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기도하는 집 (3)
‘프리메이슨’ 덕택에 느닷없이 로마는 휴일을 맞이하였다.
교황령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워낙 인망이 없던 바오로 4세다 보니, 예술가들이 단합하여 반기를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생업이고 무엇이 때려치우고 구경을 하러 가든 저들끼리 입방아를 떨든 하기에 족하였던 것이다.
미켈란젤로를 선두로 하는 예술가들이 이 사태를 해결코자 몸소 나타난 바오로 4세에게, 저들의 요구에 승복하기 전까지는 교황청에서 의뢰한 그 어떤 작업도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자 주변의 군중 역시 좋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허나 구경꾼들에게는 다소 아쉽게도, 그 소란을 빌미삼아 스위스 근위대를 불러 시위하는 자들을 해산시켜버렸으므로, 집회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렇지만 불만 품은 작자들 외침이 끊어졌다 하여 이미 한 번 결심한 파업이 절로 풀리는 것도 아니요, 한 번 본 것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으므로, 이미 로마 시 곳곳은 흥분하여 떠드는 자들, 이때다 싶어 윗사람들 뒷담화 마음껏 하는 자들 등등으로 시끌벅적하였다.
한편, 이 ‘로마의 휴일’을 맞이하여 숙소를 떠나 몰래 돌아다니는 작자들이 있었으니, 훤칠한 미남도, 어느 나라의 미녀 공주도 아니요. 그저 먼 나라에서 온 시커먼 도둑놈과 그 한패들이었다.
어느새 이들은 바티카노 언덕 근방, 성 베드로 대성당 뒤통수가 보이는 어느 공터에 닿았다.
가까이서 보니 공터라기보다는, 바위로 만든 숲에 가까웠다. 여기저기 대충 비슷한 크기의 돌덩이들이 네모반듯하게 잘린 채 세워져 있었다.
“이쪽일세. 언제 오나 했더니.”
그런 돌기둥의 숲 가운데서, 꺽정이 덩치를 용케 알아본 미켈란젤로가 몸을 일으켰다.
“얼른 와서 이 대리석이나 옮기게. 여기 이놈일세.”
이왕 할 일도 없게 된 김에, 괴팍한 늙은이 미켈란젤로는 이 틈에 문제의 조각상 작업에 착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항상 이런저런 일감을 받기만 해놓고 완성은 기약없이 미루는 그 고질을 생각하면 나름 특이한 경우라 할 만하였다.
“이 밝은 대낮에 당당히 대웅전···”
“대성당.”
꺽정이가 성 베드로 대성당을 대웅전이라 부르든 적멸보궁이라 부르든, 어차피 이탁오 입을 통해 옮겨지는 말이니 상관은 없었다. 허나 기껏 기지를 발휘하여 교종(교황)이니 대성당이니 하는 역어를 만들어낸 이후로 이탁오 본인이 종종 이렇게 눈치를 주곤 하였으므로, 며칠 사이에 꺽정이도 조금은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래, 뭐, 대성당. 좌우지간 그곳까지 이 돌덩이를 옮길 수 있겠소? 보는 눈이 있을 텐데.”
“공사판에 자재 옮기는 것이 무에 드문 일인가? 정문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뒤쪽으로 향하면 누구도 무어라 못할 것일세. 아예 공사가 멈춘 판에, 누군가 공사장에 모습 드러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니겠나.”
미켈란젤로가 태연히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교회의 수장이자 이곳 교황령의 적법한 통치자인 바오로 4세의 심기 거스르는 일이다. 평소 일하던 인부들 대신, 다소 떳떳하지 못한 쪽으로 힘쓰는 작자들을 데려오다 보니 사람이 모자랐다.
그리하여 이렇게 꺽정이와 흑의군들을 꾀어내어 부려먹기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몹쓸 노인네가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이미 제 입으로 저의 모습 담은 상 남기고 싶다 공언하였으니 물릴 수도 없었다. 결국 양손에 침 퉤퉤 뱉고는, 대리석 뒤에 붙었다.
“돈은 안 내도 되오?”
“여기 이 공터는 내가 빌린 지 오래고, 여기 있는 이 대리석도 모두 내가 마련한 것일세.”
“거 진짜 벌이 좋으신 모양이오. 이제 보니 석수(石手)가 아니라 석숭(石崇)이셨구만.”
