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7화 (27/259)

10. 하늘은 친함이 없다 (1)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가 완전히 쥐어짜이듯 심문당하기를 몇 번. 사람이 가만 앉아 말만 늘어놓아도 이렇게 녹초가 될 수 있음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꺽정이가 털썩 자리에 누웠다.

“그냥 사람이 말을 하면 곧이곧대로 믿어줄 수도 있지 않소, 사형?”

“스승님 가르침 받드는 사람으로서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 하물며 성현의 말씀도 스스로 의심하고 검증한 뒤에 받아들이라 하셨거늘, 네 녀석의 그 허황된 이야기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이리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완전한 헛소리로 치부되도록 염라대왕 만난 이야기까지 마저 할 걸 그랬는가 싶었다. 물론 그랬다면 이렇게 이지함이 열의 가득하게 꼬치꼬치 캐묻는 일도 없었겠지만.

“허황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퍽 열심히도 받아적으시던데.”

“아직 절반도 못 적었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면 황강역(黃江驛) 정도에서 묵게 될 테니, 그때 다시 듣도록 하마.”

“아니, 그러니까 앞뒤가 안 맞지 않소? 내 말이 허황된 이야기라면서 왜 그리 열심히 묻고 듣고 또 고쳐묻고 하냐는 말이오?”

“만에 하나 정말 천우신조가 있어 네 녀석 머리통에 장차 다가올 일들이 담겨 있던 것이라면, 우리가 대계 이루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지함이 그간 파악한 바, 꺽정이의 이야기에서 도움 될 만한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 꺽정이가 주장한 ‘앞으로 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그들 하기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있었다.

당장 꺽정이 이야기 속에 이지함 저는 나오지 않았으니, 만일 그때 꺽정이가 화담 초당에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필히 지금쯤 저는 초야에 묻혀 죽은 듯 살고 있거나 아예 죄 받아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둘째로, 조선국 나라 사정이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허술하고 형편없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흉년은 한동안 이어지고, 수령의 탐학과 도적의 난행도 그대로 이어지며, 가뜩이나 무너진 나라의 기강은 더욱 해이해질 것이라 하였다.

이야기 속 꺽정이는 일자무식 도적 우두머리로, 마음대로 여기저기 들이받고 날뛰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양 한복판까지 들어와서 날뛰지를 않나, 관군이 토벌하러 들이닥치니 역으로 격파하고 군마를 빼앗아가지를 않나, 결국 작정하고서 수천 군사를 동원한 뒤에야 붙잡았다고 하지 않는가.

심지어 다가오는 을묘년에는 왜구 기천에게 남도 전체가 농락을 당한다 하였으니, 그때까지 고작 대여섯 해 남짓 남은 지금도 그리 상태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원형과 그 일당은 계속 승승장구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사림이 품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은, 어린 임금이 장성하여 대비가 철렴하게 되면 비로소 그 대비의 위세를 업고 날뛰는 윤원형도 숨을 죽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기대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허나 꺽정이가 한양에서 날뛰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헤아려보면, 장성한 임금은 사림 대신 자신의 처가에서 새로운 척신(戚臣)을 구하여 윤원형을 견제하고자 하였을 뿐이었다. 그 이량(李樑)이라는 자는 아직껏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으니, 필히 사림의 사람은 아닐 것이요, 그 축재가 어마어마하였다 하니 성품도 윤원형과 그리 다르지 않을 테다.

이는 다시 말해, 그때까지도 사림은 무기력하게 흩어져, 산림 여기저기에 숨어서 때를 기다릴 뿐 무언가 뭉쳐서 세를 이루지는 못한다는 뜻이었다.

“자, 그러니까 이런 뜻이다. 이 종이를 보아라.”

이지함이 꺽정이 말을 어지럽게 적어내려가던 종이의 여백에 동그라미 셋을 그렸다.

