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52화
11. 고위 신관
20년 전 샤 대륙에 큰 변고가 있었다.
샤 대륙 서쪽 끝에 자리를 잡고 있던 조 나라가 하룻밤 사이에 멸망한 것이다.
조 나라가 작은 규모의 왕국이기는 했으나 그 규모와 달리 거친 환경 탓에 군사력이 뛰어난 나라였다. 실제 작은 왕국임에도 소드마스터라는 초인을 보유한 곳이기도 하였다.
그런 조 나라가 하룻밤 사이에 망하고 말았으니 당연히 샤 대륙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일.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 것인데,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에 대해 별다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조 나라가 있었던 곳을 뒤덮은 안개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각 나라에서 조사단을 꾸려 이 안갯속을 조사케 했으나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실제로 안갯속으로 사라진 조사단의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
하니, 샤 대륙으로서는 그곳을 금지의 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조 나라가 멸망한 것임을 직접적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 무시무시한 안개 지역에 뒤덮인 것을 상기한다면 멸망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벌써 50년이나 되었던 일이었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이곳에 실로 오랜만에 사람의 발자국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지기 시작했다.
“현혹의 안개라.”
야안은 이제 조금씩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듯 유혹하는 안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현혹의 안개는 전설의 시대 수많은 이종족을 곤란케 했던 현혹의 악마 도로몬의 힘이었다.
현혹의 안개에 오염된 자들은 이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버린다.
정신이 혼탁해 진 탓에 악마에 현혹된 하수인들은 그 자신의 능력을 70%도 발휘하기 어렵기에 그 상대하는 것에서 크게 벅찬 편은 아니었으나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언데드 형태로 되어 확실히 사마의 존재로서 존재감을 보였다면 모를까? 그 모습에 있어 그렇지 않은 그저 정신만이 오염된 존재였으니 위축되지 않고서는 어려움이 크다.
“도로몬 그 악마만 잡으면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현자의 탑에서 이 사실을 알았던 야안이었기에 그는 악마의 하수인들을 피하기로 했다.
하지만 악마 도로몬이 있는 곳은 이 조 나라에서 가장 안쪽이었기에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그의 생각은 이뤄지기 어렵다.
하지만 야안은 리트담의 주술을 위대한 주술사의 경지에 오른 자였다.
여기에 마법까지 함께한다면 아무리 수많은 하수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법과 주술로 현혹의 안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던 야안은 그렇게 안개 속으로 발을 옮겼다.
“끔찍하구나.”
야안은 절로 그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안갯속 조 나라의 현실은 끔찍했다. 죽은 자들의 시체는 아무렇지 않게 거리에 널려 있었으며,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동물과도 같은 야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만큼 이 조 나라가 악마의 손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는 어려움이 클 터였다.
야안은 그런 그들 사이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 다시 그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 지옥 같은 일상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악마를 멸해야 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조 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라 여겨졌던 곳으로, 그 땅의 기운이 강해 몬스터조차 다가오지 못하는 산이었다.
한 때 신전이 자리하고 있던 곳이기도 했다.
‘역시나 이곳의 신전도 무너져 내렸군.’
퀘스트를 위해 나선 야안이 만난 악마의 숫자는 셋이었고, 이 세 마리의 악마들은 모두 신전을 무너뜨리고 붉은빛을 띠는 탑을 쌓아올렸었다.
현자의 탑에서 이 탑을 이루러 역천의 탑이라 불렀는데, 실제로 이 역천의 탑이 오른 장소에는 아리스의 힘이 약화되고 만다.
반대로 사마의 힘에 물든 존재는 강해지게 마련인데, 다만 단점이라면 이 역천의 탑을 일으킨 악마는 이 탑과 그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탑의 영향권 밖으로 나설 수 없는데, 대신 그 악마는 그 영향권 안에서 자신의 본래 기량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러한 단점이 있음에도 악마가 역천의 탑을 쌓아올린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본 야안은 악마들을 멸하며 그 이유를 알고자 했고, 그는 현자의 탑에 새겨진 역사에서 이러한 일이 과거에도 있었음을 알았다.
“진실의 신전을 닫게 하려 한 것이구나.”
악마들에게 있어 인간을 상대할 때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초인 따위가 아닌 바로 신관들이다.
진실의 신전이 열리면 신관들의 숫자만 늘어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성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달리 말하자면 악마를 비롯한 사마의 존재들에게 강력한 무기를 만들거나 그 힘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해지는데, 이에 죽음의 지배자는 이 역천의 탑을 만들었다.
그 근원인 진실의 신전을 봉인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악마를 퇴치하는 것이 진실의 신전 퀘스트와 연관이 있었던 것인데, 야안은 이 사실을 깨닫고는 그 일을 서둘렀다.
벌써 넉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 대륙의 마지막 악마를 앞둔 야안은 역시나 이번에도 변치 않고 자리 잡고 있는 역천의 탑에 낮은 한숨을 흘렸다.
“이게 마지막이다.”
그 말과 함께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고, 곧 악마 도로몬이 모습을 보였다.
마치 타락된 엘프를 보는 듯한 모습인데 실제로 악마 도로몬의 모습은 검은 피부를 지닌 엘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죽어라!”
