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설마 했는데 진짜 키스가 세이피어 가문의 아티팩트의 조건이었다니.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눈앞에 뜬 내역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영웅의 아티팩트 ‘세이피어의 부적’을 수집하였습니다.]
〈히든 이벤트: ‘영웅의 아티팩트’ 진행 상황〉
(버밀리온의 로브, ???,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 세이피어의 부적, ???, ???)
“세이피어의 부적? 역시 부적이었던 건가…….”
“응? 무슨 소리야?”
내 혼잣말에 달시가 무슨 일인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내가 에둘러 변명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응?”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얼굴로 되묻는 달시.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아무리 손등 키스라 해도 키스는 키스였다.
그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부탁한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는 일단 ‘세이피어의 부적’의 효과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아무튼 다행이네.”
결국 여차저차 해서 이곳에 온 목적, 세이피어의 아티팩트를 획득했다.
그리고 이곳의 갈등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었다.
“그럼, 이제 갈 거야?”
“글쎄. 어차피 딱히 갈 곳도 없긴 한데.”
이제 남은 아티팩트는 만다린, 그린월드, 엘가시아, 아메드.
그중에서 그나마 난이도가 쉬워 보이는 것은 샬롯이 속해 있는 아메드 가문의 아티팩트이긴 했다.
‘남은 기간 동안 아메드 가문에나 들러 볼까.’
아직 임시 휴교 기간이 2주 넘게 남았으니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머물 거지?”
“응, 그럴게.”
이 마을에는 여러모로 정이 들었다.
하루 정도는 더 있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거 같았다.
“그럼, 나는 이만.”
팟―!
나는 지붕 아래로 점멸을 사용한 뒤 달시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달시는 내 모습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가? 배 안 고파?”
“잠시 할 게 있어서. 곧 돌아올게.”
방금 얻은 세이피어의 부적 효과.
이미 달시의 고유 마법의 강력함을 확인했기에 기대를 안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 * *
그리하여 나는 달시와 헤어진 뒤, 레온 선생과 수련하던 폭포에 도착했다.
밤이 깊었지만 하늘에 떠 있는 푸른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었기에 딱히 어두운 감은 없었다.
“레온 스승님…….”
폭포에 도착한 나는 머리를 숙이고 레온 스승님께 조의를 표했다.
레온 스승님의 장례는 오늘 아침에 치러졌다.
평소에 인덕이 많은 탓에 그의 장례식장에는 많은 세이피어 가문의 생도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묵념할 뿐이었다.
레온 선생에게서 배운 ‘호흡법’ 때문일까.
사실 그의 죽음에 따른 감정의 동요가 심하지 않았었다.
다만 흥분하지 않았다는 말이지, 감정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그의 죽음을 조용한 슬픔으로 애도했을 뿐이었다.
“당신의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슬슬 사용해 볼까?”
나는 가슴팍에 넣어 둔 ‘세이피어의 부적’을 꺼냈다.
푸른색의 영롱한 부적.
아무래도 처음에는 발동되지 않고 나중에서야 발동되었다는 것은, 진짜로 발동 조건이 ‘당주의 키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손등 키스였을 뿐이니까, 그저 ‘당주와의 접촉’일 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무슨 능력이려나……. 역시 강화계 아티팩트니까 단순한 신체 강화 능력이려나?”
나는 기왕이면 달시 세이피어 같은 상시 강화 마법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신체 능력의 강화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기대감에 부푼 나는 이내 부적에 마나를 주입했다.
우우웅―
푸른색 부적으로 스며드는 하얀색 마나.
그리고,
파아아아아―!
부적이 발산한 하얀 빛이 내 몸을 감싸 올랐다.
마치 하얀 불꽃에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야, 이거…….”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새로웠다.
엄청나게 가뿐해진 느낌, 마치 루비 버밀리온의 무중력 마법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신체 강화의 능력인 건가?”
그리하여 나는 폭포수 근처에 나뒹구는 바위 하나를 격파해 보려 했다.
그렇게 내 손이 바위 근처로 닿으려 하던 그때,
쩌저저저저적!!
바위가 갈라지고 말았다.
분명 살짝 만지기만 했을 뿐.
아직 제대로 된 힘조차 사용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에엥……?”
물론 집중만 하면 목검으로도 부술 수 있는 수준의 바위긴 했다.
그럼에도 단순히 손가락을 댄 수준으로 완파되다니.
나는 이윽고 해 보고 싶은 게 생겼다.
몸이 가벼워졌으니 어쩌면 도약력도 기대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잔뜩 몸을 움츠린 뒤에,
탓!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그런데 말 그대로 ‘하늘 높이’ 뛰어올라 버렸다.
도약한 내 몸은 주변의 나무를 훌쩍 뛰어넘어 거의 폭포의 상단 부분에 닿을 정도로 높이 날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잠시 허공에 부유하더니 다시 지면으로 떨어지는 나의 몸.
그리고 내 발이 지면에 닿자,
콰아아아아아앙!!
지면이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용솟음쳤다.
나는 지금의 내 몸에서 솟는 힘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건…….”
그러고 보니 내 몸이 하얀 불꽃으로 불타오르는 모습이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일전에도 한번 본 적 있었던 그림.
그것은 다름 아닌 ‘계승의 힘’을 사용한 달시의 모습이었다.
“설마 이거… ‘계승의 힘’인 건가?!”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내 양손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하얀 불꽃을 감상했다.
틀림없이 달시의 푸른 불꽃과 닮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 어라……?”
