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34화 (93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34화

바닥에서 초콜릿을 쓸어 담고 있는 우리 집 애기.

“지호야.”

“넹?”

“그거… 애기들 하나씩 주우면서 오라고 깔아 놓은 건데.”

“아, 그랬어요?”

내가 자상하게 웃었다.

“보통 바닥에 초콜릿이 떨어져 있으면 ‘아! 아기들 먹으라고 깔아 놓은 거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아. 글킨 하네요.”

지호가 수긍하고는 물었다.

“근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제가 먹어도 돼요?”

“캬악!”

“에이…….”

눈을 흘긴 막내가 초콜릿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가서 애들 데려와.”

“네~”

지호가 종종걸음으로 돌아갔다.

여울이가 그 뒷모습을 보더니 내게 몸을 기울였다.

“지호 삼촌은 언제 어른 돼?”

나와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 삼촌이 좀 철이 없긴 하지.”

“그래도 귀여워.”

철이 없긴 해도 우리 눈에는 귀엽게 보였다.

우리 집의 소중한 사고뭉치.

“지호 삼촌이 귀여워?”

“여울이도 민우랑 유나 보면 귀엽잖아.”

“응.”

“삼촌들도 어린 삼촌 보면 귀여워.”

여울이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 삼촌.”

완벽한 요약에 우리 둘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예요. 왜 웃어요?”

“뭐 재미있는 거 있어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오듯 동생들이 아기들과 걸어왔다.

아이들을 식탁에 둘러앉히는 동안, 여울이가 빈자리를 탁탁 두드리며 지호를 불렀다.

“지호 삼촌.”

“응?”

“여기 앉아.”

“허어! 진짜?”

유일하게 의자를 배정 받은 지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곤 거만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이겼다! 하고 선언하는 듯한 분위기.

“후후후.”

“뭐.”

“봤죠? 여울이가 지금 저한테 같이 앉아고 한 거예요. 형이 아니고 저를 선택한 거죠.”

“응. 그렇구나.”

누가 봐도 ‘아가 삼촌 여기에 앉아’ 같은 분위기였는데 제멋대로 해석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귀여워서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동안 식탁에 둘러앉은 떨떠름한 표정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삼초온~”

쌍둥이 중 누나인 유나가 말했다.

“나 배 안 고파.”

“나두.”

…라고 말하는 모습에 내가 비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끄덕.

요리왕 비룡의 한 장면처럼 비주가 잡채가 담긴 냄비 뚜껑을 들어 올렸다.

뾰로롱!

“옷…….”

“오옷!”

갑자기 확 밀려오는 냄새에 동생들이 눈을 크게 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

“!!”

유나와 민우가 침을 꼴딱 삼켰다.

아기들의 레이더망에 ‘맛있는 음식’이 뾰로로롱 하고 걸린 듯한 느낌.

대뜸 손을 뻗는 아이들을 말리며 말했다.

“삼촌들이 포크랑 접시 줄게.”

접시에 잡채를 담고는 어린이 포크와 함께 건네주었다.

물론.

“쓰지 않는군…….”

그냥 잡채를 손으로 퍼 먹는 쌍둥이였다.

리혁이가 ‘아, 그, 저…’ 하며 물티슈를 챙기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내가 의젓하게 포크로 잡채를 돌돌 말고 있는 여울이를 바라보았다.

“허어!”

세상 감격한 표정으로.

“여울아!”

“응?”

“여울이는 진짜 어쩜 이렇게 포크도 잘 쓰고 그럴까? 어른 같아.”

“어른…!”

격한 칭찬에 새초롬한 표정을 짓는 여울이.

‘나는 어른!’

왠지 모르게 더 의젓하게 먹는 여울이의 모습에 다른 동생들도 포크를 주섬주섬 쓰기 시작했다.

내가 동생들에게 눈짓했다.

‘칭찬.’

곧이어 쏟아지는 칭찬들.

“와아아. 포크를 어쩜 이렇게 잘 쓸까?”

“대박. 포크레인인 줄. 아아아… 김비주, 나 옆구리 아파.”

“포크 잘 쓰네.”

그런 칭찬을 건네면서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방금 전까지 배가 부르다고 하던 아가들이 잡채를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하고 있었다.

