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141화 (141/170)

141. 질주의 렘

“진지를 앞으로 당겨야 합니다. 이대로 둘 순 없지요. 수풀 지대를 장악하고 후방을 치는 겁니다.”

“무슨 소리, 그대로 진입하면 회군은 어찌하게? 아즈펜의 후방 경계 병력이 얼마나 될 줄 알고?”

“그럼, 그 유격대가 날뛰는 걸 놔두겠다는 건가?”

“그걸 놔두는 탓에 사기가 또 떨어지고 있습니다.”

전략 회의였다. 책상을 가운데에 둔 채로 각 중대장과 부관 무리가 모여 떠들었다.

1중대장 그레이엄은 치고 가자는 쪽이고.

팔토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3중대장 레이온은 이전 전투 당시 요정 암살자에게 죽어서 공석이 되었기에, 곧바로 3중대 1소대장이 그 빈 자리를 채웠다.

그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나머지는 마커스의 부관들이 채웠다.

필요한 의견을 꺼내고 확인하고 교차 검증한다. 그걸 보며, 요정 중대장은 다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분명했다.

‘상대 쪽에는 머리를 잘 쓰는 놈이 있고.’

이쪽에는 없다는 것.

대대장 마커스의 별명은 전쟁광.

별명과 달리 그는 멍청하지 않다. 엔크리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아랫사람을 띄울 줄도 알고.

사기를 조절할 줄도 알면서.

분위기를 탈 줄도 안다.

이전 대대장과 비교하자면 이쪽은 대천사다.

다만, 마커스도 머리를 쓰는 지휘관은 아니라는 것.

흐름을 타고 분위기를 반전시킬 때 마커스는 어떤 재주를 부리는가.

탁월한 전략? 아니다. 그가 직접 나서거나 강력한 무장 집단을 이용한다.

이전 전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결국, 마커스가 꺼내 든 칼이 무엇이었나.

그가 꺼낸 칼은 두 자루였다.

하나는 1중대인 중갑 부대.

다른 하나는 직할대인 변방 수비대.

마커스는 무력을 우선에 두고 전술을 쓰는 지휘관이란 소리다.

반면 상대는.

‘아무리 봐도 머리를 굴리는 쪽이지.’

요정 중대장은 오래 살았고 그만큼 경험이 농후했다.

보통 이런 경우, 어설픈 아군의 반응은 오히려 함정에 빠지기 쉬웠다.

이게 더 진입하라는 유혹이라면?

만약 본대가 더 깊숙이 진입했는데 적군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면?

정보를 모으려고 해도 이쪽은 적의 앞마당이었다.

정찰대를 깊숙이 써 볼까? 적 유격대 움직임을 보자면 산등성이를 타는 쫓고 쫓기는 싸움이 될 텐데.

무시하고 적 후방을 쳐? 그것도 나쁘진 않긴 할 것 같다.

서쪽으로 이동하면 크로스 가드.

동북쪽으로 이동하면 적군의 본대.

아군은 어찌 움직일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갈피를 잡지 못한다면 버티는 게 최선이긴 했다.

실상 이 부대는 존재만으로 전 본대에 위협을 주고 있으니.

적이 부리는 이런 수작은 무시하면 그만이긴 했다.

쿵.

마커스가 전략 지도가 펼쳐진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지도 위에 올려져 있던 말과 핀 두어 개가 쓰러졌다.

“짧고 굵게 말하자면 이대로 들어갈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다는 거 아닌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말해야지?”

그로서도 답답할 따름이었다.

본래라면 진즉에 본대가 적의 본대를 후리고 회군했어야 할 싸움이 길어지는 판이니.

그런 와중에 적 유격대가 와서는 툭툭 건드린다. 그게 영 신경 쓰여서 놈들을 잡을 계획을 짜 보자니까, 다들 헛소리뿐이다.

결국, 전략 회의는 지지부진하게 끝났다.

쓸 만한 의견이 없었다.

그리 회의를 끝내고 나온 요정 중대장이, 본인 막사에 다다를 때쯤이다.

척.

양쪽 허리춤에 검을 찬 해괴한 무장을 한 소대장이 막아섰다.

왼손으로 검을 누르고 고개를 숙인다. 군례 이후, 소대장 엔크리드가 입을 열었다.

“전술적 의견 제시와 더불어 임시 작전권을 요청합니다.”

빤히 엔크리드를 보던 요정은 이 인간이 꽤 잘생긴 얼굴이란 생각과 함께 무슨 의견이냔 의문을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가 보기에 엔크리드도 딱히 머리를 굴려 전략을 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이쪽도 우직하게 싸우는 편이다.

“약혼을 제시하러 온 거라면 타이밍이 안 좋다. 소대장.”

