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93화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올라는 속으로 조금 당황했다.
얘, 얜 또 왜 울어?
“내가 돌아오지 못할 곳에 갔던 것처럼 말하는 것 같네.”
“그런 건 아니지만…….”
“돌아와 주었잖아요.”
그래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듯했다.
비올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상당한 주접이었지만 저게 또 진심이라 타박하기도 애매했다.
툰드라의 얼굴에 미소가 서린 것이 보였다.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너무 진지해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비올라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대화하고 있는 이 순간순간이 모두 소중하고 행복한 듯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휘잉~ 휘잉~ 하고 바람이 불어왔다.
인위적인 느낌의 바람이었다.
‘뭐야?’
비올라는 굉장히 기이한 것을 발견했다.
이 바람은 인공적인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의 출처는 바로 툰드라의 등 뒤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꼬리뼈 쪽이었다.
‘저, 저건 도대체……!’
꼬리가 보였다.
꼬리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마나가 형태를 이루어 집약된 것이었다.
‘꼬, 꼬리가 생겼어?
“너. 언제부터 그게 가능했어?”
“글쎄요.”
사실 툰드라도 잘 몰랐다.
“방금인 것 같아요.”
툰드라는 그토록 고대하던 비올라를 만났다.
진심으로 기뻐한 그의 의지에 감응하여 마나가 움직여 형체를 이루었다.
“되게 평온하네?”
“응당 있어야 할 것이 생긴 기분이군요.”
그게 그렇게 진중하게 얘기할 내용이야?
너 지금 마나를 형체화시킨 거라고.
왜 대수롭지 않은 건데!
「마나를 형체화하여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고 힘든 일로서, 극도로 훈련받은 자만이 가능한 영역이다. 그마저도 출중한 재능을 타고나야 하며 사람마다 편차는 있으나 5급 기사는 되어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마나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가공하여 사용한다는 건 보통 5급 기사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나가 형체를 이루었잖아.”
저 마나는 활용하기에 따라 쓰임새가 무궁무진했다.
단단하게 만들어 뒤에서 찌르는 검을 막아낼 수도 있고, 반대로 길게 확장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다.
사용하기에 따라 어마어마한 효율을 낼 수 있는 능력이었다.
「 「단점이 있다면 체내의 마나를 유형 화하여 사용하는 것에는 큰 체력적 부담이 따른다는 것이었다.」
‘근데……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이 는데?’
비올라는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한 채 물었다.
“왜 체력을 낭비하는 거지?”
“낭비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보니 툰드라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꼬리 형태의 마나를 활성화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숨이 전혀 거칠어지지 않았다.
“마나를 유형화하여 사용하는 것에는 큰 의지와 힘. 그리고 체력이 소모돼. 일반적으로는.”
그때, 툰드라는 그의 인생명서인 반반백서를 꺼내 들었다.
툰드라가 자신 있게 책을 펼쳤다.
내용을 모두 외우고 있던 툰드라는 너무나 자연스레 420페이지를 펼쳤다.
[사람이 스스로의 심장을 컨트롤할 수 없는 것처럼, 반려견도 자신의 꼬리를 제어하지 못합니다.
꼬리의 움직임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보호자는 이를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듯 말했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움직이는 마나 꼬리인 듯합니다.”
별도의 노력이나 의지가 필요하지 않다는 소리였다.
저 힘든 걸 하면서 툰드라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마치 반려견에게 꼬리가 생기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기한테 꼬리가 생겼는데!
‘냄새에 이어 꼬리까지…… 얘 뭐야, 도대체.’
어쨌든 툰드라는 마나를 유형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저 천재적인 재능과 육체라면 감각을 기억하여 다른 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될 거다.
‘저 정도면 메데이아 언니랑 비견될 성장 속도인데.’
메데이아가 열일곱 살에 5급 기사의 자격을 부여받았다.
‘아니. 언니보다 더 빠른 거야.’
메데이아는 태어나면서부터 혹독한 훈련과 노력을 이어갔던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러나 툰드라는 달랐다.
유년기에는 사냥꾼의 자식으로 자랐고, 힉슨 밑에서 수련을 하게 된 것이 불과 5년 전이었다.
5년 만에 이 정도 성과를 이뤄낸 것이었다.
‘어째…… 원작에서보다 더 빨리 성장하는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인데.’
툰드라는 비올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아지가 주인을 계속 쳐다보는 것처럼, 강아지의 세상에는 주인만이 가득한 것처럼.
부담스러워 죽겠네.”
그렇다고 쳐다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툰드라의 꿈을 부정해 버리는 게 되어버리니까.
저렇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남주의 꿈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건 지극히 위험하며 지양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얏호! 나는 물을 주는 퐁퐁이시다!”
퐁퐁이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물을 뿌려댔다.
정말로 정신없는 세계였다.
*****
헤론 공작은 마거리트 꽃밭을 찾았다.
그 옆에는 총집사 칼튼이 공손히 서서 검 한 자루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혹한(酷寒).
마도 명장이자 난쟁이족의 최고 기술자 쿠룸쿠룸이 7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명검이었다.
