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사라는 건 무리에서 가장 강력한 전사라는 소리일 테고, 전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살점과 피가 튀는 전장일 테지.
마인 특유의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와 시선이 부딪히는 바로 그때였다.
[ 여왕님께서 분명 어제 경고하셨을 텐데. ]
무슨 일이든 반드시 내 허락을 구하고 행동하던 리타가 처음으로 내게 어떤 허락도 구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뭐 어쩌라고. 어차피 못 알아듣는다면서?”
얼굴을 한껏 구긴 이름 모를 그녀가 리타와 그 뒤에 앉아 있는 나를 한 번씩 훑더니.
“경고는 무슨…… 내가 무슨 보모도 아니고.”
[ 제노아. ]
“시끄러. 이런 우습지도 않은 장단에 어울려주는 것만으로 난 충분히 예의를 다 하고 있는 거라고.”
조금씩 가까이 다가온 그녀, 이름이 제노아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녀는 리타의 어깨를 손으로 밀치며 내게 다가왔다.
“병신.”
[ 제노아!! ]
“아~ 안녕?”
내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따끔한 살기를 쏘아 보낸 리타였지만, 제노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더니 내 맞은편 의자에 아무렇지 않게 엉덩이를 붙였다.
‘…거리에 다녀오길 잘했지.’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눈앞에 여인의 행동과 반응에 다소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 거다.
뭐, 다짜고짜 병신 소리를 들어 아주 살짝 마음에 상처를 받긴 했지만…….
“쫄았나? 대답이 없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제노아라는 이름의 여인은 다시 마대륙의 언어로 떠들었고.
스르륵.
리타는 물론이고 벽에 서 있던 몽마들이 넓은 소매에서 보기에도 섬뜩한 날붙이들을 하나씩 꺼내 꼬나쥐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사고가 크게 날 것 같아 나는 당황한 기색을 일부러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병신. 실수. 나, 잘못하니까.”
리타와 몽마들의 기세가 한층 더 사나워졌고, 제노아는 그것을 즐기듯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보였다.
‘취미는 전투…… 뭐 그런 쪽이겠지.’
나는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내가 어떻게 나오려는지 보기 위해 샛노란 눈동자를 번뜩이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타.”
[ …예. 귀인. ]
사슬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리타의 손에 들려 있던 낫이 소매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걸 신호로 몽마들 역시 각자 꺼내든 날붙이를 다시 소매 안쪽으로 갈무리하고는 내뿜던 기세를 거둬들였다.
“그래. 집 지키는 개는 그렇게 꼬리나 흔들라고.”
나를 존중해 기세를 거둬들인 몽마와 리타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제노아.
당연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고, 앞으로도 알아듣지 못할 예정이다.
“고마워.”
[ ……. ]
꽉 말아쥔 리타의 손을 감싸며 나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고, 벽 앞에 서 있는 몽마들을 향해서도 가볍게 웃어줬다.
“그러면 일단 아침부터 먹을까?”
[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
**
“우욱…… 썅… 진짜 더럽게 맛없네….”
헬카우의 맛을 본 제노아가 얼굴을 와락 구기는 거로도 모자라 혀까지 길게 내빼며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나 역시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맛에 이마가 구겨졌지만, 그녀처럼 진득하게 고기를 씹지 않고 그냥 목구멍으로 꿀떡 넘겨 헛구역질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으으…… 야… 이거,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냐?”
끝끝내 접시를 비워낸 그녀는 내가 아닌, 내 뒤에 서 있는 리타를 향해 그리 물었다.
“무시하냐?”
리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서 있자, 제노아는 한쪽 눈꼬리를 끌어내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다고 리타의 입이 열리는 건 아니었다.
“쯧…….”
저도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 다는 걸 깨달은 걸까.
그녀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드디어 리타가 아닌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 좀 더. 나, 배고픔.”
손까지 이용해 나에게 뜻을 전하려는 그 행동에 순간 웃음이 나올뻔했다.
“리타. 하나 더 줘.”
[ 예. 귀인. ]
리타가 대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몽마가 나타나 접시 위에 새로운 스테이크 한 덩이를 내려두고 물러났다.
“감사감사~”
아주 건성으로 대답한 그녀는 다시 오만상을 찌푸리며 접시를 비워나가기 시작했다.
‘셰퍼드 같네.’
삐죽삐죽 정리되지 않은 기다란 흑발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호전적인 성격까지.
쿠리리, 쿠로로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미지의 대형견이었다.
처음부터 시비를 걸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한 걸 보면 함부러 자길 건들지 말라고 경고를 한 것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정도에 겁을 먹기에는 지금까지 보고 경험한 게 너무 많았다.
‘아멜라 누님이랑 아르델 정도로 치고받을 게 아니라면야…….’
