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37화 (137/259)

41. 띠 한 줄, 길 한 가닥 (4)

오스만의 술탄이, 그들이 자처하는 것처럼 로마의 카이사르(Kaiser-i Rum)를 계승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았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몰라도 그들이 이스칸데르(Iskander)라 부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충실히 계승하였다 할 만하였으니, 술탄의 자리는 대대로 ‘가장 강한 자에게’ 전해졌던 것이다.

위대한 정복자였던 술탄 메흐메트(Mehmed) 2세는 이렇게 법을 정하였다.

“백성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신의 명령에 따라 보위에 오를 나의 후손들은 형제를 살해하여도 되느니라.”

대저 법이라는 것은 법이 되자마자 범하려는 자가 함께 생기기 마련이지만, 메흐메트의 법은 예외라 할 만하였다.

그 이래로, 형제의 피를 저의 손에 묻힐 만한 담력과 야심(또는 후안무치함), 그리고 능히 그리할 수 있는 수완을 겸비한 자들만이 술탄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 자리에 오른 뒤에는 형제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곤 하였다.

술탄 쉴레이만 슬하의 여덟 아들 중 일찍 죽지 못한 자들도,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그 피바람 속으로 휘말려들게 되었으니, 이것이 불과 이삼년 전의 일이었다.

가장 먼저, 쉴레이만이 사랑하는 아내 휘렘 술탄이 아닌 후궁의 소생이었던 셰자데(왕자) 무스타파가 휘렘 술탄과 그 사위 뤼스템 파샤의 음모로 처형당했다.

쉴레이만이 그 음모를 몰랐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만한 수에 당한다면 그뿐이라 여기면서 방관하였는지는 쉴레이만 한 사람만 알 터였다.

이어서 배다른 형 무스타파를 좋아하고 따르던 막내 지항기르가 ‘슬픔’에 빠져 죽었다.

그리하여 쉴레이만의 아들은 휘렘 술탄의 소생인 연년생 형제 셀림과 바예지트만 남았다.

바예지트는 욕심과 재주가 둘 다 가득했고, 셀림은 둘 다 부족했다.

물론 욕심이 부족하다고 해도 저의 살길은 오로지 보위에 오르는 수밖에 없음을 알았기에, 셀림도 나름대로 열심히 아우를 깎아내리고 저를 내세우곤 하였지만, 아무래도 바예지트에 비하면 여러모로 밀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적어도, 세평(世評)은 그러하였다.

“더구나 셀림 그 사람은 주정뱅이로 유명합디다.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사절을 자처하였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돌던데요.”

할 일이 없어 저자에서 소일하다 온 이탁오가 그간 귀동냥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 동네 말도 할 줄 알았소? 역시 머리는 좋고 볼 일이오.”

한가한 김에, 그들 따라온 흑의군 녀석들을 간만에 조련시키고 있던 - 이 또한 기묘한 풍경이라, 주변에 제법 구경꾼이 붙었다 - 꺽정이가 물었다.

“제가 좀 잘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여기 메흐메트 대인이 붙여준 역관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네 사정을 염탐할 심산인지, 이곳 숙소에서 소일하느니 차라리 이 위대한 도성을 구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선뜻 나서지 뭡니까.”

꺽정이 일당이 느닷없이 수로 이야기를 하며 돌아다닌 이후로, 그들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도 며칠 사이에 제법 늘었다.

각국 대사들은 물론이요, 뤼스템 파샤의 통상 정책에 은근한 반감 품고 있던 상인들, 지중해의 함대를 인도양으로 자유롭게 재배치할 수 있게 될 가능성에 이끌린 제독(Reis)들, 그리고 이곳 코스탄티니예에서 무언가 짓는다 하면 반드시 그 이름 나올 수밖에 없는 건축가 시난(Mimar Sinan)까지.

이들 모두 운하를 짓는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에 동의하였다. 더구나 평화와 번영이라는 보기 좋은 구실도 있으니, 누가 대신 맨앞에 나서주기만 한다면 그 뒤에 따라붙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허나 셰자데(왕자) 셀림의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모두 발길을 끊었다.

술탄은 이미 고령. 언제 신의 곁으로 나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그런 판국에 갑자기 외국으로, 그것도 전례 없는 사절로서 나가겠다 하였다는 것은, 속셈이 있다면 있는 대로, 속셈이 없다면 없는 대로 - 많은 이들은 셀림이라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나섰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 문제 될 바가 많았다.

