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 단 하나의 구원 (80/112)


80. 단 하나의 구원
2022.07.06.


일찍 철이 들어버린 여덟 살의 시후에게 아버지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다.

이후 밤늦은 시간이 되어 2층으로 올라온 어머니의 모습은 차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엄마, 미안해요…….”

뼈가 도드라질 만큼 마른 몸은 멍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얀 피부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미안해요, 엄마……. 내가 약해서 미안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그저 바보처럼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도 사랑하는 사람 하나 지킬 수 없는 스스로의 나약함에 화가 나고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시후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억울함에 눈물을 흘릴 때면, 어머니는 시후를 두 팔로 끌어안고 위로했다.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속상해.”

“……하지만, 엄마를 지켜주지 못했어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지켜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싶었다.


“시후야. 엄마 말 잘 들어.”

“…….”

“지금은 우리 시후가 작고 어리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누군가를 지켜줄 힘이 생기게 될 거야.”

한없이 슬프게 우는 시후를 다독이며 그녀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어른이 돼서 엄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만나면, 그때 반드시 지켜주면 돼. 엄마는 우리 시후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랄 거라고 믿어.”

그건 그녀가 어린 시후에게 습관처럼 하던 말이었다.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아이가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지만 말이다.


“내일, 우리 아들 드디어 초등학교 들어가는 날이지? 중요한 날이니까 얼른 자자.”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어머니의 표정은 왠지 너무나 슬퍼 보였고, 그 얼굴이 마음에 걸려 시후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찾아온 초등학교 입학식 날, 결국 뜬눈으로 꼴딱 밤을 지새운 시후는 새벽같이 이른 시간에 1층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엄마……?”

그런데 그날은 어딘가 이상했다.

항상 이른 시간에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이며 아침을 준비했던 어머니가 그날따라 침실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시체처럼 침대에 가만히 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 어머니를 의아하게 생각한 시후가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가 움찔했다.

항상 따뜻했던 온기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피부가 얼음장처럼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시후가 그녀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엄마…….”

한 번, 두 번, 세 번, 수없이 흔들어도 움직임이 없자 두려움을 느낀 시후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엄마 일어나요……! 엄마, 엄마!”

이내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하자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가정부 미숙이 그 소리를 듣고 방으로 달려왔다.


“큰 도련님, 아침부터 웬 소란…… 아이고, 이게 뭐야! 사모님!!!”

창백하게 질린 채 누워 있는 모습에 놀란 미숙이 자지러지더니 황급히 뛰어나가 구급차를 불렀다.

그녀는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나 약물을 과다하게 복용한 것이 사인이 되어 얼마 가지 않아 생을 달리했다.

겨우 여덟 살의 나이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후가 느꼈던 충격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어머니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라니, 어린아이가 감당하기는 너무도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장례식까지 모두 마친 뒤, 미숙은 시후를 몰래 불러 어머니가 생전에 남겼던 것이라며 슬며시 편지를 건넸다.


“도련님. 이건 사모님께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도련님께 꼭 전해달라고 했던 편지에요. 저도 내용은 몰라요. 사장님께는 들키지 마시고 혼자 간직하세요.”

미숙에게 편지를 전달받은 시후는 아주 늦은 밤 홀로 이불을 뒤집어서 쓴 채 숨죽여 봉투를 열었다.

하얀 편지지를 펼치자 또박또박 바른 글씨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후야. 사랑하는 우리 아들.>

그리움에 무작정 눈물부터 흘렀다.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엄마가 우리 시후 두고 먼 곳으로 떠나게 돼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시후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낸 거야. 그러니까 엄마 몫까지 건강하게 살아줘. 시후야.>


“……엄마…….”

울컥 흐르는 설움을 막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사람들을 대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이제 친엄마가 죽었으니 자신에게 엄마라고 부르라며 윽박지르던 아줌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이제 이 집에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시후가 사랑하는 사람도, 시후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 당장은 혼자가 된 기분이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 시후가 사랑하고, 또 시후를 사랑해줄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이 세상에서 혼자인 사람은 없어. 엄마도 우리 시후가 있었으니까.>

견딜 수 없이 외롭고 서러웠던 시후에게 어머니의 편지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탈출구였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마음을 아끼지 말고 있는 힘껏 사랑해줘.>


“엄마…….”

 
<사랑한다, 시후야.>

너무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알아버린 시후는 어머니의 편지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결국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슬픔과 함께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는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떠나보내지 않고, 웃음 짓게 해줄 수 있는 그런 강한 어른으로.


 

***

이제는 흐릿해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시후가 손등으로 눈가를 짓누르며 낮게 숨을 뱉었다.

