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읍…….”
늘 그렇듯 살짝 흘러내린 침을 삼키며 잠에서 깨어났다.
“깼어?”
“…….”
바로 아래에서 들려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자, 평소처럼 왼쪽 팔을 베개 삼아 내 품에 안겨 있는 시란과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에 나는 대답 대신, 몸을 살짝 틀어 시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체취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새빨간 정수리에 코와 입술을 가져대며 조심스레 얼굴을 문질렀다.
“어디 아파?”
하지만 이런 내 애정 표현이 오히려 시란을 놀라게 한 걸까.
시란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지더니, 따뜻한 두 손으로 내 뺨을 붙잡고서 루비를 떠올리게 만드는 붉은 눈동자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그리 물었다.
“괜찮아요. 완전 멀쩡하니까.”
“으응…….”
누군가의 걱정을 받는 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고,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감정은 배가 된다.
그래서 자연스레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않고 천천히 얼굴을 숙이자, 시란 역시 그제야 안도하며 슬쩍 고개를 들어 입술을 맞춰왔다.
“몇 시에요?”
“7시. 피곤하면 조금 더 자.”
“아뇨. 진짜 멀쩡합니다.”
그 증거로 잠깐의 입맞춤으로 벌써 고개를 치켜든 아랫도리로 시란의 아랫배를 쿡쿡 찔러 보였다.
“…나 아침 먹는다.”
“그러세요.”
시란은 내 목덜미를 살짝 깨물고는 꼬물꼬물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있거든?”
배 위로 더해진 시란의 무게를 즐기며 볼록 올라온 이불을 주무르고 있자, 어쩐 일로 소파에 앉아 계시던 비젤린님이 뚱한 얼굴로 존재감을 주장해오셨다.
“하하. 그, 잠깐만 기다려주시…… 윽….”
“…앓느니 죽지.”
무어라 대꾸할 틈도 없이 나는 이불 위로 볼록 솟아오른 부분을 끌어안았다.
**
[ 당분간 귀인의 안내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
오늘도 끔찍한 맛을 이겨내고 꾸역꾸역 배를 채운 스스로를 칭찬하며 잠깐 속을 진정시키고 있으니, 어제보다 조금 더 짧은 치마를 걸친 리타가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여왔다.
“응. 그럴 거 같더라.”
느낌적인 느낌으로 대충 예상했던 시나리오였기에 나는 태연하게 대꾸하며 우선은 시원한 물을 그녀에게 부탁했다.
‘이걸 매일 먹어야 한다니…….’
왜 이런 맛대가리 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셋째 누님께 물어보려 했지만, 알다시피 어제 그렇고 그런 단련 법에 의해 정신을 잃는 바람에 미쳐 물어볼 틈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눈을 뜨면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저택에선 볼 수 없었던 시란의 적극적인 애정 표현과 더불어 질문에 대답해줄 당사자인 셋째 누님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말도 꺼내지 못했다.
물론, 비젤린님께 여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어딜 가신 걸까.’
시란의 뜨거운 목구멍과 혀의 감촉에 허우적거리다가 정신을 차린 후에는 이미 비젤린님께선 침실을 떠난 후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침실에 남아 부른 배로 만족스러운 고양이처럼 고롱고롱 거리던 시란은 유감스럽게도 내가 이 더럽게 맛없는 고기를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 귀인. ]
“고마워.”
나는 오늘도 뜨거운 시선을 보내오는 몽마들의 시선에 둘러싸인 채로 리타가 가져다준 냉수를 벌컥 들이켜 속을 진정시켰다.
“여왕님은 어디 계셔?”
[ 6층 서고에 계십니다. ]
“그럼…… 아니. 아니지.”
바로 눈앞에 원거리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리타가 있는데 굳이 찾아갈 이유가 있을까?
“마대륙의 식자재로 조리한 음식을 먹는 거랑 내 정신 단련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여왕님께 여쭤줄래?”
[ 여왕님께선 새벽부터 집중을 요구하는 작업에 들어가신다며, 먼저 연락하기 전까지는 소통을 금하셨습니다. ]
“그럼 어쩔 수 없지.”
그 집중을 요구하는 작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선지 그게 어제저녁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잠깐 위에 올라갔다 올 테니까 1층에서 기다려 줄래?”
[ 알겠습니다. ]
수도 구경을 나서기 전에 우선은 시란에게 함께 갈 건지 의사를 물어봐야 했고, 레이벨 누님과 비젤린님의 행방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호위 문제야 셋째 누님이 어련히 알아서 준비해두셨을 거라 믿지만, 그래도 레이벨 누님이 함께 가준다면 조금 더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을 테니.
그렇게 올라가는 것 자체가 운동인 계단을 밟아 다시 최상층에 도착한 나는 침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란~?”
사랑스러운 붉은빛을 찾기 위해 침실 곳곳을 둘러봤으나 그 어디에서도 시란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뭐지.’
우리가 사용하는 방은 물론이고 텅 빈 욕탕까지.
시란이 나한테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끌려갔나?”
그래서 나는 시란이 내게 말도 없이 어딘가로 간 게 아니라, 레이벨 누님이나 비젤린님의 마법에 의해 어딘가로 납치당한 쪽으로 생각을 기울였다. 그야 전자보다는 어떻게 봐도 후자 쪽이 그렇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전개였으니.