요정은 태연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농담을 건넸다.

이제는 이런 농담에 익숙해졌는지, 엔크리드가 태연하게 답했다.

“군사 전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개 소대장의 의견이라고 무시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순 없다.

자신이 이 작자에게 가진 호감과 별개로 엔크리드는 매 전장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중이었으니.

“말해 봐라.”

엔크리드는 제 생각이 아니었으므로 최대한 간결하게 말했다.

“적진을 휘젓게 임시 지휘권을 주십시오.”

“그리고?”

“길 찾는 일에 능숙한 병사 한 명의 지원을 요청합니다.”

“그게 끝?”

“거기에, 본대는 이제 서쪽으로 길을 트는 건 어떻습니까?”

요정의 고개가 모로 틀어지고.

엔크리드는 들은 대로 설명했다.

지금 이 부대가 자리 잡은 곳이 어디인가.

아군의 움직임은 적군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 영향은 무슨 효과를 불러올 것인가.

관측과 예측이다.

“예상과 달라지면?”

“회군하면 됩니다.”

그때는 회군이다. 아니, 이건 애초에 회군 전략에 초점을 맞춘 거다. 요정 중대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듣자마자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쓸 만해.’

아니, 쓸 만한 정도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지만, 이것들이 겹치면 어떻게 되나.

운만 좀 따라 준다면.

거기에 엔크리드가 직접 제 소대원을 데리고 움직여 준다면야.

“이걸 소대장이?”

요정이 물었다.

“아닙니다.”

엔크리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군 소대원의 공적을 빼 먹을 생각 따윈 없으니.

“크라이스라는 대원의 생각입니다.”

크라이스야, 이대로 위험을 자초하고 싶지 않으니 던져 본 의견이었다.

먹히면 좋고, 안 먹혀도 뭔가 지휘부에서 생각이 있지 않겠나 하는 그런 헐렁한 마음이었다.

다만, 어쩌다 보니 지금 가장 필요한 의견이 됐다.

“좋다.”

요정 중대장은 그 말만 남기곤 쌩하고 돌아섰다.

조금 전까지 전략 회의를 하던 대대장의 막사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이후, 아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진지를 비우고 행군을 대비하기 시작했고.

그사이 엔크리드는 제 소대원을 전부 무장시킨 뒤 입을 여는 중이었다.

작전에 나간다고 딱히 연설까지 필요한 사이는 아니긴 하니.

“렘.”

“말하슈.”

“그 활잡이 잡으러 갈까?”

담백하게 렘에게만 물었다.

씰룩, 렘의 눈썹이 움직였다. 저건 만족의 눈썹이었다.

“좋수다.”

말하며 짓는 렘의 미소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몸이나 좀 풀러 가자는 건데, 쉬고 싶은 사람?”

라그나, 아우딘, 작센, 앤드류, 맥 모두와 한 번씩 시선을 마주쳤다.

혹여 빠지고 싶다면 놔둘 생각도 있었으나.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여기에.

“오늘부터 소대에 합류한 핀이다.”

“반갑다.”

핀의 합류도 있었다.

지원해 달라고 했더니, 경갑 궁병대를 운영했던 레인져를 보내 줬다.

이제 그 궁병대는 본래대로 2중대로 들어갔음에.

덩달아 핀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분대장 직급으로 소대에 들어온 거다.

뭔가 그러니까 되게 애매하긴 했다.

독립 소대라 하긴 해도 숫자는 열 명이 안 되는데, 여기에 분대장이 둘이다.

마물 염통 터지는 편제지만.

어쩌겠나.

미치광이 소대는 본래 이런 곳인걸.

핀도 엔크리드 때문에 이적한 몸이었다. 분대장으로 직급을 낮춰서라도 옆에서 지켜보고 싶은 인간이다.

기회가 되면 같이 밤을 보내고 싶은 목적도 있었고.

그러니까 이런저런 목적이 있단 거다.

거기에 만나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난 핀이다. 분대장이라고 거들먹거릴 생각은 없고 대충 지내자. 그럼, 그쪽이 아우딘이겠네?”

핀은 대쪽 같았다. 그녀는 할 말을 했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그리고서 제 목적 중 하나를 보였다.

아우딘, 발라프 식 무투술을 엔크리드에게 전수한 사람.

입술을 한 번 핥은 핀이 아우딘을 빤히 쳐다봤다.

저 몸만 봐도 탐이 났다.

‘엔키도 엔키지만.’

이쪽도 괜찮겠는데, 허우대만 멀쩡하고 내실은 엉망일까?

엔크리드의 내실이야, 첫 만남에서 확인했다. 그 냇가에서의 만남.

