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복종-15화 (15/23)

15. 인간증명 上

레인디아가 궁전에 조성된 산책로를 걸을 때였다. 그녀의 키만 한 나무 울타리 너머로 숙덕이는 대화가 들렸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테지만 익숙한 이름이 나오는 순간 몸이 멈추고 말았다.

“에이든이 돌아왔으니 강가에서 신원 불명의 시체가 발견되는 건 시간문제겠군. 그 자식 주변에선 늘 사람이 죽어 나가니. 그런데 이유를 밝힐 수 없어 더 소름이 끼친다고.”

“설마 황태자파를 숙청하러 온 건 아니겠지?”

“아니. 소문으론 그레제 백작가와 연관이 있다던데.”

“그레제 백작가라면 모조품을 경매에 내놓은 가문 말인가?”

“일이 어찌 돌아가려는 건지.”

“조용히 돌아가 주면 좋으련만.”

두 남자의 목소리엔 에이든을 향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들이 무척 겁에 질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레인디아는 황급히 산책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산첼로가 그녀를 반겨주었다.

“오셨습니까, 레인디아 아가씨.”

“……네.”

레인디아는 힐끗 산첼로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에 산첼로는 순박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산첼로 경.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예, 무엇이든지요.”

산첼로가 싹싹하게 손바닥을 비비며 굽실댔다.

“조금 전 산책을 하면서 기묘한 대화를 들었어요.”

“예? 기묘한?”

“대화를 엿듣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죠. 하지만, 에이든 님과 관련된 일인지라…….”

레인디아는 말끝을 흐렸다. 산첼로가 얼굴에서 미소를 거둔 채 바로 섰다. 그는 긴장했는지 자꾸만 손을 쥐락펴락했다.

“황태자파 얘기를 하던데. 혹, 4년 전쟁에서 돌아가신 제레미 황태자님을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산첼로는 휘휘 주변을 둘러보다 레인디아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가 뒷짐을 진 채 상체를 숙였다.

“이 얘기는 절대 바깥으로 발설되어선 안 됩니다. 약속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레인디아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산첼로가 몸을 바로 하고 푹 한숨을 쉬었다. 그는 조금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다시피, 4년 전쟁에서 제레미 황태자 전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목격자가 있었으나 구체적인 사인은 실종사.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색을 이어갔습니다만, 끝끝내 전하의 시신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수색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결국 황후 마마께선 큰 결단을 내리셨지요.”

카타리나는 아들의 시체를 찾는 일에 더는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수색을 종결지었다. 그렇게 제레미는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되었다.

“한데, 그 후 친황태자파……, 즉 제레미 전하를 따르던 귀족들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에이든 님이 제레미 전하의 실종에 관여되어 있는 것은 아니냐, 하는…….”

“그, 그게 사실인가요?”

“그럴 리가요! 다만 당시 목격자 중에 에이든 님이 계셨고, 목격자 대다수가 동부인, 즉, 에이든 님에게 우호적인 사람이란 게 의심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황태자의 죽음은 위장된 것이다, 어딘가에 살아계심에 틀림이 없다. 이런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이든 님을 의심하는 것은 타당치 않아요. 평소 두 분의 사이가 안 좋았던 건가요?”

산첼로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는 눈치였다.

“……사실, 에이든 님께서는 선황후의 집권 당시 황태자 자리에 앉아계셨습니다.”

레인디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황후라면, 에이든의 할머니인 칼라마리 황후였다. 개국공신이라 불리는 글레디우스 가문 출신의 영애로, 사실 황후의 대리 집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칼라마리 황후 대부터 황후 정치의 기반이 다져져 있었다. 칼라마리는 제국의 대모로 불릴 만큼 치세를 떨친 군주였다. 오늘날 집권 중인 카타리나 황후도 그녀를 어머니이자 스승처럼 모셨다고 전해졌다.

“과거, 선황후께선 장남인 페레디온 전하를 황태자 자리에서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페레디온 전하의 아들인 에이든 님이 태어나자 황태자로 책봉하셨지요.”

차남인 베넨돌을 두고 손주인 에이든을 황태자로 책봉했단 뜻이었다. 레인디아로선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나 칼라마리는 당시 개국공신 본가의 힘과 백성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은 절대군주였다. 후계자 계승 권한은 오롯이 그녀의 손에 좌지우지되었다.

“그렇게 선황후께서 서거하기 전까지 에이든 님의 공식적인 신분은 황태자였습니다. 그런데 선황후께서 에이든 님을 황태자 자리에서 폐한다는 유언을 남기셨고, 그렇게 베넨돌 전하가 차기 황제로 책봉되셨습니다. 자연히 황태자 자리는 그분의 아들인 제레미 전하께 넘어갔지요.”

황태자였던 에이든과 황태자 자리를 빼앗은 제레미. 그리고 제레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버지에게 전달되어야 할 계승권이 저와 항렬이 같은 사촌에게 넘어갔단 사실이 원통했을 것이다. 둘이 앙숙이 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 해도 그것이 어찌 에이든의 잘못이겠는가? 오히려 레인디아는 어린 시절의 에이든이 피해자처럼 느껴졌다. 어른의 사정으로 휘둘리는 가여운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마치 제 일인 듯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에이든 님이 살해 혐의를 받은 건가요?”

“혐의, 아니, 혐의랄 것도 없습니다. 그저 질 나쁜 소문에 불과하지요! 무엇보다 제레미 황자님의 친모이신 카타리나 황후께서 에이든 님의 무고를 주장하셨으니 말입니다.”

