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화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일 초에 여섯 발씩, 날카로운 화살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화살촉의 은이 달빛을 받아 빛나며 폭포수와 같이 정원을 휩쓸었다.
"은 화살이다, 피해!"
"크윽!"
갑작스러운 화살비에 당황한 수인들이 제각기 급하게 흩어졌다.
"캬아아아악!"
옆구리의 상처 때문에 반응이 한 발짝 늦었던 옐레나의 반신에, 은 화살이 빼곡하게 틀어박혔다.
하이에나 수인이 피를 뿜어내며 나뒹굴었다.
"옐레나!"
사자 수인, 알렉세이가 도끼로 바닥을 뒤집어엎었다.
폭음과 함께 지면이 터져나가며, 솟아오른 암반들이 방패가 되어 화살을 가로막았다.
"지금이야!"
프리데가 톱을 거머쥔 채, 흩어진 수인 중 하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올가라고 했던가. 거대한 할버드를 휘두르는 회색 늑대 암컷.
복부를 노린 일격이 할버드에 가로막힌다.
톱날이 긴 창대를 거칠게 긁어내며, 날카로운 파열음과 불꽃을 토해낸다.
아래턱을 노리고 쏘아낸 작살 단검이, 날카로운 이빨에 붙들려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연이어 휘두른 메이스가 할버드와 충돌하며 튕겨 나간다.
프리데의 왼팔이 크게 젖혀졌다.
틈을 노리고 찔러오는 할버드.
뾰족한 창끝이 프리데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졌다.
"짐승년이!"
프리데가 창을 톱의 면으로 막아 흘려보내며, 그 기세를 이용해 회전하듯 옆으로 돌아들어간다.
탁한 비명과 선연한 핏줄기가 허공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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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아아!"
나 역시 곧바로 수인 중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갈색곰 수인. 나와 주먹싸움을 벌였던 카메네프라는 남자를 향해.
"크허어엉!"
통나무 같은 발길질을 미끄러지듯 피하며 장검을 세워 긋는다.
피가 솟구치며, 카메네프의 종아리가 반쯤 잘려나갔다.
뒤이어 내리치는 곰의 앞발이, 내가 아닌 내 눈앞의 지면을 후려갈겼다.
고막을 울리는 폭음이 일었다.
"큭!"
박살 난 암반들이 대포알처럼 쏟아진다.
반사적으로 두 팔을 들어 눈앞을 가로막았다.
- 퍼억!
묵직한 충격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졌다.
바윗덩이에 얻어맞은 복부에서, 선명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죽어라, 아이샨기오르!"
그 틈을 노려 다른 수인들이 달려든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 투다다다다!
"제길!"
다시금 쏟아진 화살의 폭풍이 내 주위를 휩쓸었다.
내게 달려들던 수인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아샤인가? 그래, 이런 짓이 가능한 건 그녀밖에 없겠지.
안 나오고 뭘 하나 했더니, 은 화살 기관포라도 만들고 있던 거였나.
천만다행이었다.
그녀의 엄호 덕분에, 적의 집중 공격을 피해 한 놈만 상대할 수 있었으니.
"멍청이들아, 궁수부터 막아! 볼코프, 드미트리! 옐레나를 데리고 건물로 들어가! 안에 있는 놈들을 찢어 죽여라!"
그 꼴을 보다 못한 보리스가 소리 질렀다.
"어딜 보느냐!"
틈을 노린 나이젤의 창날이 보리스의 어깨를 가로질렀다.
가죽 견갑이 쩍 갈라지며 피보라가 튀어올랐다.
"크윽! 이 암컷이...!"
보리스가 노성을 토하며 대도를 거칠게 휘둘렀다.
막아낸 나이젤이 튕겨나갔다.
"카메네프, 알렉세이! 올가를 부탁한다!"
늑대 수인과 코요테 수인이, 하이에나 암컷을 붙들고 특별관 정문으로 뛰어든다.
막아야, 하는데.
