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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왜 벗고 있어? (14/112)

14. 왜 벗고 있어?2021.11.17.

16550874589641.jpg“정신 차려, 함겨울.”

피가 전부 빠진 사람처럼 하얗게 질린 겨울은 의식을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난 시후는 제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16550874589641.jpg“제발…….”

이대로 겨울이 죽을까 봐 두려웠다. 견딜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하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울의 뺨을 쓸었으나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16550874589652.jpg“학생!”

그 순간, 때마침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서둘러 겨울을 구급차로 옮겼고, 시후는 그녀가 무사하기만을 기도하며 차에 올라탔다.

16550874589652.jpg“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학생.”

응급실에 도착해서 치료를 받은 시후는 겨울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안도했다.

16550874589652.jpg“어린 친구가 용감하기도 하네요. 그 불길 속에서 다치면서까지 여학생을 구하다니.”

시후의 입술 사이로 묵직한 숨이 감돌았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시후는 자신의 신분을 겨울에게 밝히지 말아 달라고 구조대와 경찰에게 거듭 강조하며 부탁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녀에게 마음의 짐을 얹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격양된 모습으로 등교한 시후는 곧장 겨울을 가두었던 무리의 주범을 찾아갔다.

16550874589652.jpg“선배님, 그, 그게 아니라…….”

퍼억! 전교생이 지켜보는 와중에 시후는 무작정 주먹을 휘둘렀다. 치솟는 분노에 어떠한 이성적인 사고도 불가능했다.

16550874589641.jpg“네가 뭔데 함겨울을 건드려.”

복부를 발로 걷어찬 시후는 남학생을 벽으로 몰아붙이고 목을 콱 짓눌렀다.

16550874589652.jpg“악!”

16550874589641.jpg“그렇게 죽고 싶으면 죽여 줄까?”

깊은숨을 내몰아 쉰 시후가 관통할 듯 남학생을 노려보았다. 팔목이 깊숙이 박히며 남학생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쏟아냈다. 한 번 더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한 시후가 바닥에 나자빠진 학생을 발로 걷어차며 주변에 모인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16550874589641.jpg“앞으로 함겨울 건드리는 새끼는, 내가 다 죽여버릴 거야.”

겁에 질린 듯 술렁이던 일대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16550874589641.jpg“함겨울에게 말도 걸지 말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16550874589641.jpg“그 앞에서 숨도 쉬지 마.”

아무도 그녀를 건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 누구라도 그녀를 다치게 한다면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꽉 쥐었던 주먹을 턴 시후가 제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었다. 가라앉지 않는 화에 짙은 숨을 몰아쉰 시후가 뒤를 돌아 뚜벅뚜벅 걸어갔다. 내면에서 폭발하는 화는 사실 자신을 향한 분노이기도 했다. ……겨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무력감. 그것이 시후를 미치도록 괴롭게 했다.

16550874603673.jpg“내 경고가 허투루 들렸던 모양이다, 시후야.”

시후를 호출한 아버지는 또다시 골프채를 어루만지며 섬뜩한 시선을 보냈다. 그가 학교에서 일으킨 소란을 알게 된 것이다.

16550874589641.jpg“……아버지.”

어렸을 때부터 숱한 폭력을 당했지만, 시후는 한 번도 그에게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었다. 조금도 굽히지 않고 직선으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

16550874589641.jpg“모든 걸 아버지 뜻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긴 지금, 시후는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16550874589641.jpg“저를 때리셔도 되고, 이대로 죽이셔도 됩니다.”

겨울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은 시후는 두 무릎을 꿇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하게 애원했다.

16550874589641.jpg“……제발, 겨울이만큼은 건들지 말아주세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시후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시후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아버지는 들고 있던 골프채를 내려놓고 헛숨을 터뜨렸다.

16550874603673.jpg“그렇게 그 계집애가 좋더냐?”

16550874589641.jpg“…….”

16550874603673.jpg“……알았다. 네가 내게 난생처음 하는 부탁이니 들어주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시후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16550874603673.jpg“대신, 앞으로 절대 그 애와 엮이지 마라. 두 번의 기회는 없어.”

