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11화
이 후 그의 검은 뱀은 평균 80%~90% 사이의 완성도를 오갔다.
남은 10% 정도에서 그의 검은 성장을 멈췄는데, 이는 검은 뱀을 수련한 시간이 유난히 짧은 이유와, 아직 상급 익스퍼트에 대한 깨달음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는 오직 시간과 노력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였다.
사실 이 검은 뱀은 야안이 판단한 것처럼 고위 대전사로 올라서기 위한 중위 대전사들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검법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만 이 검은 뱀에서 그같이 빠르게 효과를 얻어내기란, 야안의 초감각과 같은 비이상적인 감각과 야안과 같은 경지에 들어서지 않고는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예전 대전사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던 루시우는 야안이 이 검법에 전념하는 모습에서 그가 어떠한 경지에 올라섰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멀리서 그의 수련을 지켜보다 어느 순간 그의 검에서 기세가 사라지자 그는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막연히 그 신위가 대단하다 여겼지만, 설마 고위 대전사를 바로 코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전설의 추종자라 하였던가? 지금 그의 모습만으로도 앞으로 대륙에 새로운 전설이 되기에 충분하구나.”
그는 조용히 그의 모습을 살펴보다 이내 자리를 벗어났다.
‘후~ 오늘은 쉽사리 잠을 이루기는 글렀군.’
그는 내일부터 하얀 까마귀 부족의 영역에 들어가는지라 잠깐이라도 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대전사의 탄생을 보고 온 지금 흥분이 가시질 않아 오랫동안 잠자리에서 뒤척여야 했다.
다음 날, 새벽의 미명이 보이기 무섭게 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금부터 움직여야지 날이 저물기 전에 하얀 까마귀 부족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간단히 음식을 만들어 식사를 한 뒤,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에 움직였던 탓에 초기에 홉킨이라 불리는 거대 박쥐들의 기습을 받아야 했지만, 이미 이 일을 예상했던 루시우의 적절한 대처에 별다른 피해 없이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야안은 어젯밤, 검은 뱀에 의해 하나의 벽을 부순 뒤부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여유를 찾게 된 야안은 그제야, 디다들의 몸에서 나온 작은 구슬들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마나 농도를 높일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 고찰했다.
디다족 족장의 몸에서 나온 구슬은 다른 디다들의 작은 구슬보다 크기는 반 배가량 작았으나 마나를 끌어들이는 힘은 여타의 구슬 100개가 모인 것만큼이나 강력했다.
야안은 이것을 잘 이용한다면 마나 농도를 세 배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최소 중급 마정석 세 개가 필요할 것으로 보았다.
상급 마정석을 이용한다면 그 범위를 두 배가량 넓힐 수 있을 것이라 보았지만, 현재 야안이 가지고 있는 상급 마정석 하나뿐이었기에 만약을 위해 제외하기로 했다.
야안은 수식을 짜기 위해 그날 늦은 저녁까지 한마디 말없이 묵묵히 걸었는데, 라진은 야안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주위 사람들에게 야안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렀다.
늦은 저녁, 마나 수식을 짜느라 주위 환경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야안은 초감각에 의해 초급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자와 상급 유저 30명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이내 짜고 있던 수식을 접었다.
곧 야안이 느꼈던 것처럼 오솔길 근처까지 그들이 다가가자, 한 무리의 존재들이 모습을 보였다.
포를란과 외모가 비슷한 회색 머릿결에 검은 눈동자를 지닌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하얀 까마귀 부족 영역의 입구를 지키는 자들로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대전사는 전사들의 복식에서 우호 부족인 노란 빛살 부족임을 알자 반기며 다가왔다.
루시우와 안면이 있는 듯, 대전사는 자신의 가슴과 어깨를 한 번씩 치며 경의를 표하더니 이내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이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인가?”
그의 말에 루시우는 품속에서 목곽을 꺼내 열어 보이며 말했다.
“큰 스승께서 펼치실 비법에 필요한 재료를 가져다주러 왔다네. 또한, 중요한 분들을 모시고 왔다네.”
대전사는 루시우가 보여준 보랏빛이 이는 눈의 꽃에 감명을 받은 듯한 표정을 보였다. 작은 부족을 이끄는 그로서는 그것을 구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 그가 중요한 분들을 모셔 왔다는 말에 주위를 살펴보다 과연 노란 빛살 부족과 어울리지 않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그도 낯이 익었는데 잠시 후 이내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격정에 몸을 떨어댔다.
“이것이 꿈이 아니겠지. 진정 포를란 그대가 맞는가? 살아 있었단 말이던가?”