반대로 저의 형이 그렇게 경거망동한다는 풍문을 퍼뜨려 그의 평판을 깎아내리려는 바예지트의 술수일 수도 있었다. (이 또한 바예지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많은 이들이 여겼다.)

어느 쪽이든, 셀림에 대한 소문은 두 셰자데 사이의 다툼에서 말미암았거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곧 다툼의 소재로 비화할 공산이 컸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싸움에 잘못 휘말렸다가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연고로, 처음 수로 파는 이야기를 꺼낸 동양인들을 다들 역병처럼 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야, 오늘은 여기까지다. 다들 쉬어라. 내일도 할 일 없으면 이렇게 한바탕 놀 것이니 각오들 하고.”

꺽정이가 마당에 널부러진 흑의군 녀석들을 내보냈다. 그새를 못참고 투덜거리던 녀석 하나가 있었는데, 꺽정이와 눈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날개 돋친 듯 도망쳤다.

“일 없소. 거기 동네 사람들도 썩 꺼지시오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주먹은 통하는 고로, 꺽정이가 몇 번 휘휘 팔뚝 돌리니 다들 알아서 파하였다.

어차피 조선말로 떠들면 알아듣는 이도 없는지라, 대충 이렇게 주변만 물리면 누가 엿들을 일은 없었다. 꺽정이가 그 자리에 털썩 앉아 물었다.

“그래서, 뭐 뾰족한 수는 나왔소?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솔직히 외통수 맞은 듯하던데.”

“듣자 하니 두 왕자가 언제고 한판 붙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것과 진배없었다고들 합디다. 우리가 허풍 떤 것은 말하자면 섶 위에 불씨 하나 던진 격이지요.”

“휘말리기 전에 운하고 뭣이고 다 제쳐두고 도망치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이탁오 따라 저자 구경하고 온 도키치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꺽정이 성격에 흑의군들이 편하게 널부러져 있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을 알고서, 이탁오 길동무를 자처하며 저 혼자 도망쳤던 것이다.)

“여기 도키치로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모카에서야, 조금만 빠져나가면 바로 큰 바다가 나오니 일이 재미없게 돌아간다 싶으면 바로 내뺄 수 있었지만, 지금 여기 부두에 있는 것은 우리 배가 아니지 않습니까. 잘못하면 독 안에 든 쥐 꼴이지요.”

“듣자하니 두 놈 왕자 모두 여기 도성에 집이 있다던데, 그들에게 어떻게 수작 부려서 빠져나갈 수는 없겠소?”

사절들 만나러 다니면서 나름 보고 들은 바 있던 꺽정이가 말했다.

“이 나라 풍속에, 왕자가 장성하면 어디 조그만 군현에 봉하여 그 왕재(王才) 어떠한지를 살핀답니다. 두 사람 모두 이 도시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태수(산작베이) 노릇하고 있으니, 여기 코스탄티니예에 있는 건 그냥 빈집입니다. 두 사람이 아버지 명 받으러 들릴 때나 잠깐 머물 테지요.”

“아쉽군. 여차하면 두 놈 모두 족쳐서, 그 헛소문은 말 그대로 헛소문이고 우리들은 아무 잘못 없다고 공언케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 고관의 행차 알리는 시종 하나가 들어와, 그의 주인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가 림 파샤를 찾아왔노라 알렸다.

메흐메트 딴에는 운이 좋은 셈이었다.

(반강제로) 꺽정이 일당에게 사절들 소개시켜 준 것은 메흐메트 본인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그도 꺽정이의 공범인 셈이었다. 만일 그가 조금만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눈앞에서 셰자데를 족치네 마네 하는 말 오가는 것을 듣고서는 관자놀이와 뒷목 부여잡고 쓰러질 지도 몰랐다.

“무언가 대책을 열심히 논의하고 계신 듯하구려.”

다행히 메흐메트는 한 발짝 늦게 들어왔기에, 관자놀이의 평안은 조금은 더 오래 지켜지게 되었다. 허나 그 안색은 썩 좋지 못했다.

“뭐, 보다시피 그렇소이다. 그쪽도 어지간히 머리 아픈 모양인데.”

