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와인, 마차, 테라스 (2)
코우지오니스라는 이름은 번거롭기도 했거니와, 이 무렵 에우로파 그 어디에도 정서법은 없었으므로, 대개는 제멋대로 그 이름을 코조니스, 코지오 등등, 내키는 대로 바꾸어 부르곤 했다.
보주 광장(Place de Vosges)에 마련된 마상창시합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 사이에서는, 그러한 엉터리 이름 중 그 어느 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한량없는 부조리함이 자아내는 침묵만이 내려앉아 있을 뿐.
국왕의 정부(情婦) 푸와티에(Diane de Poitiers)는 그의 연인이 차갑게 비틀린 시체가 된 것을 보고 가장 먼저 비명을 질렀고, 국왕 없는 국왕의 단상을 홀로 지키다 이 참상을 목도한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는 비명 같은 명령을 내질렀다.
“관중을 모두 내보내라!”
관중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스위스와 스코틀랜드 근위병들이,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시의적절한 조치였지만, 미늘창에 떠밀려 우르르 몰려나간 관중은 곧 파리 시내 곳곳으로 퍼져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음을 모두에게 알리게 되었다.
“아이고야.”
기적을 기원하며 급히 달려온 궁중 주치의 파레(Ambroise Paré)가 앙리 2세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것을 본 꺽정이의 첫 반응은 이러하였다.
“그,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긴 참 민망하지만, 거 참 미안하게 됐수다.”
꺽정이는 여전히 넋이 다 돌아오지 못한 카트린 왕비를 향해 이렇게 한 마디 더 던지고서는, 근위병들에게 에워싸여 루브르 궁 한 구석으로 끌려갔다.
불의의 사고로 작고한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이 무렵 프랑스 왕국의 권세 있는 자들은, 국왕을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보다는 국왕이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온 마음을 쏟고 있었다.
앙리를 위해 애도하는 것은, 우선 저들이 어떻게 하면 이 지상에서 목숨과 권세를 지켜나갈지 궁리한 다음으로 미뤄도 무방하였다.
때마침 소위 ‘위대한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하여 그러한 권세가들 대부분은 파리에 모여 있었고, 또 그중 상당수는 참사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그 모습을 목도한 바 있었다.
그러므로 국왕을 잃은 파리의 밤은, 국왕 생전 그 어느 때보다도 북적였다. 귀족 가문의 서자와 하수인들은 밤거리를 쏘다니며 칼부림을 했고, 파리의 위그노 집안들은 몰래 가산을 처분하여 도망칠 준비를 하거나 무기를 사들였으며, 귀족 가문의 수장들은 비밀리에 회동하기도, 음모를 꾸미기도, 배신하기도 하였다.
“···. 명색이 일국의 왕이 죽었는데, 어째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다 싶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구려.”
국왕 시해범, 또는 시해 음모의 공범이라 할 수 있을 꺽정이는 루브르 궁의 레스코 관(Aile Lescot)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금은 말만 구금이요, 실제로는 지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구중궁궐에서 편히 지내는 것과 같았다. 밖으로 나가지 못할 뿐, 숙식에 일체 불편함이 없으니, 그 옛날 우림위 별장 시절만큼이나 몸이 편했다.
뿐만 아니라 꺽정이 한 사람만 붙잡혀 있을 뿐, 나머지는 그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있었다. 물론 괜한 오해를 사서 파리 시민들에게 몰매를 맞는다거나 할 위험이 있으므로 - 다들 그만한 눈치는 있었다 - 흑의군 패거리들은 알아서들 궁 안에만 머물고 있었지만.
“그들의 임금을 절반으로 접어버리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는데 누가 함부로 당수를 해코지하려 하겠습니까.”
임 당수 고생하는 것 구경하러 왔다가, 그저 저의 집 안방인 양 푹신한 의자에 몸 기대고 있는 꺽정이를 본 도키치로가 말했다.
“역시 그랬군. 힘은 세고 볼 일이오.”