나와 프리데는 다른 수인들에게 가로막혀, 그들을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큭, 아샤!"
위험해. 옐레나야 이미 반쯤 죽을 중상을 입었다지만, 남은 두 수인은 건재했다.
아샤 혼자서 수인 두 마리 반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어.
화살 비가 멈추었다.
나는 다급하게 눈앞의 수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종아리에서 피를 뿜어내는 카메네프.
프리데의 톱에 허벅지가 뜯겨나간 올가.
그리고 아직 건재한 알렉세이.
프리데와 둘이서, 이 셋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아샤]========
"세 마리라. 위험하네요...?"
아샤가 중얼거리며 창가 옆에 서 있는 쇳덩어리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야, 상대는 자동 인형에 불과했으니까.
인형의 오른팔에 달린 개틀링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탄환 대신 화살을 쏠 수 있도록 급하게 개조한 탓에, 내구성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은 탄환이라도 미리 만들어놓을 걸 그랬네요.'
아샤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장비를 챙겨 들었다.
직접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
자동인형은 어디까지나 원거리 지원용이었으니까.
그나마도 슬슬 한쪽 팔이 맛이 간.
그 상태로 수인 셋과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애초에, 훨씬 좋은 방법이 있었으니까.
방을 나선 아샤가,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3층에 있는 유일한 방관자, 페르네의 방으로.
'그 요정이 방관만 하겠다면, 당사자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 콰앙!
아샤가 페르네의 방문을 박살 내며 뛰어들었다.
아니다 다를까, 술에 취한 요정 하나가 창틀에 기대 정원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지. 요정들은 하나같이 이 모양이니까.
착한 듯이 굴지만, 실상 타인의 일에는 조금도 관심 없는 개인주의자들.
"뭐야아아...반인 후배네에......내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던가아...?"
등 뒤에서 울린 소음에, 페르네가 아샤 쪽을 쳐다보았다.
열기에 반쯤 풀린 눈동자였지만, 분명한 감정을 담아서.
성가심과 귀찮음.
그야말로, 자기 혼자 다른 세상을 산다는 듯이 구는 '고고하신' 요정다운 표정이었다.
"페르네, 라고 했던가요? 혼자만 놀고 있으면 안 되죠. 안 그래요?"
"너어...건방지네에......"
페르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비틀대면서도, 그녀의 몸이 아샤 쪽을 향했다.
아샤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샬르는 이 방만한 모습 때문인지 페르네를 조금 무시하는 듯했지만, 아샤는 알고 있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 고위 요정들은 이미 생물 형상의 병기나 다름없다는 것을.
"저 녀석들만 하겠어요?"
아샤가 애써 능청스럽게 웃으며, 뒤쪽을 가리켰다.
수인 셋이 그녀를 노리고 달려오고 있었다.
"하아아아...너 운 좋은 줄 알아아...삼백 년 전이었으면..팔다리랑 눈알을 뽑아서, 지하광장에 묶어놨을 거야."
페르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발음이 조금씩 또렷해졌다.
비틀대던 몸이 똑바로 균형을 잡았다.
아샤의 등이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다.
알고 있다, 저건 위협이나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샤 자신은 부족의 어른들에게 듣기만 했던 이야기였지만.
삼백 년 전, 아직 힘멜과 알브헤임이 전쟁 중이던 시기에, 그들이 실제로 저지른 일이었으니.
수백 명이 넘는 반인 포로들 중, 여자들을 모아 그 꼴로 묶어두고...마물들을 풀어 그녀들의 절규를 구경했지.
그리고 그 참상을 마법으로 저장해, 선물이라며 힘멜로 보내왔다.
선물을 받은 힘멜은, 모든 요정 포로들을 용광로에 녹여 하나로 만든 뒤, 알브하임을 향해 대포로 쏴 버렸고.
미친 시대였다.
그래도 두 나라 다 제국에게 참패한 이후로는 나름 평화로워졌으니까, 설마 이제 와서 죽이려 들지는 않으리라.
