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140화 (140/385)

야안 140화

시간이 흘렀다.

마크 자작을 비롯해 500의 기병은 모든 기력을 다 회복한 상태였다. 곧 척후병 쪽에서 신호가 울리기 시작하자 출정준비를 마친 그들은 일거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미 한 차례 붉은 물결과의 전투에서 대승한 덕분에 사기가 최고조에 오른 터라 나프롬 자작가의 병력은 감히 이들의 병력을 막아서지 못했다.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전술에 절정기에 다다른 마크 자작이 이끄는 만큼 500의 기병은 자신의 기량 이상의 힘을 보였다.

특히나 그들 중 일천에 달하는 적을 홀로 상대할 듯한 챈들러의 기세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피보라가 터지며 길이 열렸다.

마크 자작은 예전 제국의 검은 바람이 펼친 전술을 개량하여 펼쳤는데, 야안이 고안한 삼방검진의 묘용이 절묘하게 어울린 터라 순식간에 300의 기병은 숨이 끊겼고, 남은 700의 보병 또한 300이 죽고 400이 포로로 잡혔다.

수풀 너머로 도망친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미 마크 자작이 준비한 함정에 걸려 비명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마크 자작은 400의 포로 중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이들의 숨을 끊게 했다. 비정하지만, 이 같은 깊은 산 속의 부상자들은 몬스터들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워낙 압도적으로 이긴 터라 300기의 말 중 단 40기만을 잃은 채 260기의 말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같은 전리품을 얻은 것보다 마크 자작은 이번 전투에서 자신이 고안했던 전술이 기대 이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것에 대해 더욱 기쁜 듯 보였다.

개선해야 할 점이 있긴 했지만, 이는 숙련도의 문제였다. 자연히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마크 자작의 복수극의 서막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앞으로의 길고 긴 전투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의 전투였지만, 이번 전투를 통해 카람 백작 가에게 어느 정도의 복수를 할 여지가 있음을 확인해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마크 영지의 총관에 복귀한 야안은 제자인 한스 덕분에 행정 일이 매우 줄어들었다.

그간의 보고서를 통해 한스와 그의 제자 엘룬의 처리 능력에 감탄한 야안이 그들에게 상당한 량의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다른 왕국의 영지와의 거래 또한 이제 상인으로서 모습을 갖춘 론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터라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자신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시장은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더욱 번화해지고 있었다. 한 번 불이 붙은 시장은 무섭도록 성장해 가고 있었기에 야안은 자신이 예상했던 시기보다 시장의 터를 확장시키기로 했다.

또한 갑작스러운 시장의 성장이 영지에 악영향을 끼칠까 어느 정도의 제재를 걸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여러 혜택을 주기도 했다.

그가 데려온 물의 정령사인 제코의 등장은 마크 영지 내에서 큰 화제를 가지고 있었다. 정령사라는 존재는 현자에 비해서도 보기 힘든 존재였기 때문이다.

후작 가 이상의 대귀족에서도 그 모습을 보기 힘든 존재가 정령사였다. 왕성에서 아주 뛰어난 조건을 내걸어 적극 모셔 가는 것이 이들이었으니 이 정령사가 시골 자작 가에 출사한다는 의향에 당연히 그의 존재는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정령사가 그렇지만, 특히나 물의 정령사는 영지에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아직 하급 정령 비기너에 불과하지만, 지금으로도 그는 수맥을 찾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물이 부족한 마크 영지에서는 매우 귀한 능력이었다.

그로서 마크 영지의 우물이 늘어나게 된다면, 사람이 늘어나면 일시적으로 물 부족 현상을 앓는 고질적인 문제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그가 하급 정령 익스퍼트에 오르게만 된다면 어느 정도 물의 흐름을 임시로 제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앞으로 거대한 관개수로 공사를 해야 하는 마크 영지의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둑을 쌓아 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여러 위험 부담 또한 사라질 것이다.

