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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 멋진 아빠란 (7) >
아빠는 축구인생 2회차
30화 멋진 아빠란 (7)
골라인에서 약 한 뼘 정도 나와 있던 시흥의 골키퍼는 반사적으로 폴짝 뛰어 두 손을 뻗었다. 이맛살은 와락 구겨졌다.
파 포스트에서 니어 포스트로 가로질러 들어가는 공이 자신의 내지른 손끝을 장애물 넘어서듯 아슬아슬하게 스쳤으니까.
공의 방향을 틀진 못했다.
금세 촤라락~ 하고 골망이 물결쳤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올~! 마인구우우우!]
[반대편 포스트 아래로 쏙 떨어진 헤더 고오오올!]
해설진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또다시 이른 시간만에 득점이 터졌다.
[득점 머신이군요! 마인구 선수우우우!]
[미쳤습니다! 한강의 스카우트들을 칭찬해야 할 정도에요!]
예에에에에에에!
홈팬들은 단체로 기립해 환호와 함께 박수갈채로 화답해주었다.
“예에!”
평소 득점이 터져도 돌상같던 박동일도 이번엔 불끈 쥔 주먹을 휘두르며 짧게 포효했다.
득점에 성공한 마인구는 코너플래그로 설렁설렁 달려가 이내 어느 한 지점을 검지 끝으로 가리켰다.
해설진은 궁금증이 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요?]
중계 카메라는 자연히 인구가 가리킨 방향으로 돌아갔다.
해설진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꼬마 숙녀로군요!]
그 말처럼 코너 플래그 정면 펜스. 새하얀 패딩점퍼에 곰 무늬가 새겨진 꼬마 숙녀, 세나가 두 팔 벌려 소리치고 있었다.
“아빠아아아~! 코이뚜우우우!”
인구는 당장 달려가 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꾹 참았다.
이른 시간 만에 온몸이 땀으로 번들거렸으니까.
대신 인구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봤나, 우리 딸? 이게 아빠야.
* * *
시흥의 감독, 이연겸은 고작 한 골을 허용했다고 해서 무너질 위인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보다 더 날카로워진 눈매로 지시했다.
“4-4-2 플랜에서 5-3-2로 전환한다. 디펜시브 라인을 비롯한 미들라인의 선수들도 한 단계 낮은 위치에서 임하도록.”
“아, 옙!”
이연겸의 지시에 수석코치가 곧장 테크니컬 에어리어 끝자락에 서서 선수들에게 외쳤다.
한편으로 수석코치는 의문이 따랐다.
‘굳이 라인을 내릴 필요가 있어?’
비록 한 골을 실점했다지만 전체적인 개인 기량 면에서 시흥은 한강을 압도한다.
그러니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반면 이연겸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경기 때와 다른 플레이를 고수하고 있군.’
그 서슬퍼런 눈은 오직 마인구만을 살피고 있었다.
현재 그는 시흥의 디펜시브 라인 안에서만 머무는 중이었다.
‘전 라운드에선 이른 시간에 모든 체력을 다 쏟는 듯 움직였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그는 첫 개막전에서 보였던 것처럼 설렁설렁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르다.’
비슷하지만 달랐다.
목동전에서의 그는 오직 결정적인 역할만 하였다.
그러나 오늘 시흥과의 대전에서 마인구는 전방에서 공을 잡으면 누구보다 간결하고도 기민한 플레이를 펼치는 중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툭!
[오오! 수비수를 등지다 말고 흘러온 공...! 곧바로 백 넛매그를 구사하는 마인구!]
[우측 깊숙이 올라온 한강의 라이트백에게 다이렉트로 연결됩니다아아!]
툭, 탓!
[마인구! 오른발 스터드로 공을 안쪽으로 굴렸다가 말고 아웃프런트로 차내...! 아아! 다시 인프런트로 굴리...!]
툭!
[오오오! 재차 넛메그으으!]
철푸덕!
[수비수가 마인구 선수의 신들린 무빙에 그만 주춤되다말고 엉덩방아를 찧어버리네요!]
이연겸의 눈 밑이 미약하지만 떨렸다.
활동량을 죽인 대신, 시흥의 디펜시브 지역에서 저런 플레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즉각 포메이션을 변경하고 라인 자체를 낮춰버렸다.
조금 전 실점으로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한순간의 라인 브레이킹으로 득점을 기록했어.’