산첼로의 목소리가 다소 상기되었다. 본인도 깨달았는지 황급히 큼큼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황후 마마께서는 제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올곧은 분입니다. 고아인 저를 거두어주셔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신 것도 그분입니다.”

산첼로는 거리를 떠돌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을 훔쳐냈다. 레인디아는 그의 슬픔에 깊이 공감해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산첼로는 애써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걸 받았다간 에이든이 저를 가만 안 둘 거란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큼큼. 어쨌거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산첼로가 물에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란 걸 압니다만, 제레미 전하는 성군의 자질이 없으셨습니다. 살아생전 말썽만 일으켜 카타리나 황후 마마를 괴롭게 하는 존재셨지요. 마마께선 제레미 전하가 사고를 칠 때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레인디아가 알기로 산첼로는 에이든의 비서였으나 실제론 황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즉 황후의 측근이란 뜻이었다. 그런데도 황후의 자식을 신뢰하지 못하는 태도에서 신빙성이 느껴졌다.

“만약 그분이 황위를 물려받았다면 제국이 어찌 되었을지 눈앞이 그저 캄캄하기만 합니다.”

레인디아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트러블 메이커였던 황태자 제레미는 죽은 뒤 황궁 안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정작 팔라크리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에이든은 황태자 시해 혐의를 받고 있었다. 거기다 적국의 인질을 고문해 첩자로 만들어 내부반란을 일으킨 것을 비겁하다 헐뜯는 이도 있었다. 물론 친황태자파의 주장일 뿐이었으나.

머릿속으로 산첼로의 이야기를 정리한 레인디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황궁 안 사람들도 백성들과 비슷한 생각을 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었군요. 영웅을 비겁자라 칭하다니, 그런 건 너무해요.”

“다행히 황후 마마의 노력으로 이런 분위기는 사그라졌습니다만. 에이든 님 입장에선 황궁이 달갑지만은 않을 테지요. 어릴 때의 안 좋은 기억들도 있고 말입니다.”

“어릴 때의 일이요?”

에이든의 병적인 집착은 이러한 과거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몰랐다. 산첼로의 얘기를 들을수록 그의 기이한 행동에 실마리를 찾는 기분이었다. 이 엉망으로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면 한 인간으로서의 에이든을 이해할 수 있을까? 레인디아는 그러고 싶었다.

에이든을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싶었다.

그가 저와 같은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선황후께서는 에이든 님과 제레미 님을 늘 차별하셨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에이든 님을 핍박하기 위해 황태자 자리에 앉혔을지도 모른단,”

“쓸데없는 소리를 해.”

그때, 누군가 산첼로의 말에 끼어들었다.

레인디아와 산첼로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에이든이 문에 한쪽 팔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산첼로, 너는 말이 너무 많아. 디아의 표정이 안 보여? 네가 혼자 신나서 떠드는 얘기를 듣고 피곤해하잖아.”

에이든은 성큼성큼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얘기를 그리 신나게 했지?”

“그, 그게, 저는…….”

산첼로가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에이든은 쯧 혀를 찼다.

“안 들어도 뻔해. 영양가 없는 개소릴 지껄였겠지.”

이윽고 그가 다정한 눈을 하고 레인디아를 바라봤다.

“디아.”

“네, 네……, 에이든 님.”

“소문이 맞아.”

“……네?”

“내가 황태자를 죽였어.”

에이든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레인디아의 마음은 강하게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럴 리 없노라고. 왜냐하면, 눈앞에 서 있는 에이든은 마치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거짓말을 하는 아이 같았다. 그의 살짝 찡그린 미간이 오늘따라 서글퍼 보였다.

“에이든 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마마께서 들으시면 크게 상심하실 겁니다.”

“그 여자가 상심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에이든의 대답은 매몰찼다.

“그러니 나 같은 놈을 황제로 만들었다간 황위에 오르는 즉시 반항 세력을 전부 숙청해서 황궁 안에 피바람이 불지 않겠어? 모르지. 제레미보다 더한 폭군이 될지.”

에이든의 목소리는 자신만만했다. 에이든의 살기에 산첼로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만 나가봐.”

에이든이 문 쪽으로 턱짓했다. 산첼로가 그대로 굳어 있자 에이든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레인디아의 뺨을 두드리며 목덜미를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지금부터 새로운 황족을 생산해야 하거든. 혹시 모르잖아. 나는 실패했지만 내 새끼는 황태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살벌한 경고였다. 그제야 산첼로는 레인디아를 곁눈질하다가 후다닥 밖으로 사라졌다. 설마, 정말로 자신을 안는 것은 아닐까 긴장하는데, 에이든이 푹 한숨을 쉬었다.

“하아.”

“……에이든 님?”

“지쳤어.”

에이든은 풀썩 레인디아의 옆에 앉았다.

일 년은 족히 늙은 모습이었다. 물론 늙었다고 해서 그의 미모가 시들었단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고단한 세월이 표정에 스며들어 중후한 느낌을 주었단 것에 가까웠다. 깊은 피로감에 신경질적으로 구겨진 미간을 보고 있자 꾹꾹 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레인디아는 황급히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가 편히 앉을 수 있게 옆으로 살짝 비켜주었다. 그러자 에이든의 왼팔이 그녀의 허리를 휘감아 당겼다.

“이리 와.”

“……아.”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불편하지 않으세요?”

“그럴 리가. 이대로 아침까지 잠들 수 있을 정도인걸.”

에이든은 어리광을 부리며 허벅지에 얼굴을 비벼댔다. 그는 겨우 숨통이 트인 얼굴이었다. 에이든이 살며시 고개를 돌려 레인디아를 올려다봤다. 그의 검지가 레인디아의 뺨에 닿았다.

