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9. 호숫가의 돌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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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숫가의 돌담 아래에서(8)
외부인이야 당연하고, 엘프 마을의 주민이라 하더라도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지혜의 줄기에서는 어제 이미 한 번 들른 곳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흘려들었던 '깨어나지 못한 이들'은 여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엘프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세계수의 이상 징후가 발견된 건 이브가 바실리카에 내려온 신탁의 빛을 확인하게 된 직후였어요."
하얗게 질린야윈얼굴로 각 침상 위에 늘어져 있는 엘프들은 하나같이 힘이 전부 빠진 목소리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입가로나마 흘리고 있다.
".... 끄으.."
"그으으..."
"... 치유술사들을 급히 데려왔지만, 섣불리 다가섰다가 똑같이 쓰러지고 말았고요."
"여기까지 옮긴 건 마법을 사용한 겁니까?"
"네, 그런데 계속 마나가 제멋대로 흩어지는 탓에.."
다가간 이는 똑같이 쓰러졌고,
마나는 흩어져 마법이 해제되어 버린다.
옮겨붙는 주술?
혹은 저주?
"사망자는 나왔습니까?"
"다행히 아직 목숨을 잃은 엘프는 없어요. 하지만... 이대로라면.."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신음이 쩍쩍 갈라져가고 있는 그들에게 일단 치유를 진행하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으나, 나는 무의식중에 손을 멈춰세우고 말았다.
나도 쓰러질 수 있다는 걱정따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왜 그러시나요?"
"... 아니요."
문득 내 피로 인해 새까맣게 변해 무너져 내리던 식물 표본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살가죽 아래 흐르고 있는 피에 영원히 새겨진 용의 저주에서 불쾌하고도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고는 줄곧 생각해왔지만, 이들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독기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나도 모르는 사이 뱀처럼 손목을 옥죄어 들어와 쓸데없는 망설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 아무것도 아닙니다."
.. 하지만 곧 털어낼 수 있었다.
사제가 치유를 두려워 해서야 그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었으니까.
가까운 침상에 있던 엘프부터 이마 위로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 이건.."
그리고 가까워진 내 손이 끝내 맞닿게 된 순간, 나는 이들의 몸 안에 기이할 정도로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모든 생명체에는 체내에 잔류하는 마나가 기본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법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도, 길가의 잡초까지도 적기는 해도 어느 정도의 마나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어느 정도의 마나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고작해야 한 줌..
금방이라도 말라버릴 것 같은 약한 기운이 어렵사리 느껴진다.
그리고 만약 이 얼마 남지 않은 마나 마저 잃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
내가 이상하게 느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의 몸이 마치 만찬 위로 던져진 걸인처럼 그에게 닿은 내 손바닥을 통해 은총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법을 무작정 사용하게 되면 흔하게들 겪는 마나 고갈과는 다르다.
한참을 질식당하다 숨이 막 트인 것처럼 이자의 몸은 생존을 위해 마침 찾아든 신성한 기운을 무작정 끌어당기고 있었다.
과호흡과 유사한 증상,확실히.. 별다른 대비 없이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이들에게 무작정 마나를 빼앗겨 별 소득 없이 똑같은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이들은.."
세레스티아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녀의 반응과,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예측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뿐이다.
"설마 세계수가.."
"..."
긍정을 의미하는 그녀의 침묵은 짧게 이어지다 한숨과 함께 끊어지고 만다.
"지혜의 줄기에는 저를 포함한 10인의 원로 이외에도 많은 어린 엘프들이 수행원으로서 역할을 분담하여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어요."
그녀는 내 은총으로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 엘프를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성소를 도맡아 관리하고 있는 아이들이고요."
"... 성소."
"그곳에 쓰러져 있던 걸 발견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아마 구할 수 없었겠죠."
직접적인 접촉이 원인인가?
그렇다기에는 바로 이곳 지혜의 줄기도 충분히 세계수와 근접해 있다.
그러나 이상한 기척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달리 느껴지는 것은 없다.
세계수의 크기가 크기이니만큼 이상현상이 발생한 건 극히 일부분인 건가?
"회복을 마치는대로, 그 성소라는 곳으로 안내해 주시죠."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했으니 해결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빠른 해결책은 이거다.
나는 누워있는 엘프들의 중간에 자리잡아 양손을 맞잡고 가슴께에 모아 올렸다.
".. 자비 깊은 은총을 내리니, 이는 눈먼 은혜로이들이 다시 설 수 있도록 함이라."
심장으로부터 시작된 힘의 격류는 두 팔을 지나고, 모아진 두 손을 통해 뿜어져 나와 쓰러져 있는 엘프들을 뒤덮어간다.
크게 그 방향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그들의 몸은 알아서 주변으로 흩어져 가는 은총을 자신에게 끌어당겼고, 점차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있는 게 보인다.
"... 아.."
