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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오랑캐가 입학했다-58화 (58/100)

제 58화

한 고비 넘기고, 또 다시

"하아아아...."

몸 안에 한가득 차오른 열기를 빼내듯, 긴 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다시 이를 악물고, 숨을 들이쉰다.

아직 지쳐버릴 때가 아니었다. 이제 시작이었으니까.

이마가, 부서질 것처럼 아파.

무시한다. 부서지지 않았으니.

이마에서 흘러넘치는 피를 떨쳐내듯 닦는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무시한다. 아직 움직이니까.

박혀 있던 늑대의 아가리를 뽑아 내팽개친다.

한 걸음. 다시 한걸음 내딛는다.

근육이, 뼈가 부서질 것처럼 아려온다.

이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야.

쥐고 있는 장검을 내려다봤다. 흐릿한 초점 너머로, 검신에 새겨진 문구가 화인처럼 박혀 든다.

인간을 지키는 열두 검.

그래, 아직 검조차 부러지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부러질 수는 없지.

장검을 움켜쥐고 달린다.

팔다리에서 피보라를 뿜어내며, 검은 늑대에게 창을 박아넣는 기사를 향해.

"이바노프으으으!"

피를 내뱉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내달렸다.

----

보리스의 눈이 가늘게 떨린다.

그럴 만하지.

그와 함께 왔던 이들은, 결국 전부 죽였으니까.

특별관의 폭발이 아샤의 짓인지, 아니면 설마 페르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쪽도 조용해진 걸 보면 전부 죽었겠지.

그 성과는 중상자 셋에 불과하고. 나중에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크오오오!"

보리스가 포효하며 오른손의 대도를 내 쪽으로 휘둘렀다.

- 카앙!

장검으로 흘려낸다. 막아낸 몸이 나동그라졌다.

목구멍으로 핏물이 치밀어올랐다.

역시, 밀리나.

검신에 충분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틈을 노린 나이젤의 창이, 보리스의 손톱에 가로막힌다.

일어서.

다시 일어나 검을 내지른다.

나이젤을 이빨로 물어뜯으려던 보리스가 황급히 대도를 들어 막아낸다.

아직 싸울 수 있다.

내 힘이 부족하다 해도, 이 검만은 여전히 날카로우니까.

장검이 대도의 칼날을 물어뜯으며, 쇳조각이 튀어 오른다.

뒤이어, 나이젤의 단검이 보리스의 허벅지에 틀어박혔다.

"크으으윽!"

보리스가 이를 갈았다.

좌우에서 몰아치는 우리의 합공에 점차 상처가 늘어가고 있었다.

분노에 찬 움직임이 격렬해진다.

상처입은 맹수처럼, 입매가 일그러지며 눈동자가 번뜩였다.

"이 암컷들이 감히-!"

우리를 떨쳐내려는 것처럼, 보리스가 두 팔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팔이 닿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갈기갈기 조각내버릴 기세로.

거친 호선이 허공을 난도질하며, 대도와 손톱이 사방을 갈아엎었다.

파헤쳐진 바닥에서 흙더미가 튀어올랐다.

물러나야 했다.

그래서 물러나지 않았다.

한 걸음 더, 앞으로.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불태우며 내디딘다.

다시, 검을 휘두른다.

"캬아아아앗!"

파열음이 울려 퍼진다.

가느다란 장검이 거대한 대도를 막아내며 파고들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리라.

들이닥치는 압력에, 전신의 상처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온다.

장검에 걸린 대도의 움직임이 덜컥하고 멈추었다.

"나이젤ㅡ!"

피거품을 흘리며 소리쳤다.

이 절호의 기회를, 그녀가 놓칠 리 없다.

나이젤이 화답했다.

장창을 두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고, 잘려 나간 근육에 힘을 불어넣는다.

피에 젖은 창이 쏘아진 화살처럼 내달렸다.

"하아아아아아!"

기사의 의지, 단련을 거듭해 완성한 육신, 전장을 내달리며 쌓아 올린 업.

그 모든 것들을 끌어모아, 폭발시키듯 발산하는 달인의 일격.

남색 돌풍이 검은 늑대를 향해 짓쳐 들었다.

"오오오오오오!"

