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6화 (26/259)

9.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고 (3)

이언적은 단양향교를 둘러보며 제자 이황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성전(大成殿)은 검박하나 제도를 갖추었으니 그 뜻이 맞고, 풍화루(風化樓)는 부드러우면서 위엄 있으니 기풍이 올바르다.

문(文, 꾸밈)과 질(質, 본질)이 빈빈(彬彬, 조화로워 빛남)하니 실로 군자의 풍모가 아니랴.

그러나 그 풍화루에 올라 강물을 바라보는데,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그 문장을 떠올리려던 찰나 대숲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 피 냄새가 묻어 있는 듯하여, 이언적은 절로 눈을 찌푸렸다.

어젯밤의 그 기이한 만남이 절로 떠오른다.

영월로 부처될 때부터 뒤에서 윤원형 그 간사한 자가 손을 썼음은 직감하고 있었다. 다만 예(禮)가 아니었으므로 볼 수 있을지언정 보지 않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말하지 않았을 뿐.

그러나 그를 찾아올 만한 이들이라면 모두가 식견 있는 이들이니, 굳이 이럴 때 의심 받아가며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산림의 바른 선비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 깔보는 윤원형이라지만, 사림의 사람들이 그토록 어리석으리라 생각하였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 죄 없는 이지함이라는 젊은이가 무슨 도적의 수괴인 양 떠들면서, 조정과 초야의 사림을 함께 탄압하는 구실로 삼고 있는 작금의 시국을 한심하게 생각하던 이언적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도적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는 잘못된 정사는 바로잡지 않고, 또 일어난 도적이 널리 흥성하게 되는 까닭인 장시는 오히려 올바른 길이라 하고 있으니, 옳고 그름이 뒤바뀐 지금의 조정을 답답하게 여길 뿐.

분명 이곳 향교로 올 때 따라왔던 그 수상쩍은 ‘군관’들이 어느 순간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음을 깨달았을 때도 오늘 하루도 헛수고할 그들을 안쓰럽게 여기면서 잠자리에 들 채비를 하였다.

거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회재 대감 계시오?”

이언적조차 예상치 못한 무례한 말투였다. 하다못해 윤원형조차 저를 저리 부르지는 못할진대.

문을 여니, 상한(常漢)의 복식을 한 거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전에 고갯길에서 상행을 만났을 때 보았던 얼굴이었다.

“자네는 임 선달 아닌가?”

“역시 뛰어나다 칭송받으시는 분께서는 다르시구려. 기억을 다 해주시고. 헌데 어서 들라고는 아니 하시는구려.”

그사이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음을 깨달았는지, 거한이 곧장 물었다.

“다른 손이라면 밤이 차니 들라 하겠으나, 이곳도 엄연히 향교의 일부일세.”

“나처럼 학문과 거리둔 자는 들일 수 없다, 뭐 그런 말씀이시구려. 하면 돌아가는 사정을 돌려 말씀드릴 이유도 없겠소.”

윤원형의 귀를 걱정하는 자라면 이곳에 오지도 않을 것이요, 또 그 귀를 어떻게든 막을 수를 부려놓고 왔을 테다. 그러므로 저리 당당하게 말함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 귀를 막는 것이 아니라 아예 머리채로 몸에서 분리하여 놓았다는 사실은 뒤늦게야 알았다.)

“부디 그래주게나. 자네 또한 스스로 뜻으로 온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굳이 그에게 연통을 보내고자 할 만한 이들이라면, 이렇게 밤에 떳떳하지 못한 이를 보내오기보다는 이언적 그가 배소(配所) 당도한 뒤에 글을 보내올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거한을 보낸 이는 누구일까? 아직 대윤의 잔당이 남아 무언가를 획책하고 있다던가, 아니면 방계 종친 누군가가 음험한 심계를 꾸미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랬는데 나오는 답이 의외였다.

“그 무슨 말씀이시오? 나는 내 뜻으로 왔소. 나는 황해도에서 의민당 이끄는 임거정이라 하오. 내 위에 있는 것은 저 밤하늘 달밖에 없소.”

어지간히 심사 뒤틀린 듯, 거한이 심통 가득한 말투로 대꾸했다.

“의민당이라?”