순간 파고드는 움직임만이 아닌, 저런 식의 기민한 발재간으로도 뒤가 뻥뻥 뚫렸다.
딱 잘라 말해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이연겸으로선 디펜시브에 숫자를 늘려서라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전반전 13분.
투웅!
“헉...!”
시흥의 센터백 김민중은 화들짝 놀랐다.
방금전만 해도 바로 앞에서 길게 하품을 하던 마인구가 불시에 자신의 우측 배후를 파고들었다.
슈욱-!
때마침 김민중의 머리 위로 공 하나가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지나쳤다.
“이익!”
기겁한 김민중은 급히 돌아서 페널티 우측 에어리어로 파고든 마인구를 저지하고자 했다.
‘파울은 무리야!’
자칫 페널티킥을 허용할 수 있었기에 살짝 몸으로 부닥쳐 공을 잡을 수 없게 만들 계획이었다.
아주 찰나지만 김민중의 얼굴엔 화색이 감돌았다.
‘패스가 길다!’
다소 억센 패스였다. 뚝 떨어지는 공이, 인구가 길게 뻗은 왼발에 아슬아슬하게 닿을까 말까 한 수준으로.
‘발끝에 맞고 튕겨 나갈 거 같은데?’
가만 보니 발등도 아닌 발등 바깥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이미 반대 방향과 에어리어 중앙으론 한강의 또 다른 공격수들이 침투하는 중.
스윽!
즉시 김민중은 다소 위험부담이 있는 프레싱을 무르고 한 발 뒤로 물러서 왼 측면으로 치우쳤다.
‘원터치 패스를 할 생각인 거야!’
그 예상처럼, 뚝 떨어진 공이 인구의 왼발등 바깥쪽과 마주했다.
이제 튕겨 나온 공은 자신이라는 벽 앞에 가로막힐 터였다.
‘됐...!’
하지만 생각을 잇지 못했다.
“...으헝?”
벌어진 입에선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새어나왔다.
튕겨 나오리라 여겼던 공이, 발등 외측을 맞고도 단 1cm도 벗어나지 않았잖은가!
‘이, 이게 말이 돼?!’
도리어 자석에 철썩 붙은 것마냥 바닥에 고스란히 발과 함께 뚝 떨어졌다.
주춤!
김민중은 예상 밖의 플레이에 다음 동작을 취하긴커녕 제자리에서 앞뒤로 들썩였다.
인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투웅!
깔끔한 퍼스트 터치로 공을 멈춰 세운 만큼, 그는 곧장 정확성 있는 칩패스를 띄웠다.
이미 계산은 끝났다.
‘센터백 하나는 무력화됐고, 다른 센터백은 골라인 중앙 앞에서 골키퍼랑 함께 내게 시선이 쏠린 상태.’
그 외에도 상당수가 이쪽으로 몸과 시선이 기울어 있었다.
에어리어 뒤쪽으론 염동규가 수비 지역으로 뛰어오는 시흥의 미드필더와 몸을 부대꼈고.
폴짝!
인구의 칩패스에 맞춰 에어리어를 넘어선 순간엔 있는 힘껏 점프했다.
씨익.
인구의 입꼬리가 얄궂게 끌어 올라갔다.
함께 점프해 고공 경합에 임한 시흥의 미드필더의 머리 위를 그대로 지나치는 칩패스였으니까.
“으익! 이이익!”
홱, 홱!
허공에 붕 뜬 채 어떡해서든 골을 넣고자 안간힘을 써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 염동규도 마찬가지.
대신,
투욱!
촤락!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올! 한강의 레프트백 김석형!]
[페널티 중앙이 혼전한 상황 속! 좌측 포스트 뒤쪽에서 강력한 다이빙 헤더로 득점을 성공시킵니다아!]
[이 선수! 어디 있다가 튀어나온 건가요오오!]
[그 직전에 보여준 마인구의 칩패스는 깔끔하고도 환상적이군요오오!]
[아아! 한강 FC! 선수 한 명 영입했다고 화력이 살아나다 못해 불을 뿜고 있네요오!]
* * *
전반전 15분 만에 두 골을 헌납해버렸다.
이제 한강의 팬들은 마인구의 이름을 연호했다.
마인구우~ 마인구우우!
그들의 표정엔 하나같이 여유로움과 행복에 겨운 미소가 걸렸다.
앱을 통해 실시간 경기를 시청하고 있던 팬들은 난리였다.
- <홀란드대성할거임> : 딱 잘라 말하겠습니다. 마인구는 한반도스키입니다!
