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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화. 나는 살아갈게요 (195/199)


195화. 나는 살아갈게요
2022.11.14.


흔들리던 소냐의 눈동자가 순간 차갑게 얼어붙으면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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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안타깝게 터지는 그녀의 한숨에 이사나는 불안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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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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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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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목소리가 들린다니. 잠깐, 그럼…….”

주변으로 여전히 번져 있던 안개가 삽시간에 사라지면서, 아침인지 밤인지도 몰랐던 이곳에 밤이 끝나고,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멈췄던 시간이 제자리를 찾아서 그렇게 돌고 돌기 시작한 것.

안개의 장막이 사라지니, 새로 떠오른 태양의 빛이 뻗어가면서 마침내 수년 동안 봉인됐던 시간의 숲이 제대로 그 모습을 보였다.

세스가는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듯, 자꾸만 헛도는 말을 겨우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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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숲이. 숲이 열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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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이사나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곧장 숲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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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나 경!”

카마리도 굳어진 표정으로 그 뒤를 함께 달렸다.

두 사람에겐 시간의 숲이 열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숲을 열기 위해서, 클리오 대공 전하는 어떻게 되셨단 말인가.

가주님은 무사하시단 말인가!

이사나와 카마리는 무작정 이 넓은 숲속을 오직 두 사람을 찾기 위해 달렸다.

하지만 마치 숲이 그들을 인도하는 듯, 이사나와 카마리는 금방 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그들이 멈춘 곳에 홀로 남아 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주변으로만 기이할 정도로 제비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는데, 그 속에서 그녀는 한껏 몸을 웅크린 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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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대공 전하께선…….”

이사나가 겨우 그 이름을 내뱉고서 이클리트의 모습을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카마리는 한껏 입술을 깨물고서 고개를 숙인 채, 슬픔을 참았다.

이사나 역시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그저 멀리서 아멜리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감히 누구도, 쉽게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도 이 슬픔을 이 순간만큼은 감당하지 못했으니까.

이클리트, 그가 결국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

솔라리스 겨울 궁에는 여전히 루시아와 헤이츨을 비롯하여 귀족들이 억류되어 있었다.

겨울 궁 곳곳을 지키는 기사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황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때, 멀리서 다급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겨울 궁을 향해 의문의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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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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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겨울 궁 근처로는 한 발자국도 다가올 수 없다! 얼른 물러서라!”

하지만 자세히 보니, 저들은 신성회의 신성 기사들이었다. 그리고 저 신성 기사들을 이끄는 이는 바로 벨반 피오레 전 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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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벨반 님께서 여긴 어떻게…….”

벨반은 겨울 궁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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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황제 폐하의 잘못된 황명을 바로 잡을 것이다. 겨울 궁에 아무 명분 없이 억류된 귀족들과 헤스틴 공, 카르티아 공을 풀어주도록 하라.”

갑작스러운 벨반의 등장에 기사들은 당황했으나, 곧장 자세를 바로 하고서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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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벨반 님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황명입니다. 저희는 감금이 아니라 보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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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러니 벨반 님께서 이대로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도 끝까지 방어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벨반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황명을 어길 것을 각오하고, 장로회와 신성회를 설득하여 여기 온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의 명예가 훼손된다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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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황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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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보호를 이제부터 내가 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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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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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솔라를 지켰던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더는 피오레 공작이 아니기에 신뢰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럴 리가.

아무리 그가 작위에서 물러섰다고 해도, 그를 신망하는 이들은 이 황궁에 많았다.

그렇기에 장로회와 신성회도 그를 믿고, 저렇게 황궁의 문을 열고 신성 기사를 내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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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반 님, 하지만 이것은 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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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명에 대한 책임은 전부 내가 질 것이다. 그러니 당장 문을 열도록 하라.”

벨반의 섬뜩한 위압감 앞에 결국, 기사들은 몸을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나섰다간 폐하도 없는 이곳에서 내전이 일어날 것이고, 신성회와 장로회의 지지를 받는 벨반을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벨반에 의해 겨울 궁이 열리면서 루시아와 헤이츨은 그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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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무사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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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반 님.”

