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78화. 첫 방송 출연(6)
* * *
"안녕하세요!"
드디어 마지막 촬영날이 다가왔다.
본업인 스트라이커를 머리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골키핑에 매진해서 연습하는 것도 꽤나 색다르고 재미있는 경험이였다.
김대범 코치님이 둘째날에 어디엔가 열심히 전화를 하시던데.. 뭐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일 테다.
"이제 마지막 촬영이네요..."
피디님이 아쉽다는 말투로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다.
"그러게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첫 번째 촬영이 어제 방영이 됬는데 봤어요?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라구요!"
"...벌써 그게 방송됬나요?"
하긴 벌써 일주일째니까 하루치분은 방영이 됬을 법하다.
왠지 오늘 가은 언니랑 마야 공주님이 할게 있다고 호텔에 남았는데 아마 재방을 보려고 한 듯 하다.
"오늘 부상 진짜 조심 하셔야 해요. 만약 조금만 위험하다고 느끼면 경기를 중단 요청 할겁니다."
레베카씨가 피디님을 향해 강경하게 주장한다.
"네 물론이죠. 저희도 이지혜 선수가 부상이 생기는건 기피하고 싶으니까요.. 상대 선수들도 오늘 사회인 축구라는 걸 인지하고 격하게 플레이 하지 않도록 교육을 해두었습니다."
피디님이 레베카씨를 향해 정중하게 대답한다.
"걱정마세요. 위험한 행동은 안할거니까요. 오늘 경기도 즐기면서 할게요."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레베카씨와 피디님을 향해 걱정하지 않도록 말했다.
"흐음.. 그래요.. 전 저기서 지켜보고있을게요."
레베카씨는 한쪽에 놓여있는 벤치에 가서 다소곳이 앉았다. 일주일간 방송을 했는데도 딱히 친해진 사람이 없는걸 보면 꽤나 사람을 가리는 듯 한 성격인가 보다.
"어서오세요!"
"오늘은 진짜 일찍오셨네요?"
"지혜언니!!"
일주일 동안 꽤나 친해진 아람이가 나에게 달려와 안긴다. 이럴때마다 여자가 된게 너무 좋다니까.. 귀여운 여자들이 알아서 안겨오니까 너무 행복하다.
"그래 그래. 잘 잤어? 컨디션은 어때?"
"최고에요!"
아람이와 다른 멤버들이랑 같이 안부인사를 하며 필드위를 돌아다니니 방송 스텝들이 전부 반갑듯이 인사를 해 준다.
"아! 지혜씨. 오늘도 잘 부탁드릴게요!"
"다치시면 안돼요!"
"오늘도 기대할게요!"
이런 저런 커다란 짐을 들며 옮기는 스텝들이 힘든 표정 하나 짓지않고 일하고 있다.
"자자! 촬영 시작할게요!"
피디님이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오늘! 드디어 이지혜 선수와 함께 경기를 하는 날입니다!"
"와아아아아!!!"
짝 짝 짝
"일주일동안 정말 열심히 훈련했어요!"
멤버 한명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하하하! 그래야 1승이라도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오늘은 이지혜 선수가 골키퍼로 출전하니까요!"
"아하하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주세요..."
"에이 겸손은~ 다들 봤잖아요! 이지혜 선수가 골키퍼를 한다면 누구도 골을 넣을 수는 없을 거에요!"
아람이가 내 옆으로 와서 호들갑을 떨어댄다. 별로 나쁜 기분은 아니다.
"자자! 오늘 상대할 선수분들을 모실게요!!"
메인 MC가 손짓을 하니 처음 보는 여성들이 줄지어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명씩 우리 앞을 지나가며 악수를 청한다.
"영광이에요!"
"지혜언니! 팬이에요!"
"꺄악!! 내가 지혜언니 손을 잡았어!"
"경기 매일 매일 찾아보고 있어요! 언니는 여자들에게 우상이에요!"
왠지 한명 한명 내 앞을 지나가며 악수를 할때마다 호들갑을 떨어댄다. 게다가 다들 나보다 머리하나씩은 작은 느낌이라 더욱 묘하다.
"자! 이제 소개해 드릴게요!"
메인 MC가 종이로된 대본을 살짝 보고 소개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디 고등학교의 여자 축구부라고. 저게 고등학생들이라고? 보기엔 완전히 성인 같아보인다.
