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105화 : 주님,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생략)
* * *
시계탑 근처의 골목길.
나와 위슨, 그리고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 나는 도둑 할아버지가 서로 마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는 지금, 탑 앞에서 지었던 것보다 배는 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좀 미안한 맘이 있긴 한데, 저렇게까지 노려보니까 슬슬 억울해진다.
“진짜 기억 안 나냐?”
“아, 안 난다고요. 그래서 누구시냐니까?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계속 그러시네.”
내가 여기 머무는 동안 만난 사람들 인상이 얼마나 셌는데!
특히 그 여왕장미 베아트리스, 평생 못 잊을 거 같아.
처음과 마지막 모습 사이의 괴리감이 좀 심해야지.
만약 막 등장한 베아트리스를 보는 과거의 나에게, ‘저 사람 눈 뽑히고 온 몸으로 물이란 물은 다 내쏟은 다음에 가죽 벗겨져서 죽을 것’이라고 말해주면 절대 못 믿을걸.
아무튼 그런 충격적인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해?
주름이 자글자글하다는 것 말고는 별 특징도 없는데.
그렇게 실없이 할아버지와 본의 아닌 눈싸움을 계속하고 있는데, 벽에 기대고 있던 위슨이 기지개를 켜며 한 마디 던졌다.
“할배, 이 놈은 진짜로 댁 기억 못하는 거야. 그냥 알려줘.”
“……위슨 넌 이 할아버지 알아?”
꼭 알고 있는 듯한 말투라서 물어봤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
“안 알려준다, 나쁜 놈아.”
“……”
이 녀석, 단단히 삐졌네.
그냥 냅두면 진짜 저주 걸 거 같은데.
자꾸 머리에 새똥 맞는 등, 작지만 빡치는 종류로……!
녀석이 뭘 좋아하던가 기억을 헤집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별안간 이마를 짚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 네가 그 꼬맹이 사제님이랑 같이, 골목에서 죽을 뻔한 나를 구해줬잖아. 그리고 내 손녀를 붙잡아서는 발가벗기려 했지.”
“그딴 짓 한 적 없거든요?! 이 양반이 누가 들으면 오해하게시리! 아, 그럼 그때 그……”
“이제 기억났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이제 생각났다.
이 도시에서의 첫날, 광장에서 내 주머니를 털려고 했던 좀도둑 녀석의 할아버지야.
그러니까……
“손녀 보자마자 따귀 갈기고, 냅다 눈 매운 연기 피우고 튄 망할 영감탱이였구나. 아직 살아 계셨네요?”
“오냐, 아직 팔팔하다, 싸가지없는 놈아.”
뒷골목에서 잉그리트……
아니, 털북숭이 악마인가?
아무튼 무뢰한 넷에게 공격을 받는 걸 로나가 발견해서 만났던 할아버지였지.
“근데 도둑이셨어요? 아, 그런 얘기를 했던가? 근데 나비공작 부하셨어요?”
“아니. 그냥 옛날부터 좀 알던 사이야. 이번에 재미있는 일거리가 있다며 부르더군.”
“재미있는…… 하아…….”
옆에서 보면 재미있긴 하겠지.
직접 관련된 사람으로선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아무튼 이 사람이랑 어떻게 잘 해서 보검을 훔쳐야 한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카엘입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
가만히 내 손을 노려보기만 했다.
인사하며 지낼 생각은 없다는 건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명이라도 상관없으니 알려주세요. 그래야 서로 얘기하기가 편하지.”
“……앨런이다. 본명이야.”
별 반론도 없이, 그는 순순히 악수를 받아주었다.
어차피 받아줄 거 왜 이상한 눈으로 본 거지?
희한하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가겠는데…… 뭘 훔쳐야,”
“사냥.”
“……아, 예. 뭘사냥해야 하는지 들으셨어요?”
앨런은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왕실 보검이지? 소문 쫙 퍼졌다고. 어떤 등신이 그걸 길에 흘렸는지 몰라도, 덕분에 눈 호강 좀 하겠구만.”
“구경하는 건 상관없는데, 저 주셔야 돼요.”
들고 튀기라도 하면 굉장히 곤란해진다.
내 말을 들은 앨런은 껄껄 웃었다.
“그건 걱정 마라. 아가씨랑 하루 자겠다고 배짱 좋게 그 양반에게 연락한 놈인데, 당연히 밀어줘야지.”
“뭔 소리에요?! 그딴 거 아니거든요?!”
이런 젠장할, 역시 나도 그런 눈으로 보이잖아!
그 미친 백작 새끼, 고자에 대머리나 돼라!