대도를 놓은 보리스가 나이젤을 향해 두 팔을 찔러 들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날을 세웠다.

한발 늦게 반응했음에도, 오히려 그녀보다 더욱 빠른 움직임.

이대로 달려든다면, 창을 찔러넣기도 전에 저 손톱에 갈갈이 찢길 것이다.

나이젤 역시 이를 확신한 눈빛이었다.

그러나.기사의 본질은, 물러서지 않음이니.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이, 나이젤이 창을 내질렀다.

피보라와 함께,

찢겨나간 왼팔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붉은 섬광이 보리스의 눈을 관통했다.

----

"나이젤!"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나이젤을 황급히 받아들었다.

나이젤은 안색이 희게 질린 채, 신음하며 몸을 떨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잘려 나간 팔에서 핏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두 손안의 온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안 돼. 피가. 너무, 팔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왼팔. 그래, 일단 지혈을...!

팔의 단면을 꽉 움켜쥐었다.

"크으으으윽..!"

나이젤이 통증에 신음했다.

흘러나오던 핏줄기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혈이, 된 건가?

아니면.

흘러나올 피가 더 이상......

"아니야. 나이젤, 정신 차려봐! 나이젤-!"

"흔들지 말고, 그대로 있어!"

프리데가 다급하게 내 몸을 붙들었다.

어느새 주워 온 것인지.

그 손에는 왼팔을, 나이젤의 왼팔을 든 채였다.

"프리데...?"

그녀가 손에 든 왼팔을 나이젤의 상처에 가져다 대고, 유리병을 꺼내 이빨로 뚜껑을 뽑았다.

병 안에는 회백색 액체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프리데가 유리병을 뒤집어 내용물을 나이젤의 상처에 쏟아부었다.

치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뭐라도 써서, 팔을 묶어!"

"어, 아..그래..!"

옷자락을 찢어 나이젤의 팔을 동여매었다.

프리데는 연신 새 유리병을 꺼내며, 나이젤의 상처에 들이붓고 입가에도 흘려 넣었다.

포션, 인가?

내가 아는 것과는 색이 다른데?

한참을 그리했을까, 나이젤의 낯빛이 조금이나마 돌아와 있었다.

"후...이걸로, 일단 급한 불은 껐네."

프리데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쓸었다.

나는 여전히 나이젤의 몸을 끌어안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뭘 뿌린 거야, 회복액...?"

"진통제에 안정제, 성수에 회복액까지 뒤섞어놓은 약물이야. 응급처치에 불과하지만. 너도 하나 마셔두도록 해."

프리데가 유리병을 건넸다.

"난 회복액이 효과가 없는 몸인데...?"

"...항마력이라도 있나 보지? 그래도 나머지 성분은 효과가 있을 테니 마셔."

유리병의 뚜껑을 따고 쭉 들이켰다.

끔찍한 맛이 혀끝을 맴돌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워낙 다급해 무시하고 있던 통증이 다소 줄어들었다.

의식이 이상할 정도로 축 늘어졌다.

"뭐야, 이거......"

"정신 차려. 마약 성분 때문에 그런 거니까. 일단 본관까지 가서, 제대로 치료받아야 해. 레이시가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하필이면..."

맞아. 본관.

일반생들을 내보내는 걸 막아야 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본관에 가서 알려야 해! 적이 수인들인데 일반생들을 내보냈다가는...!"

"그래,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 말에나 타라고!"

프리데가 비틀대며 일어나, 마구간 쪽으로 달렸다.

그녀 역시 부상 때문에 반쯤 탈진한 상태였다.

약 기운으로 버텨내고 있다지만, 처음과 달리 기세가 확연히 줄어 있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나이젤의 몸을 들쳐업고, 마구간으로 달려가 말 위에 올라탔다.

이런 중상자를 말에 태우고 달리는 건 미친 짓이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지금 특별관에는 치유사제가 없었으니까.

아샤의 상태가 걱정되긴 하지만...어쩔 수 없다. 내 몸이 세 개가 아닌 이상, 급한 일부터 해치워야 했으니.

"나이젤...조금만 참아. 금방 사제들에게 데려다줄 테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관없다.

적어도, 호흡 소리와 심장 소리만은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내 감각 역시 반쯤 맛이 간 상태였지만, 그것만은 선명했다.