“가장 큰 게 윤원형이고, 버금가는 게 사림이며, 가장 작은 이 원이 바로 우리다. 작은 두 원이 뭉쳐야 겨우 하나를 상대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두 원 중에서도 크기가 서로 달라, 큰 원이 작은 원을 마음대로 움직이려 한들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서 이지함은 곧 옆에 새로 동그라미 셋을 그렸다. 이번에도 세 동그라미의 크기는 서로 달랐는데, 앞서보다 훨씬 그 차이가 줄어들어 있었다.

“그런데 네 말대로라면 윤원형이가 업고 있는 나라의 권세도,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선비들의 기세도 생각보다 변변치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만하면 우리가 조금만 더 힘을 모으고 술수를 부려서 크기의 차이를 극복할 수도 있겠지.”

“그것 참 잘 되었구려. 허나 내가 아는 사형이라면 이쯤에서 ‘그러나’ 하면서 김 빠지는 말씀을 하실 듯한데.”

“잘 아는구나. 네 말대로라면 참 좋겠지만, 정작 그것을 검증할 방법이 없는 게 문제다. 그러니 혹여 단서될 바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계속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사형이 저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은 좋았지만, 이렇게 계속 ‘네 말을 믿을 수 있다면’ 아니면 ‘네 말대로라면’ 하면서 토를 다니 조금은 짜증이 나는 꺽정이였다.

어찌하면 저 토를 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툴툴대며 제안했다.

“정 그러면 돌아가는 길에 칠장사나 들렸다 갑시다. 거기 계신 우리 스님 사형께서는 잘 알고 계실 테요. 내가 그때 법당에서 졸다가 머리통 얻어맞은 이래 사람이 조금 바뀐 것 같다고 증언 한 마디 해주실 것이라 이 얘기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의외로 이지함 반응이 좋아, 꺽정이 얼굴도 절로 폈다.

“그러고 보니, 네 얘기하던 것 중에 분명 그런 대목도 있지 않았더냐? 대비의 총애를 받는 보우라는 요승이 있어, 불사를 크게 일으키고 어쩌고 저쩌고 했던 듯한데.

그러면 필히 우리 우사(羽士, 전우치의 호), 아니, 병해 사형께서도 들으신 바가 있을 게다. 네가 청석골 산속에 있으면서 절간의 소식을 들었을 리 없으니, 정말 그 보우라는 자가 한양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면 네 이야기가 참일 공산이 조금 더 높아지는 셈이지.”

물론 그렇다 한들, 가장 밑바탕에 있는 질문, 즉 앞날을 미리 보고 왔다는 그 황당한 일이 어찌 참으로 일어날 수 있었느냐는 문제가 남기는 했다.

그러나 허황되다 하여 제쳐놓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사흘 뒤, 칠장사에서 의민당 일행은 소문난 고승 병해대사를 만날 수 있었다.

“네놈은 여전하구나.”

허나 꺽정이 얼굴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이러하였으므로 그사이 사람이 바뀌지 않았음은 직감할 수 있었다.

“여전하다니? 그사이 사내대장부답게 무성하게 자란 이 수염이 아니 보이시오?”

대뜸 꺽정이 면전에 흉을 보는 병해에게, 꺽정이 역시 말 한 마디 지지 않고 응수하였다.

“사내대장부는 무슨. 장가나 가고서 그런 말을 하거라.”

“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셔도 되오?”

“암, 되고말고. 내가 저 안성과 죽산 고을에서 시주분들 만나다 보면 나오는 고민의 태반은 장가나 시집만 잘 가면 해결되었을 골칫거리더라.”

나이 차이로 치면 족히 부자뻘은 될 법한 두 사람이 티격태격 주고받는 모양새가 퍽 재밌기도 하였지만, 사형제간의 정 푸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할 얘기를 꺼내기로 마음을 먹은 이지함이 목청을 다듬었다.

“흠흠, 사형께 이 사제 녀석이 많은 신세를 졌다고 들었습니다.”

이지함도, 병해도 같은 스승을 두었다지만 실제로 문하에서 만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존대하고 있었다.