"축구부요? 저희가 어떻게 축구부를 이겨요!"
메인 MC가 피디를 바라보며 불만은 토로한다. 확실히 일반인이 선출을 이기기는 힘든게 당연할테다. 저들은 어렸을 때 부터 축구를 해왔을 가능성이 크니까.
"그래도 이지혜 선수가 있잖아요? 딱 맞는 어드벤티지인것 같아요. 그래도 1,2학년들이니까 괜찮지 않아요?"
"아무리 그래도..."
"언니! 경기는 해봐야 알죠! 우리는 이길 수 있어요!"
"그래! 고등학생들한테 질 수는 없지! 연습 많이 했잖아?"
그렇게 멤버들은 서로 서로 결의를 불태우며 김대범 코치에게 이동했다.
"빨리 감독님도 구해야 할텐데요..."
카메라가 돌지않는 사이 한 멤버가 의견을 말했다. 확실히 이 팀에는 감독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인 축구에 감독이 필요한가? 나는 사회인 축구를 해보지 않았지에 잘은 모르지만 있으면 있는데로 효과가 클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게요. 앞으로 감독님을 구하는게 나을 것 같은데요?"
나는 피디님을 향해 말하니 그녀는 초창기때부터 열심히 구해보고는 있다고 한다.
"...지혜씨"
조이가 나에게 슬그머니 걸어와 긴장되는 얼굴로 바라본다.
"괜찮아요. 심호흡부터 하세요. 자. 후읍! 하아..."
"후읍! 하아..."
날 따라 심호흡을 하는 조이. 몇번 반복해주자 표정이 한결 나아진 듯 보인다.
"자자. 모여봐 다들!"
주장인 한 멤버가 멤버들은 모아서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이야기한다.
대충 수비는 격하게 하지 말고 공격에 집중하자는 이야기인데 전반적으로 내가 슈팅을 전부 막아주기를 바라는 듯 하다. 그래도 전부 막기는 어려울 텐데...
"자!! 한번 불사지르자고!! 우리도 만만치 않다고!!"
"그래!!"
"화이팅!!"
"오우!!"
동그랗게 모여 어깨동무를하고 구호를 외치니 꽤나 똘똘 뭉친 하나의 팀이 된 듯한 기분이다.
'...여자끼리 축구하는 것도 꽤나 재밌는거 같네.'
나는 키퍼용 장비를 전부 착용하고 필드위로 걸어갔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골때리는그녀들 VS 선정여고 축구부의 경기로 찾아뵙게되었습니다. 해설로 저 배성진과 이기영님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이기영님은 영국에서 이지혜 선수의 경기를 해설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하하. 제가 어떻게 이지혜 선수가 뛰는 경기를 해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한국의 희망 아닙니까? 물론 저기 선정여고 축구부 친구들들도 희망이긴 하지만요."
"그렇죠. 이걸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지혜 선수. 말 그대로 지금 영국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단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오늘 주체는 골때리는그녀들팀이지만 특별 초대 선수로 뛰는 이지혜 선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그렇게 두 남자가 이지혜에 대한 기록을 읊으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는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지혜에 대해 이해함과 동시에 경악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자! 이제 경기를 시작합니다! 선공은 골때리는그녀들팀이네요. 자.. 선수들을 보십시오. 그 동안 훈련을 많이 한 티가 납니다! 그 동안은 자기 위치를 간수하기도 바빴는데 이제는 꽤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 나는군요."
애초에 각력이 약해 공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사람을 향해 공이 굴러가고 공을 받을 때도 자기 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트래핑한다. 일주일간 진행한 기본기 훈련이 조금 효과를 본 듯 하다.
"아! 아람 선수! 공을 뺐기고 맙니다! 체격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속도를 살릴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아람 선수가 성인으로 봐도 체격이 많이 작기 때문에 굳이 몸싸움을 받아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공을 얻어낸 선정여고 축구부는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역시 여자 축구라 그런지 세세한 컨트롤에 재능이있네요."
"그렇군요. 저도 여자 축구를 자주 본건 아니지만, 남자 축구와 다른 점은 바로 저런 점이요. 피지컬이 약한 점을 기술로 카바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패스와 드리블, 그리고 슈팅이 꽤 섬세한 편입니다."
"아! 9번 선수! 신유정! 과감하게 드리블 돌파해 나갑니다!"