그런 인재였으니 제코는 아직 전쟁을 나간 마크 자작을 만나지 못해 아직 정식으로 작위를 받지 못했지만, 이미 영지의 사람들로부터 준 귀족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비록 왕성에서 인정받은 준 귀족이 아닌 자작 가에서 내 주는 준 귀족이기에 그 격은 떨어지지만, 정령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후, 그가 하급 정령 마스터에 들어섰을 때 능히 남작의 신분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승 귀족을 넘은 진짜 귀족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에는 대귀족이나 왕성에 충성을 맹세하는 조건이지만 귀족의 신분을 얻는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사사로운 것에 불과했다.

제코의 놀라운 점은 단순히 정령만을 다루는 정령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의 검은 중급 유저의 끝자락에 올라서 있었다. 그가 물의 정령을 다룬다는 생각한다면 지금으로도 능히 상급 유저와 검을 맞부딪힌다 해도 밀리지 않는 무위를 지녔다는 말이 된다.

아직 17이라는 나이를 생각한다면 그의 잠재력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어쩌면, 현재 영지에서 검에 한해 뛰어난 천재로 이름 높은 테리와 좋은 맞수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그가 처음 이곳 마크 영지에서 시작한 일은 바로 가장 시급한 수맥을 찾는 일이었다.

정령과 계약을 한 지 한 달 정도에 불과했지만, 고대 물의 종족인 멀머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의 물의 친화력은 여타 물의 정령사 중에서도 크게 뛰어난 편이라, 그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힘이 겨워했지만, 이내 몇 번의 수맥을 찾게 되자 요령이 붙어 조금씩 수월해 졌다.

가장 급한 새로 지어진 마을 쪽의 우물을 찾기 시작한 그는 이후 가장 많은 물이 쓰이고 있는 새로 개간된 논과 밭 근처에 수맥을 찾았다.

하지만 마크 영지에서 원하는 수준의 물을 찾기란 어려움이 컸다. 자작가로 확장되고 있는 영지를 이제 막 물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가 모든 곳을 뒤지기란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탓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제코가 찾은 수맥 중 물의 저장량이 제법 많은 곳을 찾은 터라 어느 정도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가뭄이 없는 터라 언제 가뭄이 들지 몰라 걱정하였지만, 며칠 전부터 시작되는 우기를 보자면 다행히 올해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듯 보였다.

야안이 영지에 복귀한 지 열흘째가 되던 날.

카람 백작과의 전투를 위해 출정한 이들이 영지로 복귀하였다. 전령을 통해 크게 승리하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 감희가 남달랐다.

특히 그들이 데려온 2,200명이 넘는 노예와 말300기 그 이외 5,000의 병력이 두 달을 먹을 수 있는 식량과 무기와 갑주들이 자리한 20대의 마차는 대단한 장관이었다.

영지민들은 모처럼의 구경거리에 대로로 모여들어, 큰 승리를 하고 돌아온 용사들을 축하해 주었다.

그들을 데려온 수장인 테리는 한 차례 전쟁을 겪은 뒤라 그런지 몇 개월 사이 성숙한 면모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데려온 전리품을 이미 준비하고 있는 관리들에게 넘긴 뒤, 자신을 반기는 야안에게 대례를 보였다.

“무사히 다녀오셔서 다행입니다.”

충직한 수하인 테리의 그 모습에 야안은 기꺼운 웃음을 보이었다.

“하하. 그래, 너 또한 성한 곳 없이 복귀하여 마음이 놓이는구나. 보아하니 실력이 늘었구나. 장하다. 본래 지금은 정체될 때이건만. 그 모습만 보아도 네가 얼마나 스스로 갈고 닦는지 알 수 있겠구나.”

스승이시자, 마음속의 주군이시기도 한 야안의 그 칭찬에 테리는 소년처럼 얼굴을 붉혔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 이만 쉬도록 하여라. 조촐하지만, 작은 연회를 준비하였다. 주군께서 복귀하시면 제대로 된 연회를 열 터이니 아쉽겠지만, 우선 이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으면 하구나.”