의민당이라는 이름은 이언적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도적이 일어나고 기근이 벌어지는 까닭은 수령이 어리석고 백성이 게으르기 때문이라며, 저 의민당 같은 이들처럼 뜻 올바른 이들을 모으면 족히 해결할 수 있는 말단의 문제라고 윤원형이 둘러대던 것이 떠올랐다.

허나 의민당은 결국 장시에 의존하여 말업(末業)의 이익을 따라 움직일 뿐. 결국 조금 더 떳떳한 도적의 무리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그렇소. 그 의민당이오.

대감께서 이실직고하라 하셨으니 내 가감없이 말씀 올리도록 하겠소. 우리 당은 나라 뒤엎고자 모인 당이오. 어차피 나라가 뒤집혀야 숨통 트이는 것은 이 사람의 당이나 대감의 당이나 매한가지 아니겠소? 그러니 부디 우리를 잘 보아달라 말씀드리고자 하오.”

“그 무슨 말인가? 나라를 뒤엎어? 대체...”

“그게 아니면 대감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이오? 설마 이 나라가 지금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시지는 않으실 테고.”

“대체 자네가 이 사람을, 그리고 선비를 얼마나 업신여겨 이런 무례한 언사를 꺼내는지 헤아릴 수도 없고 그리할 엄두도 나지 않는군그래. 밤이 깊었으니 얼른 돌아가게.”

할 수 있는 한 정중하게 축객을 하려는데, 거한이 내뱉는 말 한 마디가 끝내 발목을 잡았다.

“대감, 내 하나 묻겠소. 도적이 도둑질하는 것을 돕는다면 그자 또한 도적 아니오?”

“물러가라 하였네.”

“윤원형이가 전횡하는 동안 가만히 있는 사람도 그러므로 도적이오. 선비가 그렇게 도적으로 남겠다 하는데, 내 어찌 선비를 업신여기지 않겠소?”

저 거친 비아냥에 마침내 이언적의 심사도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무어라? 네 어찌 짧은 식견으로 그런 폭언을 내뱉느냐?”

저자는 이언적 자신이 이미 더럽혀진 조정에서 어떻게든 소윤 간신배들을 막아보고자 얼마나 노력했는지, 티끌만큼이라도 알고서 저런 언사를 입 밖에 내놓는다는 말인가?

부들부들 떠는 사이 비아냥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내 배움은 대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고, 대감의 식견이 앉아서 천 리 밖을 아우른다면 내 식견은 고작해야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 살피는 정도일 게요.

그러나 그런 내 눈에도 매일같이 굶어죽어 나자빠지는 백성들이 보이오. 백성을 그리 끔찍이 아끼시는 선비들께서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오?

물론 때를 기다리는 것도 계책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저 윤원형이는 아직 한창때요. 윤원형이가 온갖 부귀영화 누리다가 늙어 죽을 때까지 꽁꽁 숨어서 때만 기다리면, 그 사이 죽어갈 백성들이 퍽이나 대감께 고맙다고 하겠구려.”

“...”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한결 부드러웠다. 저 거친 언변에 깃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설득의 술수였다.

“대감, 나도 어째서 대감께서 참고 기다리시는지 얼추 알고는 있소. 급한 마음에 떳떳하지 못한 술수를 부렸다가 그 후환이 후대까지 이어질까 걱정하시는 것이겠지. 어리석은 나도 이 나라에 어쩌다 그토록 사화(士禍)가 잦았는지는 헤아리고 있소이다.

그러니 우리 의민당이 대감께도, 또 다른 선비님네들께도 쓰임새가 있는 것이오. 우리는 하찮은 도적과 서리, 장사치의 무리요. 위에 모시는 이도 없고, 추대하려는 이도 없소. 그저 살기가 너무 어려워, 이대로 앉아서 당하기만 기다릴 수 없다는 심정에 뭉쳤을 뿐이오.

내가 나중에 무슨 엄청난 일을 일으킨 뒤에 공신 대접이라도 받고 싶었다면, 이렇게 대감께 폭언을 내뱉고 있겠소? 미리 잘 보이려고 교묘하게 말을 꾸미고 차림새도 그럴듯하게 하고서 나타났겠지.”

