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쇼케이스 당일.
쇼케이스 입장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
“와, 드디어 오늘이 왔네.”
“후. 진짜 심장 터질 거 같아요.”
“아직도 안 믿겨요. 내가 유진이를 실제로 본다니······.”
행사장에 비해 100명 추첨이라 그렇게까지 북적이지 않은 편이었다.
사실 유진 급의 인기라면 당첨되지 못한 팬들이 기웃거릴 법도 하지만.
대박이들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
[*대박이들에게 주의
유진이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팬들은 유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유진이가 혼란스러워하거나 불편해할 만한 행동을 절대 금지합니다.]
유진이 아직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팬들이 나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짙었다.
그 때문에 대박이들은 그만큼 자정작용을 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고.
덕분에 제법 성숙한 팬층을 가질 수 있었다.
“근데 설마 당첨될 줄이야. 내 평생 운 여기 다 썼네.”
“진짜 이거 때문에 화보집 40장 샀다니까요.”
“제 아는 스친(스윗터 친구) 분은 100장 샀는데도 당첨 안 됐대요.”
“헐! 불쌍하다.”
“근데 괜찮대요. 유진이 학비 대준 거라 생각하고, 방 안을 유진이 사진으로 도배해놨다더라고요.”
서로 사는 곳도 다르고, 가치관도 모두 다르겠지만.
이곳에 모인 100명의 표정은 모두 똑같았다.
기대감과 설렘.
잠시 후.
“이제 곧 쇼케이스 시작합니다!”
스탭의 안내가 떨어지자마자.
마치 팬들은 합죽이가 된 것처럼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단결력, 그리고 질서정연.
이게 바로 대박유진의 모토였으니.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와아아아아!!”
수트를 입고 나온 유진을 보는 순간.
대박이들은 제 목건강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소리를 내질렀다.
“오늘 복장 뭐야, 대박!”
“와. 수트 입은 거 보니까 염라 생각나요. 염라가 그대로 자란 거 같아!”
“진짜 유진이 기럭지가 이기적이다······저게 15살이야?”
북적대는 팬들.
곧 그들은 유진의 얼굴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와, 이어 마이크 차고 나온 거야?”
“저러니까 진짜 아이돌 같다.”
바로 댄스 가수들, 아이돌들이 주로 차는 이어 마이크의 존재.
“진짜 댄스곡 하나 봐요. 대박.”
“벌써 귀엽다. 어떡해.”
유진이 오늘 선보일 노래가 댄스곡이라는 강력한 암시였다.
곧 무대 위로 오른 유진.
100명의 팬들 앞에서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배우 박유진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일일 가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짝짝-
쏟아지는 박수와 함성.
소리만 들으면 1000명은 와있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팬 여러분과 직접 만나고, 또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무척이나 기뻐요. 그리고 조금 부끄럽지만, 오늘은 또 제 노래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쇼케이스 날이기도 하잖아요?”
어쩌다보니 싱글까지 내게 된 상황이 민망한지.
유진은 제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가 이번에 준비한 노래가 댄스곡이거든요. 음, 사실 우여곡절이 좀 있었어요. 저는 춤을 잘 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회사 사람들은 아주 뜯어말리더라고요.”
그러자 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들에게 있어 유진의 춤은 너무나도 귀여운 약점이었으니까.
그런 유진이 댄스곡을 낸다?
이거야말로 희귀한 덕질거리가 아닌가.
“저는 저 나름대로의 춤 철학이 있는데······아무튼 사람들 반응을 보니 못하는 게 맞나봐요. 하지만 잘하는 것만 보여드리면 재미없잖아요? 그리고 우리 대박이들이라면 제 이런 면도 모두 사랑해줄 거라고 믿고! 여러분께만 공개해드리는 거예요. 제 맘 알죠?”
그리 말하며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유진.
예상치 못한 애교에 팬들이 앓는 소리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가 조금 쉬기도 했고. 그동안 여러분의 소중함을 더더욱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래서 이 곡은 여러모로 팬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 같은 곡이에요. 대박이들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붙였거든요.”
오오-
팬들이 기분 좋게 호응했다.
“그럼 들어주세요. 여러분을 위한 노래, ‘작은 별’.”
그 말과 함께 깔리는 MR.
백댄서 한 명 없이.
유진 혼자 무대 위를 채웠다.
뒤돌아선 유진이 스텝을 밟기 시작했고.
팬들은 벌써부터 광대가 하늘까지 치솟은 상태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이어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유진의 목소리.
서정적인 가사와 변성기를 겪고서 더욱 묵직해진 유진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당신이 발견해주지 않았다면
그저 반짝이다 사라졌을
하나의 작은 별
살랑거리는 유진의 몸짓.
