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6)화 (17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6화

왕지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형, 자요?”

선우주가 눈을 감은 채 숨을 새근거리고 있었다.

‘자는구나.’

확신이 들자 이번에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서리혁은 스페인어 교본을 뒤적이고, 김중현은 스크린을 눌러 보고, 바로 옆에선 김비주가 다이어리를 쓰고 있었다.

“형들.”

왕지호가 입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우주 형, 자요.”

셋이 동시에 행동을 멈추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자?”

“야, 저 아저씨 괜찮은 거 맞아?”

“지호야. 우주 형은 어때 보여?”

이어서 앞자리의 매니저들까지 좌석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얘 괜찮냐?”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음 때문인지 선우주가 ‘흐음’하며 몸을 뒤척였다.

왕지호가 다급하게 소곤거렸다.

“원위치, 원위치!”

다들 원래대로 돌아가서 어색하게 하던 행동을 반복했다.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엉터리 위장수사 같은 장면이었다.

김비주는 볼펜 뚜껑으로 글씨를 쓰고 있고, 서리혁은 책을 거꾸로 들었다.

뒤척거리던 선우주가 다시 잠에 빠져들면서 왕지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주 형, 다시 자여. 아까 이륙할 때 엄청 무서워한 거 같기는 한데 지금은 괜찮아 보여여.”

“휴, 다행이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선우주가 비행기에 대한 공포증을 토로한 건 아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한 집에서 붙어 지낸 시간만 1년이었다.

서로의 습관이나 무의식적인 두려움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TV나 영화를 볼 때마다 비행기가 나오면 무의식적으로 움찔하는 사람인데 어찌 그걸 모르겠는가.

왕지호는 입술을 비죽였다.

‘……자존심만 장난 아니게 세서.’

무슨 나라를 이끄는 왕도 아니고 아이돌 그룹에서 리더란 역할을 맡은 것일 뿐인데.

‘그냥 우리한테 얘기하지.’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좋을 텐데.

그들의 리더는 누군가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괜찮아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건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본인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멤버들의 심리가 불안정했던 데뷔 초와 달리 이제는 멤버들도 어느 정도 성장을 한 상태였다.

‘우리한테 조금은 기대도 괜찮은데…….’

성격상 동생들에게 불쌍한 취급을 받는 건 죽어도 싫어할 거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지금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는 것뿐이었다.

선우주가 곤히 자는 모습을 보는 모두의 얼굴에 안심이 깃들었다.

“아씨, 왜 이렇게 사람 걱정시키냐.”

서리혁이 투덜거렸다.

“얼굴은 또 파랗게 질려 가지고 괜찮다, 괜찮다 하는데. 이 정도면 그냥 무섭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아요?”

“으음. 글쎄.”

김중현이 답했다.

“우주 형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맞아여, 저 같아도 리혁이 형한테는 말 안 해여.”

“이게 진짜.”

서리혁이 상대를 째려보았다.

“너 거리가 멀다고 내가 공격 못 할 줄 알지? 지금 벨트 풀지 말라고 해서 그렇지…….”

“저두여. 이 표시등만 아니었으면 확.”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을 때.

띠링.

벨트 표시등이 꺼지면서 이제 이동해도 좋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오늘은 내가 봐준다.”

“운 좋은 줄 알아여. 형.”

둘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못 말린다는 듯 웃던 김비주가 막내를 불렀다.

“지호야, 우주 형 자는 거 계속 체크해 주고. 혹시 갑자기 식은땀 흘리고 또 그러면 말해 줘.”

“네, 그럴게여.”

“그리고 여기 우주 형이 좋아하는 노래 리스트 담겨 있거든. 이거 틀어 주면 편하게 잘 수 있을 거야.”

“흐어어, 넹…….”

김비주가 건네준 구형 MP3에는 멤버별로 정리된 폴더가 있었다.

거기서 ‘우주형’이란 폴더에 담긴 노래들은 대부분 옛날 포크송이거나 오래된 노래들이었다.

