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씹어먹는 천재배우님-130화 (130/237)

130화

130화

[미도味道, 맵라면 모델에 아역배우 ‘박유진’ 발탁!]

[미도 측, 드라마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와 콜라보레이션 전격 발표! ‘맵라면 리브랜딩’ 시동 걸었다]

[맵라면,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와 콜라보 기간 동안 제품명 바꾼다!]

뉴스 발표 이후.

라앺 팬카페 ‘라라라’는 난리가 났다.

아니, 난리가 났어야 했다.

[오 들어올 때 노젓네

노젓기는 ㅋㅋㅋ 이미 염라 챌린지 단물 다 빠졌는데

뭔 뒷북이냐...]

의외로 미적지근한 반응.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 넙튜브에 염라 챌린지 올리면 욕먹는다며?

뭐...길게 갈 컨텐츠는 아니었지]

SNS와 넙튜브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시대.

유행이 빨리빨리 지나가는 SNS의 시대.

이미 염라 챌린지는 유행 최정점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챌린지 내용 자체도 단순해서 그런지.

라앺 팬들 역시 염라 챌린지에 더 이상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 근데 왜 하필 맵라면이지

ㄹㅇ 거기 완전 아재라면 아님?

난 매콤해서 좋아하는데... 아재라면 아님 ㅠㅠ

ㄴ 네 다음 아재 ㅋㅋ]

유진과 맵라면.

아역배우와 아재라면.

이 두 개의 부조화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광고 예측해봄 그냥 염라 챌린지랑 똑같을 듯

ㄴ 22222 이거다

ㄴ 3333 이대로 나올거임 ㄹㅇ

에이 그리 날먹하겠어 제품명까지 바꾼다며

ㄴ 글쎄 거기가 괜히 아재라면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ㅎ]

심지어 벌써 광고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까지.

이미 유진의 넙튜브 채널에서 대흥행을 했기 때문일까.

더 이상 무슨 그림을 뽑을 수 있을지 사람들은 예측하지 못했다.

[제발 드라마에 라면 PPL만 안 들어갔으면 좋겠네

ㄹㅇ 원작엔 라면 먹는 장면도 없는데

자자 라면 얘기 그만 하고 지난주 복습이나 ㄱㄱ]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는 소식만 들렸을 뿐.

바로 광고가 송출된 것도 아니라 다들 염라 챌린지고 맵라면이고 잊고 살았다.

얼마 뒤.

드라마 라앺은 드디어 후반부에 들어선다.

“······이제 더는 살고 싶지 않아.”

여주인 수진이 도통 일이 풀리지 않고.

결국 삶에 대한 의지를 모두 잃어버린다.

하지만 오해로 인해 남주들인 단, 하이드와 모두 거리를 두고.

“염라야. 나 부탁 좀 들어줘. 날 저승으로 데려가줘.”

수진은 결국 죽음을 택하기로 한 것.

“나 이제 다 포기하고 싶어.”

처음에는 살생부를 벗어난 수진을, 저승의 율법대로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러나.

막상 여주 수진이 죽음을 선택한다고 하자.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반기긴커녕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저승에 군림하는 왕으로서 마땅히 거둬가야하는 영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죽음으로 인도해달라는 수진을 탓하기에 이른다.

“이상하네. 원래 너, 나 저승으로 데려가러 온 거잖아.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야.”

“죽음이 그리 쉬운 줄 알아?!”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염라.

첫만남 이후론 수진에겐 한 번도 화를 낸 적 없었기에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네가 그랬잖아. 난 살생부에 적힌 수명을 벗어난 이상존재라고. 사실 모든 것은 다 하늘의 뜻이고, 정해진 운명이라고. 늦었지만, 그 운명에 따라야지.”

“그게 운명에 따르는 거야? 도망치는 거겠지.”

염라가 수진에게 일갈한다.

“네가 살생부를 비켜간 것도 결국 하늘의 뜻일 텐데. 그런 걸 기적이라고 하는 거 아니었어? 그럼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하지만, 이제 사는 의미가 없어.”

