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에게서 살아남는 법-68화 (68/130)

68화 신명 사냥꾼(2)

키메라 떼 중심에서 터진 눈 부신 빛의 파동.

각성한 능력 때문인지 문양의 범위는 평상시 빛 범위를 훨씬 웃돌았다. 그렇다고 빛이 키메라 떼를 전부 삼켰다는 건 아니었다.

전체의 절반의 절반도 안 되는 범위.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캬아아아아악!

끄에에!

이빨을 내밀던 키메라들이 고통에 고개를 돌리곤 비명을 질러댔다.

빛에 노출되자 하나같이 발광하며 몸부림쳤는데, 중심에서 터진 빛이라 노출된 수가 셀 수 없이 많았다.

빛과 멀어지기 위해 몸을 돌린 키메라들은 주변 키메라들을 거칠게 밀어냈다.

사방에서 넘어지고, 뒹구는 키메라들.

주변은 난장판이 되었고, 혼돈에 빠진 그 자리를 다른 키메라들이 짓밟고 지나갔다.

온몸이 으스러지고 피가 튀는 장면들이 줄줄이 연출됐다.

문양이 만들어낸 패닉 효과는 곧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쿠쿠쿠쿵―!

밀려나는 키메라 떼에 사체 언덕들이 함께 쓸려나갔다.

키메라 떼가 사체들과 뒤섞여 바닥을 뒹굴었다.

그물로 노획한 수천 마리의 고기 떼를 한 번에 쏟아내는 장면 같았다.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에 난 혀를 내두르며 문양을 갈무리했다.

“이 정도면 거의 사기 수준인데.”

고대 문양이 인간에게도 먹혔다면 만능 치트키나 다름없는 힘인데, 키메라에게 한정인 게 아쉬웠다.

‘무한정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충만했던 마나가 한순간에 허해졌다. 가진 문양의 힘을 한계치까지 뽑아내니, 마나 소모가 극심했다.

바닥에 착지한 후 마나를 회복시키며 주변을 둘러봤다.

엉망진창이 된 주변.

키메라 대부분을 문양의 힘으로 무력화시켰다.

움직이는 상대는 거대 키메라 무리와 아레나 후아튼뿐.

역시 강력한 존재들은 문양에 대한 면역이 다른 이들보다 강했다.

주변을 살핀 나는 주저 없이 한 방향으로 몸을 틀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저 너머 무너진 언덕 사이에 검은 오오라가 넘실거리는 게 보인다.

오오라를 이정표 삼아 정확히 그녀를 찾아냈다.

‘타격이 없는 건 아닌데….’

아레나의 피부가 빛으로 새빨갛게 그을렸다. 문제는 회복 속도였다. 마치 물감을 바르듯 피부가 순식간에 복구되고 있었다.

“재생 속도가 미쳤네.”

신명 목록에 뜬 ‘백(百) 개의 심장’ 효과일 것이다.

[아레나 후아튼 – 불사자 레토니칼스의 분신체(70%)]

완성도가 금세 70%를 돌파했다.

지금도 아레나 육신으로 음울한 빛무리가 쉴 새 없이 흡수되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사체들을 보니, 분신체의 완성을 물리적으로 막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제거 말곤 답이 없는 상황.

그녀 앞으로 한 발 더 내디뎠을 때 당황으로 흠칫했다. 두 눈을 깜빡인 순간 아레나가 사라졌다.

“큭!”

살기에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확장된 전투 감각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할 엄청난 속도였다.

부웅―!

핏빛을 띤 작은 주먹이 옆구리를 스쳐 허공을 꿰뚫었다.

바람이 터지는 충격파가 주변을 휩쓴다. 저 괴력은 인간의 육신이 버틸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내 몸빵으론 한 방만 허용해도 게임 오버. 재차 붙으려고 하자, 다급히 문양을 터트렸다.

다행이라면 심장이 차지한 아레나의 육신이 키메라란 것이었다. 문양은 키메라에게 천적인 능력.

황금빛이 주변 공간을 채우자 그녀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도 잠시, 타오르는 피부만큼 회복 속도도 빠르자, 그대로 빛을 뚫고 돌격해왔다.

