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화
루드비히는 말이 너무 많다
"뒤랑달이라. 거창한 이름인걸."
"그 주인이 인류를 수호하는 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러지지 않고 그 무엇도 베어 가른다고 전해지는 성물이네. 악인의 손에 들린다면 언젠가 맥없이 부러지겠지만 말일세."
부러지지 않는 검이라. 일단 내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긴 하네.
"확실히 대단하긴 한데, 그 외에 뭔가 다른 효과는 없어?"
그야 안 부러지고 절삭력이 뛰어나기만 해도 검으로서는 굉장히 좋은 물건이지만, 그래도 전설의 검치고는 조금 수수한 느낌이라.
...딱히 검에서 열선포라도 나가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후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그것까지는 모르겠네. 맹세의 검들에 대한 전승은 추상적인 부분이 워낙 많으니. 가문의 수기에 적힌 내용들 역시 검이 자신을 인도했다느니, 끝없이 나아갈 힘을 주었다느니. 그런 내용들뿐이었지."
결국 실질적으로는 거의 모른다는 소리네.
검의 인도라...뭔가 찜찜하긴 한데.
그래도, 이 검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죽었을 테니까.
크누트든 수인이든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적들이 아니었으니.
"그것 외에는...진은 검이라면 당연히 가질만한 기능들이 있겠지. 검신 전체가 진은이니 말일세."
진은.
흑철 이상으로 강인하며 마력을 끊고 영체마저 베어, 모든 삿된 것들을 멸하는 인류의 금속.
이 역시 800년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졌군. 그래, 귀녀의 모친에 대해서 물어보았었지. 아이멜라 드 메디안. 메디안 남작 영애 말일세."
루드비히 후작이 눈을 감고 기억 속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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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쯤 전이었나...젊은 여검사 하나가 란덴부르크로 찾아왔었네. 금잔화와 같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이었지. 아직도 그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네."
말을 하던 도중에, 후작이 슬쩍 나를 쳐다보았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눈빛으로.
"...새삼 떠올려보니, 귀녀의 지금 모습과 비슷하군."
눈매가 순해진 헤르셀라처럼 생겼다는 건가.
그야 뭐, 그러면 미인이긴 하겠네.
후작이 찻잔을 다시 들어 올렸다.
"메디안 영애는 귀족 사회에서 그다지 유명한 인물은 아니었네. 일개 지방 남작가의 여식인데다 모습을 드러낸 적도 드물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그러나, 기사로서의 실력은 달인을 몇 발짝 앞두고 있었다네.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적었지만."
실력을 감추고 지냈다는 건가.
하긴, 젊고 아름다운 여기사가 실력도 그 정도였다면 삽시간에 지나친 관심을 받았을 테니까.
"그래. 당시 젊은 가주였던 나를 찾아오더니, 그 검을 내밀며 자신이 열두 기사의 후손이라 했었지. 자신을 동부의 기사로 삼아달라면서. 나는 이에 동의했고."
"나이젤은 모르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스무 해나 지난 이야기이니 말일세. 셰인 경이라면 모를까, 나이젤 경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네."
하긴 그 시절의 나이젤이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였겠지.
아기 나이젤이라.
짤막한 팔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두 살배기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란덴부르크의 기사가 된 그녀는, 일 년간 동부 국경에서 산발적인 전투를 반복하던 와중에...갑작스럽게 실종되었다네. 나는 전사했거나 카하르의 포로가 되었겠다 싶었지. 안타까운 일이었네."
결국 실제로 카`하르에게 붙잡혔던 모양이고.
야만인들에게 붙잡힌 실력있는 미녀 여기사라...뭐랄까, 굉장히 불온한 어감인데.
내 친어머니가 아니라 농담인 거지, 친어머니였다면 피가 거꾸로 솟을 법한 일이겠지만.
"그 후로는, 귀녀를 만나기 전까지 소식 한마디조차 들을 수 없었네. 설마 오르한의 비가 되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지만."
"메디안 가는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데?"
"삽시간에 몰락했지. 뭘 해보기도 전에, 유일한 자식을 잃은 충격 때문에 쓰러진 가주가 그대로 영면했으니. 결국, 메디안 가는 이제 귀녀 이외에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네."
그러면 이제 메디안 가는 멸문이겠네.
나는 평생 독신으로 살 거니까. 그냥 멸문하자.
"이게 내가 아는 전부일세. 어디 만족스러운 대답이 되었다면 좋겠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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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이 솔직하게 말했다는 가정하에 꽤 유용한 대답이었다.
내 혈통이나 이 검의 유래에 대해 잘 알게 되었으니까.
다시 말해 큰일 났다는 뜻이지만.
"그래...솔직히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어."
"다행일세. 그러면 이제 본래 용건으로 들어가세나. 제국 황실에 대한 이야기로."
루드비히 후작이 다과 하나를 집어 먹었다. 나도 하나 입에 넣었고.
담백한 맛의 쿠키였다. 잘 구워진 밀가루와 부드러운 버터의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황실이라. 그것 말고도,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방금 했네. 애초에 귀녀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으니 말일세."
"그래...?"
흐음. 과연, 그 말이 사실이려나.