아버지는 단단히 경고한 뒤 나가라는 듯 손짓했다.

16550874589641.jpg“……감사합니다, 아버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더는 겨울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한 해가 흐르고, 시후는 어느덧 스무 살이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시후는 온종일 겨울의 생각뿐이었다. 다른 어떤 여자들을 만나도 겨울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지루한 1학년을 보내던 중,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문득 겨울이 집안 사정으로 자퇴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마도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려는 것 같았는데, 그토록 힘들게 버틴 학교를 포기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하면 그녀가 계속 학교에 다니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후는 아버지 몰래 제 통장에서 천만 원을 인출해 그녀의 어머니에게 건넸다.

16550874589641.jpg“겨울이한테는 꼭 비밀로 해주세요, 아주머니.”

16550874619865.jpg“……그래, 시후야. 정말 고맙고, 또 미안하다.”

단단히 일러두고 갔으나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겨울은 잔뜩 분개한 표정으로 시후를 찾아왔다. 해가 바뀐 뒤 처음 보는 겨울의 모습이었다. 옛날과 달리 생기를 잃은 수척한 모습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동안 아프지는 않았는지, 많이 힘들었는지, 널 괴롭히는 사람은 이제 없는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가까스로 삼켰다.

16550874619868.jpg“가져가. 이런 돈 필요 없으니까.”

16550874589641.jpg“…….”

16550874619868.jpg“강시후, 너한테 돈 받을 이유 없으니까 도로 가져가라고.”

겨울이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울컥 감정이 치솟은 시후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그녀는 이 돈이 없으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래. 널 지키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어. 굳게 결심한 시후는 나름의 방식으로 겨울을 지키기로 했다.

16550874589641.jpg“꼴같잖은 자존심 세우는 게 특기인가?”

차라리 나를 미워해, 겨울아.

16550874589641.jpg“주제 파악 좀 하지.”

날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하고 원망해.

16550874589641.jpg“너나 네 가족이나, 자기 주제를 모르니까 그따위로 사는 거야. 알아?”

……그래야 네가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16550874589641.jpg“그리고 함겨울, 너. 학교 그만둔다고 소문 쫙 났던데. 네 처지에 그만둬서 뭐 어떡할 건데?”

흔들리는 겨울의 동공을 보는 시후의 가슴이 뻐근하게 저며왔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듯한 커다란 눈에 시후의 내면은 산산이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16550874589641.jpg“진짜 소문처럼 술집에서 일하기라도 할 건가.”

……넌 행복해야 해.

16550874589641.jpg“아니면 뭐, 내가 네 스폰서라도 해줘?”

악역은 내가 할 테니. 짜악!

16550874619868.jpg“미친 새끼…….”

흘긋 들어올린 시야로 창백하게 일그러진 겨울의 모습이 들어찼다.

16550874619868.jpg“강시후 넌…… 진짜 최악이야.”

상처받은 작은 얼굴이 눈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표정을 보는 시후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맞은 뺨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다만 심장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숨을 쉴 수 없었다. 겨울은 곧바로 뒤를 돌아 뛰어갔고, 그것이 겨울과 시후의 마지막이었다. 바로 그다음 날, 겨울과 그녀의 가족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시후는 지독한 몸살감기에 걸려 한창 앓았었다. 39도까지 열이 오른 와중에도 시후는 겨울의 생각밖에 들지 않아 미칠 지경이었다. 극심한 고열에 흐릿한 눈앞으로 눈물을 흘리던 겨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지그시 눈꺼풀을 닫아도 그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괴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와의 마지막 추억이 그토록 잔인한 기억으로 남아 심장이 깨질 것처럼 아팠다. 그녀에게 가장 최악의 남자로 남을 것을 알았기에 숨을 쉴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밉기도 했다. 제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떠나버린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도……. 그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제게 화를 내고 욕을 해도 좋으니, 겨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든 시후는 겨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속이 화끈거리며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들끓는 열기 속에서 시후는 말없이 제 열 오른 눈가를 손으로 짓눌렀다. 뜨거운 액체가 손을 아릿하게 적시며 사라졌다.