“알아듣지도 못할 잡소리는 관두고 일이나 하게.”
그렇게 꺽정이는 망할 노인네 욕을 하고, 흑의군은 속으로 저들의 우두머리 욕을 하고, 이탁오는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뭔가 신나게 떠들면서 각각 바티카노 언덕을 올랐다.
얼마나 올랐을까. 마침내 성당 뒤편에 닿았다.
“거 더럽게 무겁네.”
“당수님 한 사람만 좋은 일인데 왜 우리까지 고생입니까?”
“여기 미씨 어르신께 말씀드려서, 그분 작품에 우리네 얼굴도 좀 새겨달라 해주십쇼.”
불평불만 나오는 틈을 타 잽싸게 저의 요구를 내미는 도키치로였는데, 꺽정이 생각에도 나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이 대리석으로 만들고자 하는 조각상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였는데, 여하간 그 덕에 미켈란젤로는 채찍질에 쫓겨나는 예루살렘 성전의 환전상과 비둘기 장수들의 모델까지 공짜로 구하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 - 힘 쓰는 입장에서는 아주 길고도 멀게 느껴졌지만 - 곧 일행은 성당 안쪽에 닿았다.
“자, 저기 내려놓게.”
“여기 한가운데 말씀이십니까요?”
“어차피 당분간 이쪽으론 사람이 아니 들어올 테니 괜찮지 않겠는가. 이왕 이리된 것 작업실로 쓰면 그만이지.”
작업에 필요한 공구도 모두 갖추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처음부터 이 작품을 바오로 4세에게 헌정하려 하지 않았던가. (헌정을 당하는 바오로 4세의 입장 따위 생각지 않는 미켈란젤로였다.) 그러므로 저의 간이 작업실 대신 이곳, 아직 공사 한창이다가 뚝 멈춘 돔 아래의 볕 잘 드는 곳에 대리석 원석을 내려놓으라 지시하는 미켈란젤로였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자세를 취해보게. 한 번이면 머릿속에 다 담기니 그것으로 족하네.”
석공의 일에는 조예 없는 꺽정이와 이탁오, 그리고 흑의군들이었으므로,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못했다. 그저 하라는 대로 할 뿐.
“거기 자네는 왼쪽으로 가고. 그쪽 원숭이 닮은 자네는 좀 더 앞으로 나오고··· 코우지오니스 자네는 팔 들고··· 오!”
“뭐가 ‘오’요?”
평소에 하도 꺽정이한테 조련을 빙자하여 얻어맞곤 하던 흑의군들이다 보니, 꺽정이가 채찍인지 도리깨인지 휘두르는 시늉 하며 무서운 표정 짓자 다들 자연스럽게 그에 상응하는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자네 혼자 모습 취할 때보다도 훨씬 그럴듯하군! 하하, 잘 되었어! 정말이지 은총이 내렸다고밖엔 할 수가 없군그래.”
‘사람의 아들’의 의분(義憤)에 놀라고 또 두려워하며 채찍질에 쫓겨나는 환전상들 모습이, 지금 눈앞에 겹쳐 보이는 미켈란젤로였다.
“자, 이제부턴 다들 조용히 지켜만 보게. 떠드는 놈 있으면 그놈 얼굴은 지금보다도 더 못나게 깎아버릴 테니 각오하고.”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저의 성질 거스른 추기경의 얼굴을 악마에게 박아버린 전력 있던 미켈란젤로가 단언하였다. 그런 내막까지는 몰라도, 이 늙은이가 진심이라는 것은 다들 알아듣고도 남았다.
꺽정이와 이탁오는, 어느새 슬쩍 들어온 미켈란젤로의 조수들의 도움 받으며 능수능란하게 작업을 하는 미켈란젤로를 구경하고, 로욜라가 사절단 중 높은 이들만 데리고 다니는 바람에 그간 숙소와 그 근방 골목만 겨우 돌아다녔던 흑의군 놈들은 난생 처음 보는 웅장한 전당의 모습에 조용히 감탄하고 있었다.
그렇게 탁-탁 하는 소리와, 조수들에게 도구 달라고 하는 소리만 울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느닷없이 웅성대는 소리와 더불어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 돔 곳곳에 울렸다.
“어느 놈이냐?”
