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73)화 (37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73화

스튜디오.

복잡하게 흐트러진 케이블과 곳곳에 늘어서 있는 촬영 장비가 정글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한국 스탭들에게도 인사하고.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오늘 촬영을 도와주기로 한 일본 스탭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여기저기서 웃음과 함께 인사가 되돌아왔다.

조명을 설치하고 있는 스탭들을 지나 스튜디오 정중앙에 세팅된 테이블에 앉았다.

곧이어 메이크업 쌤들이 다가와 화장을 수정해 주었다.

“우주야. 립은 네가.”

“아, 네.”

쌤에게 받은 립을 슥슥 바르며 트로트를 흥얼거렸다.

“꽃단장~ 꽃단장~ 신나는 노래~”

“푸핫!”

메이크업 쌤들과 동생들이 웃음이 터졌다.

막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엄청 늙은 사람 같아여.”

“아닌데~ 젊은데~”

“맞는데~”

“그건 네 생각인데~”

막내와 노래를 흥얼거리듯 말을 주고받으며 어깨춤을 들썩들썩 췄다.

어깨로 웨이브를 타고, 그 흐름을 손끝까지 부드럽게 흘려보내며 비주에게 손짓했다.

‘네 차례야.’

비주가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받아 주었다.

왼쪽 손끝에서 탄 웨이브가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오른쪽 손끝까지 흘러간 후.

중현이부터 동생들이 웨이브를 주고받았다.

다섯이서 주고받는 그런 모습에 메이크업 쌤들이 감탄하며 말했다.

“너희 그거 같아.”

“어떤 거요?”

“그물에 걸린 낙지 5형제.”

“흐하하핫!”

우리가 박수를 치며 깔깔 웃었다.

그 동안 녹화용 메이크업을 마치고 멤버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방송용 흥~?”

“장착 완료다~!”

어깨춤을 추거나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업시킨 기분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녹화 준비 완료였다.

대강의 방송 흐름을 정리한 대본을 읽는 동안 작가님들이 다가왔다.

“안녕.”

“안녕하세요!”

우리가 웃으며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잘 지내셨어요?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악수를 하며 웃는 작가님들.

바로 오늘 촬영을 맡아 준 ‘키움 프로덕션’ 소속 작가님들이었다.

본래 HBS 쪽에서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 등의 외주제작 맡는 업체로 우리와는 역사 탐험대 시즌1로 연을 맺은 적이 있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요새는 잘 지내세요?”

“그쪽이랑 연을 끊었더니 오히려 편하지. 우리도 너희랑 일하는 게 훨씬 더 좋고.”

“다행이네요.”

HBS의 요청으로 역사 탐험대 시즌2를 만들었는데, 인터넷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것을 가지고 제작사의 역량 부족이라며 엄청 뭐라고 한 듯하고.

어떻게든 역사탐험대 시즌1에 비견될 컨텐츠를 만들어 보라고 압박을 한 모양인데.

원래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업체에게 계속해서 미튜브용 예능을 제작하라고 하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음고생이 눈에 보인다고 할까.

시즌1 끝날 때만 해도 다들 잦은 회식으로 뺨이 빵빵했는데, 지금은 리혁이처럼 종이인간이 되어 있었다.

“종이? 내가 뭐요?”

“아니야. 아무것도.”

“방금 뭐라고 중얼거렸잖아요.”

못 들은 척하며 작가님들에게 말했다.

“저희랑 재미있게 방송 만들어요. 이제.”

“그래, 그러자. 우리도 너희랑 오랜만에 일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기분이 좋더라.”

그렇게 HBS 측 때문에 고생하다가 결국 다른 프로그램 제작까지 다 엎어진 후.

이번에 우리 회사와 키움 프로덕션이 미튜브 컨텐츠 제작을 두고 계약을 맺었다.

전체적으로 뉴블랙이란 그룹이 커지기도 했고.

본래 TV로 송출하는 컨텐츠를 만들던 업체인 만큼 이번 일본 TV 컨텐츠를 만드는데 있어서도 제격이었다.

작가님들이 말했다.

“이번에는 너희가 진지한 분위기로 가기로 했잖아.”