“디아는?”

“……저는, 괜찮아요. 음, 근데 아침까지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레인디아의 진지한 대답에 에이든이 푸흐흐 웃었다. 이윽고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엔 알 수 없는 초연함이 남아 있었다.

“그 고귀하다는 황족들도 뜯어보면 결국 평민과 다를 바 없지. 이 나라에서, 특히 황궁 안에서 가족은 제 기능을 못 한 지 오래야.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건 부지기수고.”

“…….”

“걱정 마, 디아. 우리 아이가 황위 다툼에 희생될 일은 없을 거야. 괜히 마음 쓸 것 없어. 산첼로를 쫓아내려고 그냥 해 본 소리야. 나는 권력에는 관심 없거든. 하지만, 디아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단 마음은 진심이야.”

레인디아는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의 민낯이 너무나 쓸쓸해 보여서.

권력보다 가정을 꾸리는 것에 집착하는 남자. 그 외로운 본심을 감히 알아도 되었던 걸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에이든 님은…… 이곳에서 괴로운 일이 많으셨다고 들었어요.”

에이든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디아와는 상관없는 얘기야.”

다정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선을 긋는 태도에 레인디아는 울컥했다.

“하지만, 에이든 님은 제 과거를 바로잡아주기 위해 여기까지 와주신 거잖아요.”

“그래서 디아도 내 아픈 과거를 보듬어주고 싶어?”

에이든은 짓궂게 물었다. 마치, 자신의 지나간 날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그래서 레인디아는 더욱 속이 탔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에이든의 본심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라는 인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우리가 한배를 탔다고 생각해요.”

레인디아는 두 손으로 에이든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은 너무나 컸다. 손뿐만 아니라 모든 게 저의 몇 배는 되었다. 온몸으로 끌어안아도 잡히지 않을 만큼 이 남자는 거대했다. 그런데도, 왜 오늘따라 에이든이 작아 보이는 것일까.

“한배라……, 낭만적인걸.”

에이든은 붙잡힌 손을 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넓은 손바닥이 조금씩 그녀의 온기로 따뜻해지는 감각.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무척 좋았다.

“에이든 님의 과거를 들으니, 이제야 당신이 조금씩 인간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인간으로 보인다고?”

에이든은 고개를 갸웃하며 레인디아를 바라봤다. 자신이 얼마나 엉뚱한 소리를 했는지 뒤늦게 깨달은 레인디아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뭐라 변명을 하려는데,

“고마워.”

에이든은 레인디아에게 붙잡힌 손을 제 뺨 위로 끌고 갔다. 그대로 그녀의 손등에 제 뺨을 비볐다. 레인디아는 살그머니 그의 손을 놓아주었다.

“기분 좋네. 인간 취급당하는 거.”

레인디아는 머뭇거리다 에이든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푸석해진 머리카락은 만져줄수록 윤기가 흘렀다. 에이든은 그녀의 손길에 기분이 좋은지 색색 아이처럼 숨을 내뱉었다.

“나는 이곳에서 한 번도 인간이었던 적이 없거든.”

이어지는 혼잣말에 레인디아는 가슴이 꽉 조여왔다.

그는 대체,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 * *

노을이 물러간 자리에 짙은 남색 빛깔이 드리웠을 때, 에이든은 살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저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슥 고개를 돌리자 레인디아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불편했을 텐데.’

왜 저를 깨우지 않고 이대로 같이 잠든 것일까. 정말이지 레인디아의 다정한 희생정신 앞에선 모든 죄를 고백하고 싶은 경건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에이든은 조심스럽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레인디아의 옆에 앉아 그녀의 몸을 제 쪽으로 기대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즐거운 일들이 잔뜩 있을 거예요.’

가슴 깊이 간직해 온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든은 수년이 지나서야 속으로 그 말에 대답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그토록 끔찍하던 황궁이 이제는 어디를 가든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아. 디아가 옆에 있어 줘서일까?

‘너는 언제쯤 나를 기억해 줄지.’

에이든은 곤히 잠든 레인디아를 보며 생각했다.

“에이든 님, 곧 만찬회 시간입니다.”

그때 바깥에서 궁중 시녀가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곧 황후와의 만찬회가 있었다.

‘만찬회는 다음으로 미루고 좀 더 자게 둘까?’

제게 기대 잠든 레인디아의 모습은 무척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곤히 잠든 그녀를 깨운다는 것은 지옥에 떨어질 중죄나 다름없었다. 지옥에서 에이든 같은 인간을 받아주지는 않을 테지만.

‘하지만 미룬다면 디아가 견디질 못하겠지.’

에이든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인디아의 성격상 황후와의 만찬회를 미루고 잠들었단 사실을 깨달으면 제정신으로 버티지 못할 것이다. 또 내일은 재판이 있기도 했고. 미리 재판에 참석하는 귀족들과 안면을 트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편이 레인디아로서도 든든할 테니.

“디아.”

“으으음.”

에이든이 살며시 레인디아의 몸을 흔들었다. 레인디아의 풍부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 이윽고 화들짝 들렸다.

“저, 잠들었, 만찬회에……!”

“진정해. 아직 시간은 많아.”

예상대로 레인디아는 만찬회에 늦었을까 봐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에이든은 천천히 그녀를 진정시켰다.

“준비는 하녀들이 도와줄 거야. 직접 해 주고 싶지만 나도 연미복으로 갈아입어야 해서.”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머리를 토닥이곤 몸을 일으켰다. 레인디아는 제 머리카락을 만지다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괜찮을까요? 머리 길이가 이래선…….”