이들을 세 번은 살리고도 남았을 막대한 양이 들이부어지고 나서야 그들의 몸은 은총을 끌어당기는 것을 멈추었고, 나도 슬슬 맞잡은 손을 떼어냈다.
혹시 모르니 그들의 이마에 한 번씩 손을 가져다 대고, 주변의 기운을 흡수하려 드는 성질이 사라진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저린 팔을 털어냈다.
아직 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특별한 외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징후는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들의 상태가 이 방법으로 간단히 회복된 것을 보면, 내 앞선 예상이 들어맞았다는 것이 된다.
생존본능.
정말 그렇다면..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에단 님."
"아직 인사를 받기는 이릅니다. 성소로 가겠습니다, ...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할지 모릅니다."
쓰러져있던 이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수 역시 자신의 생명력이 점차 바닥을 보이자 가까이 다가온 생명체의 마나를 흡수하려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추측이다.
만약 정말 세계수가 생명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반대로 흡수하려 하고 있다면..
이는 당장은 아니었지만 세계수가 힘을 잃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이 마을의 모든 생명체의 앞에 예정된 위협이 닥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대로 세계수가 주변의 생명력을 본격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한다면.. 벌어질 참상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 적어도 지금처럼 고작 엘프 몇 명이 쓰러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성소는... 에단 님의 목적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어요. 그도 그럴게.. 그곳은 생명의 정수가 탄생하는 모태이기도 하니까요."
"생명의 정수..?"
"쉽게 말해, 어머니의 나무의 씨앗이에요. 그곳은.. 어린 묘목들을 키우고 있던 장소이기도 했죠.."
원로회의 때는 지혜의 줄기를 따라 위로 향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이 기다란 줄기를 따라 아래로 향하고 있다.
세레스티아가 손짓하자 나무덩쿨이 저절로 움직이며 벽면에 숨겨져 있던 통로의 모습을 드러낸다.
숨겨져 있던 좁은 샛길을 은은한 수정빛에 의지하여 한참을 걸어내려가니, 지혜의 줄기는 그 좁아진 통로로 예상보다 훨씬 깊은 아래까지 이어지다 드디어 작은 공동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엘프들의 성소라는 이름답게도 무장한 경비병들이 엄숙히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하지만 이 좁은 공동에 저 수는 조금은 과하지 않나 싶었기에근래 일어난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 때문에라도 경비를 강화한 것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저벅 저벅 저벅
미동도 없는 경비병들의 사이로 누군가의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걸어나온다.
"푸르기스?"
그들의 사이에서 차분히 걸어 나온 것은 이미 한 번 원로회의에서 본 적이 있는 하이엘프.
"인사드립니다. 세레스티아님."
먼저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내쪽을 살피는 그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나와 세레스티아를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게 되신 건가요?"
"아, 세레스티아님께서 직접 외부인을 지켜보겠다고 말씀하신 건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이 정말 저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저 역시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마을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어머니의 나무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고개를 들어 올리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양해를 구해오는 그의 모습은 원로회의에서 본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 내용이야 단순히 나에 대한 불신이었지만, 저렇게 말해온다면 거절은 힘들어 보인다.
세레스티아는 미소와 부탁에 유난히 물러 보였으니까.
그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이쪽을 곁눈질로 한 번씩 살피고 있다.
자신이 나를 주시하고 있으니 허튼짓을 할 생각은 버리라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제서야 내게 익숙한 하이 엘프의 껄끄러운 면모를 보여주던 그는 이야기를 마치고서는 아예 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왔다.
깔끔한 외모, 눈매에 또렷하고 올곧은 주관이 느껴져 오는 미남.
원로라면 최소한 500년 이상의 세월을 살아온 이들일 텐데,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들의 겉모습은 무심코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괜찮을까요? 에단 님."
"... 예..?"
푸르기스 원로가 내게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세레스티아가 먼저 내게 괜찮겠냐고 묻는다.
내 의중을 물어볼 줄은 몰랐기에 그녀의 말에 자칫 당황한 티를 낼뻔했지만, 이어진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 혹시나 방해가 될까 걱정이 돼서요."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를 도울 내 집중력이 흐트러져서야 큰일이긴 하다.
하지만 괜찮다. 언제부터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썼다고 이제 와서 불편함을 느낄 리 없다.
그리고 지금 거절 하더라도, 저 자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오히려 더 귀찮게 할 것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어서 들어가 보죠."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고 그 관리를 도맡아온 엘프들을 제외하고는 호위나 경비병들조차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엘프들의 성소.
경비병들이 굳게 닫혀있던 무거운 석문을 잡아당기자 천천히 그 안쪽의 모습이 드러난다.
바닥과 천장.. 그리고 외벽이 모두 하나같이 나무뿌리가 한곳에 얽혀서는 그 가운데에 둥그런 공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 같은 장소이다.
이곳이 바로 세계수의 아래, 뿌리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성소라고 부르기에 어폐가 있어 보인다.
"... 흠."