“정말 네 삶에 의미가 없었던 거야? 단, 하이드, 그리고 나랑 같이 보낸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다 의미가 없었던 건가? 정말?”

그리고.

아주 작게 내보이는 일말의 서운함까지.

“실망이다. 비린내가 나.”

그렇게 자리를 뜨는 염라.

수진은 그 뒷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염라의 테마곡.

가로수 밴드가 작곡한 노래가 흘러나오며 이번 화가 끝난다.

[하 맴찢...

내 최애 장면 ㅠㅠㅠㅠㅠ

진짜 우리 아기염라 ㅠㅠㅠ 율법바보가 어쩌다 수진바보가 되어버렸어 ㅠㅠㅠ

진짜 이때 찐으로 수진이 생각해주는 건 단도 하이드도 아니라 염라임...

ㄹㅇ 단이고 하이드고 다 자기 욕심대로 수진이 대하려 하는데..]

죽음은 도망치는 것뿐이라고.

수진의 나약해진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염라의 일침.

이는 원작팬들에게도 유명한 명장면이었다.

제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투른 염라가 내보이는 몇 안 되는 진심이기에 더더욱.

[그만큼 염라에게 이승에서의 순간이 행복했다는 거 아니야 ㅠㅠㅠ

진짜 대사 하나하나 내 눈물버튼 ㅠㅠㅠ

대사를 어쩜 저렇게 치냐... 진짜 가슴에 저미는 소리...

유진이 얼굴도 얼굴이지만 목소리...진짜 국보급이다 문화재 지정해라 ㅠㅠㅠ

진짜 유진이 아니면 누가 염라함...? 해외 리메한대도 거기 염라는 유진이 아닐 거 아냐...]

그리고 그를 연기해낸 배우 박유진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다.

캐릭터 비주얼부터 해석, 표현력까지.

모두 원작과 싱크로율 200% 이상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

[아 기빨려...

그니까 한 시간 동안 롤코탄 기분임;;]

주역 4인방의 감정선이 짙게 드러나는 화수였기 때문인지.

끝나자마자 허함을 호소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라앺이 끝나는 시간은 밤 11시 경.

그야말로 야식이 미친 듯이 땡길 시간이다.

그때.

라앺이 끝나자마자 찾아온 광고 시간.

염라 분장을 한 유진이 등장한다.

어두컴컴한 저승 속 염라대왕의 옥좌에 앉은 유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라앺이 아직 안 끝난 줄 알 것이다.

[망자여. 너에겐 지옥불에서 영원히 불타는 천형을 내린다.]

유진의 남다른 성량이 빛을 발했다.

게다가 지옥불을 앞에 두고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차갑고 창백한 피부가 유달리 돋보이는 모습.

저승의 왕로서 위용을 한껏 과시하는 염라.

슈웅-

그리고 곧 전환되는 화면.

밝고 햇빛이 드는 수진의 집.

옥좌가 아닌 평범한 식탁 위에 염라가 앉아있다.

그 앞으로 뜨끈한 라면이 한 그릇.

곧 경건하게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하는 염라.

후루룩, 후루루룩-!

아까 지옥불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던 염라였으나.

곧 염라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줄기.

하아, 후-

거기에 거칠게 넥타이를 푸는 염라의 손.

예전엔 유진의 손이 고사리 같았다면, 이젠 제법 억세졌다.

[후르르릅. 푸하.]

국물을 마시며 내는 소리가 얼큰하다.

식욕을 자극하는 청각적 사운드.

거기에 평소 염라와 다른,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모습까지.

그 두 가지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허기를 자극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일만큼 매콤하고, 시원해보였다.

[염라도 땀흘리며 먹는 매운맛

염라면]

나레이션과 함께 맵라면, 아니.

염라면 포장지를 들고 서 있는 유진.

모두가 잊고 있던 맵라면.

아니, 염라면의 광고가 제대로 허를 찔렀다.

그리고 이는 ‘라라라’가 아닌.

엉뚱한 곳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는데.