유일한 자신의 편이었던 어머니가 떠나고 오로지 어둠과 고독뿐이었던 시후의 생에서 겨울은 축복 그 자체였다.

다시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메마른 가슴에 물기를 채워주었고, 웃을 수 있게 해준…….

단 하나의 구원이었다.


“…….”

그렇기에 더더욱 바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망가져 가는 것을 두 번 다시 지켜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겨울도 어머니처럼 제 곁에서 하루하루 시들어가다가 결국 사라지게 된다면, 그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 구원이었던 너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지독한 운명의 고리가 족쇄처럼 따라다녔고, 넌 망가져 가는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만약 조금이라도 바라도 된다면,

아직 나에게 행복할 자격이 남아 있다면…….

나는…….

너와 살고 싶어.

함께 숨 쉬고 살아가고 싶어.

……아직 나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해가 뜨기 전 고요한 새벽녘, 시후의 짙은 숨소리가 어둑한 방 안에서 적막하게 번졌다.

***

월요일 저녁, 마지막 고객의 관리를 마친 뒤 퇴근하기 위해 클레르 밖으로 나선 겨울은 택시를 타기 위해 도로변으로 나섰다.

어젯밤에 이어 오늘도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산을 써도 침입하는 빗줄기가 어깨 끝을 적셨다.

어서 택시를 잡기 위해 고개를 내민 순간, 빠른 속도로 달려와 제 앞에 정차하는 낯익은 차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겨울아.”

소리 없이 내려간 창문 안으로 익숙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놀란 겨울의 동공이 흔들렸다.


“데리러 왔어.”

화살이 날아와 박힌 것처럼 가슴이 욱신거렸다.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후의 눈빛에 겨울의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그를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고, 다시는 그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던 하루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다.

입술을 다문 겨울이 가만히 서서 시후를 쳐다보고 있자 우산도 없이 차에서 내린 시후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어서 타.”

그렇게 말하는 시후는 내리는 장대비에 흠뻑 젖고 있었다. 그가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겨울이 작게 한숨 쉬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빗물을 가르며 차가 부드럽게 출발하고 적막한 차 안에는 와이퍼가 물기를 거둬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겨울은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참고 또 참다가 결국 폭발하여 무작정 입술을 벌렸다.


“왜 왔어?”

퉁명스럽게 쏟아지는 말투를 막을 수 없었다.


“다 잊고 살라며. 그래서 전부 잊어주려고 하는데, 왜?”

“……보고 싶어서 왔어.”

표독스럽게 쏘아붙인 것이 무색하게도, 나지막한 목소리에 겨울의 가슴이 일렁였다. 커다란 동공이 풍랑을 맞은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나한테 돌아와 줘, 겨울아.”

어두운 도로를 따라 주행하던 시후는 핸들을 틀어 차를 한쪽에 정차한 뒤 브레이크를 잠갔다.

비상등을 켠 시후는 고개 돌려 겨울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줘. 평생 너에게 진 빚 갚으면서 살게. 책임지고 웃음 짓게 해줄게.”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데? 먼저 다 잊고 살라고 한 건 오빠잖아. 먼저 손 놓은 사람 나 아니고 오빠야.”

모든 진실을 알아버리고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워지지 않아 눈물 흘렸던 겨울에게 시후는 전부 잊으라고 말했다.

다 잊어버리고 새 출발 하라고.


“이미 끝났어. 난 오빠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어.”

이제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차가워진 감정만이 표류할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낮은 음성이 고막을 적셨다. 겨울의 눈꺼풀이 연약하게 나부꼈다.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뭐든…….”

“우리 나흘 후면, 이혼 확인 기일이야.”

“…….”

“그날 마지막으로 법원에서 얼굴 보고 다시는 만날 일 없었으면 좋겠어. 내가 오빠한테 바라는 건 그거 하나뿐이야.”

싸늘한 말들이 그의 가슴에 날아가 생채기를 남길지라도, 확실히 끝을 내어야만 했다.


“어쨌든 내가 찬 걸로 끝내게 해줘서 고맙네……. 버려진 기분 안 들게 해줘서.”

소리 없이 실소한 겨울이 조수석의 문고리를 붙잡았다.


“갈게. 금요일에 법원에서 봐.”

담담하게 말한 겨울이 우산을 펼치고 차에서 내렸다. 그런 겨울을 막지 못한 시후는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빗속을 뚫고 점점 더 멀리 사라져가는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매여 있는 사람처럼 그녀가 사라진 거리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

나흘이 흐르고 1차 이혼 확인 기일이 찾아왔다.