에이든은 살며시 레인디아의 손에서 머리카락을 거두어갔다. 검지와 엄지 사이에서 머리카락이 사락사락 비벼지며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어느새 어깨 아래로 자란 머리카락은 그녀가 걸을 때마다 살랑살랑 예쁘게도 흔들렸다. 에이든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이 정도 길이라면 묶어서 장식할 수 있을 거야.”

에이든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만찬회 자리에서 디아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지 기대되는걸.”

에이든의 붉은 눈이 얄궂게 휘었다. 레인디아는 휙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고개를 숙여도 그의 진득한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뭐랄까, 그의 이런 시선을 받고 있으면 레인디아는 때때로 자신이 무척 아름다운 숙녀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실제로 레인디아는 빼어난 미인이었으나, 정작 그녀의 낮은 자존감에 거울 앞에 오래 서 있는 일조차 힘겨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레인디아는 수줍게 미소 지었다.

* * *

“아가씨, 이제 머리를 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살짝 무거우실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하녀들은 단정히 말아 올린 레인디아의 머리카락에 장신구를 꽂아 넣었다. 레인디아의 가느다란 목선은 마치 사슴 같았고, 둥글게 깎이는 가냘픈 어깨선은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동시에 관능적이었다. 거울이란 대상을 고스란히 비추는 용도였음에도 레인디아의 아름다움을 전부 담아내지 못했다.

“곧 에이든 님이 도착하실……!”

어머나. 보고를 위해 방문한 시녀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감쌌다. 거울에 비친 레인디아가 우아했다면, 직접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황홀했다. 레인디아는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반면, 그녀의 치장을 도운 하녀들은 기세등등해진 눈으로 방문자를 바라봤다. 어디 한번 마음껏 감탄해 보란 듯이 말이다.

시녀는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레인디아를 바라봤다.

레인디아가 찬 귀걸이와 목걸이에는 그녀의 눈동자를 닮은 흑진주가 메인으로 박혀 있었다. 그리고 작지만 정교하게 세공된 다이아몬드가 주변을 둘러싸 흑진주의 짙은 색상을 돋보이게 해 줬다. 드레스는 벨벳 원단을 사용한 붉은 드레스였다. 마치 에이든의 눈처럼 농염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붉은색이었다. 배와 등판에 크림처럼 하얀 실크 원단이 들어가 허리가 더욱 잘록해 보였다. 드레스는 금실로 수를 놓아 샹들리에의 빛을 머금을 때마다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세상에. 저, 정말 아름다우세요. 레인디아 님…….”

시녀의 입에서 본능적으로 극존칭이 튀어나왔다. 감히 질투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미모였다. 레인디아도 그녀를 따라 볼을 붉혔다.

“……여러분 덕분이에요. 치장을 도와줘서 감사해요.”

“영광입니다, 아가씨.”

하녀들이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에이든 헬렌베르크 장군이십니다.”

그때 밖에서 대기하던 근위병이 입을 열었다.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한 아름다운 사내가 서 있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무엇과도 겹치지 않는 독보적인 미모였다. 그는 마치 늙지도 죽지도 않는 영속의 삶을 살아가는 불멸자 같았다.

에이든이 훤칠한 다리를 뻗으며 레인디아의 앞으로 다가왔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흑발 아래엔 그에 상응하는 날이 선 이목구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고고한 분위기가 에이든의 주변을 은은하게 감쌌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이 그를 내리쬐는 듯했다. 그를 보면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천사의 존재를 믿게 될 것이다.

“…….”

에이든은 우뚝 멈춰서서 레인디아를 바라봤다. 어째서 더 다가오지 않는 걸까. 레인디아는 초조해진 마음으로 기다렸다.

“미안. 디아가 아름다워서 그만 넋을 놓고 말았네.”

에이든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웃자, 천사의 형상을 한 조각상은 영혼이 깃든 인간으로 변모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내에게서 찬사를 불러일으킨 레인디아의 미모 역시 지상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수컷이 못 보게 가둬두고 싶을 정도야.’

에이든은 살벌한 생각을 하며 레인디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입은 연미복은 어둠에 녹아내릴 것처럼 짙은 검은색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밤하늘의 별과 같이 눈부시게 빛났다. 제비 꼬리처럼 갈라진 기다란 뒤판이 그의 걸음을 따라 물결처럼 흔들렸다. 허공을 쓰다듬는 듯한 우아한 움직임이었다.

“이만 갈까?”

에이든이 살며시 손을 내밀었다.

레인디아는 그의 손바닥 위로 제 손을 얹었다.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이 겹쳐진 순간, 두 사람을 둘러싼 고아한 분위기는 더욱 넓게 확장되었다.

“세상에. 그대였나?”

카타리나는 레인디아를 보자마자 매우 놀랐다. 에이든은 삐딱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윽고 카타리나 또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자연스럽게 몸가짐을 바로 했다.

“만나서 반갑네.”

“예, 황후 마마. 레인디아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레인디아는 무릎을 굽히며 고개를 조아렸다.

“우리 초면도 아니니 편하게 얘기해도 될까?”

“그래 주신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레인디아의 표정에 당혹감이 번졌으나, 곧 정갈히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카타리나는 싱긋 미소 지었다.

“지난번 못다 한 얘기도 나누고 싶네.”

레인디아도 그녀를 따라 살포시 미소 지었다. 에이든은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다 얌전히 두 사람을 따라 만찬장으로 향했다. 만찬회에는 황후 카타리나와 에이든, 레인디아, 그리고 내일 명예재판에 참석하는 고위관료들이 참석했다.