최신 차트 위주만 듣는 왕지호에게 가장 안 맞는 종류였다.

‘와, 진짜 할아버지 취향…….’

머리 위에서 천사와 악마가 빙글빙글 돌았다.

‘비주 형이 말한 대로 그냥 그런 노래 틀어줘. 우주 형 자는데 편하게 해 줘야지.’

‘어차피 자고 있잖아? 네가 원하는 거 들어도 모를 거야.’

고민 끝에 결국 천사의 편을 들어주었다.

왕지호는 서글픈 얼굴로 콜라를 호로록 들이켰다.

‘너무 아픈 사랑은~’하는 가사와 함께 창밖의 구름을 바라볼 때였다.

풍경이 너무 예뻐서 이따가 대만에서 내리면 얼른 누나들에게 사진을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할 때.

“……음?”

선우주의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던 아까와 달리 차분하다고 할까.

무슨 꿈을 꾸는지, 입가도 움찔거렸다. 자세히 보니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다.’

호로록, 콜라를 마시며 왕지호는 해맑게 웃었다.

*   *   *

간만에 좋은 꿈을 꾸어서 그런지 2시간 30분의 비행은 아주 편안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

한 가지 문제를 제외한다면 말이야.

“……아니, 그러니까.”

어이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내가 곤히 자는 바람에 깨우질 못했다?”

“네, 바로 그거예여.”

지호가 빨대 꽂힌 생수병을 후룹 들이키며 말했다.

“너무 열심히 자서 아, 깨우면 안 되겠당 했거든여.”

“우리 막둥아. 형이 그랬잖아. 기내식 나오면 깨워 달라고, 응? 내가 부탁까지 하고 잔 건데.”

“으흥, 그랬나아?”

“……내가 진짜 너한테는 다시는 부탁 같은 거 하나 봐라.”

속이 쓰려왔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내식으로 끼니를 때우려고 아침을 콩알만큼 먹었는데.

갑자기 흔들어서 깨우길래 밥인 줄 알았는데 대만이란다.

-형, 왔어여.

-밥이?

-아녀. 대만 도착했어여.

-…….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숙면을 취한 덕에 착륙할 때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후우.”

속이 쓰리지만 그래도 홀가분했다.

태어나서 첫 비행이라 너무 무서웠는데, 한 차례 겪고 나니…….

여전히 적응이 안 되네.

다시 이륙할 생각을 하니 살이 떨렸다.

하지만 그건 모레 일이고 일단 타이베이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는 타오위안 국제공항.

대만의 중심인 타이베이 외곽에 위치한 공항이다.

수화물을 챙기고는 입국장으로 나가기 전에 ‘파티시에 코리아’ 제작진과 합류를 했다.

“한국보다 한 시간 정도 느리다니까 다들 시간 맞춰 주세요.”

담당 피디의 말에 따라 손목시계를 조작했다.

메인과 서브 작가는 오늘 촬영 스케줄에 대해 큐시트를 보여 주며 간단히 설명을 해 주었다.

보통 지상파 예능에서 메인 작가 님이 우리한테까지 올 일이 별로 없던 터라 신기했는데 알고 보니 인원 때문이었다.

해외 로케이션을 하게 되면 비용 절감을 위해 스탭을 최소화한다나.

그래서 촬영 인력도 간소했고 작가님도 딱 두 분뿐이었다.

우리는 진지하게 설명을 경청했다.

“본격적인 카페 영업은 내일 하게 될 거고요. 오늘은 대만 음식 탐방을 할 거예요. 리액션 컷 위주로 딸 거니까 맛이 있든 없든 모션이나 표정 크게 해 주세요.”

그러면서 대강 방문하게 될 곳들을 알려 주는데 감이 왔다.

이거 관광청이랑 협조하는 거구나.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방송 내용을 들으니 그 이면의 내용이 대강 짐작 갔다.