헤이츨은 눈을 크게 떴고, 루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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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무사해요. 그저 조금 아니 많이 답답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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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헤스틴 공의 성정에 오래 참고 계셨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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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반 님께서 이렇게 나서주시다니. 작위에서 물러나시고 쉬고 계시는데,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헤이츨이 더없이 공손하고 정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고, 벨반은 그런 헤이츨의 모습에 전 카르티아 공작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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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솔라 제국을 위한 일인데. 작위에서 물러나도, 솔라를 지켜야 할 의무가 사라지는 건 아니오. 지금은 전시와 마찬가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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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상황을 아시나요?”

루시아가 불안하게 묻자, 벨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 불안함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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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해주고 있겠지. 포르티셰 공은 신념대로 움직일 테고, 클리오 대공 전하께서도 전부를 지키기 위해 애써주실 테고. 피오레 공 역시 지치지 않을 테니. 우린 믿고 기다리며, 그들이 돌아올 장소를 지켜야지.”

물론 벨반은 아무 경험 없는 아멜리아가 그 위험한 곳에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도 앞섰지만, 자신의 손녀가 아닌 피오레 공작가의 가주로서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때, 신성회 대신관인 미야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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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반 님.”

벨반은 갑작스러운 미야의 등장에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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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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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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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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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 공작 각하와 포르티셰 공작 각하께서 시간의 숲에서 돌아오셨습니다.”

미야의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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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전쟁이 끝난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대체 어떻게…….”

아스란은 마법 도구를 사용했다지만, 지금 그들은 사용할 마법 도구가 없을 텐데.

그런데 미야가 더더욱 충격적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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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진이 발동됐습니다.”

마법진!

시간의 숲이 닫히고, 이 세상에 마법이 사라지면서 두 번 다시 발동하지 못했던 그 마법진이 발동됐다는 건.

헤이츨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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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간의 숲이 열렸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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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스란 황제 폐하께서 시간의 숲을 열었다는 건가?”

루시아와 헤이츨은 불안하게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서둘러 겨울 궁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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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진을 통해 솔라리스에 도착한 아멜리아와 알렉드라는 말을 타고서 솔라리스의 광장으로 향했다.

그들의 뒤에는 하얀 천이 씌워진 불길한 관 하나가 있었다.

이들 표정 또한 뭐라 한 가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무거웠다.

이미 소식을 들은 제국민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황명으로 집에 감금됐던 이들도 벨반 덕분에 전부 풀려났다.

제국민들은 왠지 모르게 무겁고 차가운 공기에 불안하게 웅성거리며, 그들의 뒤를 따라서 광장으로 향했다.

아멜리아와 알렉드라가 광장에서 멈췄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불안에 부풀었던 제국민들은 이제야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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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전쟁이 일어났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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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솔라리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갇혀 있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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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신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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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알렉드라는 공기에서부터 느껴지는 제국민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며, 결론부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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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끝났다.”

다른 여러 말은 필요 없이, 전쟁이 끝났다는 말에 제국민들은 크게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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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태양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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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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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 루베르의 짓입니까? 아니면 수인? 반인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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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들은 어찌하실 작정이신가요?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면, 저희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원인을 찾으며 원성을 높였다.

이미 제국민들의 머릿속에 원흉은 전부 루베르와 수인, 반인반수가 전부였다.

그만큼 그들의 존재는 여전히 불신이었고, 저주였으며, 이방인이었으니까.

그런데 알렉드라가 뜻밖의 말을 힘주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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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은 우리의 어리석은 판단과 욕심에 의한 것일 뿐. 루베르와 수인, 반인반수는 그 피해자이며, 그런데도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었다.”

광장에 함께 당도했으나,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숨어 있던 아이냑과 루베르는 알렉드라의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알렉드라는 직접 그들을 이쪽으로 불렀다. 그러나 루베르는 주춤했다.

이 광장에서의 기억이 그들에겐 아직 공포였기에.

그 모습에 이사나가 먼저 알렉드라에게 다가갔다.

알렉드라는 그런 이사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깊이 고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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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쟁에 도움을 준 루베르 가주에게 큰 감사와 지난날, 나의 잘못을 사과드리오.”

이사나는 알렉드라가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직접 고개 숙이며 사과할 줄 몰랐기에, 온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이는 지켜보던 루베르와 솔라 제국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계속 침묵하고 있던 아멜리아가 울컥거리는 감정을 한껏 자제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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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같은 솔라 제국민으로서, 이번 전쟁을 큰 희생 없이 막아낼 수 있었다. 시간의 숲이 열렸고, 마법이 돌아왔으며, 이는 모두가 해낸 일이다. 수인과 반인반수와 루베르. 우린 이들과 화합하여 반쪽짜리 평화가 아닌, 온전한 평화를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한다.”