“그나저나 분위기가 달라졌구나.”

카타리나는 레인디아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레인디아는 제 머리카락을 보며 하는 소리 같아 위축됐다. 그러나 이어지는 카타리나의 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야 너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게 된 것 같아. 이 자리에선 편하게 너의 생각을 말하거라. 나는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단다.”

황후가 참석한 자리인 만큼 다소 경직된 분위기였으나, 대화 주제는 가벼우면서도 경박하지 않은 내용이 주를 이뤘다. 덕분에 레인디아도 자연스럽게 참석자들과 일면식을 나누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특히 황후는 레인디아를 많이 배려해 줬다. 레인디아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이렇게 하는 거란 듯 시범을 보여줬다. 그대로 레인디아가 눈치 빠르게 따라 하면 기특하단 미소를 지어줬다.

에이든은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주인인 레인디아의 옆에 얌전히 무게를 잡고 앉아 있었다. 대화에 참여하는 대신 한발 뒤로 물러나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누군가 레인디아를 공격하려 한다면 언제든 목줄을 풀고 달려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물론, 이 자리에서 그런 짓을 벌일 사람은 없었다.

“아아, 그렇지. 동부의 살몬 호수는 내버려 두기로 했네.”

“동부 재건 사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황후가 생각났단 듯이 말하자, 고관 하나가 물었다. 황궁에선 4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부를 재건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살몬 호수 개발도 재건 사업의 일환이었다.

“그곳을 관광지로 조성해 관광객을 받아들인다면 큰 수입원이 될 텐데요?”

다들 그렇게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황후가 의견을 바꾸자 고관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 이 친구의 말을 듣고 뜻을 달리하게 되었네.”

카타리나가 레인디아를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레인디아는 당황해서 살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내내 조용하던 에이든의 얼굴에는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이 모르는 디아의 이야기라니.

“에이든, 넌 모르겠구나.”

“예. 그러니 끼워주시죠. 슬슬 질투가 나려 해서.”

에이든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짓궂은 말투였지만 그 이면에는 서늘한 본심이 깔려 있었다. 그의 싸늘해진 눈빛에 고관들은 바짝 긴장했다.

“동부 재건은 제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이지 않니. 하여 지난 데뷔탕트에 모인 영애들에게 살몬 호수 개발 건에 대해 의견을 구했단다.”

카타리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회상했다.

벨리타가 초대된 바로 그 데뷔탕트였다.

‘내가 그대들을 이 자리에 초대한 것은, 그대들이 제국에서 가장 총명한 영애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네. 짐이 매해 황실 데뷔탕트에서 국가의 중대사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마마.’

‘하지만 올해는 그대들이 데려온 하인에게 묻고 싶군. 짐은 이 자리에서 신분의 고하와 상관없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네. 동부 재건을 위해 살몬 호수를 관광명소로 개발하려 하는데 좋은 의견들이 있겠는가?’

동부의 살몬 호수에는 독소를 정화하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태동기 시절 구원의 호수라 불리던 그곳은, 오늘날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어 황립 연구소에서 직접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살몬 호수는 전쟁의 피해를 보지 않아 자연 상태 그대로였다.

‘관광지로 개발한다면 동부 재건 비용을 충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찬성해요.’

‘호수 주변에 가판대를 세우는 거예요. 그리고 상인들에게 상업권을 파는 거죠.’

‘또 수익 일부를 세금으로 거둘 수도 있고요.’

하나같이 살몬 호수를 개발하는 쪽으로 의견을 덧대어갔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들과 같은 의견인가?’

그렇게 레인디아의 차례가 됐다. 레인디아는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앞선 의견들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단기적으론 수익성을 보장할지 몰라도 호수가 오염된다면 더는 수입을 창출하지 못하겠지요. 사람들은 살몬 호수를 보러오는 것이지 가판대나 오염된 호수를 보러 그곳을 찾는 게 아닐 테니까요. 무엇보다 살몬 호수는 외부의 오염에 취약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개발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호수의 정화 능력으로 주변 환경이 빠르게 회복될 거라 예상합니다.’

레인디아는 머뭇거리다 어렵게 덧붙였다.

‘저는……, 이런 표현은 조금 그렇지만 살몬 호수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일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가판대가 아닌 호수를 보러오는 것이다라……. 그건 새로운 시각이로군.’

‘정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면 하루 관광 인원을 철저히 통제하고 심사를 통과한 상인에게만 판매를 허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그때 벨리타가 끼어들었다.

‘너는 왜 이렇게 말이 많니? 당연히 관광업을 유치해야 하는 것 아니야? 이 넓은 제국 땅에 자연 유산이 살몬 호수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벨리타는 코웃음을 치다 가엽게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카타리나를 바라봤다.

‘결례를 끼치고 말았네요, 마마. 제가 하인 교육을 똑바로 해야 했는데. 가끔 저런 엉뚱한 소리를 한다니까요? 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진데 말이죠. 호호호.’

벨리타는 새침하게 찻잔을 들어 홍차를 마셨다. 레인디아는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며 푹 고개를 숙였다. 벨리타는 카타리나의 치세를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자애로우신 마마의 통치 아래, 오늘날 제국에 아름다운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데요? 관광업은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그러나 그 호수는 하나뿐이지.’

카타리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미소를 거둔 채 벨리타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벨리타 영애라 했나? 내 기억해두겠네.’

과거를 회상하던 카타리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레인디아 영애의 의견을 따라 살몬 호수는 내버려 두기로 했네. 대신 호수 개발에 사용하기로 했던 비용으로 구빈원(救貧院)과 의료 시설을 확장했지. 그대가 만족할 만한 결과일까?”