이미 흔들려 중용을 벗어난 마음가짐은, 끝내 비례(非禮)를 듣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좋다. 네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우선 들어는 보겠다.”

“우리 당이 황해도 한 도에서 벌써 위세가 작지 않소. 그러니 조만간 윤원형은 우리를 경계하고, 또 미리 쳐내어 화근을 없애려 할 것이오.

허나 아직 조정에 출사해 있는 선비들로 대감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을 자들이 있지 않소? 그리 잘 말씀해주신다면 반드시 나라 올바르게 하는 일에 견마지로나마 보태리다.”

“나라가 올바르게 되면 마땅히 근본은 무겁게 하고 말업은 억누를 것이므로, 너희 당은 비로소 사라져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라 올바르게 되기를 원하느냐?”

“오직 그 마음뿐이오.”

그러나 저 거한이 생각하는 ‘올바른 나라’가 결코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것이 아님은 족히 알 수 있었다.

회상이 그에 이를 무렵, 문루 아래서 인기척이 났다.

“경호(景浩, 이황의 字) 왔느냐.”

“예, 스승님. 불초 제자가 더 일찍 찾아뵙지 못하였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아니다. 네가 만일 어제나 그제 바로 나를 찾아왔더라면 그때야말로 곤란하게 되었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이미 알고 있을 제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면 지금은 달라진 바가 있음이겠지요?”

“향교 뒤편 대숲에서 지난밤 변고가 있던 듯하니, 나중에 찾아서 수습해주면 될 것이니라.”

하필 향교 근방에서 그런 망측한 일이 벌어졌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었다.

“변고라 하시면...”

“군관의 수가 갑자기 줄어든 것이 그 때문일 테다.”

머릿속으로 사정을 짜맞춘 제자가 묻는다.

“간밤에 별고 없으셨는지요.”

“몸은 무탈하나, 다만 놀라운 일이 있어 기(氣)가 평온함을 잃었구나.”

그 ‘임 선달’을 밤에 만난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늘상 한결같던 제자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어찌 보느냐.”

이야기 마친 스승이 물으니, 장고 끝에 답이 나왔다.

“참으로 권도 중에서도 가장 택하기 어려운 권도(權道)라 하겠습니다. 폐단이 극에 달하여, 그 폐단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폐단이 일어난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나 또한 그렇게 본다. 허나 아직 아조(我朝)가 동방에 일어난 이래, 도학(道學)이 오롯이 펼쳐지고 교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때가 그리 길지 않았다. 구폐(舊弊) 벗어나 새로이 바꾸고자 하는 그 마음만은 함께하고 있으니...”

“마땅히 중도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임 선달의 말이 맞다면, 그들은 비록 탐욕에 이끌려 일어난 무리일지언정 본질은 살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뭉친 소민(小民)들입니다. 그들을 아끼되 치우치지 않으면 되리라고 불초 제자는 생각합니다.”

“너의 말이 참으로 옳다.”

선비로써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속사정이 행간에 스며들어 스승과 제자 사이를 오간다.

그 의민당을 두고 논란이 일어날 때, 임 선달이 청한 대로 옹호하되 지나치게 옹호하지 않고, 그저 윤원형과의 사이에서 서로 힘을 다하도록 만든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만일 의민당의 배후에 다른 이가 있다면 그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저들의 미력함이 본말(本末, 여기서는 농업과 상업을 말함)을 뒤집은 데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옳은 길로 귀부할 것이다.

그때까지, 서로 부딪히게끔 한다면 어찌 정학을 닦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뜻을 나누고, 소소한 이야기를 마저 나눈 뒤, 이언적은 제자 이황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회재 대감 이언적은 신병(身病)이 갑자기 모두 나은바, 영월로 가는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러므로 이언적은 며칠 뒤, 임 선달과 함께하고 있는 대역죄인 이지함이 이름을 감춘 채 동헌에 나타나 이황을 만나게 되었음을 알지 못했다.

이지함으로부터 그들 의민당의 속사정과 뜻하는 바, 장차 나라 바로잡고자 하는 방향을 들은 이황이, 윤원형이 의민당을 쳐 없애는 것만큼이나 의민당이 저들 힘으로 윤원형을 무너뜨리는 것을 경계해야 하리라는 생각을 품었다는 것 역시 이언적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한양의 어느 저택 – 얼마 전에 헐값에 빼앗은 집이었다 – 에 앉아, 윤원형은 두리손이 바친 완장을 이모저모 살피고 있었다.