벽면에 걸어져 밝은 빛으로 주변을 밝혀야 할 수정 조명은 어째서인지 하나같이 그 빛을 거의 다 잃어 힘없이 깜빡거리고, 생기넘치는 흙내음 대신 퀘퀘한 먼지 냄새가 가득했으며, 이질적이고 불쾌한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게다가 세레스티아가 말해준 세계수의 묘목 여러 그루는.. 이미 시들어버린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그 모습을 보고 을씨년스럽다고까지 생각했다.
엘프들의 성소.. 생명을 상징하는 세계수의 모태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쿵.
이내 문이 닫히고.
바닥을 내려다 보니, 지혜의 줄기의 건축물과 성소와의 경계가 분명하게 구분지어진 것이 보인다.
그야 태고부터 존재해온 세계수와 달리 지혜의 줄기는 이후 엘프들이 덩쿨을 그주변으로 감싸 올려 지어낸 건축물이니 당연하다.
"..."
일단 문이 닫혔지만, 아직 별다른 이상은 없다.지금 상황에서는.. 뭐든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나.
마침 그런 일에는 나만큼 어울리는 자가 없기는 하다.
".. 우선 저만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 세계수의 엉킨 뿌리로 이루어진 바닥 위에 발을 내디뎠다.
조금은 긴장한 채로 한 발을 내디뎠지만, 아무런 이상은 없다.
... 직접적인 접촉 이외에도 다른 조건이 있는 건가?
"...!"
그렇게 나머지 한 발을 마저 떼어내 세계수의 뿌리 위로 내디딘 순간이었다.
"... 아?"
"에단 님..!"
무슨...?
털썩!
온몸의 모든 감각이 아득한 저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듯한 어지러움과 동시에 한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리고 곧 무언가가 내 몸을 잡고 비틀어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찾아와 한차례 뒤흔들고 나서야 내 몸은 자유롭게 무너져내렸다.
어느새 나는 무릎을 꿇고 뿌리 바닥에 늘어져 무력하게 두 팔을 늘어뜨리고 있다.
심장이 쿵. 쿵. 요동치며 은총이 억지로 샘솟는다.
화아악...!
겨우 다시 뜨게 된 눈앞은 빛으로 가득차있다.
그 이유는 틀림없이 내 몸 주변으로 은총의 빛무리가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단님..! 제가...!"
"안됩니다 세레스티아님...!"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달려올것같은 목소리.
그게 세레스티아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어렵사리 눈치챈 나는 무어라 말을 할 여유도 없었던 만큼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려, 오지 말라는 의미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아직, 버틸만.. 합니다.."
쉴새 없이 빠져나가는 은총을 따라 내 정신도 함께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윽.. 으으..."
그러자 뿌리를 거꾸로 타고 위로 올라가 점점 넓은 범위에 걸쳐 퍼져나가는 은총을 통해 세계수의 상태에 대해 그 흐릿한 윤곽이 얼추 드러나기 시작한다.
갈망.. 아니 그보다는 더 원초적인..
갈증...
고통.
"..."
... 두려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개념을 나무에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분명 익숙한 감정의 무리가 이 안에서 요동치고 있다.
... 잠깐.
이건.. 어째서지?
깊이,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여태까지는 어렴풋이 느껴질 뿐이던 감정의 무리가 점차 선명해져 가고 있다.
마치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감정의 파도가 이 세계수의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은총을 뻗어내면 손끝이 닿을 것 같다.
심장은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고통을 자아내며 쿵쿵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신성한 기운을 퍼올리고, 그에 따라 내 기운이 세계수에 더욱 깊고 짙게 퍼져나가고 있었기에 분명 느낄 수 있다.
"...!"
누군가... 있다.
은총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곳, 다시 세계수의 거대한 가지와 뿌리로 퍼져나가기 위해 한 번 모이게 되는 마치 심장과도 같은 그곳에...
지금 내게 전해져오고 있는 이 감정들의 주인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넌.. 누구지?
대답을 바라지 않은 내적 중얼거림과 함께,
온통 빛으로 가득한 은총의 그물 속에서 어렴풋이 그려지는 시야.
'...!'
누군가 이쪽을 뒤돌아 본다.
그리고 그 얼굴이 빛무리 속에서 이제 막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가던 그때..
"윽...!"
쿵...!!
"... 에단 님!"
쿵... 쿵.... 쿵.....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이 쿵쿵 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을 온통 울리는 탓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뿌옇게 변한 시야 속에서 어째서인지 시야의 왼쪽에 수직으로 맞닿아 있는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늦게 내가 옆으로 쓰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쿵......... 쿵.............
규칙적으로 울려오던 시끄럽던 소리가 점차 길게 늘어져...
멎어간다.
.. 조용하다.
더욱 흐릿해져 사라져가는 정신 속에서 다시 한 번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곧 저 아래로 끌려내려가 결국 시야는 완전히 검게 물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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