레인디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얼굴에도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다행이에요. 그곳이 보존될 수 있어서. 무엇보다 동부 백성을 위한 시설이 확충되었다는 게…….”

정말로 다행이라고, 레인디아는 생각했다.

“짐 또한 그대의 아름다운 심성이 영원하길 바라네.”

“……영광입니다, 마마.”

카타리나의 말에 레인디아의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레인디아는 수줍은 소녀처럼 고개를 숙였다. 고관들은 현명한 군주와 마음씨 고운 영애가 만들어 낸 결과에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훈훈한 분위기가 만찬장을 감돌았다. 오직 에이든만이 삐딱하게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마치 물에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그는 그 훈훈한 분위기를 부유했다.

만찬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레인디아는 어느 때보다 상기된 얼굴이었다. 술은 한 방울도 입에 안 댔지만 격양된 가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코트를 벗는 내내 레인디아를 관찰하던 에이든이 자연스레 물었다.

“만찬회는 즐거웠어, 디아?”

“네. 혹시나 결례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레인디아는 수줍게 미소 지었다. 에이든은 한 손으로 크라바트를 풀어 내려놨다. 그리고 천천히 레인디아의 뒤로 다가왔다.

“디아가 백모님과 그 정도로 빠르게 친해질 줄은 몰랐어.”

“처음 뵀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정말 근사한 분이세요. 마마 같은 분이 황좌에 앉아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에이든은 레인디아의 머리 장식을 벗겨줬다.

“아. 감사해요. 나머지는 제가 벗을게요.”

레인디아는 화장대 앞으로 가서 귀걸이를 벗었다. 에이든은 꾸역꾸역 그녀의 뒤를 따라와 직접 목걸이를 벗겨줬다. 이윽고 레인디아의 귓가에 서늘한 숨이 내려앉았다.

“나 같은 놈이 황제가 되면 나라를 말아먹겠지?”

“……네?”

레인디아는 휙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잔뜩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에이든 님도 훌륭한 지도자가 되실 거예요. 민중의 영웅이시잖아요?”

“하지만 내가 멋대로 황제가 된다면 그건 반역일 테고.”

에이든이 레인디아의 턱을 잡아 올렸다. 그를 올려다보는 레인디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어째서 에이든이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한 표정이었다. 에이든은 샐쭉 웃었다.

“미안. 장난이었어. 그저, 디아가 백모님과 단둘이 신나게 얘기하니 질투가 나서.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거든.”

“지, 질투하실 거 없어요. 저 같은 것에게…….”

레인디아는 턱을 붙잡힌 채 고개를 숙였다. 에이든은 손안에서 레인디아의 작은 턱을 굴리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디아? 너는 백작가의 영애야.”

“하지만 아직 판결이 난 것은 아니고…….”

레인디아는 자신이 없어진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내 아이를 가진 여자인 건?”

“……네?”

“내 아이를 밴 여자 때문에 질투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야?”

에이든은 레인디아를 끌어안았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디아, 내일이면 너는 자유의 몸이 될 거야.”

레인디아는 에이든의 몸에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라. 이토록 아득하게 느껴지는 말이 또 있을까. 평생 닿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제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믿어왔다.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

“……사실 그런 상상은 안 한 지 오래됐어요.”

레인디아는 에이든의 몸에 턱을 맞댄 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종종 생각해요.”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상상을요. 저도 에이든 님처럼……,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요.”

레인디아의 두 뺨이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에이든의 품으로 다시 쏙 얼굴을 숨겼다. 못 할 말을 한 것처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디아, 디아. 날 봐.”

에이든은 그런 레인디아의 뺨을 붙잡고 몸을 낮췄다. 이제는 레인디아가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와 시선이 맞닿았다.

“상상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에이든 님.”

레인디아는 살포시 얼굴을 찡그리며 미소 지었다.

“떨려요. 내일이면 많은 것이 바뀔 거라는 게. 그리고 두려워요.”

“걱정할 거 없어. 너는 기억이 없으니 아무런 증언도 하지 않아도 돼. 내가 이미 모든 증거를 제출해뒀으니까. 디아는 내 옆에 있어. 나는 계속 디아의 옆에 있을 거야.”

레인디아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 번지는 환한 미소에, 에이든은 황홀경을 경험했다.

그래. 내일이면 모든 게…….

* * *

그날 밤.

지하 감옥에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크덕. 철컹. 끼이익.

철창이 바닥을 긁는 소리에 비릴리안은 번쩍 눈을 떴다. 미친 여자처럼 산발이 된 머리를 넘기자 천장에 닿을 듯한 거대한 인영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당신 뭐야? 누군데, 어떻게 문을……!”

짙은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비릴리안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가빠왔다.

“겨, 경비……! 경비! 침입자야!”

비릴리안은 두려움에 떨며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검은 인영이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피식 비웃었다.

“약속하지. 너는 오늘 죽지 않아.”

“뭐……?”

침입자가 슥 몸을 낮췄다. 어둠 속에 녹아드는 검은 머리카락과 칠흑을 뚫고 나오는 붉은 눈을 가진 남자. 비릴리안은 하마터면 사신이 저를 데려온 줄 착각할 뻔했다.

“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너는 물론, 너의 딸 또한 목숨은 부지할 거다.”

“베, 벨리타! 당신 우리 딸한테 무슨 짓, 으븝!”