- <축구는풋살> : 와... 미쳤다, 진짜. 조만간 K리그1로 진출하겠는데?
ㄴ <핵이빨수아래스> : 내가 볼땐 K리그가 아니라 곧바로 프리미어리그로 가지 않을까 싶음. 아예 격이 다른 플레이를 펼치잖아 ㅋㅋㅋㅋㅋ
- <아빠가최고다> : 우리 인구. 딸도 있었네. ㅋㅋㅋㅋㅋ 나름 성공한 인생이었어!
-
물론 일부는 아낌없는 비판을 가했다.
- <캡틴재라드> : 프리미어리그가 줫밥인가. ㅋㅋㅋㅋㅋ 잉글랜드 챔피언십에서 30골, 40골 때려 박는 놈들도 프리미어리그 가면 죽 쓰는 경우 많다. 이 축알못들아.
- <마인구한테물렸었음> : K리그2에서 백날 잘해봤자 유럽 스카우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걸?
- <국뽕을경멸합니다> : 다들 설레발 좀 그만 쳐. 국뽕 치사량 오진다, 진짜. 수준 낮은 축구에서 좀 잘하는 정도인데 프리미어리그가 웬 말?
원정길에 오른 시흥 서포터즈들은 대개 똥 씹은 표정이거나 울적한 반응들이었다.
몇몇은 욕지거리를 터뜨렸다.
“내가 뛰어도 너보단 잘하겠다 이 새뀌야아아아!”
그럼에도 시흥의 감독, 이연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대단하다...!’
속으론 마인구의 플레이에 감탄했다.
저 덩치에 저런 발재간이 가능하다니?
무엇보다 템포를 끊어먹는 개인기가 아니었다.
‘즉결이군.’
말 그대로 한 번의 개인기로 시흥의 공간을 열어버리는 피니쉬 같은 거다.
‘우리 지역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도 다 저런 이유인 건가.’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수비 숫자를 늘려 압박의 강도가 증가했음에도 마인구의 플레이에는 변함이 없잖은가.
‘자그마한 영향조차 끼치지 못한다니?’
천재는 천재였다.
‘상대팀이지만 지난 10년을 허비한 게 다 안타까울 정도로군.’
아니, 이젠 허비한 게 맞나? 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일순, 이연겸은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자신의 별명 중 하나는 바로 역전의 명수.
2년 전, k리그1에서 감독으로 활약할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른 시간, k리그 최강팀을 상대로 2골을 헌납해버렸지.’
허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이연겸의 팀은 4 : 2로 대역전승을 거뒀었다.
지난 시즌에도 이연겸의 시흥은 k리그2에서 가장 많은 역전승을 거둔 팀이었고 말이다.
그렇듯 연겸은 다시금 지시 내렸다.
“수비수들에겐 지역 방어로의 전환을 지시하고. 박충식한테는 마인구 맨마킹을.”
“옙!”
“비대칭 전략으로 가지. 마인구의 주 움직임 루트가 우측이니, 레프트백과 센터백 간격을 2M로 좁힌다. 역습 시에도 레프트백은 온전히 자리를 지키라고 해. 라이트백은 하프라인까지 올려서 공격에 보다 더 치중되게.”
“넵, 알겠습니다!”
수석코치는 선수들에게 이를 하달하면서도 작게 감탄했다.
‘역시, 감독님이야...!’
2년간 함께 지내오며 똑똑히 보았다. 이연겸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단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는 분명 본받을 점이었다.
그러한 강한 기세가 곧잘 선수들에게도 전염되곤 했으니까.
또 기대감이 일었다.
‘역전할 수 있어...!’
시흥에 이연겸이 있는 한, 늘 그래왔잖은가.
* * *
전반전 40분.
철렁!
골망이 물결쳤다.
[허윽...! 쿨럭! 오오옷!]
해설진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다 말고 갑자기 터진 득점에 기침과 함께 외쳤다.
[마, 마인구우우우!]
[지역 방어에 임하던 센터백을 앞에 두고 기습적인 라보나 슈팅으로 추가 골을 만들어냅니다아!]
[아아! 뒤쪽에서 접근했던 미드필더도 예상치 못한 라보나페이크에 휘청거리며 압박조차 펼치지 못했네요!]
역전의 명수, 이연겸의 입이 드디어 터졌다.
“이, 이런 쒸발...!?”
< 030. 멋진 아빠란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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