우리도 잡채를 접시에 담았다.

“으흠~”

지호가 감탄했다.

“비주 형 레시피는 진짜 실패를 안 하는 거 같아요. 언제 먹어도 맛있어. 넘 맛나.”

“야, 진짜 맛있게 됐다. 이거.”

“간도 적당히 잘 됐는데요? 너무 심심하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딱 내 취향이에요.”

진짜 맛있다.

간도 적절하고, 고기도 넉넉하게 넣어서 면 하나 먹을 때마다 고기가 쑤욱 들어온다.

어느새 쌍둥이가 빈 접시를 내밀었다.

“더 주세요…!”

“더 주세요!”

삽시간에 세 접시를 해치우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결국에는 배가 부르는 법.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행동이 굼떠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작전 성공이다.’

‘성공이군.’

동생들과 사악한 웃음을 공유했다.

배가 부르면 어떻게 되는가?

졸리는 것이다.

눈이 게슴츠레해지는 아기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마트에서도 엄청 뛰어다녔고, 집에서도 엄청 놀았다.’

‘이제 슬슬 졸릴 시간이겠지.’

‘너희는 잠을 잔다! 반드시!’

처음에는 재울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마트에서 장을 보며 느꼈다.

-재워야 잠시 쉴 수 있다.

돌아가면서 놀아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명씩 돌아가며 놀아주면 ‘근데 리혁 삼촌 어디 갔어?’ 하며 없는 사람을 찾았으니까.

유일한 방법은 재우는 것뿐.

잔뜩 배불리 먹인 아기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흡족한 웃음을 보일 때였다.

“졸려?”

“웅.”

눈을 비비는 아가들에게 우리가 말했다.

“그럼 이제 일어나서…….”

낮잠 좀 자러 갈까? 하는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아가들이 의자에서 내려갔다.

촙!

촙!

체조 선수가 착지하듯이 바닥으로 내려온 아이들.

살짝 굽혔던 몸을 터미네이터처럼 일으키던 아기들의 눈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몽롱했던 눈이 똘망똘망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어째서!’

최종보스를 물리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보스가 ‘이제 시작이다!’ 하며 Hp를 풀로 회복한 느낌.

건전지를 새로 갈아 끼운 로봇처럼 아이들의 움직임이 쌩쌩해졌다.

“꺄하하하!”

“꺄아아!”

잡채로부터 영양분을 공급 받은 아이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서 동생들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아닌데?’

‘어어?’

동생들의 눈이 내게 향했다.

“형. 어떡하죠?”

“형.”

“아무 대책이라도 내놔 봐요. 내가 오늘은 무조건 OK해 줄게요.”

무슨 말을 하든 반대하던 리혁이까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는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을 재워야 한다.

그렇다면…….

“간단한 해결책이 하나 있어.”

“뭔데요?”

내가 자신감 있게 웃어 보였다.

“Lullaby를 들려준다.”

“!”

“!!”

동생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와. 그러네요. 왜 이걸 까먹고 있었지? Lullaby 들려주면 애기들 잠든다고 했잖아요.”

“Lullaby가 답이었네.”

정말이지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미튜브를 보면 아이들이 를 듣자마자 꾸벅꾸벅 졸지 않던가.

음원으로도 그런 위력이 나오는데 원곡자인 내가 를 아이들에게 불러 준다면?

“된다.”

“이건 무조건 되는 계획이에요.”

화색이 돈 졸개들과 쏙닥쏙닥 회의를 하고는, 멀찍이서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갸웃하는 애기들을 바라보았다.

“?”

회의를 마친 우리가 아가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응.”

“삼촌이 노래 하나 들려줄까?”

“노래!”

노래와 춤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가들이 행복한 얼굴로 외쳤다.

지호가 박수를 치며 모두를 모았다.

“자, 여러분! 이리로 모여 보세요!”

“네!”

“우리 다 함께 우주 삼촌의 노래를 들을 시간이에요.”

아이들과 함께 소파에 둘러앉은 졸개들을 바라보고는 가방에서 우쿨렐레를 꺼냈다.

손끝으로 부드럽게 현을 튕기니 아이들이 ‘헤에에’ 하는 소리를 냈다.