미켈란젤로가 성을 내니, 꺽정이가 거들었다.
“언놈이냡신다.”
“저, 저희는 아닙니다요.”
“임 당수, 미켈란젤로 노야(老爺). 아무래도 객을 맞이하여야 할 듯합니다.”
따지고 보면, 객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것은 지금 멀찌감치 다가오고 있는 교황 바오로 4세보다는 꺽정이와 이탁오 쪽이었다. 허나 뻔뻔한 작자들에게 그런 생각이 들 리 없었다.
“기어이 이 거룩한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시키려는구나! 성좌를 어찌 이리 능멸할 수 있는가?”
곧 발걸음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황 바오로 4세와 그의 오른팔 카라파 추기경, 그리고 예수회의 로욜라 신부였다.
“어찌 아셨소? 나도 그렇고, 여기 이놈들도 그렇고 다 도둑놈들이라오.”
꺽정이가 능글맞게 흑의군들을 가리키며 교황에게 대꾸했다.
“어째 언덕 올라오는 길에 누구 하나는 우리네 모습 보았으리라 여겼는데, 저기 로욜라 화상···”
“신부.”
“신부께서 우리를 알아보신 모양이구려.”
“나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오.”
이어서 꺽정이가 로욜라를 지목하니, 한 점 부끄럼 없이 로욜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무엇이든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교황이 또 한 차례 언성을 높였다.
“병법에서도 이르기를, 싸움박질 할 것 같으면 남의 사정을 잘 알아야 한댔소. 헌데 교종 큰스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 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가로막을 심산이시오?”
이교도 우두머리가 비웃음 거두고 나름 진지하게 물으니, 이번에는 교황이 목청 높이려다 스스로 멈추었다. 그사이 교황이 마음 추스르기를 기다려줄 이유 없던 꺽정이가 말을 이었다.
“허나 나는 보기보다는 착한 사람이라, 나이 지긋하신 분께서 직접 찾아오신 판국에까지 뭔가 속셈을 숨기거나 할 생각은 없소. 이렇게 뵌 김에 말씀드릴 테니, 잘 듣고 답을 해주시오.
의심하고 계셨겠지만, 여기 미켈란젤로 어르신이 갑자기 이곳 대웅, 아차, 대성당 공사 멈추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일 뒤엔 이 사람이 있소.”
멀리 떨어진 시나야 그렇다 쳐도, 오스만 투르크는 지중해 바로 건너편이니 교황으로서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마음 같아서야 무작정 저의 주장 내세우는 이 밉상 동방인에게 무언가 벌이라도 주고 싶지만, 그저 참을 수밖에.
“하비에르 화··· 아니, 신부의 서신을 받아보셨으리라 믿소. 그렇지 않소?”
꺽정이 편으로 로욜라와 교황청 앞에 각각 전해진 서신을 언급하니, 바오로 4세와 로욜라 모두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하였다.
“결국 그 소위 ‘신앙의 자유’를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겐가?”
“따지고 보면 그렇소. 그걸 보장해 주셔야 운하의 일을 비롯하여 여러 사안들이 잘 풀리게 될 테니.”
그 ‘여러 사안’ 중 하나가 바로 고아 종교재판소에서의 사소한 충돌이라는 점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 꺽정이였다.
“들어보시오. 사실 큰스님네 나라를 비롯하여 이 에우로파 전체가 어찌 되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는 다들 믿고 싶은 것 믿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옳은 길이오.”
의외로 진지한 어조가 나오니, 교황도 잠시나마 분기 억누르고 귀를 기울였다. 이미 이 위대한 대성당까지 볼모로 붙잡히고, 로마의 시민들 앞에서 망신까지 당한 판에, 딱히 더 분통을 터뜨린다 한들 변하는 것도 없었던 것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 믿는 것은 많다오. 그런 많고도 많은 믿음 중에 큰스님네 천주교랑 옆동네 청진교는 그나마 비슷한 축에 들고, 아마 천주교 안에 갈렸다는 여러 분파도 내용만 따지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믿소.
그런데 그런 소소한 차이를 견디지 못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돈벌이하고 이득 얻을 수 있는 길을 버린다면 이 얼마나 애통하고 분한 일이 되겠소?”