이를 악물고 다음 회피를 준비하려는데, 내 뒷덜미를 펜리가 낚아채더니 뒤로 냅다 던졌다.

“미친 새끼, 죽을 거면 내 손에 죽어.”

동시에 아레나의 주먹이 번뜩이자, 펜리가 크로우를 뻗었다.

카카카카카캉―!

눈부신 공방이 오갔다.

주변을 휘돌고 있는 두 인영은 벼락같이 움직이며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눈이 아닌 감각으로 잡아내야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

펜리와 싸우는 아레나를 코앞에서 지켜보니, 실력 차이가 피부로 와닿았다.

각성을 통해 나름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기기는커녕 잠깐 버티기도 힘들어 보였다.

불사자의 심장을 품은 아레나는 그만큼 강했다.

“……큭!”

쇳소리와 함께 펜리가 신음을 흘리며 내 곁으로 돌아왔다. 자세를 잡은 그녀의 표정엔 낭패가 서려 있었다. 어깨와 허벅지에 진득한 핏물이 흘러나왔다. 손가락에 잡아 뜯긴 흔적.

“저 괴물이랑은 부딪칠수록 손해야.”

아레나도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순식간에 아물었다.

회복력에서 차이가 너무 크다.

아레나가 움직이자, 거대 키메라들도 우르르 몰려들었다.

난 다급히 문양을 소환해 거대 키메라를 물렸다.

하지만 아레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빛 사이로 빠르게 좁혀오고 있었다.

펜리의 말이 옳다.

이 싸움을 길게 끌고 가는 건 죽음을 의미했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튀자.”

그녀의 표정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림자 주술을 쓸 수 없어도 포위망이 뚫린 이상 몸을 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기라는 게 있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수습할 수 없는 타이밍 말이다.

“여기서 제거해야 합니다.”

“못 이겨. 너도 봤잖아?”

“다를 겁니다. 제가 도와주면.”

“네깟 놈이 어떻게?”

“주변부터 막으세요.”

“뭐, 인마?”

대답 대신 나는 허공에 손을 뻗고는 모든 마나를 한곳에 쏟아부었다. 몸 위로 흘러나오던 빛무리가 활 형태를 띠며 뭉치기 시작했다.

마치 새하얀 눈덩이를 뭉쳐 만든 장궁 같았다. 허공에 뜬 장궁을 움켜잡고 천천히 시위를 잡아당겼다.

문양이 빛을 잃자, 그 틈을 노리고 거대 키메라들이 매섭게 달려들었다.

집중 공격을 받게 되자, 펜리는 욕설을 내뱉으며 크로우로 주변을 지켰다.

다행이라면 아레나가 발걸음을 멈췄다는 거?

무엇을 느낀 것인지, 그녀의 시선이 날 응시했다.

마주 보는 대신 난 그녀의 후광에 집중했다.

검은색 오오라, 그 위를 떠도는 룬의 향연.

‘신명.’

[아레나 후아튼 – 불사자 레토니칼스의 분신체(80%)]

[극한까지 개조된 키메라 육체]

[백(百) 개의 심장]

신명 목록이 눈동자에 박혔다.

분신체 완성도 80%.

완성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

어느새 내 손가락 끝에는 신비로운 화살이 잡혀 있었다.

‘극한까지 개조된 키메라 육체.’

신명 목록 중 하나를 나직이 중얼거린 뒤 활시위를 가볍게 놓았다.

퉁―!

빗살처럼 사라진 화살.

그 화살을 쫓으며 펜리에게 외쳤다.

“쳐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빌어먹을, 진짜 마지막이야. 수틀리면 이제 버리고 갈 거라고!”

경고를 날린 펜리가 키메라들을 밀어내고 앞으로 질주를 시작하자, 나도 그녀 뒤를 빠르게 쫓았다.

허공을 가르고 사라지는 화살이 보인다.

한 줄기의 빛처럼 화살은 그녀의 후광을 벼락처럼 꿰뚫었다.

[극한까지 개조된 키메라 육체]

후광이 관통당한 순간 목록 하나가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어진 눈앞의 변화.

마주 달려오던 아레나가 크게 휘청이더니 바닥에 쿵― 쓰러졌다.

