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형(無形)의 아틀리에
두 사람은 붉은 카펫이 깔린 긴 복도를 걸었다.
레인디아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에이든은 다섯 걸음 앞에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었다. 훤칠한 두 다리가 시원하게 벌어졌다. 걸음걸이 또한 당당했다.
저렇게 걸으면 여자란 사실을 의심받지 않을까?
레인디아는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서 다리를 크게 벌렸다. 그러다 그만 발을 삐끗해 몸이 기울었다.
“아……!”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으나 저도 모르게 새된 소리가 나와 흡 입을 닫았다. 고개를 드니 에이든이 말없이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계속했다. 레인디아도 황급히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색한 침묵이 길어질수록 에이든을 따라온 일이 후회됐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레인디아는 꼭 두 손을 맞잡았다.
계단을 올라가자 복도의 폭이 좁아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좁은 통로의 벽면에는 유화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전부 풍경화나 정물화였다. 색감이 따뜻해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어째서인지 인물화는 하나도 없었다. 캔버스 가장자리에 적힌 사인이 똑같은 것으로 보아선 전부 한 사람의 작품 같았다.
“다 왔어.”
홀린 듯이 그림을 보며 걷던 레인디아는 우뚝 멈춰 섰다.
조금만 늦었다면 에이든의 등에 얼굴을 부딪쳤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아찔했다. 슬쩍 에이든의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문이 보였다. 에이든은 겨우 한쪽 팔로 문을 밀었다.
끼이익.
문이 벌어질 때마다 노쇠한 경첩이 살려달라 비명을 질렀다. 이윽고 문이 완전히 젖혀졌을 때, 공기를 부유하는 기름 찌든 내와 화학약품 냄새가 레인디아를 훅 덮쳤다. 그녀는 지독한 현기증을 느끼며 벽 쪽에 몸을 기댔다.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천천히 숨을 고르는데,
“……아, 아!”
카펫에 붉은 핏자국이 덕지덕지 번져 있었다.
레인디아는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에이든은 숨을 꿀꺽 삼키는 레인디아의 목을 빤히 보다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자세히 봐.”
“……네?”
“피는 시간이 지나면 검게 변하지. 이건 물감이야.”
에이든은 발끝으로 카펫에 묻은 물감을 꾹꾹 짓눌렀다. 이미 굳은 상태라 번지지 않았다.
“붉은색은 잘 쓰지 않아서 치우려다 실수로 밟아버렸거든.”
중얼거리던 에이든이 슥 고개를 들었다.
“아니면, 신선한 사체라도 이 안에 있는 줄 알고?”
에이든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레인디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사체가 짐승이 아닌 사람 시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이런 중의적인 표현이 에이든의 말을 섬뜩하게 만드는 건지도 몰랐다.
‘물감 냄새였어…….’
레인디아는 조금이나마 안심했다.
그녀는 주변을 살피는 사슴처럼 조심스럽게 안을 둘러봤다. 먼지가 소복이 쌓인 대리석 바닥. 그리고 넓은 방은 기묘하게도 침대나 소파 같은 가구는 하나도 없었다. 대신 커다란 캔버스와 빈 액자, 석고상, 이젤, 유화 도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아틀리에였구나.’
그리고 한쪽 벽면에 자리 잡은 먼지가 가득 낀 난로 하나.
이번에도 에이든은 난로 앞에서 성냥에 불을 붙였다.
“저, 복도에 그림은 직접 그리신 건가요?”
“아니.”
에이든은 성냥을 던져 넣으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난로 안에서 불이 훅 올라왔다.
‘이건, 왜 천을 덮어둔 거지?’
캔버스가 올려진 이젤 위에 새하얀 천이 덮여 있었다. 먼지가 없는 걸로 보아 최근에 덮은 듯했다. 레인디아는 이젤 근처로 다가갔다. 주변에 완성된, 아니, 자세히 보니 완성되지 않은 그림 몇 점이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의 작품 같아.’
아틀리에 안에 있는 건 복도에 걸린 그림과 달리 모두 인물화였다.
그런데 그림 속 여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텅 비어 있었다.
단색으로 밀려 있는 평면적인 얼굴이 기이했다. 반대로 몸과 배경은 사진이라 해도 믿을 만큼 섬세하게 또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특히나 사슴처럼 길고 새하얀 목덜미와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이 무척 세밀했다. 얼굴에 표현하지 못한 모든 걸 주변에 쏟아부은 느낌이었다.
복도의 그림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면, 아틀리에의 초상들은 광적인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그림이 뿜어내는 기묘한 분위기에 절로 몸이 위축되었다. 문외한인 레인디아의 눈에도 화가의 강렬한 집착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안의 초상화는 직접 그렸어.”
“그런가요? 솜씨가 정말 훌륭하…….”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에이든이 이젤을 감싼 천을 휙 거둬냈다. 커다란 캔버스엔 역시나 얼굴 없는 여자가 정면을 응시한 채 서 있었다.
레인디아는 헉 숨을 들이켰다.
‘사람인 줄, 알았어.’
그림 속 여인에게 얼굴이 있었다면 진짜 사람이라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상반신까지 그려진 그림은 실제 사람과 크기가 똑같았으니까. 또 이젤 높이도 일부러 그렇게 조절한 건지, 그림 속 여인과 레인디아는 마주 보는 키가 얼추 비슷했다.
레인디아는 거울 앞에 선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키와 체구, 새하얀 목덜미가 자신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깨 아래로 늘어뜨린 금발은 레인디아의 잘린 머리카락과 소름이 끼칠 만큼 닮아 있었다. 레인디아는 짧아진 머리끝을 매만지다 황급히 손을 내렸다.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림 속 여자가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걸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닮은 게 아니라, 부러운 것이겠지.’
레인디아는 빠르게 현실을 직시했다.
초상화 속 여인은 정숙한 차림과 가지런한 자세를 보아 신분이 높은 귀족 영애 같았다. 어째서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여인을 반복해서 그려온 것일까? 하필이면 얼굴만 제외한 채로.
“여자를 찾고 있어.”
레인디아의 고개가 목소리에 이끌려 돌아갔다.
에이든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듯이 초상화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척 간절한 눈빛이었다. 이 남자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단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처음으로, 그에게서 인간미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떤 분이신가요?”
“어릴 적 만난 여자야.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흐릿해져서 잊지 않기 위해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지.”
잔잔한 목소리로 말하던 에이든이 살며시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잘생긴 미간에 골이 깊어졌다.
“문제는 그 여자도 나이를 먹어서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닐 거란 점이야. 그래서 얼굴만큼은 그릴 수 없었어. 또 어쩌면.”
에이든은 한 박자 쉰 뒤 말을 이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일지도 모르고.”
“그게 무슨 뜻이죠?”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
아. 그제야 레인디아는 그림 속 여인의 얼굴이 텅 비어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또, 지금 에이든이 느끼는 심정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았다.
“……저도.”
레인디아가 빠끔 입을 열었다.
붉은 눈동자가 그녀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이따금 꿈속에서 만나는 여자가 있어요.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굽이치는 금발에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 다정한 사람이었어요. 그 여자를 볼 때면……, 마치 어머니를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해요. 물론 제 친어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요.”
레인디아는 고개를 떨궜다.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기분, 어쩐지 알 것 같아요.”
얼굴도 모르는 레인디아의 친모는 죄인이었다. 가정이 있는 남자를 유혹하고 그의 가정을 파괴하려 한 사악한 여인이었다. 사무치게 알고 있지만 레인디아는 종종 환영 속의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꿈에서 만난 어머니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죠. 아마 제 무의식이 만들어 낸 도피처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다정한 여자가…… 제 친어머니였으면 좋겠다고.”