법적으로 완전히 이혼하려면 부부 모두가 가정법원에 참석하여 판사에게 이혼 확정을 받아야 했기에, 겨울은 미리 실장에게 말해 휴가를 받아놓았다.

전날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갈 준비를 하려는데, 시후로부터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사정이 생겨서 오늘 법원에 출석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일주일 뒤인 2차 이혼 확인 기일에는 반드시 나갈 테니 다음 주에 보자고 그는 덧붙였다.


“……사정이란 게 뭐지?”

왠지 찝찝한 마음을 떨치지 못해 손에 쥔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한숨만 내리 쉬었다.

문자에 답장할지, 그냥 무작정 전화해볼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데, 돌연 휴대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여보세요?”

-어, 겨울아. 나 방금 유니폼에 주스를 흘렸는데 오늘만 네 거 좀 빌려도 돼? 너 오늘 오프라며.

“응, 입어. 캐비닛 안에 있어.”

-오케이, 땡큐!

희수의 대답이 들려오고 겨울이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였다.


-참, 네 남편 아픈 것 같더라?

“……뭐?”

-이틀째 회사 못 나오고 있다고 하던데.

“그걸 희수 네가 어떻게…….”

-어? 아…… 그, 뭐냐. 너랑 시후 씨가 전에 소개해준 사람 있잖아. 시, 신재환인가 뭔가. 그 사람한테 들었는데…… 하하. 음…….

“……많이 아프대? 어디가?”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하지만 예전에 교통사고 당한 직후에도 온몸에 깁스한 채로 회사 출근했었대. 이틀이나 회사를 안 나온 거 보면, 어디가 많이 안 좋은 거 같긴 한데…….

“…….”

-뭐, 그냥 그렇다고.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나 이제 관리 들어가야 해서 끊을게!

전화가 끊어진 후로도 겨울은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병원은 다녀온 건지,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앓고 있는 건 아닌지…….

가슴에 커다란 돌 하나가 얹힌 듯 싱숭생숭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물 한 모금 넘기지 않고 가만히 앉아 고민하기를 몇 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겨울은 곧바로 택시를 타고 시후의 집으로 향했다.


“짐 가지러 가는 거야. 빼놓은 물건만 마저 가지러…….”

절대 강시후가 신경 쓰여서 가는 게 아니라고, 필요한 물건을 챙겨오기 위함이라고 스스로 되뇌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은근하게 몰려오는 긴장을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경직된 손가락으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섰으나 겨울을 반기는 것은 적막뿐이었다.

겨울이 집을 나간 이후 가사도우미도 오지 못하게 했는지 집안에는 각종 술병과 서류들이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복도를 지나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누워 있는 커다란 인영이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머뭇거리던 겨울이 천천히 시후에게 다가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는 지독한 몸살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침대 시트는 땀으로 축축했다.

미간을 좁힌 겨울이 시후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보았다가 흠칫했다. 도저히 정상범주라고 보기 힘든 체온에 손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서둘러 체온계를 가져와 온도를 재자 충격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40도가 넘잖아……?”

예상보다 심각한 그의 몸 상태에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던 겨울은 서둘러 얼음팩에 타월을 감아 시후의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좀처럼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거친 호흡도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는데…….”

입술을 잘근 깨문 겨울은 본격적으로 외투를 벗고 그의 간호를 시작했다.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온 겨울이 조심스럽게 시후의 가운을 벌려 땀에 젖은 상체를 닦아주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건지, 아니면 몸살이 심한 탓인지 평소보다 여윈 모습에 가슴이 깨질 것처럼 욱신거렸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쓰다듬던 겨울이 작게 한숨 지었다.

뭐라도 더 처치해야 할 것만 같아 구급상자를 뒤져 액상형 종합감기약을 꺼냈다.

스스로 먹을 힘도 없어 보였기에 엄지로 살며시 시후의 턱을 눌러 그의 입술을 벌렸다.

스푼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벌어진 입술 틈으로 약을 흘려보내려 했으나, 긴장으로 떨리는 손끝 때문에 그의 아랫입술을 타고 턱으로 약이 흐르고 말았다.


“아…….”

당황한 겨울이 엄지로 그의 턱을 문질러 닦았다. 이상하게 목이 타고 갈증이 일었다. 그 위 촉촉하게 젖은 시후의 아랫입술을 말없이 응시했다.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끝으로 그의 입술을 어루만지는데,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슬며시 열렸다.

놀란 겨울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그의 입술에서 손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확 끌어당기는 손길에 여린 몸이 그대로 시후의 가슴 위로 엎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