일일 카페에 대한 제반 사항을 현지에서 협조 받는 대신 우리 측은 대만의 볼거리를 매력적으로 소개하는 윈윈.

“오후에는 각자 판촉물을 들고 길거리 홍보를 하시게 될 거예요. 내용은 다 숙지하셨죠?”

“네.”

박재우 셰프를 비롯해서 출연진 모두가 대답했다.

본격적으로 입국 장면부터 촬영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 일행의 발걸음이 딱 멈춰졌다.

“뭐야? 뭐예요?”

익살맞은 농담을 내뱉던 유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현지 공항 보안 요원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우리를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하는데, 대표로 불려간 피디님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Excuse me? What?”

…이라고 묻는데 현지 보안요원들은 영어로 자꾸만 ‘Wait’ 이러면서 답답해하고 있었다.

상대측 영어가 짧아서 벌어진 일인 듯했다.

피디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아씨, 무슨 공항에서 영어도 잘 못해? 통역, 야! 우리 중국어 통역 없냐?”

“현지 코디네이터는 밖에서 대기 중이에요.”

“아, 통화라도 해 봐. 그러면!”

그때 동생들이 나를 흘깃거렸고, 내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감독님, 제가 중국어 할 줄 아는데요.”

“아, 우주? 그래, 네가 한 번 얘네랑 말해 봐. 뭐라고 하는지.”

피디님이 반색을 하며 그러라는 듯 말했다.

보안 요원들은 자기들끼리 중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야. 이 사람들 못 알아듣는데?」

「요즘 한국인들 중국어 엄청 배운다고 하던데… 아닌가? 영어 되는 애 있으면 불러 봐.」

동생들이 뒤에서 눈을 반짝거리는 가운데 카메라가 내 옆에 따라붙었다.

「저기….」

내가 보안 요원들을 불렀다.

「밖에 무슨 일이 있나요, 지금?」

「어?」

「어…….」

두 남자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되게 친근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두 보안 요원이 내게 상황을 전달해주었다.

「지금 바깥 상황이 엄청 어수선해서요. 보안 인력이 통제를 하는 중이긴 한데 조금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얼마나 걸릴까요?」

무전기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선임자가 말했다.

「5분에서 10분 정도 걸릴 거예요.」

「감사합니다. 고생이 많으세요.」

「아니에요, 오히려 고생이 많으시죠.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그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던 제작진과 우리 일행들에게 내가 설명을 해주었다.

피디님이 물었다.

“그래서 몇 분이나 기다려 달래?”

“밖에서 무슨 행사라도 있나 봐요. 사람이 많이 몰렸다고 5분에서 10분 정도 기다려 달래요.”

“그렇구만.”

안 그래도 밖이 상당히 어수선해 보이기는 했다. 웅성거리는 소음이 여기까지 들려오고.

박재우 셰프가 웃으며 칭찬했다.

“중국어 엄청 잘하시네.”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요? 되게 현지인처럼 말하던데. 중국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 혹시 그런 건가?”

내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뇨, 해외는 처음이에요.”

“와, 신기하다.”

파티시에 코리아의 우승자 명세진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저 그러면 실전 중국어 같은 거 알려 줄 수 있어요? ‘이 요리에 뭐가 들었나요?’ 이런 거.”

“나도, 나도. 우주야, 나도 알려 주라.”

유창현과 명세진에게 초간단 회화를 알려 주면서 시간을 때웠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동생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잡담을 떨었다.

“형, 대만 사람인 줄 알았어요.”

중현이의 감탄에 픽 웃었다. 동생들이 우와앙 하면서 눈을 빛내길래 웃으면서 해명했다.

“오래 배워서 그래. 오래.”

TJ 엔터에서 중국 시장을 목표로 TNT를 기획했을 때부터 중국어 레슨을 엄청 빡세게 시켰거든.

중국어 현지 회화 선생도 데려다가 일대일로 가르치고.

물론 지금은 여기다 몇 가지를 덧붙이긴 했다.