한때 같은 대전사 밑에서 검을 닦으며 우애를 나누던 친우가 자신의 눈앞에 있자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믿기지 않아, 점차 그에게 다가가던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24년 전, 대전사가 몬스터에게 죽은 뒤 그들은 두 가지 선택에 빠져야 했다.
대전사의 뜻을 따라 토벌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뒤로 물러설 것인가?
당시 1조장이었고, 전사 중에서도 인망이 높았던 포를란은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대전사의 뜻을 저버리고 물러서기로 했다.
대전사가 수장을 잡으며 전사하였지만, 아직 몬스터의 세력은 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전사들의 수는 처음에 왔을 때의 반도 되지 않았기에, 잘해야 같이 전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운이 좋다 해도 이들 중 살아가는 이는 두셋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포를란은 그렇게 어이없게 죽는 것은 불합리하다 판단하였고, 후에 전사들을 더 끌고 와 이곳을 치는 것이 옳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과 달리 부족의 수장들은 대전사의 마지막 명을 거역한 이들에게 벌을 내리기로 했다.
당시 족장이 바뀌던 시기라,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어야 했기에 그 사정을 알았음에도 벌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포를란은 또한 거기까지 예상한바 그 자신이 책임을 지고 벌을 받기로 했고, 결국 그는 큰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부족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포를란 덕분에 살아남은 전사들은 크게 슬퍼하였다.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떠나는 포를란의 운명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때 살아남은 전사 중 하나였던 당시 2조장이었던 루론은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포를란이 믿기지 않았다.
포를란은 24년 전 전우였던 그가 이제 대전사가 되어 있는 모습에 크게 기뻐하며, 경의를 표했다.
“떨어진 하얀 깃털이 하얀 까마귀 부족의 대전사를 뵙습니다.”
가슴과 어깨를 두 번 치며 경의를 표하는 옛 친우의 모습에 루론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그의 어깨를 잡고 일으켰다.
“이 친구야,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는 하얀 까마귀 부족의 위대한 전사이네. 그것은 그 누가 무어라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눈물을 흘리는 루론의 모습에 포를란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대는 여전히 눈물이 많군. 대전사에 올랐음에도 변하지 않으니 수하들이 고생이 많겠어.”
“하하, 자네 몰골이나 보고 말시게.”
루론의 말처럼 어느새 포를란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루시우는 하얀 까마귀 부족의 대전사 루론이 포를란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에 안도를 표했다.
만약 그가 포를란을 적대하였다면, 그를 비호하기로 한 자신의 입장은 상당히 난처했을 것이다.
잠시 회포를 풀던 포를란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네. 귀한 분들을 모셔 왔네. 이분들 덕분에 내가 다시 하얀 까마귀 부족에 염치없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네.”
그러면서 예를 보이며 라진에게 루론을 소개하였다.
“이 친구는 하얀 까마귀 부족의 대전사인 루론이라 합니다. 인사드리게. 새로운 붉은 눈 부족의 왕족이신 라진 왕자님일세.”
루론은 포를란의 말에 놀라다, 루시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을 보여주자 멍해지는 머리를 힘껏 흔들며 서둘러 인사하였다.
“하얀 까마귀 부족의 루론이라 합니다. 붉은 눈 부족의 왕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수장이 인사를 하자, 그의 뒤에서 대기하던 서른 명의 수하들 또한 크게 예를 표했다. 라진은 그들의 예를 손을 저어 물리며 그 특유의 털털한 어조로 말했다.
“반겨주시니 고맙구려. 늦은 시간에도 고생이 많소. 괜찮다면 여정에 지친 일행들을 빨리 쉬게 하고 싶네만.”
루론은 그의 짙은 붉은 머리 사이로 보이는 선홍빛 눈을 확인하며, 그가 보기 드문 정령사임을 알 수 있었다.
선홍빛 눈에 붉은 머리를 한 왕자라면, 장차 붉은 눈 부족에서 대단한 위치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짐작하건대, 대부족 족장의 권한에 해당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라.
그 사실을 깨닫자 그는 라진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물론입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루론은 서둘러 수하들을 지휘하며 오솔길 너머에 숨겨진 길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렇게 그들을 앞세우며 따라가던 야안은 기이한 힘과 공존된 마법진에 의한 환영을 볼 수 있었다.
그 환영은 날카롭게 날이 선 벼랑이었는데, 그 불어오는 바람이나 주위의 풍경에 따라 변화하는지라 어설픈 환영 마법과는 차원이 달랐다.