“물론 말이 그렇지, 실제로는 지금 칼 갈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소생이 수소문하기로는, 며칠내로 사왕(嗣王)이 즉위하면 내각의 대신들을 모아(大콩세유. Grand Conseil) 이번 흉사에 대해 처결을 내릴 것이라 하던데, 사왕 프랑수아가 연소하여 부득불 섭정을 둘 것이라 합디다.”
도키치로와 함께 찾아온 이탁오가 자못 진지하게 바깥 사정을 전하니, 이번에는 꺽정이도 눈쌀 찌푸리며 그 말을 들었다.
코스탄티니예를 떠나기 전, 그들의 동행이자 든든한 방패인 셀림은 속성으로 에우로파 왕실 및 주요 귀족들의 상황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만약에 대비하여 셀림을 수행하는 이들 중에도 외교의 실무를 오랜 세월 담당해온 자들이 많았으므로, 이탁오는 굳이 파리 시내를 돌아다닐 것도 없이 그들 몇몇을 붙잡아 묻기만 해도 바깥 사정을 훤히 알 수 있었다.
그들에 따르면, 며칠 내로 즉위할 왕자 프랑수아는 그와 이름이 같은 조부(프랑수아 1세)와 달리 썩 훌륭한 임금감은 아니라 하였다. 설령 하늘이 내린 왕재(王才)라 하더라도 금년 보령이 이쪽 동네 셈법으로 열두 살에 불과하였으므로 권신이 발호하기 딱 좋을 지경이었는데, 더구나 프랑수아는 병치레가 잦고 그리 총명하지도 못하였다.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인데.”
어리고 귀 얇은 주상과 노회하고 욕심 많은 권신이라 하면, 아닌 게 아니라 꺽정이에게는 남 얘기가 아니었다.
“듣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비슷하긴 합니다그려. 사왕의 외척이 아니라, 인척 쪽에서 섭정이 나올 것이라는 점이 다르지만요.”
“외척은 어디 두고 인척이 나온다는 말이오? 왕비, 그러니까 내가 졸지에 과부로 만들어버린 대비 마님도 계시지 않소? 언제 한 번 제대로 사과를 드리긴 해야 하는데.”
임 당수에게도 양심이란 게 있음을 깨달은 두 사람이 새삼스레 놀라니, 꺽정이가 ‘뭐 임마’ 하는 눈빛으로 대꾸하였다.
“대비 메디치 씨로 말하자면, 프랑스 사람 눈에는 한미한 집안 출신인지라 딱히 지닌바 힘이 없다고들 합디다.”
적의 적을 아군으로 삼는 에우로파 전통에 의거하여, 잉글랜드라는 공동의 적을 둔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두 나라는 긴밀한 연을 맺고 있었다. 프랑스 국왕(예정) 프랑수아는 이미 네 살 때, 당시 여섯 살이던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말이 스코틀랜드 여왕이지, 여섯 살 이후로 지금까지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과 약혼한 사이였다.
그리고 메리 여왕의 외가는 유력한 정도를 넘어 지금 프랑스국에서 가장 입김 센 벌열가라 할 수 있는 기즈(Guise) 집안으로, 이탈리아 전쟁에 휘말려 영락한 메디치 가문 출신인 왕비 카트린과 비교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며느리(예정) 메리가 시어머니를 두고 ‘피렌체의 장사꾼‘이라고 면전에서 흉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셀림의 귀에까지 들어갔겠는가.
그리하여 장차 섭정 될 사람으로는 기즈 집안의 수장인 기즈 공작 프랑수아와 그 아우 로렌 추기경 샤를이 유력하였다.
“··· 그래서 지금 로욜라 신부가 아주 골치가 아파졌습니다. 두 사람 모두 구신당(求新黨, 프로테스탄트)을 완강하게 배척하는 데다가, 분명 동도(同道)임에도 프랑스의 교인들은 로마 교종의 뜻을 곱게 듣지 않는 터라, 설득하기가 매우 난망하게 되었다더군요.”
“뭐 하나 쉽게 풀리지를 않는구만그래.”
“그러게 왜 그런 무식한 짓을 저질렀습니까? 소생은 분명 관운장도, 여봉선(여포)도 되지 말고 그냥 순순히 져 주라고 권했는데, 서초패왕 목을 벤 여마동(呂馬童) 노릇을 해 버리다니요.”
