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20화 (220/259)

66. 화살을 부러뜨리는 힘 (2)

백 년간 이어진 전란. 힘없는 자는 짓밟히고 힘있는 자는 일어났다. 

그리고 배움 또한 힘이므로, 지난 몇 년 사이 뛰어난 무장 자처하는 이들은 더 넓은 세상이 일본 바깥에 있다는 것을, 고작해야 류큐니 루손이니 하는 정도는 ‘천하’라 부르기조차 부끄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민병은 우습게 여길지언정, 소위 의병은 그 실체는 모호할지언정 그 누구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조선왕의 엄청난 재보를 군자금으로 쓰고 그 위명이 동서에 고루 떨치는 조선 천하인이 이끄는 군대다. 언제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 저놈들은 무엇이란 말이냐!”

“장창! 장창으로 막아라! 막으면 그만...”

“철포! 철포대 모여라!”

도저히 기병이 다닐 수 없는, 아니, 다닐 수 없다고 여겼던 언덕과 골짜기를 날개 달린 것처럼 자유자재로 오가는 무리.

바람과 같은 빠르기, 바위와 같은 무게. 둘이 곱해져 산출되는 정직하고도 날 것 그대로인 폭력.

혼란에 빠진 동군, 그 중에서도 맨앞에서 농민병들을 흩어버리고 있던 야마나카 시카노스케의 아마고 군을 향하여, 악귀나찰의 무리가 그대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애써 그들을 노리고 치켜세워진 장창을 교묘하게 피하며, 그 창끝을 그대로 상대의 가슴에 박아넣었다.

개중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병사 하나는 창을 버리고 말에서 그대로 뛰어내리더니, 귀신 같은 용력으로 사람을 도륙해나갔다.

“뒤로 물러나 전열을 다듬으면 막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 아마고 군이 물러날 수 있도록 부디 엄호를!”

시카노스케의 지시를 받아 급히 뒤따르는 동군 장수들에게 향한 우마마와리(馬廻, 군영 간의 연락을 담당하는 근위무사)들이 절박하게 외쳤다.

그러나 아직 골짜기로 내려가는 비탈길 기슭에 멈춰 있던 호조 우지마사(北条氏政)는 코웃음을 쳤다.

“고작 우리들의 엄호 정도로 저 골짜기에 내려간 이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막아내고자 한다면 막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곳 전장의 동군은 일만 명에 달하고 – 이제는 구천오백쯤 되겠지만 – 저들은 이미 언덕 위에서 달려내려왔으니 맨 처음 달려들 때만큼의 충격은 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호조 우지마사는 그 계산을 중간에 그만둔 지 오래였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피로 물드는 골짜기의 모습을, 그간 밝혀진 것 없이 소문만 무성하던 의병의 실체를 눈에 담았다. 그것이 바로 이번 출병의 진짜 목적이었으므로.

“이것만 해도 성과다. 후퇴한다.”

“안 됩니다! 부디, 부디 재고를!”

애처로운 간청을 매정하게 내치는 철군의 호령이 골짜기에 울렸다.

선봉에 나섰다가 사석(捨石) 신세가 된 아마고 잔당의 비명과 멀리 코우즈키 성에서 지켜보던 이들의 환성을 모두 뒤로 하고, 호조 우지마사 이하 ‘진짜’ 동군 병력은 차례로 전장을 떠났다.

그로 인하여, 조금만 더 전장에 남아 있었더라면 깨우칠 수 있었을 중대한 것, 저들 민병과 의병의 참된 힘을 놓치고야 말았다는 것은 동군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허나 태생부터 무장인 그들이 설령 골짜기 북동쪽 언덕에서 하루이틀쯤 더 버티면서 상대 진영의 내실을 살폈다 한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웠을 것이었다. 그러니 볼 것은 다 보았다는 우지마사의 결론이 그렇게까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꺽정이는 투구와 갑옷을 내팽개치고 – 모두 니탕카이에게 빌린 것이었으니, 아쉬운 놈이 알아서 잘 찾아갈 터였다 – 프로이스 신부와 함께 기도 올리는 니탕카이네 사람들을 지나, 권율과 이순신 있는 군막으로 올라갔다.