“그대는 소소한 차이라 말하지만,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영혼의 구원과 직결되는 일이다. 양치기들의 양치기, 보편교회의 수장을 맡는 자로서, 이 책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러면 그 책무를 열심히 따라서 나라꼴이 지금 이 모양이오?”
“무어라?”
“이단이고 뭣이고 때려잡는 것도 듣자하니 큰스님과 척진 그 카를 어르신이 가장 열심히 했다고 들었소.
더구나 이 이탈리아인가 하는 동네 전체가 황제 그 어르신한테 툭하면 짓밟히고 얻어맞는 동안에, 큰스님네는 무얼 하셨소?”
아픈 곳을 인정사정없이 찔러대는 코우지오니스의 무자비한 직설법에, 바오로 4세의 얼굴이 다시 금방 불타올랐다.
로마의 시민들이, 무엄한 예술가들을 꾸짖고 매도하는 대신 오히려 그들의 편을 들어 환호하였던 것은 바오로 4세의 머릿속에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천박한 용병들이 ‘에스파냐’를 외치며 도시를 욕보였던 그때 역시 머릿속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자리를 내세우며 위엄 차리려 하시니, 도적과 다를 게 뭐요?”
늙은 교황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려는 차.
“그러니까 우리 청을 들어주시오. 만약 큰스님께서 우리 쪽 하자는 대로 해 주신다면, 원하시는 것 모두를 이루지는 못해도 적어도 몇 가지는 확실하게 이루실 수 있지 않으시겠소? 적어도, 나 같은 놈에게 이렇게 수모는 안 당하셔도 되겠지.”
그의 이성을 달래는 말이 절묘하게 튀어나와, 그간 쌓인 화만큼이나 깊은 고민을 자아내었다.
그 말대로였다. 운하가 설령 뚫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교도와의 공존을 명목으로 이탈리아 도시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황제의 빚을 끌어와 목줄로 삼는다면, 그 힘은 가공할 만한 것이 될 터.
한낱 예술가들도, 하나로 뭉쳐 목소리를 내니 교황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에우로파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이재에 밝은 도시들을 하나로 묶어, 그들의 재력을 무기로 휘두른다면 어찌 될 것인가.
신성로마제국과 카스티야, 그리고 신대륙까지 손에 넣고 있는 황제조차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교황인 그가 끝까지 함구한다면,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스스로 나서서 교황령은 배제하고 피렌체와 제노바 등을 끌어들일 것이다. 북쪽의 부유한 가문 출신의 성직자들은 모두 자신이 내쳤으므로, 미련 없이 그들은 교황령 대신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뭉치게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그 과정에 보태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나서야 할 것이다. 이단과 이교도를 불태우는 대신 그들의 손을 잡는다는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다시 한 번 유혹과 고뇌가 교황을 덮쳤다.
“제가 한 말씀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가만 있던 로욜라 신부가, 그 자리에 얼어붙은 교황과 공구 내려놓고 이쪽을 주시하는 미켈란젤로, 그리고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듯 서 있는 코우지오니스 등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내었다.
“저의 벗이자 믿음의 형제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그만큼 위험하고 과격한 것이기도 합니다.
제국 본토는 또 한 차례 산산이 쪼개질 지도 모릅니다. 프란치아(프랑스) 또한 크게 어지러워질 것이요, 저지대와 그 너머로도 혼란이 퍼져나가겠지요.”
“뭐, 베네치아 사람들도 그리 될 것이라곤 합디다.”
“베네치아 사람들이라 하셨습니까?”
로욜라가 물으니, 이탁오가 나서서 답했다.
“짐작하셨겠지만, 우리 뒤에는 베네치아가 있습니다. 뒤에 남아서 우리네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다는 쪽이 조금 더 맞는 말이겠지만요. 개중 우리들과 매우 각별한 사이인 고관이 하나 있는데, 그이는 우리 앞에서 흉금을 터놓곤 한답니다.”
악(樂)으로써 더불어 즐기니 어찌 군자 사이의 사귐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근래에는 더욱 그 사귐이 깊어져, 굳이 ‘거문고 현’을 꺼내지 않아도 지롤라모 자네로 하여금 어지간한 속내는 다 털어놓게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오. 그들이 어찌 되든 여기 로마 분들 소관은 아니지 않소?”
