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천렵(2)
“근처에 이런 곳이 다 있었네.”
“상류라 도롯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래. 현지인 아니고서는 잘 모르지.”
강이라기엔 너무 좁고 시냇가라기엔 조금 넓었다. 양쪽에 큰 갈대밭과 논이 있어 흙길로 들어와야 한다. 설사 여길 알고 있다 하더라도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면 캠핑카가 들어가는 큰 하천이 있는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자갈밭에 돗자리를 펼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곳은 아이들이 놀기에 너무나 좋은 장소다.
상류답게 물살은 조금 빠르지만, 기껏해야 허벅지 정도의 깊이. 비 온 다음 날이 아니라면 물에 빠질 일도 없고 자갈밭이라 불을 피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하루가 멀다고 왔던 곳이다. 그때와 똑같은 물비린내와 큰 바위에 강물이 부서지는 시원한 소리가 어쩐지 그리웠던 옛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게 해주었다.
“그런데 너희들 그렇게 입고 다녀도 되냐?”
오일장에서 10장씩 산 냉장고 바지와 민소매 티, 그리고 플립플롭 슬리퍼까지. 셋 다 세상 편해 보이는 복장이다. 재벌 2세들이라고는 볼 수 없는.
“뭐 어때요?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래. 지금 와서 무슨 복장 타령이겠냐. MM 유니폼 입고 사진도 찍혔는데.”
가장 깔끔하게 입고 다녔던 상진이 입에서 상관없다는 말이 나왔다. 복장만큼 새삼 달라진 세 녀석의 성격에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나는 트렁크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자. 화로대부터 설치하자.”
“그냥 바닥에 하면 안 돼?”
“불법이야, 인마.”
일전에 검색을 해봤다. 어린 시절에는 멋모르고 그냥 강가에 불을 피웠지만, 지금은 엄연히 불법이다.
물론 인터넷이라고 모두 정확한 지식을 알려주는 건 아니니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말이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확실한 동네 소방서에 들러 확답을 받아냈다.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멀리 둘러온 이유도 그때문이다.
산림 인접 지역이 아닌 사유지에서 화로대를 설치하고 오인 출동을 방지하는 신고를 했다면 괜찮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행히 이곳은 그 모든 조건에 부합한다. 배추 파종 전에 잠시 놀고 있는 밭은 이장님의 땅이라 전화 한 통에 쉽게 허락을 받아냈고 소방서에서도 요즘 젊은이들답지 않게 성실하다는 칭찬까지 들었었다. 불법인지 확인하는 절차에 무엇이 성실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불 피우면 사람이 지켜봐야 하니까 일단 장작만 올려놓고 얼른 고기 잡으러 가자.”
준비는 간단하다. 빡빡한 된장을 뭉쳐 통발에 달고 물살이 약한 곳에 넣어두면 끝난다.
문제는 족대질이다.
“아무 고기나 잡으면 되므니까?”
“아니야. 우리는 은어만 잡을 거야.”
“은어?”
은어. 민물고기의 황태자.
기본적으로 민물고기는 아이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생선이 아니다. 미묘한 흙내를 동반하고 비린내도 심하며 조리법도 탕이나 조림 같은 아이들이 하기 힘든 조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은어는 다르다.
비린내 대신 은은한 향이 올라와 생선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도 도전하기에 비교적 허들이 낮았다. 게다가 소금을 뿌려 그냥 장작불에 굽기만 해도 되니 조리랄 것도 없다.
잡는 방법도 의외로 간단해서 족대질을 잘하는 친구가 있다면 양껏 먹고 집으로 가져갈 정도로 많이 잡혔다.
여름 한정이긴 하지만 은어 잡기는 물놀이와 별미를 동시에 해결하는, 시골에 몇 없는 생산성 높은 놀이였다.
“일단 더우니까 빨리 들어가자!”
풍덩.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발에 닿자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털이 쭈뼛 섰다.
포인트는 늘 같았다. 큰 바위들 틈과 물살이 빨라지는 구간들.
“나랑 상진이가 족대를 잡고 있을 테니까 너희들이 반대쪽에서 몰아와.”