잊을 수 없으리라. 특히나 복근 밑으로 그.

“음.”

핀은 상념을 접었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긴 했으니.

“네, 자매님. 제가 주께 아우딘이란 이름을 받았지요.”

둘이 손을 맞잡아 인사를 나누고.

렘과 라그나, 작센은 본척만척하고.

앤드류는 다가와 같은 분대장이라고 말하고.

맥은 눈인사만.

그렇게 모인 인원이다.

“그럼, 작전 개요부터 시작할까 하는데.”

엔크리드가 말하며 크라이스를 봤다.

이제부터는 네 차례 아니냐?

그런 눈이기에 크라이스가 큼큼 헛기침하고 나섰다.

“에, 적군 유격대가 지랄하니까요. 우리도 비슷한 짓을 할 겁니다.”

크라이스는 어렵게 얘기해 봤자 아무도 못 알아들을 걸 알았다.

그러니 최대한 단순하고 명확하게 할 말을 전했다.

요는 이거였다.

적이 지형을 앞세워 아군을 흔드는데.

아군은 왜 그러면 안 되는가.

이미 변방 수비대 일부가 비슷한 짓을 하긴 했으나.

크라이스가 보기에, 그게 적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지 못한 듯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나.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해 주면 된다.

“그럼 가실까요?”

크라이스의 목소리가 맥없이 느껴졌을까. 렘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출전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싹 쓸어버리는 거요!”

렘이 크라이스에게 말하고 마지막에는 목소리를 드높였다.

물론 반응은 엔크리드만 해 줬다.

“좋지.”

다들 무시했다. 작센은 렘이 입을 열자마자 아예 걷기 시작했다.

“안 갑니까?”

그러며 핀을 향해 묻기까지 했고.

핀은 부대 내에서 서로 적대감을 풍기는 걸 보며 이건 왜 이러나 싶긴 했으나, 할 일은 했다.

미리 들은 경고도 있지 않나.

“정상적인 부대는 아니다. 괜찮나?”

요정 중대장이 이미 경고하지 않았던가.

핀은 고개를 끄덕였었다.

목적이 엔크리드와 아우딘인 바에야.

다른 부대원과는 적당히 지내면 될 일이었으니.

그리 움직인 엔크리드의 부대다.

길은 핀이 찾았다.

적의 흔적을 찾아 쫓으면 도돌이표다.

그래서 표적을 정했다.

유격부대가 아니라, 다른 쪽으로, 그러니까 적 본대다.

이쪽이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후우, 기사라도 있으면 난리 나는 거 아닙니까?”

앤드류가 말하고 이 부대에서 가장 형편없는 전투력을 가진 크라이스가 그 말에 답했다.

전원 다 터벅터벅, 주변에 흔적이 남는 것 따위는 무시하고 걷는 중이었다.

“없을걸요.”

“그건 어떻게 확신하고?”

“있으면 뭐, 적당히 간만 보고 도망가면 되니까. 그리고 음, 후방에 기사나 다른 부대를 돌릴 여유가 있었다면 유격대 따위를 운영하지도 않았죠. 제가 볼 때 저 유격대는 시선 끌기라고 봅니다. 왜냐, 그건.”

“거기까지.”

앤드류는 크라이스가 이런 쪽에 들어서면 말이 길어지는 걸 봤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반도 안 될 바에야.

들어서 뭐 하나.

크라이스는 그게 조금 불만이긴 했다.

어째, 아무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지.

그래도 소대장만큼은 꽤 신중하게 들어 주긴 했다. 귀도 기울여 줬고, 성의 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게 만족스럽긴 했지.

실상 크라이스도 자신이 뱉은 말에, 조금은 불안하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총총 걸어서 소대장 곁에 붙은 크라이스가 말했다.

“대장, 저 유격대는 시선 끌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시선을 끌까요? 단순하죠. 여기서 움직이지 마라. 멈춰 있어라. 다른 곳으로 가지 마라. 혹 후방으로 들어오면 함정을 파 둔다. 뭐 이런 겁니다. 그럼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적이 예상하지 못한 쪽으로요.”

이후 크라이스의 전략이 더 이어졌고.

엔크리드는 신중히 듣고서 물었다.

“그 얘기를 왜 또 하는데?”

이미 들었잖아. 이게 세 번째다.

“에, 음, 말하고 싶어서요. 괜히, 음 아닙니다.”

불안한가?

“떠든다고 불안감이 사라져?”

“그, 소대장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크라이스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엔크리드 같은 인간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소대장은 비정상이니까.

재능이 없으면 때려치워야 하는 게 정상이다. 꿈? 그딴 걸 쫓는 게 어떻게 정상인가?