헌데 싸움에서 이겼다며 싱글벙글하고 있어야 할 녀석 하나가 얼굴 팍 찡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왜 이리 죽상이냐?”

“당수의 대계에 누를 끼쳤으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내가 병법에 밝지는 않지만, 그런 소리 하면 네놈더러 퍽 재수없다고 할 만한 무장이 온 세상에 널리고 널렸을 게다.”

“제가 몇 번이고 고쳐 말한 바이기도 합니다, 당수. 싸움에서 이기는 계책을 짜는 데 이 사람만한 이가 드물지요. 헌데 여해의 고집이 어떠한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권율이 맞장구를 쳤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싸움을 맞이하는 관록 부족한 장수가, 쓸데없이 거창한 계책을 세웠다가 쫄딱 말아먹는 것은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 없는 장수가, 처음부터 저의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두 번째 계책까지 마련해두는 것은 결코 흔하다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첫 번째 계책이 실패하여 부득불 두 번째 방안을 택해야 했다는 사실을 두고 코 빠뜨리고 있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요, 한 번 실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며 저의 부족함을 변명하는 무장들이 들으면 분개할 만한 소리였다.

“무릇 싸움이란 벌어지기 전에 이겨두고 싸워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니 제 부족함이 맞습니다.”

이순신의 통렬한 – 요즘 대동당 안에서 쓰는 말을 빌리면 – 자기(自譏, 자아비판)가 이어졌다.

의병의 운영과 지휘는 그 장인 권율이 맡고 있었지만, 운주(작전계획)의 중임은 거의 대부분 이순신이 맡고 권율의 재가만 득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러 차례 사업당 안에서 도상(圖上) 전쟁을 벌인바 그 재주를 눈치 챈 권율이 이순신을 믿고 그 재주에 걸맞은 직을 맡긴 것이었다.

“저들이 우리 민병을 깔본다는 것을 이용하려는 뜻이 지나쳐, 그만큼 우리 민병이 저들 군사를 가슴 깊이 두려워한다는 것을 도리어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순신이 마련한 첫 번째 계책은, 마치 민병이 동군 무사들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슬금슬금 물러났다가,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학익진을 이루어 단번에 그 무게로 짓밟는 것이었다.

민병은 아무래도 진짜 군사들보다는 힘이 부족하고, 따라서 다수로 소수를 상대하는 진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지난 여러 달 동안 권율과 이순신, 그리고 흑의군 교관들이 열심히 조련시킨 진법이 바로 이 학익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짐짓 후퇴하는 시늉을 한다는 것이 어쩌다 보니 진짜 후퇴가 되어버렸고, 맨 앞의 민병들이 우르르 뒤로 빠지니 후열을 지키던 민병들도 도망치는 이들을 잡아세우기보다는 그 궤주(潰走)의 흐름에 떠밀려버리고야 말았다.

“히데요시 그놈이 지금쯤이면 도망친 무리까지 잘 추스르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지. 그게 네놈 탓이었는지, 아니면 뭔가 다른 사연이 있던 것인지. 혹시 아느냐? 우리 조선 사람들은 모르는 일본 놈들만의 기벽(奇癖)이 또 있었을지도.”

그러나 이순신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두 번째 계책은, 민병이 진짜로든 가짜로든 패주하며 적 선봉의 눈길을 끄는 사이 니탕카이가 이끄는 여진 마병으로 적의 허를 찌른다는 것이었다.

이 땅에도 말 타고 싸우는 법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고, 또 이 무렵 동서를 막론하고 일본의 군사들은 장창과 조총 등, 기병을 상대할 만한 병기는 족히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일천에 달하는 수, 그것도 험지를 자유자재로 오갈 만큼 마전(馬戰, 기병 전술)에 능수능란한 여진 전사들로만 이루어진 무리가 하나로 뭉쳐 진형을 급습하는 데는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었다. 

결국 이순신의 예상대로 이루어져 적은 일패도지하였으나, 선봉의 뒤를 지키던 후군(後軍)이 별 미련 없이 그대로 전장을 떠났는 것을 본 이순신은 (저 홀로) 씁쓸함을 느꼈다.

“벌써부터 이쪽의 패가, 그것도 능히 싸움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큰 패가 하나 드러나버렸습니다. 미리 이기고 싸우는 것을 최상으로 치는 병법의 이치를 감안하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지요.”