루론을 비롯한 그들은 그 절벽에서도 가장 역풍이 강한 곳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옮겼고, 이내 어둠 속 절벽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듯이 그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노란 빛살 전사들은 예전 회합 때 온 적이 있었던지라 거침없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야안과 라진도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섰다.
강한 바람을 헤치며 들어서기 무섭게 잘 가꾸어진 넓은 도로가 모습을 보였다.
자갈로 단단히 고정된 도로는 상당한 무게를 실은 마차 네 대가 동시에 지나가도 될 정도로 넓고 튼튼하였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나, 남작성 정도 크기의 성벽을 발견하였다. 앞에는 깊고 넓은 수로가 형성되어 성문을 내리지 않고는 공략하기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곧 루론이 품속에 가져온 무언가에 불을 붙여 흔들었고, 곧 성벽 위에서 분주히 움직이더니 성문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성문은 넓은 도로를 그대로 이을 만큼 넓고 거대했고, 덕분에 300에 달하는 그들은 어려움 없이 성문을 지나칠 수 있었다.
그리고 성문을 들어선 순간 이곳에 처음 들어선 라진과 야안은 하얀 까마귀 부족이 사는 곳을 확인하면서 절로 감탄하였다.
“놀랍군. 숲 속 중심에 이 같은 대도시가 있을 줄이야.”
“그러게 말이네. 왕성이 있는 도시라 하여도 믿겠군.”
날이 어두워졌음에도 도로 여기저기에서 빛나는 마법으로 처리된 등불로 인해 그들은 어려움 없이 도시를 살펴볼 수 있었다.
단층 건물은 몇 되지 않았다. 4~5층가량의 높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모습을 보였으며, 중간 중간에는 밤임에도 꺼지지 않는 분수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날이 어두움에도 마법 등에 의지해 여전히 거리에서 분주했고, 저마다 자신이 할 일에 빠져 상당히 바빠 보였다.
그처럼 밤에 사람들이 오고 가면 위험 요소가 있을 것인데, 지나가는 내내 고성을 듣지 못했다. 교육도 뛰어났고, 치안도 높아서인지 어린 여인들도 늦은 밤에 찻집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포를란과 로즈는 14년 만에 돌아온 고향의 모습에 감희가 새로운 듯했다.
걷는 걸음 하나하나가 감동이었고, 크게 변하지 않은 고향의 모습에 자신이 꿈속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도로를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전사들의 모습에 제 일도 멈추고 나와 예를 표했고, 전사들 또한 작게 묵례를 하며 그들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야안은 그곳을 지나가며 마법 등의 구조를 살펴보았는데, 그 구조가 간단하면서 큰 재료비가 들지 않는 형태임을 알았다.
마법진을 그릴 수 있는 가장 싼 재료인 순도 높은 구리와 몬스터의 피를 정제하여 만든 약품으로 처리한 것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덕분에 수식은 복잡해졌지만, 재료가 싸진 덕분에 대량 생산할 수 있어 보였다.
야안은 지나가면서 그 마법 등에 깃든 마법진을 살펴보며 아껴 쓴다면 최소 3년간 쓸 수 있음을 알았다.
마나 부여를 하는 것도 하루에 초급 현자 비기너라면 열 개, 익스퍼트라면 50개는 충분히 생산이 가능해 보였다.
야안의 경지인 중급 현자 익스퍼트라면 하루에 홀로 1,000개도 무리 없이 부여할 수 있었다.
야안은 그같이 간단하면서도 활용성이 높은 마법 등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잠시 마법진의 구조를 떠올리며 알리의 저서를 통해 높은 수준의 마법 지식을 활용한다면 이보다 수명이 긴 마법 등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보급한다면, 산업이나 시장의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시간가량 그것에 대해 생각에 잠기다 곧 루론이 안내한 숙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임시 숙소라 하지만, 라진의 신분 때문인지 숙소는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그가 도회지에서 본 귀족가의 저택만큼이나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였다.
노란 빛살 부족의 전사들은 아래층에서 짐을 풀었고, 라진의 일행들은 그 위층에 안내한 방에 짐을 풀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탓인지, 곧 만찬이 준비되어 나왔다.
이곳 저주받은 숲 부족들의 음식은 대부분이 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아, 음식이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했다.
그 식재료는 공작가 출신인 라진도 보지 못한 것들이 상당했는데, 어느 귀족가의 파티에서 나오는 음식만큼이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이곳 숙소에서 준비된 거대한 욕조에서 몸을 씻은 야안은 운기조식을 끝마치고 검을 수련하다 하인으로부터 큰 스승이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검을 접고 기다리고 있는 하인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