레인디아의 검은 눈동자는 꿈을 꾸는 것처럼 반짝이다가도 서글픈 기색을 띠었다. 이윽고 씁쓸히 번지는 미소를 마주한 에이든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은 그 여자와 닮았다. 착각이 아니었다. 이렇게 그림 앞에 세워놓으니 더욱 미치도록 닮아 있었다.
그런데 왜. 대체 왜. 그 여자를 닮은 얼굴로 이런 미소를 짓는 게 사내놈이라니!
‘신이 나를 조롱하기 위해 보낸 소악마 같구나.’
에이든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손등의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아. 하지만 이분은 다를 거예요. 어릴 적에 만난 분이라고 하셨잖아요?”
레인디아가 휙 고개를 들자 에이든은 구겨져 있던 표정을 자연스레 바로 했다.
“꼭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덧붙이는 그녀의 말이 기어코 에이든의 신경을 긁어내렸다. 에이든은 슥 몸을 굽히며 속삭였다.
“너.”
“……네?”
“이제 내가 무섭지 않나 봐? 신나서 떠드는 걸 보면.”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레인디아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에이든은 전장에서 수많은 인질을 붙잡아 고문해 왔다. 그중엔 자신과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인질도 있었다. 비슷한 경험, 감정을 공유해 친밀감을 쌓아 도망치려는 속셈. 너무나 뻔했다.
이 녀석도 결국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를 거듭할수록 진심으로 믿게 된다. 저토록 순진하게 떠드는 낯짝은 결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지금만 해도 그랬다. 오히려 적에게 먼저 친밀감을 느끼고 긴장을 푸는 모습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신선해 봤자 남자인 이상 썩은 고깃덩어리만 못 했으나.
에이든은 살며시 숨을 들이켰다. 우유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이런 향을 풍기는데 수컷이라니. 이러니 속이 뒤집히지. 모델로도 세워두고 싶지 않았다. 죽이게 된다면 흔적도 남지 않게 불태워버려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우리 아직 만난 지 하루도 안 됐거든.”
에이든은 살며시 레인디아의 턱을 잡아 올렸다.
“그런데, 볼 때마다 문득문득 죽이고 싶어진단 말이지.”
“……?”
남자가 뿜어내는 광기는 그녀의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붉은 광기로 얼룩진 사내였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죽이고 싶어진다니…….
하지만 레인디아는 이런 존재가 놀랍지만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으론 익숙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가만히 있어도 불행은 늘 코앞까지 친절히 찾아왔다.
나는 죄의 아이니까.
이 남자도 그런 불행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 도적들, 처럼요?”
레인디아는 텅 빈 시선으로 에이든을 응시하고 물었다.
그 도적들, 이 남자도, 다를 바 없어. 나를 벌 주기 위해 신이 보낸 존재인 거야.
“그놈들과 날 비교 선상에 두면 곤란하지. 난,”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어요.”
적어도 수컷의 뒤를 뚫는 짓엔 관심이 없다 덧붙이려는데 레인디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에이든은 불쾌감을 삼키며 되물었다.
“일어날 일?”
“……말씀드려도 이해 못 하실 거예요.”
말을 마친 레인디아는 눈을 감았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겠단 태도였다. 평범한 사람의 반응은 아니었다. 차라리 살려달라 빌기라도 하든가. 죽고 싶어 하는 놈은 또 내 손으로 죽이기가 싫어지지. 에이든은 털어내듯 레인디아의 목을 놓아줬다.
아니, 죽고 싶어 하는 모습이 아니다. 이 모습은 마치 제 몸에 채찍질하는 고행자와 비슷했다.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을 징벌하려 하다니. 이유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순종적으로 길든 몸이었다.
“너처럼 말했던 여자를 알고 있지.”
“……네?”
“네가 어떤 종인지 알 것 같아.”
레인디아가 슬며시 고개를 들자 에이든이 씩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만 돌아가서 자. 나는 그림을 완성해야 하거든. 아직 보내줄 생각은 없으니 도망칠 생각은 말고. 응?”
“윽!”
에이든이 레인디아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레인디아는 고분고분 그를 따라 걸었다. 좁은 복도와 계단을 내려간 끝에 도착한 곳은 고장 난 괘종시계가 있는 침실이었다.
철커덕.
방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이번엔 확실히 문이 잠겼단 사실을 인지해서, 레인디아는 문 쪽으로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 * *
늦은 밤.
에이든은 어둠 속에 완전히 녹아든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틀리에 안으로 들어온 달빛이 그의 손에 들린 와인 잔을 비추었다. 적포도주가 담긴 와인 잔이었다. 에이든은 잔을 빙글빙글 돌리다 향이 은은히 퍼질 즈음 포도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이제는 그의 입 안에서 포도주의 향이 되살아났다.
초상화가 완성됐다. 잡아 온 사냥감의 얼굴을 그대로 덧씌운 여자의 초상. 에이든은 초상화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었다. 마치 기도하는 신자처럼.
‘저는 그레제 백작가의 영애예요. 그러니 틀림없이 저를 찾으러 온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에이든은 여자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네 말대로 사람들은 오지 않았어.
에이든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토록 가냘픈 몸으로 아무 연고 없는 아이를 안은 채 눈보라를 뚫고 걷던 너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누군가 구하러 올 거라고? 아니. 그 여자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거짓투성이였다.
그 여자.
그 여자는 에이든이 만나온 어떤 인간과도 닮지 않았다. 포화 상태에 이른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하이락의 광장 거리를 밤낮으로 뒤져 보아도 그녀의 얼굴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녀의 분위기, 목소리, 저를 안아주던 부드러운 손길. 무엇 하나.
닮은 꼴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안에서 견고해진 여자의 환상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을 만들어 낸 건지도 몰랐다.
‘꼭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던 중 나타났다. 그 성역을 침범한 존재가. 선을 넘고 들어온 발칙한 사슴 한 마리는 총을 든 사냥꾼을 마구잡이로 교란했다.
“너를, 어쩌면 좋을까.”
에이든은 꾹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그림은 완성됐다.
이 초상화의 앞에서라면 그토록 염원하던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스스로 삶을 끝내는 일. 여자의 초상은 에이든이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 여자는 그레제 백작가의 종자를 빼닮았고, 종자 역시 그 여자를 빼닮았다. 반쪽으로 접은 다음 펼쳐낸 기분 나쁜 데칼코마니처럼.
이제 쓸모가 없어졌으니 도축할 일만 남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죽이는 것이 조금 주저되었다. 길들인 짐승의 앞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백작님의 딸은 벨리타 아가씨 한 분뿐이십니다.’
“혹시 모르지. 네가 말하지 않은, 아니면 너조차 모르는 누이가 있다든가.”
에이든은 남은 포도주를 한입에 털어 넣고 잔을 집어던졌다.
쨍그랑!
벽에 부딪힌 와인 잔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산산조각이 났다. 에이든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가스등을 주워 아틀리에를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 들린 등불이 복도의 그림을 훑으며 멀어졌다.
* * *
가스등의 흐릿한 빛이 캄캄한 침실 안을 비췄다.
“으음…….”
아래쪽에서 뒤척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팔을 밑으로 내리니 레인디아가 침대를 두고 바닥에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바로 몸을 일으켜 도망치기 위해서겠지. 그래 봤자 자신이 손 뻗으면 닿을 거리였음에도.