에이든은 손수건을 꺼내 비릴리안의 얼굴에 던졌다. 그러곤 그대로 손수건에 가려진 얼굴을 잡아 바닥에 처박았다. 비릴리안은 골이 딩 울렸다.

“내가 누구냐고?”

“으, 으으윽……!”

“에이든 헬렌베르크.”

버둥거리던 비릴리안의 몸이 우뚝 멈추었다.

“지난 경매 때 모조품이란 사실도 모르고 작품을 사들인 가여운 피해자지.”

비릴리안은 믿기지 않았다. 에이든 헬렌베르크? 고작 모조품을 샀다고 황족이 나서다니? 설마 황족을 기만했다고 여긴 것일까? 아아. 비릴리안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속삭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우연히 너희 모녀에 대한 또 다른 진실을 알게 됐어. 나는 그 죄를 파헤치기 위해 널 찾아온 거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쯤, 동부의 어느 백작가에서 근무하던 하녀가 있었지. 그녀가 전처와 아이를 쫓아내고 부인 자리를 꿰찼다더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척 충격을 받았어.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이토록 악의에 찬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에이든은 살며시 그녀의 얼굴을 놓아줬다. 그런데도 비릴리안은 더러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일어나지 못하고 벌벌 몸을 떨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눈앞의 남자에게 굴복하고 있었다. 에이든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 떨어진 손수건으로 비릴리안의 더러운 얼굴을 닦아줬다.

“나는 평생에 걸쳐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고자 했지.”

모두가 자신을 괴물이라 불렀다. 태어나선 안 되는 아이였다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래서 에이든은 더욱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이 살아갈 가치가 있단 사실을. 비록 그 모든 노력이 어느 순간 부질없음을 깨달아 포기하고 말았으나.

“으, 으윽……!”

손수건 아래에서 비릴리안의 피부가 뭉개졌다. 그녀의 얼굴은 깨끗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묻은 숯검정이 여기저기 퍼져 지저분해졌다. 마치 그녀의 추악한 내면처럼 말이다.

“그런데 너는 인간이길 포기한 삶을 살고 있구나.”

“흑, 으윽……!”

에이든의 엄지가 눈 밑을 꾹 짓눌렀다. 비릴리안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단 공포감에 얼음처럼 굳었다. 에이든이 손수건을 쥔 채 그녀의 얼굴을 바로잡았다.

“황족의 책무란 길 잃은 백성을 바르게 이끄는 것이지. 내일, 네가 인간이란 사실을 증명해라. 마지막 기회야. 나는 인간은 죽이지 않아. 인간만도 못한 것을 죽일 뿐.”

“무,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살고 싶다면 인간임을 증명하라니.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비릴리안이 애원하듯 물었다. 에이든은 가만히 눈웃음을 지었다.

“내일 재판장에선 모조품 판매 혐의뿐 아니라 너의 인생 전반에 걸친 판결이 있을 거야. 동부의 교구 성직자를 비롯한 여러 증인이 너의 과거를 낱낱이 털어놓겠지.”

자신의 과거. 비릴리안은 꾹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였다. 어떻게 이 남자가 그 사실을 아는 거지? 그리고 어째서 밝혀내려는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에이든 헬렌베르크가 자신을 적으로 돌렸다는 것. 그리고 자신과 딸아이의 목숨이 바로 이 남자의 손에 쥐어져 있단 사실이었다. 비릴리안은 영악한 여인답게 상황을 빠르게 판단했고, 자신은 이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너는 그저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돼. 사실 그대로, 한 치의 거짓 없이 황후의 앞에 고하면 그만이야. 그것이 인간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이고. 인간이 된다는 건 참으로 쉽지. 안 그런가?”

“……그, 그렇게만 한다면……, 벨리타는……, 제 딸아이는 무사할 수 있나요? 약조해 주세요…….”

“아아, 그래. 목숨은 살려줄 거야.”

목숨은. 에이든은 즐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더 묻고 싶은 것은?”

몸을 일으킨 에이든이 산뜻한 얼굴로 물었다. 참담하게 일그러진 비릴리안은 신의 자비를 구하듯 납작 엎드려 물었다.

“대, 대체 저희 모녀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고작 모조품을 팔아서 그렇다기엔……!”

“인과응보라는 거지.”

에이든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비릴리안을 내려다봤다.

“또 다른 이유는 구원이야.”

“……구, 원?”

“내가 구원을 받고 맹목적으로 종속된 것처럼, 디아도, 그녀도 내게 구원받고 종속되길 바라는 거야. 영원히 서로의 것이 되는 거지.”

“디, 디아라면……, 설마, 레인디아를 말씀하시는……!”

“그래. 맞아.”

에이든은 살며시 몸을 기울였다. 그의 붉은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구부러졌다.

“네 자식을 살리고 싶다면 말이다. 내일 손이 발이 되도록 디아에게 빌도록 해. 그게 내가 원하는 그림이니까.”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러니 벨리타만은……!”

비릴리안은 끅끅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승에게도 모성은 남아 있는 모양이군. 에이든은 비죽 웃으며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그가 떠난 뒤에도 비릴리안은 빌고 또 빌었다.

신, 아니, 악마의 형상을 한 사내에게.

* * *

날이 밝았다.

레인디아는 에이든과 함께 재판장에 도착했다.

황궁 안에서 이루어지는 최고명예재판. 법의 심판을 내리는 것은 신의 대리인이자 제국의 지존인 황제였다. 카타리나 황후는 황제와 동등한 위치에서 이번 재판을 주관한다.

‘이곳이 재판장이구나.’

재판장 안은 유난히 공기가 서늘했다.