“아니, 그 무슨···”
“정말 그렇게 믿음이 중하고 교회가 중하였다면, 진작 잘 받들고 모셨어야지. 그놈들이 말로만 천주도를 숭상하고 뭐 하나 제대로 보태준 것 없으니 도시가 이 꼴 난 것 아니겠소? 그렇다면 굳이 그놈들 편의 보아줄 것도 없지.
혹시 아오? 호되게 한 번 당하면 비로소 교종 큰스님의 위엄이 얼마나 중한지를 깨닫고 도움을 청할지도.”
극히 중대한 이야기를 퍽 태연하게 늘어놓는 꺽정이었다. 서방 사람들 모두가 크고작은 생각에 빠져 있는데, 그 모습 우습다고 문득 느낀 미켈란젤로만 조용히, 그러나 곧 대놓고 웃어버렸다. 그러고서는, 자못 꾸중하는 말투로 꺽정이에게 추궁하였다.
“이놈, 저의 알 바 아니라고 막 말하는 것이냐?”
“그렇긴 하오만.”
이교도 이방인이 눈앞에서 이탈리아고 무엇이고 늘어놓는데, 이 땅에서 수십 년 오랜 세월 살아간 노인이 침묵 지킨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었다.
지금껏 스스로 이탈리아인이라 여겨본 적이 그리 많지 않았던 미켈란젤로였지만, 저의 편 들어준답시고 교황 앞에서 저토록 무례하게 할 말 다 하는 코우지오니스를 보니 마음 속 한 구석에 할 말이 절로 차올랐다.
아무리 답답하게 군다지만, 그래도 같은 편이요 같은 이탈리아 사람 아니겠는가.
“성하, 여기 이 미켈란젤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교황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조금 끄덕였는데, 그가 숨만 내쉬었더라도 그것을 윤허의 뜻으로 받아들였을 미켈란젤로는 곧장 저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성하께서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처결을 하시든, 저희의 입을 막거나 손을 묶지 않으시는 한 저희는 성하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여기 이 시커먼 도적놈처럼, 갑자기 신성모독을 늘어놓는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지요.
일흔 평생 그림 그리고 돌 깎는 일만 손에 대었던 제가 무엇을 얼마냐 알겠냐만, 적어도 묶을수록 더 빠져나가려 하고 풀어주면 그대로 있으려 하는 사람의 성질은 그럭저럭 겪어보았다 자부합니다. 당장 저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에게 원하는 바를 주신다면, 저희 또한 성하께서 원하는 바를 바치겠습니다. 여기 이 조각상부터 시작해서, 우리 머리 위의 돔. 이 대성당. 그리고 바티카노와 로마 전체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양해와 선처를 잊지 않고서야 그 누가 작업에 성의를 다하지 않겠습니까? 성하께서 저희를 위해주신다면, 이교도고 이단이고 이 땅 이탈리아의 그 누가 그런 데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지금 저희들이 일을 그만둔 것 외에 무언가 더 큰 것이 많이 엮여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여기 이놈 말대로, 오늘 같은 수모를 또 겪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수모 겪는데 일조한 미켈란젤로가 마치 자신은 아무 잘못 없는 것처럼, 아니, 자신이 이런 잘못 범하게 만든 상대방이야말로 잘못 크다는 것처럼 뻔뻔하게 말하였다. 허나 그 말투는 자못 진지하여, 가만 듣는 교황에게까지 그대로 닿았다.
미켈란젤로와 동년배인 교황의 늙은 심장에는 그리 건강하지 못할 자극이 연달아 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머리만은, 한창때처럼 혈기로 충만한 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몰랐는데, 어르신 제법 청산유수시오.”
“시끄럽네. 버르장머리라곤 없는 놈 같으니라고.”
꾸중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대꾸가 돌아왔다.
그때, 돔으로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 하늘로 고개를 돌리고 한참 생각하던 교황이 입을 열었다.
“그래. 도적 소리를 듣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지 않겠는가. 성좌를 욕보이게 해서는 아니 될 일이지.
코우지오니스,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오, 고맙소.”
그러나 교황의 완고함을 어찌 말 한 두 번으로 뒤엎을 수 있을까. 물론 교황 앞에서 대놓고 수많은 이들이 반기 들게 만들고, 면전에서 도적 소리까지 하였으니 이만큼의 변화라도 일어난 것이겠지만.
“그리고 그 대가 또한 그대와 그대 뒤의 베네치아가 짊어져야 할 것일세.”
