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41화 (241/475)

〈 241화 〉 234화 : “근데 뭐가 달라진 거야?” (1)

* * *

똑똑.

가볍게 두들기는 소리에 이끌려, 깊이 가라앉아 있던 의식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메린 님, 일어나 계시죠? 로나에요.”

로나……? 벌써 아침인가……?

아니, 그냥 동이 텄을 뿐인지도 몰라.

로나는 사제이니까, 원래 꼭두새벽에 일어나잖아.

똑똑똑.

“안 계신 척해도 소용없어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말…… 그러고보니 로나가 메린을 설득해보겠다고 했던 것 같다.

근데 그 녀석을 왜 내 방에서 찾고 난리야?

“메린 님, 듣고 계신 거 다 알아요.”

똑똑똑똑똑.

으윽, 잠이 덜 깨서 그런지, 두드려대는 소리가 귀에 막 울리는 거 같아!

이불을 뒤집어써서 막아버리고 싶은데, 이상하게 몸이 무거워서 말을 듣지 않았다.

으으, 제발 좀 알아채라…….

여기 내 방이라고……!

“어휴…… 들어갈게요.”

결국 강행돌파 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문이 끼익 열리더니, 뚜벅뚜벅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돌바닥을 두드리는 그 발소리가 침대 근처에 와서 뚝 끊긴 후, 이내 밝은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어라? 웬일로 아직 안 일어나셨네……………에엥? 카엘 님……?”

아마 침대 위를 보고 놀란 것이리라.

당혹한 기색이 살짝 섞여 있는 멍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 그러니까 방을 잘 찾아와야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침 인사나 해주자.

쇳덩어리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려,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릿했던 시야가 곧 선명해지면서, 로나가 두 손에 입을 대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음,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군.

실수한 게 부끄러운 모양이지?

“……아, 그렇구나.”

작은 충격에서 벗어난 로나는 홀로 고개를 끄덕인 뒤, 여전히 두 손을 입에 댄 채로 방실방실 웃으며 작게 말했다.

“죄송해요~ 그만 큰 실례를 해버렸네요~”

“아니…… 실례까지야…… 아침이야……?”

“아뇨아뇨아뇨, 이제 막 동이 텄어요. 흐히, 한숨 더 주무셔도 돼요.”

……뭐야, 이 녀석, 왜 이래?

잠이 덜 깬 머리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굉장히 수상하게 히죽거리고 있다.

입은 또 왜 가리고 있고?

꼭두새벽부터 괴상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으려는 순간,

“저는 후딱 나갈게요~ 그러니 두 분이서, 아~주아주, 푸우욱 쉬세요~! 푸흐, 크히히히!”

철컥. 쿵.

뒷걸음질을 치면서 그대로 나가버렸다.

“……”

기도하다가 귀신 들렸나…….

두 분이라니 그건 또 뭔 소리야?

내 방에 또 누가 있다고……

……근데 내 방이 아니네?!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과 함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몸에 덮고 있던 이불이 자연히 흘러내려가며, 내가 지금 무슨 꼴을 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

진짜 말 그대로 적나라한 꼴이었다!

우와, 나 홀딱 벗고 있네.

물론 이불 덮고 있었으니, 로나는 내 어깨 언저리만 봤을 거다. 아마도.

근데 내가 왜 벗고 있을까?

그야 어젯밤 일 때문이겠지.

바닥에 옷 다 널부러져 있잖아.

어젯밤에 뭘 했길래?

그야 여기 옆에 누워 있는 메린이랑………

메린…이랑………

“……윽!”

이불 바깥으로 벗은 어깨를 드러낸 채, 옆으로 누워 자고 있는 메린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번뜩였다!

아앗, 떠오르고 있어……!

이 녀석과 저지른 뜨겁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감미롭고 어질어질한 일들이, 그 느낌들이 다시 생각나버렷……!!

그때 내지른 말들이 마구마구 떠올라버려어엇!!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사를 떠올린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린 뒤, 이불에 고개를 처박고 절규했다.

“으으으으……!!”

애한테…… 애한테 뭔 꼴을 보인 거야!!

아니 물론 알 거 다 아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늙은이나 다름없는 애이고!

딱히 못 볼 꼴을 보인 것도 아닌 데다,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게 무슨……!!

“하으……….”

씨발……, 존나 쪽팔려……….

저절로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우응…… 카엘……?”

내가 생난리를 피운 탓에 잠이 깨어버렸는지, 메린이 웅얼거리면서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아침이냐………? 어두운데………”

“……아니,아직 새벽이야. 안 일어나도 돼.”

