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르카이츠는 헛웃음을 뱉었다.
이는 정말 웃겨서 웃는 게 아니었다. 그저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호문쿨루스는 인조인간이라 한들 반쪽은 마족이라 할 수 있는 놈들이다.
하여 생겨 먹은 것이나 성질머리나 모두 다 마족과 비슷하다. 이제껏 그래왔다. 그런데…….
“세, 세키나 의심하면 안 되는데!”
“세키나한테 뭐라고 하면 우리가 속상한데!”
왜 인간 같은 말을 하고 앉아 있나.
아니, 인간 같이 구는 게 싫다는 것이 아니다. 르카이츠도 마족 놈들이 좀 인정머리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나, 나 아직 약하지만 강해지면 세키나 지킬 건데!”
“세키나가 시키는 대로 다 할 건데!”
……이건 인정머리를 떠나서 생각 없고 자아 없는 꼴 아닌가.
르카이츠는 현기증이 이는 걸 느끼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세키나 님은 모두의 사랑을 받고 계세요.”
아서는 그런 르카이츠를 보며 여상히 말했다.
“마왕님도 곧 그렇게 되실 겁니다.”
그건 싫은데.
르카이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
늦은 밤.
모두가 자고 있는 때.
슬그머니 일어난 세키나는 익숙하게 방을 나섰다. 어둠이 잠식한 복도지만 세키나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다. 밤눈이 밝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 어둠이 그렇게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지.’
갑자기 날 좋아하게 되어 버린 것 같은 드한이라거나, 드한이라거나, 드한이라거나.
‘으으.’
세키나는 소름이 돋는다는 듯 양팔을 슥슥 비비고는 고개를 저었다.
‘대충…… 대충 떨어뜨려 놓으면 돼. 어차피 마족들은 인간이랑 같이 있는 걸 싫어하니까.’
뒤에서 아서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전혀 모르는 세키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아까 전, 낮에 봐 두었던 방의 문을 슬쩍 열었다.
방 안에는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한이 있다. 배를 긁적거리며 입맛을 쩝쩝 다시는 게, 별로 좋은 꼴은 아니었다.
‘추접스럽게도 자네.’
으.
그냥 나갈까.
잠깐 고민하던 세키나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발끝으로 툭툭 그를 건드렸다.
“으하아암.”
“야. 인나 바.”
“으아…… 아?”
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으아아악! 엄마! 엄마악!”
그는 발버둥을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깜짝…… 깜짝이야. 크흠!”
“가지가지 한댜, 진쨔.”
세키나는 쯧쯧 혀를 찼다.
“원래 다 커두 놀랄 때는 엄마를 찾찌. 나도 아라.”
“……3살짜리가 알기는 뭘 알아.”
부끄러워진 한은 빨개진 뺨을 감추며 잔기침을 뱉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살짝 응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세키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왜, 왜 왔니?”
세키나는 팔짱을 낀 채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아까 보여준 고. 다시 보여달라구.”
“……손목을?”
“웅.”
“희한한 취향이네…….”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곧 침대 밑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까 전 보여 주었던 상자를 꺼냈다.
“애가 보기에는 별로 좋은 거 아니니까, 확인만 하고 가렴.”
“웅. 나눈 엄마를 찾찌 않는 애니까.”
“…….”
애가 놀리기도 참 잘 놀리네.
한은 킁 코를 훌쩍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세키나는 그런 그를 뒤로하고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아까 전 보았던 것, 다시 말해 황제의 것이라 추측되는 손목이 담겨있다. 흑마법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 말이다.
세키나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세라. 거기 이쓰면 나와.”
세라. 세키나의 사역마이자 환수인 고양이.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싫다며 내내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만, 근처에 있긴 했다. 그래서 세키나는 그간 별로 세라를 찾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가 필요했다.
하지만 세라는 답이 없었다. 기척이 느껴지는데도 말이다.
“너 지굼 안 나오면 너 캘빈한테 아예 맡껴 버린다.”
-야오오옹.
