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강우가 손을 뗐고, 남자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툭, 투둑, 터져버린 피부조각들과 잘게 부서진 뼛조각들이 뭉친 채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의 신체 일부분이었던 그것들은 썩은 포도주에 담갔다가 뺀 듯 붉게 물들어있었다.
남자의 시선은 자신의 양쪽 손목 끝에 고정돼있었다. 손목뼈 끄트머리에 살과 부서진 뼈가 작게 뭉쳐있었다.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악-! 내 손! 내 손! 내 손…….”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게 상대 봐가며 까불어야지….”
퓻.
어느새 강우가 남자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남자의 시선이 손목에서 강우의 얼굴로 옮겨졌다.
빠각!
남자의 몸이 왼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강우의 발차기 때문이었다. 강우가 오른발 로우킥을 날렸고, 남자의 두 다리가 전부 부러졌다.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원망과 공포가 서린 눈으로 강우를 올려다봤다. 강우는 몸을 발에 얹고 던지듯, 남자를 가볍게 걷어찼다.
퉁!
남자의 몸이 붕 떴다. 약 10m, 남자가 날아간 거리였다. 남자는 자신의 일행들 앞까지 날아갔다. 덩치 큰 남자가 콧수염을 기른 남자를 받아냈다. 덩치 큰 남자는 품에 안은 남자를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놨다.
“내가 말했잖아…. 집행자는…….”
장발 남자가 전신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죽여버리겠어!”
장발 남자는 당장이라도 강우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덩치 큰 남자는 장발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안 돼! 가지…….”
빡!
근육질 남자가 덩치 큰 남자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덩치 큰 남자는 주저앉은 채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코뼈가 부러져 양쪽 콧구멍은 피가 나오는 수도꼭지마냥 피를 콸콸 쏟아냈다.
근육질 남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덩치 큰 남자를 내려다봤다.
“네가 그러니까 아직도 삼성급으로 못 올라오는 거야. 덩치에 안 맞게 겁은 많아가지고….”
“아니, 난……. 우리 그냥 몬스터 사냥만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잖아. 왜 이런…….”
뻑!
근육질 남자의 무릎이 덩치 큰 남자의 안면에 꽂혔다. 덩치 큰 남자의 치아 여러 개가 부러지며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덩치 큰 남자는 뒤로 넘어갔다가 바닥에 손을 짚으며 고통이 서린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앞니는 다 부러져있었고, 입에서는 침이 섞인 끈적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근육질 남자는 싸늘한 눈으로 덩치 큰 남자를 내려다봤다.
“그냥 닥치고 있어. 한 번만 더 입 열면 평생 주스나 쪽쪽 빨게 해줄 테니까.”
덩치 큰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근육질 남자의 눈을 피했다. 덩치 큰 남자의 시선은 양손이 뜯겨나가고, 두 다리가 부러진 남자에게로 가있었다. 덩치 큰 남자는 ‘우리 모두 저렇게 될 거야…. 왜 보고도 모르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덩치 큰 남자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 남자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그리고 이렇게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랑 싸우는 것도 싫어….’
덩치 큰 남자는 지금 상황을 직시하며 다시금 생각했다.
‘다들 미쳤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려고 해. 다들 분명히 미쳐버린 거야.’
덩치 큰 남자는 현재 일행들과 어울리면서도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는 이들과의 관계를 끊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손에 들어오는 돈을 포기하지 못했고, 이들에게 동료애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강우와 맞닥뜨리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강한 사람은 너무나 많고, 지금 세상에선 절대 원한을 사서는 안 됐다. 남에게 원한을 산다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거 파티 측에서 이러한 부분들을 단속하긴 했지만, 능력자들끼리의 전투인 경우 대부분 무죄판결 혹은 아주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다. 그마저도 검거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많은 것이 변해있었고, 혼란스러웠다. 능력자들과 몬스터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했을 때만큼, 위험성만큼은 더욱 커져있었다. 능력자들끼리 사망사고는 갈수록 늘어갔다. 이는 ‘죽음’과 익숙해진 것이 큰 관련이 있었다.