“이 처사께도 저 모자란 녀석이 참 신세를 많이 지고 있으리라 봅니다.”

“고맙습니다.”

가운데 낀 꺽정이에게는 저들끼리만 공대하며 동시에 제 흉을 보니 참 서럽고 억울한 일이었지만, 제 팔자려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실은 그것 때문에 여쭙고자 하는 바 있어 이리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몇 년 전 우리 사제가 처음 칠장사 찾아왔을 때 무언가 이상한 일이 있었는지요?”

“이상한 일이라...”

끝내 그사이를 못 참은 꺽정이가 바로 치고들어왔다.

“그때 있지 않소. 그, 반 년 약조 다 하고 나서 뭔가 보상 주겠노라 찾아왔을 때, 내가 법당에서 드러누워 자고 있다고 머리통 때렸던 날. 실은 그때 내가 단잠 자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생을 살다 왔소.”

“일장춘몽을 꾸려면 차라리 저 명부 구경이라도 다녀오지 그랬느냐. 그랬더라면 그놈의 천둥벌거숭이 기질도 고쳐졌을 텐데.”

저도 모르게 진실의 일말을 말해버린 병해였다. 물론 뒷부분은 완전히 잘못된 결론이었지만.

“아니, 사형 어르신. 너무 그렇게 면전에서 꾸짖지만 말고 좀 들어보시오. 그 다음에, 우리 스승님 작고하신 다음에 내가 찾아왔을 때, 그 칼부림하던 것 보시지 않았소?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재주겠소?”

“하루아침이 아니라 한 해라면 충분히 이룰 수 있지. 여기 이 처사도 근골에 힘이 서렸으니 족히 검을 다룰 수 있을 듯하신데.”

“안타깝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사제에게 검을 배워야 할 지경이지요.”

이지함이 때맞추어 꺽정이 편을 들어주니 꺽정이도 절로 얼굴이 밝아졌다.

“허어... 그렇다면...”

“사제의 이야기가 적어도 일부는 참일 수 있겠습니다.”

병해의 말을 이어서 완성한 이지함이, 이곳에 찾아온 본 목적을 꺼냈다.

“그와 관련하여 또 여쭤볼 사안이 있습니다. 꺽정이가 술회한 바에 따르면 장차 보우라는 승려가 자전(慈殿, 문정왕후를 말함)의 총애를 받게 된다고 하는데, 혹시 그러한 일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어지간히 궁벽한 산사(山寺)가 아니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겝니다. 벌써부터 다시 흥법(興法, 불교가 흥성함)의 때가 돌아왔노라 은연중 기대하는 이들도 없지 않지요.”

‘거 보아라’하며 의기양양한 표정 짓는 꺽정이와는 반대로, 이지함은 다소 놀란 눈치였다.

“절간에는 절간 나름대로 소문 퍼지는 길이 있지요. 아마 세간에서는 조금 소식이 늦는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쯤이면 도성에는 이름이 자자할 것입니다. 곧 다른 곳까지 퍼지겠지요.”

곧이어 병해가 저의 들어 아는 바를 상세히 전해주었다.

금강산 마하연에서 수계한 보우는 유·불 양쪽에 모두 밝아 승속(僧俗) 양쪽에 명성이 있었는데, 지난해 가을 대비의 초청을 받아 봉은사 주지로 앉게 되었다.

보우는 금강산에 있을 때부터 유학만 세상에서 높아지고 불법은 마멸되어 장차 없어지게 되리라는 데 크나큰 두려움과 불만을 품고 있었다. 공맹(孔孟)의 가르침이 『화엄경』의 큰 뜻에서 벗어나지 않거늘, 어찌 하나는 존숭하고 하나는 하찮게 여긴다는 말인가?

이때의 승려들 중 경학에 밝은 이가 많지 않아 보우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자는 드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품은 생각이 원대함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 보우가 이제 성종대왕의 능침사(陵寢寺)이자 팔도 가람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봉은사에 나아가게 되었고, 자연스레 대비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니, 반드시 산문(山門) 사이에 봄바람 들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여러 승려들의 희망찬 기대였다.