그래, 어디를 가든 손바닥 안이었다. 에이든은 그 사실에 오묘한 만족감을 느끼며 레인디아를 지나쳤다. 그녀의 몸이 찬 바닥에 뭉그러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
등 뒤에서 레인디아가 잠꼬대를 하며 몸을 뒤척였다.
‘또 그 소리인가. 어지간히 상상 속 어머니가 그리웠나 보군.’
그때, 레인디아의 몸이 옆으로 살짝 돌아가며 침대 밑에 숨겨둔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기운 천 가방이었다. 에이든은 가스등을 조용히 내려두고 가방을 잡아 벌렸다.
제일 먼저 튀어나온 것은 책이었다.
<죄의 아이.>
에이든은 무신경하게 낡은 책을 휘리릭 넘겼다.
몇 번을 읽었는지 끝이 다 헤져 있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에이든 역시 내용은 대략 알고 있었다. 수백 년 전에 쓰인 책이었다. 저자는 금욕적인 수도승으로 회개하는 삶의 중요성을 당대에 설파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사상은 오늘날 구시대의 잔재라 여겨져 더는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이런 걸 어디서 잘도 구했군.’
다시 가방을 뒤지던 에이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어딜 보나 여자 옷이었다. 검은 메이드 원피스와 새하얀 앞치마, 거기에 낡은 코르셋이 줄줄이 딸려 나왔다. 에이든은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 으드득 이를 갈았다.
‘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에이든은 불과 몇 분 전까지 추측하던 자신을 비웃었다.
“……순진하구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바로 옆에 잠들어 있는 ‘종자’에게 하는 말인지는 에이든도 알지 못했다. 그는 손끝으로 검은 하녀복을 오랫동안 문지르다 코를 파묻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후우.”
폐부 가득 부드러운 향기가 차올랐다. 마치 그 여자의 품에 안겨 있던 시절과도 같은 충만감이 그를 감싸 안았다. 어린 시절과 다른 점 있다면 이 순간 성욕을 느끼는 자신일 테다. 아랫배가 기분 좋게 싸해졌다. 에이든은 옷가지를 가방에 넣어둔 채 다시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레인디아를 품에 안았다.
“내가 수컷한테 발정할 리가 없지. 안 그래?”
에이든은 레인디아를 살며시 침대에 눕히고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줬다. 어스름한 가스등의 불빛에 의지해 레인디아를 한참 두 눈에 담았다. 그러다 목덜미만 드러나게끔 손가락 끝으로 이불을 살그머니 거둬냈다.
“역시, 너였어.”
이제는 마음껏 예뻐할 수 있는 새하얀 목덜미였다. 입으로 물고 씹어도 모자랄 이 어여쁜 목에 칼을 박으려 했다니. 에이든은 이제야 자신이 레인디아를 죽이기까지 머뭇거리던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무의식적으로 레인디아가 암컷임을 알아챈 것이다.
“날 속인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이마 위로 에이든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에이든은 인두를 지지듯이 입술을 비빈 뒤 혀끝으로 살짝 맛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보이지 않는 온기가 낙인이 되어 그녀의 이마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살아선 여길 못 나갈 줄 알아.”
감히 날 속였으니.
“절대로.”
* * *
“……으음?”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문대던 레인디아는 의아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니 어째서인지 침대 위였다. 분명 바닥에서 잠들었을 텐데? 레인디아는 본능적으로 상체를 더듬었다. 다행히 가슴은 여전히 판판했다.
“일어났어?”
다정하게 묻는 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 남자다. 에이든 헬렌베르크.
‘언제부터 있던 거지.’
자신을 침대에 옮겨놓은 것도 에이든의 짓일까?
“네가 자는 동안 그림을 완성했어.”
그런데 눈앞의 에이든은 어딘가 이상했다.
“와서 볼래? 네가 봐주면 기쁠 것 같은데.”
저를 대하는 시선이며 말투가 퍽 살갑게 변했다. 아니, 살가움을 넘어서 소름이 끼칠 만큼 다정했다. 겉모습은 틀림없이 어제와 같은 사람인데, 마치 다른 누군가 그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림을 완성한 기쁨에?
‘볼 때마다 문득문득 죽이고 싶어진단 말이지.’
레인디아는 꿀꺽 침을 삼켰다.
제 목덜미를 붙잡고 뜬금없이 죽여버리고 싶단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던 남자였다. 높으신 분들의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오락가락한단 사실은 하녀 생활을 하며 익숙해졌다.
그러나 에이든의 변화는 그러한 변덕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이든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부류의 인간이었다. 아니, ‘종(種)’이었다.
“……네.”
레인디아는 최대한 에이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공포 앞에서 언제나 그랬듯 납작 엎드렸다.
저벅저벅.
레인디아는 다시 미로처럼 얽힌 복도를 걸었다.
어제와 똑같은 배경, 똑같은 인물. 그러나 달라진 상대방의 태도에 안심하기보다 두려움만 켜졌다. 그녀는 더 이상 에이든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
에이든은 문을 열더니 레인디아가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줬다. 레인디아가 한참을 서 있자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마치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듯한 말투였다.
“어서 들어가야지?”
“……감사합니다.”
신사가 숙녀를 에스코트해 주는 모양새에 레인디아는 그럴 리 없다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완성된 그림 앞에 섰을 땐, 어쩌면, 불길한 직감이 맞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어때?”
레인디아가 뻣뻣하게 굳은 채 그림을 응시하자, 에이든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레인디아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옷이 바뀌었지? 갑자기 하녀복이 입히고 싶어졌어.”
에이든은 레인디아를 대신해 묻고 답했다.
초상화 속 여자는 정숙한 드레스를 벗어 던진 채 검은 하녀복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앞 단추가 전부 풀어져 가슴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레인디아는 근무 중엔 반드시 목 끝까지 단추를 채웠다. 방에 들어오고 나서도 옷을 갈아입을 때가 아니면 저런 식으로 풀어헤친 적은 없었다. 그건 다른 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풀어헤친 하녀복은 사내의 욕망을 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이번엔 진짜였다.
앞에서 누군가 거울을 가져와 들고 있는 것처럼, 그림 속 여자의 얼굴은 레인디아와 똑같았다. 머리카락을 자르지만 않았다면, 정말로 거울이라 생각해 소리를 질렀을지도 몰랐다.
‘어째서 이런 식으로 그림을 망친 걸까?’
천박하게 벗어젖힌 옷차림과 달리 초상 속 여인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니,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순진한 눈으로 레인디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내 얼굴을 그려놓고 이런 옷을 입혀서…….’
레인디아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뒷걸음질 쳤다. 에이든은 가만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는 멀어지는 레인디아를 붙잡지 않았다.
“처음으로 몽정을 하던 날.”
이어지는 목소리에 레인디아의 두 다리가 우뚝 멈췄다. 보이지 않는 덫에 걸린 것처럼 발목이 욱신거렸다. 레인디아는 살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에이든의 너른 등이 보였다. 순록 한 마리쯤은 거뜬히 어깨에 지고 갈 법한 강인한 체구. 동시에 위압적인 뒤태였다.
“꿈에 그 여자가 나왔어.”
뒷짐을 지고 있던 남자의 손이 앞으로 향했다.
“우린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어. 여자는 그저 내 앞에 서 있기만 했지. 그런데도 다음 날 눈을 뜨니 정액을 한 움큼 쏟아냈더라고. 설자란 음모에 덕지덕지 달라붙을 정도로.”
에이든의 앞쪽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정확히는 그의 하반신 쪽에서.
벨트를 푸는 소리였다.