이순신의 자책이 이어지자, 어느새 꺽정이도 그 말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듣고 보니 네 녀석이 정말 큰 실수를 하긴 했구나.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더 분발해야겠군.”

“그뿐이 아닙니다. 이번 싸움의 결과가 알려지게 되면 서군 무장들 또한 가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민병과 의병으로만 동군의 선봉을 상대하겠다며 나선 이번 출병. 아예 패배한 것보다야 물론 훨씬 나은 결과였으나, 바로 그 민병들이 저들 깔보는 무사들이 ‘거 보아라’ 할 만큼 그대로 패주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이순신이 계속 저 스스로 힐난하고 뉘우치던 차, 상기된 표정의 히데요시가 군막 안으로 들어왔다.

“전승을 축하드립니다, 하하!”

“보아하니 뒷수습도 잘 한 모양이로군그래.”

“다들 아마고 군의 창날이 번뜩이는 것을 보자마자 부리나케 꽁지를 빼지 않았습니까? 다들 도망쳤다는 건 곧 죽어자빠진 놈은 없다는 뜻이지요. 

적어도 기껏 양성한 민병이 형편없이 패주하였다는 말은 아니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네가 피 거의 흘리지 않고 저 기세 높은 것들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전하면 그만일 테니까요.”

“거짓을 전하라는 얘기입니까, 형님?”

이순신이 물었다.

“어차피 조선 사람들은 우리 일본 사람들을 간교하다고 하고, 또 우리 일본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이 죄다 꽁생원이라 여기지 않니? 그러니까 서국 장수들이라 한들 조선 사람들이 눈 뜨고 뻔히 거짓말할 것이라곤 아니 여기겠지.

만약 소식이 참인지 거짓인지 정 궁금해하는 자가 있다면, 여기 임 당수 찾아와서 대면하고서 여쭤보라 하면 될 일이고.”

과연 잔머리 병법으로는 군막 안의 사람들 중 제일인 히데요시다운 발상이었다.

“각설하고, 더 중한 것은 민병 녀석들이 전장에서는 꽁무니를 뺐을지언정 그대로 탈주하지만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바깥에 나와서 보십시오.”

그리고 그 말 따라 천막 밖으로 나온 권율과 이순신, 꺽정이를 맞이하는 것은 뜻밖의 광경이었다.

민병을 이루는 각 대(隊)의 대정(隊正)들 – 조선 사람이 만든 편제였기에 조선의 명칭을 쓰고 있었다 – 이 모여 있다가, 저들의 장수를 향해 일제히 사죄의 큰절, 그러니까 도게자(土下座)를 올린 것이다.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 장군!”

“부디 이 불명예를 씻을 기회를!”

보아하니 저 골짜기와 언덕 기슭으로 돌아온 민병들 역시 비슷한 심정인지, 하나같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들이 모르는 조선말로 히데요시가 슬쩍 말을 건네었다.

“보통 백성을 징발하여 짐꾼이나 졸병으로 쓰다가 패주하게 되면, 그렇게 달아난 이들은 자연스레 도적이 되든, 저들 마을로 조용히 돌아가든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제가 막 병사들을 수습하려던 차 저렇게 다들 멀쩡히 모여서 제게 돌아오더군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곧 저들이 외치는 말 덕에 알게 되었다.

“저희 자신을 위하여 싸울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십시오!”

“다음에는 반드시 치욕을 씻고야 말겠습니다!”

아는 싸움이라고는 그저 짐꾼으로 종군하며 먼발치서 바라보거나 싸움 끝나고 시체 묻으면서 그 지닌 금은붙이를 빼돌리는 게 전부였던 농민들, 고작 몇 달 훈련으로 이제 저들도 무사님들 못지 않게 되었다며 자신만만해 있던 이들. 

살벌한 전장의 민낯을 눈앞에서 보고, 그 공포에 휘말려 저도 모르게 뒤로, 또 뒤로 물러나다 어느새 등 돌려 달아나고 있던 이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여느 무장의 깃발이었다면 내팽개치고 도망쳤을 깃발이 아직도 저들 손에 들려 있음을. 저들은 제대로 읽지 못하지만 어쨌든 다른 엄청난 높으신 분이 아닌, 저들 사는 그 마을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그 깃발을 누구도 차마 내팽개칠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을.