심지어 올봄부터는 이런 뜬소문도 돌고 있었다. 금상 즉위 후 매년 일어나는 각종 재변은 모두 정릉(靖陵, 중종의 묘)의 주산(主山)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니, 마땅히 선릉 옆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리 되면 이미 높은 봉은사의 지체는 한층 더 높아지고, 더불어 대비전(大妃殿)을 두고 무엄한 소리 하는 무리들은 절로 말을 삼가게 될 테니, 무너지기 일보 직전에 있는 불가(佛家) 사람들에게는 역시 좋은 이야기였다.

“거 이상하구려. 내가 듣기로, 아니, 그러니까, 유생들 하는 말을 듣자면 그 보우라는 이는 참으로 요사스러운 중이라고 하던데.”

꺽정이가 딴지를 걸었다.

“속세 떠난 이가 함부로 그런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겠냐만, 아무래도 자전과 척신들, 그리고 승도(僧徒)가 모두 엮인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 선비들 눈에는 이 중 하나만 있어도 결코 곱게 보이지 않는데, 셋이 한데 얽혔으니.”

“만약 우리 사형 큰스님 같은 분께서 그 대덕(大德) 자리를 갈음하신다면 그러한 논란이 없을 텐데. 다들 참 인재는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만 높은 자리에 앉히니 죄다 청맹과니 무리들 아니오?”

전생과 현생의 기억을 통틀어 꺽정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스님이 바로 이 병해대사였으므로 꺽정이 딴에는 진심으로 하는 투덜거림이었다.

그때, 뭔가가 꺽정이 머릿속을 스치고 갔다.

“잠깐. 맞다, 맞아. 그거요! 그거! 사형들!”

“,,,”

헌데 딱히 반응이 없었다.

“아니, 왜 날 그리 쳐다보시오.”

“‘그거’라고만 하면 우리가 어찌 아느냐.”

이지함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절로 솔깃하게 되었다.

“아, 맞다. 자, 들어보시오. 저 보우라는 스님이 얼마나 훌륭한 이인지 나는 모르지만, 암만 그래도 우리 사형만하지는 못하리라고 내 믿소.

그러면 정말로 우리 사형께서 그 보우 자리를 대신 꿰차면 되지 않겠소? 뭐, 봉은사 주지야 이미 정해졌으니 어쩔 수 없지만, 대신 대비가 불법(不法)으로 내수사 재산 늘리는 일만큼이나 불법(佛法)을 좋아하니 그 옆자리를 우리 쪽 사람이 얻어내면 되는 일이지.

이건 저 고매한 선비님네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내놓을 수 없는 계책이니, 우리가 저쪽보다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겠소?”

“되었다, 꺽정아. 나는 이미 한 번 죽은 것과 진배없는 사람이다. 어찌 속세에 그렇게 다시 발을 담그겠느냐?”

병해가 주저하며 만류하였는데, 꺽정이는 이미 저의 생각에 심취하여 계속 떠들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정말 속세 떠나시려는 분이시라면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면서 고승 소리 듣고 계시지는 않을 것 아니오? 어디 금강산 같은 곳 암자에 들어가서 면벽수련이나 하시고 계시겠지.”

“...”

“꺽정이 이 녀석이 하도 사고를 많이 쳐서 그렇지, 가끔 이렇게 좋은 생각도 하곤 합니다. 제 생각에도 사형께서 여기 가만히 계시는 것은 재주가 아깝기는 합니다.”

꺽정히 말을 솔깃하게 듣던 이지함도 은근히 충동질을 했다.

“나는 한때 세상의 어지러움을 우습게 여기며 모든 것을 비웃고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화를 당하고, 차마 다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렇게 숨어 살고 있지. 헌데 어찌 다시 그런 곳에 들어가 몸을 더럽히면서 화를 불러들이겠습니까?”