캘빈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냅다 튀어나온 세라는 제발 날 보내지 말아 달라는 듯이 세키나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세키나는 그런 세라를 무심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거 냄새 기억해 나. 낼 필요해질 테니까.”
[내가 개냐?]
야오옹, 소리와 겹쳐져 세라의 대답이 들렸다.
한 마디 하며 쥐어박으려던 세키나는 이내 한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머릿속으로 대답했다.
‘왜. 너두 개처럼 훈련받아 볼래?’
[……아니.]
대답한 세라는 열심히 상자 속 내용물의 냄새를 맡았다. 냄새의 기억 정도는 환수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빤니 해라. 나 시간 업따.”
[다 했다, 이 나쁜 자식아.]
‘조아써. 캘빈 해방권 일주일 준다.’
[…….]
세라는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며 고개를 떨어뜨렸지만 세키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낄낄거리며 웃을 뿐.
“저어…… 세키나.”
그런 세키나에게 한이 말했다.
“뭘, 뭘 하는 거니? 고양이에게 냄새를 맡게 해서 뭘 하게?”
도통 이해되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그간 세키나가 보여주었던 기상천외한 일들에 비해서는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나아?”
세키나는 씨익 웃으며 한을 직시했다.
“교황 엿 먹이눈 짓.”
입가에 걸린 사악한 미소는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다음 날까지도.
***
“구럼 저히 가따 오께여.”
이른 아침이 되자마자 드한을 끌고 나온 세키나가 말했다.
그에 아침을 준비하던 아서의 눈이 동그래졌다. 옆에서 아서를 돕고 있던 유리엘도 마찬가지였고.
“세키나 님. 어딜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교황청. 그때 가기로 해써짜나.”
“네에?!”
아서는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세키나 님!”
그는 세키나를 구석으로 끌고 와 속삭이듯 말했다.
“교황청은 위험합니다! 그 미친 루치페르 놈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있을찌도 모르는 게 아니구 있게찌. 그넘 보러 가는 건데 이써야지.”
“예에?!”
아서는 이제 혼절할 지경이었다. 루치페르를 만나러 간다니! 지금의 마왕님도 그를 단독으로 만나지 않으려 하는데, 세키나 님이 왜! 그 미쳐도 단단히 미쳐있는 놈을, 대체 왜!
“위험합니다! 그놈이 세키나 님을 알아채면 어떡해요!”
“멀 어떡해? 디지는 거지.”
“세키나 님!”
거품을 물고 쓰러지려는 아서를 붙잡은 세키나는 킥킥 웃었다.
“농담이구, 갠차나. 날 알아본다 해두 날 죽이지는 몬 할 꺼야.”
“……왜요?”
세키나의 두 눈이 어여쁘게 접혔다.
“나눈 보호받꼬 이쓰니까.”
시스템이 주는 ‘퀘스트’를 실패할 경우, 세키나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퀘스트 실패가 아닌 이상 죽지 않게 된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야. 내 생각이 맞찌? 대답 안 하묜 나 암것또 안 한다. 지굼 나 주그면 너만 곤란해지는 걸 텐데.
그야 시스템을 탈탈 털어 알아낸 것이었으니까.
세키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아서의 팔을 붙잡았다.
“구리고 거기 가야 대. 가서 해야 할 께 이딴 말야.”
“해야 할 것이요?”
“웅.”
“뭔…… 뭔데요?”
“구건 가따 와서 말해 주께.”
세키나는 교황청 아래에 있는 숨겨진 던전을 떠올렸다.
“보쓰를 위한 그야.”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대단한 ‘유물’도.
그를 떠올리자마자 세키나의 머릿속이 꽃밭으로 변했다.
그걸 빼 오면 루치페르가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게 뻔했으니까. 그리고 마왕에게도 힘이 되어 줄 테고, 조금 더 시나리오를 앞당길 수 있을 테니까.
여러모로 (우리에게) 좋은 것.
그리고 여러모로 (루치페르 놈에게) 안 좋은 것.
제대로 엿을 먹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세키나는 그렇게 킥킥거렸고,
“…….”
덕분에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르카이츠의 차가운 시선을 미처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