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86화
55. 우두머리의 길
그로부터 오 일이 지난 뒤에야 금가상단의 배가 도착했다.
융 제국의 특별 자치지역인 만 공작 영지에서 무사히 거래가 끝이 난 것이다. 배를 유독 잘 만드는 융 제국인 만큼 도착한 금가상단의 배는 경이적일 정도로 거대하였다.
지난 야안이 본 케인 상단의 배도 놀라울 정도로 컸지만, 이 배에 비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산이 움직이는 듯한 규모였다.
듣기로 배수량이 3,000톤에 달하는 괴물이라 하는데, 마법 제국인 만큼 마법과 기후를 이용해 움직인다 한다.
그 속도는 예전 케인 상단의 배보다 2배는 더 빨랐다.
거대한 배의 안전을 담당하는 자경단의 수준 또한 뛰어났다. 대용병단에 달하는 800에 달하는 인원 중 오분의 일 이상이 중급 유저였고, 상급 유저는 셋이나 되었다. 더구나 마법 무구로 무장한지라 전투시 보일 위용은 두 배는 가볍게 넘을 터였다.
다만, 마법을 중시하다 보니 그들이 펼치는 검법은 조잡한 편이었다. 그저 단순하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 검법이었는데, 오히려 이런 것을 중점으로 둔 탓에 그 지원이나 근골보다 경지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검법도 마법 무구를 함께 이용하니 세련된 면이 자리했다.
산 같은 배에 놀라워하는 이들은 야안만이 아니었다. 이곳의 토박이들 또한 그 같은 규모의 배는 일 년에 몇 번 정착하지 않기에 구경을 하러 온 이들이 상당했다.
모처럼 방을 나와 햇볕을 쬐며 세상을 구경하니 자신도 모르게 초조해졌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리트담의 저서에 대한 고민을 한 쪽으로 밀어 둔 야안은 자신을 유독 따르는 아리와 함께 시장을 구경하였다.
해맑게 웃음을 흘리며 ‘숙부, 숙부. 저것 좀 봐요. 엄청나게 큰 물고기예요.’ 하며 뛰어가는 데 과연 그가 본 어떤 몬스터보다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물고기가 시장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그 크기가 30미터에 달하는 이 물고기는 튜나라고 하는 물고기로 심해어 중 대표적인 물고기이기도 했다.
보통 10미터 내외의 크기인데, 누군지 몰라도 대단한 일은 해내었다.
부위마다 그 맛이 다른데 듣기로 19가지가 맛이 자리하며 그 맛이 하나같이 훌륭하다. 단순히 맛만 아니라 몸에도 좋은데 피부미용이나 정력에도 좋았다. 또한 그 기름은 상질이라 고가의 향수를 만드는데 쓰여 그야말로 움직이는 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리는 그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보이다 근처에서 간단한 사탕과자 파는 상인에게 사탕을 사 먹으며 이내 흥얼흥얼 거리며 시장을 구경했다.
‘딸이 있다면 저 같은 느낌일까?’
야안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에게 손짓하는 아리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재촉했다.
방에 돌아온 야안은 마음의 무거운 짐을 털어버린 듯 그 표정이 가벼웠다. 다른 때처럼 가부좌를 틀고 운기를 한 그는 서슴없이 리트담의 저서를 열었는데, 그날 따라 그림이 투명하고 빛이 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안은 그 느낌이 자신이 기다렸던 때임을 알았던 터라 서슴없이 행운에 스탯을 부여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야안은 눈앞이 크게 흔들거리다 이내 하얀 빛이 시야를 덮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대륙의 12개 종족 중 가장 야만적인 평가를 받는 종족이 있다.
바로 쟈칼이라는 종족이다.
그들은 이성적인 사고가 부족하며 모든 일을 힘으로 해결한다. 힘이 강한 자의 말은 무조건 옳으며 힘이 약한 자의 말은 거짓이다.
약자는 강자를 위해 존재한다. 음식과 주거는 물론이거니와 무기를 만들거나 전쟁 시 소모품 중 하나로 쓰인다. 약자는 강자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강자가 없다면 자신을 지켜 줄 수 없다.
이들 종족의 특성상 하나의 구심점을 이루지 못한다.
이들은 성품이 매우 거칠고 난폭한 탓에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다. 죽은 이는 식량으로 쓰이며,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이 자신이 강해지는 길이라 믿고 있다.
가족의 개념도 약하다. 스스로 걷고 사고를 하는 수준까지 돌보아 줄 뿐 이후부터는 남과도 같다.
같은 배에서 난 형제간에 서로 잡아먹기도 하며, 식량이 떨어지게 되면 가족의 구성 중 가장 약한 존재부터 잡아먹는다.
그런 종족임에도 이들이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것은 강자지존의 법칙이 자리한다는 것과, 그들이 한 번에 상당수의 자식을 본다는 점이다.
보통 아이를 낳으면 8~10명 정도를 낳게 되며 3년이면 성인으로서 완성될 수 있다. 또한, 12 종족 중 힘이 뛰어난 편이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신의 몫을 다 해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강자지존의 법칙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해도 이들은 긴 세월을 버티지 못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야안은 마칸이라는 대부족의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족장의 아들이라 하지만, 야안은 족장의 28번 째 첩의 9번째 아들이라 별다른 특권을 가지지 못했다.
그도 그런 것이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300에 달하는 형제가 자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족장의 씨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야안은 다른 또래의 쟈칼보다 받는 대우는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야안은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약한 편이었다.
강한 힘을 우선으로 하는 종족이기에 몸이 약하다는 것은 세상의 가장 강력한 저주를 받는 것보다 불행한 일이었다.