그렇게 살던 중 백성을 현혹시켰다며 죄를 받아 죽은 전우치였다. 빈 무덤 하나만을 남긴 채 목숨은 부지하였지만, 그때 이후로 크게 깨닫고 이렇게 산사의 중으로 살아왔다.

“이번에는 다를 것입니다. 그것은 저도, 여기 꺽정이도 사형께 장담드릴 수 있습니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산문을 넘어 들어온 두 사람이 해가 저물 때까지 설득한 끝에, 마침내 병해도 마음을 조금은 돌리게 되었다.

어쩌면 세상을 바라보며 비웃는 것과 아예 등지고 살아가는 것 외에, 또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휴우. 좋네. 자네들 말대로 함세.”

기나긴 논쟁 끝에 어느새 공대가 하대로 바뀐 병해가 결국 승복함을 알렸다.

“자네들 생각에 뭔가 계책이 있으니 그토록 간곡하게 내게 매달렸겠지. 들어보세.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나?”

그 물음에, 이지함도 처음 발의한 꺽정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꺽정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보우 그 스님이 대비와 여러 백성들을 홀리니 참 요사한 중이라고, 유생들이 그리 욕한다 하지 않으셨소? 그러면 우리 사형께서 훨씬 더 요사한 중이 되어버리면 당연히 보우 대신 대비마마의 마음을 얻으실 수 있으시겠지.”

“꺽정아, 기껏 내놓는다는 게 그런 계책이었더냐?”

“그러면 사형이 다른 수를 내어보시오.”

꺽정이는 제쳐두고 남은 두 사람끼리 머리를 맞댄 결과, 크게 보면 똑같지만 자세히 보면 꽤 다른 계책이 마련되었다.

그 무렵 도성 민심은 크게 어지러웠으니, 변괴가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흉년이 잇달아 닥치는 것이야 이제 굳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이제는 태양에도 이상이 생겨 양이(兩耳), 관(冠), 대(戴. 모두 태양활동의 일종)가 보였다. 소위 식자들은 입을 모아 떠들기를, 태양은 곧 양기 그 자체와 같은데, 거기에 이변이 생겼으니 이는 음사(陰邪)의 흥성함이라고들 하였다.

또한 낮에 태백성(금성)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혹자는 태백성이란 오행으로 따지면 금(金)이요, 오상(五常)으로 따지면 의(義)를 말하니, 곧 옥사가 크게 일어나 사람이 더 죽을지도 모른다 하였고, 또 다른 이들은 『한서』니 『사기』니 읊어가며 이는 여주(女主)가 창성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도성 민가 곳곳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는 괴이한 일까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역시 음양이 크게 어그러진 탓이라고 혀를 끌끌 차는 유생들이 적지 않았다. 근래 선대왕의 능묘에 재기(災氣)가 서렸다는둥 하는 헛소리가 돌아 더욱 안타깝게 여기던 차, 이제 어디 멀리 시골에서나 벌어질 법한 이상한 일이 도성 한복판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으니 통탄할 일 아닌가.

허나 이들이 암만 비분강개한 마음을 (말로만) 털어놓는다 한들, 귀한 씨암탉이 졸지에 수탉으로 변해버린 백성들의 당혹스러움과 서러움만은 못할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명을 병해라 하는 기이한 중이 저자에 나타나, 좌판 깔고 외치기를 그렇게 암수가 바뀐 닭을 제게 가져오면 법력 베풀어 원래대로 돌려주겠노라 하였다.

심지어 포목이나 쌀 따위도 받지 않고 그리 좋은 일을 해주니, 졸지에 귀한 암탉을 잃은 백성들과 신기한 구경거리 생겼다며 찾아온 한량들로 명례방(明禮坊) 저자가 붐볐다. 갑자기 저자에 사람들이 모였다는 신고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온 나졸들도 넋 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자, 여기 원래대로 돌려놓았소.”

“아이고, 고맙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젊은이가 참으로 고생이 많소.”