야안의 그 말에 복귀한 병사들은 저마다 기꺼운 표정을 보였다.

곧 하인들의 안내를 받아 성의 외곽으로 움직인 그들은 기름진 음식과 술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며 서둘러 다가갔다.

그동안 거친 음식과 거친 잠자리를 하며 긴장감이 몸에 자리한 그들로서는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것만으로도 긴장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간의 군기가 몸에 배어 있는 듯,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자리를 잡는 그들에 야안은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주군이시군. 이 같은 군기라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이것만으로도 확실히 자신이 지도한 군 통솔력에 비해 주군의 능력이 월등히 뛰어남을 알 수 있다.

테리는 그들 사이에서 음식을 즐기지 않았다.

본래도 그런 것을 멀리하는 성향이었지만, 그보다 주군에게서 최근 검을 수련하면서 생긴 문제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싶어 했고, 야안 또한 그의 의중을 알고는 시간을 내어 그를 가르치기로 했다.

과연 그 간 피를 먹은 덕분인지 테리의 검에서 짙은 살기가 은연히 흘려 나왔다. 검에 무지한 이조차 절로 몸을 떨만큼의 짙은 살기였다.

그 살기 덕분에 그의 검은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배는 더 날카로운 면모를 보였지만, 야안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너의 재능이 뛰어난 것이 문제구나. 벌써 이 같은 살검이라니.”

야안은 그의 검에서 테리가 그간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 재능도 뛰어난 덕분에 테리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살검을 가지고 있었다.

테리의 성정이 침착하고 워낙 근기가 있는 덕분에 아직 살검에 빠지지 않은 것이지 의지가 약한 이었다면 벌써 피를 그리워하는 살인마가 되었을 것이다.

용병 중에는 이런 이들이 간혹 있었다.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도 모르게 위력적인 검에 취하다 보니, 살검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데 대부분이 이를 극복하지 못해 희대의 살인마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테리 또한 그럴 조짐이 보였는데, 워낙 입이 무겁고 그 행동 또한 무거운 탓에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낸 챈들러도 미처 알지 못했다.

다행히 상급 익스퍼트에 올라서고 초감각을 가진 야안이었기에 그는 그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너무 검의 날카로움에 취해 있는 그를 한동안 다른 형태로 수련하도록 교정 시켜주었다.

“내가 너에게 알려준 이십사수검법에는 그 위력도 대단하나 그뿐만이 다가 아니다. 이 안에는 여러 묘리가 숨겨져 있다.”

그렇게 말하던 야안은 천천히 이십사수검법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절정을 넘긴 그의 이십사수검법은 그 벽이 없는 듯 한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테리는 야안이 펼친 그 검법에 알 수 있었다. 검에 담긴 오의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화접목과 사량발천근과 같은 고급스러운 검의 묘용들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검이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는지 알 게 되었다.

야안은 테리의 얼굴에서 그가 자신이 지적한 부족한 부분들을 깨달은 것을 알고 적잖게 감탄했다.

비록 야안이 그의 수준에 맞게 검을 풀어주었다지만, 이처럼 한 번에 자신의 잘못된 점을 깨닫기란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그 스스로 깨달은 바에 대해 연무하기 시작했는데, 야안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이내 자리를 피해 주었다. 아마 테리로서는 길고도 짧은 밤이 될 것임을 알아서였다.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야안은 이제 흥이 올랐는지, 연회의 시끌시끌한 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보이다 이내 관료들이 가져온 이번 전리품에 대한 보고서를 정리하였다.

확실히 2,200명이나 되는 노예는 예상하지 못한 성과였다.

이들 노예의 대부분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좋은 인재들을 구할 수 있어 보였다. 야안은 성장 가능성이 많은 나이대의 노예를 중심으로 날을 나누어 검토할 수 있게 계획을 짰다.