“아니, 로욜라 그 어르신께서 어지간하면 임금 비위 맞춰 달라 했단 말이오. 해달라는 대로 해줘도 말썽이고 안 해줘도 말썽이니, 억울해서 이거 원.”
둘이 그렇게 옥신각신 치졸한 언쟁 벌이고, 도키치로는 은근슬쩍 푹신한 의자에 앉아 그것을 구경하는데, 느닷없이 이곳 방 바깥 복도에서도 소란이 일어났다.
그제야 두 사람도 정신 차리고 헛기침하며 옷매무새 가다듬었는데, 그러기 무섭게 발칵 문 열리며 일찍이 보았던 대비 카트린 모습이 드러났다.
“예는 취하지 않아도 좋소. 그대가 갖추는 예를 보면 오히려 내 마음이 더욱 불편해질 듯하니.”
상복을 입은 채, 이 성채의 벽보다도 단단하게 굳은 얼굴을 한 카트린이 엄숙하게 말했다. 따로 시키지 않았지만, 이탁오가 알아서 눈치껏 통변 노릇을 해주었다.
“크흠. 알겠소이다.”
꺽정이보다 몇 살 손위인 데다가, 고된 시집살이 마음고생으로 미모가 쇠한 카트린이었다. 더구나 이미 꺽정이는 켕기는 구석도 있었으므로, 순순히 카트린 말을 따랐다. (역시 꺽정이 손에 일가가 제법 모진 꼴을 당하였던 대비 윤씨가 들으면, 저 후안무치한 백정놈한테 제발 벌 좀 내려주십사 백팔배 치성을 올릴 일이었다.)
“새 국왕의 대관식은 이레 뒤로 결정되었소. 그리고 지금부터 열흘 뒤, 새 국왕 프랑수아와 섭정 기즈 공작의 이름으로 대(大) 콩세유를 열어, 그대의 죄와 합당한 벌에 대해 논할 것이오.”
국왕 시해도 전례가 그리 많지 않은 일이거니와, 그 시해범이 멀리서 찾아온 사절, 그것도 명색이 황제의 대리인인 경우는 애초에 전례가 있는 쪽이 이상하였다.
그러므로 프랑스 안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는 대콩세유를 열어, 국왕의 권위로서 이를 처결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콩세유에서의 판결이 정의만을 위하여 이루어지리라고는 -기즈 공작과 그 아우 로렌 추기경 샤를을 제외하면 -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여기서 들어야 하겠소. 그대가 어떤 신을 섬기건, 그 신에게 맹세코 그대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겠소?”
“내 천지신명을 두고 맹세하겠소. 나는 딱히 대비 마님과 부군께 못된 마음 품은 적이 없소이다.”
카트린과 꺽정이 두 사람의 눈이 한참을 서로 마주보았다.
카트린 또한 분명 알고 있었다. 그의 반려, 프랑스의 국왕 앙리가, 소싯적 어려운 시절을 보내면서 기사도 문학에 심취한 이래로 ‘기사왕’이라는 별명 얻을 만큼 주트 시합에 진심으로 임하곤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벌어졌던 그 끔찍한 참사는, 그저 호기로움과 불운이 겹쳐 생긴 일일 뿐, 어떤 농간이나 간악한 술수가 개입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도 짐작하였다. 말에도, 마갑에도, 그리고 랜스에도 문제는 없었다. 그저 눈앞의 거한이 엄청난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한없이 가벼워 보이면서도 결코 흔들림 없는 동양인의 검은 눈을 얼마나 오래 응시하였을까. 결국 카트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가 정녕 결백한지는 내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대가 스스로 결백하다 믿고 있음은 알겠소. 그러니 이제 묻겠소. 그대에게는 결백을 증명할 방도가 있소?”
잠시 이 자리에 없는 다른 누구 탓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꺽정이는 금방 단념하였다. 정면으로 돌파를 하면 했지, 구차하게 무슨 변명을 더 하겠는가.
“송구스러운 이야기지만, 딱히 증좌는 없소. 그리고 증좌야 있든 없든, 마님께 죄송한 짓을 한 것은 변함이 없으니, 내 여기 머물면서 무언가 도와드릴 일 있다면 힘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리다.”
