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94화
효과는 반나절 정도에 불과했지만, 오우거라면 상급 유저가 둘 이상이 모여야 상대할 만한 괴물이라는 점을 본다면 상당히 뛰어난 호위 물품이라 할 수 있었다.
야안 또한 편안한 안전을 위한 여러 마법이 걸린 보호의 조각들을 그녀들에게 주었고, 제코에게는 예전 만들어 두었던 검 중 한 자루를 선물로 주었다.
대장인의 칭호를 달아 만든 검인만큼 명검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검이었는데, 아직 기운의 운용이 완전하지 않아 검기를 온전히 다루지 못하는 제코에게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 물건이었다.
또한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마크 자작과 수하들에 대한 편지와 율 제국에서 구입한 선물들을 부탁한 야안은 잠시 아쉬움을 보이다 이내 백작성을 나서며 그들을 헤어졌다.
이곳 마탄 백작 가에서 레필 공작 가까지의 여정 기간은 말을 타고 달려도 한 달이 걸렸다.
그것도 마탄 백작 가가 중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그런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몇 달이 걸렸을지 모른다.
그만큼 제국은 그 자체로 새로운 세상이라 할 만큼 넓고 거대한 곳이었다.
제국의 황제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검을 숭상하는 제국인 만큼 황제 그 자신 또한 상급 익스퍼트에 들어선 검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나이 벌써 86이었고, 검에 미쳐 살았던 탓에 늦게 자식을 보았던 황자들의 평균 나이대는 마흔이 채 되지 않았다.
철의 황제라 불리는 마코로 황제는 그 별명처럼 젊은 날 전장에서 입은 상처가 독이 되어 몸이 붕괴히고 있음에도 그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지난 대륙 전쟁에서 공을 세운 바를 비교하자면 3황자 측이 약간 우세했으나 그것은 그 말대로 약간이었다.
그것만으로 황태자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거대한 황성의 대회의실은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였다.
그 자리에 자리한 수많은 귀족 중 어느 하나 그 격식이나 무위 등 여러 방면에서 뛰어나지 않는 자는 없었다.
이번 대륙 전장에서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신성들은 물론 수많은 공을 세운 이들이 득실 거렸다.
신분으로 따진다면 최소가 준 백작에 달하는 영향력을 끼치는 자작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곳에 모인 이들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다.
확실히 평소 중한 회의가 아니면 1년에 한 번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제국의 2개의 기둥인 레필 공작과 텔 공작이 그곳에 자리했다.
또한 황성의 핵심부서의 책임자에 자리한 3명의 후작도 그곳에 모습을 보이었다.
그들은 레필 공작과 텔 공작을 중심으로 세 무리로 자연스럽게 나누어져 있었는데 다름 아닌 자신들이 지지하는 세 황자에 대한 것이었다.
뒤늦게 세 황자 또한 저마다 대회의실의 다른 방향의 문에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영준하였으며 그 무위는 이미 중급 익스퍼트에 오른 듯했다. 눈이 매우 맑고 깊어 그 심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일면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1황자는 몇 년의 시간을 더 일찍 세상에 모습을 보인 것을 확인시키려는 듯 그 셋 중 가장 큰 위압감이 자리했지만 그렇다 하여 압도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는 가장 나이가 어린 올해로 서른이 된 3황자 피르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묵묵하고 말이 없는 그는 젊은 사자였다.
융 제국에 호랑이라는 맹수가 있다면 카이엘 제국에는 그 못지않은 사자라는 맹수가 자리한다.
사자는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호랑이와 달리 모든 야수를 지배하고 또한 동족인 사자들을 수하들로 거느리며 전투 시 그 보이는 용맹은 대형 몬스터도 겁을 먹고 도망가게 한다는 야수였다.
피르망은 타고나기를 그런 사자였고, 사자는 가장 젊은 나이에 그 용맹함이 전성기를 보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의 기질을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쟁쟁한 세 황자들은 서로서로 무시하는 태도를 지니었지만, 사실상 그만큼 뛰어났기에 서로에 대해 크게 의식하고 있었다.
자신이 뛰어난 만큼 상대들 또한 그 못지않다는 것을 어떤 자들보다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귀족들은 그런 주군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상대의 귀족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제국을 지키고 수호하는 2명의 절대자가 있는 대회의장에 자신의 기운을 발산하는 멍청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검의 절대자, 검의 마스터, 초인 등 수많은 수식어가 자리한 그들 앞에 그런 무례한 짓을 저지른 자는 애초 검을 숭상하는 카이엘 제국의 귀족이 아니었다.
누구 하나 살기를 일으키는 것도 기운을 발산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대회의장은 범인이라면 감당하지 못할 무거운 분위기가 자리했다.
하지만 곧 그 무거운 분위기를 날릴 요란한 나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대회의장에 가장 앞선 쪽에 자리한 오직 한 존재만이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구구구궁-’
높이만 해도 10미터에 달했고, 그 무게는 그 문 한쪽이 1톤에 달하는 그야말로 벽이라 해도 무방할 그곳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들어서는 이는 이곳 모든 귀족을 휘어잡을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노인이었다.
저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는 화려한 황관을 쓴 것을 보면 그가 바로 이곳 카이엘 제국의 절대자인 마코로 황제임을 알 수 있다.
‘철컥, 철컥-’
요란한 소리를 내는 지팡이와 함께 걸음을 움직이는 마코로 황제가 들어서자 곧 그의 뒤로 거대한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곧 그가 들어서자 두 공작은 반절을 올리며 예의를 차리며 황제의 옆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 외 3명의 후작은 물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귀족은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이는 세 황자 또한 그들 귀족과 같은 예법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생물학적으로 아버지일지 모르나, 그는 위대한 카이엘 제국을 지배하는 절대자였다.