“나라의 정당한 주인이신 저의 주군께서는 오로지 공정함으로써 만민을 대하신다오.”

“즉 모두를 의심하신다는 뜻이로군요.”

이탁오가 금방 메흐메트의 속뜻을 읽었다.

“... 그렇소.”

“뭔 소리들 하는 게요?”

졸지에 뒷전으로 밀려난 꺽정이가 물었다.

“지존의 눈으로 보면, 우리가 여론을 우리 뜻대로 쥐락펴락하려고 하다가 욕심이 지나쳐 왕자들까지 끌어들였다, 이렇게 의심할 구석도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실로 괘씸한 짓 아닙니까. 나름 그래도 성의 베풀어서 조빙(朝聘)해주었는데 그 나라 왕통(王統)까지 간여한 것이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과 다름없지요.”

이탁오가 그렇게 설명해주고는 메흐메트에게도 그대로 옮겨주었다.

“지아웃딘 선생의 말씀대로요.

만일 이번 일이 두 분 셰자데 중 어느 한쪽의 뜻에 의한 것이라면, 나의 주군께서는 그것이 도를 넘지 않는 한 직접 나서지 않으실 것이외다. 그것이 오스만 가문에 내려오는 법도이니.”

“법도? 아, 당하는 놈이 바보다. 그런 걸 법도라고 하는구려. 그런 것이라면야 납득도 할 수 있지.”

도둑놈이 납득하는 법도라는 것이 과연 칭찬인지, 아니면 모욕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만약 무엄한 이방인이, 호의를 잊고 탐욕에 눈멀어, 귀한 이들께 오명을 씌웠다고 한다면, 주군께서는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를 좌시하실 수 없으실 것이오.”

형제에게 오명을 씌우는 것보다, 그 오명을 스스로 벗지 못하는 것이 술탄의 아들에게는 더욱 큰 흠결이었다.

그러나 그 오명을 씌우는 것이 이방인, 그것도 저의 욕심을 위하여 마구 날뛰는 이방인이라면, 술탄으로서, 또 집안의 가장으로서 좌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 이치를 어느 한쪽에서 깨닫는다면, 즉시 농간을 부려 림 파샤 그대에게 죄를 씌우려 할 것이고.”

남의 나라 왕통을 건드린 무엄한 이방인만큼이나, 그런 이방인이 이름을 팔고 다닐 만큼 평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셰자데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메흐메트 본인이 바예지트라면, 낄 곳과 끼지 못할 곳 분별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저의 형을 몰아간 뒤,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은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이라고 몰아갈 듯하였다.

이미 그 거친 언행으로 조금씩 아버지 술탄의 눈밖에 나고 있는 바예지트에게, 이렇게 저의 형을 깎아내리고 동시에 그 증거까지 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을 터.

“이야, 내 앞서 했던 말은 물리겠소. 이것이야말로 진짜 외통수군그래, 하하.”

꺽정이가 껄껄 웃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오만방자하고 무엄한 놈으로 몰릴 것이고, 이제 와서 뭘 해보자니 다들 휘말릴까 두려워 우리를 멀리할 것이고. 이것 참, 이렇게 당하는 것도 오랜만이군그래.”

그러나 메흐메트는 그 웃음을 함께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대는 무슨 연고로 이렇게 끈 떨어진 우리를 다 찾아왔소? 이미 가뜩이나 의심받을 짓은 많이 했을 텐데?”

“‘끈이 떨어졌다’라! 하, 좋은 비유요. 허나 그 끈 한 쪽에는 이미 이 사람도 묶여있지 않소이까.”

“그건 그렇지. 우리가 그대 허리춤에 잘 동여매주었잖소. 그대 집에까지 찾아가서.”

뻔뻔하게 고개 끄덕이는 꺽정이었다.

“들어보시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운하는 파는 것이 맞소. 실로 우리의 국운을 걸고 행할 만한 대사업이라는 말이오. 지금까지는 신의 은총으로 우리의 국운도 항상 위로, 또 위로 날아올랐지만, 앞으로 백 년, 이백 년이 지나면 어찌 될지 모르는 법.

이교도 황제 콘스탄틴(콘스탄티누스 대제)이 이 천혜의 요지에 성을 쌓고 수도를 옮겼기에, 룸은 일천 년을 능히 버틸 수 있었소. 백해(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가 가져올 부는, 이 위대한 도시를 두르고 있는 테오도시우스의 성벽보다도 더욱 굳건하게 우리의 앞날을 지켜줄 것이오.”