[야 뭔데

갑자기 사람 왤케 많아 ㅅ@ㅂ

아 피파 중이었는데 손님 개들이닥침]

편의점 알바생들이 모인 커뮤니티.

주로 야간 시간대에 손님이 극도로 적어지기 때문에.

새벽엔 한적해진 알바생들이 서로의 애환을 토로하거나 취미를 공유.

그러면서 시간을 떼우는 것이 국룰이다.

술집 근처가 아니면 한적해야할, 늦은 시간의 편의점.

그런데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누가 라면 바이럴이라도 함?? 대체 뭔 일임

왜 죄다 라면 사가냐 ㅋㅋㅋ 뭐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건가

ㅁㅊ 이 늦은밤에 사재기를 한다고? 말이 돼야지 ㅋㅋ

근데 사재기 급으로 라면을 사가자늠;;]

게다가 그 손님들의 특징.

바로 라면을 사간다는 것.

[야 뭐냐?? 우리 점포 맵라면인지 염라면인지 그거 다 털렸다

ㄴ 우리도 ㄷㄷㄷ 뭐야

ㄴ ㅁㅊ 우리돈데? 갑자기 와서 5개씩 사감

ㄴ 아니 왜 염라면만 털리는데?]

그것도 특정 브랜드의 제품만 말이다.

*

“으음.”

유진은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아까 전부터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었거든.

“뭐야, 무슨 일이야······.”

길게 하품을 내뱉는 유진.

어제 더빙을 준비하느라 늦게 잤더니 조금 피곤했다.

유진은 졸린 눈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

그건 바로 죽음조 단톡방이었다.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크으으으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유진이 이제 삼촌보다 잘 나가네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이제 자기 캐릭터 딴 라면 광고까지 찍고

-은주 누나 : 유진이는 계속 오빠보다 잘 나갔어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ㅠㅠㅠㅠ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아냐 아니라고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나 고석태야 충무로의 감초 고석태라고!! ㅠㅠㅠㅠ

-은주 누나 : 저 아저씨 또 시작이네

-은주 누나 : 나이 먹고 ㅠㅠ 가 뭐야 ㅠㅠ가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ㅠㅠㅠㅠㅠㅠㅠㅠ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권주 삼촌 : 시끄러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그럼 네가 알람 꺼 이 나쁜놈아 ㅠㅠㅠ

오늘도 축구공처럼 뻥뻥 차이고 있는 고석태.

참고로 본래 유진의 휴대폰 속 고석태는 ‘킹왕짱 석태삼촌’으로 저장되어 있었으나.

저번에 우연히 마주친 사이 또 마음대로 바꿔버렸다.

-박유진(나) : 무슨 일이에요?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유진아 ㅠㅠㅠㅠ

-킹갓엠페러 석태삼촌 : 저 사람들이 삼촌 괴롭혀 ㅠㅠㅠㅠ

-은주 누나 : 광고 찍은 거 축하해 유진아

-은주 누나 : 어제 라앺 끝나고 광고 나간 모양이던데

-은주 누나 : 대박난 듯. 실검 1위도 했어

-권주 삼촌 : 축하한다

그 말에 유진은 포털 사이트 메이버에 접속했다.

나은주의 말대로 염라면은 실검 1위를 찍고 있었다.

그를 검색해보니.

[‘콜라보 이벤트’ 맵라면->염라면, 배우 박유진 아이디어였다!]

[미도 마케팅본부장 이희승, “염라면은 새로운 시작······젊은 세대와 호흡하는 기업 될 것. 박유진 배우에게 감사”]

곧장 여러 기사며 이희승 본부장과의 인터뷰가 나올 정도.

아무래도 염라면 광고가 제대로 히트를 친 모양이다.

[라앺 끝나자마자 나와서 난 뭐 다음편 예고가 또 있는줄ㅋㅋ

근데 광고 꽤 잘 만들었던데 지옥불 앞에서도 싸늘하다가 라면 먹으면서 땀 흘리니까 ㅋㅋ 진짜 매콤해보임

ㄴ ㄹㅇ 보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매운맛이 확 느껴짐

염라 매력이 갭 쩐다는 건데 그거 잘 살린 거 같음ㅋㅋ

저승에 있을 땐 염라대왕님인데 이승에 있을 땐 아가야 아가 ㅋㅋ]

염라의 캐릭터성을 잘 살린 광고 스토리텔링.

