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71)화 (47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71화

촬영 분위기는 훈훈했다.

역시 우리 도비라며 좋아하는 동생들을 무시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당 바닥에 앉은 연습생들이 수플레빵을 우물우물하며 행복해하고 있다.

“저, 선배님.”

까불까불해 보이는 연습생이 손을 들었다. 이름표에 ‘이기후’라고 되어 있었다.

“네, 기후 씨.”

“선배님께서도 혹시 <온 더 스테이지>를 보셨나요.”

“봤죠. 당연히 봤죠.”

연습생들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밖에서 지금 온 더 스테이지의 반응이 어떤지 물어보려는 듯한데 제작진의 눈짓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바이벌 프로가 엄청 잘나가고 있다는 건 현재 연습생들에게 비밀이었다.

“저희가 멘토링을 하기 전에, 여러분들을 더 잘 알고 싶어서 미리 시청을 하고 왔어요.”

“우아아아…….”

“그래서 저희가 다 눈여겨본 분들이 있어요.”

1회를 보면서 유독 눈에 밟히는 연습생들이 있긴 했다.

나와 성격이 비슷하다거나 처지가 비슷했던 사람들.

연습생들을 훑다가 구석진 곳에서 빵을 우물우물 먹고 있는 ‘모영훈’ 이라는 이름표의 20대 중반 연습생에게 시선이 갔다.

-모영훈? 그 잠깐 있다 간 형?

-어. 이번에 온더스에 나오더라고.

-좋은 형이었던 것 같긴 한데, 잘 기억은 안 나네. 워낙에 짧게 스쳐 가서.

얼마 전에 태현이와 통화를 하면서 나왔던 대화였다.

다른 특기로 연명했던 나와 다르게 그걸 만회할 게 없어서 바로 방출당한 연습생이었다.

몇 달 정도밖에 안 봤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특별하게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다.

끝나고 나서 인사한다면 모를까. 이런 건 티를 안 내는 게 좋다.

“저, 선배님.”

이기후 연습생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선배님께서 가장 눈여겨본 연습생이 있다면…….”

“그건 비밀이에요.”

연습생들이 아아아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는 동안 메인 PD가 1차 녹화분은 이쯤에서 매듭을 지으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습생들이 꾸벅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금 이따가 봐요!”

각자 연습실로 가는 연습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제작진도 본격적인 멘토링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온 더 스테이지>에 초빙된 트레이너들과 인사를 나눴다.

“선배님!”

“우리 귀염둥이들~!”

장소원 선배와 와아아 하면서 웃었다.

“요즘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

“그니까요. 저희 진짜 선배님 보고 싶었거든요.”

“어유~ 또 입에 발린 말 한다. 선우주.”

“진짠데.”

진짜라고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니 상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미소가 보기 좋았다.

연습생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라 그런지 우리에게 가장 각별한 지인이었다.

막내가 말했다.

“그래도 선배님 나오는 방송도 다 챙겨보고 있어여. 이번에 온 더 스테이지에서도 호랑이 선생님으로 나와서 이렇게…….”

“안 돼!”

“이렇게 눈 뜨시고. ‘A팀 다 연습실 밖으로 나와’ 이러시고.”

각도까지 똑같이 재현하는 막내의 모습에 장소원 선배가 얼굴에 손 부채질을 했다.

“아니,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제작진이 이렇게 해 달래. KM 엔터에서도 무섭게 해 주세요 그러고.”

“소속이 다양해서 그런가 보네요.”

“응. 그런 거지.”

리혁이의 말에 장소원 선배가 동의했다.

“애들 소속이 되게 다양해. 뭉치게 하려면 누군가는 악역을 해야 되는 거니까….”

현재 온더스는 KM 엔터에서 데뷔조를 꾸리는 서바이벌이지만 모두가 KM 소속은 아니었다.

KM 엔터가 QT 엔터를 비롯해 다양한 기획사를 인수하고, 그 산하 연습생들까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파벌이 생기기 쉬운 구조라서 트레이너들에게 악당 역할을 담당시킨 것 같다.

아무리 인간들끼리 치고 박아도 일단 외계인이 침공하면 힘을 합치고 봐야 하는 거니까.

“근데 악당 역할 엄청 잘하시더라구여. 저희 보면서 오들오들 떨었어여.”

“그래?”

“이렇게 눈 뜨시고….”

“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변을 맴돌면서 난입 각을 재고 있는 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안녕! 드디어…!”