의(義) 자의 자획은 단정하고, 에워싼 동그라미는 간결하나 그 자체로 완성되었다.

누가 그렸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훌륭하여, 그 솜씨를 이 한 글자와 원 하나로 족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의민당이라. 정녕 그자들이었더냐?”

“감히 생각건대, 의민당을 사칭하려는 무리였다면 그 완장을 행장 가운데 숨기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게 차고 다녔을 것입니다.”

단양에서 홀로 살아 돌아온 두리손이 윤원형에게 고했다.

“현장에서 그 일당을 붙잡았다면 확실한 증좌가 되었을 것이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너희 무리가 회재 대감을 따라 단양까지 내려갔던 것도 드러내기 어려운데, 하물며 그곳에서 훔쳐 나온 이 완장을 어찌 남들에게 보이겠느냐?”

“감히 아뢰옵건대 그것은 소인을 믿어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지금껏 미동도 아니하던 윤원형의 미간이 두리손의 그 말에 비로소 좁혀졌다.

그러나 두리손은 한 번 던진 말을 주워담기보다는 계속 밀고 나갔다.

“함께 보내주신 무리는 소인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소인의 일을 방해하였습니다. 분명 내려가는 길에 수상한 무리를 보았건만, 대동한 무리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여 결국 소인이 홀로 잠행하여 의민당 무리가 머무는 곳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신의 무예가 출중하다 하여 대감께서 뽑으신 이들이라 하나, 적의 괴수 하나에게 모두 패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하여 소인 또한 중과부적으로 몸을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무(武)를 헤아리지 못하는 자가 대감의 눈을 가려, 사람을 잘못 뽑았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건방지구나.”

윤원형의 한 마디에 곧장 두리손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도로 숙였다.

“너와 함께 내려갔던 이들은 무과를 보든 취재에 응하든 족히 나라의 군관으로서 녹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개중에는 내가 손수 뽑은 이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 너의 말은, 내가 내 눈을 스스로 가렸다는 뜻 아니겠느냐?”

여전히 고개 숙인 채 미동도 없는 두리손을 보며, 윤원형이 코웃음을 치곤 마저 말했다.

“고개를 들어라.”

“예, 대감.”

예의 그 불쾌한 눈빛이 그대로 들어온다. 그사이 조금 더 매서워졌다.

“패기는 좋으나, 가려서 부려야 할 것이다.

네 말을 믿고 의민당에 이목(耳目) 될 이 여럿을 붙이도록 하겠다. 때가 되면 곧장 움직일 수 있도록, 그때까지 네 손발 될 자들을 가려서 뽑도록 하거라. 의민당이 네 말처럼 강맹(强猛)한 자들을 거느리고 있다면 마땅히 대비를 하여야 할 터.”

“감사합니다, 대감.”

“그래. 그 은혜를 알고 뜻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이만 물러가거라.”

윤원형의 축객에 두리손은 곧장 한 번 더 인사 올리고는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윤원형 입에 조소가 감돌았다.

“어리석은 것들.”

서자를 적자로 올리는 것은, 그들이 저와 난정이 사이에서 나왔으니 비로소 집안의 대를 이을 만했기 때문. 저까지 무엇이 될 줄 알고 저리 욕심을 부리는 꼴이 우스웠다.

그러나 적어도 그 아비의 피와 정(精)을 조금은 물려받았는지, 나름의 쓰임은 있을 듯했다.

또 다른 ‘어리석은 것들’이란 바로 의민당이었다.

해주부터 평산까지 황해도 남쪽이 평온을 되찾고 장시가 흥성케 되면서, 그 일대에 있는 소윤 사람들과 내수사의 소득도 자연히 늘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잠시 살 만해졌다고 투탁(投託)을 멈추어 인력 벌충이 조금은 어려워졌지만, 대신 일대의 전토(田土)·해택(海澤)에서 나오는 이익이 막힘 없이 한양으로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도적이 없어져 장시가 더욱 흥성케 되니, 물력(物力)을 과히 소모하지 않고도 현지에서 물자를 수매하여 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대로라면 저 의민당도 족히 몇 년은 더 쓰임새가 있었을 텐데, 어찌하여 썩은 동아줄을 골라잡아 저들의 쓸모를 스스로 다하게 한다는 말인가.

