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8. 이슬과 요정, 숲과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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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이슬과 요정, 숲과 짐승(5)
자신을 지크프리트,
적룡교의 머리.. 즉 대주교라고 소개한 괴인.
말투나 행동거지로보아 당장이라도 달려들 성급한 성격일 거라 생각했지만, 놈은 날카롭게 빼낸 손톱을 내게 휘두르는 것이 아닌 그 뾰족한 끝으로 나를 가리켰을 뿐이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놈은 가볍게 웃더니 이렇게 말한다.
"네 소개를 아직 듣지 못했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 주제에 굳이 내 입으로 소개를 들어야겠다는 건가?
날 가지고 놀고 싶은 걸까.
아니라면 보기와는 다르게 전사로서의 예우라도 차리고 싶은 걸까.
"에단.. 인류 배반자 에단이다."
"자신의 멸칭을 스스로 입에 담는 건가? 크하하하..! 이거 재밌는 놈이군!"
"그밖에 어울리는 소개는 없는것 같아서."
"좋아..! 아주 좋아..!!"
입 한가득 징그러운 미소를 담은 놈은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들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며 광소한다.
그 웃음이 멎었을 즈음 놈의 두 팔은 가슴 부근에 교차하여 놓였고 당장이라도 휘둘러져 앞에 놓이는 것이 무엇이든 단번에 사등분 할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이제, 서로 할 말은 끝났다는 의미겠지.
"네 힘...!! 확인해 주겠다!"
놈의 눈빛이 불길하게 번뜩이고, 정지해 있던 두 개의 붉은 점은 내 코앞으로 길게 늘어지며 기다란 선을 만들어 낸다.
"가호를..!!"
퍼석! 챙강!!!
셀틱에서 상대한 그 괴물보다도 무식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놈이 쓸데없는 소개로 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나는 할 수 있는 최고의 강도로 신성 보호문을 정면으로 집중하여 펼쳐냈지만, 마치 수면 위에 얇게 낀 살얼음처럼 쉽게 부스러진 파편들이 비산하는 것을 보자 그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눈이 부릅 떠진다.
"흡...!"
이 정도 일 줄은...!
나는 시야 밖으로부터 번뜩여오는 저것이 놈이 날카로운 손톱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허리가 부러지는 것까지 감수하고 그 반대 방향으로 몸을 맹렬히 회전시켜 회피와 함께 속도를 받은 왼팔로는 반격을 노렸다.
우드득...!
후우우웅..!!!
뒷덜미를 아슬아슬하게 훑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손톱이 파공성을 만들어 내며 솜털을 곤두서게 만들고, 회피해 내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생각이 든 순간. 뒤이어 내 주먹 끝으로 무언가 제대로 닿는 느낌이 들어온다.
제대로 닿았다.
하지만,
으적...!
"...!"
쇳덩이.
아니, 그것보다도 더 단단하게 느껴지는 놈의 옆구리는 있는 힘껏 허리를 비틀어가며 휘두른 내 공격을 꿈쩍도 없이 받아냈고, 오히려 그 반동에 의해 내 왼팔이 부서지는 소리만이 들려왔을 뿐이다.
텁!!
시야를 빼앗겼다.
.. 이건 머리를 붙잡힌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훅 들어올려지고, 부러진 허리 탓에 두 다리는 축 늘어지고 만다.
"뭐냐! 겨우 이것 뿐이냐?!"
당장이라도 내 머리를 쥔 그 커다란 손에 힘을 주어 터뜨릴 수도 있겠지만, 실망했다는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내 정신을 일깨우는 그 말에 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오른팔을 품 속에 집어넣었다.
퍼걱..!!
"오?"
소녀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아직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 단검.
품속에서부터 휘둘러진 짧은 칼날은, 정확히 놈의 손목에 반쯤 빨려 들어가, 단단한 뼈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춘다.
손목의 거진 절반이 잘려나갔음에도 그리 고통스러워하는 기색 없이 덜렁거리는 손목을 바라보고있다.
직접 타격했을 때 오히려 으스러진 내 왼팔을 보며 놈의 몸이 얼마나 튼튼한지는 느꼈지만, 잘라내기 위해 전력으로 휘두른 것인데 그저 뼈를 드러낸 것에 그쳤다.
