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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44화 (44/100)

제 44화

이유

웃기지 마라.

악의를 끌어모으며 일어섰다.

떨어진 장검을 주워들었다.

"살기 위해서라고 했었나? 그래, 살 수는 있겠지! 주변의 모든 것을 잡아먹고 홀로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가!"

검을 쥐고 달려들었다.

등 뒤로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모르겠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그따위 이유로 삼천 명을 학살한 광인의 사정 따위!"

"입 닥치고 싸워!"

날아드는 권능의 창을 그저 분노를 담아 찍어누른다.

소용돌이가 박살 나며 얼굴에 긴 상처를 남겼다.

흩어진 바람이 공터를 헤집었다.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 그들의 죽음을 내려다보며, 살아있다는 즐거움이라도 만끽했느냐!"

"닥치라고 했지!"

내지른 검격이 도끼에 가로막힌다. 상관없다, 부순다.

그 입을 닥칠 때까지.

내려친 왼손이 도끼날을 박살 냈다.

오른팔을 뻗은 크누트의 손아귀에, 쏘아졌던 창이 되돌아왔다.

창날이 내 어깨를 관통했다. 상관없어.

머리로 크누트의 면상을 들이받았다.

크누트의 한쪽 눈이 터져나갔다.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크아아아아!"

피눈물을 흘리며, 크누트가 내 귀를 물어뜯었다.

"나는...너희를, 카하르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의 이름에 맹세코. 네놈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전사신께 서원했다!"

"잘난 듯이 지껄여놓고, 결국은 복수심이냐!"

왼손으로 창대를 부여잡고, 오른손의 검을 휘둘렀다.

밀리아에게 배운 방법이다.

크누트의 왼팔이 잘려나갔다. 피 분수가 쏟아져 바닥을 적셨다.

연이은 검격이 목을 노렸다.

"죽어어어!"

"뵐베르크여어어!"

어깨를 관통한 창날에서 폭풍이 일었다.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폐허가 된 흙바닥에 붉은 길이 쭉 이어졌다.

"네가 도살한 무고한 이들의 원한이! 가족을 잃고 노예로 팔려간 자들의 통곡이! 그저 네년이 살아가기 위한 양식에 불과하다면, 이 자리에서 그 무게에 짓눌려 죽어라! 마침내, 전사신의 심판이 이루어지리라! 카하르의 창녀, 하샬르 아이샨기오르!"

만신창이가 된 크누트의 몸에서, 회색빛 성광이 산불처럼 타올랐다.

자신의 생명력을 모조리 불태워 끌어올린 힘이었다.

나는 서릿발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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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라고?

나라고, 그따위 짓거리를 하고 싶었는 줄 알아?

그 짓거리를 하지 않으려고, 지금 이러고 있는 거잖아!

억울함이 치받았다.

그래. 차라리 눈을 돌리고, 카`하르들 사이에서 살아갔으면 편했으리라.

그들에게 적응해 나 역시 마음을 놓아버리고. 그렇게, 헤르셀라처럼 그들의 여왕이 되어서 사는 길도 있었을 것이다!

오라비들의 위협? 먼저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부하들의 의심? 모조리 힘으로 찍어누르면 그만이지!

배드 엔딩?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피하지 못할 리가 있었겠는가?

모두 거짓말이었다.

전부, 그곳을 떠나기 위한 자기변명에 불과했지!

즐거워하며 사람들을 도살하는 그 괴물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 잔혹함을 참을 수 없었기에, 이곳까지 왔다.

나를 혐오하고, 나를 원망하고, 나를 의심하는 무수한 눈초리들.

그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평생을 그렇게 견디고 살아야 하더라도,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아픔을 버텨내기 위해 이를 드러내고, 가시를 세워 나를 치장하고, 그렇게 마침내 첫 발짝을 내딛었다!

앞으로도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그렇게 살아남아야 해!

나는 알고 있으니까.

싸우지 않으면, 이곳의 사람들 또한 전부 죽어나갈 걸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 내버려둘 수 있겠냔 말이야!

내가 죽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지?

대체 누가, 다가올 적들을 막아내고, 죽을 운명인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지?

데미안이 세상을 구할 때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게 되는지, 네가 알기나 하느냐, 크누트!

그러니 난 너를 죽일 거야. 죽이고 나서, 후회하겠지.

하지만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내게 원한을 토해내는 것까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나를 괴물이라 부르는 건 참을 수 없어.

"나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 왔단 말이다!"

걸레조각이 된 건틀릿을 벗어던지고, 은빛 발톱에 왼팔을 내밀었다.

싸늘한 한기가 팔을 타고 심장까지 스며들었다.

- 드디어...!

누군가의, 환호성이 들렸다.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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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 같은 해방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몸은 얼어붙을 듯이 차가웠다.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마침내 꺼내든 마지막 이빨은, 저주 그 자체인 물건이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다.

짐승과도 같이 네 발로 달리며, 눈앞에 보이는......

...누구였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내달린다.

육신 전체에 배어있던, 살육의 업이 형체를 갖추어 날 휘감는다.

피비린내 나는 검붉은 기운이 왼팔에 엉켜 들었다.

회색빛 적이 창을 내던졌다.

버러지가.

왼손을 그대로 내지른다.

소용돌이가 산산조각나며, 창이 세로로 쪼개졌다.

"이건, 대체...!"

경악하는 먹이에게 달려든다.

