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24화
2. 헤롤지 장원
그녀의 물음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야안은 곧 그녀의 물음 하나하나에 답해 주었다.
“그 적은 세상에 생명이 넘쳐나게 되면서 그에 반하여 생겨난 존재입니다. 신과도 같은 힘을 지니었기에 전설의 시대에 드래곤조차 어찌하지 못한 존재이지요.
그자를 막기 위해 우리 인간들이 태어났으며, 또한 그자로 인해 번성했던 전설의 문명들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대가 당한 파편의 주인인 악마도 드래곤을 상대하기 위해 그 존재가 만들어낸 생명체이며,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저의 시대에 그자가 부활의 징조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야안의 말이 거기까지 갔을 때 그녀는 문득 생각난 것이 경악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설마 죽음의 지배자가 실제로 존재한 것입니까? 그자가 부활을 한다는 것인지요.”
그녀의 말에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죽음의 지배자는 실제 존재하는 존재입니다. 너무도 긴 시간이 흘렀기에 그에 대한 기록들이 사라졌을 뿐이지요. 앞서 제가 인간이 그로 인해 만들어졌다 이야기하였습니다.
그자, 죽음의 지배자를 막기 위해 탄생된 이는 최초의 인간이며 최초의 현자였고 그를 필두로 드래곤들과 모든 종족이 힘을 합쳐 죽음의 지배자를 봉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있었지요. 다만 마지막 죽음의 지배자와 맞섰던 전설의 현자는 너무도 늦게 준비된 자인지라 그 봉인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이른 시기에 이른 형태로 부활을 하게 되었고, 그로서 드래곤 중 하나가 깨어났으나 이미 이를 알았던 죽음의 지배자는 드래곤에게 저주를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그를 막아서야 할 전설의 현자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를 이끌어 전설의 현자로 만들어야 할 드래곤이 저주에 걸려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그 놀랍고 슬픈 비극적인 이야기에 긴 한숨을 흘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야안은 말을 자신이 생각한 바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하기에 저는 이곳에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 생각입니다. 지금부터 준비를 해나간다면 그 전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지요.”
야안의 그 위대한 뜻에 그녀 카르샤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저 또한 그대의 뜻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녀의 존재는 실상 야안이 하고자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야안은 크게 기뻐하였다.
“물론입니다. 그대와 같은 뛰어난 자가 뜻을 함께 한다면 저의 목적은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카르샤는 환생 이후 그 자신이나 자신이 아니었던 불의 마녀로서 벌인 죗값을 이렇게 갚을 기회가 온 것에 아리스 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었다.
* * *
그로부터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날은 톰에게 있어 의미가 깊은 날이었다. 자신의 딸 카르샤가 성인식을 치르는 날이기 때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너무 병약하여, 그 쓰디쓴 약재를 입에 달고 살아야 했던 카르샤였다. 치료사 중 그 누구도 낙관적으로 보는 이가 없었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벌써 17살이 되어 성인식을 치르게 된다 생각하자 기쁘기 그지없었다.
기쁜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가 산에서 데려온 베론 야안이라는 귀족이 카르샤를 자신의 가문에 입관시키기로 한 것이다.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크기의 금괴를 구해 준 것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내 주는 것을 본다면 결코 사기꾼 따위는 아닌 것 같았다.
첫날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런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귀한 천으로 만든, 처음 보는 형태의 옷으로 갈아입은 것으로 보아 그의 주위에 이미 수하들이 있을 것으로 톰은 지레짐작하였다.
어쩌면 이야기로만 듣던 유명 귀족들의 수호 경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야안이 최소 백작가의 자제는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였으니 당연히 톰은 딸이 야안에게 입관한 것을 기뻐하면 반겼다.
헤어지는 것은 가슴이 찢어질 만큼 슬픈 일이지만, 그 아이가 자신의 능력에 맞게 큰물에서 일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당연히 자신이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성인식을 치른 그녀는 그 다음 날, 야안이 준비한 마차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톰은 마을 밖까지 따라와 이제 보이지도 앉는 마차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멈춰 서 있었다.
그렇게 마론 마을을 떠난 카르샤는 5년 동안 자신의 보호자를 자처했던 톰이 생각이 나 가슴이 답답했으나, 이내 그 고민을 털어냈다.
본래 떠나야 할 시기가 찾아왔고 결정을 내린 것에 미련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진리이다.
하기에 그녀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본래의 성정을 되찾았다. 그때부터 묵묵히 자신을 지켜보던 야안과 마법에 대해 깊은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야안의 마법은 고대 마법을 기초로 하였고, 전설의 시대에 자리한 마법의 일부를 응용하였으며, 그의 세 번째 스승이신 로뎅이 남긴 유물을 통해 그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완성된 경지였다.
그에 반해 그녀는 고대 마법을 근간으로만 하여 올라선 경지이라 실상 그 기초만을 빼고는 야안이 쌓은 마법과 차이가 컸다.
하니 그녀와 야안 사이의 마법에 대한 토론은 상당히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하나의 사물을 보는데 견해가 약간씩 틀릴 때가 있었으며, 그로 인해 진리에 대해 보는 시선이 틀리니 상대의 그 견해를 이해하면서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서 그들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 것이다.
자연히 토론이 열띨 수밖에 없었다. 어떨 때는 하루 종일 잠도 자지 않은 채 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끝없이 이어졌는데, 이때마다 그들은 서로가 얻는 것이 대단히 많았다.
다만 그런 토론을 할 때면 그녀는 꼬박 하루의 반을 자야 했다.