“그 후론 늘 그 여자를 떠올리며 자위했어. 상상 속에서도 난 그 여자를 건들지 않아. 그런데도 꼴리더라고. 미치게.”
에이든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뒷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벨트를 풀고 바지 안에서 불그죽죽한 살덩이를 꺼내 쥐었다. 사내의 좆은 거대한 소시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상상이 아니라 직접 만지고 싶었어. 그렇잖아? 배고프면 음식을 목구멍에 밀어 넣고, 졸리면 이불에 몸을 파묻는 것처럼…….”
에이든이 손바닥으로 좆기둥을 잡고 슥슥 문지르기 시작하자 뿌리부터 단단하게 굳었다. 그의 페니스는 무척 길었다. 바지 안에 저런 것을 넣고 다닌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그런 것이 살가죽을 기분 좋게 문질러주니 더욱 무럭무럭 자라났다. 길이뿐 아니라 둥글게 모아쥔 손바닥도 점점 벌어졌다. 늘어진 소시지 덩어리는 발정기의 말 좆처럼 거대해졌다.
“상상만으론, 만족이 안 된다고. 후우…….”
에이든은 느른한 숨을 토하며 그림을 노려봤다. 좆을 흔들 때마다 아랫배를 벅벅 긁는 것처럼 강렬한 자극이 올라왔다. 구불구불한 음모가 쭈뼛 서는 듯했다.
“너도 사내니까 알 것 아니야? 좆은 자궁에 밀어 넣으라고 존재하는 것이고, 자궁은, 읏, 좆이 부드럽게 파묻힐 공간이란 걸. 응? 너도 알겠지? 내 말 이해해?”
에이든의 미간에 깊은 세로 주름이 생겼다. 그의 눈썹이 관능적으로 휘었다.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함께 오른팔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츠즙, 츠즈즙, 츱!
어찌나 팍팍 흔들어대는지 손바닥이 고간 뼈에 부딪혀 음모 자국이 붉게 올라올 정도였다. 레인디아의 시야에선 에이든의 널찍한 어깨와 난잡하게 흔들리는 오른팔만 보였다. 그러나 탁, 탁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좆을 쓸고 내려온 손이 사타구니에 닿는 모습이 연상됐다.
“그래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거야. 차라리 여기에라도 뿌리면, 그, 하아……, 허망함이 덜할 것 같아서.”
레인디아는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음란한 상상을 떨쳐내려 질끈 눈을 감았다.
“읏, 하……. 윽…….”
그러나 시야가 차단됨과 동시에 청각이 예민해져 에이든의 달뜬 소리가 귓구멍 안쪽을 갉작였다. 레인디아는 몸서리치며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막히자 두 팔로 귀를 막아버렸다.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캄캄한 어둠과 적막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레인디아는 슬쩍 한쪽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헉……!”
귀를 막고 있던 두 손이 이제는 벌어지는 입 구멍을 틀어막았다.
초상화 속 여인의 얼굴에 탁한 빛깔의 액체가 흩뿌려져 있었다. 에이든이 요도로 뿜어낸 정액이었다. 희끄무레한 정액 밑으로 여인의 보드라운 살결이 보였다. 물감이 정액을 흡수하지 못해 표면이 두드러지게 번들거렸다.
얼굴 가득 튄 정액 덩어리가 가슴골을 훑으며 주르륵 흘러 이젤 틈에 고였다. 그림의 높이는 레인디아의 키와 똑같았다. 즉, 위에서 뿌린 게 아닌 밑에서부터 쏘아 올린 정액이 얼굴까지 닿았단 뜻이었다. 그 모습이 상상돼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하아…….”
에이든이 페니스를 쓸어올리며 느른한 숨을 토해냈다.
아직 정액이 남았는지 허리가 잘게 흔들렸다. 핏기없던 에이든의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동자도 나른하게 풀려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두툼한 귀두를 감싸 빙글빙글 돌리며 사정의 여운을 즐겼다.
손을 떼어냈을 때 그의 손바닥은 갓 싸지른 정액으로 번들거렸다. 몇 번 쥐락펴락하자 손금 사이에 정액이 꼈다. 에이든이 초상화 속 여인의 목덜미에 손바닥을 슥 문질러 닦았다. 레인디아는 마치 제 목에 정액이 묻은 것처럼 몸서리쳤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자위였어.”
에이든은 레인디아가 서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사실 몽정에 관한 얘기는 전부 거짓말이었다. 자신을 속인 대가로 겁에 질린 표정 정도는 보아줘야 만족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전까지 에이든에게 있어 성욕이란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해소하는 배설욕에 가까웠다.
또한 ‘그 여자’에게 성욕을 품어본 적도 없었다. 에이든의 안에서 신앙처럼 견고해진 그 여자의 형상은 더없이 성스러운 존재로 격상되어 있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저 높은 곳에 자리하던 존재가 현실에 재림하니, 마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처럼 에이든의 성욕도 눈을 뜨고 말았다. 성역(聖域)은 성역(性域)이 되었다. 에이든은 더욱 탐욕스럽게 제 눈앞에 떨어진 먹잇감을 탐할 작정이었다.
“관객이 있어서 그런 걸까?”
사정 직후의 목소리는 섬뜩할 만큼 청아했다.
레인디아는 목구멍이 콱 막혔다. 붉은 시선과 마주친 순간 몸이 옴짝달싹을 안 했다. 겨우겨우 움직인 눈동자는 에이든의 몸을 훑고 내려가다 어느 한 지점에서 우뚝 멈추었다.
에이든의 탄탄한 허벅지 사이에 달린 그것.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의 성기였다.
에이든의 성기는 몸의 한 기관이라기보다 심연의 끝에서 건져 올린 육괴(肉塊) 같았다. 불그죽죽한 살덩이가 마치 악마의 이마 가죽을 뚫고 자란 뿔처럼 곧추서 있었다. 배꼽을 훌쩍 넘어선 길이였다.
두툼한 좆은 위로 향할수록 불룩해지다가 귀두에 닿을 즘엔 다시 오목해졌다. 가운데가 볼록한 항아리를 길게 늘여놓은 듯했다. 끄트머리에 두툼한 귀두가 달려 전체적으로 울룩불룩한 모양새였다.
완전히 발기해 포피가 깔끔하게 벗겨진 귀두는 조갯살 같은 여인의 속을 벌리기 적합하게끔 끝이 뾰족했다. 거기다 버섯갓처럼 넓게 튀어나온 테두리는 한 번 속에 박히면 질벽에 툭툭 걸려 쉽게 빠져나오지 않을 모양새였다.
푸르스름해야 할 핏줄들은 아직도 피가 도는지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닥가닥 좆대를 휘감고 있었다. 몸의 주인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냉혈한이었으나, 페니스에 붙어 있는 핏줄은 바늘로 찌르는 순간 진한 피와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정액을 폭포수처럼 뿜어낼 것 같았다.
에이든의 좆은 신이 심혈을 기울여 빚어낸 산물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면 마치 이런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암컷의 자궁에 깊숙이 들어가 씨물을 뿌리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야 하니라, 라고. 성숙한 여인이라면 눈앞의 훌륭한 대물을 보고 입맛을 다시겠지만, 처녀인 레인디아의 눈에 비친 에이든의 페니스는 그저 붉은 고깃덩어리였다.
벌름대는 요도 구멍으로 아직도 정액을 찍찍 토해내는 살덩어리.
레인디아가 그저 멍하니 붉은 기둥을 타고 흐르는 뿌옇고 탁한 액을 보는데,
“너.”
에이든이 그녀를 불렀다.
“읏, 네…….”
