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73화 (173/650)

173화 자극적이지만 확실한 방법

이런 억울한 일은 한동안 계속됐다.

얼마 전까지 이성우를 모르던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에 더해 이제는 이성우를 아는 사람들까지 이성우 자리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들이 이성우 자리에 찾아와 꺼낸 말은 모두 똑같았다.

“진짜야?”

이성우는 이제는 답답함을 넘어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아~”

이성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자 장근수 본부장이 이성우를 빤히 바라봤다.

이성우는 그런 장근수 본부장의 시선을 느끼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세요? 장 본부장님도 하실 말씀 있으세요? 장 본부장님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말씀하시려고 그러시는 건 아니죠?”

“나는 뭐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믿기지 않는 건 아닌데…….”

“그럼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세요?”

이성우의 말에 장근수 본부장이 더욱 자세히 이성우를 요리조리 뜯어봤다.

이성우는 그런 장근수 본부장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몸을 뒤로 뺐다.

“왜 그러세요?”

“네가 이정훈 회장님의 아들이라는 건 믿을 수 있거든. 왜냐하면 똑같이 생겼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뭐요?”

“정말 네가 우리 회사를 맡는다는 소문이 사실이냐?”

“어. 그게…….”

이성우가 장근수의 질문에 슬쩍 한진영 쪽을 돌아봤다.

이미 정해진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걸 공개해도 되는지 한진영을 향해 눈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장근수는 이성우의 시선을 따라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그런 장근수의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사실이에요.”

장근수는 한진영의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진짜구나.”

“아니. 장 본부장님. 반응이 왜 그러세요?”

장근수의 반응에 이성우가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치 제가 회사를 맡으면 회사가 망하기라도 하다는 듯하시네요.”

“당연하지. 그럼 그 회사가 멀쩡하겠냐? 너 같은 놈이…….”

“장 본부장님. 말씀 조심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여기 있는 이성우 대리가 차기 사장 자리에 올라갈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시다 목 날아갑니다.”

가만히 이야기 듣던 김정대가 핏대를 세우려는 장근수를 향해 농담조의 말을 던졌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이제 더는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장근수도 그런 김정대 본부장의 말을 알아듣고 하려던 말을 멈춘 채 고개를 돌렸다.

한진영은 그런 장근수를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 본부장님. 그렇게만 보지 마시고 도와주실 방법을 찾는 것이 어떨까요?”

“도와줄 방법?”

“네. 그래서 여기 두 분을 모신 겁니다.”

한진영은 웃으며 장근수와 김정대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둘을 투자전략사업부 회의실로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회사에 분명 동요가 있을 거예요. 그 이유를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뭐 그건 당연한 일 아닌가?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데 직원이 동요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김정대 FICC 본부장은 이성우를 슬쩍 돌아보고 계속 말을 이었다.

“게다가 차기 사장으로 낙점된 듯한 인물이 다른 곳도 아니라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직원들이 동요할만한 일이기도 하고…… 아마 지금 직원들이 동요하는 이유는 지금 말한 이 이유 때문일 거다.”

“제가 그렇게 못 미더워서요?”

이성우가 기운 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김정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요?”

“그래. 우리야 너를 잘 알지.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알겠어. 함께 일하는 사업부 직원들이나 좀 아는 수준이겠지. 그래 봤자 그것도 그냥 겉치레로 너를 알 뿐이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여기 있는 우리를 포함해서 다섯은 될까? 그것도 안 될 것 같은데? 어쨌든 어떤 이유에서건 네 신분이 노출되는 일은 잘 없었으니까.”

김정대의 말에 이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꼭꼭 숨기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성우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이성우에 관한 말을 아꼈었다.

굳이 이성우의 정체를 까발릴 이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었다.

특히 그 소수도 상층부에 해당하여 있었기 때문에 일반 직원들이 이성우의 정체를 아는 방법은 없었다.

김정대는 이성우를 빤히 바라보고 말했다.

“그래서 너에 대한 불만 때문에 네가 사장 자리에 올라가는 걸 불편해하는 게 아니야.”

“그럼요?”