바로 일어났지만, 몸에 이상이 생겼는지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틈을 놓칠 펜리가 아니었다.

“죽어!”

벼락처럼 파고든 뒤 아레나를 향해 검은 발톱을 휘둘렀다.

평상시라면 주먹으로 반격을 해왔을 텐데, 아레나는 양팔을 교차해 크로우를 막았다.

갑작스러운 방어 태세 전환.

부딪친 순간 펜리의 눈이 반짝였다.

놈이 갑자기 약해졌다.

그 뒤로 전투 양상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작은 육신 위로 끔찍한 자상들이 삽시간에 새겨지더니, 이어지는 공격에도 무력하게 밀리는 모습이 연출됐다.

둔해진 몸짓, 약화된 힘.

아레나는 아슬아슬하게 펜리의 공격을 버텨냈다. 방어와 회피를 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모습.

크로우가 움직일 때마다 진득한 핏물이 대지를 붉게 적셨지만, 그녀는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다.

베이고 잘린 흔적들이 삽시간에 아무는 모습에 펜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트롤 저리 가라 할 년이네.”

[백(百) 개의 심장].

트롤도 울고 갈 엄청난 재생력 때문에 그녀를 단시간에 죽일 수가 없었다.

“…심장을, 심장을 노려요!”

“보고도 몰라? 심장 위치나 알려주고 말해.”

심장이 있을 법한 위치를 수차례 찔러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완벽히 제압한 후 심장을 노려야 할 것 같은데, 거대 키메라들 때문에 제압이 쉽지가 않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몸을 던지며 아레나를 보호하는 키메라들.

크로우에 갈가리 찢겨 나가고 있지만, 덩치도 크고 수가 많아 쉽사리 뚫기가 힘들었다.

“귀찮은 것들! 어떻게 좀 해봐!”

“…무리예요.”

난 이를 악물곤 거친 숨을 내쉬었다.

펜리를 돕고 싶지만, 화살이 사라진 후부터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성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신명 목록의 일부를 봉인시키는 능력.

‘신명의 화살’을 유지하기 위한 성력 소모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 능력이 모자란 탓이었다.

‘빌어먹을, 서둘러야 하는데….’

펜리의 실력이라면 거대 키메라들을 충분히 정리할 수 있다.

문제는 전부 처리하기엔 수가 많다는 거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아레나 후아튼 – 불사자 레토니칼스의 분신체(90%)]

분신체의 완성도가 지척에 다다랐다. 시간이 없었다. 아레나가 분신체라는 새로운 존재로 변이된다면 단둘이선 절대 죽일 수 없었다.

[……95%]

시간을 재보니, 이대로는 실패할 것 같았다.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아레나와 심장을 당장 분리해야 하는데, 심장의 위치를 모른다.

환상 스크롤을 터트리고 집중 공격을 한다면?

아니, 이미 집중 공격 중인데도 질긴 육체와 재생력 때문에 제압이 안 되는 상황이다.

지금 공격을 능가하는 한 방이 필요했다.

‘일격에 막대한 충격을 줘서 아레나 육신 자체를 갈가리 찢어버려야 해.’

내가 가진 능력 중에 그 정도로 강력한 것이 있나?

있긴 있다.

그래서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이건 진짜 못 하겠는데…….

[……97%]

그런데, 절대로 피하고 싶은 그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였다.

“시발,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

누구한테 하소연하는지 모르겠다. 봉인 효과를 거둬들인 나는 아레나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사냥꾼의 능력 대신 고대 문양을 발동시켰다.

빛무리가 반원을 그리며 아레나와 그 주변 모두를 집어삼켰다. 키메라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반대로 봉인이 풀리면서 힘을 되찾은 아레나가 펜리에게 매섭게 달려들었다.

“…큭! 야, 뭐 하는 짓이야!”

“터트려요, 그거!”

“뭘 터트….”

“스크롤!”

잠시 말을 흐리던 펜리가 품에서 스크롤을 꺼내더니 아레나 쪽을 겨눴다.

환상 스크롤.

매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주먹이 보이자, 펜리는 그대로 스크롤을 쭉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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