관객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내가 곧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당신의 밤이

나의 밤과 같기를

짧은 독백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잔잔한 우쿨렐레 전주를 하면서 나의 심상을 전달했다.

아이가 어머니를 위해 쓴 곡이지만, 지금만큼은 아이가 더 어린아이에게 잘 잤으면 하는 마음으로 불러 주는 곡이 되도록.

밤이면 밀물이 와요

흘려보내두었던 감정들

목소리와 기억들

파도에 맡겨 둔 유리병처럼

허밍을 하듯 부드럽게 불렀다.

귓속으로 파도 소리가 처얼썩 하며 나를 간질이는 듯한 감정.

는 그런 곡이다.

별과 바람, 하늘 아래 누워서 당신이 잠을 잘 이룰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 주는 곡이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이.

당신의 곁에는 내가 있어요.

잠시 눈을 감아요

조금씩

잠에 들 거예요

조금씩

고음을 평소보다 더 옅게, 부드럽게 불렀다.

콘서트장에서 불렀던 것보다 조금 더 잔잔하게.

오늘 열심히 논 아이들이 잠시 낮잠을 자고, 조금 이따가 더 쌩쌩한 기운으로 놀 수 있도록.

그렇게 눈을 감고 마지막 후렴까지 불렀을 때였다.

“…….”

“…….”

박수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다.

숨소리만 새근새근 들려오는 분위기.

내가 눈을 살짝 떴다.

“성공했…….”

…이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똘망똘망 바라보고 있는 세 쌍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

“…….”

유나와 민우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고, 여울이가 박수를 치며 수플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혹시 잠은 안 왔어?”

“하나도 안 졸렸어.”

여울이의 말에 동공이 흔들리는 것 같다.

왜지.

왜 안 통했던 거지?

여울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삼촌이 너무 멋있었어.”

“맞아.”

“졸리는데 하나도 안 졸려써.”

아기들의 말을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눈앞에서 그런 무대를 하니 잠이 안 온다!

…라는 극찬이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눈이 똘망똘망하다.

친근한 마트 삼촌이 아니라 대단한 마트 삼촌을 바라보는 느낌.

결국 효과가 1도 없이 막을 내린 작전에 허탈한 미소를 짓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

아기들이 잠을 안 잔 건 그렇다 치는데.

“츠릅…….”

“으으음…….”

입을 벌린 채 실신해 있는 졸개들을 바라보며 내가 미소를 지었다.

너네는 왜 자고 있는 건데…….

*   *   *

HBS 방송국.

<서준이는 마트에서 살아> 제작진 사무실.

“수민이네랑 유빈이네 가족은?”

“평소랑 똑같아요.”

상황실처럼 실시간으로 현황이 공유되고 있었다.

어느 가족은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느 가족이 지금 어디서 어디로 이동 중이다 하는 것들.

보고를 듣던 피디가 이따 진행할 기획에 시선을 돌렸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뉴블랙과 함께 하는 팬 미팅!

모든 출연자 가족과 뉴블랙이 만나고, 뉴블랙이 잠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내용이었다.

물론 원래는 여울이네와 잠시 놀고 나서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피디님. 저희는 그럼 뉴블랙 못 봐요?

-우리 애들이 유치원 수플레인데…….

출연자 부모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시청률이라는 예민한 문제가 있었다.

어지간한 게스트라면 해당이 없는 사항이지만 이번에 출연하는 게스트가 뉴블랙이기에 생긴 문제였다.

-뉴블랙과 나온 가족만 주목을 받는다.

그 회차의 다른 가족들은 자칫하면 묻힐 수도 있는 상황.

그런 형평성 문제 때문에 마지막에는 뉴블랙과 다 같이 모이는 것으로 계획을 잡은 것이다.

“참, 그러고 보니 여울이네는? 촬영 잘 되고 있대?”

“그게…….”

조연출이 입술을 꿈틀거렸다.

마치 웃음을 참듯이.

“왜 그래?”

“우주 씨가 애기들 재우려고 룰라바이를 들려줬대요.”

“오? 그래?”

호기심이 일었다.

“효과가 있대?”

“그게요.”

조연출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현장 카메라 감독이 보내 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우주 씨가 자장가 불러 줬는데]

[멤버들이 자고 있어..]