16550874589641.jpg“하…….”

적막한 가운데 시후의 신음 같은 한숨이 번졌다. 스무 살, 이제 막 어른이 된 소년의……. 열병 같은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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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도 더 된 과거를 떠올린 시후의 표정이 회한에 잠겼다.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은 애증을 꽃피웠고, 단단히 얽혀 풀리지 않는 과거의 매듭은 여전히 겨울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16550874589641.jpg“……겨울아.”

자그마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녀가 떠난 이후로도 절대 잊히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길고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겨울을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는데……. 다시는 놓칠 수 없었다. 아니.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녀가 울며 애원하더라도.

16550874589641.jpg“후회 따위…….”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그는 19살의 미성숙한 소년이 아니었으니까. 굳게 결심한 시후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다시금 감돌았다. *** 온종일 방 안에 박혀 있던 겨울은 가사도우미가 퇴근한 뒤에서야 밖으로 나왔다. 근 며칠 시후는 저와 눈이 마주치면 전처럼 웃기는커녕 싸하게 대했는데, 그 태도에 괜히 가슴에 시린 바람이 부는 듯했다. 마치 예전의 강시후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저를 보고도 철저히 무시하는 그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16550874619868.jpg“하…….”

솔직히 신경이 쓰였다. 그것도 아주, 매우.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절로 한숨이 흘렀다.

16550874619868.jpg“아, 그만 생각하자. 함겨울.”

제 뺨을 두 번 내려친 겨울은 흐트러진 정신을 다잡았다.

16550874619868.jpg“그보다 오늘은 실장님한테 연락해야 하는데…….”

언제까지나 쉬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 다음 주부터는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말할 참이었다. 마시던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켠 겨울이 핸드폰을 찾아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16550874619868.jpg“안녕하세요, 실장님.”

16550874589652.jpg-응, 그래. 겨울 씨.

16550874619868.jpg“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16550874589652.jpg-물론 되지. 몸은 좀 어때?

16550874619868.jpg“신경 써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겨울이 작게 웃으며 휴대전화를 고쳐잡았다.

16550874619868.jpg“다름이 아니라, 다음 주부터 업무 복귀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16550874589652.jpg-벌써? 나야 좋은데, 겨울 씨가 괜찮겠어? 아직 기억 안 돌아온 거 아니야?

16550874619868.jpg“네. 그렇지만 당장 건강에는 이상이 없어서요. 일하는데도 문제없을 것 같고요.”

16550874589652.jpg-겨울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뭐……. 그래, 알았어.

16550874619868.jpg“네, 감사해요. 그럼 제가 1년간 맡았던 고객님들 바디 체크리스트 전부 메일로 보내주세요, 실장님.”

16550874589652.jpg-그건 왜?

16550874619868.jpg“고객님들께는 기억 잃었다는 사실 비밀로 하고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놀랐는지 수화기 너머로 잠시 말이 없었다.

16550874589652.jpg-고객들 바디 체크리스트를 통째로 외우려고?

16550874619868.jpg“네. 그 정도 외우고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서요.”

16550874589652.jpg-그래, 뭐. 겨울 씨가 돌아와 주면 나야 한시름 덜지.

실장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16550874589652.jpg-고객들이 함겨울 팀장 언제 복귀하냐고 매일 아우성치는데, 그래서 매출도 많이 떨어졌고. VIP들이 죽어도 겨울 씨 아니면 관리 안 받겠다는데 어떡해?

16550874619868.jpg“하하, 감사한 마음뿐이네요.”

16550874589652.jpg-그럼 다음 주 월요일부터 복귀하는 걸로 해둘게. 그때까지 푹 쉬고.

16550874619868.jpg“네, 다음 주에 뵐게요.”

통화를 마친 겨울은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운 겨울은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천장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16550874619868.jpg“아, 이상하게 축축 처지네.”