커튼 사이로 살짝 보이는 어슴푸레한 창 밖 풍경을 힐끗 쳐다보며 대답한 후,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응…….”

눈을 감고 긴 숨을 내쉬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봐도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진짜로 내가 메린과 사랑을 나눴다니.

일을 저지른 게 확연한 모습을 보여버린 게 쪽팔려 죽을 것 같지만, 그녀와 이어진 것 자체엔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

오히려 자랑하고 싶지.

……근데 메린 녀석, 괜찮나?

어제 너무 격했던 것 같기도 한데…….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메린, 몸은 괜찮아……? 어디 아프고 그러지 않아?”

“응…… 괜찮아…… 허리가 좀 땡기고 가랑이가 얼얼할 뿐이야…….”

“………”

그거 결국 안 괜찮다는 소리잖아!

으으…… 역시 어제 나 혼자 흥분해서 마구 날뛰었나봐.

얘도 어제가 처음이었고, 게다가 여자이니까 내가 좀더 참았어야 했는데.

“……미안. 어제 너무 거칠었지? 아프게 해서 미안해.”

“응……? 중간부터는 안 아팠는데……? 머릿속이 멍해지고 눈앞이 번쩍번쩍했지…….”

“………”

“온 몸이 찌릿찌릿해서…… 이상하긴 했는데……, 싫진 않았어……. 아.”

잠기운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녀의 눈이, 별안간 조금 크게 뜨였다.

“왜 그래?”

“응…… 안에서 흘러나온 거 같아서……. 아, 맞네. 으, 느낌 이상해…….”

“……………”

그리곤 몸을 살짝 일으키더니, 이불 속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 자식, 이거 일부러 이러는 건가?

근데 도로 누워서 하품하는 걸 보면 아무 생각 없는 게 분명하다.

돌겠네, 진짜.

“야, 근데 이거 괜찮냐……? 애 생기면……… 아, 이번 달부터 안 들어선다고 했지? 야, 너 혹시 그거 알고 안에다 막, 우읍,”

꼭두새벽부터 요사스러운 말을 마구 쏟아내는 사악한 혀를, 내 입 안에 가두고 혀로 마구 얽어버렸다.

“후우……….”

그녀의 타액과 숨결로 갈라진 목을 축인 후, 나는 그녀를 꽉 끌어안고 투덜거렸다.

“……시끄러, 임마. 얼른 잠이나 더 자라. 쓸데없이 유혹하지 말고.”

“내가 뭔 유혹을 했다고……. 그냥 지 혼자 꼴린 거면서…….”

“그래, 임마, 네 말에 꼴려서 정신 나갈 거 같으니까 얼른 자.”

“엥? 진짜?”

텁.

“꺅?!”

“오, 진짜네.”

메린이, 손으로, 내……!

아, 으……!!

곧바로 몸을 한 바퀴 굴려 그녀에게서 떨어진 후, 이불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얌마, 갑자기 어딜 만지는 거야?! 이 아가씨가 진짜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푸하하, 목소리 올라간 거 봐, 완전 웃겨!”

아…… 울고 싶다…….

눈 뜨자마자 이게 뭐하는 거야…….

여러가지 이유로 얼굴이 화끈거려,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등을 돌려버렸다.

“흑…… 이제 몰라, 너 알아서 해……. 난 잘 거야…….”

“푸히힛.”

사람 실컷 농락해놓고 재미있다는 듯이 웃기나 하고 말야!

흑, 나쁜 자식…….

“후후, 야~ 카엘~”

내 이름을 늘어지게 부르면서, 그녀가 슬금슬금 다가와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그런 뒤, 웃음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히히, 화났냐? 화 풀고 나 껴안아주면 안 돼? 네가 안아줘야 잘 자는데.”

“………”

귀에 달콤한 속삭임이 흘러 들어오면서, 온 몸에 퍼져 있던 부끄러움과 참담한 기분이 전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아무리 좋아해도 그렇지, 나 너무 헤롱대는 거 아냐?

귀여운 말 좀 들었다고 기분이 완전히 풀려선, 입꼬리를 막 실룩거리고 말야.

“화 풀어~”

“……”

조르듯이 말하며, 메린이 내 어깨에 뺨을 부비적대는 게 느껴졌다.

아니 뭔 고양이도 아니고…….

하……, 이대로 계속 가만히 있다가는 무슨 짓을 해올지 모르겠다.

소리 없이 한숨을 쉬며, 몸을 돌리고 그녀를 마주 껴안았다.

“히히. 화 풀렸어?”

“………애초에 나지도 않았어, 이 나쁜 자식아.”

“났었구만.”

“안 났었다고, 임마. 잔다며? 잔말 말고 빨리 눈이나 감아, 짜샤.”