“그동안 자기와 함께 일했던 직원이 인수 기업의 사람이었다는 게 기분이 좋지 않은 거지. 그래서 불만이 생기는 거고…… 감시당했다는 느낌 들지 않겠느냐?”

김정대는 말을 하고는 한진영을 돌아봤다.

“생각해 둔 게 있지?”

“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두 가지나 있어?”

김정대는 흥미롭다는 듯이 반응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건 한 가지인데 다른 한 가지가 더 있다는 사실에 궁금증이 생기는 듯한 반응이었다.

한진영은 차분히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는 아마 김 본부장님도 염두에 두고 있는 방법일 겁니다. 인수 진행 중에 이성우 대리의 실적을 띄우는 방법 말입니다. 그리고 인수가 마무리되었을 때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할 실적을 쌓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불만도 쉽게 가라앉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 나도 그런 방법을 생각하기는 했어. 그럼 두 번째 방법은 무언가?”

한진영은 이제 관심이 생기는지 이성우가 아닌 자기를 바라보는 장근수 본부장을 향해 말했다.

“첫 번째 방법은 좀 불편합니다.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있고요. 하지만 두 번째는 아주 간단합니다. 효과도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되었기 때문에 확실하고요.”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됐다니? 그게 뭔가?”

여전히 김정대 본부장은 한진영이 어떤 방법을 이야기하는지 알지 못하는 반응이었다.

한진영은 김정대 본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장근수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바로 장근수를 자극하는 말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이 생각해온 방법은 자극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그리고 그 확실한 효과를 두 사람에게 보여주려 했던 한진영이었다.

그래야 적극적으로 그들이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숙청을 이용하는 겁니다.”

“숙청?”

“숙청?”

김정대와 장근수가 동시에 한진영이 꺼낸 말을 따라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목소리 크기는 처음 이야기를 꺼낸 한진영과 달랐다.

그들은 잠시 서로 바라보고는 자기들이 들은 말이 맞는 것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잘못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동시에 한진영을 바라보고 인상을 썼다.

“뭘 한다고?”

“들으신 게 맞습니다.”

“숙청이라면…… 다 자른다는 말이야?”

“전부를 다 자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원점타격 형식으로 몇 사람을 날려 버리면 직원들 사이의 논란은 잠잠해질 겁니다.”

“야! 그게 잠잠해지는 거야?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거지.”

한진영의 예상대로 장근수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장근수가 참다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 했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삿대질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거 무서운 놈 아냐? 숙청? 원점타격? 어떻게 생각하는 게 무슨 적국을 침략해서 정복한 것처럼 말하느냐?”

“잠깐만 진정하고 앉아봐.”

김정대 본부장이 장근수의 옷을 잡은 뒤 자리에 앉게 했다.

그러나 장근수는 더는 듣기 싫다는 듯이 잡은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더 들어서 뭐해? 야! 한진영이. 너 인마 너는 기풍철강 직원이 아니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기풍철강하고 협상 과정에 네가 개입했다는 이야기는 듣기는 했는데 설마 기풍철강에서 너를 앞세워서 직원들 정리한다고 하더냐?”

장근수는 말을 하고는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성우와 한진영의 관계를 잘 알기에 이성우를 위에 앉히기 위해 한진영이를 앞세우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이성우는 장근수가 어떤 의미로 자기를 보는지 눈치채고 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니에요. 저 아니에요. 저는 진영이가 사람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을만한 방법이 있다고 해서 여기 온 거예요. 제가 진영이 앞세워서 직원들 자를 생각은 없어요.”

“정말 아니야?”

“아니에요. 제가 왜 직원들을 자르겠어요.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동료일 텐데요. 제가 비록 아버지 아들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신성증권 직원이잖아요.”

장근수는 게스츠름하게 이성우를 바라보고 다시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희가 뭔 짓을 하건 관심 없는데…… 숙청인지 뭔지를 할 거면 나부터 먼저 잘라라.”

“장 본부장. 왜 그래?”

김정대 본부장이 깜짝 놀라 장근수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장근수는 김정대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계속 이야기했다.