“어떻게 몰아오므니까?”
“손으로 저으면서 작은 돌도 발로 차. 소란 피우듯이. 상진이 너는 최대한 바닥에 붙이면서 나랑 같이 올라오면 돼. 물고기 걸려도 손에 아무것도 안 느껴지니까 내가 들라고 할 때까지 들면 안 돼.”
“네.”
족대는 그 시절에도 가지고 있는 아이가 많지 않았다. 시즌 한정(?) 도구인 데다 결국 여럿이 물고기를 잡으러 오면 공공재처럼 사용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손이 험한 아이들에게 집에 있는 족대를 가지고 나가라 하는 부모는 잘 없었다. 반나절도 못 가 망가뜨릴 게 뻔했으니 말이다.
대통령도 부럽지 않은 부모님 직업 탑3에 들어가는 문방구집 손자였던 나에겐 전용 족대와 통발이 있었기에 그 시절 우리는 꽤 풍족한 어획량을 자랑했다. 물론 그 어획량은 내 뛰어난 통찰력과 골목 대장 형에게 물려받은 기술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팍팍팍.
족대는 자갈 틈을 비집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여기서 무턱대고 그냥 움직이면 기껏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모두 빠져나온다. 족대를 점점 좁혀 U자형으로 만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이야. 들어!”
한 발짝 거리만큼 가까워진 찰나, 우리 둘은 동시에 족대를 들어 올렸다.
“우와! 5마리나 있네!”
“그러게, 옛날보다 더 잘 잡히는 거 같네.”
옛날엔 무던히도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 천렵을 했다.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도 무더위를 피해 여기에 왔다.
매일같이 잡아대니 고기가 많이 잡힐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가 오겠냐 싶은 시골에 갈대로 가려진 작은 강. 아마 이 녀석들은 몇 년 만에 처음 족대질을 당한 게 아닐까? 이렇게 어획량이 많으면 계획이 달라진다.
“안 되겠다. 오늘 푸지게 잡아서 어르신들 좀 나눠드리자. 상류로 계속 올라가면서 방금처럼 하면 돼. 알겠지? 나는 가서 불 좀 피우고 있을게.”
포인트를 알려주고 내가 족대질을 하면 좀 더 많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 잡힌다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마을 어르신들께 나눠드릴 만큼 잡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이 좋아지니 불도 쉽게 붙네.”
화로대에 장작을 조금 올리고 착화제를 뿌리면 끝이다.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기술이 발전하겠냐 싶었다. 그 시절엔 아직 불이 덜 꺼진 연탄을 집게로 조각내 깡통에 넣어 왔었다. 신문지도 귀한 마당에 성냥으로 잠깐 타오르는 불씨를 살려낼 엄두가 나지 않았던 탓이다.
불이 붙었으면 다음은 고기다.
방금 잡은 튼실한 은어를 꼬챙이에 꽂아 굵은 소금을 뿌려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세웠다. 여기서 포인트는 불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오랜 시간 장작 연기를 쐬며 구워야 한다. 급하다고 불에 직접 넣어 구우면 속까지 익기 전에 껍질이 다 타버린다.
“뭐야, 더 안 잡아?”
“냄새가 너무 좋아서.”
은어를 돌려가며 굽는 와중에 녀석들이 다가왔다.
“아직 한 시간 정도 더 구워야 해.”
“그렇게 오래?”
“그러니까 더 잡아. 지금 얼마나 잡…….”
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살림망 삼아 묶어서 철진이가 들고 온 통발에는 어림잡아 100마리도 넘는 은어가 가득 들어 있었다.
“벌써 그만큼 잡았다고?”
“위로 올라갈수록 더 잘 낚이더라고요.”
“한 다섯 마리만 더 꺼내고, 잠깐 물에 넣어놔. 나중에 들고 가게.”
종일 낚느라 제대로 맛도 못 보는 게 아닐까 했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그렇게 우리는 은어가 익어가는 모닥불에 둘러앉았다. 해가 서서히 넘어가는 시간이라 무더웠던 열기도 한풀 꺾였다.