드디어 말을 나눴다고 좋아하는 윤찬혁의 모습에 우리가 웃었다.

“너희랑 말 한 번 섞는 게 왜 이리 힘든지. 장소원 너는 말이 끝나지가 않냐.”

“반가워서 그러지. 오빠도 정 이야기하고 싶으면 와서 인사하면 되잖아.”

“낄 틈이 없더라. 틈이 없어.”

그러곤 다른 트레이너들에게 손짓을 했다.

“얼른 튀어 와! 뉴블랙이랑 얘기할 기회야!”

“우와아아아!”

“아이, 쪽팔리게. 그냥 걸어와!”

총총총총총.

트레이너들이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 현직 가수나 댄서, 래퍼.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락처를 교환하는 시간도 가졌다.

“여기 사인도 좀 해 주세요….”

“아, 네.”

각자의 조카, 지인을 위해 사인을 해 주는 동안 제작진으로부터 준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 연습실에서 뵐게요.”

“이따 만나요!”

트레이너들과 멀리 떨어졌을 때 동생들과 펭귄 대형으로 모였다.

“자, 이제 잠시 흩어져야 할 시간인데… 각자 잘하고 오고.”

“넹!”

“최선을 다하고 옵시다. 이번에 멘토링한 팀이 꼴찌가 된 사람은 알지?”

꿀꺽.

침을 삼키는 동생들에게 내가 으스스하게 말했다.

“꼴찌 된 사람은 9월 한 달 동안 고기 사는 거야.”

“형.”

중현이가 손을 들었다.

“다음 달이면 정규 앨범 준비 기간인데요. 다이어트해야 돼요.”

“아. 그럼….”

10월은 음방을 뛰고.

“그럼 11월…….”

“그때 어워즈랑 연말 무대 준비요.”

“12월은…….”

“일본 투어 있잖아요.”

한 달 내내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들이 지나갔다는 소식에 슬픈 기분이 들었다.

“그럼 1등 하는 사람이 집에서 하루 동안 맏형 대접 받기.”

“오오오오오!”

그때 막내가 물었다.

“그럼 형은여?”

“나는 막내 할 거야. 힛.”

“…….”

동생들이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내 마음에 비가 내렸다.

“……화이팅이나 하고 저리 가 버려라.”

“흐하하핫!”

하나둘 셋 화이팅! 하고는 동생들과 각자 연습실로 헤어졌다.

1일 맏형이란 타이틀을 걸고 진행하는 우리만의 타이틀 매치였다.

*   *   *

왕지호가 흐뭇하게 웃었다.

‘맏형은 내가 해야지~’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맏형이 되어 소파에 드러누운 다음에 막내야~! 하면서 서리혁을 심부름꾼으로.

-심부름하기 싫은데? 심부름 시키고 싶으면 돈이라도 주든가.

맞다. 이 형은 누구의 말도 안 듣지.

그래도 비주 형과 중현이 형에게 동생, 손~ 하면서 놀릴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히죽히죽 웃을 때.

-맏형? 저는요~? 우주도 아이스크림 먹고 시픈데! 어어? 맏형~ 어디 가세요~?

자존심을 굽히는 데 1초의 망설임도 없는 인간이 머릿속에 스쳐 갔다.

……이게 정말 좋은 선택인 것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서리혁이나 선우주가 1등을 하는 꼴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

‘1등은 내가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는 심호흡을 하고는 환히 웃어 보였다.

방송용 미소를 장착한 왕지호가 문을 열고 연습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왕지호에게 연습생들이 앰프의 음악을 멈추고 인사했다.

“다시 한 번 인사 가겠습니다~! 불꽃놀이 팀을 담당하게 된 뉴블랙의 귀염둥이 왕지호예요! Yeah!”

“와아아아아아!”

“자,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부터 지호 팀이에요! 무슨 팀?”

“지호 팀!”

연습생들에게 손뼉을 치며 ‘왕지호!’ 라고 연호하게 하면서 흐뭇하게 눈을 감았다.

권력의 맛은 참으로 달콤했다.

이래서 아빠가 회사 다닐 맛이 난다고 하는 거구나.

‘어디 보자.’

카메라가 하나둘 셋 넷에 연습실에 설치된 미니카메라까지 합치면 대략 15대.

각각의 각도를 빠르게 스캔하고는 메인 카메라의 각도에 맞춰 미소를 지었다.

“일단 우리 앉아요!”