허리에서 뽑아든 짧은 이빨을 오른손에 거머쥔 채.

날아드는 오른 다리를 그대로 붙잡아 찢는다.

"크...하악..!"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다리를 내던진다.

다리를 잃은 먹이가 회색 기운으로 몸을 지탱한다.

먹이가 자기 몸에 박혀있는 것을 뽑아내 내리찍어왔다.

왼손으로 붙잡아 으깼다.

산산조각난 쇳조각이 손가락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먹이의 왼팔 쪽에 뭉친 기운이, 내 오른팔을 관통했다.

오른팔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귀찮네.

팔다리가 없어도 저항한다면, 숨을 끊으면 되겠지.

왼팔로 복부를 꿰뚫었다.

"커헉...!"

먹이가 핏덩이를 토해냈다.

갈기갈기 찢겨나간 내장이 손끝에 얽혀들었다.

그대로 붙잡고 잡아뽑았다.

"아아아아악!"

고깃덩이가 비명을 질렀다.

배가 터져나가며 뿜어진 피 분수가 얼굴을 물들였다.

입가에 묻은 것들을 슬쩍 핥았다.

"아...이샨, 기오르으으으!"

회색 파도가 터져 나왔다.

버텨내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왼쪽 다리가 뒤틀렸다.

손을 뻗어 다시 원래대로 비틀었다.

"캬하아아..!"

목구멍 너머로 피가 치밀어올랐다.

어차피, 이제 다 끝났다.

이를 드러내고 비웃으며, 눈앞의 고깃덩이를 구경했다.

팔도 다리도 하나만 남아서는, 뱃가죽이 다 터져나가 내장을 줄줄 흘리며 비틀대는 모양새를.

발밑에 고인 피가 호수를 이룰 지경이었다.

가만히 놔둬도 순식간에 죽는다.

혹시 모르니 조금 힘을 모았다가, 오른 다리로 달려들어 목줄기를 물어뜯으면 그걸로 끝이다.

배가 고픈걸.

침을 흘리며, 몸을 웅크려 뛰어들 준비를 했다.

손끝에 무언가가 걸리적거리게 부딪혔다.

고개를 돌려,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푸른빛을 머금은 긴 발톱이었다.

무언가가...적혀 있는데......

이건...

금빛으로 빛나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을 수호하는 열두 검의 하나. 메디안]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던 거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의식이 되돌아왔다.

피가 얼어버린 것처럼, 몸서리쳐지는 냉기가 온몸을 맴돌아 전신이 덜덜 떨렸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통증이 열화처럼 밀려들었다.

차갑고, 뜨거워서, 미칠 것 같은 아픔이었다.

나는 곧바로 서릿발을 벗어던졌다.

드러난 왼팔은 창백한 보랏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대체, 이 무기는 뭐야.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내가 아니게 된 느낌이었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강제로 내 정신을 비틀어가고 있었다.

피가 뇌 속을 가득 채운 것처럼, 눈앞은 새빨간 색밖에 보이지 않았고, 코끝엔 한가지 냄새만이 남아있었다.

헤르셀라는, 미래에 이런 걸 끼고 싸웠단 말이야...?

그딴 짓을 하니까 미친 대학살자가 된 거지.

벗어던진 서릿발을 주워, 다시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왼다리와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남은 한쪽 씩만을 써서.

"기색이...변했군......정신이, 크헉...! 정신이 들었나......"

끊어질 듯한 목소리에 그제서야 크누트에게 의식이 향했다.

그 역시 어느새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 웅덩이에 반쯤 가라앉은 채로.

"크누트..."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게 불가사의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참혹한 부상이었다.

다가가 죽일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성녀라도 오지 않는 이상, 저 상태로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괴물이 되지 않겠다고...? 지금 네 모습을 봐라...그러고도...그런 말을......"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설마 서릿발이 이 정도로 흉악한 물건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으니.

이건 문자 그대로, 사람을 괴물로 바꾸는 무기였다.

"나는...너를 경멸한다......살기 위해서라니...다른 이를 잡아먹으며...자신만을 위한 싸움을......사람은, 그래서는...안돼."

"......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살아남으려는 거야."

그래. 그걸 위해서.

"또...말도 안, 되는 궤변을......"

크누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병자의 마지막과 비슷한, 힘없는 웃음이었다.

숲이 인기척으로 술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이렇게 굉음을 울리며 싸웠으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하러 오겠지.

증거를 없애고, 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내 장검과 단검 조각들, 아이멜라의 검과 찢겨진 갑옷 파편까지.

비척대며 일어나, 검집에 넣은 아이멜라의 검을 지팡이 삼아 힘겹게 몸을 끌며 흔적들을 그러모았다.

크누트에게 던졌던 단검들은 아까의 회색 폭풍에 박살 난 것인지, 이미 거의 가루로 변해 있었다.

"...가려는가......그래, 천상궁전에서...네 발버둥을 지켜보겠다......"

크누트의 중얼거림을 뒤로 하고, 비틀대며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릎이 꺾여 무너져, 결국 땅을 기면서.

"아스트리드......"

등 뒤로, 꺼질 듯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좋은 밤 되세요! 오늘부터 주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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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스스로마저 속이던 하샬르의 정확한 내면심리...

좀...급발진...같기도 하지만......

하샬르는 착한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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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괴물이 되지 않겠어!(서릿발 장착)->바로 괴물행

그렇습니다...서릿발 저건 저주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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