“다 익었어?”
“아직이라니까.”
원래 이런 모닥불을 피워놓고 서로 속깊은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거의 1분에 한 번 꼴로 다 익었는지 물어보는 철진이의 녹음기 같은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나오니까 좋네.”
나는 축축한 등에 흙이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렁 드러누웠다.
하늘이 진홍빛으로 물들어간다.
노을이다.
노을은 추억의 향수를 불러온다 했던가? 그래서 그리움을 담은 시에는 유독 노을이 많이 나온다 들었다.
점점 진해지는 노을에 나는 희미한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세 사람은 새로운 추억을 새겼다.
* * *
「임시휴업.」
장설우 과장은 선팅이 짙게 된 차 안에서 망원경으로 문방구를 살피다 문에 붙어 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엄청난 악필이군. 임시휴업? 차라리 잘됐다.’
손님으로 위장해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두 번 방문할 구실까지 얻은 셈이다.
타깃을 조사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바로 신분의 노출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만으로도 차라리 뒷조사를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어버린다.
타깃과의 접촉은 1번 내외로 끝내야 하고 그마저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신분 노출의 위험성으로 지양해야 했다.
‘수행팀 에이스답게 깔끔하게 끝내자고.’
수행팀.
대현그룹 내에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무슨 업무를 하는지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비서실도 수행팀에 속해 있기에 막연하게 임원진을 보좌하는 곳이겠거니 짐작하겠지만 그 실상은 회사 내외부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윗선에 보고하는 부서였다.
연봉과 쌓이는 호봉도 해외 지사로 발령을 받은 직원들조차 꿈도 못 꿀 정도로 가파르게 오르고 불명예스러운 일로 퇴직한다고 해도 전관예우 차원에서 만들어진 유령회사에 고문으로 들어가 급여를 받는다.
장설우 과장은 그런 수행팀에서도 부회장의 직통 연락 라인을 받는 유능한 인재였다.
‘자, 슬슬 나가볼까?’
똑똑.
‘응?’
이제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창문을 두들기는 노인의 모습에 당황한 장설우 과장은 일단 창문을 조금 열었다.
“내 아까부터 봤는데 말여. 여짝 당산나무에 차 꽁무니를 그리 대놓고 시동을 켜고 있으면 워짜자는 겨.”
“네?”
“여 나무에 그렇게 매연을 내뿜으면 안 되잔여.”
“아, 죄송합니다. 바로 끄겠습니다.”
“그려. 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말여. 자연을 보호하는 것도 잘 안 하지만서도 이 자원을 애낄 줄 모르는 겨. 우리나라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데 죄다 큰 차에 이렇게 공회전도 오래 하고 이게 참 문제여. 나가 요즘도 경운기나 트랙터 수리도 간단하게 하믄서 보면 이 엔진도 결국 얼매나 오래 썼는지가 관건이여.”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처음 창문을 두드린 용건은 충분히 이해했다. 뒤에 나무가 있으니 시동을 꺼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뒤에 붙은 사족은 도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었고 심지어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근데 누구 찾아온 겨?”
“네? 아, 저…….”
“여짝 동네 자식은 아닌디?”
“무, 문방구에 급하게 물건 좀 살 게 있어서요.”
“이이. 글제? 나가 우리 마을 사람들 아들딸에 손주까정 다 아는디 여기 사람이 아닌 게 딱 티가 나더라고. 근디 호야는 복지관 얼라들이랑 강에 개기 잡으러 갔는데 우째? 아마 늦게 올겨.”
“하하. 다음에 오죠, 뭐.”
“급하다믄서 우째 다음에 온다는 겨.”
‘이 할아버지 쓸데없이 집요하고 예리하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대화에 급한 변명을 지어낸 터라 말에 자꾸 허점이 생겼고 허름한 차림에 초록색 새마을 모자를 쓴 노인은 번번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되물어 왔다.
‘일단 후퇴다.’
“아, 그럼 다른 문방구에 가봐야겠네요. 실례했습니다!”
노인이 또 무어라 입을 열기 전에 얼른 창문을 올린 차는 그렇게 급히 마을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