“그런데 우리가 감히 술탄의 후사에 개입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쫓겨나거나 더 심한 벌을 받는다면, 한동안 운하 얘기는 꺼낼 수도 없게 되겠지요. 대인께서는 그것을 두려워하시는 것이시겠지요?”

“지아웃딘 선생의 통찰은 늘 놀랍구려.”

‘그 훌륭한 통찰력을 가지고 림 파샤와 함께 못된 짓을 저지르고 다닌다는 게 문제지만.’이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는 메흐메트 파샤였다.

“하여, 이 소란에 지금보다도 더 연루될 위험을 감수하고 이렇게 찾아왔소이다. 더 늦기 전에 코스탄티니예를 떠나시오. 내 그대들의 뜻을 이어받아, 언제고 그 운하를 파내고야 말 테니.”

메흐메트의 명민한 머릿속에서는 벌써 앞날이 그려지고 있었다.

뤼스템 파샤는, 휘렘 술탄의 두 아들끼리 계승을 두고 다투다가 둘 다 술탄의 눈밖에 나버리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그러니 동양인들을 내보낸 뒤, 그를 도와 이번 일을 유야무야하고자 한다면 뜻을 이룰 수 있을 터.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셀림과 바예지트 중 더욱 유리해지는 것은 -세간의 통념과는 달리- 셀림이었다. 그의 주군 쉴레이만은, 부족한 지혜만큼 욕심도 적은 셀림을 내심 그나마 나은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메흐메트가 읽은 주군의 눈빛은 그러하였다.)

반면 세간에서 능력 있다고 평가받는 바예지트는, 갈수록 기고만장해지면서 아버지 술탄의 눈밖에 나는 행보를 거듭할 터.

그때 메흐메트는 주군의 암묵적인 허락을 받아, 셀림의 편을 들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를 다음 술탄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 된다면 셀림의 신뢰를 얻어, 지금의 휘렘 술탄과 뤼스템 파샤 두 사람을 합친 것 이상의 권위를 휘두르며 이 나라를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뭣이냐, 서약서인가는...”

“언감생심이지요, 당수. 이미 은혜를 원수로 갚지 않았냐는 의심 받는 판국에 저쪽에서 퍽이나 그것을 받아주겠습니다그려.”

그렇게 생각에 빠진 메흐메트를 대신하여 이탁오가 먼저 초를 쳤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본전도 못 건지고 도망치듯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 아닌가. 꺽정이 얼굴에 불만이 서렸다.

“빈손으로 떠날 생각은 없소.”

“빈 목으로 떠나는 것보단 낫지요.”

“아니, 도적 체면이 있지. 그렇게 헛소문과 속임수에 당하고서 그대로 물러나면 되겠소?”

죽을 때 죽더라도 염라대왕에게 조소당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은 꺽정이가 당당하게 반문했다. 물론 이탁오나 다른 이들은 공감할 리 없는 목표였지만.

“이보시오. 메흐메트 어르신. 어차피 우리는 한 배 탄 사이라고 스스로 인정하셨지 않소? 이왕 일이 글러 먹게 된 것, 허튼짓 한 번만 더 해봅시다.”

벌떡 일어난 꺽정이가 메흐메트 어깨에 팔을 턱 얹으며 말했다.

그리고 참으로 저다운 해결책을 꺼냈는데, 메흐메트는 그것을 듣자마자 몸서리치며 도망치려 하였다.

허나 이미 그의 어깨 위에 올라온 팔은 쉽게 내려가지 않았으므로, 결국 그의 ‘해결책’을 모두 들어버리고야 말았다.

“이제는 어르신도 명실상부한 우리 종범(공범)이오. 이미 어르신 입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소? 그 운하는 파여야 한다고. 우리가 죄 받아서 운하의 ‘운’ 자 꺼내기만 해도 부정 타는 꼬락서니는 보고 싶지 않으시겠지. 그러니 우리 모두 잘 해보십시다.”

그제야 메흐메트는 이곳에 직접 찾아오기로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으나, 때늦은 후회에 불과했다.