실현 가능한 목표도 아니고 말 그대로 꿈인데도.

그런 걸 쫓으며 매일 같은 걸 반복한다. 훈련을 거듭한다. 뼈를 깎는 단련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매일 눈앞에서 보여 준다.

이게 어떻게 정상인가.

크라이스는 말을 멈췄다. 소대장을 보고 있으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안감이 조금 가셨다.

“이쪽.”

핀은 능숙한 레인져이자, 패스파인더였다.

이쪽 지형에 익숙하지 않음에도 흔적을 잘 찾았다.

적의 유격부대는 아군의 추적을 피하려고 이런저런 수작을 부려 뒀다.

덫도 몇 개 보였다.

변방 수비대 일부가 눈에 불을 켜고 쫓다가 몇 번 부딪쳤다고 듣긴 했다.

미치광이 소대는 유격대의 흔적 따윈 일부러 찾지도 않았다.

그대로 직진이었다.

적의 후방을 향한 직진.

그리 수풀과 산등성이를 지나, 적의 후방 경계부대가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내가 먼저 가오. 아니, 나보다 먼저 가면 뒤통수 찍을 거니까 다들 알아서 꺼지라고 경고하겠수다.”

렘이 으르렁거렸다.

그러라고 했다.

다들 선봉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으니.

크라이스는 적의 진형을 살폈다.

키다리 풀밭부터 여기까지, 넓게 퍼진 지형에 자리 잡은 적군이다.

그럼 이쪽은 적의 후방이자, 우측 뒤쪽이겠지?

그쯤 될 것이다.

반나절을 넘게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왔으니.

“기사급은?”

엔크리드가 물었다. 눈이 밝은 작센이 둘러보며 답했다.

“딱히 위험한 놈은 안 보입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 때다.

렘이 툭툭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가고 엔크리드도 그 뒤를 따랐다.

내리막길을 차고 나가자, 흙먼지 따위가 일었다.

맥과 앤드류, 핀과 더불어 아우딘과 작센까지 남았다.

크라이스의 보호이자, 혹여 무슨 일이 생겼을 때의 대비였다.

내려선 건 렘과 엔크리드, 라그나뿐이었다.

“지켜볼 겁니다.”

라그나가 엔크리드 곁에 붙으며 말했다. 그동안 검 두 개를 몸에 붙이며 느낀 게 무엇인가.

그러니까 라그나는 자신이 가르친 걸 확인하겠다고 한 거니.

‘시험인가.’

엔크리드에게는 실험이기도 했다.

두 자루의 칼, 이검류, 양손에 들고 싸우는 법.

과연 얼마나 먹힐 것인가.

“뭐야?”

적의 경계병이 다가오는 셋을 발견하고 말했다. 적당히 완만한 내리막을 발로 차며 내려오니 흙먼지가 생겼고 주변에는 딱히 몸을 숨길만 한 지형도 없었다.

비옥한 평야, 곧 전장의 승리자가 가져갈 땅에 내려선 뒤다.

렘이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향한 손짓과 걸음 같았다.

“어이!”

그 태연함에 적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거 적군인가? 아닌가?

거리가 좁혀지고.

적 경계병이 거기까지라고 멈추라고 말을 할 때쯤.

렘의 허리춤에 있던 손도끼가 날아갔다.

손이 빛살 같았다.

투척 도끼가 허공에 원을 그려 내고 쭉 날아가며 긴 궤적을 만들어 낸다.

퍽.

이후 적 경계병의 머리통에 새로운 장식이 생겼다.

물론 삶을 마감하게 만드는 장식이긴 했다.

손도끼가 머리통에 꽂힌 적병의 발이 허공에 떴다. 양팔을 허우적거리다 쿵 하고 뒤로 떨어져 나가고.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다른 경계병이 급히 휘슬을 입에 물었다. 다만, 어느새 거리를 좁힌 렘이 먼저였다.

탄력적인 허벅지 근육을 폭발적으로 사용한 돌격.

엔크리드는 렘의 실력을 안다. 그걸 알면서도 놀랐다.

마치 그때의 기사가 보인 그런 질주와 같아서.

준기사 직전의 그가 보인 것과 비슷한 돌격이기에.

‘렘.’

아직 숨겨 둔 실력이 있었다는 거다.

거리를 좁힌 렘의 손이 경계병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우득.

“끅.”

그 뒤, 렘의 왼손에 들려 있던 도끼가 공기를 횡으로 갈랐다.

퍽.

목이 반쯤 잘려 옆으로 쓰러진 적병이다.

꿀럭꿀럭 하며 쓰러진 놈의 목에서 피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거, 더럽게 약하네.”

죽은 병사 둘 사이로 렘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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