“그대가 결백을 증명할 수 없다면, 오직 기사답게 품위를 지키며 주어진 벌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것이 우리 왕실과 나를 위하여 죄를 갚는 길일 테니.”
카트린은 자신의 입지가 얼마나 취약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대콩세유를 시작으로, 기즈 가문이 고스란히 왕실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될 터였다.
위그노 측에서는 신앙의 자유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도 나름의 기대를 품고 있었고, 반대로 본디 교황청의 권위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던 프랑스 내 구교 측에서는 이를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심지어, 신앙의 자유는 이탈리아 연맹의 경쟁자들을 모두 혼란에 빠뜨려 이탈리아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교황청의 음모라는 주장도 암암리에 나도는 판이었다.
그리고 처음 그 소식을 들은 카트린은, 피가 아직 대놓고 흐르지 않을 뿐 사실상 내전 상태라 할 수 있는 프랑스가 마침내 다시 하나로 통합될 기회를 얻었다며 은근히 안도하였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기즈 가문은 이 기회에 ‘국왕 시해범’과 위그노를 하나로 묶어 처벌하고, 나아가 모든 위그노를 말살하기 위하여 마음껏 왕실을 휘두를 것이었다.
만일 기즈 가문이 어떤 이유에서든 자제를 선택한다면, 남부의 위그노 대귀족들은 불안에 떠느니 차라리 선수를 치겠다며 먼저 반기를 들 것이다. 프랑수아 1세의 조카이기도 한 나바라 여왕 호아나와 부르봉 가문을 중심으로 뭉친 위그노, 그리고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상대를 뒤흔들 수 있게 된 데 쾌재를 부르며 위그노들을 지원하는 에스파냐.
국왕이 사라진 지금의 프랑스는, 어느 쪽으로든 내전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직전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그것을 좌시할 수 없소. 그러나 그대의 잘못이 명백한 이상, 그대를 옹호할 수는 없는 일. 오히려 기즈 형제들보다 더 강경하게 그대를 처벌할 것을 주장하는 수밖에 없소이다.”
카트린은 앙리를 사랑하였지만, 사랑받지는 못했다.
앙리의 마음은 오로지 그의 가정교사이자 카트린의 육촌 누이이기도 하였던 푸아티에 후작부인에게 가 있었고, 궁정의 사람들은 카트린을 동정하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그의 아들딸들, 그리고 - 고마우면서도 미운 - 푸아티에 부인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이 끈 떨어진 외국 여인을 진심으로 위해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간의 여론이라는 잔혹한 운명의 하수인은, 카트린이 눈앞의 이방인들을 처벌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는 즉시, 어떤 식으로든 그가 남편 앙리의 죽음에 연관되어 있다고 몰아갈 것이다. 기즈 가문을 견제할 수 있는 모든 여력이 카트린의 손에서 박탈될 때까지.
허나 꺽정이가 알 바는 아니었다. 죄송하다고 하고 뭔가 보답할 방도를 마련하고서 넘어가려 했는데, 이대로라면 보답 대신 얼른 목을 내놓으라는 말이 나올 듯하였으므로,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었다.
“그, 어지간하면 사죄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내 목숨 소중한 것은 아는 사람이오. 벌이 너무 과하면 나도 받아들일 수 없소. 이래 봬도 천자의 대리인 체통이 있어서.”
머리 긁적이며 꺽정이가 난처함을 표했다.
“그렇다면 그대가 먼저 결정을 내리시오. 그대의 결백을 증명할 방도를 마련하거나, 아니면 이 사람이 마음껏 그대를 벌할 것을 주장할 수 있도록 그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극형을 제시하시오. 목숨의 값은 목숨으로만 치를 수 있으니.
그리하여 이 사람이 그대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여, 작금의 위태로운 정국을 주도할 수 명분을 얻을 수 있게끔 해주시오. 그래야만 그대의 동행들이 내세우는 신앙의 자유도, 또 그대가 교역의 이익을 위하여 원하고 있을 이 땅의 번영과 평화도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오.”
그렇게 단언하고, 과부가 된 왕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잊지 마시오. 기한은 열흘이오.”