말고삐를 당기며, 정원을 쳐다보았다.

파헤쳐지고 부서져 나가 난장판이 되어버린 정원에, 세 구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셋?

눈동자가 찢어져라 커졌다.

하나가, 부족하다.

뭐야. 어디 간 거야.

보리스의 시체는, 어디 있지?!

"크르르르르...."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검은 늑대가, 비틀대며 걷고 있었다.

한쪽 눈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얼굴을 부여잡고. 담벼락을 향해.

"프리데! 저쪽!"

"큿..! 저러고도 살아있었나! 야만인 넌 일단 본관으로 가! 저건 내가 맡을 테니까!"

프리데가 입술을 깨물며 보리스를 향해 황급히 말을 몰았다.

일단 담을 넘어가면 쫒아갈 수 없다.

말은 저 담벼락을 뛰어넘을 수 없고, 말을 타지 않고서는 지친 몸으로 추적하기 어려우니.

"부-스트 차아아아아지ㅡ!"

그 순간, 특별관의 현관이 박살 나며 은빛 섬광이 뛰쳐나왔다.

선연한 빛줄기와 함께, 정원을 유성처럼 가로지르며.

아샤의 창이 보리스의 등에 틀어박혔다.

"크하, 아악...!"

척추가 산산조각난 늑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벽에 꿰인 채 축 늘어졌다.

프리데가 그 목을 끊어냈다.

"아샤...?"

"하샬르!"

랜스에서 손을 뗀 아샤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괜찮아요? 제가 많이 늦었죠! 랜스에도 은을 도금하느라 그만!"

그을음이 좀 묻어있긴 했지만, 눈에 띄는 부상은 없어 보였다.

나와 나이젤의 상태를 본 아샤가 경악했다.

"세상에, 상처가 이렇게나...!"

"난 아직 괜찮아, 나보다 나이젤이...! 일단 빨리 본관으로 가야 해!"

"알았어요! 이리 주세요, 말 등보다는 제가 나을 거예요!"

그녀에게 나이젤을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나이젤을 받아든 아샤가 어깨 쪽 레버를 돌렸다.

제트팩의 불꽃이 조금 약해졌다.

"준비 끝났지! 가자!"

프리데가 앞장서며 말을 달렸다.

반파된 특별관을 뒤로한 채, 그들과 함께 본관으로 향한다.

돌아본 제도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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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혼란에 빠져 어수선했다.

연병장 바닥에 수백 개의 모포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상처입은 일반인들이 누워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치유사제들이 다급하게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고함소리와 비명, 다급한 목소리들이 두서없이 울려댔다.

전쟁터 한복판의 야전 병동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었다.

여기도 이 꼴이라 특별관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건가.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치유사제에게 달려갔다.

가까워지는 말발굽 소리를 들었는지, 사제가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샤울리테의 여사제였다.

사제가 우리들을 알아보고는 경악했다.

"특례입학생들..? 세상에, 무슨 일이...! 이쪽으로 오세요!"

사제가 다급하게 빈 모포를 가리켰다.

아샤가 나이젤을 내려놓자, 사제가 나이젤에게 치유의 축복을 걸어주었다.

주황빛 성광이 나이젤을 감쌌다.

한 명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여사제가 다른 사제들을 불러 모았다.

너덧 명의 사제가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당신들도 당장 누워요! 대체 어쩌다가 이런 부상을...!"

날 눕히려는 사제를 가로막았다.

지금 누워서 쉴 때가 아니었다. 이 넓은 연병장에, 사제와 부상자들 말고는 보이지 않았으니.

끔찍한 예감이 등골을 울렸다.

"교수들은, 다른 학생들은 어디 갔어?"

설마. 설마, 벌써 학생들을 전부 내보낸 건가?

황궁이 습격당한 지, 고작 10분 만에?

그렇게 빨리?

"그야 당연히 폭도들을 진압하러 나갔죠! 기사들은 황궁으로 가 버렸으니까요!"

돌아온 대답은 절망을 품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도 이걸로 휴일이 돌아왔네요!

다들 푹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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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크스가 되어버린 나이젤...!

재활은 꽤 걸리겠지만, 팔이 남아있어서 참 다행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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