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72화
「온 더 스테이지 ‘뉴블랙’ 경연 편 - 편집본」
검은 암막 앞에 다섯 명의 미남이 앉아 있다.
패셔너블한 진과 셔츠를 걸친 이들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쓸어 넘긴다.
작가의 질문.
[아까 연습실에서 다들 시계를 떼셨잖아요.]
[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비주가 웃으며 답한다.
[어쩌다 보니 습관이 된 거 같아요. 저희끼리 연습할 때 늘 시계를 빼고 하거든요.]
[오호.]
[이제는 시계가 없어야 더 자연스러운…?]
시청자로 하여금 어떠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인터뷰였다.
역시 뉴블랙은 시간 감각을 없애고 연습에만 매진하기 위해 시계도 떼고 연습을 하는구나!
작가가 재차 묻는다.
[어쩌다 이런 연습 방식을 채택하게 됐나요?]
[이게 사실…….]
지호가 입을 열었다.
[레슨 때문에 이렇게 됐거든여. 클모 선생님이라고 미국에 유명한 안무가 쌤이 계시는데. 그분이 특강으로 오신 적이 있어여. 근데 그분이 시간을 굉장히 꼼꼼하게 보셨거든여.]
[30분 딱 되면 60초 휴식,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저희가 그때는 좀 어린 마음으로…? 시계를 떼서 저희한테 집중해 주세여! 하다가…….]
작가진이 웃는다.
중현과 우주가 ‘쏘리 클레이’ 하면서 화면을 향해 검지를 가리키며 끄덕끄덕한다.
그때 리혁이 말한다.
[이제 와서는 그냥 습관처럼 된 거 같아요.]
[우리 연습할 때 이렇게 된 거는… 누가 시작했더라? 나는 지호가 한 걸 본 것 같은데.]
우주가 뒤를 돌아 바라보자 지호가 고개를 저으며 리혁을 가리킨다.
[저는 리혁이 형이 시계 떼는 거 보고 따라한 건데여?]
[그래?]
[아닌데. 나는 중현이 형이 시계 떼는 거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한 거예요.]
촬영 현장이 멀찌감치 잡히며 제작진의 고개가 휙휙 돌아가는 걸 보여 준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일 장면이었다.
지목을 받은 중현이 말했다.
[나는 김비주 보고 시계 뗀 건데. 김비주가 시작 아니야?]
[나 아니야.]
비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우주 형이 떼는 거 보고 한 건데.]
휙휙.
이번에는 다들 우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우주가 눈을 깜빡깜빡하며 묻는다.
[나는 지호 보고 따라 했거든.]
[근데 저는 리혁이 형을 보고 따라 했는데여?]
[어?]
[어어……?]
작가진과 카메라맨들 모두가 눈을 깜빡이고 뉴블랙도 눈을 끔뻑이며 무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다.
리혁이 손을 들었다.
[저 종이 좀 주세요.]
그러고는 관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니까 선우주는 왕지호를 보고, 왕지호는 서리혁을 보고, 서리혁은 김중현을 보고, 김중현은 김비주를 보고. 김비주는 선우주를 보고 따라 했다는 거잖아요.]
[그렇네.]
[아니 무슨 닭과 달걀도 아니고.]
TV 화면으로도 뉴블랙 얼굴 이모티콘과 함께, 화살표가 쭉쭉 그어지며 설명이 나온다.
이때 볼펜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리던 리혁이 물었다.
[그럼 누가 먼저인 거지?]
[어어…?]
[어쨌든 시작이 있을 거 아니에요? 아. 이거 빨리 찾아야 돼요!]
작가진이 웃음을 터뜨리며 으아아 하는 미남들을 바라본다.
멋지게 앉아 있는 것도 잠시, 금세 원래의 올망졸망한 모습이 튀어나왔다.
[빨리 찾아야 되는 이유가 있나요?]
[네.]
리혁이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거 있으면 저 잠 못 자거든요.]
[그리고 이 형이 못 자면 저도 못 자여. 자꾸 방에 찾아와서 논리적인 허점 찾아 달라고 그러고.]
중현이 말했다.
[얘네가 못 자면 우리도 못 자고요. 우리가 못 자면 우주 형이 못 자고.]