[(사진)]

기절한 듯한 얼굴로 소파에 널브러진 4인조와 그걸 한심하게 바라보는 우주의 사진.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삼촌들 깨워도 돼?”

“아직 안 돼.”

“심심한데.”

“삼촌들 조금만 더 자게 두자.”

아직 잠이 든 지 10분밖에 안 된 졸개들이었다.

그래도 20분은 재워 줘야지.

“삼촌이랑 소곤소곤 말하기 놀이할래?”

“응.”

“소곤소곤.”

내가 귓가에 바람을 슥 불어 주니 민우가 꺄르륵 웃으며 몸을 틀었다.

그러곤 헉 하며 입을 가렸다.

“소곤소곤.”

“응. 소곤소곤.”

민우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여울이랑 유나가 소파에 앉은 졸개들에게 다가갔다.

깨우려는 건가 했는데 가만히 서서 지켜본다.

“허어어…….”

애기들도 귀엽고 예쁜 건 아나 보다.

여울이와 유나가 허어어 하며 감탄하고는 내게 달려왔다.

“리혁이 삼촌 눈썹 짱 길어.”

“길지.”

특히나 리혁이의 얼굴을 제일 많이 구경하는 모양새였다.

계속해서 철썩 달라붙어 있었던 다른 졸개들과 달리 리혁이와는 거리를 좀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애기들은 뛰어들었지만 리혁이가 되게 조심스러워했다.

-난 아기들이 너무 어려워요.

-왜?

-유리 조각 같아. 내가 말 한마디 실수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어떡해요? 아니면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인데, 그것 때문에 악몽을 꾼다거나…….

-안 그래.

-내가 그랬어서 그래요. 어렸을 때 7세 이용가 보고도 밤에 악몽 꾸고 그랬거든요. 어른이 말 한마디 한 거에 되게 신경 쓰고.

본인이 어렸을 때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 아기였기 때문이라나.

내가 조용히 속삭였다.

“리혁 삼촌이 되게 부끄러움이 많아.”

“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서 그래. 따뜻한 마음을 꽁꽁 감추려고 그러는 거거든.”

“응응.”

여울이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리혁 삼촌 좋아.”

“그래?”

“삼촌이 휴지 되게 많이 챙겨 줬어. 아야 할 뻔할 때도 잡아 줬어.”

아가들이 삐약이처럼 말했다.

“중현 삼촌이 아까 비행기 태워 줬어.”

“지호 삼촌이랑 친구하기루 했어. 비주 삼촌이랑…….”

그런 칭찬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한편.

나는 소파에 앉은 졸개들의 숨소리가 어느새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을 감은 채 귀를 쫑긋쫑긋하는 모습.

“여러분.”

“…….”

“안 자고 있는 거 다 아니까 일어나세요.”

“…….”

스르륵.

졸개들이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아기들이 꺄아 했다.

“삼촌!”

“삼촌!”

꺄악 하며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동생들이 웃으며 반겨 주었다.

개운한 얼굴로 일어난 중현이가 물었다.

“저희 얼마나 잤어요?”

“한 15분.”

비주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졸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괜찮아.”

“형도 잠깐 눈 좀 붙일래요? 자고 나니까 되게 개운해진 거 같아요.”

“나는 안 졸려서.”

졸개들처럼 무의식적으로 깜빡 조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아기들이랑 노는 것이긴 해도 엄연히 지금 방송 촬영하는 중이다.

1분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지.

“자! 그럼 삼촌들이랑 재미있게 놀까?”

“응!”

같이 그림도 그려 주고.

각종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꺄르륵 웃었다.

그렇게 30분.

1시간.

1시간 30분.

2시간…….

그런데.

“왜…….”

우리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왜 안 지치는 거지?”

“어째서…….”

한두 시간 놀면 이제 지쳐서 쉴 법도 한데 아이들은 여전히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결과.

“…….”

“…….”

2시간이 지났을 무렵.

우리는 노을빛이 들고 있는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 하얗게 불태웠다.”

“하아악…….”

그리고 널브러진 우리 다리 사이를 점프하며 돌아다니며 꺄르륵 웃는 아기들.