괴기스러운 악마의 음성과 함께 악마의 손이 흔들리더니 무지갯빛 안개가 야안을 집어삼켰으나, 이내 그것은 야안이 쥐고 있는 현자의 지팡이에 의해 사그라지고 말았다.
초마법이 펼쳐진 것인데, 확실히 역천의 탑 영역 안이었기 때문인지 대현자 급의 초마법은 그 위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3차례나 이런 일을 겪은 야안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2배.”
힘이 약화되었다면 그 숫자로 상대하면 된다는 듯 야안은 인지의 술을 펼친 것인데, 이내 그의 검, 지팡이, 주술에서 수많은 힘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약화되었다고 해도 전설의 현자의 칭호에 의해 상호작용된 힘들이었던 터라 악마 도로몬으로서도 경시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의 힘.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그의 저주 어린 무지갯빛 안개는 엄청난 속도와 힘을 보이며 야안을 몰아붙였으나, 야안은 끄덕없는 태도를 보였다.
‘콰가가가강-’
엄청난 충격음이 이르는 가운데 야안이 다시금 중얼거렸다.
“5배. 이만 사라져라.”
악마 도로몬이 하수인들을 움직이려는 것을 느낀 야안은 서둘러 그와의 일전을 정리하기 위해 무리하게 주술을 응용하였다.
지난 리트담이 펼친 인지의 주술에 의해 이미 그의 뇌는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 사실 인지의 술을 펼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리트담이 새로운 주술의 차원을 넘기 위해 100배의 인지를 펼쳐 수련을 해나가고 있는 가운데, 역천의 탑에서 악마를 멸하기 위해서는 인지의 술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어려움이 컸으니 말이다.
그러한 사정으로 인지의 술을 펼치는 것을 꺼리는 야안이었지만 하수인이 되었다고 하나 악마를 제거한다면 본래로 돌아올 인간들을 죽일 수 없는 노릇이다.
하여 그는 아슬아슬한 경계까지 인지의 술을 다루었고, 당연히 뇌가 뻑뻑해지는 고통 속에서 그는 악마 도로몬을 향해 거칠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 ‘젠’의 힘이 야안의 기운을 배 이상 빠르게 돌리며 그가 펼치는 기운들을 도우니 아무리 역천의 탑에 있는 악마 도로몬이라고 해도 답이 없었다.
‘크하아아악-’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악마 도로몬이 제압이 되고 말았고, 야안은 마지막으로 바라탄을 펼치며 도로몬을 완전히 멸하였다.
‘화르르륵-’
하얀 불꽃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도로몬이 죽기 무섭게 조 나라를 감쌌던 현혹의 안개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역천의 탑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던 인간들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멈추어서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지?”
“내가, 여기에……. 으아아악.”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뭐야. 이것들은 꿈인가?”
현혹에서 일찍 이성을 찾은 몇몇들이 지난 20년간의 그 악몽 같은 시간 속의 기억들이 몰려오면서 그 고통에 발버둥을 쳤다.
코피가 터지며 머리가 찢어질 것같이 아픈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인간 같지 않은 일을 했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괴로워하였다.
야안은 바람의 술로 그들의 그 같은 모습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제국에서 이들을 거두지 않을 수 없겠구나.”
그 20년간의 그 짐승 같았던 그 끔찍한 기억들은 그들을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다. 이곳 샤 대륙에 그 영향력을 끼칠 생각을 하고 있던 야안 제국이었으니 이들을 거두어들이면서 그 영향을 끼치면 될 터였다.
잠시 그 생각을 하던 야안은 곧 역천의 탑을 향해 다가갔고 이내 탑의 꼭대기를 향해 몸을 날리더니 바란탄의 기운이 깃든 손을 가져다 되었다.
‘파사사삭-’
마치 썩은 나무가 무너져 내리듯이 역천의 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야안은 그제야 역천의 탑이 막은 아리스의 영향력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그의 눈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레벨 : 4,017
직업 : 전설의 현자 비기너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용사, 제왕지기, 영혼의 악사 (위대한 대장인 : 미착용)
생명력 : 336,000
마나량 : 238,400
명성 : 17,600
힘 :1,620(+60)
민첩: 1,769(+60)
행운 : 2,060(+60)
지혜 : 3,018(+60)
신력 : 116 (+60)
마나 : 11,920(+60)
정령력 : 1,680 (+60)
각성의 스탯 : 1
분배되지 않은 스탯 : 474]
역천의 탑을 깨뜨리면서 그 레벨이 4000을 넘어선 것인데, 이로써 그는 각성의 스탯을 가지게 되었다.
[상위 비기너 정령사.
위대한 정령의 왕 유피테르의 힘을 일깨우는 것이 가능하다.]
[고위 신관.
희생과 봉사로 아리스의 뜻을 따르는 신관인 그대에게 내리는 축복이다. 고위 신관으로서 아리스 님의 뜻을 이어 받으라.]
당연히도 그는 이 둘 중 고위 신관을 선택하였고, 이내 하늘에서 거대한 빛이 그를 향해 뿜어져 내리더니 이내 야안은 아득한 하얀 공간 속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하얀 공간에서 거대한 하나의 손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거대하고 거대한 손은 마치 야안을 칭찬이라도 하듯 그의 머리를 두어 번 토닥이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야안은 그 하얀 공간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