아멜리아는 이 자리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그와 그들이 그토록 바랐던 순간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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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제국은 모두에게 동등하고 공평한 태양의 정신을 이 자리에서 확실히 하고자 한다. 태양은 모두에게 비추는 것. 모두가 평범하게 내일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것보다 온전한 평화라는 말에 솔라 제국민은 안도했다.

물론 아직은 완전히 불신과 차별의 벽이 사라지지 않았으나, 그때처럼 광기 어린 미움으로 루베르를 비난하거나 바라보진 않았다.

물론 한꺼번에 완전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알렉드라가 조금씩 바뀌었듯, 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달라질 것이다.

모두가 평범하게 태양을 맞이하고, 살아가는 것이.

그게 그냥 당연하게.

아이냑은 더는 허상이 아닌, 정말로 눈에 보이기 시작한 희망에 끝내 눈물을 흘렸다.

다른 루베르 역시 감격했다.

한때, 이 광장에서 루베르는 피를 흘리고, 제발 말을 들어 달라고 처절하게 외쳤지만, 오늘은 그저 같은 솔라 제국민으로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이사나는 속이 뜨겁고, 자꾸만 눈시울이 아릿해져선 고개를 들었다.

이토록 말간 하늘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참 오랜만에 무심코, 그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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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 형님. 보고 계십니까? 드디어 루베르의 기나긴 겨울도 끝나가는 듯합니다. 그토록 바라셨던, 누군가의 희생 앞에 쓰인 평화가 아닌 서로서로 지키면서 얻은 평화가, 보이는 듯해요.’

카마리는 그런 이사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사나는 이제 너무 당연한 듯 카마리의 손을 잡아주었고, 카마리도 마주 잡으며 그렇게 함께 있었다.

광장에 달려왔었던 루시아와 헤이츨은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제대로 끝났음을 느꼈다.

뒤늦게 달려온 장로회는 알렉드라의 발언에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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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루베르와 같다니. 수인과 반인반수 따위와 같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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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달라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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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반…….”

벨반은 미야와 함께 걸어와서는 광장의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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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강압적이고, 차별 앞에 세워지는 절대적인 권력 앞에 황실의 권위와 위상을 지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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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게 우리 귀족의 권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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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우리가 맞았으나, 이젠 아니야. 이제 우리는 물러나서, 저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솔라를 지켜봐야 해. 진정으로 존중하고, 존경받는 권력으로 지켜지는 솔라를.”

매번 새로운 꽃이 피고, 지고, 피고 져야만 제국은 멸망하지 않고 번영할 수 있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벨반은 솔라에 부는 이 새로운 바람과 떠오른 태양이 그저 기대됐다.

***

길고 긴 하루가 지나고, 아멜리아는 그제야 혼자 남았다.

그녀는 이클리트가 황궁에서 머물렀던 지하실로 내려갔다.

여전히 캄캄한 어둠.

하지만 그녀는 리볼버로 빛을 밝혔다.

어두우면 그냥 밝히면 된다고, 그가 말해줬으니까.

아멜리아는 더는 울지 않았다.

그가 바라던 대로, 해보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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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볼게요. 예전에 대공 전하께서 날 기다려줬으니까. 이번엔 내가. 내가 기다릴게요. 하지만 매일 대공 전하만 생각하면서, 기다리진 않을 거예요.”

아멜리아는 마치 눈앞에 그가 있는 듯, 그때 제대로 하지 못했던 말을 하면서 이클리트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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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은걸요. 세인트가 내게 남긴 약속을 지켜야 하고, 당신이 내게 준 이 귀한 생명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내가 바라던 세상을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 나와 당신의 아이가 그 세상에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아직은 꾹 참지 않으면 금세 눈물이 비집고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끝까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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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탁대로 열심히 살아볼 테니까. 꼭 돌아와요. 대공 전하도 약속을 꼭, 지켜줘야 해요.”

어두우면 밝히면 되지만, 그 빛이 없으면 의미 없으니.

그녀에게 빛은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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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지 않게, 와줘요.’

 
이후, 그녀는 이클리트를 떠올리며 울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저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억하고, 또 떠올리며 바쁘게.

정말로 바쁘게 살아갔다.

그가 없어도 흘러가는 시간을 묵묵히.

어느새 그 시간은 쌓이고, 쌓여서 반년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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