"신유정 선수. 청소년 대표팀에도 포함되어있는 유망한 선수죠? 지금 보니 아주 뛰어난 스킬을 가지고 있네요."
꽤나 호기있는 표정으로 우리 멤버들을 간단하게 한명 한명 제쳐나간다.
"때려야죠! 때려야죠! 아! 찹니다!"
정확하게 나의 위치를 보고 때리는 슈팅. 나는 별로 압박감을 느끼지 못해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공을 정확하게 따라간다.
"오!! 슈퍼세이브! 이지혜 선수 슈퍼세이브입니다!"
"오.. 정확하게 구석을 보고 때리는 슈팅이였는데요... 키퍼가 방향을 읽었습니다."
"드리블 좋았고, 슈팅 좋았습니다. 단지 운이 좋지 않게도 이지혜 선수가 키퍼였다는 것 뿐이네요."
"하하하! 이야.. 듣기로는 이지혜 선수의 골키퍼 경험이 전무하다고 하는데요. 이기영 해설위원님.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죠. 보세요. 여기 리플레이 화면만 보아도 자세가 완벽합니다. 제가 여태 보아온 우리나라 골키퍼 유망주들 보다도 자세가 뛰어나요."
"...그 정도나 된단 말입니까?"
"저는 과장해서 말하는걸 싫어합니다. 피지컬은 워낙 이지혜 선수가 남자 선수들 마냥 뛰어나니 제쳐두더라도 자세란건 기본기거든요? 기본기가 뛰어나다는 거는 오랫동안 그 기본기를 훈련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지혜 선수는 스트라이커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을 점점 이어나가면서도 얼굴이 붉어지면서 흥분하는 이기영을 배성진이 조금 말렸다.
"자자. 경기에 집중하도록 하죠. 지난 경기들을 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골때리는그녀들팀은 너무 준구난방인 경향이 컸습니다. 그동안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았었죠"
김대범 코치는 제대로 가르쳐 줬다. 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은 여자들의 인식을 바꾸기란 어려운법.
"그만큼 멘토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지혜는 여자로서 완벽하게 멘토로 그녀들의 머릿속에 박힌겁니다. 그녀들의 인식 속에서 이지혜 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한거죠. 그러니 훈련 효과가 폭발할 정도로 좋은겁니다."
"그렀습니다. 패스가 정말 좋아졌습니다! 슈팅까지 이어집니다! 아... 조금 약했네요. 선정여고의 김지영 골키퍼의 품안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그래도 자신감있는 표정이네요.골때리는그녀들팀이 발전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렇게 90분간의 경기동안 아람의 열정적인 다이빙 헤딩으로 한골을 때려 넣은 골때리는그녀들팀과 이지혜가 미친듯한 선방쇼를 보이여 틀어막아버려 한골도 넣지못한 선정여고팀은 1대0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꺄아악!!! 우리가 이겼어!!!"
"하악 하악 하악!!"
아직 젊은 멤버는 필드를 뛰어다니며 첫승을 만끽했고 나이가 좀 있는 멤버는 필드위에 드러누워 지쳐보이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쉬고 있다.
"경기! 이렇게 끝나네요!!"
"압도적이네요."
"네. 이건 뭐 거의 이지혜 스페셜 경기라고 봐야겠네요."
"하하하! 골때리는그녀들팀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선정여고팀도 잘했습니다. 뛰어난 드리블과 패스 감각. 돋보이는 선수들이 몇 명있었습니다."
"이 경기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겠습니다! 대단합니다 이지혜 선수. 오늘 슈팅을 몇 개 막은거죠?"
"제가 20개부터는 세지 못했습니다만..."
"아! 나오네요! 오우... 36개의 슈팅을 막았네요... 소름이 돋을 정도네요!"
"하하하... 정말 대단한 친구네요..."
그렇게 이지혜에 대한 극찬을 하는 해설진을 뒤로하고 선정여고 선수들은 멤버들에게 다가가 잔디 위에서 일으켜주고 인사를 한다음 나에게 한걸음에 달려온다.
"언니!!!"
"와 씨발 뭐에요!!!"
"욕! 욕하지마 얘들아!"
나는 당황하며 애들을 진정시켰지만 소용없었다.
"야신!! 야신이야!! 나 진짜 그렇게 키퍼 잘하는 사람 처음 봄!"
"사인 해줘요 언니! 사랑해요!!"
나는 체육 소녀들의 사이에껴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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