‘…수상하단 말이야.’
모험가들의 움직임도 그렇고, 내 질문에 얼버무리던 레이벨 누님의 반응과 산책이라며 밤마다 잠깐씩 자리를 비우는 점도.
하지만 물어본다고 알려줄 거였다면, 첫날의 질문에 레이벨 누님은 대답해주셨을 거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누님들을 믿으며 때가 되면 알려주기를 기다리는 게 고작이다.
‘별일일 거 같긴 하지만, 뭐 어쩌겠냐.’
무려 마대륙과 대륙을 통틀어 가장 강한 사람이 끼어 있는 일을 내가 뭐라 몇 마디 거든다 해서 바뀔 일 따윈 없을 텐데.
그 어디에서도 시란의 흔적을 찾지 못한 나는 침실을 나와 1층으로 향했다.
몽마들의 감각을 되찾는 연구를 위해 셋째 누님과 비젤린님께 정액을 드려야 하지만 둘 다 부재중이니, 이건 저녁 시간에 셋째 누님과의 정신 단련에서 채취하라 일러두는 게 좋을 거 같다.
[ 오셨습니까. ]
“어. 그런데 정말 너랑 나. 이렇게 둘만 나가는 거야?”
[ 예.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삐뚜름하게 기울이는 리타의 행동에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며 대답했다.
“조금 실례일 수도 있는데. 혹시라도 누가 덮쳐올 수도 있잖아.”
[ 아아. 그런 이유이셨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걸으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
“어. 괜찮아.”
[ 예. 그럼. ]
마대륙 수도에 도착하고 사흘.
드디어 수도 구경에 나섰다.
**
[ 그런 이유로 저들이 귀인께 해를 끼칠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셋째 누님이 기거하는 전각을 시작으로 리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만마전이란 이름을 붙인 내성을 나와 수도 거리에 도착해 있었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다고 배웠거든.”
[ 그도 그렇군요. 하지만 걱정마시길. ]
촤르륵.
티라의 넓은 소매 안쪽에서 검은 사슬에 엮인 두 자루의 낫이 흘러내렸다.
[ 귀인의 안전은 제 영혼을 걸고 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
굉장히 무거운 맹세와 동시에 흘러내렸던 두 자루의 낫은 사슬과 함께 다시 리타의 소매 안쪽으로 사라졌다.
[ 우선 상업지구부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그래.”
어쩐지 어제와 다르게 손 잡는 걸 피하더니, 그게 내 안전을 위해서였을 줄이야.
나는 리타의 옆에 붙어 희고 푸른, 그리고 붉은 빛이 감도는 피부를 가진 마인들이 북적이는 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 저게 인간 수컷?
-도감에서 본 거랑은 완전 다르게 생겼잖아.
-병신. 당연히 저 수컷이 특별한 거겠지.
나름 목소리를 낮춘다고 낮춘 듯 보였지만, 그녀들의 목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러니까…… 여기 모여 있는 마인들이 전부 배척된 마인들이라 이거지?’
마대륙에서 태어났다는 걸 제외하면 무엇하나 공통점이 없는 각기 다른 종족의 마인들이 어울려 사는 수도.
그리고 이 수도에 모여 있는 마인들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모두 제 부족에서 별종으로 낙인찍힌 자들.
투쟁하여 탐하고 빼앗는 것이 일상이자 삶인 이곳에서 강함을 멀리하며 투쟁을 혐오하는, 대신. 탐구와 발명, 요리 같은 생활 지식을 갈고닦으려는 별종들.
그게 이 수도에 모여 있는 마인들이라고 리타는 내게 이야기했다.
타고난 피에 새겨진 본능이 아닌, 제대로 생각하고 고민할 줄 알며 이성으로 판단을 내릴 줄 아는 마인들.
그렇기에 리타는 설령 내가 혼자 이 거리를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그녀들에게 습격을 받는 일은 없을 거라 단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거리를 걷는 지금, 리타가 왜 그리 자신했는지 어느 정도 알 것도 같았다.
-얼굴은 꽤 취향인데…….
-뭔가 무식해 보여서 좀 별로다.
-그러게. 뭔가 힘으로 다 해결할 거 같아서 나도 좀….
-눈매 사나운 것 좀 봐. 분명 성격도 고약할 거야.
[ 보시다시피 귀인은 그녀들의 성적 기호에 어울리지 않으신지라. ]
“그런… 것 같네…….”
실제로 여린 체구의 소년을 더 선호하는 귀족들도 골디아스 왕국에서 만난 적이 있기에 크게 놀랄 부분은 아니었다. 아니었지만…….
-우, 우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난동 부리면 어쩌지?
-오늘 장사 안 할래.
-나, 나도!!
‘아무리 그래도 장사까지 접는 건 좀…….’
정말 오랜만에 나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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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내일은 조금 늦고(야비군...)
금요일부턴 자정의 요정이 되도록 하겠습니닷ᕙ(⇀‸↼‵‵)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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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NetFighTer//스미스는 응애입니닷...그러니까 일러도 무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