물론 유진이 춤출 때의 특유의 뻣뻣함은 남아있었으나.
빅터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특히 유진의 팬이라면 더욱 극명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이 발견해준 작은 별이
지금 여기에 있어
하늘 높이 떠올라
누구보다 밝게
마치 기계에 입력한 것처럼 그대로 소화해내는 춤.
물론 특유의 뻣뻣함은 어느 정도 배어있으나.
결코 우습거나 이상해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루브감은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그렇기에 노력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들어왔으니.
그리고 그 순간.
유진의 춤이 잠시 멈추고.
누가 봐도 ‘댄스 브레이크다’하고 알 수 있을 법한 지점.
대박이들은 대체 유진이 무슨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때.
유진의 뒤에 있는 배경 LED에서 영상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데뷔작이었던 <유별난 친구들>의 영상이었다.
[전 주원이라고 해요. 아줌마는 누구세요?]
곧 흘러나오는 어린 유진의 목소리.
변성기가 오기 전이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런 분위기 반전에 숨을 참는 대박이들.
그와 동시에 유진의 춤도 변곡점을 맞이했다.
마치 <유별난 친구들> 속 주원처럼.
소심한 듯 하면서도 쭉쭉 뻗어나가는 동작이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화면은 빠르게 바뀌었다.
[내가 친구들이랑 놀 땐 아무도 방해 안 하던데. 넌 왜 방해해?]
이번에 재생된 것은 유진에게 첫 수상의 영광을 안겼던 <리플레이>.
그때는 또 안무가 변했다.
그 특성을 안무에 반영하여, 느릿하지만 순간 날카로워지는 듯.
손날로 급소를 찌르는 듯한 동작이 섞여 있었다.
[누나. 나 이기고 올게]
첫 주연이었던 미니시리즈 <호구>.
그때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검도 자세가 혼합된 안무를 선보였다.
<호구> 촬영 때에 비해 유진은 훌쩍 컸지만.
그때 유진이 표현했던 순수한 감성만큼은 그대로 재현되었다.
첫 천만영화 <데드맨> 때는.
[내가 누군지 정말 몰라? 넌 내 이름을 알잖아.]
죽음의 의인화인 영서처럼.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싸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팬들을 바라보는 그 눈빛.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을 거 같은 차가움이 뿜어져나왔다.
그리고 신드롬을 일으켰던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때는 다시 염라가 된 것처럼.
어느 새 무대 중앙에 세팅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거만하게 팬들을 바라보았다.
[으, 비린내.]
그와 함께 깔리는 시그니쳐 대사.
배경으로 깔리는 영상이 바뀌고.
유진이 표현해내는 캐릭터가 변할 때마다.
유진은 마치 가면을 바꿔쓰는 것처럼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찍 철이 든 키즈모델이었다가.
제 본성을 깨닫기 시작하는 사이코패스였다가.
누구보다 순진하고 열정적인 검도 소년이었다가.
죽음의 의인화이자 한 아버지의 죄책감이었다가.
저승을 다스리는 염라의 모습까지.
유진의 오랜 팬일수록 감동받을 수밖에 없고, 전율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유진의 배우 인생을 축약해놓은 무대였다.
“······.”
유진이 춤출 때마다 펄럭이는 바짓단.
발꿈치 쪽에 붙은 살색 파스가 힐끔힐끔 보였다.
그가 이 순간의 무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처음에는 웃으며 듣던 팬들이 많았으나.
갈수록 오히려 훌쩍이는 소리가 많아졌다.
유진이 이번 싱글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가사에 얼마나 진심을 담았는지.
모두 고스란히 전해졌으니.
<메모라이즈>를 끝으로 영상이 모두 끝나고.
다시 흘러나오는 ‘작은 별’의 MR.
언젠가 길을 잃어도
따라와 나의 반짝임
빛나는 작은 별을 따라온다면
약속할게 꼭 웃게 해준다고
시작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는 보컬.
그에 어우러지는 유진의 춤.
뒤돌아서 시작했던 것과 달리.
마지막은 앞을, 팬들을 응시하며 끝났다.
너에게만은 꼭
약속할게-
MR이 끝나고.
“후우-”
마치 커다란 숙제를 끝낸 것처럼.
유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대가 끝난 뒤 찾아온 잠시 동안의 정적.
유진도, 팬들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두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와아아아아-!”
대박이들은 일당백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환호성을 내겠다는 듯.
목에 핏대까지 올려가면서 말이다.
유진이 가졌던 반년간의 공백.
