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68화 (68/137)

〈 68화 〉 11. 불신과 맹신

* * *

11.불신과 맹신(3)

철겅....! 쩔그렁.....!!

머리에 복면이 씌워져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던 나는, 결국은 빙빙 돌아 위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갇혀 있던 곳이 지혜의 줄기 내부였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드르르륵! 철컥..!

끝내 도착한 작은방에서 쇠사슬들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묵직한 철성과 함께, 문 앞을 지키는 둘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척이 떠나고 나는 다시 방치되었다.

복면은 여전히 씌워진 상태였지만, 천의 좁은 틈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옅은 빛을 보면 이 방의 조명은 환하게 밝혀져 있는듯 하다.

그리고..

철그럭... 철걱..

"너.. 대체 뭐야."

나와 같이 사슬에 묶인 선객이 있었던 모양이다.

"왜 목이 잘리고도 살아있는 건데?"

다짜고짜 그런 황당한 질문을 던져온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습격자, 헹겔.. 그녀의 목소리다.

.. 그녀도 이곳에 붙잡혀 있던 건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쪽은 왜 붙잡힌 거지?"

"... 내 말에나 대답해. 너 뭐야?"

내 정체를 묻는 그녀에게 마땅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중간중간 잉크가 번진 불완전한 옛날이야기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고 싶은 기분은 아니라서 말이다.

그녀보다는 오히려 내 쪽이 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이비는 괜찮은지, 그녀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 이비는 어디에 있지?"

"닥쳐...!!!"

그녀의 고함소리가 실내를 쩌렁쩌렁 울리고, 복면에 눈앞이 가려져 있었음에도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부터 피부가 따끔거리는 살의를 느낀다.

"차라리 거기서 죽어버리란 말이야. 넌 이대로 나타나서는 안된다고...!!!"

"... 왜 나를 죽이려고 한 거지? 당신은 알고 있는 건가?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당신은 알고 있는 거야?"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감정이 북받쳐 울부짖는 목소리가 길게 찢어지고,

이내 갈라진 목에 수차례나 기침을 하고서도 그녀는 내게 소리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들려온 그 내용은, 내 지끈거리던 머릿속을 한순간에 멈추고 몰아치던 의문을 모조리 깨뜨려버렸을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네가 죽인 그 꼬맹이들.. 그 꼬맹이들은 아무런 죄도 없잖아!!"

"뭐...?"

"하... 하하... 그 목소리는 뭔데? 그 반응은 뭐고? 지금 네가 저지른 짓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잖아! 이 미친 새끼야..!!"

쩔그렁!!! 쩔겅!! 쩔컹!!

"아아아아아악...!!!"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어 난도질을 하지 않고서는 그 분노를 삭힐 수 없겠다는 것처럼,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며 손발에 묶인 사슬을 격하게 흔들어 대는 헹겔.

"..."

그런 그녀의 반응에, 나는 지금의 의문섞인 파편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녀가 그렇게나 격분하여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 것도, 날 노려보던 엘프들의 혐오 어린 시선도.

전부...

"나는.."

"실비아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

실비아...?

"너 때문에...!"

"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너 때문에..!!!"

"...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녀에게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하다.

욕설 섞인 저주와 비난을 쉬지않고 입에 담아오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

이런 와중에도.. 내가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말을, 스스로가 도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연을 끊고, 더 이상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다시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술이나 연초보다도 더 확실하게 내 지긋지긋한 두통을 지워내 주던 마연을 내가 한순간에 완전히 놓아버린 건.. 바실리카에서 내가 겪은, 그리고 저지른. 불쾌한 과오를 다시는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는 그 주변에 당장 수십 명의 사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 아이들이.. 죽었다고."

대체 어느 사이에.. 나는 망집에 홀려 버린 거지?

바실리카에서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하나의 집념이 그런 소란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대체 어떤 집념에 휘둘려, 나는.. 아이들을 죽게 만든 걸까.

죽음 이후 다가온 허무 속에 내가 잠시 머무르는 동안, 망집에 홀린 내 정신이 이번에도 멋대로 몸을 움직인 거라고 한다면...

