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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6)화 (45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6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있다.

“그러니까 멀리서 지켜보자.”

“좋아요.”

팝콘은 없었지만 음료를 호로록 들이켜면서 호호치킨 왕현탁 회장님과 막내아들의 대화를 들었다.

잔뜩 뿔이 난 표정의 막내가 핸드폰을 붙잡았다.

억울하고, 서운하고, 막 눈물이 아른아른한 표정에 겨우 웃음을 참을 때.

“아빠!”

막내가 외쳤다.

“아빠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가 뒤에서 소리 없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가까이 가서 막내를 토닥이며 전화를 도청했다.

-아들? 무슨 일인데 그래?

아버님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아니… 나한테는 커피차 같은 거 보내 준다 만다 하는 말도 없었으면서! 우주 형 드라마는 제작 지원도 해 주고! 커피차도 쏴 주고!”

-그, 그래? 커… 커피차가 왜 거기에 갔을까~?

“…….”

-어떻게 된 건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아! 얼마 전에 직원들이 하겠다고 한 것 같긴 한데….

아버님의 설명에 지호가 비련의 주인공처럼 눈가가 촉촉해졌다.

비주가 아이구… 하면서 막내를 포옹해 주고, 중현이가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졌는지 지호네 아버님이 물었다.

-거기 멤버들도 같이 있니?

“어.”

-어이구 잘 됐다! 우주야!

입을 삐죽이던 막내가 핸드폰을 내밀기에 내가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음료는 잘 받아먹었어~? 우주가 커피를 못 마신다고 그래 가지고, 아저씨가 특별하게 초코 음료를 준비하라고 했어요.

“아. 네에…….”

그 순간, 나는 막내의 눈치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깨달았다.

-이따가 SNS에다가 인증샷 좀 부탁할게. 왜 그 젊은 사람들이 딱 좋아하는 구도로, 호호치킨이 선명하게 나오게! 알지?

“예, 그럴게요…….”

-하하하하! 우리 우주 화이팅이야! 김우주 요원 만세!

“…저 근데 아버님.”

-응?

“실례지만… 지금 지호가 듣고 있는 거 아시죠. 이 통화?”

-……아차.

실시간으로 본인이 망했음을 깨달은 듯 침묵이 이어졌다.

눈이 세모꼴로 변한 막내가 핸드폰을 꽈아악 붙잡았다.

“아빠 눈치 없어? 회장님인데 사회생활 못해?”

-아이고! 미안해, 아들. 아빠가 눈치를 안 보고 산 지가 좀 오래 돼서…….

“아, 몰라. 끊어.”

-아, 아들! 끄, 끊지 좀 말아 봐!

“왜.”

보통 이 타이밍이면 미안하다, 사랑한다, 대왕 커피차 보내 준다 하는 말이 나올 타이밍인데.

흥 하는 막내에게 아버님의 소심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엄마한테는 말 안 할 거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리혁이가 후우 하면서 허공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중현이마저 손을 들어 눈가를 덮었다.

어지러운지 비주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내게 기댔다.

그러곤 다 같이 재빠르게 백스텝을 했다.

“더 이상은 못 지켜보겠다.”

“나도요.”

다행스럽게도 통화는 얼마 안 가 화기애애하게 마무리가 됐다.

30분 동안 미안하다를 100가지로 변주해서 들려준 아버님의 진심이 통했는지 지호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럼 약속대로 우주 형보다 더 큰 커피차 보내 주는 거지…?”

-두 배로 보내 줄게! 덤프 트럭 같은 거에다가.

“리본도 달아 줘야 돼.”

쿵짝이 잘 맞는 부자를 보며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눈이 벌게지긴 했지만 발랄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막내를 보며 우리가 팔을 두르고 오구오구해 주었다.

눈까지 촉촉해졌던 게 민망했던지 막내가 부연 설명을 했다.

“제가 드라마 찍는다고 할 때는 어~ 그렇구나~ 하고 말았거든여. 제가 맨날 전화해서 드라마 얘기 해도 막 아아아~ 이러고. 그러면서 우주 형 드라마에는…!”

“아이구, 아버님이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네.”

“중현아, 과자. 과자 없니?”