시간은 막 7시를 지나고 있었다. 온종일 우울한 채로 하루가 다 가버린 느낌이었다. 또 한 번 제 뺨을 짝 내려친 겨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50874619868.jpg“그래. 우울해하지 말자. 싹 씻고 맥주나 시원하게 드링킹해야지.”

어차피 오늘도 시후는 새벽이 되어서나 들어올 게 뻔했다. 그때까지는 겨울의 세상이었으니 마음대로 하기로 했다. 곧바로 욕실로 들어가서 뜨끈한 물을 받은 겨울은 차갑게 식은 몸을 담갔다. 향긋한 입욕제의 향기가 피어오르자 우울했던 기분이 전환되는 느낌이었다. 반신욕을 마치고 타월로 물기를 닦은 겨울은 보디로션까지 꼼꼼히 바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6550874619868.jpg“아, 갈아입을 옷 안 가지고 들어왔네.”

뭐, 어차피 강시후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야. 커다란 타월을 대충 몸에 두르고 나온 겨울은 기분 전환을 위해 노래를 최대 크기로 키워 틀었다.

16550874619868.jpg“I'm on the Next Level, Yeah!”

흥이 오른 겨울은 걸그룹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들었다.

16550874619868.jpg“절대적 룰을 지켜! 내 손을 놓지 말아!”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이리저리 씰룩거리며 아무렇게나 막춤을 추었다.

16550874619868.jpg“결속은 나의 무기! 광야로 걸어…….”

16550874589641.jpg“겨울아.”

16550874619868.jpg“가아악!!!”

그 순간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낮은 음성에 화들짝 놀란 겨울이 들고 있던 맥주를 팍 떨구었다.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려는 순간, 강건한 팔뚝이 겨울의 잘록한 허리를 확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시후의 품에 폭 안긴 겨울이 놀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당황한 겨울은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시후를 올려다보았다. ……왜 오늘은 벌써 집에 온 거지?!

16550874589641.jpg“나 퇴근했어.”

16550874619868.jpg“…….”

16550874589641.jpg“근데 뭐 하고 있는 거야?”

동시에 겨울의 얼굴에는 화르륵 불이 붙었다. 제 원맨쇼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창피해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16550874619868.jpg“그, 그, 그건…….”

빨갛게 익은 얼굴로 말을 더듬는데 돌연 시후가 겨울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16550874589641.jpg“나 안 보고 싶었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싸하던 남자가 돌연 다정하게 물어오자 당혹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고 입만 벙긋거리고 있자 단단한 팔을 뻗은 시후가 겨울의 여린 어깨를 휘감고서 끌어당겼다. 꽉 힘주어 안자 겨울의 작은 몸이 시후의 거대한 몸에 딱 달라붙었다. 틈 없이 맞붙은 부위로 시후의 근육들이 생생하게 느껴지자 겨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라 딱딱하게 굳은 겨울의 귓가로 뜨거운 입술이 소곤거렸다.

16550874589641.jpg“난 보고 싶어서 혼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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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경악한 겨울은 본능적으로 두 팔을 뻗어 시후의 가슴을 확 밀쳐냈다.

16550874619868.jpg“꺄아아악!”

그 반동에 대충 둘렀던 타월이 훌러덩 벗겨지고 말았다. 상체가 드러나자 놀란 겨울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제 가슴을 엑스자로 가렸다.

16550874619868.jpg“저, 저, 저리 가, 강시후!”

흘러내린 타월을 끌어올리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큼 한 발짝 다가오는 시후에 겨울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움찔거렸다.

16550874619868.jpg“오, 오지 말라고오오!”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그리고, 그 귀여운 모습에 또 짓궂은 마음이 피어오르는 남자가 여기에.

16550874589641.jpg“옷은 왜 안 입고 있어.”

낮게 웃은 입술이 길게 늘어졌다.

16550874589641.jpg“내가 입혀 줄까, 겨울아?”

……아. 입히긴커녕 모조리 벗겨버릴 것만 같은 음험한 눈빛이었다. 겨울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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