대저 소문이라는 것은, 한 번 돌기 시작하면 누군가 더 재밌는 소문을 퍼뜨리기 전까지는 저의 힘으로 알아서 계속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평화, 그리고 온 세상의 번영을 가져다줄 위대한 운하에 대한 소문은 여전히 무성하게 돌고 있었다. 흔히 ‘금발 셀림’으로도, 또 듣는 귀 적은 곳에서는 ‘주정뱅이 셀림’으로도 불리는 셰자데 셀림의 이야기도 함께 돌고 있었다.

술탄의 눈밖에 나서 목숨을 잃을 만한 이들이야 알아서 말을 아꼈지만, 딱히 잃을 것 없는 백성들에게는 이러나 저러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흥미로운 소문이 덧붙여졌다.

“아니, 셰자데 바예지트께서도?”

“그렇다고 하던데.”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운하의 계획에 힘을 싣고자 셰자데 셀림이 앞장섰다는 소문을 들은 셰자데 바예지트가, 자신도 질 수 없다며 이곳 코스탄티니예 저택의 보화를 풀어 계획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바예지트는 자신의 집사를 시켜, 저택의 귀한 보석과 장신구 등을 림 파샤에게 보내주었다.

그러나 림 파샤는 정중하게, 대의를 위한 그 뜻은 알겠지만 아직 술탄의 재가를 받지 않았으니 함부로 이러한 귀중품을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고 하였다.

림 파샤가 당당히 그런 보화 담긴 궤짝을 들고 와서는, 바예지트의 저택 앞에 내려놓는 것을 매우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므로 이는 믿을 만한 소문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셰자데 바예지트의 저택에 도둑이 들었다던데.”

“세상의 어떤 도둑이 자신이 훔친 것을 그대로 돌려주겠는가? 귀하신 분의 마음 씀씀이를 질투하는 못난 자들의 험담이겠지.”

그러나 세간의 ‘정설’과는 달리, 바예지트는 저택의 보화를 풀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가 산작베이로 있는 퀴타야에서 코스탄티니예로 향한 지시는 단 하나였고, 그 내용은 셀림을 모해하기 위해 이러이러한 술수를 부리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는, 수상할 만큼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도둑이 수십 명 무리를 거느리고 저택 담장을 넘어와 금은보화를 훔쳐갔다는 저택 집사의 서신이 전해지고 있었다.

허나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보다 거기에 당하는 것이 더 큰 잘못이라면, 도둑질하는 것보다 도둑질을 가만 당하는 것도 더 큰 잘못이지 않겠는가?

밤에 훔친 것을 낮에 돌려주는 기묘한 장난질을 치는 꺽정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형제 중 하나는 재정 마련을 위해 서방에 사절로 가겠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재정에 보태라며 가산을 선뜻 털고 나섰으니, 멋모르는 이들 듣기에는 마치 엄청난 대의를 위하여 두 형제가 똘똘 뭉친 것과 같이 되었다.

허나 여기서 그친다면 아쉽지 않겠는가.

“결국 당수가 운을 뗀 이 운하 계획에 두 왕자가 모두 놀아나는 꼴이 되었지요. 제가 술탄이라면 조만간 두 사람 모두 도성으로 불러들일 것입니다.”

저자의 풍문이 뜻한 대로 퍼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온 이탁오가 말했다.

만약 두 사람 모두, 아버지 술탄의 승낙을 얻지도 않은 채 이 겉보기에는 좋지만 오직 그뿐인 운하 계획에 진심으로 동참하고자 하였다면 그것은 큰 문제였다.

그러나 두 왕자가 서로 음해하려는 생각에만 가득 차, 그런 맹랑한 계획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만들어버렸다면, 이것은 더욱 큰 문제였다. 두 사람의 싸움이 자칫 더 큰 분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수많은 외국 대사들이 있는 코스탄티니예에서 벌어진 소문 대 소문의 대결이었다. 꺽정이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자들은 저들 나라의 이익을 위해 이 다툼을 이용하려 들 터. 가뜩이나 서방의 정세가 불안정한 가운데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은 술탄으로서 좌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그대로 되었소. 셰자데 두 분 모두 사흘 내로 당도하실 것이오.”

지금껏 그 어떤 전장에서 겪었던 것보다도 더 긴장하고 있는 메흐메트가, 림 파샤 일행이 모두 모인 것을 보자마자 말했다.

“잘 되었네. 도키치로야, 술 잘 준비하고.”