“야, 이 어리석은 사제 놈아. 정말로 회재 대감께 그렇게 말씀을 드리면 어떻게 하느냐?”

오밤중 대숲에서 한바탕 칼부림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비단과 오승포를 아낌없이 푼 보람이 있어, 이지함의 금창(金瘡)도 먼 길 가는 동안 버텨줄 만큼은 나았다. 덩달아 횡액 당한 주막 주인도 꽤 차도가 있어서, 이제 맘 편히 단양을 떠날 일만 남은 셈이었다.

헌데 떠나기 전 군수 뵙고 오겠다며 잠시 나섰던 이지함이 돌아오자마자 대뜸 꾸중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돌아오시자마자 지금 당수께 무슨 말씀을 하는 거요, 모주님?”

느닷없는 욕에 꺽정이가 빈정대며 대꾸했다.

“퇴계 선생을 뵙고 오는 길에 모두 전해들었다. 그 점잖으신 분께서 나더러 참 고생이 많으시겠다며 걱정을 해주시더라.”

“뭐, 나는 틀린 말 안 했소. 어쨌든 내 언변에 회재 대감도 넘어간 셈이니 잘 풀린 것 아니오?”

“그 언변 한 번 더 선보였다가는 없던 난리도 절로 나게 생겼다, 인석아.”

“자자, 진정하시오. 내일 새벽에 바로 먼길 떠나야 하는데 벌써 상처 덧나면 어쩌시려고 그러시오?”

그 태연한 대꾸에 정말로 뱃가죽이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어, 방에 들어와 곧장 벽에 기대어 앉는 이지함이었다. 뜨끈한 구들장이 그의 다친 몸을 반겼다.

“네가 정말 날것 그대로 말을 전한 덕에, 그래도 회재 대감께서도 곧장 마음을 정하신 모양이더라. 만일 조정에서 우리 당을 공박하는 여론이 갑작스레 일어난다면, 어느 정도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게다.

그러나...”

“그러나?”

“후우, 퇴계 선생처럼 벌써 도학으로 이름난 분이 그런 계책을 함부로 부리시지는 않겠지만, 어째 우리 당을 전심전력으로 돕기보다는 우리와 윤원형이 부딪혀 서로 힘 다하기만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물론 회재 선생도, 그 이름 높은 제자 퇴계 선생도 그런 권도를 가볍게 택하지는 않겠지만, 스승 서경덕의 가르침이 무엇이던가. 만사를 의심하여 스스로 판단하는 것. 암만 고매한 선비라 하더라도 사정 여의치 않으면 닳고 닳은 척신들이나 쓸 법한 술수를 부리려 들 수도 있는 법이었다.

“아니, 어째서 그렇소? 그쪽이 그렇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

이지함이 사뭇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우리는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야 하지. 군자는 대로행(大路行)인데 우리는 산길을 다니니까.”

“이놈아, 농담이 아니다.”

“나도 농담 아니오. 우리는 장시에 재물이 돌고 돌아야 이득 보는 쪽이고, 저쪽은 농사꾼은 만년 농사짓고 선비는 만년 글공부해야 좋다고 여기는 쪽 아니오?

그리고 그렇게 하려다가 지금 나라가 이 꼴이 나 버렸지. 나라 바로잡는 길에 이걸 바꾸려고 지금 사형이 꼬마 도령과 함께 그렇게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고.”

우악스러운 성격 때문에 그렇지, 결코 스스로 낮추는 말처럼 어리석지는 않은 꺽정이였다. 그러나 사제가 이처럼 총명함을 기뻐할 계제는 아니었다.

“그래.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회재 대감께서, 세상이 바르게 되면 우리 당은 존립할 수 없으리라 말씀하신 것은 틀리지 않다.