“여기 젤리 있어요. 지호야 아~ 하자. 아~”

눈물 젖은 찹쌀떡처럼 뺨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불만을 토로하는 막내를 토닥이며 웃었다.

그렇게 젤리를 먹이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니 준비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와아아-!”

지나가다 멈춰서 구경하는 행인들이 꽤 있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자, 다들 폰카를 들고 찍거나 손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얼마 뒤에 구경꾼으로 꽉 차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곤 현장을 지휘하던 황정구 감독님에게 다가갔다.

“마침 잘 왔네! 이제 준비가 다 되어 가거든.”

그러고는 옆에 서 있는 싹싹한 인상의 남자 배우를 소개했다.

“여기는 우리 요원 S를 맡아 준 성다원 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서로 꾸벅 인사하며 웃었다.

요원 S.

김우주 요원을 따라 다니는 후배 요원 역할인데 등장 빈도가 적어 거의 단역이었다.

“촬영 장면은 아까 설명 들었지?”

“네.”

“복기해 보자. 외계인 가족을 감시하기 위해서 과일상으로 위장한 설정이야.”

감독님이 태블릿 PC의 대본을 보여 주며 설명을 해 주었다.

김우주가 청과물상으로 위장하는데, 장사가 지나치게 잘 되어 버리는 장면.

그리고 비주는 거기서 진상 손님이었다.

몇 번 정도 동선을 맞추고는 곧바로 촬영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럼 의상 갈아입고 촬영 시작하자.”

“네!”

환히 웃으며 의상팀이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   *   *

선우주가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김비주는 보조 출연자들과 함께 과일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어머! 어머!”

수줍게 인사하는 그의 모습에 보조 출연으로 등장한 중년 여성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다른 이들도 눈을 크게 뜬 건 마찬가지였다.

“저 오늘 카메오로 출연하는데 잘 부탁드려요~”

“아유, 우리가 잘 부탁해야지.”

“너무 이뻐요~!”

“어어~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민 아이돌 아니냐며 좋아하는 이들에게 김비주가 부끄럽게 웃으며 손을 하나하나 맞잡았다.

그러고는 멍 때리고 있는 요원 S에게도 인사했다.

“잘 부탁드릴게요.”

“아, 네….”

신인 배우 성다원이 허둥지둥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대사 까먹을 것 같아서 계속 외우고 있어 가지고…….”

“처음이세요?”

“네. 저 학원에서만 배우고 오늘 처음….”

“정말요? 저도 처음인데.”

카메오로 나온 아이돌 멤버와 단역으로 출연한 신인 배우가 달달 떨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진짜 실수하면 안 되는데…….”

“저도, 저 진짜 실수하면 원장님한테 죽거든요. 으으으…….”

무슨 일이 있어도 NG는 안 낸다는 각오를 되새기고 있을 때.

떨고 있는 둘을 보며 웃던 보조 출연자들이 시선을 돌렸다.

“워매.”

누군가의 감탄사가 모든 것을 설명했다.

초록색 앞치마를 매고 다가오는 미남에 주변이 환해졌다.

헤어스타일을 비롯해서 패션까지, 왠지 모르게 잡지에 ‘과일 장사라고요? 저는 꿈을 팝니다’ 같은 부제로 등장할 법한 차림새였다.

얼굴이 얼굴이라 그런지 무슨 옷을 입어도 태가 사는 우주였다.

김비주가 속삭였다.

“저희 형이에요.”

“아, 진짜요?”

신인 배우가 허어 하고 있을 때.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보조 출연자들에게 우주가 씩 웃으며 인사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이게 옷이 지금 도착을 했대요.”

의상팀에서 착오가 있었다는 말을 에둘러 전한 우주가 목장갑을 끼면서 웃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조용히 웃을 때.

과일장사용 메가폰을 든 우주가 ‘아아’ 하면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감독님. 준비됐습니다!

“그래, 갑시다!”

곧바로 레디 액션! 하는 소리에 촬영이 시작됐다.

그리고.

처음에는 손님이 적은 가게라는 설정답게 몇몇 보조 출연자만 과일을 고르기 시작했다.