여기서 물러나면, 이 전쟁에서 지게 되면, 저들이 힘들여 일군 논밭의 소출을, 저들이 사랑하고 아끼면서 키운 자식들의 삶을 저들 뜻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저들의 가족과 마을을 저들 손으로 지킬 기회가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듯한 함성과 함께 나타난 무시무시한 이들에게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져버리는 ‘무사님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배움 짧고 식견도 얕은 농민들은 그제야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저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 전장을 등지고 달아나던 그 발길을 다시 되돌렸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제법 얻은 바가 있는 전승(戰勝) 아닐지요.”

히데요시가 뿌듯한 표정 지으며 말했다. 그 뿌듯함이 민병들을 조련을 돕기도 하고 또 가끔 직접 맡기도 한 사람으로서의 뿌듯함인지, 아니면 일본국의 천한 농민 출신으로서의 뿌듯함인지는 히데요시 본인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고서 꺽정이 고개 끄덕이기를 기다려, 엎드린 이들을 하나하나 일으켜세워주며, ‘다음부터는 그 각오를 기억하시오들’,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기보다 먼저 스스로 용서를 구하여야 할 것이오. 이 나라의 한 귀퉁이를 담당할 백성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등등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이순신이 끝내 미련 남아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래도 여전히 제 잘못은 남아 있습니다.”

“그래, 계속 그렇게 생각하거라. 부끄럽게 여기는 만큼 더 열심히 하면 그만이다.”

쥐어짜면 쥐어짤수록 더 좋은 수를 마련해주는 것은 덕수 이씨 문중의 내력인가, 이 진중한 상황 속에서 문득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꺽정이였다.

(사임당 신씨가 듣는다면, 자신이 부군에게 너무나 순량하게 굴었던 것은 아닌가 돌이켜보며 늙어갈수록 더욱 더 푼수의 기운만 농후해지는 이원수를 섬뜩하게 쳐다보게 될 법한 생각이었다.)

비젠(備前)에서 비추(備中), 비고(備後)까지 거쳐 북서쪽으로 굽이굽이 향하는 산길. 

평생 저의 태어난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나무꾼이나 유달리 저의 나고 자란 땅을 아끼는 무사, 또는 남의 눈길 피해 다니는 닌자나 여타 떳떳지 못한 무리들이 겨우 알 만한 그런 길로 말 달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

딱 보아도 패하고 도망치는 무사의 모습. 그러나 그들을 죽이고 갑주와 도검 빼앗으려는 이는 지금껏 마주치지 못했다. 인적이 드물기도 했거니와, 이쪽으로 도망치는 무사가 동군 소속일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않은 것일 테다. 

아니면, 일개 패잔병이나 주군 잃은 낭인이라기에는 너무나 굳세고 그만큼 흉흉한 야마나카 시카노스케의 눈빛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이즈모(出雲) 국입니다. 고향에 돌아오셨습니다, 주군.”

도중의 한 고개에서 말에서 내려 주변을 살핀 시카노스케가 저의 소년 주군 아마고 카츠히사(尼子勝久)에게 말했다.

올해로 나이 열셋인 카츠히사는, 나이 두 살 때 교토 어느 절의 동자승이 되었다. 모리의 수작으로 아마고 일족 안에서 가신들 사이 내분이 벌어지면서 그에 휘말린 탓이었다.

아마고 재흥의 일념에 불타는 시카노스케가 그를 찾아내어 환속시키고는 당주로 옹립한 것이 이제 한 해도 채 되지 않았으므로, 어린 카츠히사는 여전히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이즈모라... 기억도 나지 않는구나.”

“그러나 백성들은 아마고 씨를, 주군의 가문을 기억합니다. 군사를 일으킬 기반이 되는 것도 백성이고, 성을 쌓을 기틀이 되는 것도 백성입니다. 급히 모은 군대는 모두 흩어졌지만, 이제 주군이 이렇게 이즈모로 돌아왔으니 그 목적은 완수한 셈입니다.”

마침 고갯길 아래에 제법 큼직한 마을 하나가 있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제법 모인 듯했다.

“우선은 동향을 살피는 게 좋겠습니다, 주군.”