능력자들은 99.9% 이상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자신의 힘을 이용한 일을 했다. 그 역시 폭력과 연관돼있고, 대부분은 죽이는 일이 차지했다. 죽이고, 자신의 목숨도 내놓아 언제든 죽음을 감수하고 있다.
죽음과 그만큼 가까워지고 친해져있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능력자들은 매일 죽음과 손을 잡고 걸으며, 죽음과 함께 식사를 하고, 죽음과 함께 욕조에 들어간 뒤, 죽음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
죽음에 익숙해져서일까, 많은 능력자들이 언젠가부터 크게 구분을 두지 않았다. 짐승, 몬스터, 사람, 구분을 두지 않았다. 죽음 앞에선 평등하다고, 생명이란 불꽃을 꺼버리는 행위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선의든, 악의든, 뭐든, 죽임과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일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성향 자체도 문제였다. 능력을 얻기까지, 보통 사람으로 살아간다.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갑작스레 큰 힘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으로 망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조금씩, 조금씩, 저마다 각자 다른 체계에서, 정신이란 기계의 톱니바퀴가 하나하나씩 틀어지고 바뀌고, 나사가 조여지고 풀리고, 어느새 완전히 다른 기계, 그러니까 사람, 능력자가 되는 것이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다가, 자신의 잣대를 다른 사람에게도 들이밀다가, 이익을 추구하다가, 수도 없이 많은 이유로 사람이 변하고, 세상이 변해갔다. 이것은 몬스터가 없이, 능력자들만 생겨나도 일어났을 일이었다. 능력자가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했을 때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있었던,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의 충돌은 이미 타고 있는 불씨에 기름과 땔감이 된 셈이었다.
예거 파티 내의 극단적으로 자신들의 정의를 내세우는 예거들, 이익만을 추구하는 예거 클랜들, 사람보다 몬스터가 먼저인 몬스터보호협회, 능력자가 아니었어도 범죄자가 됐을 잔혹한 블랙마켓의 능력자들, 세상이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믿는 에스카까지. 이들 모두가 이러한 상황의 대표적인 예시들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강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덩치 큰 남자는 이 싸움을 멈추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안 된다면, 자신만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만 욕심을 덜 부리면 될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가, 그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나부터 바뀌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바뀌면, 그렇게 늘어가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대부분의 창대한 결말들은,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덩치 큰 남자는 생각만 했다. 행동은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눈앞의 싸움조차도 중단시키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근육질 남자가 두려워 아무 말도 입에서 내뱉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상황은 덩치 큰 남자의 생각대로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강우와 핫도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근육질 남자와 장발 남자는 크게 착각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자신들의 목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장발 남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들어오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남자가 양 주먹을 들며 자세를 취했다. 전신에서 뿜어지던 푸른빛이 전격(電擊) 형태로 바뀌었다.
파치, 파치치.
푸른빛의 전기가 남자의 주변으로 치직거리며 튀었다.
“둘 다 통째로 튀겨주마.”
남자가 강우를 향해 돌진했다.
치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남자가 움직이는 대로 푸른빛의 전기가 따라다녔다. 남자는 뛰어올라 강우와 핫도그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치, 지, 지, 지, 지, 지, 지, 지-!
남자가 뿜어낸 푸른빛의 전기는 마치 번개처럼 강우와 핫도그를 향해 뻗어 나왔다.
터엉-!
강우가 남자를 향해 뛰어올랐다. 푸른빛의 전기는 핫도그에게까지 미치지 않고, 강우의 몸에 직격했다.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멍청한 놈…. 고작 개새끼를 구하겠다고 자기 몸을 희생…….”
남자의 두 눈이 커졌다. 강우가 손바닥을 쫙 핀 채 오른손을 뻗었다.
추추충-!