[우주 형이 못 자면 리혁이가 걱정이 돼서 잠을…….]
[으아앗! 시끄러워요! 더 헷갈리잖아요!]
진중한 인터뷰가 금방 떠들썩한 웃음으로 바뀌는 가운데.
이윽고 제작진까지 끼어서 과연 누가 먼저였던 것인가를 진지하게 토의하기 시작했다.
* * *
“후후후후후후!”
그의 이름 플랑크톤.
아니 허강민.
KM 엔터의 대표 이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스튜디오 내부를 돌아다녔다.
트레이닝 센터처럼 다섯 개로 나눠진 연습실.
“후후후후후!”
그곳에서 뉴블랙에게 코칭을 받는 연습생들의 모습에 절로 기분이 흥겨워졌다.
“좋구나. 좋아.”
짝짝짝 짝짝짝.
리듬감 있게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던 대표의 모습에, 뒤에 선 KM 직원들이 껄껄 웃었다.
대표가 웃으면 그들도 웃었다.
“많이 즐거워 보이십니다. 대표님.”
“좋지. 좋아.”
허강민 대표가 연습실 복도를 걸으며 말했다.
“내 아들이 고3인 상황이라고 생각해 봐. 대학 보내려고 온갖 학원에 보내고 있어. 논술도 보내고. 국어 학원도 보내고. 온갖 애를 쓰고 있는데 과외 선생님이 온 거지.”
“거의 수능 만점 출신이 온 거네요.”
“아니지.”
그가 말했다.
“수능 만점 정도가 아니라… 조기 졸업을 하더니 거의 박사 학위까지 딴 선생님인 거지.”
유지 보수비만 조금 들어갈 뿐, 거의 돈을 복사하는 기계 수준인 뉴블랙이었다.
모든 기획사 사장들에게 우리 애들도 저랬으면 하는 환상 속의 존재.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야. 지금 현역 중에서도 최정상 그룹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거잖아. 지금 우리 애들한테 필요한 건 트레이닝이 아니야. 연습 방향에 대한 노하우지.”
그러는 사이, 허강민 대표의 눈이 지호가 있는 연습실에 멈췄다.
마치 대본 리딩과 같은 분위기.
연극 리허설을 하듯이 연습생들이 하나하나 가사를 읊으며 동작을 보여 주고 있다.
‘무대에서의 스토리를 중시하는 관점.’
배우를 지망하는 멤버답게 무대에서의 전체적인 스토리 흐름을 중시하는 관점은, 연습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기 파트에 급급한 불꽃놀이 팀에겐 최적의 선택.
“아마 나이가 좀 더 있었으면 쟤가 리더했을 수도 있어.”
나이 있는 연습생들까지 꽉 휘어잡고 이끄는 모습을 보며 웃던 허강민 대표가 걸음을 이동했다.
이번에는 비주가 있는 Nine 팀의 연습실.
안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사를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 사소한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표현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어요. 자, 그럼 각자의 방식으로 따라 해 볼까요?
부드럽게 웃으며 안무 동작 하나하나를 가르쳐주면서, 멤버들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춤선을 찾아 준다.
‘이쪽은 가사 표현력을 중시하는 쪽이고.’
관객들이 가사와 멜로디를 잘 느낄 수 있도록, 몸과 목소리로 가사를 구현하는 표현력.
메인 댄서다운 관점이었다.
비주가 말을 할 때마다, 메인이나 리드 댄서 포지션을 노리는 연습생들의 눈이 반짝인다.
“이쪽은 어떠려나.”
다음에는 리혁이 멘토링 하는 연습실이었다.
-무조건 기본은 노래예요. 우리 직업이 가수잖아요? 안무도 결국에는 노래를 눈으로 보여 주기 위한 과정인 거예요. 선후 관계를 헷갈리면 안 돼요.
보컬 멤버답게 노래를 중시하고 있다.
격한 안무를 하는 와중에도 어떻게 더 듣기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 주고.
안무할 때의 바른 자세를 찾아 주려고 돌아다니는 리혁의 모습이 보인다.
‘맞아. 노래가 기본이지.’
허강민 대표도 동의했다.
그러면서 비주와 리혁 간에 느껴지는 차이점을 보며 웃었다.