병해가 궤짝을 열고 암탉을 건네주니, 어려운 살림에 무과를 홀로 준비하느라 정말로 고생하고 있던 유극량(劉克良)이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먹는 것이 변변치 못해 근골을 키우기는커녕 힘도 제대로 못 쓰던 판이었는데, 그나마 저의 집 암탉이 낳는 달걀이 귀한 보양식이었던 것이다.

그런 닭이 하루아침에 수탉으로 둔갑을 해버렸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 그런데 이상한 소문 들려오기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찾아왔더니, 정말로 이렇게 도술인지 법력인지를 부려 신기한 조화를 이루는 것 아닌가.

궤짝 속에 한 번 들어간 수탉이 나왔을 때는 암탉이 되고, 심지어 거의 폐계가 다 되었던 녀석이 회춘까지 해서 나오니,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구경하던 무리 가운데 유생 몇몇이 앞으로 나왔다.

“요망한 중이 백성을 속이는구나!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허나 병해는 싱긋 웃으며 맞이했다.

“어찌하여 선비님께서는 소승이 백성을 속인다 하시는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자들이 거들어 목청을 높였다.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는 것은 무릇 음양의 도리가 어그러졌기 때문이다. 지금 네놈이 그런 눈속임을 한들 어찌 옳고 그름이 바뀌겠느냐?”

“보우 하나로도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이제 더 요사한 중이 나타나서 무슨 법력 같은 소리나 지껄이고 있구나!”

개중에는 주먹이 먼저 나서려는 자도 있었는데, 어느새 병해 옆에 거한 하나가 떡 나타났으므로 그 주먹은 절로 소매 속에 다시 들어갔다.

“여기 계신 스님만큼은 못하지만 나도 도술을 조금 할 줄 안다오. 사람 팔의 뼈가 어깨 쪽에 하나 손 쪽에 하나, 이렇게 두 개인데, 그것을 넷으로 만들어드리지. 누구 시범 보이고픈 분 계시오?”

“어찌 이분들께 겁박을 하느냐? 망동 말고 가만히 있거라.”

병해가 꾸짖으니 거한이 고개 숙이고 한 발 물러났다.

그러자 조금은 말투 부드러워진 유생의 우두머리가 나아와 말을 다시 붙였다.

“흠흠. 나는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생원 안사준(安士俊)이라 하고, 이들은 나와 함께 공부하는 다른 학도들이오. 우리 언사가 일부 과하기는 하였으나, 큰 뜻은 변함이 없소. 무릇 하늘이 경고하여 내리는 재이를 함부로 감추고 숨긴다면, 반드시 훗날 더 큰 재액이 닥칠 것이외다.”

“걱정하시는 바는 소승 또한 알겠습니다. 그러나 암수가 갑자기 바뀌는 일은 비록 드물지만 절로 일어나는 일이니 괴이쩍다 할 수만은 없습니다. 저 남해 바닷가에는 눈이 잘 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꽤 눈이 내려 쌓이기도 하지요. 이 일 또한 그와 같습니다.

소승은 그저 갑작스런 일을 당하여 황망해하는 백성을 소소하게나마 돕고, 놀란 민심을 가라앉히는 데 미력하게나마 보태고자 할 뿐입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음양의 조화가 어찌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오이까!”

유생들 가운데 유난히 중을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하던 황언징(黃彦澄)이 따져물었다.

“그대는 지금 놀란 민심을 가라앉힌다 하나, 이것이야말로 오히려 백성을 현혹하는 것이오!”

“그러면 선비님의 눈에는 이것이 속임수로 보이는지요?”

“물론이오! 그 궤짝을 보아야 하겠소.”

“예, 그러면 보시지요.”

의외로 순순히 병해가 문제의 궤짝을 들어보였다. 옆의 거한이 받아서는, 곧장 뚜껑 열고 속이 텅 비어 있음을 여럿에게 두루 보였다.

언쟁을 흥미진진하게 보던 이들이 탄성을 흘리고, 개중에는 참으로 훌륭한 고승이시라며 – 주로 씨암탉 잃을 뻔한 백성들이었다 – 합장하는 이까지 있었다.