늘 그랬듯, 카츠히사는 듬직한 가신의 말에 따랐다.

여전히 잊히지 않는 사흘 전의 전투 속에서 시카노스케를 건져낸 것은 오직 아마고 재흥에 대한 일념 하나였다.

사방으로 패주하고, 짓밟히고, 죽어가는 그 속에서, 잽싸게 보잘것없는 갑주와 투구 두 벌을 구하여 저의 주군과 자신의 신분을 감추었다. 그러고서 필생의 수련을 쏟아부어, 동군이 물러나는 북동쪽 대신 이즈모 방향 북서쪽으로 달아났다.

한때 이즈모가 모리 씨에게 짓밟힐 때 밤새 달렸던 그 산길인지라, 그 뒤로는 오히려 수월하였다. 그새 계곡에서 갑주에 묻은 피까지 말끔히 지웠으니, 누가 보아도 조금 이상한 떠돌이 낭인이나 모종의 이유로 산길을 헤매는 무사 정도로 여기지, 아마고 씨의 당주와 그 마지막 가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이대로 마을로 들어가겠습니다. 마을 안에서는 주군의 신분을 감춰야 할 수도 있으니, 결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심스레 마을길에 접어들자, 이미 무사 몇몇이 마을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것이 보였다. 시카노스케는 급히 말에서 내려, 길에서 멀리 벗어난 곳에 매어둔 뒤 홀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이즈모에서 당당히 돌아다니는 무사라면, 보나마나 모리 씨의 사람일 테다. 

“이 마을의 촌장은 누구인가?”

“여기 있습니다요.”

어디 가든 마을에서 하나쯤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촌로 하나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지팡이 짚고 걸어나왔다.

“듣기로, 이 마을은 삼공칠민의 세율이 버겁다고 감히 항의하였다 들었다. 어찌 된 영문인가?”

“이미 우리 마을의 젊은이들은 대부분이 이즈모 민병 연대(聯隊)에 합류하였습니다요. 농사지을 일손의 수가 줄기도 하였거니와, 이 세상 좋게 만드는 큰일에 동참한 것 아닙니까요? 그러니 우리 목소리도 좀 들어줍쇼, 그리 말씀 올린 것이지요.”

머리 허옇게 센 노인이 슬쩍 굽은 허리를 펴며 무사를 마주 보았다.

“더구나 삼공칠민이라는 세율을 정한 것은 새 영주님과 그분의 옛 영민들끼리의 일이지, 저희 이즈모 백성들 얘기는 아직 못 모은 것으로 압니다. 듣자하니 그것도 영영 그렇게 정한 게 아니라, 이번 싸움에 대비해서 따로 군량미를 더 거둔 것이라 하던데요. 그러니 더더욱 못 따를 일입지요. 저희 마을 젊은이들 군량은 다들 알아서 챙겨 갔습니다요.”

일개 촌로가 무사에게 대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정말로 마을에는,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들 외에는 적어도 손주 볼 나이는 되었을 법한 남녀들만 남아 있었으므로, 지금 마을 한복판에서 무사들을 빙 둘러싼 백성들 역시 무사의 무서움을 모르지 않을 터.

그러므로 시카노스케는 곧 닥칠 피바람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리며, 몸 숨긴 울타리 뒤에서 고개 삐죽 내밀고는 무슨 일 벌어지나 지켜보았다.

무사도 심기가 잔뜩 불편한지, 손이 조금씩 떨리며 저도 모르게 칼자루로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외쳤다.

“옳소!”

“이공팔민도 과하다!”

“우리네 민병들 군량미로 내놓는다면 모를까, 새 영주님은 이미 갑부 아닌가!”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그만!”

무사가 칼자루에 다 닿은 손을 군중 향해 휙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은 텅 비어 있었다.

“그대들의 뜻은 잘 알겠다! 내 돌아가서 주군께 그리 전할 것이요, 그대들의 사정 또한 여실히 고할 터이니, 그대들은 경거망동하지 말라!”

그러자 언제 목청 높였냐는듯, 촌로와 마을 주민 일동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허리는 굽히지 않은 듯했다. 시카노스케만의 착각일까?)

“아이고, 감사합니다, 무사님!”

“찾아오신 길에 하룻밤 묵고 가십쇼!”