“괜히 너희와 친하다는 이유로 자리 보존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시선으로 보이기도 싫고…… 그러니 나부터 잘라. 자리 지키겠다고 허리 숙이고 비굴하게 굴고 싶지는 않으니까.”

“장 본부장. 잠시 흥분하지 말아봐.”

“왜? 너는 그렇게라도 자리를 지키고 싶은 거냐? 그래서 지금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없는 거고?”

장근수가 실망했다는 듯이 김정대를 위아래로 살피자 김정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진영은 김정대의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뭐 더 할 말이 있다는 거냐?”

“네.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가 장근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힘을 줘 장근수를 자리에 앉혔다.

“그래. 조금만 더 들어봐. 왜 그렇게 흥분했어?”

“이거 놔. 더 들어서 뭐해?”

장근수가 김정대의 팔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김정대는 장근수를 잡은 손을 놓치지 않았다.

억지로 장근수를 자리에 앉힌 김정대는 다시 장근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손으로 장근수를 막은 뒤 한진영에게 말했다.

“이제 이야기해봐라. 나도 네가 아무 생각 없이 지금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이 있는 거냐?”

장근수는 김정대의 말에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것을 멈췄다.

한진영은 그런 장근수를 바라보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 본부장님. 숙청은 제가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장근수는 한진영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무슨 꿍꿍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장근수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말씀하셨지요? 적국을 침범하여 점령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적국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

“그럼…… 네가 하려는 게 아니라면?”

“적국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점령한 곳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장근수와 김정대가 동시에 이성우를 바라봤다.

이성우는 두 사람의 시선에 급히 손을 들어 흔들었다.

“저하고는 상관없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장근수와 김정대는 부정하는 이성우의 모습에서 진심을 발견했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꺼낸 한진영을 향해 장근수가 다시 질문했다.

“기풍철강에서 직원들을 정리할 거라고?”

“그거야 지금까지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가 증명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특별하지 않으니 어쩌겠습니까?”

장근수가 한진영의 말에 다시 화를 내려 할 때 김정대가 장근수 앞을 손을 들어 막았다.

지금은 화를 내는 것보다 우선은 한진영의 말을 듣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 나도 알고, 여기 있는 장 본부장도 모두 알고 있어. 그래서 장 본부장이 이리 화를 내는 거고 말이야. 그러니 이해해.”

“이해하고 말고 할 거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나올 반응이었으니까요.”

“그래. 당연히 나올 반응이라는 것을 안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꺼냈지?”

김정대는 이상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본 채 물었다.

아무리 앞으로 벌어질 일이 그와 같다고 하기로서니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대는 한진영이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김정대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이 한진영은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가 기분이 상할만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설명했다.

“성우가 위에 앉는 데 이용할 방법이라서 설명해 드리기 위해 꺼낸 말이었습니다.”

“이용할 방법?”

“저는 아직 이성우를 잡음 없이 사장 자리에 앉힐 두 번째 방법을 다 이야기 드리지 않았습니다.”

“다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숙청은…….”

장근수가 당황한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묻자 한진영이 옅게 미소 지었다.

“숙청은 기풍철강이 한다는 것이고요. 그 숙청을 이용하면 오히려 내부에서 추대하듯이 성우를 사장 자리에 앉힐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조금 전에 장 본부장님께서 잘 보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숙청 이야기가 나오자 크게 반발한 것 말입니다. 그걸 성우가 막아내면 되는 겁니다. 그럼 능력이고 뭐고 따질 것 없이 성우를 추대하여 사장 자리에 앉히려 할 겁니다. 그래야 기풍철강에게서 잘리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이성우가 한진영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 네가 해야 해.”

“내가 어떻게 해?”

“왜 못해? 천하의 기풍철강 도련님인데 못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한진영의 말에 장근수와 김정대의 눈빛이 변했다.

뺀질거리고 노는 데만 정신 팔려서 사장감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성우가 지금은 누구보다 사장으로 어울리는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풍철강의 아들.

이성우가 누구도 자르지 않고 고용승계를 하겠다고 약속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장근수와 김정대가 이성우를 향해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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