“헤헤, 걱정 마십쇼.”

“그런데 이제 보니 술은 메흐메트 어르신이 먼저 한 병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소싯적에는 칼밥깨나 드셨다더니 왜 이리 긴장을 하고 계시오?”

“하, 왜 그러겠소.”

끝내 불안 떨치지 못하며 메흐메트가 말했다.

지금 그들이 공모하고 있는 이 계책이 모두 이루어지면,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가 셰자데 셀림의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바예지트와 그를 지지하는 다른 정부의 고관들은 그를 어찌 볼 것인가?

쉴레이만 다음가는 권세를 휘두르는 휘렘 술탄과 그의 사위 뤼스템 파샤는 또 어떻게 메흐메트 자신을 대할 것인가?

그리고 이 모든 일이 그의 주군이자 주인인 쉴레이만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어떤 말이 나올 것인가?

“운하를 파는 것이 나라의 앞날을 위해 이롭다고 하지 않았소?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을 위해 목숨 걸 만한 결의도 없소? 그런 사람이 나라의 녹을 먹는다면 도적과 다를 게 무어요?

스스로 물어보시오. 운하를 파고 교역을 늘리는 것이 그대의 목숨과 이름을 걸 만한 일이오? 만약 그렇다면 한 번 결심만 하고 그 뒤로 돌아보지 말아야 할 것이고, 만약 아니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야 하겠지. 어느 쪽이든, 앞뒤 좌우 돌아보며 고민만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는 게요.”

그러나 메흐메트 마음속 사정이야 알 바 아니었던 꺽정이는 별 생각 없이 툴툴대었다.

그러나 메흐메트 마음 속 무언가를 울리는 말이기도 했다. 말을 전해듣자 한참 침묵 지키던 메흐메트가 얼마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목숨을 건다... 그렇지. 림 파샤의 말씀이 옳소. 덕분에 내 하나 깨닫는구려.”

“고마우면 나중에 금화나 한보따리 챙겨주쇼. 돈으로 만사 해결되는 건 동녘이고 서녘이고 똑같은 듯하니.”

여전히 답변은 성의가 없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그저 그의 영지 마니사(Manisa)에 머물며 평소처럼 술과 벗하고 있을 뿐이었던 셰자데 셀림은, 저의 뜻과는 무관한 소란에 휘말려 코스탄티니예로 소환당했다.

셀림은 죽기를 원하지는 않았으므로, 나름대로 아우 바예지트를 상대로 이런저런 수를 쓰고는 있었다. 허나 이러한 모략에까지 손을 대지는 않았노라고 자신 있게 신 앞에서, 또 아버지 앞에서 고백할 수 있었다.

허나 아버지께서 이를 믿어주실 것인가?

원한을 품게 된 아우 바예지트가 더욱 악독한 수를 쓰지는 않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에 대한 소문을 그대로 따라서 사절로 파견되는 쪽이 속은 더 편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사이에 아우가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아버지께서 - 이제는 솔직히 말해 그러실 연배가 되기도 했잖은가 - 신의 곁으로 가시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술탄의 자리는 아우에게 돌아가리라.

‘그렇게 되면 뭐, 프란사(프랑스) 어디쯤에 눌러앉아 포도주나 실컷 마시면 그만이지. 바예지트 그놈이 암만 매정해도, 이제 동쪽에는 눈길도 안 줄 테니 안사람과 아이들만 살려서 보내달라 하면 보내주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하며, 내일 아버지 뵙기 전 담력을 쌓기 위해 술잔 기울이는 배불뚝이 셀림이었다.

그때, 마당 한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코스탄티니예에는 예나 지금이나 고양이가 많았으니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고양이 한 마리라 하기에는 어째 소리가 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난 쪽에서 모습 드러내는 그림자도 고양이보다는 호랑이 덩치에 가까웠다.

“아니, 담장 하나 제대로 못 넘소? 엉? 몸재주가 그 모양인데 어떻게 임금님 눈에는 들었대?”

“... 라고 하십니다.”

“이보시오, 내 나이가 올해로 몇인데...”

이어서 그림자 둘이 더 나왔다.

암살자가 언제고 찾아올 지도 모른다 생각은 했지만, 적어도 저자들은 암살자는 아닌 듯하였다.

“그... 너희는 누구냐?”