“고마운 마음이 조금은 덜해졌소. 믿어준 만큼은 돌려드리고, 못 믿어준 만큼은 후회하게 해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시오.”
교황령의 저명한 예술가들이 바오로 4세에게 반기를 든 뒤로 벌써 며칠이 지났다. 처음의 떠들썩함은 사라졌지만, 그 바오로 4세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서는 여전히 모두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그러므로 ‘주교이자, 하느님의 종들의 종’ 명의로 된 교황 칙서(Papal Bull)가 반포되자, 선량한 시민부터 조금 덜 선량한 외교관들, 그리고 여러 군주들이 보낸 첩자들까지 여기에 눈길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칙서의 내용은, 그러한 눈길 보내는 이들로 하여금 저의 눈을 의심케 하기에 족하였다. 그 골자는 이러하였다.
“관용의 미덕은 모든 믿는 이들의 마음에 깃들어야 마땅한 것이니, 지금과 같이 이단과 이교도가 횡행하는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비로소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 그릇된 신앙을 가진 것 외에 다른 드러난 잘못이 없는 이교도, 우리 거룩한 교회와, 복음을 따르는 훌륭한 군주들과 그들의 백성에 대하여 해를 미치지 않는 이교도들은, 무기가 아닌 미덕으로써 타이르고 품어야 할 것이다.”
에우로파의 강국이라면, 이교도의 수장인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쉴레이만과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손잡는 것을 넘어, 툴롱(Toulon) 항에 무슬림 함대의 기항까지 허락한 프랑스도, 그 프랑스와 오스만 투르크가 손잡는 것을 견제하고 발칸 일대에서의 평화 - 주로 다른 전쟁을 위한 평화였다 - 를 관리해야 했던 합스부르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같은 성직자라면 모를까, 세속의 군주들 중 칙서의 이 대목에 드러내놓고 떳떳하게 반박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 또한, 신앙에 대한 상벌은 오로지 천상의 권위에 의한 것이니, 지상의 그 어떤 권세도 자의에 따라 이를 처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합당한 사유가 없는 한, 그 누구도 신앙을 이유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
‘합당한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지극히 많은 논쟁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임을 식자라면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작게는 이탈리아 내부로부터 크게는 에우로파 전역에 걸쳐 자칭 신교와 구교가 다투는 상황이요, 그 분쟁에는 신성로마제국이나 프랑스 같은 강국부터 잉글랜드 같은 한 수 아래 나라까지 모두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대교에 대한 탄압처럼 당대의 모든 기독교인이 합당하다고 동의할 만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러므로 칙서에서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의 ‘화의’로 신성로마제국 내 분쟁이 일단락되었음을 참작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트리엔트에서 재개될 공의회에서 이를 다룰 것을 명시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칙서에 대하여 열화와 같은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어쩌다 보니 성 베드로 대성당 한복판에 그대로 남게 된 성전 정화상의 작업이 성당 공사와 함께 이어져, 죄없는 어린양보다는 금강역사나 비사문천왕에 가까운 그 모습이 조금씩 드러날 무렵.
이미 허울만 남은 황제 칭호를 어째서인지 끝까지 붙잡고 있던 카를 5세는, 이러한 칙서의 내용을 접하고 크게 감동한바, 지중해를 건너 그의 영지인 나폴리 왕국에 상륙한 뒤 곧장 로마로 북상하였다.
그 뒤에는 역시 칙서의 내용에 크게 감동한 이들이 뒤따르고 있었으니, 알바 공작 페르난도(Fernando Alvarez de Toledo)가 이끄는 일만 이천 군대였다.
교황이 말한 대가가 닥쳐오기 전에 에우로파를 뜨면 그만이라 여기고 있던 꺽정이와 그 일당에게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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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건축물과 조각상에 들어가는 대리석의 유통 과정에 대해 면밀한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유명한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Carrara)와 그 일대의 석공들이 대리석에 대한 일말의 이해도 없이 비싼 값을 뒤집어씌운다며 불평하곤 했고, 여력이 될 때는 직접 대리석 산지까지 간 다음 인부들을 직고용하여 그것을 로마나 피렌체로 옮기도록 하곤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불평 한가득과 더불어 상세하게 적은 미켈란젤로의 기록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 대한 좋은 미시사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