처음에는 내가 나서서, 잠깐이라도 그분께 솔깃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퇴계 선생을 만나고 나니, 애초에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겠다. 결코 녹록한 이들이 아니니, 처음부터 간파당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 어찌 잠시 우군을 얻은 것을 기뻐하기만 할 수 있을까.”

“사형께서는 그러니까 우리가 실컷 쓰이기만 하고서 버려질 것을 걱정하시는 것 아니오? 그러면 우리가 먼저 저들을 실컷 쓴 다음 버려버리면 그만이지.”

“꺽정아. 그게 마음처럼 될 줄 아느냐?

세상은 넓고 나는 아직 학문을 모두 이루지도 못한 서생에 불과하다. 반면 누대에 걸쳐 이 나라 각지에서 스스로 깨우치고 또 나아가 배운 선비들은 족히 수만은 되겠지. 개중 학문 이루었다 할 만한 이들로만 쳐도 수십에서 수백은 될 테고.

물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우리와 뜻을 함께하려는 이들도 늘어날 테다. 허나 이 땅의 선비 모두를 우리 편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고, 그들을 모두 속여넘길 수도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저들 생각만 말하니 가지런히 마음이 모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은 어쨌든 최대한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저들 사림 쪽에서 의민당을 여러 수단 중 하나로 쓰고 버리려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의민당 눈치를 볼 이유가 하등 없기 때문.

의민당이 당장 한양으로 밀고 들어가 윤원형이를 끌어내릴 수 있다면, 그때는 정말로 저들 사림도 꺽정이에게 자신들의 쓰임새가 있기를 바라야 할 테지만, 그 또한 아직은 요원한 일이었다.

당장 퇴계만 하더라도 그 문명(文名)이 팔도에 자자한데 의민당은 끽해야 황해도에서 조금 이름 날리는 정도 아닌가.

이를 두 사람 모두 깨달으니 달아오르던 논쟁이 결국 절로 김이 빠져, 방 안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심란해하는 사형에게 꺽정이가 어색한 위안을 건네었다.

“사형, 다른 건 몰라도 글공부에 있어서는 우리 스승님 다음으로 빼어난 사람이 사형이라고 나는 보오. 저 꼬마 도령이 몇 년 지나면 앞지를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같은 편이니까 상관 없겠지.

암만 그놈의 완장 도둑놈 때문에 화근이 생겼다 한들, 이렇게 우리가 우군을 얻었으니 당장 내일아침에 봉산으로 관군이 들이닥치지는 않을 게요. 그 사이에 벽창호 선비들까지 설득할 만한 묘리(妙理) 하나쯤 깨달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여전히 이지함 표정은 어두웠다.

그때 흘린 피 때문인지 이지함 표정에 더욱 힘이 빠진 듯 보여, 차마 말은 못해도 꺽정이 마음도 함께 안타까웠다.

“이처럼 세상이 쉽지 않으니, 결국 우리가 무언가 우리 마음대로 해 보려면, 가진 수를 아낌없이 모두 써야 하겠지. 그렇지 않소?”

“당연한 얘기 아니더냐.”

그 말 듣고 한참을 고민하던 꺽정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문 열고 나갔다.

“야, 졸개들아! 나와들 봐라.”

“예, 당수님!”

다들 할 일 없이 방구석에 드러누워 있었는지, 마루가 울리면서 우르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우리 모주님과 잠깐 긴밀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다들 읍내 나가서 술이나 한 잔씩 걸치고 와라.”

“우리가 챙겨온 포목으로 값 치러도 됩니까?”

“뭔 소리냐. 이럴 때 쓰라고 월름(月廩, 월급) 나누어주는 것 아니냐. 우리 당의 포목에서 떼어다 쓰는 놈은 돌아가자마자 다 서림이한테 일러바칠 테니 그리 알거라.”

가뜩이나 재물 오가는 일에 민감한 서림이는 윗전 아닌 윗전으로 신씨 부인을 모시게 된 이래 독기가 잔뜩 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독기는 곧장 아랫사람에게 돌아갔으니, 서림이가 신씨 어렵게 생각하는 것만큼 졸개들은 서림이를 어렵게 여겼다.

“너무하십니다, 당수님. 당장 제 안사람이...”

“야, 최만복이. 내가 그 안사람 챙겨주지 않았으면 네놈은 아직도 홀아비 신세였다. 아니꼬우면 때려치우고 나가던가.”