이게 라앺 시청자들을 제대로 공략한 것.

[게다가 이름은 잘 지은 듯 염라면이라니 ㅋㅋ

ㄴ 이거 유진이가 지은거래 ㅋㅋ 대박ㅋㅋ

ㄴㄴ ㄹㅇ?? 진짜 찰떡이긴 함ㅋㅋ

콜라보 기간 끝나도 맵라면 대신 염라면 쭉 가면 좋겠네

맵라면 별로 안 좋아했는데 염라면 되고서 먹어보니 이리 존맛이었을 줄은ㅋㅋ

글게 밍밍한 것도 아니고 매콤하던데 왜 아재라면 취급 받음??

뭐야 염라면 신제품 아니었음?? 맵라면보다 훨씬 맛있던데

ㄴ 걍 맵라면에서 이름만 바뀐거임

ㄴㄴ ㄹㅇ? 왜 근데 더 맛있게 느껴지지 ㅋㅋ

염라시보 효과 ㄷㄷ]

맵라면이 아재라면의 상징적 이름이었다면.

염라면은 이제 유행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염라면은 이름만 바꾸고, 유진이 광고했을 뿐인데.

마치 새 제품이 출시된 것처럼 재평가를 받고 있었다.

[새 톡이 도착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번엔 넥스트 단톡 쪽이 북적거렸다.

-기열놈 : 아 박유진

-기열놈 : 뭔 광고야

-기열놈 : 더빙 연습이나 해 ㅡㅡ

-선미 : 뭐래 광고 찍은 거가지고 난리

-기열놈 : ?

-기열놈 : 뭐야 박유진 편드는 거임?

-선미 : 뭐래 진짜 죽어

-선미 : 유진이 질투하지 말고 너나 잘해

-기열놈 : 누가 질투해

-기열놈 : 난 전혀 부럽지가 않아

-기열놈 : 그치 신애야

-신애 : (대충 당황하는 표정의 이모티콘)

사실 죽음조와 넥스트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유진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민용석 작가님 : 광고 잘 봤어요. 축하해요~~ㅎㅎ

<호구>로 호흡을 맞췄던 젊은 작가 민용석.

-송미연 작가님 : [송미연 님이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두찌 SS 메신저백 스몰

주소지 입력 바랍니다]

광고 축하해요

광고를 축하한다며 대뜸 명품을 선물하는 송미연 작가.

-최희숙 감독님 : 광고 잘 봤어

-최희숙 감독님 : 아 그리고 신애한테 친구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최희숙 감독님 : 신애가 요즘 너희 얘기밖에 안해 ㅎㅎ

유신애의 어머니이자 <리플레이> 감독 최희숙도 축하를 보냈다.

심지어는.

[수신인 : 구학준 감독님

광고... 잘 봤습니다...^^

함께 또 광고 찍을 날이 오면 좋겠네요...

꽃길만 걸으시라고... 장미꽃 한송이 놓고 갑니다

@}>->---]

유진과 재오의 보건복지부 아동폭력 방지캠페인 광고.

그를 총괄했던 서림미디어 구학준 광고감독까지 문자를 보냈다.

어쩐지 아재티가 풀풀 나는 메시지였지만 말이다.

‘구학준 감독님까지 오랜만에 연락을 주실 정도라면.’

라앺과 염라면 광고.

이 두 개의 시너지가 제대로 폭발한 모양.

[재오의 스윗 : 우리 스승님 라면 나오셨다

포장지가 바뀐 것뿐인데 왤케 더 맛있어진 거 같지

우리 빅토리들도 라면 좋아해?

#스승님 #염라면 #존맛]

스윗터로 들어갔더니 이번엔 재오가 염라면 인증샷을 올렸다.