강우는 눈앞의 거미줄을 걷어내듯 손을 돌리며 팔을 옆으로 크게 저었다. 푸른빛의 전기는 그대로 싹 걷어져버렸다. 남자는 전신에서 더욱 강렬하게 푸른빛을 머금은 전기를 발산했다. 남자의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전기가 파팍, 스파크를 튀며 퍼졌다. 전기 충격에 강우의 몸이 밀려났다. 강우는 공중에서 빙글 돌아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남자는 아직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강우가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양발 아래로는 기다랗게 전격이 지직, 지직거리며 이어져있었다. 남자는 전기를 내뿜어 공중에 떠있었다.
퍼펑, 퍼퍼펑.
남자의 발아래 이어진 전기는 플라즈마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짧은 폭발을 일으켰다. 남자는 양손을 양옆으로 들었다. 남자의 손아귀에서도 전기가 이리저리 튀었다. 남자의 손가락 끝마다 전기가 흘렀고, 다섯 개의 줄들은 소금을 맞은 실지렁이마냥 서로가 서로를 얽으며 움직였다.
“진짜로 죽인다.”
남자가 양손을 강우를 향해 뻗었다.
퍼펑, 퍼퍼펑, 퍼퍼퍼펑, 치유웅-!
푸른빛의 전기파가 아무렇게나 뻗는 나뭇가지처럼 강우를 향해 뻗어나갔다. 강우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츄융!
한 번의 휘두름, 강우가 팔을 크게 저었다. 그것만으로 남자가 뿜어낸 전기파가 전부 걷혀버렸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강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텅!
강우가 남자를 향해 뛰어올랐다. 남자는 재빨리 양손을 강우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강우는 남자의 코앞에 와있었다. 강우의 시커먼 오른쪽 주먹이 들려있었다. 남자의 시선에 비친 강우의 주먹은 시커먼 무쇠덩어리보다도 묵직해보였다. 남자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 상황이 아주 느리게 느껴졌다.
‘죽는다….’
파앙!
무언가가 강우에게 적중했다. 강우의 몸이 옆으로 크게 밀려났다. 타격은 없었다. 강우는 바닥에 착지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근육질의 남자가 강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근육질의 남자 전신에는 보라색 빛이 얇은 막처럼 둘러져있었다. 강우는 근육질 남자를 내리깔아보듯 시선을 고정한 채 가볍게 목을 돌렸다.
‘뭐였지? 분명히 뭔가 날아왔는데….’
공중에 떠있던 장발 남자는 근육질 남자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근육질 남자가 말했다.
“이제 협공이다. 너 혼자서는 안 돼.”
장발 남자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발 남자는 전신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강우에게 시선을 옮겼다.
‘저걸 이길 수 있을까? 난 방금 부딪쳐봐서 안다. 저 놈은 절대로 삼성 하급이 아니야. 삼성 중급도 수도 없이 봐왔다. 삼성 중급들 대부분은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공포로 몰아넣는 존재는 없었다. 격이 달라…. 기회를 봐서 도망칠까?’
장발 남자는 전신에 보라색 빛을 두르고 있는 근육질 남자를 흘낏 쳐다봤다.
‘하지만…. 그랬다간 이 녀석한테…….’
장발 남자는 다시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남자들을 향해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자의 마음이 굳어졌다.
‘하지만 저 녀석이 훨씬 무서워. 잠수 타면 되지. 돈도 충분히 모아뒀으니까 저기 멀리 지방…. 아니, 해외로 나르는 거야. 미국? 아니지. 동남아가 살기 좋을 거 같은데. 필리핀? 아냐, 태국이 더 땡기는데. 그래, 어쨌든 동남아로 가자. 따뜻한 날씨에 물가도 싼 편이고, 평생 탱자탱자 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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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금일은 제가 49재 때문에 시골에 내려갑니다.
비축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주말 업로드는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평소와 같이 업로드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p.s : 설문 참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