“네.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게 가려고 하지 말고, 힘을 빼고 편안하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조언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일본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튜브 컨텐츠는 잔잔한 분위기로 갈 예정이었다.

아이돌 멤버를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하거나 가학적으로 괴롭히는 장면들이 많은 일본 예능과 달리,

노래나 토크를 통해 본업인 가수로서의 뉴블랙을 어필할 계획이었다.

작가님들과의 소통이 끝난 후.

“자!”

피디님이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하듯 말했다.

“화이팅 한 번 하고 녹화 시작합시다. 자, 하나 둘 셋 뉴블랙!”

“화이팅~!”

박수를 치며 떠들썩한 환호를 지른 후.

빨간 불이 들어온 카메라를 응시하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진지하게.’

‘진지진지.’

뭔가 실패할 것 같다는 예감을 필사적으로 내리 누르며 입을 열었다.

“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희는……!”

“뉴블랙이에요!”

다 같이 오른손을 뻗어 촤악 펼치며 인사한 후.

요란한 웃음을 거두고 다시 차분한 미소를 머금었다.

“네, 저희 뉴블랙이 이번에 ‘The New Black : World’라는 신규 채널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근데 왜 World인가여?”

지호의 물음에 리혁이가 말을 이었다.

“지호 씨처럼 이게 무엇인지 궁금해하실 분도 있을 텐데, 방송국들도 보면 바다 너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World 채널이 따로 있잖아요.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하! 너무 유익한 정보였어여!”

새로운 채널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그런 관계로 오늘은 해외 시청자 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녹화인 만큼 한국어나 일본어, 기타 외국어들을 혼용할 예정이니.”

“자막을 만드실 제작진 분들에게 미리 사과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배꼽인사를 꾸벅하자 제작진이 웃었다.

작가님들이 스케치북에 쓴 ‘현수막!’을 보여 주었다.

“일단 개업 기념으로 현수막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는데, 한 번 펼쳐 볼까요?”

“그럼 카운트 다운할게여. 하나, 둘…….”

“셋!”

파앙- 하는 금박 가루와 함께 스튜디오 뒤편에 걸려 있던 박이 열리며 현수막이 돌돌 내려왔다.

중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본어인가?”

“한국어예요. 거꾸로 보면 보여요.”

“오. 진짜네.”

현수막 설치를 잘못한 것인지 거꾸로 되어 있었다.

설치를 담당한 스탭들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우왕좌왕하는 게 보였다.

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야. 시작부터 대박 징조네요. 원래 이렇게 하는 게 대박이라고 인터넷에서 본 것 같아요.”

“대박 징조다!”

동생들도 동의하며 박수를 치는 가운데 지호가 물었다.

“근데 뭐라고 쓴 거예여?”

“어이 아저씨, 한 번 거꾸로 봐 봐요.”

리혁이가 내 옆구리를 툭툭 쳤다.

동생들이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내가 옷을 바지 안으로 쑥쑥 집어넣었다.

그러곤 바닥을 짚으며 몸을 튕겼다. 석환 형이 멀찍이서 이마를 짚기 시작했다.

“오오!”

물구나무를 선 채 글씨를 읽어 내렸다.

“뉴블랙 World 런칭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박 나세요. 뉴블랙TV 제작진 일동.”

“오오.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동생들 속에서 다시 몸을 일으켜 브이를 하니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스탭들이 와서 재빨리 현수막을 수거한 후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해 볼까요? 오늘은 저희 뉴블랙을 소개해 볼 텐데요!」

「이름하야 ‘Who are you?’입니다!」

내 신호에 동생들과 미리 합을 맞춘 ‘빠밤!’이 화음이 되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발랄하게 웃다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이름을 잘 모르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겉옷 안에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지호가 일어서서 ‘No.5 왕지호’라고 적힌 검은색 티셔츠의 로고를 펄럭였다.

내가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 보이시죠? 가슴에~」

「이름이 있군요!」

다 같이 대박이라는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제작진도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진지하게 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티셔츠를 보여주며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리더인 우주고요. 나이는 22세.」

곧바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와, 저 외국 나왔다고 한국식 나이 버리는 거 봐여. 갑자기 만 나이가 됐어여.”