나는 틀어박힌 단검을 다시 빼낼 여력이 없다고 판단한 만큼 깔끔하게 포기한 채 단검의 손잡이를 놓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허리는 아직 재생되지 않았고, 당연히 두 다리는 내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얼굴부터 바닥으로 처박힌다.
쿵..!
"크욱.."
"그르르르... 작은 이빨 하나를 숨기고 있었군 그래?"
쩍..!
주르르륵...
손목에 박힌 단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뽑아내고는 먼지라도 털듯 던져버리는 놈.
쨍! 챙그렁!
바닥에 부딪혀 한 번 튀어 오른 단검이 내동댕이 쳐지는 소리가 고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에 어지럽게 울린다.
"이건 조금 따끔했어. 그흐흐.. 사제 치곤 주먹에 힘이 꽤 실려있지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군. 더 보여줄 수 있는 건 없나?"
놈이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깊게 벌어진 상처를 꾹 누르자, 끈적한 피가 한차례 쏟아져내린다 싶더니 곧 멎는다.
"...!!"
재생.
그것도 나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속도.
순혈자가 재생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건.. 저 놈에게서 지독하게 흘러나오는 저주의 기운 때문인 건가...?
뻐억!
"끄윽...!"
얼굴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지나 싶더니, 나는 어느새 뒤로 멀리 날아가 소녀가 있는 바로 근처에서 꼴사납게 나뒹굴고 있었다.
흔들리는 시야로 놈이 한쪽 발을 슬쩍 들고 있다가 내리는 것을 보아, 방금 나는 저 발에 얼굴을 걷어차인 모양이다.
입과 코에서 뭔지 알것같은 뜨거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고,목주변은 온통 뜨겁게 삐걱거려 온다.
"으.. 윽.."
놈도 나처럼 죽음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난 육체를 가진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놈이 가진 능력이 벌어진 상처에 대한 재생 뿐이라고 해도, 내게 있어서는 매우 절망적이다.
내 몸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고, 놈에게 어떻게든 상처를 하나씩 늘려가며 승리의 가능성을 엿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그런데 지금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눈앞에서 보여준 거나 다름없으니 욕지거리가 입안에서 맴돌 수밖에.
"... 그렇다면 실망인데 말이야!!"
투쿵!
바닥을 박살 내며 제자리에서 사라진 그는 적색 선을 검은 바탕에 어지럽게 휘날리며 나를 향해 쇄도해 들어온다.
허리의 재생이 가도에 오르고 다리가 움찔거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놈의 팔이나 다리 하나쯤 폭발에 휘말리게..!
"윽...!"
"끝이다...!!"
역시 시간이..!
...!
"....!!"
"......!!!!"
크그그그그그그극...!!
단단하게 말라붙은 흙바닥이 거칠게 긁혀 뒤집히는 소리와 함께, 내게로 달려들던 놈은 쓰러져 있던 내 머리의 바로 세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서서 날 도륙하기 위해 들어 올린 팔을 움찔거리고 있다.
"... 그르르륵.."
아래에서 올려다 본 음영 속 놈의 빨간 눈동자는 섬뜩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어째서.. 멈춘 거지?
".. 하악... 학, 하악.."
나의 것도, 저놈의 것도 아닌 가쁜 숨소리에 조금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나와 놈의 사이에 겁도없이 끼어들어 있는 누군가의 작은 뒷모습이 보인다.
"실비아..?"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안타까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소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놈의 앞을 막아서고 있다.
"이 녀석은.."
"... 학... 하악..."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하고 있는 소녀에게 놈은 관심을 보인다.
"수인의 몸으로 순혈자인 내 앞을 가로막은 건가, 이 작은 핏덩이는 나를 꽤 놀랍게 하는군."
"... 하악.. 학.. 아프게... 하악.. 하지마..."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본능마저 거스르지 않고서야 감히 내 앞을 막아설 수는 없을 텐데 말이야... 크흐흐.."
"윽... 으흐윽... 하윽..."