10명 정도 인원이 둥글게 둘러앉았다.

침을 꼴깍이며 긴장한 연습생들을 바라보면서, 왕지호도 웃어 보였다.

“빵 먹으면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제가 어색해요? 그럼 안 되는데~!”

“아닙니다!”

“너무 긴장하면 제가 더 불편해요~ 저 오늘 평가하러 온 게 아니니까 편하게 있어요.”

“네!”

“다 같이 화이팅!”

“화이팅!”

손뼉까지 치면서 텐션을 끌어 올렸다.

환하게 웃는 그의 표정에 연습생들도 덩달아 웃었다.

“아! 맞다! 이것부터 해야 되는데. 자 다들 이름표를 가려 주세요!”

“아, 네!”

“틀릴 수도 있으니까 바로 말해 줘여~!”

그러곤 아까 외웠던 불꽃놀이 팀 10명의 이름을 하나씩 짚어 말했다.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손을 들던 연습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기억력 좋죠?”

“우와… 네!”

“아까부터 열심히 외웠어요. 칭찬 듣고 싶어서.”

연습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대부분 어색해하지만 호의가 담긴 눈빛들, 물론 그 속에 약간 다른 시선도 끼어 있긴 했다.

‘이 팀에선 저 사람이 제일 나이가 많았나?’

우주 형과 비슷한 나이대의 연습생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빛이 미묘했는데, 아마 19살이란 그의 나이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조금 자존심이 상한 걸까.

‘나이 따지는 사람이 은근 많다니까.’

아무래도 사람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미성년자란 이유로 낮춰 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알아보기 쉬웠다.

“연습한 거 보기 전에 가사지를 한 번 보고 싶은데. 어느 분한테 부탁을 할까~ 선용 님?”

“아, 네!”

“가사지 좀 주실래요~?”

이선용 연습생이 손에 들고 있던 가사지를 가져다주었다.

“필기를 제일 많이 하신 것 같더라구여.”

“엇… 네, 감사합니다.”

“우리 잘해 봐요. 화이팅~!”

어색하게 화이팅 하며 같이 주먹을 쥐는 이에게 눈을 마주치며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비협조적으로 굴면 재미없을 거라는 메시지를 눈으로 보냈는데, 잘 전달된 듯싶다.

그 외에는 어차피 다 또래였기에 장악하기가 쉬웠다.

그렇게 분위기를 이끈 후.

‘가사지가 다 자기 파트 것만 되어 있네.’

어떤 식으로 코칭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한편.

해맑게 웃으며 연습생들을 불렀다.

“자! 그럼 지금까지 연습한 것을 저에게 보여 주세요~!”

*   *   *

흔들흔들~

펄렁펄렁~

“…….”

연습생들의 춤사위를 바라보던 댄스 트레이너가 이마를 짚었다.

‘아이구야…….’

춤 실력은 그래도 나아지고는 있는데 군무를 할 때마다 합이 안 맞아서 문제였다.

무대에서 본다면 좌충우돌이 테마입니까? 우리의 인생사를 표현한? 하는 평이 나올 듯한 느낌.

카메라 뒤편에 있던 작가가 조연출에게 속삭였다.

“지호 씨 대단하네요.”

“그러니까요. 어쩜 저렇게 표정이 안 변하지?”

악마의 편집을 하고 싶어도 표정 변화가 1도 없는 왕지호였다.

조금이라도 눈매를 좁히거나 한다면 방송에 써먹을 수가 있는데.

‘이건 뭐 긴장감 BGM도 못 깔겠네.’

어느 각도를 봐도 완벽한 미소.

그렇게 제작진이 입맛을 아쉽게 다시고 있을 때.

무대가 끝나고 숨을 몰아쉬던 연습생들이 눈을 내리깔았다.

‘……개망했다.’

객관적으로 봐도 망한 무대였다.

이제 날아올 잔소리를 기다렸다.

트레이너들이 매번 하는 간절하지 않냐, 이런 식으로 할 거냐, 하는 말을 기다릴 때.

짝짝.

“……?”

지호가 박수를 가볍게 치며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잘 봤어요! 다들 잘하시는데~?”

“예…?”

“잘 봤다구요.”

지호가 생글생글 웃었다.

“트레이너 쌤들께서도 방향을 잘 잡아 주셔서 제가 뭐 할 게 없는 것 같아요.”

“…….”

“다만…….”

이제 본론인가.