“우주 형 거짓말 잘하네. 거짓말 맛집이야.”

“어휴. 또 시작이야.”

비주도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디스를 일삼는 3인방에게 입을 지퍼로 잠그는 시늉을 하자, 바로 잠잠해졌다.

「보시다시피 리더로서 이런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에 듣기 좋은 말 좋아하고요. 바른 말 굉장히 안 좋아합니다.」

“와…. 너.무. 잘생기셨다.”

「예, 바로 이런 거 굉장히 좋아합니다.」

뒤이어 특기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동생들도 소개를 이어갔다.

「저는 비주고요. 나이는 스무 살…….」

「김중현이고요. 마음은 열아홉 살인 스무 살이에요.」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녀석들이 시선을 피했다.

비난할 때는 언제고 자기들도 나이를 두 살 낮추고 있었다.

멤버들이 소개를 할 때마다 훈훈한 끼어들기 타임을 가졌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서리혁입니다. 올해 나이는 열여덟 살이고.」

“리혁 씨, 겉에 걸치고 있는 초록색 셔츠가 정말 예쁘네여. 우주 형, 뭐라고 했져?”

“여치인 줄 알았어요.”

“음? 여치가 뭐예요?”

“메뚜기 친구.”

「……이 그룹에서 유일한 정상인 포지션을 맡고 있습니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혁이의 옆에서 ‘우우우~!’ 하면서 몸을 흔들었다.

중현이가 핸드폰 통역 어플에 입력한 ‘너는 메뚜기다’가 울렸다.

떠들썩한 웃음에 멀찍이 헤드폰을 낀 오디오 감독님이 스님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뉴블랙을 소개할 텐데요.”

「저희의 지난 여정을 영상으로 함께 돌아보면서, 중간중간 라이브 무대도 있을 예정입니다.」

지난 2년간 있었던 굵직한 하이라이트를 살피면서 우리가 누군지 소개할 예정이었다.

“자, 그럼 영상 주세여!”

모니터에 첫 번째 영상이 떠올랐다.

저화질.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던 우리는 그만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어……?”

동생들과 나의 동공에 지진이 나기 시작했다.

아닌데.

이거 아닌데.

화면 속에서 날짜로 표시된 ‘2013.12.28.’에 시선이 한 번 갔다가 곧이어 무대에 오르는 5인조에게 시선이 향했다.

“……!”

엄청 풋풋한 느낌이긴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의상이나 메이크업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잔뜩 긴장한 연습생들.

영상 뒤에 ‘2013 합동 연말평가’라고 되어 있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이제 스물두 살이 되는 연습생 선우주라고 합니다.]

‘저는 2학년~ 3반~ 누구누구입니다~’ 하는 어린이의 대사처럼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다 같이 제작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피디님과 작가님들이 뿌듯한 얼굴로 엄지를 들었다.

“…….”

대체 이 영상을 어디서 구한 걸까 했는데, 그 옆에 우리 팀장님의 뿌듯한 미소도 보였다.

“으아아…….”

“나 정말 눈 뜨고는 못 볼 거 같아요.”

리혁이가 손을 들어서 눈만 빼고 얼굴을 가렸다.

중현이도 실눈을 뜨고, 비주와 지호가 내게 어깨를 맞대고 몸을 오들오들 떨 때.

화면 속에서 긴장한 연습생들이 무대 대형으로 섰다.

이윽고 나오는 트로트 전주.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드는 막내의 오프닝에 우리가 손발을 오므렸다.

“으아아아악!”

“저희 못 보겠어요!”

다 같이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   *   *

얼굴이 화끈화끈하다.

“…….”

“…….”

서로 민망한지 동생들도 천장을 바라보며 시선을 피했다.

내가 가까스로 입을 뗐다.

“어, 예… 그.”

“그.”

“정말 뉴블랙의 시작이 맞긴 합니다만…….”

뉴블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첫 무대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다시는 볼 수 없는 퀄리티였다.

잘도 박수 받았구나. 저때.

당시에는 잘해낸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엄청나게 끔찍했다.