“거 그냥 농으로 불평한 것 가지고 너무 진지하게 그러십니다.”

그렇게 우르르 무리들이 나간 뒤, 곧장 돌아와 앉았다.

“이보시오, 사형. 너무 걱정 마시오. 우리네 없으면 저들 고매한 선비님네들은 앞으로 십수 년은 윤원형이나 그 누이되는 분이 늙어죽기만 기다리며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하오.”

“그건 네가 그냥 회재 대감께 던진 말 아니더냐?”

“그냥 던진 게 아니라 참말이었소.”

잠깐 생각하던 이지함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꺽정아, 그 말은...”

“이런 말 하면 다들 날 미친놈으로 볼까 봐 얘기를 안 하고 있었소. 사형, 내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장차 십수 년 장래의 일을 미리 보았다면 믿으시겠소?”

그리고 꺽정이는 지난 몇 해를 짊어지고 있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무예를 배워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을묘년 왜변 이후 세상에 절망하고서 도적질이나 하겠다 마음먹은 이야기부터, 그렇게 해서대적 소리까지 듣게 된 내력까지. 임금 앞으로 진상되는 토산물까지 털고, 한양 골목에서 군관들 살상한 이야기까지, 그리고 마침내 서림이가 배신하여 구월산에서 잡혀 죽은 이야기까지 단숨에 털어놓았다.

“... 그렇게 해서 죽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칠장사 절간이었소. 거기서 우리 사형을 만났고, 내가 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삶처럼 살아가면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길을 찾았지.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요.

중한 것은 그게 아니라, 저 선비들만큼이나 윤원형이도 녹록지 않다는 게요. 그러니 우리를 쓰고 버리려 한들 쉽게는 못 하겠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런데 어벙벙할 줄 알았던 이지함 표정이 너무나 이상했다.

진지한 것은 맞는데, 어째 그 진지함이 저와 얘기할 때의 진지함이 아니라, 저 꼬마 도령 앉혀두고 그 이상한 놀이 할 때의 그 호기심과 열기 가득한 진지함이었다.

“꺽정아, 다시 말해봐라. 처음부터 하나씩. 아무것도 빠뜨리지 말고.”

어째 뭔가 잘못 걸린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때늦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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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적은 실제로 중종~명종대 도적이 일어난 까닭으로 장시의 흥성함을 들었습니다. 흉년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장시가 늘어난 것은 맞지만, 이로 인해 도적들이 상인들을 노려 쉽게 이익을 취할 수 있고 또 장물을 처분할 기회도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언적은 더 크게는 이로 인해 농업이 경시되고 상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근본적인 문제로 보았고, 이를 금해야 한다는 상소를 명종 연간 초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나타난, 원시적인 상품경제로의 발전 경향(장시의 확산, 포목의 화폐화, 은을 기반으로 한 사치품 밀무역 증가 등)은, 누적된 사회적 모순과 부정부패로 인해 조선 초의 농본주의 사회가 무너지고 있었던 것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북한의 계획경제가 붕괴하자 장마당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비근한 유례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황은 작중 시기 단양군수로 있다가 형 이해가 충청도(청홍도) 관찰사로 내려오자 상피제에 따라 풍기군수로 옮기고, 거기서 관직생활을 관두고 완전히 산림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미 이때부터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명종 말년에는 사림의 종장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지요. 이이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개혁을 위해서는 이황의 지지가 필요하다며, 꼭 출사하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상경하여 한양에 머물기만 해 달라는 청을 할 정도였지요.

조선 초만 하더라도 저개발되어 있던 황해도는 16세기에 이르러 농업과 상업이 크게 발달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원동력이 세도가와 내수사의 집중적인 투자였다는 점이었지요. 대규모 농장이 조성되고, 역시 대규모로 인력이 투입되어 해변의 갈대밭을 농지로 간척하는 등의 공사가 벌어졌지만, 그 소득은 황해도 주민이 아닌 한양의 세도가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는 당대에도 널리 문제로 인식된 현상이었고, 실제로 임꺽정이 도적을 넘어 반란이라고까지 불릴 만큼의 세력을 일군 배경으로 오래 전부터 지적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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