“저희 집 우메보시가 고갯길 이쪽에서는 일품으로 유명합지요.”

못 들었다는 것처럼 무사들은 그대로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 기싸움의 승자가 어느 쪽인지는 명백하였다.

한참 뒤에야 시카노스케는 숨어 있던 울타리 뒤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마을 한복판에 모였던 이들이 다 흩어진 것은 아니어서, 금방 그 모습이 백성들 눈에 띄었다.

‘무사님이 또 나타났다’ 하는 소리가 몇 번 오가더니, 앞서 나왔던 그 촌장이 또 왜 저를 귀찮게 하냐고 툴툴대며 나왔다.

“아니, 야마나카 공이 아니십니까?”

마침내 촌민들 사이를 뚫고 나온 촌장이, 야마나카를 보자마자 그를 알아보고는 크게 놀랐다.

“나를 아는가?”

“예, 지난해 싸움 전에 하필 제 아들녀석이 다리를 다쳐서, 제가 대신 짐꾼으로 종군했습죠. 그때 먼발치서 뵈었습니다. 싸움을 다녀오니 아들은 멀쩡히 나았는데 촌장이 돌림병으로 죽어서, 주제 넘게 어르신 소리를 듣게 되었지요.”

지난해 싸움이라면 이즈모로 쫓겨난 아마고 씨의 숨통이 모리 씨의 손에 (거의) 끊어진 그 싸움을 말하는 것일 테다. 

그때 ‘아마고 10용사’의 무용은 나름 인구에 회자되었고, 특히 시카노스케는 그때부터 저의 이름에 사슴(鹿)이 들어간다고 하여 사슴뿔 투구를 쓰고 다녔기에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도 짐작하고 있겠군. 방금 전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농민 치고는 식견이 꽤 깊던데.”

“아이고, 물론입죠.” 

촌장이 고개를 끄덕이곤 되물었다.

“이미 날이 늦었는데, 차린 것은 없지만 우선 저희에게 식사를 지어 올리는 영광이라도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실지요?”

숙고할 시간을 달라는 뜻일 테다. 시카노스케는 잠깐 생각하곤 촌장의 제안을 승낙하였다. 

아마고 씨의 후예까지 함께 데리고 왔다는 것을 시카노스케가 밝히니, 정말로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을 후하게 대접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후함은, 앞서 모리 씨 무사에게 보였던 공손함만큼이나 그 끝이 확연하였다.

무장의 숙명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연소하였던 아마고 카츠히사는, 패배의 충격과 기나긴 산행의 피로 탓에 금방 곯아떨어졌고, 영주님의 후손을 구경하러 온 마을 주민들도 하나둘씩 흩어져, 밤이 깊을 무렵에는 촌장과 시카노스케 둘만 남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불을 쬐는 시카노스케 곁에, 조심스레 촌장이 다가왔다.

“대접 고맙네. 자네처럼 충직하고도 식견 넓은 이를 이즈모에 당도하자마자 만나게 되니 이 또한 신불(神佛)께서 아마고 씨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징조겠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다만...”

칭찬에 고마워하면서도, 촌장은 어딘가 선을 그었다.

“어디서부터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마을은 이미 병사를 내었습니다. 그것도 꽤 많이 내었습죠.”

“하지만 저들은 우리 아마고 씨의 적일세. 자네들이 어쩔 수 없이 병사를 내었다면야, 이번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네. 그 동안 주군을 모시고 이즈모 일대 마을을 돌면서 민심을 어루만지도록 하지. 이즈모 국은 정당한 주인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리, 이즈모 국은 이미 정당한 주인을 찾았습니다.”

“무어라?”

“모리 씨는 분명 우리 이즈모 국의 적이겠지요. 그러나 우리 마을 젊은이들은 모리 씨를 따라 종군하는 게 아닙니다. 오직 우리 마을과 이즈모 국을 위해 종군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들 자신이랍니다. 그런 날이 올 줄 뉘 알았겠냐만, 어느새 오고야 말았지요.”

시카노스케의 말문이 그대로 막혔다. 막막함과 더불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불길 뒤편의 어둠처럼 그를 엄습했다.

아마고 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각오가 된 그였다. 그러나 이런 대적을 맞이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자네는 누구인가.”