잔뜩 긴장하고 눈치를 보는 연습생들에게 지호가 진지하게 물었다.

“어딘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 들죠?”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얘기해 볼 거예요. 제가 그래도 무대를 여러 번 뛰어 봤잖아요? 왜 이렇게 됐는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진지하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지호가 말했다.

“지금 무대가 파편? 처럼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퍼즐 조각 하나하나는 다 멋진데 이게 완성이 안 되는.”

“네, 맞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무대는 합쳐지지가 않고 있어요. 왜 그러냐면.”

관자놀이 양옆으로 손을 올린 지호가 말했다.

“지금 눈이 이렇게 좁아져 있거든요. 그 뭐였더라. 경주마가 눈을 이렇게 하고 달리는 거 알져?”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야가 좁아지는 바람에 무대에 섰을 때 자기 파트에 급급해지는 건데, 이건 당연한 거예요.”

“…당연한가요?”

“당장 눈앞에 당근이랑 채찍이 막 휘둘러지고 그러는데 어떻게 넓게 보겠어요?”

손짓으로 당근 채찍을 슝슝 하던 뉴블랙의 막내의 말을 다들 이해했다.

매월 혹독한 평이 이어지던 월말평가와도 비교도 안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그들이 겪어 본 상황 중에 최고의 스트레스를 주는 극한 상황이었다.

특히 5팀 중에서 하위권 연습생들이 포진한 불꽃놀이는 다른 팀보다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게 안 끝나여. 데뷔하고 나서 계속해서 무대 올라가고, 또 올라갈 때마다 매번 이렇게 시야가 좁아지거든요. 무대 하는 게 재미있는데 무서울 때가 많아요. 지금 많이 무섭죠?”

“네…….”

“그래서 그 무서움을 줄이려고 제가 왔어요.”

지호가 눈을 찡긋하며 생긋 웃자, 연습생들이 조금 긴장했던 얼굴을 풀고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이제 무대 올라가기 전에 최대한 시야를 넓혀 놓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지금부터 좋은 방법을 알려 줄 테니까 다들 가사지를 들고 무대 대형으로 서 봐요.”

“네!”

“혹시 나는 전체 가사 다 외웠다, 하는 사람?”

“…….”

아무도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지호가 말했다.

“가사지를 대본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 대본으로 생각하면서… 지금부터 자기 파트 될 때마다 한 명씩 일어나서 안무 동작을 보여 주세요.”

곧바로 레슨 같은 분위기 속에서 연습이 진행됐다.

노래 가사가 한 줄씩 이어질 때마다 다른 연습생들은 지켜보고, 해당 파트를 맡은 연습생이 동선을 움직이며 안무와 노래를 선보였다.

그때마다 지호가 해설자처럼 나서서 말했다.

“지금 여긴 어디인 걸까~ 하면서 우주선이 길 잃은 펭귄처럼 있죠?”

“네.”

“그리고 그 다음에 귀엽고 잘생긴 사람이 들어오잖아요~? 왜 들어올까요?”

“길 잃은 사람을 만나러…?”

“비슷해요.”

그렇게 매 파트마다 이어지는 해설에 연습생들의 입에서 계속해서 ‘아!’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이래서 여기 손짓이 이 모양으로 하는 거구나.’

‘이게 이 뜻이었어?’

‘……이래서 트레이너 쌤들이 맨날 가사 외우라고 하는 거였구나.’

보컬 트레이너로부터 전체 가사 다 외우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밥 꼭꼭 씹어 먹어라 정도의 기본 조언으로 넘겼던 연습생들이었다.

눈앞에서 한 편의 연극처럼 각자 자기 파트를 하고, 그걸 지켜보는 동안 왜 그러라는지 이해가 갔다.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니 전체적인 무대의 이야기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무조건 빡세고 급하게, 밤을 새며 연습만 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널찍한 시야였다.

그렇게 몇 번 정도 반복하며 각자 가사를 암기한 후.

“자, 이제 리허설을 해 볼게요~! 0.5배속으로 10번씩 할 거예요! 가사는 전원이 다 부르기!”

“네!”

“저보다 목소리 작은 사람은 간식 없어요!”

지호가 불꽃놀이의 가사를 읊는 동안 연습생들도 필사적으로 목청을 돋웠다.

‘아니 뭔 발성이…….’

연습실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발성이었다.

그제야 눈앞에 있는 인물이 쟁쟁했던 명곡단 1기에서 가창력으로 1위를 거둔 그룹 소속이라는 게 실감났다.