지금 편의점에서 염라면이 다 털려서 구하기가 어렵다는 모양.

[유이치의 스윗 : 내 제자 라면

맛있다

#염라면 #제자 #유밑재 #유이치밑재오라는뜻]

심지어는 염라면을 이용하여 스윗터에서 재오를 도발하고 있는 유이치를 보니.

유진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거 또 바빠지겠네.”

유진은 눈을 부비며 헤헤 웃었다.

휴대폰은 아주 불이 날 지경이었고.

그만큼 유진의 열정도 불타올랐다.

“자. 일하러 가야지!”

유진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

얼마 뒤, 오전.

블루컬쳐 스튜디오가 대여한 서울의 한 녹음실.

첫 더빙 녹음 이뤄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하아.”

그러나 곽용재의 입에선 한숨이 흘러나오는 중.

“예상했던 것보다 빡세네요, 감독님.”

그들이 어째서 죽을 상인가?

바로 지금 몇 시간째 진행 중인 더빙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

“후우.”

곽용재의 하소연에 이선화가 이마를 짚었다.

분명 오디션 때는 좋은 모습을 보여준 아역배우들이지만.

실전에선 긴장한 탓인지 실수를 연발했다.

게다가 아직 더빙으로 누군가와 합을 맞춘다는 건 생경한 경험인 모양.

“그래. 유진이가 이상했던 거였어. 걘 그냥 디렉팅도 필요 없이 가이드 한 번에 다 따라했으니까. 이게 정상이지.”

블루컬쳐 스튜디오에게 유진은 여러모로 상식 파괴자였다.

“대사 치는 타이밍, 입길이도 안 맞고. 계속 NG 나니까 목소리 톤도 흔들려.”

기껏 선택한 단체녹음이다.

그러나 합을 맞추기는커녕.

오히려 그 누구도 감을 잡지 못하고 철저히 헤매고 있었다.

“그나마 정기열 저 친구가 힘내주고 있긴 한데.”

이런 상황에서 정기열이 희망을 보여주었다.

NG도 잘 내지 않고, 집중력 있게 녹음하려 애쓰고 있으니.

그러나 그마저도 다른 아역배우들의 NG 탓에 점점 빛을 바랬다.

“역시 시작만이라도 유진이랑 같이 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유진이가 요즘 워낙 바빠서요. 스케줄 잡기가 쉽지 않던데요.”

갑자기 잡힌 라앺 연장회차 촬영 때문에.

유진은 첫 단체녹음과는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대신 유진은 잠시 후 오후 타임에 혼자 따로 녹음하기로 했다.

“아직 유진이가 오려면 두 시간은 있어야······.”

그런데 그때.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녹음실에 유진이 등장했다.

“어? 유진아. 너 스케줄 때문에 오후에 온다며?”

이선화 감독의 물음에 유진이 휴대폰을 들어보였다.

“SOS 문자를 받았거든요. 기열이한테서요.”

“그럼 앞에 스케줄은? 라앺 촬영 아니었어?”

“후딱 끝내고 바로 넘어왔어요. NG 없이 그냥 한큐에 끝내버렸거든요.”

무시무시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설명하는 유진.

곧장 목을 예열하기 시작했다.

“그럼 저 바로 녹음 들어가볼까요?”

“괜찮아? 스케줄 끝나고 바로 넘어온 걸텐데. 좀 쉬어.”

“괜찮아요! 오히려 연기하다 와서 준비 만땅이에요. 오히려 쉬면 흐름이 끊길 거 같아요.”

자신은 팔팔하다는 듯, 유진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유진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이선화로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한창 답답할 때 구세주가 오셨네요.”

곽용재가 말했다.

그러자 이선화가 후우, 하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아무리 그래도 유진이 혼자 하는 녹음도 아니고, 이 난장판이 단번에 해결될까? 잘못하면 유진이도 NG 바람에 휩쓸릴 텐데.”

오늘 정기열이 내내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대단한 배우, 성우라도 타인의 NG를 컨트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들어가볼게요!”

그러는 사이.

유진은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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