김우주는 없고, 요원 S 역할을 맡은 성다원만 어색하게 서 있다.

[어서 오세요!]

과일장사는 안 해봐서 서툰 요원 S.

동네 사람들이 와서 과일 구경을 하고 있는 동안 어색하게 손님 응대를 하는 요원 S였다.

그래도 나름 잘 되기 시작하는 장사.

[이거 사과가 맛있어 보이는 사과네! 요것 좀 줘 보세요.]

바로 그때.

[으으음…….]

훼방꾼이 등장한다.

장을 보러 나온 소년처럼 장바구니를 매고 있는 비주.

사과를 사려고 했던 아주머니가 멈칫하고 다시 사과를 하나 집으려고 할때.

[으으으음…….]

[왜 그려요?]

[저… 그게 좋은 사과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요?]

다른 소비자를 도와주려는 착한 진상이었다.

[무농약이라고 하셨는데 이거 농약 들어간 거거든요.]

[어머, 그래요?]

[그리고 요거는… 음,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거긴 하지만 사과 꼭지 부분에 색이 조금 이상하고.]

요원 S가 추천해 준 과일들이 상태가 안 좋다며 사실대로 조곤조곤 설명을 해 주는 비주였다.

[이런 걸 아버님한테 드리라고 추천해 준 거예요?]

[아니, 저 그럼 다른 걸로…….]

[됐어요! 안 사요!]

곧바로 동네 주민들의 인심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손님이 올 때마다 ‘으으음’ 하면서 훼방을 놓은 비주가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요원 S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닙니다. 그러실 수도 있죠.]

이러다 가겠지 하고 요원 S가 넘길 때.

진상이 아예 멈춰서 과일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저, 손님…….]

[네?]

[혹시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건지…?]

[사과 고르는 중이에요!]

뭐라고 욕도 못할 만큼 순수한 미소.

어항을 구경하는 고양이처럼 제자리에 차렷 자세로 선 채 뚫어져라 사과들을 바라보는 미친 사람이었다.

사과를 향해 안녕~ 하면서 손을 흔드는 애드립까지.

‘잘한다.’

‘이 친구 잘하는데요?’

헤드폰을 쓰고 지켜보는 감독과 조감독의 입가에 웃음이 흘렀다.

떨린다, 떨린다 그러더니 정작 현장에 들어가니 뉴블랙답게 성능이 확실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구경하던 뉴블랙 졸개들이 손뼉을 마주하며 음소거로 기뻐했다.

한편.

[으으으음…….]

이어서 오는 손님들도 으으음에 격퇴당하면서 요원 S의 표정이 다급해지기 시작한다.

예산을 쥐꼬리만큼 지원해 주는 조직이라 임대료를 장사로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요원 S는 가게 안에서 노트북으로 외계인 가족을 감시하는 김우주에게 도움을 구한다.

따로 찍을 씬이라 스킵된 장면이 맥락상 지나갔다.

대충 [미친 사람 때문에 장사 망하게 생겼어요!] 하며 하소연하는 후배 때문에 김우주가 출동한다.

[어서 오세요~!]

청년 과일상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모습에 김비주가 마음속으로 웃음을 꾹 참았다.

‘어떡하지. 나 이런 거 진짜 못 참는데….’

이상한 곳에서 마주쳤을 때 나오는 류의 웃음을 참으며 김비주가 뚫어져라 사과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다행히 눈이 마주쳤을 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헤어스타일도 바꿔서 그런지, 웃고 있지만 평소의 선우주와는 다른 비즈니스 웃음이었다.

‘우주 형, 진짜 연기 잘하는구나.’

보통 이런 씬에선 카메오 출연한 멤버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본래 모습이 튀어나오기 마련인데.

정말 모르는 사람을 마주한 눈빛이었다.

왠지 모를 미묘한 서운함을 느끼면서 김비주가 시무룩하게 대사를 이어 갔다.

[마음에 드는 사과가 없네요….]

[그래요?]

서글서글하게 웃던 청년 사장이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요정 대모가 신데렐라를 위해 호박마차를 준비하는 것처럼 손이 슥슥 움직인다.

탐스러운 과일을 골라내어 위로 올리면서 비주가 양손으로 입가를 모으며 비명을 질렀다.