레인디아는 좁은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삼키며 겨우겨우 대답했다. 눈가에 고인 눈물 때문에 눈이 시려 눈꺼풀이 마구 경련했다.
“여자, 맞지?”
남자의 목소리가 예리한 팔레트 나이프처럼 내리꽂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틀리에를 장식한 석고상이 머리 위로 떨어진 것 같은 충격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렸다.
레인디아는 꾹 입을 닫고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에이든은 여전히 불그죽죽한 살덩이를 곧추세우고 있었다. 그 강렬한 색채와 육감적인 모양이 레인디아를 압도했다.
그녀는 시선을 내리깐 채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세요……?”
“그러는 너야말로 왜 암컷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되묻던 에이든이 아차 했다. 계집 같단 말을 경멸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던 레인디아의 말을 뒤늦게 떠올렸단 듯이.
“아. 실수.”
에이든은 발기가 풀리지 않은 성기를 꾸역꾸역 바지 안에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암사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말이야. 그런 표정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나라도 자지가 단단해지잖아.”
암컷을 암사슴으로 바꾼다고 의도한 바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는 명명백백하게 저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초상화로 만들어 그것을 보며 자위할 만큼.
“……그게, 대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레인디아는 믿기지가 않았다.
“응? 못 알아들었어? 피가 몰려서 좆이 단단해진다고. 의학 용어를 빌리자면 발기. 혈관이 팽창해서 페니스가 곧추선단 말이지.”
레인디아의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렸다.
불그죽죽한 에이든의 좆은 바지 안에 거의 억지로 욱여넣어지다시피 했다. 팽팽하게 솟은 하반신을 보던 에이든은 허리에 걸려 있던 벨트를 완전히 풀어 멀리 던져버렸다. 성기가 너무 단단히 발기해 도저히 벨트를 할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벨트를 채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복근에 달라붙어 덜렁대는 게 거슬려 잠시 바지 안에 넣은 것에 불과했다. 이토록 큰 살덩이를 가랑이 사이에 달고 다니다 보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바지에 제대로 수납하지 않으면 걸을 때마다 덜렁거렸다. 에이든은 그 느낌이 싫었다. 쑤셔 박을 구멍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여자나 잡아다 다리를 벌리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있다.
“겁먹었어?”
에이든은 즐거운 목소리로 물으며 레인디아의 앞으로 다가왔다.
발기한 좆을 수납한 속옷은 터질 것처럼 두둑이 부풀어 있었다. 묵직한 발바닥이 지면을 박찰 때마다 몸이 흔들리는 반동으로 남아 있던 정액이 찍찍 흘러나왔다. 알싸한 쾌감이 아랫배를 긁어댔다. 허리가 부릇부릇 떨렸다. 온몸이 오싹하게 전율했다.
너를 먹어 치울 생각에.
에이든이 레인디아의 앞에 멈춰 섰을 때, 그의 속옷은 정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꼭, 몽정이라도 한 것처럼…….
“고마워.”
에이든은 두 팔을 들어 벽을 짚었다.
레인디아는 꼼짝없이 그의 팔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녀는 벽에 최대한 등을 밀착한 채 고개를 돌렸다. 에이든은 제게 조금이라도 몸이 닿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자비롭게 눈감아줬다.
“모델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네 덕에 초상화를 완성한 거야.”
에이든은 싱긋 미소 지었다.
“어째서 제 얼굴을…….”
“음.”
레인디아가 실성한 사람처럼 덜덜 떨며 묻자 에이든은 허공을 보며 침음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너를 많이 닮은 것 같아서? 아니, 네가 그 여자를 닮은 걸까?”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동그란 정수리를 바라봤다. 그러다 살며시 몸을 낮춰 숨을 들이켰다. 이번에는 몰래 맡는 짓 따위 하지 않았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욕구에 따라 마음껏 그녀를 욕망했다.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든 날렵한 콧날이 두피를 긁자 레인디아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너. 좋은 냄새 난다.”
“흣……!”
레인디아의 귓바퀴에 에이든의 입술이 닿았다.
에이든은 그녀의 작은 귀를 하압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연한 연골을 질겅질겅 씹어대자 레인디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귓바퀴 안쪽까지 그의 침으로 흠뻑 젖었다. 마음껏 그녀의 귀를 맛본 에이든은 간질거리는 웃음을 남긴 채 입술을 떼어냈다.
“흐으으…….”
사정을 마친 좆이 빠져나간 것처럼, 숨결이 들어온 귓구멍 밖으로 정액이 주르륵 흐르는 듯했다. 에이든의 시선, 목소리, 숨결……, 그를 구성하는 모든 게 성기였다. 레인디아를 마구 찌르고 무자비하게 침범한다.
“이런. 튀어나왔네.”
그때 레인디아의 아랫배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미안. 내가 뺀 게 아니라 이게 멋대로 나온 거야. 봐. 내 손은 계속 벽을 집고 있었어. 너도 알지? 귀 빨다가 흥분해서 튀어나왔나 봐.”
바깥으로 튀어나온 에이든의 성기가 레인디아의 아랫배를 꾹꾹 찔러댔다. 레인디아는 갈비뼈 아래가 홀쭉해질 만큼 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에이든은 큭큭 웃으며 줄어든 배의 부피만큼 허리를 들이밀어 좆을 문질러댔다.
“이런 무의미한 저항이 귀엽단 말이지.”
“……그, 그만, 그만두세요. 저는…….”
“남자라고?”
레인디아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래, 그래. 알았어. 남자라고 치자. 응?”
에이든은 양손으로 레인디아의 머리를 잡더니 아이를 타이르듯 정수리에 쪽쪽 입을 맞췄다. 너무 다정해서 기절할 만큼 소름 끼치는 키스였다. 죽이고 싶다 겁주던 바로 어제의 모습이 그리울 정도였다. 이윽고 머리를 감싼 손이 뺨을 스치며 내려와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럼 난 남자를 상대로 발기한 거네? 널 강간하려고 한 놈들이랑 똑같이. 그렇지? 응? 네가 말한 것처럼 말이야.”
“아, 아니에요. 멈추시면 돼요. 지금이라도, 멈추시면…….”
레인디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 내가 악한 길에 빠져들지 않게 잡아주기까지. 정말 다정한데? 이러니까 자꾸 어리광부리고 싶어지잖아.”
에이든은 엄지로 레인디아의 목덜미를 살살 문질렀다. 이윽고 그가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손 모아.”
레인디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에이든이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말을 이었다.
“막대기를 잡듯이 손을 모아봐.”
머뭇거리던 레인디아는 어설프게 막대기를 잡은 듯이 손을 쥐었다. 에이든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아랫배에 고정했다.
“옳지. 위치는 이 정도쯤?”
“……무, 무슨 짓을 하시려는…….”
“응? 정말 몰라서 물어?”
에이든이 히죽 웃으며 되물었다.
“검지랑 엄지는 붙이지 마. 이런 작은 구멍에 내 좆이 들어갈 것 같아?”
“……아!”
드디어 에이든이 하려는 행위를 깨달은 레인디아는 손바닥을 꽉 움켜쥐었다. 잔뜩 긴장한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여 찝찝했다. 그럼에도 레인디아는 손을 펼칠 수 없었다. 에이든이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꽉 잡는 건 내가 좆을 넣을 때 해. 지금은 말고.”
“……저, 저는 남자예요.”
“그래. 뒷구멍에 박는 취미는 없어. 안심해.”
“저는, 남…….”
레인디아는 고장 난 기계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쉬.”