놈이 흥미를 내비치며 눈빛을 빛내자, 소녀는 그 기세에 밀려 크게 움찔하더니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조여드는 자신의 가슴께를 부여잡고 비틀거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는 않는다.
왜 이녀석은.. 이렇게 까지...
어째서.. 이렇게 까지 하는 거지?
어째서 이렇게 까지..
.. 할 수 있는 거지?
지금 이 상황에서는 도망치더라도, 그저 방관하더라도 그 어떤 선택을한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소녀를 탓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녀석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그 어떤 공포나 사념도 접어두고 이 상식을 벗어난 괴물의 앞에 당당히 두 발로 선 것이었다.
"이 적개심..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동포의 적개심인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상으로 뭔가를 할 여력은 없어 보이는군, 마음 같아서는 너와도 피를 나누고 싶지만.. 나를 적대한 자는 그 누구라도 살려두지 않는게 내 주의라서 말이야. 그흐흐.."
"으윽... 윽..."
"네가 보여준 투지는 인정한다. 그러니.. 적어도 단번에 그 목숨을 끊어주마!!"
놈의 두 팔이 올라간다.
아직,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 실비아...!!"
서걱!!
두 팔을 양옆으로 크게 들어 올리고, 각각 대각선으로 내리꽂혀 소녀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려 했던 놈의 손톱은 내 등자락을 얕게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음..?"
소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지 놈은 의아한 눈빛으로 이 쪽을 바라본다.
간발의 차였다.
드디어 허리와 하반신에 감각이 완전히 돌아왔고, 내가 소녀를 붙잡는 동시에 뒤돈 것이 조금이라도 더 늦었다면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살아있지 않은 고깃덩어리였을 것이다.
".. 재생? ... 그렇군."
"..."
"신도도 아닌 네놈에게 어쩐지 냄새가 난다 싶더라니... 비슷한 축복을 받은 놈이었나?"
등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금방 멎어버리는 것마저 보았을 테니 재생을 바로 입에 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래도 놈이 나를 떠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말을 아꼈지만 이미 내 능력을 재생으로 확신한 것처럼 중얼거려 온다.
"아.. 이렇게 실망스러울 데가."
곧바로 공격해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흥이 깨졌다는듯두 팔을 늘어뜨리고 한숨을 내쉬는 놈.
그동안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소녀를 일으켜 세우고, 아무리 작게 말해봐야 어차피 놈에게 들릴 것을 알기에 소녀가 정신을 차리게끔 큰 소리로 외쳤다.
"실비아...!"
"으... 우으..."
".. 당장 관 뒤로 달려가 숨어."
"...."
덜덜덜 떨리는 입 때문에 대답은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그녀를 내려주었다.
돌부리 하나 없는 평지에서도 몇 번 넘어질 뻔했지만 비틀거리며 달려가는 소녀마저 내버려 두며, 그저 연신 한숨을 쉬어대고 있는 놈.
"단순히 죽지 않기 때문에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거라면.. 네놈에겐 정말 재미없고! 한심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 무슨 소리를 하는지.. 쿨럭.. 모르겠는데."
"투쟁은 반드시 생사결, 승자는 패자의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빼앗는다!! 제 목숨의 가치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네놈은 이 간단한 것도 이해할 수 없겠지...!!"
애초에 이쪽은 싸우고 싶지도 않다, 안그래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마음대로 떠들어대니 오히려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그런 주제에도 아직 뭔가 하려는 모양이지? 그래, 어디 한 번 보여봐라...!!"
이만한 기운이 몸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것을 놈이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놈은 절대 피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
심장으로부터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은총은 두 팔을 통해 손바닥으로,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빛덩이가 되어 대기가 찢어져 나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온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그리고 나는, 두 눈을 감았다.
한순간 낮이 찾아온 것처럼 터져 나온 빛이 눈꺼풀 너머로도 느껴진다.
"... 그르륵??"
하지만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놈도 나와같이 몸을 재생시킬 수 있다면 육체를 희생하는 고해가 자충수가 될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과감하게 방향을 바꿨다.
지금 이 짧은 순간만이라도, 저 작은 소녀가 보여준 의지를 본받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는 신의 은총을 정화도, 보호도, 치유도 아닌 그저 눈앞으로 밝은 빛을 터뜨리는 단순한 용도로 사용한 후, 관이 있던 위치로 몸을 날렸다.