“뭐? 아니야? 그럼 뭐, 한몫 잡으려고?”
“아니요.”
“그럼 뭐 하려고 이 일에 끼냐?”
“주인에게 돌려주려고요.”
“……”
음, 저 눈빛, ‘뭐 이런 어이없는 새끼가 다 있어?’라 하고 있군.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주인이 잃어버린 물건을 돌려주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앨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뭐, 정의로운 도둑이라도 되냐? 참 할 일도 없다.”
“왜요, 동기는 충분하거든요? 일단 그 백작 하는 짓이 맘에 안 들고, 아는 사람이 그 물건 주인이니까 찾아주고 싶기도 하고……. 또 그 아가씨에게 신세도 많이 졌고요.”
그것도 엄청나게 큰 신세를 졌다.
먹고 자는 것뿐 아니라, 어디를 가든 마차를 대주었으니까.
그녀와 그녀의 애인인 피터 왕자 덕분에, 우리는 이 미친 도시에서 주머니 쪽 빨리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엘프가 벌인 ‘애들 납치 사건’도 그녀 덕분에 수월하게 조사할 수 있었고.
그러니 이건 그냥빚을 갚는 것이다.
옐리카가 존경스러워서, 피터 왕자가 가엾어서,
두 사람이 평온하게 맺어졌으면 해서 도와주고 싶은 게 진짜, 절대로, 전혀 아닌 것이다.
아무튼 아니야.
앨런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랑은 상관없지. 난 보수만 받으면 돼.”
“……”
……이 할아버지 보수를 내가 내야 돼?
이야, 그 돈귀신 할배, 진짜 본인 말대로 손해보는 건 하나도 없네!
다행히 그간 돈 쓴 것도 별로 없고, 잉그리트네 집에서 돈은 많이 챙겼으니 얼마를 요청하든 낼 수 있겠지.
어차피 돈 많이 들고 다녀봤자 무겁기만 한 거, 조금 비워주는 거라고 좋게 생각하자.
“하…… 얼마 드려요?”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냐?”
“이쪽 요금체계 모르거든요. 그냥 먼저 제시하시죠.”
음, 내가 봐도 이거 완전 호구 잡히는 전개 같은데.
뭐, 너무 말도 안 되는 값을 제시하면 거절하면 되는 이야기이다.
난 그냥 조용히 끝내고 싶어서 훔치려는 거니까.
안 되면?
그냥 쳐들어가서 들고 튀면 될 뿐……!
내 대답을 들은 앨런은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기더니, 곧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금화 한 닢.”
“……예?”
“이 도시 최고급 맥주 한 잔 값이다. 그걸로 충분해.”
“……”
……설마 이 사람 맹탕인 건 아니겠지?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앨런과의 이야기를 마친 후, 광장 근처 사탕가게에서 이것저것 산 다음, 다시 마차에 올랐다.
그때까지 계속 나를 을씨년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위슨 녀석은, 내가 땅콩과자와 버터푸딩을 그 입에 쑤셔넣은 후에야 겨우 풀어졌다.
후우, 이걸로 저주는 안 받겠지.
이제 할 일은…… 편지를 마저 쓰는 것밖에 없나?
그 다음은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그 편지, 이 도시 근처 여관에 맡겨달라고 했지.
말리스에 들어오기 전에 그 여관 위치부터 알아둘 걸 그랬네.
“마부 아저씨, ‘춤추는 해바라기’라는 여관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혹시나 알고 있을까 싶어 마부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아~ 이 도시 남서쪽에 있을걸요. 거기 가시렵니까?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아뇨아뇨. 그냥 들은 적이 있어서 여쭤본 거에요. 감사합니다.”
남서쪽이라, 그렇게 멀진 않은가보네.
내일 아침에 들르면 되겠군.
다시 자리에 앉은 나를 보며, 위슨이 문자를 띄웠다.
[근데 진짜 형 혼자 할 거에요? 사제님이나 메린 씨한테 말 안 하고?]
“야, 로나는 사제야. 걔가 퍽이나 잘 다녀오라고 하겠다. 그 자리에서 내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버릴걸? 네 다리 아니라고 막말하지 마라.”
로나는 마을 바깥에서 시체를 뒤지거나 도적들에게 돈 뜯, 아니 피해보상금을 받는 것은 막지 않는다.
여행길에서 시체를 뒤지는 건 생존을 위한 필요악이며, 도적에게 보상금을 받는 건 정당방위이니까.
그러니 만약 피터 왕자가 이 일을 한다고 하면, 그녀는 크게 막지 않을 거다.