“흠흠, 내가 바로 임꺽정, 그러니까 그대들 부르는 말로는 림 파샤요.”

“천주 사람 이탁오입니다. 지아웃딘 알 시니라고도 하지요.”

“술탄을 모시는 충성스러운 종복,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입니다.”

그렇게 돌아가며 소개를 하더니, 개중 가장 덩치 큰 자가 선뜻 걸어나오며 뭔가를 내미는 것이었다.

“술 혼자 마시면 재미도 없고 맛도 없잖소. 내가 조선에서 아주 좋은 약주를 가져왔다오. 한 모금 하시겠소?”

실제로는 여차하면 술탄이나 다른 고관에게 뇌물로 바칠 생각으로 챙겨온 홍삼 우려낸 물을 동네에서 파는 아락(증류주)와 섞고, 그것을 청자에 담은 것에 불과하였다.

다만 그 증포라는 기법은 그것이 돈 되는 것을 깨달은 개성 상인들의 땀과 돈으로 얼마 전 창안된 것이니 어쨌든 조선의 것이요, 인삼과 청자 역시 조선의 것이었다. 그러니 꺽정이 말이 아예 거짓은 아니었다.

혹여 독이 들어있을까 잠시 의심하던 셀림은, 곧 이국의 술 맛보고 싶다는 술꾼의 욕심, 그리고 바예지트가 그를 독살하려 하였다면 조금 더 세련되고 정상적인 방법을 택했으리라는 합리적 판단에 힘입어 선뜻 그 병을 받았다.

“소문은 들으셨으리라 믿소. 하늘에 맹세코 우리가 퍼뜨린 건 아닌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왕자님이 우리 따라서 에우로파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서 말이오.”

메흐메트 한 사람만 빼놓고 술이 한 순배씩 돌자마자 꺽정이가 말했다.

“아니, 그 무슨 말이오?”

“셰자데께 말씀 올리겠습니다. 림 파샤의 말이 거칠기는 하지만, 셰자데께도, 또 우리 잘 보호받는 나라(오스만 투르크)에게도 이로울 것입니다.”

어찌하여 셀림이 직접 사절로써 서방을 순방하는 것이 좋은 일인지, 그리고 내일 술탄께 어찌 말씀 올릴지 등등. 셀림은 생각지도 못했던 현명한 말이 메흐메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한 번 나오기 시작하니 좀처럼 끝이 나오지 않았다. 메흐메트 퍄샤는 그의 주군이자 주인인 술탄에 대한 충심의 범위 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조언을 모두 내놓았다.

“허...”

지금껏 코스탄티니예 오가며 재상이라는 자들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이토록 유능한 사람은 처음 본 셀림이었기에,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보다 정확히는, 셀림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 있게 저의 재능을 드러내는 이가 메흐메트였던 것이었지만.

“... 하여, 저와 셰자데의 주군이신 술탄께 이리 말씀하시고 답변해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 될 것입니다.”

“내, 내 그대로 하겠소. 실로 눈앞이 훤해지는 듯하구려.”

혀가 살짝 꼬인 것을 보면, 아마 술기운 때문에 더욱 그렇게 들리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 그러면 다 정리된 것으로 믿겠소. 우리네 앞날을 위하여 한 잔씩 드십시다그려.”

꺽정이가 술잔을 돌리며 말했다.

다음날 아침햇살은 유독 따가웠다. 적어도 메흐메트에게는 그러하였다.

“... 어째서 술을 멀리하라고 하는지 알 것 같소.”

“그냥 어르신 술이 약한 것이오.”

코스탄티니예에 당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셰자데의 저택 담벼락을 넘는, 어디 기록되지는 않겠지만 도둑 중에서는 제법 대단한 위업을 이룬 꺽정이가 말했다.

“곧 셰자데 셀림께서 입궐하실 것이오. 오늘은 디반의 모임이 없는 날이니, 내일이면 우리의 앞날이 어찌 될지 알 수 있겠지.”

“여차하면 어르신 데리고 도망칠 테니 너무 걱정은 마시오. 조선국까지만 돌아가면 내 일자리도 하나 마련해 드리리다. 어르신 같은 노, 아차, 사람을 애타게 찾는 서 아무개라고 있소.”

꺽정이가 여전히 시답잖은 농담을 던졌다.

그때였다.

“문 여시게! 이보게! 얼른 문 여시게나!”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나리! 크, 큰일입니다!”