그녀는 야안이 요즘 제국에서 유행하는 복수면을 한다는 것을 보고는 그녀 자신도 최근에는 복수면을 하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의지가 깊은지라 마음을 먹은 지 일주일이 지날 때쯤 얼추 복수면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 그들은 예전 그녀가 소속되어 있었던 제로스 후작 가로 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곳에 소속된 헬로지 장원이라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예전 그녀는 이곳 제로스 후작 가에서 자작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 그녀를 아끼던 제로스 후작은 그녀가 중급 현자 마스터에 오르자 대단히 기뻐하며 자작의 신분과 상당 크기의 장원을 그녀에게 준 것이다.
웬만한 남작 영지의 삼 분의 이는 되는 크기의 장원인지라 그곳에서 나는 이익만으로도 능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실험들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마녀가 되어 세상을 떠돌게 되자 제로스 후작은 그녀에게 내린 장원을 거두어 이번에 기사단장이 된 헬로지 단장에게 그 장원을 건네었다.
하기에 지금은 헬로지 장원이라 불리고 있는데, 그녀가 이곳에 가는 이유는 오래전 그녀의 스승님이 남겨주신 유물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여러 유물이 있겠지만 그중 그녀가 속한 하늘 탑의 고위 마법들이 자리한 책만큼은 그녀가 반드시 찾아야 할 물건이었다.
고위 현자 비기너에 오르게 되면서 일부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 자신의 경지에 맞는 마법을 알지 못한 탓이다.
더구나 이외에도 스승이 남긴 수련일지와 그녀 자신이 그간 행한 실험일지가 자리했기에, 이곳의 유물들은 반드시 찾아야 할 물건들이었다.
이제 제로스 후작 가까지 이틀 거리 밖에 남지 않았는데, 실상 이는 야안의 주술의 힘 덕분이었다. 본래라면 좋은 말을 타고 가도 한 달은 거릴 시간을 마차만으로 이십일만에 도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한데 야안은 바람의 술과 물의 술을 마차를 끄는 말에게 펼쳐 쉬이 지치지도 않게 하였다. 이것은 예전 그가 자이한에게 배운 주술이었는데, 덕분에 말은 자신의 하루 한계 거리의 두 배 이상을 가뿐하게 질주하였다.
카르샤는 예전 야안이 그 자신이 전설의 현자를 추종하는 자임을 소개하며 그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말한 바가 있었지만, 막상 얘기로만 듣던 주술을 펼치는 것을 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법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흐름을 펼치는 주술은 그야말로 학자로서 크게 관심이 가는 연구대상이었지만, 그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익힐 수 없다는 야안의 말에 그녀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타닥, 타닥-’
장작불이 타는 연기가 어둠을 가로지른다.
야안은 인벤토리에서 식량을 꺼내어 카르샤에게 건네어 주었고, 그녀는 그것을 받으면서 매번 그 인벤토리라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다 생각했다.
아리스 님이 내린 축복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올려 흔들면 갑자기 그의 손에 무언가 잡혀 나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는 어떤 마나의 어긋남도 없었고, 공간적인 왜곡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 놀라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신께서 행하신 기적이며 축복인 것이다.
‘치이이익-’
그녀는 야안이 건넨 식재료로 매번 새로운 것들을 만들었다. 예전 톰이 생각했듯이 그녀는 요리에 재능이 뛰어난 편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마리나의 삶을 살았을 때도 연구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면 이처럼 요리를 하면서 정신적 피로를 풀었다.
약초학에 뛰어난 지식이 있는 그녀이기에 그녀의 요리는 단순한 형태의 요리가 아닌 보약 못지않은 건강식이었다.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담백하면서도 맛이 있으니 흔치 않은 뛰어난 요리사라 할 수 있겠다.
덕분에 본래 음식의 맛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야안도 그 맛에 길들어져 식사 때를 기다리곤 했다.
“음, 전투식량으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군.”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단순히 걸쭉한 수프의 형태로만 먹었던 전투식량을 마치 닭고기와 비슷한 고형 형태를 만들어내니 놀랄 따름이다. 그 씹는 맛뿐 아니라 그 적절한 양념의 맛은 그가 예전에 맛보았던 고급 요리 못지않은 것이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입니다.”
요리가 와인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예전 영지에서 가져온 아직 와인이 남아 있던 터라 꺼내어 잔에 채워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은 예전 내가 머물던 영지에서 가져온 것이오. 어울릴 것 같아 꺼내었소.”
카르샤는 그 와인이 보기 드문 고급 와인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속한 베로시안 왕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그 질이 낮은 편이라 고급 와인을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이같이 상질의 와인을 구하니 기뻐할 수밖에 없다.
요리를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미식가라는 말인데, 그녀는 종종 장원이 있을 당시 상당한 금액을 주어서도 한 잔의 와인을 식사 때 챙겨 먹었다.
그 향과 빛깔에 만족하던 그녀는 이내 와인을 입에 담아 혀를 굴리기 무섭게 얼굴이 환해졌다.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뛰어난 형태의 와인이었던 것이다.
“정말, 훌룡한 와인입니다. 제국에서도 이런 와인을 구하기란 어려울 것이에요.”
그녀의 칭찬에 야안은 절로 기분이 좋아 웃음을 흘렸다. 이 와인까지 오기까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던 관리인의 노고를 알기에 그녀와 같은 미식가의 찬사는 그간의 고생을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에는 떠돌이 코볼트 무리가 그들을 습격하려 했지만, 야안과 그녀의 주위를 지키던 야안이 일으킨 회색 늑대를 닮은 야수에 의해 도륙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