그 동안 동선을 천천히 맞추던 연습생들은 달라진 변화를 느꼈다.

“어……?”

전체적인 흐름이 부드러워졌다.

동시에 짜임새도 생겼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아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달라진 모습이었다.

“어때요? 좋아졌죠?”

“…….”

“이래서 가사를 다 외워야 하는 거예요.”

연습생들이 눈앞에 있는 미남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난 지 30분 만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이끌어 낸 이에게 감탄의 시선을 보낼 때.

“이쯤이면 필요한 조언은 해 준 것 같고. 혹시 궁금한 거 있어여~?”

“선배님, 저 이 부분의 음이…….”

“아, 그 부분이요. 음을 제가 들려줄게요. 여름 별~ 요렇게.”

정확한 음계로 노래 가사를 짚어 주고, 목 상태와 안무까지 점검해 준다.

한 번 질문이 나오니 그 뒤부터는 홍수 같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열정적인 것은 24살의 연습생 이선용이었다.

‘더 배워야 돼! 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물어봐야 된다.’

처음에 어려 보이는 외관을 주목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변화였다.

그를 시작으로 연습생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불꽃놀이에 대해 무슨 질문을 하든 능숙하게 답해 주는 모습에 제작진과 트레이너들이 감탄했다.

“지호 씨가 원래 저런 이미지였나…?”

“아닐걸요. 건강한 막내 정도?”

그들이 예상한 것은 지호가 표정 연기에 대해 조언을 해 주는 장면이었지, 지금과 같은 장면은 아니었다.

그런데 전문분야가 아닌 보컬과 안무까지 숙련된 면모를 보여 주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래서 방송에서 만만한 이미지를 구축한 거구나!’

어차피 우습게 볼 수 없는 실력이기에 방송에서 막 다니는 거구나, 하며 잘못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연습생 애들 표정 봐요. 눈빛이 완전 반했네.”

“나 같아도 저러지. 지금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준 다음에 보따리 100개 준 건데.”

하여튼 가사 외우라는 말 진짜 안 듣는다며 보컬 트레이너가 한숨을 쉴 때, 댄스 트레이너가 말했다.

“근데 방송 나오면 다들 신기해하긴 하겠다. 멤버들 다 이런 식으로 코칭하고 그러면…….”

“다른 멤버들도 그러려나?”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쉬는 시간을 맞이한 지호가 생수를 마시기 위해 그들 근처로 다가왔다.

보컬 트레이너가 환히 웃으며 생수를 내밀었다.

“여기요.”

“앗, 감사합니다~”

열정적으로 가르친 탓일까. 턱선을 타고 땀방울이 그림같이 흘러내린다.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 정석 미남.

땀을 훔치는 지호의 미모를 홀린 듯 바라보던 트레이너들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근데 지호 씨 너무 의외다.”

“제가여? 왜여?”

“이렇게까지 잘 가르칠 줄은 몰랐거든.”

“그래여? 저 잘 가르쳤어여?”

환히 웃던 뉴블랙의 막내가 안도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네여. 저 걱정했거든여. 제가 형들에 비하면 잘 못 가르치는 축이라서…….”

“그래요?”

“다 형들한테 배운 거예여. 제가 어디서 배웠겠어여~”

그런 말에 두 트레이너가 눈을 깜빡거렸다.

자기는 사천왕 중 최약체라고 하는 만화 속 악당 간부의 고백을 들은 느낌이었다.

‘그럼 나머지는 어떻다는 거지…?’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동안, 연습에 들어간 연습생들을 보던 지호가 아! 하고 말했다.

“이걸 깜빡했네. 잠시만요!”

“……?”

중요한 일을 깜빡했다는 듯 급하게 뛰는 막내.

드르륵- 하고 의자를 빼 온 지호에게 모두의 시선이 갔다. 이내 의자를 발판 삼아 그가 손을 뻗친 곳은….

“시계?”

바로 연습실에 걸린 시계였다.

*   *   *

같은 시각.

모니터가 가득한 트레일러에서 5개 연습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피던 메인 PD가 눈매를 좁혔다.

“뭐야?”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뉴블랙 멤버들이 의자를 가져와 시계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제작진으로서는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계는 왜 갑자기 떼는 거야?”

그가 TV 화면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뉴블랙의 다섯 멤버가 다 똑같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연습실에 붙은 시계를 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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