에이든은 아이를 어르듯 속삭이며 레인디아의 한쪽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굽어 있는 손가락을 하나씩 펼쳤다. 레인디아는 차마 펼쳐진 손가락을 다시 오므릴 수 없었다. 그랬다간, 단숨에 꺾어버릴 것 같아서…….
“남자나 여자나 손바닥은 똑같거든. 남자는 뭐, 손가락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치?”
“…….”
“질 대신 쑤실 구멍을 만들어달란 거야. 오목하게 모아서.”
에이든은 이윽고 완전히 펼쳐진 손 위로 제 손바닥을 겹쳤다. 하필이면 정액이 잔뜩 묻어 있는 손바닥이었다. 차게 식은 땀과 미적지근한 정액이 뒤섞이며 질척해졌다.
“시키는 대로 해. 안 그러면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그가 몸을 낮추며 다정히 속삭였다.
“응? 해 줄 거지? 나 말이야, 이렇게 흥분한 건 처음이거든.”
레인디아는 얇은 입술을 어물대다 질끈 눈을 감았다.
“하, 할게요……. 할 테니까…….”
벌벌 떨리는 손끝으로 겨우 에이든이 시키는 모양을 만들어 아랫배에 꼭 붙였다. 보이지 않는 굵은 막대기를 쥔 것처럼 레인디아의 손바닥이 둥글게 벌어져 있었다.
“빠, 빨리 끝내, 주세요…….”
레인디아가 더듬더듬 부탁했다.
에이든은 윗입술을 싸악 핥아 올렸다. 그대로 발기한 귀두를 레인디아의 손바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손바닥에 뜨듯한 살덩이가 닿자 레인디아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충분히 벌렸다고 생각한 손바닥은 귀두가 파고들수록 더욱 넓게 벌어졌다. 이게 질 안으로 들어왔다면 살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넘쳤겠지.
“엄지 조금 더 들어. 걸리잖아.”
“……네, 네…….”
“말을 잘 듣는구나. 착하기도 하지.”
“흐읏……!”
손바닥 안으로 좆이 들어오는 만큼 레인디아의 어깨는 안쪽으로 움츠러들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눈꼬리에 자그마한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기다란 속눈썹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레인디아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연신 눈을 깜박였다.
에이든은 그녀의 반응을 즐겁게 관찰하며 더욱 깊이 좆을 밀어 넣었다.
“아……!”
귀두 끄트머리가 레인디아의 배꼽을 꾸욱 짓눌렀다. 에이든은 마치 배꼽 안에 밀어 넣을 작정인 듯 멈추질 않았다. 그럴수록 손바닥이 벌어졌다. 레인디아의 작디작은 손바닥 두 개론 좆을 반도 감싸지 못했다. 레인디아의 두 손은 에이든의 손 하나만 했다.
“짧네.”
에이든은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는 제 페니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죄, 죄송해요…….”
“다 들어갈 거라곤 생각 안 했어. 손이 작잖아.”
레인디아가 버릇처럼 사과하자 에이든은 다정히 속삭였다. 그가 슬슬 허리를 뒤로 물렸다. 그러자 버섯처럼 넓게 펴진 귀두갓이 손금과 손가락 마디 주름을 벅벅 긁으며 빠져나갔다. 레인디아는 그때마다 질 속을 긁히는 것 같았다. 이런 흉측한 좆이 제 밑을 뚫었다면 지금쯤 정신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레인디아는 저도 모르게 허벅지를 꼬았다.
“하아…….”
머리 위에서 뜨거운 숨이 떨어졌다. 차마 고개를 들 용기가 없어 레인디아는 꾹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에이든은 조금씩 속도를 올려 그녀의 손 구멍을 쑤셔댔다.
“하아, 아, 후우…….”
중저음의 신음 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레인디아의 손 구멍은 길이가 짧지만 좁고 습해서 나름 쑤시는 즐거움이 있었다. 거기다 손금과 손가락 마디뼈가 의학서에 적힌 것처럼 질 주름의 오돌토돌한 돌기와 비슷한 역할을 해 줬다. 여인의 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에이든은 손바닥을 통한 자극에 더없이 흥분하고 있었다. 제 좆물을 품어줄 안락한 자궁이 없단 게 불만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아직은 ‘남자인 척’하는 그녀의 연기에 어울려줄 생각이었다. 발칙하게도 눈 하나 꿈쩍 않고 황족을 속인 벌도 줄 겸.
“후우, 하아, 하…….”
“읏, 흑, 흐윽.”
푹, 푹푹! 푸욱!
에이든의 허릿짓이 거세졌다. 뭉툭한 귀두가 쉴 새 없이 아랫배를 찔러대 레인디아는 죽을 맛이었다. 마치 주먹으로 맞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페니스가 제 뱃가죽을 뚫고 들어와 안을 헤집을 것만 같았다. 귀두가 배꼽을 쑤실 때면 장기가 뒤로 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허억, 헉, 후우, 헉……!”
“흐으, 흐으으…….”
쯔즙, 쯔즈즙, 쯥!
시간이 흐를수록 손에 고인 땀과 요도 밖으로 흘러나온 선액이 뒤섞여 질척대는 소리가 거세졌다. 에이든의 좆은 손바닥 안에서도 질을 깊이 파고들어 자궁 가득 좆물을 뿌려야 하는 본연의 목적을 망각하지 않았다. 미칠 듯한 허릿짓에도 귀두갓이 레인디아의 오므라든 손금에 턱턱 걸려 쉽게 빠져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레인디아의 손바닥이 워낙 작았던지라 페니스는 반 이상이 바깥에 노출된 채였다. 차가운 공기에 탱탱한 음낭은 바짝 오므라들어 거센 허릿짓에도 흔들리지 않고 기둥 아래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손바닥에 계속 마찰된 귀두와 좆대는 열이 올라 후끈후끈했다.
레인디아의 손안은 쇳덩이를 녹이는 용광로처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레인디아는 손을 뗄 수 없었다. 무자비하게 오가는 좆에 손바닥이 철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마치 뻘겋게 익은 쇳덩이에 살가죽이 녹아 그대로 달라붙은 것 같았다.
“고개, 들어.”
“……네?”
“네 얼굴 보면서 가고 싶어.”
얼른. 에이든이 헐떡이며 재촉했다. 그답지 않은 조급함이 신음을 통해 전해졌다. 당황한 레인디아가 반응이 없자 억지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읏……!”
“얼굴에 싸도 돼? 초상화에 싸지른 것처럼.”
“……아, 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알았어. 이번엔 참을게.”
에이든은 의외로 순순히 레인디아의 턱을 놓아줬다. 반면 다음이 있을지도 모른단 사실에 레인디아는 절망했다.
“얼굴, 후우, 보여달라니까. 진짜 말 안 듣지.”
다시 고개를 숙인 레인디아를 보며 에이든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격하게 밀려오는 사정감에 더 몰아세우지 않고 그저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푸욱!
손바닥을 파고든 귀두가 사정없이 아랫배를 찔러 박았다. 허억! 레인디아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이윽고 손바닥 가득 뜨끈한 물이 차올랐다. 용광로 안에서 쇳덩이가 녹아 쇳물로 변하듯이 하염없이 뿜어져 나온 정액이 그녀의 배꼽을 적시기 시작했다. 에이든은 그대로 멈춰 간헐적으로 허리를 떨었다. 허리가 흔들릴 때마다 정액이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하아. 하……!”
레인디아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 에이든이 두 눈을 감은 채 억눌린 신음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좁아진 미간 아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런데도 속눈썹이 땀에 젖어 반짝이는 게 선명했다. 사내치고 풍부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과 살짝 벌어진 채 헐떡이는 입술이 무척 관능적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힐 만큼.