장엄한 스테인드글라스, 대칭을 이루는 종교화, 반들거리는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재판장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엄숙한 분위기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재판을 주관하는 이들이 재판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있었고, 에이든은 레인디아를 데리고 분리대 안쪽의 방청석에 자리했다.

방청석의 인원은 이십 명 남짓으로, 제국의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이었다. 즉, 신성 솔레디온 제국의 모든 공작이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지그문 후작도 공작을 대신해 이 자리에 참여했다.

“에이든 님.”

“반갑네, 지그문 후작. 여기서도 보는군.”

“예. 그리고 이분께서…….”

지그문 후작은 하녀인 레인디아의 앞에서 예의 바르게 고개를 조아렸다. 레인디아도 황급히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숙일 거 없어, 디아.”

“하지만 후작님이신걸요…….”

“그래서 디아의 마음이 편하다면야.”

에이든은 어깨를 으쓱이며 불만을 삼켰다.

많은 귀족이 에이든에게 다가와 아는 체를 했다. 이들은 오늘 재판의 증인이 되어, 이 안에서 밝혀진 모든 진실을 전역으로 실어 날라줄 전서구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에이든은 자신이 불러모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악랄한 여인은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정의가 구현되길 바라는 한 귀족이 에이든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엄숙.”

재판을 진행하는 고위 관료가 카타리나를 대신해 외쳤다.

카타리나 황후는 재판장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왼손에는 법전이, 오른손에는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황금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카타리나의 얼굴은 지난 만찬회의 다정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근엄하게 굳어 있었다.

‘숨 막혀.’

레인디아는 꿀꺽 침을 삼켰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떤 죄인을 데려온다고 할지라도 낱낱이 죄를 고할 수밖에 없으리라. 어린 시절의 잘못까지 고백하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다. 레인디아는 마치 자신이 재판대에 서는 것처럼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그때, 에이든이 살며시 레인디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힘들면 내게 기대. 정 못 버티겠다면 잠시 나가 있어도 괜찮아. 나도 따라갈게, 디아.”

에이든은 다른 손으로 레인디아의 뺨을 문질렀다. 투명하게 비치는 피부에 혈색이 돌았다. 레인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전부 마주하고 싶어요. 그래야만 해요.”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하나도 빠짐없이.

탕!

그때 황후가 지팡이로 땅을 박차며 일어났다.

재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황후를 제외한 자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빛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사람들의 팔을 물들였다.

레인디아는 그 눈부신 광채에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살며시 팔을 들었다. 하늘의 높으신 분을 향하여. 당신의 비정함이 오늘은 정의롭게 죄인을 심판하길, 감히 빌었다.

“이 자리는 우리가 짐승이 아닌 인간임을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나 카타리나 헬렌베르크는 신의 대리인으로서 공명정대하게 죄인을 심판할 것이니.”

선서를 마친 카타리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죄인 비릴리안 그레제를 이 자리에 세워라.”

철커덩. 끼이익.

오른쪽 문이 열리고 그레제 백작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 수가!’

레인디아는 두 손으로 입을 감쌌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녹이 슨 수갑으로 팔이 묶인 여인 하나가 털레털레 재판장 안으로 걸어 나왔다. 녹슨 수갑으로 묶인 손등은 쇳독이 올라 울긋불긋했다. 산발이 된 머리엔 쥐똥과 벌레, 나뭇잎 같은 오물이 묻어 있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손톱이 들쭉날쭉하게 자라 있었다. 움푹 들어간 눈은 영혼이 없는 시체처럼 퀭했다.

“우욱.”

“이게 무슨 냄새야……!”

비릴리안이 들어오는 순간 겨울철 들판처럼 시린 냄새가 자욱하던 재판장에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귀족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 하나둘 코를 감싸고 큼큼 헛기침했다. 카타리나도 참기 힘들었는지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저 사람이 정말로 백작 부인이라고?’

반면 레인디아는 너무 놀라 그 역한 냄새를 느낄 틈도 없었다. 그저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게 입을 겨우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비릴리안 그레제. 그대는 신의 대리인 앞에서 진실만을 고할 것을 맹세하는가?”

“매, 맹세합니다…….”

부르튼 입술이 벌어지며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비릴리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덜덜 떨었다.

“그대가 32점의 모조품을 경매장에 판매했단 사실은 이미 지난 재판에서 밝혀졌네. 이 자리에서도 죄를 인정하는가?”

“이, 인정합니다.”

비릴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불법적으로 사용인의 봉급을 감면했다든가 하는 자잘한 죄목들이 나열되었다. 이 또한 죄질이 나빴으나 그녀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가장 큰 이유에 비하면 어린아이의 장난 수준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비릴리안의 과거였다.

“마지막 사안은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판결하겠네. 증인들은 앞으로 나와 신의 대리인 앞에 맹세하도록.”

증인들이 하나둘 앞으로 나왔다.

교구 성직자인 필튼 필립 경과 당시 전 백작 부인의 시체를 발견한 농부, 과거 그레제 백작가에서 근무하던 하녀, 그리고 교구 주민 둘. 마지막으로 비릴리안이 죄인이자 증인으로 참석했다. 그렇게 증인들의 입에서 쏟아진 과거의 파편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때는, 이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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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복종 3권

지은이: 심약섬

펴낸이: 김기철

펴낸곳: 텐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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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70-8823-8681

FAX: 032-667-8681

출판등록: 제 2018-000040호

전자우편: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www.tenbook.co.kr

ⓒ심약섬, 2020

※ ISBN: 979-11-6470-554-2

※ 가격: 3600원

※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 저작권자의 승인 없는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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