“저거 봐. 같은 팀인데도 저렇게 색이 다르다니까.”
“확실히… 뭔가 다르긴 하네요. 이렇게 보니까.”
“각자 관점이 다 달라. 이제 중현이도 보면 다를걸?”
네 번째로는 김중현이 가르치는 바람꽃의 연습실.
껄껄껄껄.
껄껄.
푸근한 웃음소리들이 흘러나오는 연습실에서 저마다 젤리 봉지를 하나씩 든 연습생들이 웃고 있다.
-분위기가 제일 중요한 거야. 연습할 때도 실수하고 가볍게 넘기는 분위기가 돼야 해. 인디안 밥하고.
중현이 하하 웃으며 손바닥으로 바닥을 쿵쿵쿵 쳤다.
“…….”
젤리를 먹던 연습생들이 자세를 고치고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중현의 멘토링이 이어졌다.
-우리가 팝송을 들을 때 가사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 그냥 리듬과 멜로디, 그냥 음악 본연의 느낌이 좋은 거지.
-맞아요.
-무대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바로 분위기야. 완벽하고 오차 없는 무대가 아니라 노래의 분위기를 살리는 무대.
허강민 대표가 끄덕였다.
‘이 말도 맞지.’
CG가 완벽하지만 재미없는 영화와, CG는 그저 그렇지만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면 다들 후자를 볼 것이다.
무대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도 1번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호오…….”
우주의 연습실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허강민 대표였다.
‘역시 우주다.’
보컬부터 시작해서 안무, 랩 등등.
연습생들의 질문에 누구보다 세세하고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뉴블랙의 리더였다.
특히 거의 정석에 가까운 안무 코칭.
“희한하단 말이지.”
“어떤 것이…?”
“우주 말이야. 춤을 완전히 타고났는데, 저렇게 이론적으로 세세하게 아는 게 신기해서.”
보통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은 강의를 잘 못한다.
유명한 축구 선수들이 명감독이 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냥 뛰어서 골을 넣으면 되는데 이게 안 돼? 하면서 안 되는 이유를 알기 힘드니까.
그런데 우주는 누구보다 춤에 대해 빠삭했다. 거의 5년 넘게 춤에 파고든 것처럼.
‘TJ 영감이 한 말이 진짜였나? 춤 못 춘다고….’
영감님이 자존심 상해서 핑계 댔나 보다 했는데, 왠지 모르게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순서가 몇 번째라고 했어요? 1번이 어디야?
단순히 무대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면에 대해서도 집중을 하고 있었다.
다른 멤버와 다르게 무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강조하진 않았다.
다만.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 연습생들에게 전략과 전술을 알려주는 우주였다.
그것이 허강민으로서는 의문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도 데뷔시켜 줬을 거 같은데.’
비주얼 멤버로 돈을 쓸어모을 듯한 얼굴이라 어느 기획사를 가든 도련님 취급을 받았을 텐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온 사람처럼 살아남는 방법에 도가 튼 모습이었다.
‘뭐, 어느 경우든 나쁠 건 없지.’
연습실들을 둘러본 허강민 대표가 기분 좋게 웃었다.
업계 베테랑인 그가 봐도 인상 깊은 실력이니, 연습생들 눈에 어찌 비칠지 말할 것도 없었다.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도움도 될 거고. 그리고 만약에 뉴블랙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 정말 잘된 거고.”
그가 흐뭇하게 웃으며 머릿속의 희망 회로를 돌릴 때.
뒤에서 따라 걷던 직원 하나가 말했다.
“저, 근데 대표님.”
“어?”
“만약에 실력을 발전시킬 생각은 안 하는데, 뉴블랙처럼만 하고 싶어 하면 어떡하죠…?”
“…….”
허강민 대표의 머릿속에 무언가 몽실거렸다.
-대표님. 저 왜 안 된다는 건데요? 저 연기할게요. 일단 배역 하나만 꽂아 주시면 열심히 할게요.
-왜 저희는 소고기 못 먹어요?
-작업실 기계 좀 주세요. 아 이게 기계가 별로니까 작곡이 안 돼요.
-꽃무늬 입게 해 주시면 안 돼요? 허락해 주실 때까지 숨 참을 거예요! 후웁!
일 안 하는 뉴블랙….