‘아니야.’
그럴 리 없다고, 레인디아는 수십 번 자신을 채찍질했다. 레인디아는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끼며 황급히 시선을 떨궜다.
이번엔 에이든의 성기를 있는 힘껏 쥐고 있는 자신의 두 손이 보였다. 손바닥 밖으로 삐져나온 붉은 기둥은 가운데가 부풀었다 줄어들길 반복하며 정액을 뿜어댔다. 손바닥 가득 뜨끈한 물이 차올랐다. 레인디아의 옷은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기어코 옷 안에 고인 정액 덩어리가 배꼽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흣……!”
맨살을 타고 정액이 흐르는 감각이 소름 끼쳤다. 마치 달팽이가 몸 위를 빠르게 기어 다니는 장면이 연상됐다. 레인디아는 신음을 억눌렀다. 다행히 속옷이 정액을 막아주었다.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정액이 음모를 적셨을지도 몰랐단 생각이 들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 다 쌌다.”
에이든이 배시시 웃으며 속삭이는 소리에, 레인디아는 황급히 손을 떼어냈다. 밤꽃향이 훅 올라와 머리가 어지러웠다. 유화 냄새마저 덮는 짙은 수컷의 향이었다. 덩어리진 정액이 바닥으로 투두둑 떨어졌지만 여전히 손바닥이 씨물로 번들거렸다. 레인디아는 황급히 벽에 손을 문질러 닦았다.
“덕분에 기분 좋았어. 엄청.”
에이든이 한 손으로 레인디아의 귓불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가 맛있게 빨아 대던 귀였다. 이윽고 엄지를 귓구멍 안으로 짓궂게 밀어 넣기까지 했다.
“으, 읏……!”
“너도 해 볼래?”
레인디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얼떨떨한 얼굴로 에이든을 올려다봤다. 에이든이 손가락을 활짝 펼쳐 그녀의 앞에 가져다 댔다.
“난 손바닥이 넓어서 전부 잡아줄 수 있을걸?”
에이든의 입가에 간악한 미소가 번졌다. 레인디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거절할 거 없어. 황족의 손바닥에 쌀 기회는 흔치 않아.”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정말 괜찮습니다.”
“응? 거절할 거 없대도?”
“저, 안 해요, 그런, 이런 짓은, 하지 않아요……!”
“자위를 안 한다고?”
에이든이 피식 비웃었다.
“진짜 남자 맞아?”
에이든은 작은 귀를 조몰락대던 손으로 레인디아의 가랑이 사이를 콱 붙잡았다. 단단한 손바닥이 음부에 밀착하자 레인디아는 꼼짝하지 못했다.
“……!”
앞니로 깍 깨문 아랫입술 안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메아리쳤다. 눈꼬리에 가득 괸 눈물은 떨어질 일만 남았다.
“왜 이렇게 작지?”
에이든이 붙잡은 가랑이를 흔들며 물었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음모가 사각사각 비벼졌다.
“아. 알겠다. 네가 자위를 안 하는 이유. 잡고 흔들기엔 작아서 그런 거지?”
에이든이 레인디아의 가랑이 사이를 앞뒤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도톰한 조갯살이 그의 손바닥을 따라 뭉그러졌다. 한 번도 압박 자위를 해 본 적 없던 레인디아는 생소한 자극에 헉, 헉 짧게 숨을 들이켰다.
“학계에선 이런 걸 음경왜소증이라 하지. 너는, 많이 심각한 것 같아. 그래도 신경이 살아 있는 이상 문지르면 기분은 좋아질걸? 어때. 좋아지는 것 같아? 아랫배가 싸하고 등줄기가 오싹거려?”
“아, 읏, 그, 그만……, 제발…….”
에이든은 나머지 손으로 번들거리는 제 페니스를 슥 훔쳤다. 귀두를 쥐어짜자 남아 있던 정액이 주르륵 쏟아져 나와 손바닥을 적셨다. 에이든이 레인디아의 코앞에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레인디아는 밤꽃 향에 속이 울렁거렸다.
“자주 빼주지 않으면 몽정해서 곤란하잖아. 눈을 떴을 때 이런 게 사타구니를 흠뻑 적시고 있으면 기분이 더럽지 않아?”
“흐, 흐으…….”
“남자라면 알 텐데.”
에이든이 중지에 유독 힘을 싣자 갈라진 살덩이 안으로 손가락이 밀려 들어왔다. 하필 예민한 음핵을 건드려 레인디아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터트렸다.
“하아……! 으응……!”
레인디아는 뒤늦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에이든은 슬며시 손바닥을 떼어냈다.
“……흐윽. 흑.”
가랑이를 붙잡은 손이 떨어져 나가기 무섭게 벽에 기대고 있던 레인디아의 등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레인디아는 허벅지를 꽉 붙이고 몸을 떨었다. 오줌이 급할 때처럼 방광이 저릿했다. 하지만 소변은 아니었다.
“하아, 하아…….”
눈꺼풀이 마구 경련했다. 고작 손톱만큼의 자극이었지만 성적 경험이 전무했던 레인디아에겐 오르가슴 못지않게 강렬했다. 질벽이 수축할 때마다 질주름이 비벼져 아랫배가 욱신댔다. 레인디아는 어서 빨리 이 낯설고 두려운 쾌감이 사라지기만을 빌었다.
에이든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추슬렀다.
“우리 이거 자주 하자, 앞으로.”
앞으로……? 레인디아가 고개를 들었다.
에이든이 눈을 휘어 웃었다.
“나만 기분 좋고 끝내려니 미안해서.”
에이든의 그림자가 가까워졌다.
도망쳐.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기회는 없어.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자 낯선 환청이 레인디아의 등을 떠밀었다.
* * *
“허억, 헉……!”
정신을 차렸을 때 레인디아는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두 다리를 움직이게 한 것은 극한의 공포에서 발휘된 생존 본능이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에 갇힌 것처럼, 같은 곳을 빙글빙글 헤매는 착각이 들었다. 조금 전 일어난 일들이 뒤죽박죽 섞여 머리가 어지러웠다.
“허억, 헉……!”
몇 번이고 뒤돌아봤지만 에이든은 따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로 가든 붉은 눈동자가 저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벽에 다닥다닥 붙은 그림을 보자 속이 매스꺼웠다.
‘여자란 걸 알아챈 걸까? 아니면, 설마……, 정말 날 남자로 알고 그런 짓을……?’
그렇다는 건 에이든이 남색이란 뜻이었다. 레인디아에게 남색은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사창가의 한구석엔 몸을 파는 남자들도 있었다. 그 수는 극히 적었으나.
‘남자라면 안전할 줄 알았는데……, 지금이라도 여자라고 말한다면…….’
아니, 이제 와선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에이든 헬렌베르크는 위험한 남자다.
그와 같은 장소에 있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고귀한 황족이자 전쟁 영웅인 사내에게 온전한 도덕성을 기대한 대가는 너무도 끔찍했다. 그의 비밀이 한 꺼풀 벗겨질 때마다 추악한 진실이 드러났다. 악마의 뿔 같은 불그죽죽한 육괴. 그리고 작은 구멍 밖으로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희뿌연 정액. 그것들이 머리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아직도 콧잔등에 밤꽃향이 아른거렸다.
“돌아가야 해……, 아가씨께 돌아가야 해…….”
레인디아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떻게 돌아가지?’