뭐가 즐거운지 키득키득 웃는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등을 가만히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그녀의 느릿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평온한 숨소리를 듣는다.

그녀가 내 품에 안겨 편히 잠들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오르는 걸 느끼며,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 그녀의 체취를 들이마셨다.

내 등에는 그녀의 팔이 둘러져 있으니, 나 역시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거나 다름없다.

……나도 네가 안아주면 잘 잔단 말이지.

그녀의 포근한 온기에 의식이 가라앉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 간만에 다섯 명이 모여 앉은 아침식사 자리.

“……”

네 사람이 자신들끼리 이래저래 잡담을 나누는 가운데, 나 홀로 묵묵히 빵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원래 그리 떠드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나는 메린과 달리 이 녀석들을 어제도 만났다.

그러니 반갑게 재잘거릴 것도 없지.

평소에도 그랬던 덕분에, 인사 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근데 카엘 얘는 오늘따라 기운이 없네.”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후, 마침 입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또 힘차게 뿜어낼 뻔했다.

“……”

터무니없는 소리를 낸 쪽을 힐끗 보니, 용사 암살미수 전과가 또 한 번 갱신된 블루벨이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다.

그녀는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메린이 왔길래 얘기 잘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잘됐어.”

“근데 왜 가라앉아 있니? 의외네, 막 재주넘기라도 하면서 펄펄 날아다닐 줄 알았는데.”

그야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잘 되어버렸으니까……!!

그보다 아무리 좋아도 재주넘기 같은 건 안 해!

이 사람이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아으, 새벽에 잠깐 깼을 때만 해도 그렇게 크게 의식하지 않았는데, 다시자고 일어난 지금은 엄청나게 민망하다!

머리가 맑아져서 그런가?

으, 메린의 얼굴, 제대로 못 쳐다보겠어……!

“흐음, 이거 드래곤 알로 만든 건가?”

……정작 메린은 커다란 오믈렛을 한 스푼 떠서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있다.

아니 이 녀석은 왜 이렇게 태연한 거야?

어이가 없어서 멀거니 쳐다보는 내 입에 블랙베리를 넣고 킥킥 웃기까지 하고 있다.

……이거 내가 이상한 거야?

처음으로 몸을 섞어서 어색해하는 내가 이상한 거냐고.

그때, 짤랑거리는 소리가 작게 울리며,

[냅둬요. 저 형, 메린 누나랑 좋은 일 있어서 저래요.]

“……!”

위슨의 머리 위에 무시무시한 글자가 떠올랐다!

이 녀석, 무던한 얼굴로 수프 먹으면서 뭔 말을 띄우는 거야?!

아니, 그보다 어떻게 안 거지?

설마 로나 녀석……!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이 로나, 사제인 만큼 입은 굉장히 무겁답니다~”

“윽……!”

무겁긴 개뿔, 엄청나게 히죽거리고 있구만!

입이 무거우면 웃지도 말아야지!

으, 근데 로나가 말한 게 아니라면 위슨 녀석이 대체 어떻게……?

“흐응, 당황하는 거 보니 뭐가 있긴 있었나보네. 근데 꼬맹이 네가 어떻게 알아? 깃털덩어리한테 들었니?”

[아뇨, 그냥 보면 아는데요.]

위슨은 어깨를 으쓱인 후, 다른 글자를 띄웠다.

[메린 누나랑 처음 키스한 다음날에 딱 저랬거든요. 그 전에 무도회 갔다 온 다음날에도 저랬고.]

“………”

내가 진짜로 알기 쉬운 놈이긴 한 모양이다.

아주 그냥 대놓고 떠든 거나 다름없었구나.

블루벨은 위슨의 말을 읽은 후,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응…… 그러고보니 아침 먹으러 둘이 같이 왔지? 흐흐응~ 그렇구나아~”

“무, 뭐! 그렇긴 뭐가 그래?!”

“둘이 어젯밤에 같이 있었지? 완전히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 아냐?”

그렇고 그런 사이…….

내가, 메린과……

“하으…….”

“푸핫, 얼굴 빨개진 거 봐!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 얘, 메린.”

“엉?”

갑자기 블루벨이 표적을 바꿨다!

아니 이 할망구가 메린에게 뭔 소리를 하려고……!

“어땠어?”

“……!”

그녀가 뭘 물어보는 건지 단박에 깨달았다.

이 변태 귀쟁이가 아침 댓바람부터 정신이 나갔나……!

아아, 메린에게 일반적인 수준의 눈치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럼 그냥 대강 얼버무리고 말았을 텐데.