그날 밤, 루브르 궁의 성벽을 넘어가는 인영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림자라면 그림자답게 함구해야 하건만 이 그림자들은 궁시렁궁시렁 시끄럽기만 했다.
“이 짓도 못해먹겠군. 아니, 어떻게 내가 가는 곳마다 나를 두고 싸움박질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소.“
“그건 임 당수가 어디를 가든 싸움을 일으키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그래, 뭐. 내 욕심 차리려고 이런저런 일을 꾸미기도 했지. 하지만 돌이켜보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잖소?”
어지간한 사람은 자신이 탄 배 선장이 관아에 붙잡혀간다고 그 관아를 화약으로 폭파시킨다든가, 자신이 주창한 운하 이야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그 나라 왕자들 저택에서 도둑질을 한다든가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려던 이탁오는, 그런 일에 죄다 자신도 연루되어 있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두세 패로 갈려서 싸우고 있는 게 문제지. 그러니까 나 같은 거물이 나타나면 어떻게든 우리를 끌어들여 저들 잇속 차리려고 난리들을 치는 것 아니오?
천주교랑 청진교가 싸우지를 않나, 같은 천주교 안에서도 또 뭘 가지고 그렇게 죽이냐 살리냐 호들갑을 떨지를 않나.
저들 임금이 죽었는데 그 무슨 기즈인가 하는 작자들이랑 부르봉인지 뭣인지 하는 작자들은 편가르고 싸우기만 노리지 않나.
우리네 차랑 도자기 따위를 호구처럼 비싼 값에 산다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상종할 생각도 안 했을 것이오.“
“원래 사람 사는 곳은 다 그런 법 아닐까요? 당수님이야, 눈앞에 거슬리는 것들은 머리통부터 깨고 보니까 주변이 절로 평온해지는 것이고요.”
함께 성벽 오르는 도키치로가 슬쩍 끼어들었는데, 의외로 통찰이 담긴 말이라 이번에는 꺽정이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퍽 시끄럽고 어설프게 벽을 넘어, 마침내 성벽 위에 오르니, 오르자마자 경비병들의 미늘창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멈춰라!”
“멈췄소.”
꺽정이와 그 일당 모두 순순히 손을 들었다. 그때, 뭔가가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이쿠, 이런. 뭐가 떨어졌네. 이건 못 본 것으로 해 주시오들.”
전혀 절박함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꺽정이가 말했다. 경비병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을 집어들어 살폈는데, 밀랍으로 봉인된 편지 두 장이었다.
곧 경비대장이 급히 달려나와 편지 두 장을 모두 챙겨갔고, 꺽정이 일행은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달래는 것이 역력한 경비병들의 정중한 동행을 받아 레스코 관의 감방 아닌 감방으로 돌아왔다.
카트린이 말한 것처럼 궁정 안에 그의 편이 별로 없다면, 반대로 궁정 안의 사람 대부분은 궁정 바깥 어딘가 다른 곳에 연줄을 대고 있을 터였다.
그러한 추론에 입각하여, 해 떨어질 때까지 나름대로 꺽정이 패거리가 머리 굴린 끝에 성벽을 오르게 된 것이었다.
과연, 꺽정이 소매에서 떨어진 편지 두 장은, 주인 잃은 루브르 궁에서 그나마 주인에 가깝다 할 카트린이나 프랑수아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대신, 엉뚱한 곳에서 몰래 밀랍이 한 번씩 떼어졌다 도로 붙었다.
그리고 탈출 시도가 있었다는 보고만을 받은 카트린이 다시 의복을 갖추어 입고 레스코 관으로 달려올 무렵, 파리 밤거리에는 각각 기즈 가문과 부르봉 가문의 저택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한편,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느냐 추궁하는 카트린 앞에서, 꺽정이와 이탁오는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성벽을 넘으려다가 적발되었다고 들었소. 그럴듯한 해명이 있기를 바랄 뿐이오.”
분노를 애써 참으며 카트린이 운을 떼었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굳은 얼굴이었지만, 그 눈시울만은 붉게 물들어, 그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홀로 애도하고 있었음을 조심스레 드러내고 있었다.