구간재생을 해 가며 비명을 질렀다.

“……나 저때 노래 진짜 못 불렀네요. 어우, 창피해.”

“자작랩 창피하다. 정말.”

“춤… 내 춤이 진짜 저랬어?”

“으아아아으. 제 얼굴이 처음으로 보기 싫어졌어여.”

편곡도 뭔가 촌스럽게 느껴진다.

고작 2년이란 시간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냐 싶었는데 그 격차가 내 생각 이상으로 컸다.

보컬이나 댄스 실력이 아예 다르다.

지금 리혁이가 저때의 비주보다 춤을 더 잘 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격차가 컸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팀워크도 다르고.

하나의 덩어리처럼 무대에서 움직이는 지금과 다르게 찰흙을 대충 이어 붙인 느낌이라고 할까.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좋게 생각하면 우리 실력이 그만큼 성장한 거 아닐까요?”

“마, 맞아여! 그거네!”

모두 동의했다.

만약 2년 전 영상을 보았는데, 지금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면 그건 더 문제인 거니까.

합동 연말평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해당 영상에 대해 코멘트를 마친 후.

「자! 그럼 다음 영상 넘어가 주세요!」

「무엇이든 이거보단 낫겠죠.」

장소원 선배와 듀엣으로 부른 첫 음악방송의 Something이 나왔다.

「……전혀 낫지 않네요.」

필사적으로 괴로움을 숨기며 녹화를 이어 나갔다.

동시에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력이 상승하는 구간이 눈에 보이네요.」

「진짜네. 그런 구간들이 있어요.」

계단식처럼 실력이 쭈우욱 나아가다가 갑자기 확확 올라오는 구간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불꽃놀이와 밤바다 무대.

그 전에 Something으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행사를 뛰었던 덕에 보컬이나 무대 매너가 확 늘어난 게 보였다.

두 번째는 바람꽃.

도전, 명곡단이라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쟁쟁한 선배 가수들과 무대를 겨루며 실력이 확 늘어난 듯했다.

세 번째는 나인이었다.

핸드볼 경기장에서의 첫 콘서트를 마치고 나서 또 한 번 비약적으로 실력이 상승한 게 느껴졌다.

“오…….”

그리고 여기서 더 이상 비약적인 실력 상승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어……?”

얼마 전 울릉도에서의 무대와 함께 고베 콘서트의 첫 공연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앞선 영상들과 차이가 느껴졌다.

보컬 실력이 한 단계 더 상승해 있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월드 투어 덕분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리혁이가 물었다.

“소극장 투어 전이랑 후랑 차이가 엄청 큰 거 같지 않아요?”

“그러네.”

매일매일 모니터링을 하기에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소극장 투어 전과 후가 달랐다.

기교면에서도 진보한 부분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감정을 담는, 보컬의 깊이 부분이었다.

더 깊고 풍부해져 있었다.

‘겨울잠’의 첫 무대와 마지막 무대를 비교하며 동생들과 묘한 기분을 공유했다.

더 나아졌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기도 하고. 연습에 보람이 있었다는 사실도 좋고.

팬서비스로 시작한 기획에서 소득을 얻었다는 것도 기뻤다.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라 다들 말없이 눈빛만 교환했다.

「그럼 라이브로 불러 볼까요?」

「음악 주세요.」

곧이어 마이크를 들고 ‘겨울잠’을 불렀다.

메인보컬이 부드럽게 이끄는 가운데 우리가 산뜻한 발자국을 남기듯 노래를 불렀다.

부르면서 확실히 더 나아졌다는 게 느껴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스탭들도 겨울잠을 부르는 동안에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무렵에야 다들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좋네요.」

「좋다…….」

박수를 쳐주는 스탭들에게 고개를 꾸벅했다.

다시 앉아 가장 최근의 공연을 재생하며 묘한 감흥을 느낄 때.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이제 스물두 살이 되는 연습생 선우주라고 합니다.]

최신 영상이 끝나고 자동으로 첫 번째 영상이 다시 한번 재생됐다.

“으아악!”

사이좋게 도망치는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가 담았다.

