만, 소문처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밀리아 너한테도 꽤 미안해했었어."

"데미안?"

밀리아가 하샬르를 두둔하는 데미안을 의혹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았다.

데미안이 태연스럽게, 다정한 어조에 신경 쓰며 말을 이었다.

"아마 그녀가 카하르인이다보니 다들 편견 어린 눈으로 보게 된 거겠지. 어떤 사람이든 이야기를 나누어보기 전엔 잘 모르는 법이니까. 밀리아 너도 나중에 이야기해보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란 걸 알게 될 거야."

납득하지 못한 밀리아가 슬쩍 옆 침상들에 누워있는 중환자들을 가리켰다.

전신에 붕대를 휘감은 사내 넷이 끙끙 앓고 있었다.

특히, 마법학부의 청년 한 명은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그럼 저 사람들은 뭔데? 저거 다 그 여자가 저지른 것 아니야?"

"...아마 문화가 달라서 그런 것 아닐까? 그, 뭐냐. 카하르인은 원래 대련에서도 진심으로 싸운다고 하잖아."

데미안이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려 변명했다.

일단 두 사람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밀리아를 납득시켜야 했으니.

"글쎄..."

"나중에 다시 셋이서 이야기해 보자. 차분히 이야기하다 보면 너도 오해를 풀게 될 거야. 많이 지쳤을 테니 일단 지금은 좀 쉬고."

데미안이 반박하려는 밀리아를 적당히 누그러트리며 다시 침상에 눕혔다.

'...일단 지금은 이 정도면 되겠지. 통증이 남아있는 동안엔 악감정을 지우기 힘들 테니까.'

그래도, 계속 설득하면 밀리아는 아마 그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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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적성체 연구 개론의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오늘도 좋은 주말이네요!

앞으로 5시간 정도 남았지만요.

오늘은 12시에 이미 한 화가 올라왔었으니, 오늘은 이 편만 업로드됩니다.

다음화는 내일 정오어림에 업로드하지 않을까요.

오늘 남은 시간들은 초반부 내용에서 눈에 거슬리는 문장들을 수정하는데 쓰기로 했어요.

잘 안 읽히거나 마음에 안 드는 문장들을 좀 바꾸는 정도라, 내용상의 변화는 없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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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후반부는 데미안의 심리와, 타인이 볼 때의 하샬르의 모습에 대해 한번 3인칭 시점 느낌으로 서술해 보았습니다.

데미안의 이질성이 잘 드러났는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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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위업, 선업, 악업, 살업.

다양한 업적을 달성한 사람의 전사들에게 내려지는 근원불명의 축복.

이를 통해 전사들은 자신의 육체를 넘어선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전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업을 쌓아간다는 것.

더욱 깊은 업을 쌓아나갈 수록, 한층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서는 것이다.

-> 한마디로 레벨업 추가스탯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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