허나 이 시커먼 도적, 그리고 그와 한패인 사내들이 어찌 과부의 마음을 알까. 그저 저들 계책대로 되었다고 득의양양해 할 뿐.
“다 계획이 있어서 한 일이니, 대비 마님께서는 심려치 마시오. 방도를 마련하라 하시지 않았소? 그래서 마련한 다음, 곧장 실천하였을 뿐이오.”
“이것이 바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것이지요.”
그때, 궁정의 관료인 듯한 자 하나가 급히 들어와 인사를 올렸다. 편지 두 통이 얌전히 올려진 쟁반을 든 시종 하나도 함께 들어왔다.
“전하, 보고드립니다. 탈출을 시도한 이들 동양인들이, 밀서를 휴대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밀서라?”
“그렇소.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은 밀서지. 그것을 이제야 보고하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꺽정이가 카트린 대신 불운한 관료를 응시하며 말했다.
“투항할 때 그 밀서 두 통도 함께 넘겼다오. 그런데 마님께는 우리가 성벽 넘으려 했다는 것만 먼저 알려지고, 서신 얘기는 이제야 나왔단 말이지? 좀 이상하지 않소? 만약 마님께서 서한 내용을 미리 읽어보셨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존안이 조금 덜 어두웠을 것이오.”
그 말 들은 카트린이, 관료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마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내가 대신 저놈에게 형신(刑訊)을 가하도록 하겠소.”
사람을 절반으로 접는 시늉을 하며 꺽정이가 말하니, 느닷없는 의심에 얼굴 창백해진 관료는 곧장 실토하였다.
“저, 저는 만에 하나 이 서신에 비밀 내용이 감추어져 있거나, 독이 숨겨져 있을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살폈을 뿐입니다!”
“오, 몸짓만 했는데도 진상이 절반쯤 밝혀지는구려. 제대로 몸을 접으면 나머지 절반도 짜낼 수 있을 듯한데. 마님, 승낙해 주시겠소?”
“히익! 그,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밀랍을 뜯은 다음, 안의 내용을 섭정공께도 알려드렸습니다!”
“아마 이놈 아랫사람 중에는 그 부르봉인가 하는 쪽 첩자도 하나쯤 있겠지. 그러니 서신 내용은 이제 양쪽에 다 알려졌거나 곧 알려질 것이오.”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떠는 관료를 내버려 두고, 꺽정이가 카트린에게 말했다.
카트린은 대꾸하는 대신, 쟁반 위의 두 통 밀서를 집어 하나씩 뜯어보았다.
그리고, 죽은 남편에게는 다소 미안한 이야기지만, ‘풋’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기즈 공작에게, 다른 하나는 부르봉 가문의 실세인 콩데 대공 루이에게 쓴 것으로 되어 있는 두 통 서신의 내용은, 짤막한 문장 한 줄이 전부였던 것이다.
‘다 들통났소.’
“여기 탁오 선생의 계책에 따르면, 늦어도 내일 아침에는 두 집안에서 사람을 보내 여기 이 몸 뵙기를 간곡히 청하게 될 것이라오.”
그리고 그 말대로 되었다.
연회에서 몇 번 보았던 것이 전부인 사이거늘 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런 서신을 보내려 했느냐 묻기 위해 두 거물 측에서 득달같이 사람을 보낸 것이다.
“아니, 분명 그대의 주군인 기즈/콩데 어르신께서, 내게 힘 빌려달라 하시지 않았던가? 나는 분명히 기억하는데 말이오.”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으므로, 지금 막 말을 지어낸 꺽정이 외에 그 누구도 이런 일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 투르누아인가 주트인가 하는 것 하기 전에, 목창을 쉽게 부러지는 낭창낭창한 것 대신 사람 능히 죽일 수 있는 알찬 것으로 바꾸겠다 하지 않았소? 그대 주군이 이를 모른다 하니 참 기이한 일이오.”