내 말에 따라 관의 바로 뒤에 숨어있던 소녀를 낚아챘다, 그녀의 관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밟혔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모든 것을 잃지 않을 힘같은 건 없다.
이 선택으로 하나를 잃고 또 둘을 잃고도, 내 허망한 손 위에 남아있는 것은 그 마지막 하나조차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끄으으으...!"
분명한 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지독하게 살아남을 거라는 사실이다.
세계수가 있는 방향은 곧장 가로질러 앞.
아무리 놈이라고 해도 가까운 정면에서 터져 나온 빛과 굉음에 눈과 귀를 당했으니 회복하기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걸릴...
"....!!!"
푸우욱..!!
"쿨럭....!?"
내 복부를 뚫고 나온 날카로운 손톱이, 누구의 것인지 분명한 새빨간 피로 덧씌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뜨겁다.
꿰뚫린 복부에서 불타는 것같은 고통이 머리로 치고올라와 쉴새없이 쿵쿵 울려온다.
"그 상황에서 고작 눈을 노려올 줄은.. 예상치 못한 건 사실이지만, 너무 얕은수 아닌가?"
"쿨럭, 커욱...."
"빛과 소리만으로는 냄새까지 없애지 못한다는 걸 알 텐데."
더 실망할 것도 없겠다는 목소리가 일단은 알려주겠다는 듯 비아냥거려온다.
하지만 나는 그 비아냥에 안심했다.
놈은 냄새를 따라온 것이었다.
푸욱..!!
손톱이 내장을 베어내며 거칠게 뽑혀나가자 그 아찔한 고통에 저절로 다리에는 힘이 풀리고,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물론... 알지. 쿨럭..."
"...?"
"달려...!!"
피가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것을 한 차례 뱉어낸 나는 악에 바치듯 크게 소리쳤다.
빛이 옅어져 가고, 나는 거목들의 사이를 지나 세계수가 있는 방향으로 비틀거리며 달려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 손에 들린 것은 소녀가 입고 있던 로브.
나는 소녀를 들어 올리는 동시에 그녀의 로브를 벗겨내고, 정화의 기운을 통해 최대한 냄새를 지웠다.
지금 놈이 맡은 건 이 로브에 아직 짙게 남아있는 냄새.
수인의 후각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최근 있었던 일로 절감해서 말이다.
"...!"
이제야 회복된 시야속 빈 로브자락을 발견한 놈도 어떻게 된 일인지 뒤늦게 상황파악이 된듯 보인다.
"... 말했을 텐데, 난 내게 대적한 이를 절대로 살려두지 않는다! 대기해라!! 내가 직접 쫓겠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운걸."
"...?!"
푸우욱...!
안그래도 힘이들어가지 않는 몸을 매달리듯 들이밀어 놈의 손톱에 일부러 더 깊게 찔려들어가 몸을 고정시킨 나는 놈의 그 두꺼운 손목을 있는 힘껏 붙잡았다.
두국!
"이제.. 도망칠 시간을 벌어줘야 겠지."
".. 그만큼 힘을 쏟고도 아직도 낼 힘이 남아있다는 건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크욱...! 쿨럭!!고작 이정도 뿐이니.. 쿨럭!"
그때 소녀에게 저지당한 두 번째 고해를 금방 이렇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것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르지 않는 은총은 다시금 내 몸을 가득 채워나간다.
놈의 부하들이 최대한 많이 휘말리기를,
이 신성한 기운의 울림에 숲의 마물들이 하나라도 더 이끌려... 소녀가 가능한한 멀리 도망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저 앞이 소녀 혼자서는 너무나도 위험한 숲이라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이게 내가 다할 수 있는 최선.
그러니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벌어져 버린 일들에 대한 후회가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싶다.
"... 기도하라."
이제 두 번째.
잠깐 동안의 죽음을 경험해야 할 때였다.
"...?!"
그런데 그때.
"으음.."
불쑥, 하고.
"... 이런 곳에서 싸우시면 곤란한데요오."
이 긴박한 상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긋하고, 어딘가 멍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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