그 모든 일을 마친 뒤에도 날이 어두워지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남은 덕분에 야안은 그 시간을 수련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붉은 실을 수련하고 운기를 한 뒤 그는 뇌전의 호흡법을 시전 했다.

그가 보름을 예상했던 것 인만큼 이틀 전부터 뇌전의 정령이 깨어나려는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야안은 이 뇌전의 정령을 억지로 깨우려 시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앞으로 평생을 같이 해야 할 동반자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의도를 알았던지, 뇌전의 정령은 흠뻑 야안에게서 기운을 받으며 그 스스로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수련을 마친 야안은 노을이 지는 것을 보며, 성을 나섰다. 성을 나서며 아직도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테리를 볼 수 있었고, 성 외곽에 이제 작은 연회를 끝내고 있는 돌아온 용사들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데려온 검은 야쿤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문을 열자마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들을 볼 수 있었다.

아직 4살이 데려면 몇 달이 남았지만, 그 덩치는 5~6살 못지않은 아론의 모습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느끼듯 흐뭇하게 만들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을 번쩍 들어 올린 야안은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며 인사하는 아론에 미소를 떠올렸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그래, 오늘도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들었니.”

“네, 오늘 할아버지와 함께 뒷산에도 올라갔어요.”

아론은 오늘 할아버지와 함께 뒷산에 올라 약초에 대한 것을 배우기도 하며, 푸른 들판에서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하기도 한 것을 자랑했다. 곤충들의 흥미진진한 싸움을 보기도 했으며, 시냇가에 흐르는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마치 집에서 읽은 위인전처럼 나뭇가지를 검으로 삼아 꽃밭에서 휘두르며 달리기도 했던 아론은 결국, 지쳐 잠이 든 바람에 베론 가한의 등에 업혀 와야 했다.

속삭이듯이 오늘 한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론에 야안은 하나하나 호응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재밌게 놀았구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야안은 지난 자신이 사 온 담배를 피우시는 아버지를 살펴보았다. 혹시 손자와 같이 시간을 보내시는 게 몸에 무리가 오신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다행히 입가에 미소를 보이는 베론 가한의 건강한 모습에서 야안은 걱정을 접었다.

이제 그의 아버지도 나이가 60을 넘기신지라 건강을 걱정했던 야안이 여행을 오면서 새롭게 만든 위대한 보호의 조각이 그의 몸에 적응한 모양이었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에게 남긴 이 위대한 보호의 조각은 그 명칭이 알려 주듯이 지금까지 그가 만든 보호의 조각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위대한 보호의 조각

등급 ; C+

그레이트 힐의 마법이 자리한 보호의 조각이다. 더불어 강력한 마케 마법이 하루 20번 지속적으로 펼쳐진다. 숙련된 이가 만든 마법 물품이다. 영구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 사용자는 주위환경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

* 사용자의 상처를 빠르게 치유하며, 노화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 오랫동안 지니고 있으면 몸에 힘이 붙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는 효과가 있다.]

앞서의 설명처럼 위대한 보호의 조각은 중급 현자 마스터에 오르게 되면서 펼칠 수 있는 그레이트 힐의 마법을 담은 것이었다.

덕분에 그 지닌 효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세 번째 스승에게서 받은 유품에 마정석이 많지 않았다면 사실 시도하기 어려웠을 마법 물품이었다.

중급 마정석이 3개씩 들어선 것이기에, 그 가치는 상당한 것이기도 했다.

야안은 자신이 만든 이 위대한 보호의 조각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이는 듯하자 다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급 마정석 하나도 비싼 것이지만, 부모님의 건강을 찾는다면 능히 그럴 가치는 충분했다.

그 효과를 받고 있는 그의 어머니 마리 또한 최근에는 안색이 한결 밝아져 있었던지라, 그는 큰 보람을 느꼈다.