그러나 메린의 눈치는 절망적인 수준이었고, 그 탓에 블루벨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다는, 나에게 있어 최악의 선택지를 고르고 말았다.

“어땠냐니 뭐가?”

“어젯밤에 카엘이랑 있었잖아. 어땠어?”

“그러니까 뭐가.”

“어머, 쑥스러워서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니? 우리 사이에 뭘 그래?”

둘이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다고!

그보다 메린은 진짜로 못 알아듣는 거야!

그러니까 그만해, 이러다 나 죽어!

수치심이 폭발해서 죽을 거 같다고!

그보다 이 할망구가 진짜, 애들도 있는데 뭘 묻고 있는 거야?!

“상쾌한 아침부터 무슨 해괴한 걸 묻고 있는 거야, 이 변태야! 닥치고 밥이나 처먹어!”

“어머, 해괴하다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어제 어땠는지에 따라 내가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잖아.”

“댁이 뭘 얼마나 안다고 조언이야, 우리랑 별반 다를 거 없잖아!”

정숙함을 모르는 이 엘프의 잠자리 경험은 고작 이틀이다.

그런 사람이 뭘 잘난 듯이……!

“애들도 있구만, 진짜 별소리를 다하고 있어!”

[왜요. 교육 목적으로 일부러 들려주기도 하잖아요.]

“시끄러, 임마!”

“맞아요! 후학을 위해 듣고 싶어요!”

“웃기고 있네, 사제가 뭔 후학이야!”

아……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일어난 지 두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기운이 쭉 빠지고 있어…….

“그래서 뭘 묻는 건데.”

그리고 기껏 힘들게 막아버린 이야기를, 메린은 뚱한 눈으로 블루벨을 보면서 도로 꺼내버렸다.

흑흑, 망했어.

절망한 나를 힐끗 보는 블루벨의 얼굴엔 웃음꽃이 환히 피어 있다.

아아, 저 이마에 딱밤을 놓는다면……

그 맑은 평화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카엘 에스트렐은 이 일을 기억할 것이다, 변태 귀쟁이……!

부글부글 끓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나를 무시한 채, 블루벨은 그 환한 미소를 메린에게 향하며, 굉장히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긴. 너 어제 카엘이랑 잤잖아. 이 미친놈이 널 막 다뤄서 아파 죽을 뻔했다든가, 뭐 그런 게 궁금한 거야.”

“아, 그거.”

호로록, 메린은 물잔을 기울여 목을 축인 후, 지극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되게 따뜻했는데? 별로 아프지도 않았고.”

“어, 진짜?”

그렇게 말하며, 블루벨은 굉장히 뜻밖이라는 듯한 시선을 나에게 던졌다.

진짜 이 엘프는 날 뭘로 보고 있는 걸까?

“의외네. 마구 날뛸 줄 알았는데. 블루스타도 중간부터는 자제심을 잃었거든.”

우와, 그 양반이?

그거야말로 의외이지만, 딱히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왜 아침부터 이런 대화를 들어야 하는 거야……?

“자제심? 이 녀석도 나중에 가선 없어진 거 같던데. 아프진 않았지만.”

“안 아프면 된 거지. 그래도 제대로 느꼈나보구나. 짜식, 배려할 줄도 알고 제법이네.”

…………

“응…… 근데 좀 얼얼해.”

“그건 어쩔 수 없지. 억지로 안을 넓힌 거잖아? 난 엄청 아파서 울기까지 했다고.”

“충분히 준비를 시키면 안 아프다고 들었는데, 아닌가봐요?”

…………

“나랑 그 사람 체격이 많이 차이 나잖아. 게다가 처음이었고. 메린도 아프긴 했을걸?”

“아~ 응, 조금.”

………이거 언제까지 들어야 되는 거야?

그냥 여기서 나갈까?

하지만 나가기엔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다.

저 썩을 대화 때문에, 어젯밤 일이 떠올라서 몸에 열이 쌓여버린 것이다……!

저 여자들은 이런 얘길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화끈거리는 얼굴을 두 손으로 덮고 고개를 푹 숙이는 것밖에 없었다.

“근데 아픈 건 금방 없어졌어. 그 다음엔…… 잘 몰라. 머릿속도 뿌얘지고…… 온 몸은 찌릿찌릿하고, 뱃속은 뜨겁고……이상한 느낌이었어.”

“오.”

“그렇다는데, 카엘? 좋겠네~ 굉장히 뜨거운 밤이었구나~”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유쾌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블루벨.

그 이후에도, 세 여자는 상쾌한 아침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대화를 쭉 이어갔고,

“……그만 죽여줘어……….”

……그 사이에 껴버린 나는, 그저 바들바들 떨며 그렇게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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