이번 일로 황실의 시선을 받게 되었으니,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내 신분의 비밀에 대해 자세히 말해준다...
그래. 이치에 맞는 일이긴 하네.
하지만, 그렇다면 그냥 처음 만났을 때 알려주었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그때는 왜 숨겼던 거지?
여전히 그 이유는 말해줄 생각이 없는 건가.
"우선, 제국 황실의 선출 방법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
루드비히 후작이 다과 하나를 더 집어들었다.
의외로 쿠키 같은 것을 좋아하는 건가?
"선출? 황제의 맏아들이 다음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보통은 그렇게 되네만, 명목상으로는 선출일세. 폐하께서 승하하시면 제국의 다섯 선제후가 한데 모여, 황자 중에서 가장 차기 황제에 걸맞은 자를 논의하여 선출한다네. 이미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던 이를 선택하는 그저 형식상의 절차이네만...만일 내정자가 없다면, 그때부터는 선제후의 판단에 달렸지."
권력다툼이 일어나기 딱 좋은 구조네.
어쩐지.
"황실이 선제후를 아주 싫어하겠는데."
"황제를 할 그릇이 못 되는 자라면 아마도 그럴 거라네. 그릇이 되는 자라면 반대로 어떻게든 가까워지려 할 테고 말일세."
"흐음...그러려나."
선출권이 결국 선제후에게 있는 시점에서, 겉으로는 알랑방귀를 뀌어도 속으로는 내심 악감정을 품을 것 같은데.
"문제는, 황제의 자격이 있는 황자가 둘 이상일 때라네...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지."
루드비히 후작이 허공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화장터의 굴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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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현 황제, 페르디난트 2세에게는 일곱 명의 자녀가 있다.
아니, 이제 아마 여섯이지만.
다섯 명의 황자와 두 명의 황녀.
지금은 사별한 첫 황비, 안나의 자녀가 셋.
재혼한 새 황비 이자벨라의 자식이 넷이었다.
1 황자 레오폴트, 2 황자 카를.
1 황녀 엘레오노라.
그리고 3 황자 에른스트, 2 황녀 레오노르.
4 황자 마티아스, 5 황자 요제프.
뭐, 요제프는 이미 죽은 사람 취급이지만.
그는 외유 도중에 실종되었다.
황자를 포함한 수행원 전원이 사라져, 그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고.
실종이라. 웃기는 소리지.
카를은 북부로 떠나 그곳의 무관으로 활약 중이다.
마티아스는 성국으로 유학을 가, 지금쯤 한창 사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레오노라는 남부 왕국 파남의 왕자비가 되었고, 레오노르는 여기사단을 지휘한다고 했던가...?
이들은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문제는 1 황자 레오폴트와 3 황자 에른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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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1 황자 측의 지지가 굳건했네. 그때는 아무 문제 없었지. 허나...페하께서 연로하신 탓인지, 이자벨라에게 넘어가 점점 더 3 황자를 총애하는 모습을 보이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네."
후작치고는 굉장히 공격적인 말투였다.
휘하 기사들에게도 존칭을 붙여주는 양반이 황비의 이름을 대놓고 부를 정도면 얼마나 싫어하는 건지.
하긴 그럴 만한 여자이긴 해.
권력을 위해 자기 자식마저 내버릴 수 있는 여자이니까.
"3 황자가 나라를 말아먹을 무능한 놈이라도 되나 보지?"
"그랬다면 차라리 나았겠지...그 정도로 무능했다면 선제후들의 지지를 받을 일도 없으니 말일세."
루드비히 후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미간을 짚었다.
깊이 파인 주름에 곤혹스러운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허나, 에른스트 황자 역시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네. 오히려 그게 문제야..."
"유능하다면 3 황자를 뽑아도 되어도 되는 거 아니야?"
"아니, 이자벨라 그 여자에게 이 이상의 권력을 주어서는 안 되네.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이지만, 틀림없이 위험한 자야."
속을 알 수 없다...
그건 내가 당신을 볼 때마다 하는 생각인데.
위험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당신은 1 황자를 지지한다고?"
"글쎄. 어떨까. 나는 그저 폐하께서 영단을 내리시길 바랄 뿐이네. 폐하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선제후들도 그 뜻을 따를 테니 말일세."
돌려 말하기는.
"그런데, 결국 그걸 내가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기는 한 거야?"
"당연하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제도까지 찾아오지는 않았겠지."
하긴, 원래라면 한창 카`하르의 상황을 염탐하기 바빴을 테니까.
아마도, 지금쯤이라면 오르한이 한창 정복작업을 하고 있으려나.
그래도 그 넓은 대초원을 전부 정복하려면 삼 년 가까이 걸리겠지만.
"황실의 권위는 지난 800년 동안 이 이상으로 낮았던 적이 없었고, 거기에 지금 황실은 둘로 갈라져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네. 양쪽 모두 결정적인 기회만을 기다리면서. 그런 시국에, 자네가 나타난 거지. 제도를 구한 여전사. 새로운 달인이자...열두 기사의 후예가. 이해하겠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반가워요!
루드비히 이 아저씨만 나오면 대화가 끝나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