민우가 요술봉으로 내 다리를 툭툭 치는데도 대꾸할 기운을 내기조차 힘들었다.

지호가 물었다.

“저도 아기 때 이랬을까요?”

“더했을 걸….”

“얘들은 체력이 무한정으로 샘솟나 봐요.”

어른들이라면 진즉에 쓰러졌을 활동량인데도 끄떡조차 없다.

우리보다 한참은 작은 이 애기들의 무한 체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지이잉.

핸드폰에 제작진의 번호가 보였다.

“네, 여보세요.”

이어지는 통화 내용에 내가 벌떡 일어났다.

“1시간이요?”

“형. 뭐예요?”

통화를 종료한 나에게 졸개들의 시선이 날아든다.

내가 침을 꿀꺽 삼키고 답했다.

“1시간 후에 다른 집 애기들도 온대.”

“…….”

“…….”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졸개들의 표정.

리혁이가 낑낑거리며 몸을 일으키다가 그대로 엎어졌다.

“괜찮아?”

“이…대로는 안 돼요.”

리혁이가 엎어진 채 고개를 내게 돌리며 말했다.

“뭔가 해결책이 필요해요.”

“그렇지.”

“이대로라면 애기들의 무한 체력에 끌려다니게 될 거예요.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해요.”

“!”

리혁이가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 옷깃을 붙잡거나 다리를 톡톡 치며 노는 애기들.

종이를 내밀거나 장난감 주사기로 쿡쿡 찌르고.

“삼촌! 그림 또 그려 줘! 포켓몬 그려 줘!”

“환자분. 주사 맞으셔야 돼요. 따콩 해요.”

여울이마저 요술봉을 들고 나를 초롱초롱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론 안 된다.

육아가 어차피 내 뜻대로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그때.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기들이 놀고 싶어 하는 걸 다 들어준다.

하지만 거기에 끝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삼촌! 그리이이임!”

“주사 맞았으니까 약 먹어야 해요. 아콩해요.”

“요술봉….”

이내 한 명씩 애기들과 놀아주는 동안 동생들과 계획을 짰다.

세 명도 힘든데 여기에 네다섯 명이 더 추가되면 그때는 정말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해결책이 필요해.”

“진짜로.”

그런 말을 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할 때였다.

“형들. 형들.”

“응?”

“제가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요.”

우리 막내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곳에서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의 MC들이 보였다.

[안녕! 이슬이 언니야! 우리 어린이들 안녕!]

[안녕하세요!]

머리띠를 한 어린이 프로그램 MC가 능숙하게 진행하면서 아이들을 이끄는 모습이 보인다.

‘이거다!’

‘이거네!’

막내에게 잘 찾았다며 칭찬을 해 주고는 미튜브 영상을 짧게 훑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내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안녕! 친구들! 배추돌이야!]

배추 모양을 닮은 헝겊인형이 입을 뻐끔거리며 이슬 언니와 대화를 하는 장면.

내가 곧장 종이에 스케치를 했다.

“비주야.”

“네.”

“이거 가능할까?”

“될 거 같아요.”

곧바로 부엌으로 가서 재료를 손질하는 비주.

리혁이가 공학도처럼 무언가를 빠르게 조립하기 시작했다.

먹으려고 사 온 바게트빵.

거기에 눈처럼 붙는 토마토 슬라이스와 입술.

“됐어요.”

완성.

바게트를 받아 든 내게 동생들이 말했다.

“얼른 해 봐요. 얼른.”

“잠시만.”

내가 바게트를 받아 들었다.

이내 헛기침을 하고는 복화술을 하며 바게트를 움직였다.

[안녕. 나는 바게트 삼촌이야.]

“허어!”

“이거다!”

졸개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애기들도 좋아하겠지?

주변에서 우릴 지켜보던 아기들에게 내가 바게트를 들어 보였다.

[안뇽. 바게트 삼촌이야.]

“…….”

“…….”

3초간 정지한 아기들.

툭.

민우가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을 떨어뜨렸다.

“으…….”

“응?”

“으아아아앙!”

내가 들고 있는 바게트를 흔들어 보이며 웃자, 민우가 갑자기 뿌앙 하며 울었다.

단체로 울기 시작하는 아기들.

“!”

“!!”

……이게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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