팬들이 가지고 있던 서운함을 깨끗이 씻어내려 주는 감동이었다.
동시에 유진의 팬으로서 함께해온 지난 7년.
그 순간을 모두 함께했다는 환희가 온몸을 감쌌다.
“헤헤.”
그 감정이 유진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는지.
유진은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팬들을 바라보았다.
“감사해요, 여러분!”
유진은 보았다.
조명이 지나갈 때마다, 팬들의 눈에 맺힌 눈물을.
그리고 그 눈물이 반짝이는 모습을.
마치 작은 별들처럼 말이다.
*
“와씨.”
이번 ‘작은 별’의 안무가인 세라킴.
그녀는 혼이 나간 얼굴로 멀찍이서 유진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짝짝짝-
절로 박수가 나왔다.
그녀가 유진에게 보낸 첫 박수였다.
“쓰읍.”
그러다 이내 곧 온몸에 이는 전율에 팔뚝을 매만졌다.
분명 최근 몇 주간은 유진과 매번 안무를 연습했다.
그렇기에 무대에 선 모습이 새삼스럽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춤을 못 추고 연기를 잘 한다. 그 말 진짜였네.”
분명 그녀는 유진의 팬이었지만.
춤은 커버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안무가로서 많이 질책도 한 것.
그래서 유진이 갑자기 안무를 수정해, 필모그래피를 토대로 새로 짜달라고 했을 땐 걱정이 많았다.
유진이 내건 화보 전집에 혹하지만 않았어도 끝까지 반대했을 것.
그러나.
지금 와서는 그게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자기가 맡았던 캐릭터에 몰입할 때면 몸놀림 자체가 달라져. 그걸 토대로 안무를 캐릭터화 시켜서 자연스럽게 표현해낸 거야.”
이는 곧 자신을 사랑해주는 팬들을 향한 헌정이기도 했다.
여태 자신의 작품을 잘 봐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박유진.
그는 훌륭한 댄서는 아닐지언정.
최고의 배우였던 것이다.
“······흐윽.”
지금 세라킴도 안무가가 아닌.
한 명의 팬으로서 유진에게 깊은 감동을 받고 있었다.
*
한편.
음악전문 케이블채널 엠더넷.
그곳에서 매주 진행하는 케이팝 차트쇼 <케이팝 챔피언>.
연출PD와 작가진들이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다다음 주 순서 다 세팅해놨냐?”
“엔딩은 에이에이 컴백하기에 그걸로 잡아놨어요.”
웬만한 아이돌이야 기본적으로 세팅이 된다.
이런 뮤직 차트쇼에선 아이돌이야말로 시청률과 조회수를 책임져주는 1등 공신 아닌가.
“근데 아직 2~3팀 정도 비는데요.”
“뭐? 왜? 아직도 못 구했어? 요즘 활동하는 가수가 그리 없냐?”
“얼마 뒤에 빅터 컴백이라 그런지, 다들 사리는 분위기인 모양이에요. 차트에서 서열정리 당할까봐 두려운가 봐요. 이번에 신곡을 낸 게 거의 에이에이 뿐일걸요?”
“아하. 빅터 컴백 전에 빈집털이하려는 속셈이구만.”
그러나 또 아이돌만으로 프로그램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주로 기획사 측의 요청이 있거나.
혹은 네티즌들의 추천을 많이 받는 가수를 택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네티즌들의 요구가 많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고.
이는 곧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연결된다는 거니까.
“그럼 뭐, 우리는 하던 대로 해야지 뭐. 게시판 훑고 픽해야지. 야, 막내야. 게시판에 올라온 거 차트로 뽑았지?”
“넵, 여기 있습니다!”
쪼르르 달려온 막내가 내민 한 장의 종이.
그건 바로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출연 요청 게시글들의 비율을 분석한 것이다.
이 가수를 <케이팝 챔피언>에 출연시켜주세요! 하고 말이다.
“음? 이거 뭐야.”
차트를 확인한 연출PD가 인상을 찌푸렸다.
“얘 배우 아니야?”
“박유진이요? 오늘 싱글을 낸 모양이에요. 쇼케이스도 한다고 하던데요.”
“허. 얜 뭐 이제 싱글까지 내? 아역배우가. 그리고 이거 뭐야. 이 차트 제대로 뽑아온 거 맞아? 비율이 이상한데?”
“네. 확실합니다. 애당초 엑셀로 뽑은 거라 틀릴 일도 없습니다.”
차트에 표시된 박유진 출연 요청 비율.
“아니, 박유진 음방 출연 요청이 뭐이리 많은데? 거의 에이에이 급이잖아?”
그게 90%를 넘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