[My god…!]

보기만 해도 웃긴 호들갑 리액션에 모니터 뒤로 구경하던 졸개들이 소리 없이 환호를 했다.

‘진짜 사과 변태 같다…!’

이윽고 김우주의 명찰을 보고 김비주가 호들갑을 떤다.

[김우주?]

[예?]

[반가워요. 저는 김비주예요…!]

‘우린 운명…?’ 하듯이 이름이 비슷하다며 좋아하는 이상한 리액션에 졸개들이 꺄 했다.

그 동안 보조 출연자들이 진입할 준비를 했다.

이제 김우주가 확성기를 들고 ‘장사합니다~’ 하며 호객행위를 하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면.

[아아~]

어디선가 들어본 구수한 ‘아아~’에 보조 출연자들이 겨우 웃음을 참을 때.

김우주의 표정이 바뀌었다.

마치 반평생 과일상을 해 온 노인처럼 구수한 웃음에 배우들은 1차로 공격당했고.

“크흡.”

2차로 지하철 잡상인 같은 말투가 이어지면서 뺨이 미친 듯이 떨렸다.

[안녕하십니까. 주민 여러분. 날이면 날마다 오는 세일이 아닙니다~ 5월은 가정의 달, 가시는 걸음에 좋은 과일 하나 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수박이 하나 있습니다. 씨가 있느냐? 없습니다. 최첨단 수박이지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그 맛! 예, 저도 저희 형님이 가시는 걸 못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보조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스탭들, 구경하던 행인들까지 웃음이 터지면서 NG가 났다.

*   *   *

거대한 웃음이 물결처럼 터져 나갔다.

-흐흐… 흫흐핫하!

메가폰을 들고 뭐라고 말을 하려던 황정구 감독님이 얼굴이 벌게져서 꺼이꺼이 울 듯 웃었다.

보조 출연자들도 웃다가 벽을 짚고 있고.

행인들도 웃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동생들은 아예 배를 잡고 구르고 있었다.

“……?”

이 정도로 웃을 줄은 몰랐다.

대본에 적당히 ‘김우주가 호객행위 대사를 한다’ 라고만 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하는 파트.

“견학 간 청과물 시장에서 실제로 들은 대사인데.”

“우주야!”

이윽고 감독님이 날 부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20대가 그렇게 말해?”

“그… 자유롭게 호객행위를 하라고 되어 있어서요.”

“아니야. 그거 아니야. 아니, 무슨 70대 할아버지가 과일 파는 줄 알았어.”

“…….”

뜨끔했다.

청과물 시장에서 뵌 그분이 70대셨던가…? 되게 과일상 마스터 같은 분이 계셨는데.

황 작가님에게 보여 주면 엄청 좋아할 거라며 웃음을 터뜨리는 감독님에게 내가 물었다.

“그럼 톤을 좀 조정할까요?”

“으음…….”

잠시 고민한 감독님이 말했다.

“아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 장면이니까.”

“네, 그래서 실감 나게 준비했어요.”

“그 정도까지 준비를 바라지 않아. 우주야. 흐흫… 아니, 원래 이게 네 얼굴로 개연성을 때우는 장면이거든.”

“아하……!”

미남이 운영하는 과일 가게로 유명해지는 설정인데.

감독님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것도 설득력이 있네. 나쁘지 않아.”

“그럼 가 볼까요?”

“대신에 조금만 이… 할아버지 톤을 조금 빼고 가 보자.”

“네, 감독님.”

잠시 연습할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졸개들을 소환했다.

“졸개들아!”

“일!”

“이!”

선착순으로 도착한 졸개 1~4에게 사정을 설명하고는 곧바로 톤을 수정했다.

우리 왕 감독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늙은이 말투!”

“아니야. 이거 나름 신세대 말투인데….”

“신세대가 아니구 쉰세대에여. 형.”

“……고치겠습니다.”

3분 동안 받을 수 있는 모멸과 멸시는 다 받으며 빠르게 톤을 수정한 후.

확성기를 들고 말했다.

-저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웃으시면 안 돼요.

다들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작된 두 번째 촬영은.

“푸흡-!”