깨어난 지금이라면 분명하게 와닿아 짐작이 가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명쾌한 해답이 아닌 꼬리를 무는 새로운 의문 뿐이다.

분명 이상함을 느끼지만 그 괴리감에 자세히 파고들 새도 없이,

덜컹!

뚜벅 뚜벅 뚜벅.

"... 다들 꼴이 말이 아니네요."

가까워지는 익숙한 기척과 함께,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렸다.

"... 이비..?"

"..."

내가 쓰러져 있을 당시 가장 가까이에 있었을 그녀가 위험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지만, 그녀는 단순히 그 때 자리를 비웠을 뿐이었는지 무사해 보인다.

그렇다고 이걸 마냥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사건의 진상을 목격할 수도 있었던 그녀가 하필 그때에만 자리를 비웠다는 게 내게 있어서는 불행이었기에..

어쨌든, 그녀의 목소리라도 듣게 되어 한시름 놓았다.

".. 세레스티아 님이 몹시 슬퍼하셨어요."

"..."

하지만 그 조금 생겨난 여유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이비는 내게 짐을 지워온다.

"그리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

"... 제가 당신을 믿었다면.. 그때 자리를 비우지도 않았을 테고, 그랬다면...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나를 믿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고, 죽은 아이들이 돌아오는 일도 없을 테니 이건그저무의미한 푸념에 불과하겠네요."

".. 이비, 나는.."

나는...

"... 당신을.. 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

커다란 쇠말뚝 하나가 심장에 단번에 박혀들어오는 듯한 그 한마디에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

그래..

나는 한동안 꿈을 꾸고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순간의 변덕으로 시작되어 지금으로까지 이어진 나의 헛된 기대와 추한 돼지의 욕망으로부터, 원래의 내 삶으로 이젠 돌아올 때라고 그리 말하는 것처럼.

눈앞을 가린 복면의 답답한 어둠이 익숙하게 날 끌어안았다.

철컹! 철컹!!

촤르르르르르륵!!

손발의 족쇄는 그대로였지만, 달려있던 두꺼운 쇠사슬들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도 나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여전히 내 손발을 구속한 묵직한 쇳덩이에 나는 안정감마저 느낀다.

나는 이제, 벌을 받게 되는 거구나.

드디어.

".... 죽어버려..!!"

동시에 속박이 풀린 헹겔이 당연하다는 듯 나를 향해 달려드는 걸 느꼈지만 피할 생각은 없었다.

이걸로 그녀의 분이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그야 다행이다.

철컹...!!!

하지만 기다리던 고통은 내게 닿지 못한다.

생소한 마법의 기척과 함께, 들려온 것은 오직 헹겔이 발버둥을 치는 소음.

"캬윽...!!"

"둘 모두, 허튼 생각은 마세요. 제 손짓 한 번이면 사지를 몸통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휙!

그녀의 손에 의해 벗겨진 복면.

밝은 빛에 따가운 시야 속으로 보이는 건...

안타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은발의 엘프다.

조그마한 파문조차 일지 않는 고요한 호수를 닮은 푸른 눈동자.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감정에 대해 늘 숨기거나 어설픈 연기로 속여넘기려 했던 그녀가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는지, 혹은 그마저도 포기해 버린 것인지...

안쓰러운 얼굴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던져진 그 작은 돌멩이 하나는 이렇다할 파문 한 번 일으켜보지 못하고,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았을 뿐이다.

"..."

슬쩍 고개를 돌리자 내 바로 앞에서 허공에 매달리듯 멈춰 있는 헹겔의 모습도 보인다.

나를 속박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저 빛나는 구속구는.. 이비가 다루고 있는 건가.

메마른 시선으로 헹겔을 바라보았다.

나를 똑바로 향하고 있는 그녀의 검고 하얀 눈동자가, 어느 한 쪽에 치우쳤다고 말할 수도 없이 같은 살의를 담아 하나의 색을 나타내 오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느꼈다.

그뿐이었다.

"... 따라와요. 헹겔 님도요. 원로 재판이 시작됐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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