그것은 최악이었다.
머릿속이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
“…….”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그런 말을 하며 고개를 젓는 동안 허강민 대표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기분이었다.
진지하게 멘토링을 하는 뉴블랙의 본모습.
‘이 친구들, 본업을 잘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하하 웃으며 연습실들을 둘러보는 한편.
허강민 대표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의지를 불태우는 연습생들을 보며 기특하단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강의가 끝났을 때.
-다들 제가 말한 건 숙지했어요?
-네! 선배님!
-이론은 알았으니 이제 몸으로 익혀야겠죠?
-네!
-그럼 간단하게 반복해 볼게요. 40번 정도 하고 중간평가하러 갑시다.
그 말에 생글생글 웃던 연습생들의 얼굴이 희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허강민 대표가 훗 웃었다.
“니체의 유명한 말이 있지.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너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대표님. 저건 진짜 죽을 거 같은데요.”
허강민 대표는 못 들은 척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한번 겪어 보면 좋지.’
연습생들이 한 번쯤 정상급 아이돌의 연습 강도를 겪어 보는 것도 좋은 일일 터였다.
그러고 있을 때, 연습실 안에 있던 우주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 들어오실래요?’ 하는 우주에게 손을 내저어 보이며 쿨하게 웃은 후.
“후후후후후!”
“…대표님!”
호탕한 웃음과 함께 누구보다 다급하게 도망치는 그였다.
* * *
「온 더 스테이지 ‘뉴블랙’ 경연 편 - 편집본」
화면에 무지개색 줄무늬가 떠오른다.
삐이이이이이-
[화면 조정시간입니다]
[아울러 온 더 스테이지는 철저하게 노동법을 준수하는 방송임을 알려드립니다.]
…하는 자막과 함께 연습생들의 희게 질린 얼굴을 끝으로 뉴블랙TV 영상 제공이란 자막이 뜬다.
애국가.
경례하는 군복 우주 옆에 철갑 소나무 옷을 입은 중현이 흔들흔들 몸을 움직이는 뉴블랙 버전 애국가가 흘러나오면서.
뒷배경으로 흐악, 흐어어어… 하는 연습생들의 소리만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암시할 뿐이었다.
* * *
멘토링은 2시간 정도 걸렸다.
연습생들과 부대끼며 연습도 하고, 어려운 부분도 짚어 주면서 멘토링을 마쳤다.
마무리 연습까지 했을 때.
“와, 대박…….”
“어때요? 많이 달라진 거 같죠?”
내가 찍은 핸드폰 영상 속 자기들의 모습과 2시간 전의 모습을 비교하던 연습생들이 눈을 크게 뜨려고….
하는데 안 뜨였다.
“아, 눈에 힘이…….”
“눈에 힘이 왜 안 들어가지.”
눈이 풀린 연습생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헤헤 웃었다.
그러곤 내게 꾸벅 숙이다가 휘청거렸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니에요.”
“그런데 괜찮으신 건가요? 저희한테 시간을 너무 오래 쓰신 것 같은데…….”
연습생들이 앞다투어 말했다.
“지금 대여섯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선배님 쉬고 가셔야 될 거 같습니다. 아니아니아니… 가서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어서 더 뺏으면 안 될 듯합니다.”
“얼른 집에 가서 쉬셔야 할 시간이 아닌가 싶습, 싶… 아 싶, 십습 뭐지.”
시간을 엄청 많이 썼다는 이상한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그 의미를 깨달았다.
아. 시계 뗐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 2시간밖에 안 지났어요. 여러분.”
“……!”
못 믿는 이들에게 핸드폰 화면의 시간을 보여 주자, 연습생들이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헤롱헤롱 웃었다.
“이래서 원효 대사님이 해골 물을 먹었구나.”
“시계 떼니까 좋죠? 재미있고?”
“……하하하하!”
“가끔 해 봐요. 되게 보람 있고 재미있어요.”
팔다리를 후들후들하며 웃는 연습생들.
흐뭇하게 웃음을 주고받는 광경에 근처에서 지켜보던 장소원 선배가 뭐라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자, 2시간 동안 연습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고요.”
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제 중간평가를 위해 가 볼까요?”
“네!”