세계 7대 명검 중 하나였으며 천 천살 공작의 분신과도 같은 아티팩트였다.
“혹한을 직접 드시는 건 오랜만이 네요.”
겨울성의 군주가 혹한을 드는 일은 흔치 않다.
1년 전 ‘눈이 부는 곳’으로부터 내려온 대마물을 사냥할 때도 혹한은 들지 않았었다.
“넬라크 황제 폐하와 검을 나눌 때 혹한을 사용하셨었죠.”
“그랬지.”
“공작님께서는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에 한하여 혹한을 사용하셨습니다.”
칼튼은 묻고 싶었다.
어째서 오늘 혹한을 꺼내 든 것이냐고.
이 마거리트 꽃밭에 혹한이 과연 어울리는 것이냐고.
“나는 하얀 벨라투의 약진을 관찰하고 있다. 메데이아를 볼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더군.”
비올라는 나머지 자식들과는 많이 달랐다.
남들은 선택하지 않는 하얀 벨라투를 선택했고, 하얀 벨라투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있었다.
입양 딸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딛고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활약을 했다.
“비올라는 진일보된 벨라투다.”
“분명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혹한’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칼튼은 공작의 말을 기다렸다.
“어쩌면 메데이아와 진지하게 경쟁을 할지도 모를 일이지.”
“그런 날이 온다면 저도 기쁘긴 하겠지만…… 비올라 공녀는 너무 어립니다.”
이제 겨우 열두 살이다.
어마어마한 성장세를 보여주고는 있으나 이루어놓은 업적에서 메데이 아와 비할 바는 못 된다.
열두 살치고 지나치게 잘한 것이지, 후계자 후보들 중 빼어나게 잘한 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불리하게 시작했으니, 유리한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은 비올라 공녀의 후계자 자격을 진심으로 인정하신다는 뜻입니까?”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없습니다.”
칼튼이 공손히 혹한을 들어 올렸고 헤론이 집어 들었다.
주인을 만난 혹한에 차가운 냉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주변은 고요했다.
그러나 칼튼은 굉장히 시끄럽다고 느꼈다.
귀에는 들리지 않는 마나의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칼튼이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이적 아닌 이적이 벌어져 있었다.
‘마거리트 꽃밭이…….’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증발했어?’
이 넓은 마거리트 꽃밭이 한순간에 증발되어 버렸다.
세상이 녹색과 노란색. 그리고 흰색 가루로 가득 찼다.
일검에 꽃밭 전체를 잘라냈고 혹한이 내뿜는 검기가 꽃들을 분쇄했다.
헤론이 아공간에서 검은 구슬 하나를 꺼내자 안개처럼 퍼져 나간 꽃가 루들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쿠룸쿠룸이 내게 남긴 선물이다.”
마도 명장 쿠룸쿠룸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주에는 블랙홀이라는 무시무시한 것이 존재하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서운 공간이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블랙홀이라고 명명했어.
그러나 사용에 유의하게. 블랙홀은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힘이야.
자네에게 좋은 선물이 되면 좋겠군.”
거대한 꽃밭에 핀 무수한 마거리트꽃들이 블랙홀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블랙홀에 꼭 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담아오게. 가득 머금은 그 기운을 바탕으로 훌륭한 아티팩트를 제작해 주지.’
당시 쿠룸쿠룸은 굉장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했었다.
‘과연 천살 공작이 블랙홀에 담아올 것은 무엇일지 기대가 되는군.
다만, 시체만은 피해주게.’
***
일주일이 흘렀다.
그사이 비올라는 머리가 굉장히 복잡했다.
‘왜? 아버지가 어째서?”
왜 마거리트 꽃밭을 통째로 분쇄해서 없애 버렸을까.
그 탓에 퐁퐁이는 3일 밤낮으로 울었고 비올라는 헤론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모르겠어.’
소설을 끝까지 독파하고 설정집까지 여러 번 읽어봤지만, 이번만큼은 헤론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여태까지는 소설 속 지식들을 이용하여 잘 살아남았는데,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내가 뭔가를 실수했나?’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고, 아버지가 그것에 대한 경고로 마거리트 꽃밭을 없애 버린 건가.
그러던 중, 제논이 입을 열었다.
“헤론 공작님께서 찾으십니다.”
…아버지가?
불안한데, 갑자기.
그런데 제논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내가 직접 전하겠다.”
헤론이 비올라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단순히 걷고 있을 뿐인데 이루 말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화가 난 것 같은 느낌인데.”
약간 이상하기는 했다.
헤론 공작은 화가 나도 그 화를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더더군다나 열두 살의 비올라가 그 화를 읽어낼 수 있을 리는 없다.
‘뭐지? 왜지? 알아내야 해.’
내 방에는 왜 찾아온 거지?
후계자 후보를 직접 찾는 일은 잘없는데.
‘내가 뭘 실수한 거지?’
헤론 공작이 입을 열었다.
“선물이 있다.”
그의 표정과 몸동작이 굉장히 뻣뻣했다.
마치 태어나 처음 해보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