할 말을 잃은 황언징이 대신 억지를 부리려고 트집잡을 구석을 찾던 차, 그의 의기(義氣)는 곧 헛된 것이 되어버렸으니, 뒤늦게 명례방 저자에 당도한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당장 이 요망한 짓을 멈추시오! 멈추란 말이오!”

유생들이 요승이라 한입으로 헐뜯던 보우가 노발대발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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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의 호로 전해지는 우사는 도사(道士)의 별칭이기도 합니다. 즉 그의 실제 호가 아니라 후대에 와전되거나 덧붙여진 창작일 수도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다른 호가 전하지 않는 관계로 작중에서는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가 무고당해 죽은 뒤 나중에 이장을 위해 묘를 팠는데, 빈 관만 있었다는 설화는 실제 조선 후기에 전하던 민담입니다.

을묘왜변은 당대만 하더라도 매우 굴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왜구가 단순히 해안의 마을 몇 곳을 노략질하는 것을 넘어 여러 성을 함락시키기까지 하고, 그동안 관군은 싸워보지 않고 패주하는 등 추태를 보였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불과 수십 년 뒤에 훨씬 큰 ‘메인 이벤트’가 닥치면서 을묘왜변의 ‘굴욕’은 상대적으로 잊히게 됩니다.

동아시아의 전근대 천문 기록에서 양이, 관, 대는 모두 육안으로 관측 가능할 만큼 거대하게 나타나는 홍염(프로미넌스)을 말합니다. 태양의 남반구에 나타나는 것을 양이, 태양의 북반구에 나타나는 작은 것을 관, 큰 것을 대라고 각각 지칭했다고 합니다. 이는 양기가 크게 약화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고, 따라서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허응당 보우는 숭유억불 기조 하에서는 영락없는 요승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에는 그 사상적 면모가 재발견되면서 보다 복합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임란 당시 승병 지도자들이 이때 보우가 일으킨 불교계 중흥의 혜택을 입었음을 고려하면 그의 영향력을 가볍게만 볼 수는 없겠지요.

조선 전기 기화와 같은 승려들이 유교를 바탕으로 불교의 존립 근거를 찾는, 비교적 수비적·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보우는 보다 적극적으로 유교와 불교의 합일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학이 불교의 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뜻했기 때문에 유학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지요.

또한 그가 불교를 깊게 신봉하던 문정왕후의 후원을 받았고, 정릉 이장 여론이 일어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등, 여러모로 사림 입장에서 미워할 수밖에 없는 행적을 밟았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수렴청정 동안 각종 재변이 벌어지며 이것이 ‘여주’가 위에 있기 때문이라는 여론이 일어나자, 문정왕후 측에서는 이것이 중종의 묘를 잘못 썼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며 천릉(遷陵, 이장)을  주장하게 됩닏다.

결국 여러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562년 문정왕후는 이장을 관철시켰고, 정릉은 선릉 옆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봉은사 역시 선릉과 더불어 정릉의 능침사(陵寢寺, 능묘에 안장된 왕과 비의 명복을 빌고 능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사찰)로 지정되었지요.

이렇게 옮긴 정릉은 터가 좋지 않아 장마철마다 침수되고, 매년 흙이 쓸려내려가 공사를 벌여 보수해야 하는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다시 말해 새로 옮긴 자리야말로 길하지 못한 곳이었던 것이지요. (라고 『선조실록』에는 적혀 있습니다.)

이처럼 사림의 미움을 받은 보우는 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이 몰락하면서 덩달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문정왕후가 죽음을 맞자마자 직책을 빼앗기고, 유생들의 비난 상소가 빗발치면서 결국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지요. 그리고 그곳에서 제주목사 변협에 의해 매맞아 죽고 맙니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다소 목소리가 커진 불교계에서 그의 저작을 모아 간행하면서 오늘날 보우의 사상과 행적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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