“그저 촌동네 늙은이입니다.”

“지금 자네의 말은...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네. 일개 촌로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는 말일세.”

“말씀드린 것처럼, 저도 여전히 놀라곤 합니다. 허나...”

노인이 부지깽이로 불을 쑤시며 말을 이었다.

“오공오민, 육공사민 하던 것이 어느 순간 일공구민이 되고 이공팔민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뜻인지,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 어떤 신불(神佛)의 조화라고도 차마 하지 못할 엄청난 일이었지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사람, 그것도 무사가 아니라 농민들 스스로 목소리 내어 외친 덕에 이루어졌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런 신묘한 일을 눈앞에서 보고 듣게 되면... 사람은 생각하게 되지요. 저처럼 배운 것 없고 식견도 짧은 사람조차, 그간 당연하다 여겼던 것을 의심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뭐라도 생각해보려 하게 되더군요.”

“자네가 나를 보았다고 한 지난해 싸움... 자네 아들은 아팠던 적이 없었겠지?”

“물론이지요. 아마고 씨는 언제까지나 우리의 영주님이시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헛된 싸움에 젊은이가 나가 죽을 것까지 있겠습니까. 그해 돌림병으로 유난히 많은 젊은이들이 앓아누웠는데, 싸움이 끝나자마자 쾌차하였으니 이 또한 신불의 보살핌입니다.”

부지깽이를 내려놓고, 시카노스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노인이 말을 이었다. 

“영주님께도, 또 무사님께도 청하겠습니다. 이즈모에 남아주십시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아마고 재흥을 위해 나서지 않겠다 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허나 이즈모 국 백성들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키에는 모리가 있고, 바다 건너 규슈에는 또 그곳 규슈의 영주님들이 계신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를 대표해주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아마고 씨는 거의 멸족을 당하였고, 가신도 나 하나 외에는 모두 흩어졌네.”

“아마고 씨는 그럴지 몰라도, 이즈모 국은 아닙니다. 이즈모 백성들이 모인 이즈모 연대가 뻔히 남아 있는데요. 무사님께서 그곳으로 향해 종군하겠노라 밝힌다면, 저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연대장의 자리는 드릴 것입니다. 거기서 군공을 세우시고 우리 민병들 마음을 얻으신다면 어떻겠습니까?”

노인이 너털웃음 지으며 넌지시 제의했다.

시카노스케 또한 언제부턴가, 노인 따라서 헛웃음을 지었다. 허탈함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항거할 수 없는 힘을 상대로 맞서고자 하였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나온 것인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 *** ---

이전에 종종 언급된 것처럼, 전국시대를 거치며 단련된 일본의 군사전통은 전란을 거치며 거의 사라진 기병 전술에 직면하여 그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사무라이의 기원 자체가 도적과 이민족에 맞서 변경을 지키던 궁기병 집단이었던만큼 기마술 자체는 꾸준히 이어져 왔고, 또 일본 동부의 다케다 씨처럼 비교적 대규모로 기병을 운용한 세력도 있었지만, 서양의 기사들처럼 단지 ‘말 탄 정예병 무리’ 정도를 넘어서는 전술적인 기병 활용법은 전국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상술한 것처럼 기병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본 역시 대기병 전술을 빠르게 발전시키게 됩니다. 정유재란 무렵에는 일본군 기병의 대기병 전술이 명과 조선을 거의 따라잡았다는 조선 측 기록도 나오게 되지요.

원 역사의 아마고 카츠히사는 작중 언급된 것과 마찬가지로 아마고 씨 내부의 갈등에 휘말려 조실부모하고 교토의 한 절에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1566년 모리 모토나리에 의해 아마고 씨가 멸망하고, 겨우 도망친 야마나카 유키모리(시카노스케)가 잔존 세력을 모으면서, 카츠히사는 환속하여 마지막 당주로 옹립됩니다. 그러나 지난화에 언급된 것처럼 이 시도는 끝내 실패하였고, 코우즈키 성에 고립되어 최후의 저항을 하게 되자 카츠히사는 자신이 그래도 조금이라도 무사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가신들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자결하게 됩니다. 옛 아마고 영지였던 지금의 시마네 현에는 그를 추도하는 비석과 공양탑이 여럿 남아있다고 전해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