복도의 끝에 다다른 레인디아는 어디선가 들어온 눈 부신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빛줄기가 들어온 방향으로 몸을 트니 거대한 창문이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거짓말.”
휘몰아치던 눈보라는 눈 깜짝할 사이 멈춰 있었다. 고개 들어 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고, 시선을 바로 하니 새하얀 눈밭이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마치 이리 오란 듯이 제게 손짓하는 듯했다. 도망가야 해. 레인디아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겁먹고 도망갈 필요는 없는데.”
에이든은 테라스로 나가 설원의 전경을 내려다봤다. 레인디아가 눈밭을 헤치며 도망치고 있었다. 저 속도로 달린다면 해가 지기 전에 저택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벗어난다 해도 도움을 청할 사람은 없겠지만.
“누가 보면 내가 죽이려는 줄 알겠어.”
에이든은 이젤 사이에 숨겨둔 총을 꺼내 들었다.
붉은빛이 도는 나무 몸통에 길고 유려한 총열이 붙은 사냥용 라이플이었다. 에이든은 재킷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스코프에 낀 먼지를 닦았다. 다시 테라스로 나가 눈밭을 향해 총구를 조준했다. 오른쪽 눈을 스코프에 기대자 조준경 안에 레인디아의 뒷모습이 담겼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금발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예뻐.”
이 순간을 박제해서 영원토록 간직하고 싶을 만큼. 버릇처럼 방아쇠에 손가락이 감겼다. 그러나 에이든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멀어지는 레인디아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만 보다 총구를 내리고 밖으로 향했다.
* * *
“읏, 하아…….”
허벅지 높이만큼 쌓인 눈에 발밑이 푹푹 꺼졌다.
걷는다기보단 다리로 눈밭을 밀면서 나아간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레인디아는 눈 쌓인 정원을 걷는 내내 뒤를 돌아봤다. 여전히 에이든은 그녀를 쫓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방에서 누군가 저를 감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 다른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불안해진 레인디아는 주변을 살폈다.
어디를 보아도 새하얀 눈밭만이 지평선처럼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계속 나아간다면 길이 있겠지. 도움을 청할 사람을 만날지도 몰랐다. 레인디아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걸음을 재촉했다.
바로 그때.
타앙-!
한 발의 총소리가 서늘한 눈밭을 관통했다.
“꺄악……!”
레인디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몸을 웅크렸다.
총소리에 놀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숨어 있던 새떼가 푸드덕 무리 지어 날아갔다. 레인디아는 힐끗 고개를 들었다. 날개 달린 새들이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짐승이었다면 두껍게 쌓인 눈밭을 금세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벗어날 수 없어. 짐승이었다면 바로 총을 맞아 쓰러졌을 테니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레인디아는 생각을 달리했다.
방금 울린 총소리는 명백한 경고 사격이었다.
지금 당장 멈추라는.
“흐윽.”
레인디아는 털썩 무릎을 꿇고 무너졌다. 두둑이 쌓인 눈 더미에 입술이 파묻혔다. 입술 틈으로 흘러나온 입김에도 눈은 녹지 않고 얄밉게 반들거렸다. 눈에 파묻힌 입술은 얼얼하고 다리도 힘이 풀려 움직이지 않았다.
붙잡히고 싶지 않아.
“윽, 흐으윽……!”
레인디아는 제 앞을 가로막은 눈더미를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치워도 눈, 눈, 온통 눈뿐이었다. 맨손으로 눈을 긁어대니 피부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빨갛게 익어 욱신거렸다. 레인디아는 꺽꺽 숨을 들이켜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곧 남자가 나타날 거다.
저벅저벅.
레인디아의 예상대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녀가 가냘픈 몸으로 온 힘을 다해 파헤친 길을 따라 여유롭게 다가온 남자는,
“죽고 싶어?”
몸을 낮추더니 소름 끼칠 만큼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에요. 죽고 싶지 않아요. 레인디아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목이 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에이든은 잔뜩 겁에 질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고개 들어서 봐.”
레인디아는 어렵게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말고. 저쪽.”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작은 턱을 잡아 쥐더니 대각선 방향으로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철옹성 같은 눈밭이 펼쳐졌을 뿐이다. 그런데 푹 꺼진 눈 위로 스멀스멀 붉은 피가 올라왔다.
“눈보라가 잦아든 자리엔 늑대들이 먹이를 구하러 올라오지. 어제도 말했잖아. 이곳은 변종 늑대의 서식지라고.”
“…….”
“600m 밖에 한 마리가 더 있어. 총소리를 들어서 다가오진 않겠지만.”
“…….”
“변종 늑대들은 사납지만 영리해. 총을 든 인간은 공격하지 않거든. 그런데 너는…….”
위에서부터 몸을 훑는 시선이 느껴졌다. 레인디아는 안쪽으로 말아 삼킨 입술을 깨물었다.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도망친 것이냐 추궁하는 눈빛이었다.
모른다.
그저 태어나 처음으로 본능이 이성을 억누르고 움직였을 뿐이다.
이 남자는 위험한 존재라고.
지금 당장 벗어나지 않으면 두 번째 기회는 없을 거라고.
“나는 기껏 널 두 번이나 살려줬는데 말이지.”
에이든은 유독 두 번이란 숫자에 힘을 줘 말했다.
“이름도 안 가르쳐 주고 도망치다니 정말 너무하네.”
레인디아는 이 남자에게 얼굴에 이어 이름까지 빼앗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 레인디아는 완전히 마음이 꺾인 채 대답했다.
“……디아. 제 이름은, 레인디아, 예요…….”
순록(reindeer)에서 따온 이름인가. 에이든의 눈에 비친 그녀는 순록보다는 선이 가느다란 암사슴에 가까웠지만. 그러고 보니 순록은 암컷도 뿔이 있었지. 어쩐지 쉴 새 없이 제게 뿔을 들이받더라니. 어쨌든 마음에 든다.
레인디아. 레인디아, 디아……. 에이든은 입 안에서 그녀의 이름을 여러 번 굴리다,
“디아. 예쁜 이름이네.”
친히 특별한 애칭까지 붙여줬다.
“왜 도망친 거야? 이제 디아가 좋아지려고 하는데.”
“……아!”
“자, 얼른 돌아가자. 응?”
에이든은 굳어 있는 레인디아의 배에 팔을 감았다. 그러곤 그대로 제 널찍한 어깨에 짐짝처럼 둘러멨다. 레인디아는 머리 쪽으로 피가 쏠려 속이 울렁거렸다.
“앞으론 도망치지 마. 알았어?”
“흣……!”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둥근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다감하게 말했다.
에이든이 걸을 때마다 레인디아의 늘어진 상체는 마치 포획된 들짐승처럼 대롱대롱 흔들렸다. 에이든이 등에 멘 소총의 기다란 총구가 레인디아의 뺨을 탁탁 치댔다. 아직 열기가 남아 있어 뜨끈뜨끈했다. 불현듯 제 손바닥 안을 헤집던 성기가 생각나 레인디아는 소리 없이 몸서리쳤다.
“읏.”
레인디아가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 늑대 한 마리가 피 웅덩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죽은 늑대의 가족인 걸까? 레인디아의 두 눈에 눈물이 괬다.
“흐으윽…….”
레인디아는 고개를 푹 떨군 채 조용히 흐느꼈다.
눈물이 흐르는 이유가 혼자만 살아남은 늑대를 향한 동정심 때문인지, 저를 공격하려던 늑대가 죽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 때문인지, 이 악마 같은 남자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단 공포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은 포획됐단 사실이었다.
살아 있는 악의 형상을 한 남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