그는 살아 있는 신이었고, 또한 살아 있는 전설이다. 황자라 할지라도 그에게 그 같은 예법은 당연한 것이었다.
곧 중앙에 자리한 도칸 급 몬스터인 검은 눈꽃의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 마코로 황제는 앉았다.
오직 그만이 이 넓은 대회의장에 홀로 앉은 채 흰색 지팡이를 두 손에 쥐어 기대더니 이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호쾌한 겉모습처럼 그의 음성 또한 마치 마법처럼 대회의장을 가득 울렸다.
“아주 지겹도다. 도대체 너희 스스로 후계를 뽑으라고 이야기 한지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가?”
그의 호통에 대담한 성정을 지닌 세 황자도 숨을 죽여야 했다. 그것은 경험이 많은 귀족들은 물론이고 거칠고 험한 전장에서도 눈 한 번 깜짝이지 않았던 무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직 2명의 공작만이 목석 같은 얼굴로 그의 옆을 자리 지키고 있을 뿐이다.
마코로 황제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보이더니 이내, 레필 공작을 보며 손짓을 하였다.
레필 공작은 이미 이야기되었던 터라, 곧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는 기운이 은은히 자리하여 그 경지가 낮은 몇몇은 주저앉기도 했다.
“카이엘 제국은 검으로 일어선 제국이며 또한 검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제국이기도 하다. 하여 발표한다.
제국의 황태자를 뽑는 검술대회를 연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측의 황자가 다음 대의 황태자이다. 이 대회는 두 공작 가에서 책임을 지며, 공작 가의 명예가 걸린바 부정함이 자리하면 그와 관련된 모든 세력을 적으로 간주한다.
모든 것은 비무대 위에서 결정된다. 숫자는 각 세력에서 단 10명만 선발한다. 다만 기존의 포함 세력이 아닌 여타의 다른 대륙이나 왕국의 존재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대회는 올해 겨울의 축제 기간에 열겠으며 그 대회의 장은 바루시티움에서 열기로 하겠다.“
그 놀라운 발표에도 대회의장은 조용했다.
레필 공작이 보인 그 무시무시한 기운에 질렸기 때문인데, 사람들은 왜 이 두 명의 공작이 제국의 기둥이라 불리는지를 다시 한번 짐작할 수 있었다.
말없이 레필 공작의 발표를 듣던 마코로 황제가 말을 이었다.
“정말이지 멍청한 너희 때문에 다시 한번 두 수호 가문에 폐를 끼쳤도다. 이번 결과가 어떻게 끝이 나던지 불만을 품는 자들은 내 손에 피를 묻힐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일갈을 터뜨리던 마코로 황제는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다시금 요란한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그는 천천히 요란한 지팡이 소리와 함께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열흘이 채 되지 않아. 이 소식은 제국의 모든 영지에 알려졌다.
귀족뿐만이 아니라 평민들도, 농노들도 그 소식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카이엘 제국의 다음 대의 주인을 가리는 일이었으니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했다.
야안이 그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일행과 헤어진 지 칠일이 지날 무렵 블루 자작 가의 성문을 들어서면서였다.
“영지가 변방인 것치고는 상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군.”
“그러하네. 아무리 제국의 자작 가라 하지만 이건 좀 놀랍군. 이 정도의 물류가 움직이다니.”
이상하다 생각한 야안은 이곳 잡화점에서 자신들이 잡은 몬스터 가죽을 팔기 위해 들렀고, 주인에게서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거, 생각한 것보다 일이 쉬워질지도 모르겠군.”
야안의 중얼거림에 자이한 또한 동의하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잡은 몬스터 가죽은 놀라울 정도로 흠이 없었던 터라 정신없이 눈 돌아가던 상인은 곧 야안이 묻는 이번 검술대회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다행히 이곳 잡화점의 주인은 많은 상행의 상인들을 아는 터라 아는 것이 많았다.
“하여, 이번 수확을 기원하는 축제 때 세 황자 측에서 대회를 연다 하더군요. 자신들의 휘하의 이들은 물론 제국의 은거 기인들에게 초청을 돌렸습니다. 또한, 그 외에도 익스퍼트에 올라선 자라 한다면 그 참가 자격을 주셨습니다.”
야안은 더 이상 주인이 말하지 않아도 현재 제국의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많은 권력과 힘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당연히 돈이 뒤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돈이라는 것은 힘과 권력이 없으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상인들이 이처럼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검을 숭상하는 제국민이었으니 이 대회는 그들에게 있어 사막의 오아시스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제국민들의 거대한 인구 이동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각지에 그 실력은 있으나 기회를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있어 이번 대회는 다시없는 기회와도 같을 것이다.
옛 명성을 바라보던 검술관은 물론이고, 끈 떨어진 몰락한 귀족의 후예나 중앙 귀족에 선을 대고 싶어 하는 상인들에게도 더 없이 좋은 기회인 것이다.
야안은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감사하며 잡화점을 나섰다. 여러 가지로 레필 공작을 만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던 야안에게 있어 이 일은 의미가 깊다.
“일단, 이에 맞는 신분부터 찾아야겠군.”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던 자이한은 작게 미소를 보였다.
그로부터 서쪽으로 7일간 더 움직인 그들은 샤린 백작가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곳 샤린 백작 가는 제국의 수많은 귀족들 중에서도 그 재력이 상위에 자리한 귀족가였다. 능히 준 후작가 수준의 힘을 가진 백작가로 이곳 샤린 영지는 그 규모가 상당했는데, 야안은 본래 자신들이 가려던 길을 크게 돌아 이곳에 방문하게 되었다.
시장과 가까운 여관에 자리를 잡은 야안은 그간의 여정의 피로를 풀지도 않은 채 자신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유피테르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