대부족을 이끄는 족장에게 있어 치욕스러운 일이기도 하기에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운 좋게도 어머니 덕분에 살아남았다.
물론 쟈칼이라는 종족 특성상 그녀가 특별한 모정이 있어 그를 살아남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본래 작은 부족의 다음 대의 족장이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이끄는 군대에 침략당해 지금은 그의 수많은 첩의 하나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녀는 힘이 약한 자식이 있다는 것이 족장에게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복수를 위해 야안을 살린 것이다.
그 이유야 어쨌듯 그렇게 야안은 이 험난한 세상 속에 태어나 생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야안이 넘어야 할 수많은 고난 중 하나에 불과했다.
애초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을 거부한 야안의 힘은 급할 때 먹어치우는 일개 최하급자 쟈칼의 자식들만도 못했다.
다행이라 할까? 아니면 저주라 할까? 야안은 쟈칼 종족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육체가 약한 대신 그의 사고방식이 매우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또한 지금까지 쟈칼 종족 사이에 유례없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지녔다는 것이다.
태어난 순간 모든 것을 기억하며, 어떤 복잡한 형식의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할 재능을 지닌 그는 태어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왜 부족의 왕자로 태어난 자신이 왜 신분을 감추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매우 이성적이며 또한 냉철한 그로서는 자신의 종족인 쟈칼이 습성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우리 종족은 이처럼 비합리적인 선택만을 하는가?’
자신의 종족은 대단히 탐욕적이면서도 그 탐욕을 풀어낼 방법은 약탈 그것 이외에는 없었다.
타 종족을 약탈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부족을 약탈하며 이웃을 약탈하고 수하를 약탈하며 마지막에 가서는 가족을 약탈한다.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으니 노력만 한다면 그런 일을 할 이유도 없을 것이며 또한 더 이상 수하들의 배신을 걱정할 일도 없을 것인데, 멍청하게 배가 고파 스스로 꼬리를 끝없이 물어뜯는 어리석은 일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슬픈 종족의 비애에 젖을 여유는 야안에게 없었다.
그에게는 이제 2년의 세월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2년 뒤 부족에서 행사하는 성인식에서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자신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것이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에게 주는 최대의 복수였다. 자식의 허약함은 족장의 권위를 흔드는 계기를 만든다.
그 말은 그간 눈치를 살폈던 수많은 수하가 족장의 자리에 도전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최악인 경우 쟈칼 부족의 몇 안 되는 대부족이 찢어진다는 말이 된다.
야안은 그 시간이 오기 전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져야만 했다.
하지만 태어나기를 힘이 약해 그 나이대라면 들 수 있는 철퇴나 도끼는 그에게 버거운 것이었다.
그는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몸을 단련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선천적인 인해 한계가 있었다.
야안은 새로운 무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새로운 형태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이 자리한 가운데 그 만남이 있었다. 텐 종족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부족은 텐이 바람으로 사라지면서 남긴 무구들을 가져오게 되었고, 그것의 분류는 최약자들의 손에 맡겨졌다.
야안은 살아남기 위해 최하급자의 자식으로 자리한지라 그 또한 일을 나가야 했다.
그러다, 그는 가져온 이들의 무기 중 자신의 종족은 사용할 수 없는 길이가 길고 끝이 뾰족한 무기를 볼 수 있었다. 대나무로 몸체를 만들어 그 끝자락에 수실과 함께 금속으로 제련된 뾰족한 칼이 있는 이 무기를 본 순간 야안은 한 차례 몸을 떨어야 했다.
‘이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찾는 무기다.’
무게는 여타의 둔중 병기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웠고, 그 길이가 긴 만큼 몸체가 작은 그의 단점을 충분히 보완해 줄 수 있을 듯 보였다.
하지만 이 무기가 어떤 형식으로 쓰이며 과연 어느 정도로 효율성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야안은 지난 전쟁에서 팔다리를 부상당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사를 찾아가 그에게 식량을 나눠주며 물었다.
“이 무기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아십니까?”
그 전사는 야안이 건네 준 음식을 단숨에 먹어치우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네 차례나 텐과 전투를 펼쳤던 그가 그 무기의 무서움을 모르지 않았다.
“텐의 전사들이 주로 쓰는 무기이지. 보기와 달리 이 무기는 매우 사납다.”
그랬다. 허약한 텐의 병사들이지만 이 무기를 든 순간 그들은 더 이상 허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조차 그 무기들로 불구가 되지 않았던가?
자신의 무시무시한 둔중 병기에 비해 나무에 작은 칼날이 붙은 그 무기는 우스워 보였지만, 한 차례 전투를 치른 전사라면 절대 방심할 수 없다.
야안은 그 전사가 죽기 전까지 그의 식량을 책임지어 그를 보살폈고, 전사는 누군가 자신에게 이처럼 호의를 보인 적이 없는 터라 그 기이한 감정에 당혹스러워했다.
만약 자신의 몸이 멀쩡하고 죽는 날을 앞두지 않았다면 그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막상 죽음을 앞에 두자, 관점이 달라졌다.
처음 아이는 자신에게 그 무기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 다가온 것이지만, 그 무기의 사용법이 간단한지라 며칠 지나지 않아 자신의 쓸모성은 사라져 버렸다.
이후 야안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쓸모없는 자신의 허풍 따위를 귀 기울여 들어 주었고, 자신의 몫의 음식의 절반을 건네어 주었으며 아픈 부위를 살펴 주었다.
그 같은 보살핌은 부모에게도 없었던 생전 처음 겪는 것이었다. 음식뿐만이 아니라 고약하게 썩어가는 상처를 살피는 것은 다 큰 성인도 힘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