*   *   *

도쿄 외곽의 한 스튜디오.

중년 가수 마에다 신은 매니저와 함께 허름한 창고 건물로 들어섰다.

“오오.”

환한 조명부터 촬영 장비까지, 외관은 허름한데 안은 굉장히 화려한 느낌이었다.

매니저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신기하네. 이걸로 온라인 방송을 만든다는 거지?’

오늘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뉴블랙이 진행하는 음악방송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뮤직카페라는 프로를 모티프로 삼았다고 하던데.

자세히 아는 바가 없었다.

그가 이곳에 출연한 이유는 바로.

‘너 일 없지? 거기 좀 나가라.’

‘예?’

‘일이 없으면 젊은 애들 방송에 게스트로 나가라고.’

‘예? 별 일이 없기야 한데…….’

‘잘 됐다. 그럼 나가라.’

……호형호제를 할 만큼 친한 트로트 가수 백상교의 따스한 요청 때문이었다.

출연하면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만나면 알겠지.’

어차피 요즘에는 연말 무대가 아니면 방송국에서도 잘 안 불러주는 상황이었으니 어디를 나가든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수염을 긁적이고 있는 동안 매니저가 현장 스탭과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오프닝 로고에 쓸 장면을 녹화하는 중이라서 잠시만 기다려달라는데요.”

“구경은 해도 되나?”

“예, 뭐. 될 것 같던데요.”

뉴블랙이 녹화를 하고 있다는 곳으로 안내를 받아 갔다.

눈부신 조명이 쏟아지는 곳에서 화사한 미모를 자랑하는 5인조 그룹이 보였다.

‘호오…….’

영상을 검색해서 보긴 했는데, 영상 속 그대로 어마어마한 미모의 청년들이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따사해지는 외모.

노래 실력도 동 나이 대에 비견할 가수가 없을 만큼 대단하던데, 목소리도 구슬이 굴러가듯 고왔다.

‘피아노 연주인가?’

눈을 지그시 감은 뉴블랙의 리더.

심호흡을 하고는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저쪽이 바로 그 선명주의 아들이었던가.’

피아노 실력이 어떨지 궁금해 하고 있을 때.

건반을 차례대로 부드럽게 쓸어내려 촤라라락 하는 글리산도로 오프닝을 시작…….

“아야!”

…하려다가 손톱이 걸린 모양이었다.

아우! 하면서 비명을 지르던 리더가 손을 파닥거리더니 이내 상냥한 인상의 멤버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가방에서 손톱깎이가 나왔다.

뽀각. 뽀각.

글리산도를 치기 위해 손톱을 깎는 장면을 카메라가 담는 동안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마에다 신은 당황했다.

‘음? 이런 것까지 찍는 건가…? 아냐. 방송 오프닝에 이런 장면이 나오지는 않겠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진지한 방송 포맷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할 때.

그를 발견했는지 뉴블랙 멤버들이 꾸벅했다.

중년 가수도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하며 그 인사를 받을 때.

녹화가 재개되고 뉴블랙의 리더가 글리산도로 높은 음부터 낮은 음까지 촤르르륵 건반을 미끄러뜨리듯 눌렀다.

‘오호…….’

듣기 좋은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서늘한 인상의 멤버가 오페라를 시작하듯이 경건한 표정으로 손을 뻗으며 한국어 노래를 불렀다.

뉴블랙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눈을 깜빡깜빡이며 그걸 바라볼 때.

멤버들이 ‘아아아~’ 하는 오페라처럼 음을 하나씩 더하며, 마치 성가대 같이 성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음이 더해지면서 갈수록 성스럽게 높아졌다.

뉴블랙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이제 못 나갑니다~

제작진도 바로 그거라는 표정으로 박수를 치듯 손뼉을 짝! 짝 치고 있었다.

마치 뉴블랙교의 집회를 보는 느낌.

짝짝 소리와 함께 ‘못 나갑니다~ 못 나갑니다~’ 하는 멜로디가 귓가에서 웅웅 맴돌기 시작했다.

‘여, 여긴 뭐하는 곳이지, 대체…?’

마에다 신은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상한 곳에 발을 들인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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