이제 여름이라 불을 가까이하는 일이 힘들지만, 이 위대한 보호의 조각을 가진 뒤 마리는 그런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아들의 재롱을 받아들이던 야안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아론은 이제 능숙한 포크 질로 자신에게 주어진 음식을 먹었다.

반년 전만 해도 멜리나가 음식을 먹는 것을 도와줘야 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큰 변화였다. 오물오물 씹는 아론의 모습과 아들의 먹는 모습이 닮아 보였던지 마리는 작게 웃음을 흘리곤 했다.

지난 마크 자작과 함께 출정을 나갔던 군대의 일부가 돌아왔고 그 전투에 대해 야안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책이나 오래된 이야기에서 들은 것보다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마크 자작의 전투는 흥미진진한지라 가족들은 손에 땀을 쥐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서 별다른 피해 없이 적을 무찌르고 상당한 양의 전리품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말하자 베론 가한은 절로 감탄을 흘렸다.

“역시, 자작님이시구나. 하기야 그분의 능력은 오래전에도 입증된 바가 있었지.”

젊은 시절의 마크 자작의 놀라운 전술을 기억하는 베론 가한이었다. 나이가 들어 생각이 깊어지고 전쟁을 통해 경험이 쌓이게 된 마크 자작의 전술은 지금에 이르러 신기라 할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이로서 카람 백작 가와 영원히 틀어지게 되었으니 걱정이구나.’

그래도 그 거리가 먼 탓에 쉽사리 카람 백작 가 쪽에서도 상대하기 힘들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또한, 그들과 사이가 나쁜 티온 백작 가가 있다는 점을 본다면 그들이 자신들을 상대하는 데 쉽게 움직이지 못할 상황이라는 점은 그의 걱정을 그나마 무디게 하였다.

야안은 아버지의 걱정을 눈치채고는 이내, 앞으로 영지가 얼마나 크게 변화 게 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런 아들의 모습에 베론 가한 또한 미소를 보이며 걱정을 덜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 연기를 뿜었다.

식사를 끝내고 이런저런 화담을 나누던 그들은 어느새 코를 색색 거리며 잠이 든 아론의 모습에 웃음을 흘렸다.

조금 전 야안이 이야기한 전투에 두 손을 꽉 쥐며 흥분을 하던 아론은 오늘 낮에 신나게 뛰어놀았던 피곤함이 아직 남아 있는지 깊은 수면에 빠져 있었다.

야안은 아들에게 마케를 걸어 피곤함을 달래주더니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내 아들을 데리고 문을 나섰다.

새롭게 꾸민 아들의 방의 침대에 내려놓은 야안은 이불을 덮어 주고 방문을 나섰다. 멜리나가 그런 야안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 이내 두 팔로 그의 허리를 휘감았고, 야안은 그런 아내를 품 안에 들이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 왜 팔찌를 안 하는 거야? 마음에 안 들어?”

그런 남편의 물음에 멜리나는 웃음을 흘렸다.

“그 귀한 것을 어떻게 매번 해. 그리고 저녁 일손도 도와 드려야 하는데 흠나면 어쩌려고.”

“그런가? 내가 그런 쪽은 뭘 알아야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이해 한다는 듯 반짝반짝 거리는 눈을 지닌 남편의 그 말이 의외라 멜리나는 킥 하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야안은 그녀의 입술 위로 깊게 숨을 나누더니 아내를 번쩍 들어 침상으로 데려갔다. 그런 야안의 모습이 싫지 않은 듯 멜리나는 두 팔을 그의 목을 꼭 붙든 채 얼굴을 살짝 붉히었다.

현재 카람 백작 가의 돌격대를 지휘하고 있는 붉은 검으로 이름 높은 라테온은 마크 자작 가를 압박하기 위해 군사를 보낸 지 나흘째 되던 날에 나프롬 자작 가에서 온 전령을 맞이하였다.