“분명 어느 한쪽에서 먼저 그런 청을 했는데, 연이어 그와 앙숙이라는 그대의 주군도 나에게 같은 청을 했지 뭐요? 대립하는 두 쪽에서 화합하여 한 가지 일을 내게 청하니, 나처럼 성정 올곧고 인의 중시하는 사람은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오.”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프랑스 내에서 가장 입김 강한 집안들에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는 말을 하고 있으니, 가운데 낀 두 집안의 하수인들은 여간 곤욕스럽지 않았다.
“정 이번 일 수습하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아랫것들 보내지 말고 두 사람이 직접 찾아와야 할 것이오. 도대체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운데, 그 나라의 기둥이라는 작자들은 이렇게 비겁한 수나 쓰고 있고, 참. 이 나라가 어찌 되려는지.”
그 나라 임금을 죽여놓고서 한다는 말이 이러하였으니, 아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벽을 무너뜨린 우르반 거포를 가져와도 이 두꺼운 얼굴에는 흠집을 내기 어려울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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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의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1556년 늦여름, 로마를 덮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합니다. 얼떨결에 꺽정이 패거리와 함께 프랑스로 향하게 된 것이 새옹지마가 되어 수명을 연장하게 된 셈입니다. 물론 그러한 운명을 벗어나게 된 작중의 로욜라 신부가 이를 알 수는 없겠지요.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작중에 언급된 것처럼, 피렌체를 장악하고 있던 메디치 집안의 영애였습니다. 메디치 집안은 비록 피렌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프랑스 국왕의 왕자와 통혼하기에는 다소 격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고, 이탈리아 전쟁에 휘말린 메디치 집안이 몰락하면서 - 이후 합스부르크의 봉신으로 자리잡으면서, 투스카니 지방의 대귀족으로 다시 일어서기는 하였습니다 - 카트린은 어려운 시집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한편, 본래대로라면 왕위 계승 순위가 형 프랑수아의 다음이었던 앙리 2세는 카트린과 결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이 사망하면서 왕세자로, 그리고 곧 국왕으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앙리의 마음은 카트린이 아니라 그의 가정교사였던 푸아티에 후작부인에게 항상 가 있었지요. 심지어 그가 사망하게 된 1559년의 마상창시합에서도 앙리는 푸아티에 집안의 문양을 단 채 시합에 출전하였습니다. 디안 드 푸아티에 후작부인은 앙리 2세보다 19세(!) 연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미모와 동안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를 모델로 한 여러 회화가 지금도 전하고 있습니다. 푸아티에 부인은 비록 왕의 총애를 업고 많은 권력을 누리면서 카트린을 권력에서 소외시켰지만, 동시에 난임으로 인해 심적, 물적으로 고통받는 육촌 누이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덕에 앙리 2세가 급사한 뒤에도 카트린에게 딱히 보복을 당하지 않고, 그저 정치적 영향력만 상실한 채 비교적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원 역사에는 - 작중에서는 더 일찍 죽어 실현되지 못했지만 - 신교도에 대한 강경한 탄압정책을 내세우며 구교의 편을 들어주었던 앙리 2세와 달리, 카트린은 신교와 구교의 통합을 꾀했습니다. 부르봉과 기즈 두 대귀족을 화해시키고, 둘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로서 왕실의 권위를 높인다는 발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이유로 카트린의 이러한 기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구교와 신교 양측은 모두 상대에 대한 암살까지 불사하며 격렬한 권력투쟁을 벌였고, 카트린 본인의 정치적 노련함은 자신의 권력을 탄탄히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점차 격렬해지는 내전을 해결하는 데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카트린 본인도 이 과정에서 많은 슬픔을 겪어야 했고, 결국 가장 아꼈던 아들 앙리 3세마저 위그노 편을 들어 기즈 집안을 무너뜨린 직후 암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앙리 3세의 죽음으로 발루아 왕가는 끊어지고, 부르봉 왕조가 시작되게 되지요.
오늘날에는 박물관으로 유명한 루브르 궁은, 중세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전통의 궁궐입니다. 처음에는 국왕의 성채로서, 방어적 기능을 염두에 둔 말 그대로의 성이었지만, 근세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성벽을 허물고 우리에게 익숙한 궁전의 형태로 변화하게 됩니다. 작중 등장한 레스코 관도 앙리 2세 치하에서 그렇게 막 개조된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