내 호객행위에 과일을 먹어 보던 보조 출연자들이 뿜으면서 NG가 났다.

*   *   *

대략 3번의 NG 끝에 진지한 분위기가 잡혔다.

NG가 반복되면 촬영장 분위기가 싸해지기 마련인데, <우리 가족은 외계인>에는 훈훈한 공기가 흘렀다.

‘이건 웃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공감대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주가 톤을 조금 조정하면서 촬영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조감독이 말했다.

“우주 씨 너무 잘하는데요?”

“타고났어.”

황 감독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막내가 비하인드 캠을 향해 ‘제가 키웠습니다~’ 하고 소곤거리듯 말했다.

뒤이어 중현이 지호를 가리키며 ‘제가 키웠어요’ 하고. 리혁은 모르는 사이인 척할 때.

현장에선 원래대로 촬영이 들어갔다.

호객 행위를 하면서 김우주가 과일을 먹어 보라고 하기도 하고, 특유의 미소로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맛 좋은 과일을 추천하는데.

[맞아요! 이거 좋은 사과예요! 여기 향이 너무 진하지도 않고 절묘하게 나죠?]

[포도 껍질 색이 진하고 알이 고른, 이거 진짜 좋은 포도예요.]

아까와 달리 과일 덕후가 흥분한 얼굴로 동네 사람들에게 이 과일집 최고다 하며 칭찬을 했다.

처음에는 ‘어, 뭐야 진상…’ 하던 시청자가 보면서 ‘아, 그냥 과일에 미친 자였구나’ 하며 그 일관성에 훈훈한 미소를 보낼 장면.

그리고.

작중에서 아이돌로 활동하는 설정의 김비주가 SNS에 ‘과일가게 대박!’ 하면서 손님이 붐비게 된다.

[어어어어!]

김우주와 요원 S가 밀려오는 손님에 떠밀리고, 그들의 시야에서 발랄하게 이동하는 외계인 가족이 안 보이는 장면.

청과물상을 배경으로 김비주가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으며 콧노래를 부른다.

아삭!

‘외계인 놈들 관찰해야 되는데!’ 하며 애를 쓰는 김우주 무리와 장면이 교차하고 있을 때.

김비주가 씩 웃으며 룰루랄라 걷는다.

[지구 사과는 진짜 맛있다니까~]

알고 보니 진짜 외계인이 눈앞에 있었다, 하는 뉘앙스를 풍기며 끝나는 카메오 출연씬이었다.

“컷! 바로 다음 씬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카메오까지 나름대로 출중한 연기력을 보이면서 촬영장 분위기가 물살을 탄 것처럼 흘러갔다.

현장 스탭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우주야아아아!’

배우들과 감독들의 제1관심사가 드라마의 성공이라면, 스탭들에겐 그와 함께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퇴근이었다.

예상을 웃도는 연기력으로 실수 없이 촬영을 단번에 해내는 우주.

그들이 예상으로 잡았던 시간보다 거의 2배는 단축될 듯한 분위기에 스탭들이 하하하 웃었다.

‘일 빨리 끝내는 사람이 최고.’

그렇게 김우주가 야외 촬영씬을 미친 듯한 속도로 해치우고 있을 때.

다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맏형을 구경하던 동생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어?”

시계를 한 번 보았다가.

“……어어?”

리더를 한 번 보았다가를 반복하던 그들이 얼굴을 맞대고 속닥거렸다.

“이거 일 났네요.”

“얘들아, 이거 어떡하지?”

“우주 형 왜 저렇게 잘하는 거지.”

오늘 그들이 온 이유는 바로 리더에게 깜짝 선물로 밥차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스탭들에게 우리 형 잘 부탁해요~ 하면서 짜잔 하려고 했는데.

“…빠, 빨리 오라고 해야 될 것 같은데여. 이거 이러다가 촬영팀 떠나고 밥차가 올 수도 있어여.”

“전화 걸어보자.”

“…여보세요오오! 어디쯤이신가요오?”

“죄송한데 저희가 지금 밥을 못 먹게 생겼어요…!”

다급하게 발을 구르는 졸개들의 모습에 주변 스탭들이 웃음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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