보검은 원래 왕자, 근본적으로는 왕족의 것이니까.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내 것이 아닌보검을,훔쳐서되찾으려 하고 있으니까.
즉, 내가 하는 건 정당방위도 뭣도 아닌, 그냥 도둑질이다.
그러니 이게 아무리 옐리카와 왕자를 위한 거라 해도, 그녀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
도덕과 윤리를 비호하여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교단 사제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또 메린은 거기서 드레스 입고 있을 텐데, 빌린 옷 입고 험하게 움직이면 되냐?”
내 돈 주고 산 옷이라도 험하게 다니다 상하면 마음 아플 텐데, 빌린 옷은 아프다 못해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 것이다.
물어줘야 되잖아.
[형도 옷 빌리잖아요.]
“난 갈아입으면 되잖아.”
남자 옷은 그냥 휙휙 갈아입으면 되지만, 드레스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번 일에는 나 혼자 움직이는 게 제일 좋다.
위슨 녀석이 정령을 빌려준다고 했으니 뭐, 어떻게 되겠지.
위슨은 입 안의 과자를 꿀꺽 삼킨 후,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잔소리 들어도 전 몰라요.]
“걱정 마. 딴짓 하고 왔다는 것조차 모를걸?”
……아마도.
일단 계획 자체는 굉장히 간단하다.
파티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보검을 훔친 다음, 위슨의 배낭에 넣고 튀거나 튄 후에 위슨의 배낭에 넣은 후, 왕자에게 돌려준다.
머리 복잡할 거 하나 없는, 굉~장히 간단하고 쉬운 계획이다.
[근데 너무 대충 아니에요?]
“그러게…….”
……사실 세부적으로 짜고 싶어도 짤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니까.
일례로, 내가 가짜 검이라도 준비해서 골탕 먹이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앨런이 킬킬거렸다.
걱정 마라. 딴 놈이 준비해올 거다.
즉, 누가 뭘 준비해서 뭔 짓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거다!
하, 참. 최종목표만 정하고 중간은 임기응변으로 다 때워야 되다니.
꼭 우리 여행길 같네.
아무튼 이 계획의 성공여부는얼마나 빨리 위슨의 배낭에 보검을 집어넣는가에 달려 있다.
마법이 걸린 배낭이라 검이 얼마나 크든 집어넣을 수 있는데, 위슨이 아니면 다시 꺼낼 수 없으니 세상의 어떤 금고보다도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근데 진짜 그냥 넣으면 되는 거야? 배낭 폭이 더 좁으면 어떡해?”
[괜찮아요. 알아서 폭이 맞춰질 거에요. 그냥 형 배낭에 물건 넣듯이 넣으면 돼요.]
마력을 다룰 수 있어야 쓸 수 있다길래, 물건 넣는 것도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다.
마력이 필요한 건 배낭에 뭘 넣을 때가 아니라, 뭘 꺼낼 때라나?
아무튼 녀석의 배낭에 물건을 넣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듯했다.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만들면 금방 떼부자 될 텐데, 왜 아무도 안 한 거지?
짤랑, 작은 방울 소리가 울리며 또 다른 문자들이 떠올랐다.
[진짜로 혼자서 괜찮겠어요? 저라도 같이 하는 게 낫지 않아요?]
“괜찮다니까. 정령 빌려준다고 했잖아. 그거면 됐어.”
……게다가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애한테 도둑질을 돕게 할 순 없지.
어른이 그러면 안 되는 거다.
[그러다 형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나까지 혼날 거 아니에요.]
들키기만 해도 혼날 거 같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위슨은 팔짱을 끼고 무언가 생각하더니, 그 상태로 시선만 살짝 들어 나를 보았다.
[……혹시 모르니까 비밀병기 하나 준비해줄게요.]
“비밀병기? 뭐, 물약?”
그는 고개를 저으며 땅콩과자 하나를 입에 넣었다.
[비밀이에요. 비밀병기니까. 형이 끝까지 모르길 바랄게요.]
“어…… 그래? 뭐, 고맙다.”
어차피 또 다른 정령이나 물약이겠지.
나는 땅콩과자를 하나 입으로 던져넣으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저택에 돌아온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이 저택의 손님일 뿐이니, 사용인들이 매번 인사를 할 필요는 전혀 없긴 하다.
딱히 받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근데 다른 두 녀석까지 모습이 안 보이는 건 좀 의아스러웠다.
우리가 나간 지 그래도 두세 시간은 되지 않았나?
“뭐, 어때. 위슨은 병기 준비하러 갈 테니까 너도 방에나 가지?”
“그래, 그래. 이따 봐.”