갑자기 눈앞이 휘청거렸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용사님! 용사니임!!”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
그 시끄러운 소리에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목을 껴안는 것은 다름 아닌 포비 세이피어였다.
“용사님! 일어나셨군요!!”
“으응…….”
게슴츠레 뜬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자 포비 옆에는 가만히 앉아 있는 데이몬이 보였다.
‘뭐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전후 사정을 깨닫게 되었다.
‘나 기절했던 건가……?’
마지막 기억은 세오린 산 폭포 가에서 ‘세이피어의 부적’을 발동시켰던 일이었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아마도 그 자리에서 과부하로 인해 기절한 모양이었다.
“으으으…….”
나는 상체를 일으켜 보려 했지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세이피어의 부적’을 발동시킨 반동인 것 같았다.
그런데 비단 반동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조심해요!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돼요. 일주일이나 누워 있었잖아요!”
“뭐……? 일주일?”
일주일이라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일주일 동안 기절해 있었던 거라니.
어쩐지 내 몸이 말을 잘 듣지 않고 어색한 기분이 드는 현재의 몸 상태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정말 일주일 동안 기절해 있던 거야……?”
“용사님이 갑자기 실종돼서 얼마나 깜짝 놀랐다고요! 온 동네를 수색해서 겨우 쓰러져 있던 용사님을 발견한 거예요.”
“어떻게 된 거야……?”
묵묵히 있던 데이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데이몬과 시선이 맞자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피식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조금 무리했나 보네. 너무 걱정하지 마. 이젠 괜찮으니까.”
지금껏 나를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데이몬이 이제는 완전히 날 걱정하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데이몬에게 눈웃음을 보였다.
‘그나저나 그거… 역시 ‘계승의 힘’이었겠지……?’
‘세이피어의 부적’ 아티팩트의 효과를 단순한 신체 강화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능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고작 3분 정도 사용한 것 같았는데 일주일 동안 기절해야 하는 반동이라니…….
‘아무래도 나와는 조금 상성이 안 맞아서 그런 건가.’
달시가 ‘계승의 힘’을 사용했을 때는 지속시간이 10분이 넘었었고, 딱히 페널티도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달시는 세이피어 가문의 피가 흐르기에 ‘계승의 힘’의 제약이 없는 것이고, 나는 외지인이기에 아직은 부담이 있는 듯했다.
‘뭐, 차차 익숙해지겠지.’
중요한 것은 페널티가 아니었다.
내가 세이피어 가문의 ‘계승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세이피어의 부적’은 물론 페널티가 있었지만, 다른 아티팩트보다도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역시 ‘계승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영웅의 아티팩트가 영웅의 고유 마법 그대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인 건가?’
분명 ‘계승의 힘’은 세이피어 가문의 고유 마법이었다.
아마도 달시와의 신체 접촉을 통해 ‘계승의 힘’의 전송조건이 달성된 모양이었다.
그것을 아티팩트로써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아티팩트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지금껏 그러한 사실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골드버그의 회중시계’ 때문이었다.
제페토가 말했던 소환계 영웅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의 고유 마법은 ‘정령왕’의 소환.
그렇다면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로 소환할 수 있는 매기, 파르와는 조금 거리감이 있었다.
‘어쩌면 매기와 파르가 정령왕일 수도 있는 거잖아?’
물론 ‘영웅의 아티팩트’가 영웅의 고유 마법을 사용한다는 가정이 틀렸을 수도 있었다.
다만 어느 정도 기대가 되는 부분이었다.
‘나중에 아카데미로 복귀하게 되면 도서관에 들러야겠네.’
그곳에는 마계 대전의 일곱 영웅에 대한 정보가 있을 터.
그리하여 나는 그때 가서 알아볼 심산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용사님!”
그런데 옆에서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포비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해요?”
그러고 보니 꼬마들을 앞에 두고 조금 생각이 길었던 듯싶다.
“미안.”
“저 데이몬에게 다 들었다고요!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사님!!”
“으응, 그랬구나.”
데이몬을 스윽 보자, 데이몬은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포비에게 잔뜩 말한 모양이지.
이제 저 녀석도 그때 이후로 나를 용사로 여기는 듯싶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좀 용사답긴 했어.’
입가에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이제 용사님은 떠나시는 거예요?”
“가지 마, 용사님.”
포비의 말에 살짝 울상을 짓는 데이몬.
나는 그런 두 꼬마 녀석을 양팔로 안았다.
“걱정 마. 나중에 또 놀러 올게.”
“진짜요?”
“…진짜?”
“응. 약속할게. 알잖아?”
나는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용사는 약속을 지킨다는 거.”
내 말에 두 꼬마는 더욱더 거세게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잠시 후.
이윽고 녀석들이 방을 나가고, 나는 혼자 남게 되었다.
그런데 문득 품속에서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드르르르륵―
나는 그 예사롭지 않은 진동의 원인을 손으로 더듬었다.
그곳에는 다름 아닌 캐서린 골드버그가 준 휴대용 마나 송신기가 있었다.
“뭐야? 애초에 연락할 사람이라고는…….”
내 번호를 알고 있는 캐서린 골드버그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렇지 않게 휴대용 마나 송신기의 화면을 확인했다.
[캐서린(1분 전): 진짜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죠……?!]
[캐서린(1시간 전): 설마 무슨 일 생겼어요……?]
[캐서린(1일 전): 답장하세요!]
[캐서린(2일 전): 왜 답이 없는 거예요?]
……
[부재중 통화 내역 47건]
“…부재중 통화 내역이 47건이라고?”
조금 당혹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