그는 나프롬 자작 가가 풀어놓은 스무 명의 전령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령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서신의 내용은 철의 심장을 지녔다는 라테온을 크게 동요하게 할 만한 것이기도 했다.

“마크 자작의 몸이 회복되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전장을 나설 정도로 몸이 회복했다는 그 소식을 접한 순간 라테온은 눈앞이 캄캄했다.

비록 영지가 대외적으로 내보낼 수 있는 정예병 2,000 병사들과 더불어 간단한 진을 펼칠 수 있는 노예들과 합쳐 5,000에 달하는 병력을 보냈다지만, 그 상대가 마크 자작이라면 이들 중 반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던 탓이다.

아니, 마크 자작 가의 병력이 자신이 예상한 수준을 넘어섰다면 전멸을 하였을 것이다.

‘젠장. 나흘 거리다. 늦었구나.’

만약 전령이 이틀, 아니, 하루라도 더 빨리 도착했다면 이들의 병력을 살려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흘 거리나 벗어나 버린 그들을 불러들이기에 너무나 늦어버렸다.

‘아니, 꼭 그렇지는 않지.’

만약 마크 자작 가의 병력이 제 생각보다 낮다면 그들 중 반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서둘러 당장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성을 나서게 했다. 대부분이 빠른 기동력을 자랑하는 붉은 물결이었다. 그 수가 500에 달했는데, 이 정도라면 최소 그들과 합류해 병력을 살릴 수준은 되었다.

이번에는 붉은 검 라테온이 직접 나서기로 하였다. 영지의 상당한 병력이 빠진 지금, 자신마저 빠진다면 저 교활한 티온 백작 가에서 어떤 피해를 볼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렇다 하여 그 병력을 잃게 되는 것을 두 손 놓고 볼 수 없었다.

이제 막 시골의 자작 가로 부상하는 마크 자작 가에 대한 그의 걱정은 어떻게 보면 망상이라 치부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테온은 지난 마크 자작의 행적을 살피며 그의 무서움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기병을 움직이는 전술을 즐기는 그인 만큼 현재 전쟁에서 사용되는 전술들을 배우던 그는 지금 이 거대한 전쟁에서도 마크 자작의 전술 능력은 한 손에 들 정도로 뛰어남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제국의 검은 전갈을 겨우 기마병 이천으로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라테온은 이 전투는 생각하면 할수록 위대한 승리임을 알고 있었다. 벌판과 달리 숲이라는 점에서 기마병의 움직임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레인저는 벌판에서는 그 능력이 크게 떨어지지만, 숲에서는 그 능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서운 힘을 보일 수 있다.

그런 전투에서 마크 자작은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비유하자면 육지의 짐승이 물속에 들어가 그 자신 못지않은 짐승과 싸워 이긴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라테온은 검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이 전술가에게 큰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그에게 정예 병력 일만이 주어진다면 과연 카람 백작 가는 무사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대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대영지인 만큼 몰락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최소 지금의 세력의 반 이상을 날려 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라테온은 수하들을 재촉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열흘 거리에 불과했지만, 라테온은 다가갈수록 불안감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 현실로 찾아왔다.

이름 모를 산의 한 자락에서 거대한 전투의 흔적을 본 것이다.

아니, 그 흔적을 쫓아갈수록 라테온은 이것이 전투가 아닌 학살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기가 막힌 전술이었다.

기만책을 보이면서 기마병의 활용을 극대화한 능력이었다. 무엇보다 라테온은 이 흔적들 사이로 마크 자작이 보인 기마병이 자신들 못지않은, 아니, 자신들을 상회하는 수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라테온은 자신의 그른 판단에 덧없이 죽음을 맞이한 수하들의 흔적을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는 말없이 잠시 그들에게 대해 사죄를 보이다 이내 중얼거렸다.

“어려운 전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모든 기량을 다해, 반드시 마크 자작을 베고 말리라.”

그런 그의 마음처럼 쓸쓸한 붉은 석양 속에서 말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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