대만 현지 방송이라든가, 이런저런 미튜브 클립을 보면서 최대한 현지인과 비슷한 느낌이 나도록 연습했다.

대만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어를 사용하지만 이런저런 미세한 차이는 존재했으니까.

대륙에서 쓰는 것에 비해 얼화음이 적다거나 권설음이 약하다거나.

최대한 로컬라이징을 해서 톤을 바꾼 덕분일까.

보안 요원들도 그런 차이에 반가움을 느낀 듯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여전히 어수선한 바깥쪽을 가리키며 비주가 말했다.

“밖에 뭐 하고 있는 걸까요?”

“그러게, 뭐가 복잡하다고 하던데. 할리우드 배우들이라도 오나.”

“그건 아닐걸요. 겨울철에는 블록버스터 개봉 안 해요.”

리혁이가 논리적으로 말했다.

“결론은 간단하죠. 파티시에 코리아가 해외에서도 반응을 얻은 거예요.”

“아, 그건가?”

“근데 진짜 한 번 물어봐여. 누구 오는지.”

“아니, 뭘 그렇게까지…….”

호기심 넘치는 동생들의 채근에 다시 보안요원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저기, 죄송한데 지금 밖이 왜 어수선한 건가요? 누가 오나요?」

「누가 오느냐고요?」

그러더니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자기들끼리 웃기 시작했다.

그때 무전기가 치익 울렸다.

뭐라고 무전음어를 주고받던 직원이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직접 확인해 봐요.」

여전히 피식 웃음을 흘리는 이를 보며 갸웃하다가, 일행들과 함께 밖으로 나설 때였다.

“어어……?”

입국장으로 발을 내디딘 그 순간 어마어마한 인파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흐어…….”

그중에서 가장 놀라고 있는 건 우리였다.

거의 눈대중으로도 수백여 명이 될 법한 인파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람도 있고 플랜카드를 든 사람들도 있었다.

한글로 ‘어서 와, 뉴블랙!’ 같은 문구를 보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

여기저기서 귀청을 때릴 만큼 커다란 비명이 들려오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어서 이동해요!」

보안 요원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게이트까지 통로를 만들었지만 워낙 사람도 많아 버거워했다.

유창현이 감탄하며 내게 달라붙었다.

“와, 뉴블랙이 해외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었어? 완전 글로벌하네.”

“저희도 처음 알았어요. 선배님.”

“선배라니. 어허, 돈 많고 잘나가는 사람이 선배지. 어디, 나도 이런 인기에 한 번 편승해 보자.”

자기가 대신 환호라도 받는 양 익살맞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댔다.

그렇게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더니 내게 고개를 기울여 속삭였다.

“친구야, 견적 보니 저기가 현지 언론들이거든? 저쪽 향해서 손 흔들어 줘. 그래야 얼굴 잘 나와.”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동생들에겐 뭐라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눈짓을 슥 하고는 손을 흔들자 똑같이 따라했다.

평소였다면 멈춰서 사방의 풍경을 감상하며 ‘고마워요, 우리 외국 수플레…!’하고 있었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저씨, 으악!”

누군가 팔을 뻗어 리혁이의 가방을 확 잡아당기면서 애가 잠깐 놀랐다.

내가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붙잡고 걸어갔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보안요원들 품 사이에서 뻗어 나온 팔들이 우리에게 뻗어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바깥으로 나와 쫓기듯이 차량에 탑승할 때까지 4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체감으로는 천리길이었다.

“…….”

“…….”

모두가 차량에서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생수병으로 목을 축이고는 애들을 불렀다.

“……얘들아.”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우리 생각보다 유명해졌나 봐.”

*   *   *

이동하는 차량에서 만난 현지 코디네이터, 그러니까 촬영 관련해서 현지 측 일을 해결해 주는 분이 웃음을 터뜨렸다.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었나 봐요?”

“예, 해외 인지도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석환 형이 말했다.

“보통 한국 아이돌이 해외에 간다고 했을 때 공항 인파가 실제 한국 인기보다 더 많다는 걸 알고 있지만… 체험해 보기는 처음이네요.”