경연은 다른 날이지만, 오늘 우리의 멘토링이 끝나고 준비한 중간 평가 시간이 있었다.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냥 2시간 동안 바뀐 결과물을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고, 어머! 세상에! 이렇게 변했구나 하고 신기해하며 편집점을 잡는 장면이다.
내가 연습생들을 이끌고 다시 대강당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저, 선배님.”
“네?”
“혹시 시간 되시면 여기 사인 좀…….”
연습생 하나가 조심스럽게 자기 티셔츠를 내밀었다. 티셔츠에다가 사인해 달라는 모양이었다.
사인펜을 건네받은 내가 웃으며 물었다.
“당연히 되는데. 괜찮겠어요? 이거 수성이라 빨면 지워질 텐데.”
“절대 안 빨 거예요.”
몇 벌 더 있다는 말에 웃으며 연습생에게 사인을 해 주었다.
행운의 상징 우주선까지 그려 주자 기뻐하는 연습생의 모습에 다들 우르르 몰렸다.
“선배님, 혹시 저도…….”
“그럼 저도…!”
10명의 연습생 티셔츠에 모두 우주선 마크가 붙은 가운데.
“갈까요?”
“네!”
위풍당당하게 걷는 우주 팀을 따라 나도 걸음을 옮겼다.
졸개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앞에 10명이 붙어서 든든한 느낌.
그렇게 흐뭇하게 웃는데, 옆에서 따라 걷던 장소원 선배가 으음 하며 말했다.
“쟤네들 근데 뭔가 느낌이…….”
“네?”
“아니 뭔가 느낌이 좀 이상해서. 2시간 전이랑 좀 달라진 거 같거든. 뭔가 떠오른다고 해야 되나.”
“어떤 거요?”
“나도 잘 모르겠네.”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아아, 뭐지 하는 장소원 선배를 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대강당에 1등으로 도착했을 때였다.
빰빰빰 빠바밤.
스타워즈의 제국군이 등장하는 BGM이 들리더니 으하핫! 하는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2등!”
“우아아아아!”
“우리 2등이네요~?”
왁자지껄하게 웃는 지호 팀이었다.
내가 지호에게 왔어? 하며 웃자.
“흐하핫!”
지호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곧 패배할 사람이구나!”
“응? 뭐라고?”
내가 귀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막내 말은 안 들리는데?”
“두고 봐여! 형은 이제 곧 우리 지호 팀에게 패배하게 될 거예여!”
그 말에 지호 팀의 인원들이 으하하 하고 있을 때.
피식 웃던 내가 마찬가지로 피식 웃던 연습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도도도도도.
보폭이 좁은 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리혁이와 낙화 팀이 걸어왔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까딱하는 리혁이와 동료 연습생들에게 까딱하는 팀.
“…….”
멍하니 바라보던 지호와 눈을 마주쳤다.
‘저만 이상해여?’
‘아냐.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해….’
그리고 비주와 Nine 팀도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나긋하고 힐링이 되는 목소리. 팀원들에게서도 화사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팀별로 확연한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뭔가 기괴한 호그와트 개학식 같은 풍경.
그러고 있는 동안, 짝짝짝- 하는 리듬감 있는 박수 소리와 함께 근엄한 형제들이 입장했다.
“중현 팀- 세다↘”
짝짝짝.
“중현 팀- 세다↘”
구호를 외치는 전사들처럼 들어오던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짓고, 팀원들도 허허 웃는다.
그렇게 5개 팀이 다 모여 있을 때.
각 팀을 둘러보던 트레이너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좀 뭔가 이상한 거 같은데…?”
“나 이거 매트릭스에서 봤어. 그 요원 복제되는 거.”
각각의 팀을 둘러보던 나 역시도 이 기묘한 풍경을 보며 말을 잃고 있을 때.
“아! 떠올랐다!”
아까부터 생각이 안 나던 단어가 떠올랐다는 듯, 장소원 선배가 나와 팀원들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메바! 아메바처럼 증식했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선배님 아메바라니요.”
자가 증식하는 미생물 같다는 장소원 선배의 드립에 다들 정신없이 웃는 동안.
반짝반짝.
자신의 표정을 쏙 빼닮은 팀 앞에 서 있는 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
“…….”
그러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뭐.
우리는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