다시 방으로 돌아와, 여전히 필기용구와 편지지가 놓여 있는 책상에 앉았다.
“어디까지 썼더라…….”
품속에서 쓰다 만 편지를 꺼내어 훑어보았다.
좋아, 여기서 이어서……
오늘나비공작에게 들은 이야기까지 쓰면 끝이군.
깃펜을 들고, 내용을 이어서 쓰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는 이상으로 마칩니다.
당신과 당신의 주군의 임무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마 당신도 아시겠지만, 이 도시는 밤까지도 낮처럼 밝은 만큼 그 뒤에 있는 그림자는 무척 짙습니다.
부디 삼켜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를.
창조주가 우리 모두를 굽어살피시기를 바라며,
카엘 에스트렐 올림
추신: 메리골드가 새겨진 검집을 가진 사람은, 옐리카 볼포브나 바실리예프 조합이사를 찾아가시면 그 행방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됐다.”
이 정도면 불만 없겠지, 뭐.
이 이상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귀족의 뒤를 내가 어떻게 캐겠는가?
그러니 나는 이쯤에서 물러나고,펜허스트 백작 일행에게 맡기는 게 나을 거다.
그 대신 나는 엘프 쪽을 두드리는 거지.
이걸 적재적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이걸 봉해서……
……어디다 두지?
내 배낭에 두기도 그렇고, 품속에 넣었다가 떨어뜨리면 곤란하고…….
“아.”
그래, 위슨의 배낭에 넣어두자!
어차피 내일 아침에 이 편지를 맡기러 갈 거니, 걔한테 맡겨도 문제없겠네.
나는 편지를 봉한 다음, 기왕 펜을 든 거 내 개인수첩 내용도 휙휙 채운 뒤, 위슨이 묵고 있는 방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
대답이 없네.
안에 없나?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방이 비어 있었다.
그로부터 한두 시간 지난 거 같은데, 아직 그 비밀병기라는 거 준비하고 있나?
“……음.”
위슨의 배낭은 방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냥 넣고 나중에 말해줘도 되긴 하겠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지.
나중에 다시 오자.
“어이구………… 이 목……소……리…………이게…………누구………야………….”
“엥?”
방에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는데도 속이 터질 정도로 답답한 이 느낌!
음, 어디서 겪은 거 같은데.
그보다 어디서 들리는 거지?
“여기……… 책………상…………이네…………”
“책상?”
가리키는 대로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책상 위에는 작은 물그릇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뭐가 들어있나?
“……여어…………”
“……”
있었다.
작은 거북이가 물그릇 안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다!
정령이구만.
이름이 아마 아쿠아였던 거 같은데.
그 섬에서 본 이래로 거진 두세 주 됐나?
“안녕, 오랜만이네. 위슨은?”
“의………상………”
“의상실? 뭐하러? 아니다, 내가 그냥 가서 보면 되겠구나.
그래, 아쿠아, 너 멀리서도 위슨이랑 연락되지? 이거 편지, 배낭에 넣어서 맡아줬으면 한다고 전해주라.”
거북이는 물 밖으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눈을 뻐끔거렸다.
“그………건……… 개………의치………않으니………”
“아, 된다고? 고마워.”
“와…………서………… 살………려……달라………는………구………먼…………?”
“……엥?”
의상실이라며?
왜 살려달라는 소리가 나와?
무슨 일인지 재차 물어도, 거북이는 허허 웃으며 물 속을 거닐 뿐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네.
일단 가봐야겠구만.
위슨의 배낭을 열어, 속이 보이지 않는 그 안에 편지를 넣고 (넣자마자 편지가 사라졌다!), 방을 나섰다.
“아, 카엘 님. 안 그래도 부르려 가려던 참인데 여기서 딱 만나네요!”
그리고 복도에서 바로 로나와 마주쳤다.
메린을 도와준다고 했던 거 같은데, 혼자 있는 거 보니 다 끝났나보네.
“지금 시간 있으시죠?”
“있는데, 왜?”
“히히~”
“……”
……뭐야, 갑자기 왜 저렇게 히죽거려?
어이씨, 갑자기 불안해지네.
“그럼 저랑 같이 의상실로 가요!”
의상실…….
어차피 그리로 가려 했으니 상관없긴 한데……
……거기 있을위슨이 방금 나한테 살려달라고 했단 말이지?!
“위슨이 살려달라고 정령을 통해 전하더구나. 로나야, 짚이는 거 없냐?”
“으응~? 글쎄요? 위험한 짓은 전~혀 안 했는데요~”
“……”
……뭔가 하긴 했구만?!
대체 무슨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될지 긴장하며, 나는 로나를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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