“그것도 있지만 뉴블랙이 실제로 대만에서 꽤 팬이 있대요.”

내가 물었다.

“저희가 팬이 있다고요?”

“네.”

“이 정도로요?”

“공항 인파라는 걸 감안해도 있죠. 왜 없겠어요, 뉴블랙이 작년 신인 중에서 제일 빵 떴다면서요.”

당장 어제 신인상 타고 온 거 아니냐며 그가 말했다.

“거기다 그 뭐더라, 대만 방송국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그거가 꽤 인기가 많았대요.”

주세한이 나올 차례인가 싶었는데 상대가 이야기를 한 건 의외의 프로그램이었다.

“잇츠 더 뉴블랙, 맞죠?”

“……어? 네. 맞아요. 저희 리얼리티.”

“대만에도 MTV가 있거든요. 그 리얼리티가 꽤나 인기가 있었다나 봐요. 뭐, 특이한 장면들이 많아서 웹상에서 상당히 반향을 얻었다고.”

그제야 우리가 마스커레이드로 첫 1위 후보에 올랐을 때가 떠오른다.

HBS 상암 타워에서 만난 피디님이 일본에 수출하고, 대만에도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했지.

그게 이런 식으로 흐를 거라곤 생각도 못한 터였다.

고요한 침묵에 빠져들었던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얘들아.”

“형.”

곧바로 감격한 얼굴로 와락 서로를 붙잡았다.

“우리가 인기 있대!”

“역시 김치 통을 터뜨린 건 잘한 일이었나 봐요.”

“크, 그 동안 우리가 쌓아 왔던 흑역사가 빛을 발하고 있어여! 이게 바로 어둠 끝에 빛이 온다는 건가여!”

“고생 끝에 낙이겠지, 바보야.”

“흑역사로 팬을 만들 수 있다니 우리 이제 앞으로 원 없이 흑역사 만들어 보도록 해요.”

“그래, 그러자.”

옆에서 석환 형이 ‘얘들아, 아니야. 절대 아냐. 그런 거 아냐.’ 라고 반복해서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내가 선창했다.

“흑역사.”

“최고!”

“흑역사.”

“만세!”

우와아 하는 우리를 보며 현지 코디네이터와 스탭들이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첫 번째 식당에서 촬영이 재개됐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가운데 유창현이 싱글벙글 웃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며 농을 던졌다.

“이야. 다들 얼굴에 꽃이 피셨네?”

“아닙니다. 푸흐흐…….”

“아닌데? 자꾸 웃음이 새어나오고, 공항에서 엄청 기분 좋았나 봐요?”

“아니에요. 그런 거 가지고 푸흐흐.”

“좋죠?”

“엄청 좋아요. 흐히히.”

생각만 해도 좋다는 듯 꺄르륵 웃는 우리 모습을 보던 박 셰프와 명세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박재우 셰프가 메뉴판을 보다가 내게 말했다.

“그럼 우리 글로벌 인기 스타인 뉴블랙이 주문 좀 해주겠어요? 여기 샤오롱바오요.”

“네, 주문할게요.”

방송이라 그런지 사장님 부부가 같이 나와서 주문을 받았다.

중국식 만두인 샤오롱바오와 다른 메뉴를 주문했는데,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주문하지도 않았던 따끈한 튀김이 나왔다.

「이게 뭔가요?」

「서비스예요.」

주인 아주머니가 푸근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외지에서 활동하느라 고생이 많은 것 같아서….」

「예?」

「……?」

「……?」

상대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대만 사람 아니었어요?」

「제가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공항에서 들었던 ‘응원합니다’가 무슨 의미였는지 이해가 되면서, 머릿속의 퍼즐이 맞춰졌다.

……잠깐만.

이 사람들. 나를 대만 사람으로 알고 있던 건가?

「…….」

아무래도 대만식 중국어를 너무 열심히 연습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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