아샤가 슬며시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곧이어, 수인 셋이 방문 앞에 도착했다.
"반인과 요정이라, 제국에 고개 숙인 개들이구나. 너희뿐이냐? 다른 놈들은 찾을 수 없던데."
"개는 너희가 개과지...아니, 하나는 고슴도치인가...?"
페르네가 수인들을 쳐다보았다.
평소의 풀어진 모습과는 전혀 다른, 가축을 보는 듯한 무감정한 눈이었다.
수인들이 이를 드러내며 무기를 치켜들었다.
페르네가 짜증스럽게 뒷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아... 너희들, 그냥 돌아가지 그래? 너희들도 불쌍한 동물들이니까. 그냥 돌아가면 봐줄게."
"헛소리를, 역겨운 배신자들이...!"
수인들이 벽을 부숴버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벽에 놓여있던 선반이 무너지며, 놓여 있던 술병들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깨져나갔다.
흘러나온 술의 독한 향기가 방을 가득 메웠다.
페르네는 잠시 술병의 잔해들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운디네, 하나 나와."
허공에, 물방울이 일어났다.
수십 방울의 물방울이 거품처럼 솟아나, 서로 합쳐지며 주먹만 한 크기의 물 덩어리로 변했다.
"하급 정령? 그딴 걸로 뭘-"
"운디네. 알코올 빼내."
페르네가 나직한 명령과 함께 물 덩어리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이윽고, 그녀의 왼손에 조금씩 물방울이 맺히더니, 다시 원래 크기로 되돌아왔다.
덩어리에선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술기운에 상기되어 있던 페르네의 안색이 순식간에 멀쩡히 되돌아왔다.
페르네가 물 덩어리, 아니 이젠 술 덩어리가 된 그것을 대충 내던졌다.
알코올의 독기에 약해져 있던 운디네가, 벽에 충돌해 터져나가며 그대로 소멸했다.
"아니, 저건 무슨..."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해진 수인들이 신음을 흘렸다.
요정들이 정령을 부린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북부 설원으로 쫓겨난 이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남아있었으니.
그러나, 그게 이런 방식이었다고?
이건 숫제 노예보다 더 심한 취급 아닌가.
"살라만드라 다섯, 나와."
아까의 물 덩어리 대신, 이번에는 다섯의 불덩이들이 허공에 나타났다.
기분 탓일까, 일렁이는 불꽃들이 마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했다.
페르네가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정령들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다섯 정령이 짓눌리고 으깨지며 그 형상을 바꾸어, 이내 다섯 개의 불화살로 변했다.
고통 때문에 정령 각각의 자아는 이미 죽어버린 상태였다.
페르네가 책상 옆에 걸쳐진 활을 집어 들어 시위를 당겼다.
불화살들이 일제히 날아들어 활시위에 걸렸다.
막대한 마력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정령의 비참한 단말마에 경악하던 수인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다급하게 달려들었다.
페르네가 활시위를 놓았다.
다섯 줄기의 화염 폭풍이 휘몰아쳤다.
비명조차 내지를 틈 없이, 수인 셋이 그대로 휩쓸려 잿가루로 변했다.
복도 전체를 메우며 타오르던 화염이 페르네의 손짓에 잦아들었다.
그녀가 잿가루를 날려보내며 아샤를 돌아보았다.
아샤는 다리에 힘이 풀려, 어느새 털썩 주저앉은 상태였다.
"어...어어......"
페르네가 그 꼴을 보고 슬쩍 웃었다.
"처신 잘하자. 알았지? 반인 후배님."
아샤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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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좋은 밤 되세요!
본격적으로 여기저기서 싸우다보니, 시점이 자꾸 옮겨지네요.
1인칭이니 어쩔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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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 특별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 + 페르네가 플레이 캐릭이 아니었던 이유
깐프 미친종족입니다.
생각해보면 수백년~천년을 사는 애들인데, 평범할 리 없겠죠?
거기에 페르네는 깐프 중에서도 이미 꽤 나이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