겨우 그 정도 위협으로는 날 겁주기에는 다소 강도가 약하다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욱욱 거리며 고기를 꾸역꾸역 삼키는 제노아를 지켜보며 뒤에 서 있는 리타에게 손짓했다.
[ 예. 귀인. ]
내 어깨 위로 고개를 불쑥 내민 그녀에게서 달콤한 향기가 났다.
“내성에서 거주해?”
[ 예.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별궁이 있습니다. 앞으로 암…… 여자들은 모두 그 별채로 보내질 거고, 귀인께선 언제든 별궁에 방문하실 수 있으십니다. ]
고개를 끄덕이자, 리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우웁…… 세, 세 번은 무리인가….”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끅끅거리면서도 마지막 한 조각까지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제노아.
그녀의 몸에도 흥미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식당에 들어오면서 했던 말이 더욱 신경 쓰였다.
“정오까진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 저쪽이랑 별궁에서 잠깐 보내도록 할게.”
[ ……알겠습니다. ]
리타는 곧바로 내 뜻을 제노아에게 전했다.
“그러던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하는 제노아를 향해 리타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언동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날렸고, 당연하지만 리타의 경고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불만이 많은 모양이네.’
그 이유는 잠깐 입에 담았던 그 전장에 참여하지 못한 걸 테고.
날 얕보다 못해 거의 무시하는 태도를 보아, 별궁에 나와 둘만 남겨진다면 필시 무어라 구시렁거릴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별궁이라면 리타나 다른 몽마들의 시선이 닿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친분을 쌓아서 직접 물어보는 방법도 사용할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지금 이동하자고 말해줘.”
[ 예. ]
리타는 다시 내 말을 그녀에게 전했고, 껄렁하게 의자에 몸을 걸치고 있던 제노아는 나를 잠깐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아음~”
마치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그냥 지나쳐 가버리는 제노아의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어째선지 웃음이 나왔다.
‘옛날 생각나네.’
모험가 길드에서 처음 시론을 만났을 때가 떠올라서 그런 걸까.
지금과 그때의 시론을 비교하면 사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함이 없을 정도로, 과거에 비해 시론의 성격이 유해진 건 물론이고 애교 역시 넘쳐흘렀다.
과거의 시론은 입에 욕을 달고 살았으며 틈만 나면 날 매도하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지금의 시론은 약간 입이 험한 것조차 애교로 보일 만큼 사랑스러운 아내가 되었다.
[ 모시겠습니다. ]
나는 리타의 손을 붙잡고 먼저 식당을 나가버린 제노아의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
·
·
“생각보다 크네.”
[ 여왕님께선 뭐든 큰 걸 좋아하셔서, 그 영향입니다. ]
나는 3층짜리 전각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이쪽으로. ]
나는 리타를 따라 별궁 안으로 들어갔고, 내부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전각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2층이 연무장. 3층이 침실입니다. ]
위로 향하는 계단 앞에 멈춰선 리타가 말했다.
[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
“가능하면 조금 더 일찍 내려와 볼게.”
[ 우으, 예에에……. ]
제노아가 식당에 들어섰을 때부터 기분이 나빠 보여 그녀의 두 뺨을 조물조물 만져봤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 같다.
나는 더욱 매섭게 눈을 부릅뜨는 리타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으며 계단으로 올랐다.
그렇게 연무장이라던 2층을 지나 3층에 올랐다.
‘역시 구조는 다 비슷하게 지었나 보네.’
굳이 차이점이라면 조금 더 검소한 느낌이 든다는 것과 규모의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완전히 나는 무시하고 위로 올라가더니,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제노아를 찾기 위해 나는 오랜만에 기감을 펼쳤다.
저쪽이네.
텅 빈 공간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 하나.
나는 그것을 따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닫혀 있는 문 앞에 도착했다.
그것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있는 제노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혹시 잠든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건들지 않고 잠깐 앉아 얼굴이나 구경할 생각으로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스윽.
침대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몸을 일으킨 제노아.
그녀는 식당에서 보였던 것과 다르게 세상 무관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맘대로.”
“…맘대로, 요?”
“어. 맘대로.”
뭘 맘대로 하라는 건지…… 라고 생각려는데 일어난 그녀가 손을 움직이더니 걸치고 있던 가죽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역시 노브라였군.’
걸음에 맞춰 흔들리던 그 역동적인 움직임은 절대로 무언가에 억눌려서는 나올 수 없는 무브였다.
훌렁.
그녀의 가슴을 감상하는 사이, 제노아는 마지막 남은 팬티까지 벗어다가 바닥에 던지더니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잔다.”
그리고는 정말 눈을 감아버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잠을 청하는 제노아.
나는 조금 전 그녀가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마음대로 하라…… 인가.’
어쩐지 조금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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