메흐메트를 곁에서 모시는 시종이 급히 달려왔다.

“대재상 뤼스템 파샤께서, 그, 군대를 이끌고 저택을 포위하셨습니다!”

“뭐, 뭐라고?”

술기운 확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메흐메트가 되물었다.

“무슨 소리 하나 들어나 보십시다. 듣다 보면 빠져나갈 구멍 하나쯤 생길지도 모르니.”

꺽정이가 집주인 대신 나섰다.

“여기들 있을 줄 내 알았소. 술탄께서 그대들을 급히 부르셨으니,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오.”

뤼스템 파샤가 그의 주군 닮아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건조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 *** ---

초반에 언급된 메흐메트의 법(Qanun-namah)은 형제간 분할상속이라는 유목민 전통을 따르면서도 통일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나름대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가 점차 거대한 정주민 제국으로 자리잡으면서, 경쟁 끝에 살해당하는 왕족들에 대한 동정심과 더불어 제도 자체에 반발도 조금씩 생기게 되었지요. 일례로 후대에 술탄으로 등극한 셀림은, 이러한 경쟁에서 밀려 억울하게 살해당한 이복형 무스타파의 무덤을 정성들여 지어주고, 그의 모친인 마히데브란을 복권시켜주기도 했습니다. 결국 셀림 2세의 증손자 아흐메트 1세(1590~1617)에 의해 형제살해법은 폐지되고, 왕위 계승경쟁에서 밀려난 왕자들은 ‘새장(Kafes)’이라는 별명이 붙은 황궁 내의 구역에 연금하는 비교적 평화로운 방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본디 오스만의 술탄들은 하렘에 후궁만을 들일 뿐, 따로 결혼을 통해 황후를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남존여비 사상 때문이라기보다는, 황후와 외척이 권위를 얻는 것을 막기 위한 면이 더 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쉴레이만은 이 전례를 깨뜨리고, 우크라이나 정교회 사제의 딸로서 노예로 잡혀 하렘에 들어왔던 휘렘(본명은 알렉산드라 또는 아나스타샤였다고 합니다) 을 총애해 정식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휘렘 술탄은 그 총애를 바탕으로 곧장 오스만 정치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쉴레이만 이후로 아버지의 사랑꾼 기질-쉴레이만이 휘렘 술탄에게 보낸 연애시들은 아직도 전해지고 있습니다-은 물려받았지만 그만한 재능과 수명은 물려받지 못한 술탄들이 연달아 즉위하면서 소위 ‘여인 술탄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원 역사에서도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는 셀림이 바예지트를 누르고 술탄의 자리를 계승하게 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셰자데 무스타파가 누명을 쓰고 죽은 뒤, 바예지트와 셀림의 후계자 경쟁은 점차 격화되었고, 이것을 보다 못한 쉴레이만은 두 사람의 영지를 각각 코스탄티니예에서 더 먼 곳으로 옮겨버립니다.

수도에서 가까운 곳에 영지가 있을수록 술탄 사후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기에, 이는 두 셰자데에게 모두 불만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무던한 성품의 셀림은 군말없이 그 명에 따랐고, 반면 바예지트는 끝까지 불만을 숨기지 않았는데, 이것이 쉴레이만이 셀림을 그의 후계자로 점찍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작중에서와 달리 - 쉴레이만의 묵인 하에 메흐메트는 셀림을 지지하게 되었고, 1559년 바예지트가 반란을 일으키자 메흐메트는 능숙하게 셀림의 군대를 이끌고 그를 격퇴하게 됩니다. 이후 아버지 사후 술탄으로 등극한 셀림 2세는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에게 국정을 거의 일임하였고, 메흐메트는 쉴레이만의 위업을 이어 오스만 투르크라는 거대한 제국을 능숙하게 다스리게 됩니다.

남아있는 초상화만 보아도 그 후덕함이 느껴지는 셀림 2세는, 이미 당대부터 술꾼으로 유명했습니다. 동지중해 패권 장악을 위해 메흐메트 파샤는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베네치아령 키프로스를 완전히 점령하였는데, 여기에 대해 코스탄티니에 민중은 키프로스에서 산출되는 품질 좋은 포도주 때문에 셀림 2세가 전쟁을 일으켰다고 비아냥거렸다는 야사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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